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一人詩爲(일인시위) ‘소수자’

  • 작성일 2017-11-01
  • 조회수 992

[기획]

 


포에트리 슬램이란?

시를 쓴 후 이를 슬램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
2차 대전 이후 시인과 래퍼들이 이를 세상을 향한 발화형태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一人詩爲(일인시위) ‘소수자’ - Poetic Justice

 

 

 

 

 

 

마이너리티리포트

 

제이크

 

콘택트렌즈를 뺀 후에도
내 초록색 눈을 타인들은 바라본다
내 얼굴, 내 수염이 남아 있는 음식 집은
이 동네에 하나 밖에 없다.
밤에 면도날 없는 나라를 꿈 꾸고
목욕탕 바닥에 핑크 플라스틱 바구니 속에
면도날들은 쌓여서 서럽다
수염을 깎지 않는 남자의 발바닥 각질만
긁어 둔감해진 이유다

 

모든 이들이 환영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버스에서 잠 들었을 때
한 아저씨가 나를 깨우려고 내 무릎을 걷어 찼다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애인과 함께 어느 길에서 산책을 하는데
누군가 외국인과 만나는 그 여자를 두고
양언니라 뒤에서 속삭인다
내가 초록색 눈을 가진 이유로
오늘은 백명 중 백의 남자들은 나를 두고
강간 살인한 외국인처럼 보고
오늘은 백명 중 백의 여자들은 지하철에서
자리가 생겼는데도 내 옆에 앉기를 꺼려한다
이런 기분 경험해 보았니?

 

누군가가 너의 가슴 털 만지면서
“언젠간 넌 진짜 강아지가 될 같아”라고
놀리며 낄낄거렸다
내 곱슬곱슬 강아지, 곱슬곱슬 강아지
넌 나를 두고 타인에게 말할 때마다
묘기를 부리듯 이렇게 말했다.
“너는 흑인 톰 크루즈를 닮았어.”
“너는 인도 맷 대이먼이야”
“넌 유태인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너는 유태인 도스토예프스키 닮았다!”
동물원의 살아 있는 동물처럼
한 꼬마가 너의 팔의 털을 쓰다듬어 보고
무서워서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장애있는 원숭이로 여기며 타인들은 너를 손가락질한다
동료들이 너를 다른 사람에게 외국인으로 소개할때
세계에 시장에 들어온 트로피처럼
나는 민망하다

 

네가 신기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의 사랑을 이상하다고 느낀 적 있어?
네가 신기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를 섹스대상으로 여긴적 있어?
네가 정신박약아처럼 느린 말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너는 진짜 정신박약아가 되어 간다고 느낀적 있어?
예수가 흑인이었다는건 알고 있어?
우린 교실 벽에 예수의 그림을 내리고
시계를 달았다.
그거 알아? 나는 외계인이야.
나는 내 더듬이 잘랐고
인간이 되려고 했어
나는 벽 시계가 걸리기 전까지 거기 걸려있던
예수 같은 사람이야?
하나님 자식은 정말 한 명 밖에 없을까?

 

예수여, 네가 인간들과 이야기 할 때
모든이들의 신경을 정말 느낄 수 있어?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이제 타인들은 네 얼굴을 치우고 있는데?

 


 

Minority Report

 

Jake Levine

 

Strangers stare at my eyes that stay green even after I take out the lens.
My face is a house for my beard and my beard is a house for leftover food.
It is the only one of its kind on this street.
At night my face silently dreams of a country without razorblades
And the sad razorblades stacked in the pink plastic bins on the floors
Of the bathhouse grow dull cutting dead skin off of beardless men’s feet.
They say everyone is welcome here, but
When I fell asleep on the bus a man poked me awake by kicking his shoe in my knee.
They say everyone is equal here, but
When we walked down the street a man called out slut to the girl I used to love.
Today 100 men or so looked at me like I was born to murder and rape their daughters
And today 100 women stood on the subway rather than sit next to me on the empty seat.
Has anyone petted the hairs on your chest and sang you that song like you are a dog
The one that goes, my curly haired dog, my curly haired dog ?
Has anyone watched you like you are performing a trick every time you speak?
Has anyone ever told you you look like a black Tom Cruise?
Has anyone ever told you you look like Indian Matt Damon?
Has anyone told you you look like Jewish Dostoevsky
After they told you that you aren’t very Jewish looking?
Has a little kid come up to pet the hair on your arms like you belong in a zoo and
Another little kid take a look at your face with big eyes and slowly begin to cry?
Has anyone ever pointed at you like you are a monkey in a cage?
Do your colleagues introduce you to other people and say he is our foreigner
And you can’t tell if it is out of embarrassment or you are like some trophy
For their industry entering the global marketplace?
Do you feel the strange feeling of how it must feel to be loved for being different?
Has anyone ever had sex with you because they wanted to flavor the exotic?
Have enough people talked slowly to you like you are mentally handicapped
So that you started to believe you are mentally handicapped?
Do you know Jesus was really black?
Do you know they took the picture of white Jesus off the wall of our class
And replaced him with a clock?
Do you know I am an alien
That cut off his antennas
And tried hard to be human?
Was I like Jesus before they turned him into a clock?
Is there only one son of G-d?
Jesus, do people get nervous talking to you?
To adjust the time,
Do strangers take off your face?

 


 

 

 

 

 

 

 

 

<바츠해방전쟁>의 내복단을 위한 선언문

-소수자

 

 

김경주

 

 

    한강에선 하루에 이름없는 시신이8구씩 떠오른다지
그 이름없는 고유명사들에 대해선 아무 관심도 없는 나라야
지금부터 나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믿지 못한 사건에 대해 말해줄게
말하자면 그 이름없는 고유명사들에 대해서 나는 진작 떠들고 싶었어

 

    게임좀 하니? 그럼 바츠해방전쟁으로 불리는 혁명을 알고 있니?
세계 최고의 동시접속률을 자랑하는 리니지에서4년동안 일어났던
대규모 해방운동말이야. 인류역사상 이런 전쟁은 없었어.
대한민국 인터넷 생태계에서 일어났던 실제전쟁이니까.

 

    리니지엔 드래곤나이츠 혈맹이라는 독재혈맹이 있었지.
dk혈맹은 리니지 생태계의 독재자이고 최강 혈맹이었어.
레벨이 약한 이들은 아무도 그들을 건드리기 어려웠지
서버내의 모든 성과 사냥터를 그들은 독점했어.
dk가 아닌 혈맹들은 살아갈 땅이 없어서 눈치를 봐야했어
반란을 하려면 자객단들이 인정사정없이 살해했으니까
dk는 고리대금없자가 되어갔지. 아이템의 세율을 높이고
저레벨 사용자들은 경제적으로 압박해서 동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쫒아버렸으니까.
독재자서버인dk혈맹은 서버내에서 엄청난 통제력으로
정치와 경제적으로 군림했지.
바츠해방전쟁은 그들의 파벌에 대항하여20만명이 넘는 바츠연합군은 투쟁사야.

 

    이게 먹힐수 있었던 건 뭘까? 하긴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게임을 하지 않는 우리들도 레벨에 따라 귀천이 정해진다고 믿는게 우리 사회니까.
레벨을 올려 남과 차별되고 싶은 욕망은 한국인에게 가장 부합된 욕망이잖아
너도 게이머니? 그럼 너도 알고 있잖아? 레벨에 따라 귀천이 정해진다는 걸.

 

    하지만 놀라운 일이 생기고 말아.
<붉은 혁명 혈맹>이라는 중소혈맹이 맞서 싸우기 시작한거야.
거대한 통제력에 저항한거지? 블랙리스트로 통제를 당한 우리들은 너무 잘 알잖아.
레벨이 약한 그들은dk동맹에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작은 세력이었어.
자주포 발칸포 물대포도 맞았고 울지도 못했어.
하지만 살아있다는 건 중요한 거잖아. 민중에 가까운 혁명이었어.
<독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성명문을 발표하고
이들의 정의에 동참하는 작은 혈맹들이 합류하기 시작했어.
이게 게임일 뿐이라고?
바쁘게 생존하는 세상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너와는 상관없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라고? 게임방에서 라면먹고 찌질하게 침흘리며
자는 자들의 세계라고? 그렇게 살지마라.
너한테도 있는 레벨에 대한 욕망이야기야.
말하자면 그 이름없는 고유명사들에 대해서 나는 진작 떠들고 싶었어

 

    4년동안이나 지속한 이 전쟁에 우리는 주목해야해.
지금부터 왜 그러는지는 내가 네 귀에 대고 속삭여 줄게.
부탁이니 제발 그만좀 떠들어! 라고 말하지말고
부탁이니 제발좀 마음이 안되면 귀라도 좀 열어.
네 레벨이면 충분히 알아들을수 있는 메세시가 도달하니까.

 

    이 전쟁은 실제로 게임이 흐르는 시간과,
게임을 하는 현실의 시간이 동일한 실제 전쟁이었다는 사실이야.
가상과 현실이 공존지를 이룬 서버전쟁이었다는 거지.
게임속에서 인류최초로 민주주의의 혁명이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거야.
기가막히지않아? 이건 초유의 사태였어. 기사한조각 나가지 않았지만 혁명기념일이
이제야 만들어 지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가 모르는 공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전쟁을 해온 생체병기들이야.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게임을 해왔는데,
리니지2에서 바츠해방단은 독재와 불합리와 싸움을 하면서
현실 재인식을 해간 것이지. 현실이 게임속에 있었던 거야.
어쩌면 어쩌면 말이지 바츠해방군들에겐
그들과 동일한 시간속에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
오히려 더 게임속같아보 였을지도 몰라.
4년동안mb정부가 출범했고 광우병파동과 촛불집회가 있었어.
말하자면 그 이름없는 고유명사들에 대해서 나는 진작 떠들고 싶었어.

 

    이제 내 이야기를 정리해줄게. <내복단>이라고 들어봤어?
바츠해방전쟁의 선봉단과 혁명군인<내복단>을 기억해주어야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이들만큼 이들은 민주투사니까.
리니지에선 캐릭터가 레벨1부터 시작해.
이들은 겨우 내복한장만을 입고 있어.
내복만을 입은 레벨1의 캐릭터 수천명이
dk전쟁속에서 해방을 위해 싸웠어.
아무것도 없으니까 몸빵을 한거지. 제거되면
다시 앞으로 달려가고 죽으면 또 생겨나고
그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우리들이 촛불을 들 때, 우리의 세상과는 조금 다른 현실속에서
그들은 전사의dna로 폭력과 권력과 계층에 맞써 싸운거야.
그게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어떤게 민주주인지 내게 알려줘.
게임 속에서 벌어진 우리들의 일이잖아,

 

    2008년3월4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드래곤혈명이 전쟁포기를 선언하고 항복했어.
전국의pc방에 있던 내복단들은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고 해.
지금 그들의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지만 그들은 서로 끌어안고 울고 싶었을거야.
한강에서 매일8구씩 떠오른다는 이름없는 시신들처럼,
모두가 이유는 있었지만, 죽음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처럼,
매일 죽어야만 살수 있는 우리들의 이름처럼,
자 인터넷에 들어가 바츠해방전의 기념일을 기억하자.
말하자면 그 이름없는고유명사들에 대해서 나는 진작 떠들고 싶었어.
요즘 어떻게 지내니? 민주좀 하니?

 

 

“Lineage 2: Barth’s War of Independence” Declaration of Underwear

- On minorities

 

Kyung ju Kim

 

 

Every day 8 corpses float up from the Han river.
This is a country that has no interest in the proper nouns of those without names. From now on I will explain an unbelievable thing that happened in Korea. But before I do, I want to tell you about the proper nouns without names.

 

Do you game? Do you know the revolution of Lineage 2: War for independence?

 

In the last four years it was the largest scale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world and had the highest rate of contact between people.
An independence movement, I tell you. In all of human history there has never been a war like it.

 

Because it was a real war that began in the environment of the Korean internet.
Lineage Dragon age was a dictatorship formed from blood.
DK blood alliance Lineage was an environment where the dictator had the strongest blood.
Those with very low levels found it very difficult to rise in power.
People inside the server monopolized the sex and hunting grounds.

 

Those who weren’t DK blood had to watch their lips if they wanted to live.
If you protested, assassins would mercilessly cut you down.
I became a loan shark for the DK. The rate of tax on items would go up
And after applying economic pressure to low level users, if they didn’t join the alliance, well, let’s just say no game for them.

 

The DK blood alliance dictatorship server was an absolute dictatorship
That reigned over the economy and the government.
Over 200,000 people joined Barth’s alliance for the fight in Lineage 2: Barth’s War of Independence.

 

What shit were they eating? People who play games and people who don’t play games, high and low levels, our society believes in these decisions.
The desire to discriminate based on getting a higher level, that is the desire that is most familiar to Koreans. Am I also a gamer? Do I also know it?

 

Do I make decisions between high and low levels? However this is not really astonishing.
The minor alliance called the Red Revolution Blood Alliance started the fighting.
Could the opposition control them? Those of us who suffered from getting blacklisted know all too well.

 

Those that were low level had little influence to fight with the DK alliance.
Even if they fired their tank cannons, hand cannons and water pistols, no crying was heard.
However, to be alive is important. The revolution is close to the people.
The manifesto of the “War of the Dictatorship” was presented and
And a small alliance was formed between those that decided upon it.

 

Is this a game?
A story of a world of indecision and a world made busy through want of survival?
The story of you and the indecisive minority? Is the world made up of people slurping ramen in the pc room?
I also have the desire to level up.
I want to tell you about what happened to the proper nouns without names.

 

For more than four years we had to pay attention to the war.
So why only now am I divulging this secret to you?
Instead of saying “please stop this shit!”
If you don’t have the heart to stop it, at least open your ears.
I will give you a message about learning to achieve my level.

 

What’s true is the reality that passes while playing the game is the same as real war.
Fantasy and reality merge into one reality on the war on the server.
The democratic revolution that happens for the first time in humanity in the game is the same democratic revolution that happens in Korea.
What’s that you say? Yep, that’s the situation.
Even though not even a bit of the news has gone out, right now we are commemorating the revolution.

 

In between people that don’t know us
And the spaces that we don’t know
In the reality that we live in—
A viral weapon that is war.
In order to get over reality, we play the game but,
While fighting against irrationality and the dictatorship in Lineage 2: Barth’s War,
We each learned what reality is really. Reality is what is inside a game.

 

Whenever you say Barth’s independence army
Is it really a historical war inside time that we are talking about
Or is just something that happened inside a game?
For four years the mb government was established and during that time there was mad cow disease and the candle light rallies.
I want to tell you about what happened to the proper nouns without names.

 

I will now arrange my story. Have you heard about the “underwear column?”
You have to remember the “underwear column” that was the front line and revolutionary guard in Lineage 2: Barth’s war.
Because they were the fighters that allowed us to raise our hands in victory.

 

They started at level 1.
Wearing nothing but underwear.
There were thousands of characters wearing nothing but underwear.
They fought for independence in the dk war.
They had nothing so they were thrown at the front. If there underwear was removed
They ran to the front and again and again
Because they were not afraid of sacrifice.

 

When we were holding candles, the reality in our world was a little different
They fought against the violence and power of the hierarchy of dna.
If that isn’t democracy then I will tell you what is.
In the game those of us that were wasted.

 

The war ended in March of the fourth year in 2008.
.The dragon alliance admitted defeat and surrendered.
I heard the crying at the top of the lungs of the underwear wearing army at the pc rooms across the nation.
Where are those faces now?.

 

Even though I didn’t know their faces, I wanted to hug them and cry.
Like the 8 people that rise to the surface of the Han river ever day
Even though we all have reasons, like not being informed of death,
The names of we who live dying everyday.

 

Let’s go inside the internet and commemorate Barth’s liberation!
I want to tell you about what happened to those proper nouns without names.
How are we doing? Democracy?

 


 

 

 

 

 

 

 

 

 

 

 

 

 

 

 

김경주
참여 / 김경주

이리카페 운영자, 시인, 마음 드러머

 

제이크
참여 / 제이크 레빈

아이스크림 황제

 

MC메타
참여 / MC메타

힙합 음악가. 현재 <금기어> 발표 가리온 3집 준비

 

김봉현
참여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네이버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글을 쓰고 있고 레진코믹스에서는 힙합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서울힙합영화제>를 주최하고 있으며 김경주 시인, MC 메타와 함께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팀<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 중이다.

 

Lei
참여 / Lei

그래픽 디자이너

 

   《문장웹진 2017년 11월호》

 

추천 콘텐츠

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