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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것 1

  • 작성일 2018-05-01
  • 조회수 2,049

[기획취재]

 

 

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것(1)
- 화각(華角)

 

 

안보윤

 

 

 

    최악이야. 그녀는 오로지 그 말만 반복했다. 태평양을 건너온 화물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포장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인부에게 웃돈을 얹어주고 ‘소중한 것’이라 몇 번씩 강조했음에도 물건들은 교묘히 비틀리고 모서리가 쪼개지고 내부에 금이 간 채로 도착했다.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 그녀는 살림살이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오랜 시간 발품을 팔아 마련한 신접살림이었으나 습기에 약한 것, 사기로 빚은 것, 돌출부가 가느다래서 위태롭고 아름다운 것들은 전부 한국에 두고 왔다. 최악이야. 그녀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물건들을 어루만졌다. 그게 벌써 사십여 년 전 일이었다.
    ―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이거였어.
    그녀가 거실 한편을 가리켰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화각을 꼼꼼히 이어붙인 장(欌) 하나가 빛이 고이는 지점에 놓여 있었다. 신혼 시절 지인에게 쌀 두 말을 주고 가져온 뒤로 그녀와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 그런데 이걸, 뉴욕경매시장에 내놓겠다고? 이걸 팔아버리겠다고?
    ―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남편이 손사래를 쳤다. 화각이 소뿔을 종이만큼 얇게 갈아 그 위에 그림을 그려 채색하는 전통공예라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한국에서 그녀가 화각장을 막 사왔을 무렵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걸 고작 쌀 두 말에 샀다고? 남편은 의아하다는 듯 몇 번이고 되물었다. 겉보기만 훌륭하지 진짜 화각이 아닌 건가? 몇 년 지나면 다 들떠서 못 쓰게 된다든가.
    ― 그런데 반백년 가까이 지나도록 멀쩡하잖아? 화각판이 들뜨지도 그림이 번지지도 목재가 비틀리지도 않아. 그럼 이게 무슨 뜻이겠어. 이 화각장은 장인이 정교하게 만들어낸 작품이란 소리야.
    ― 작품?
    ― 그래, 작품. 나는 이게 어느 정도 가치 있는 물건인지 궁금해. 골동품 수집가가 팔 것도 아니면서 때마다 감정가 따져 보는 심정이랄까. 아무튼 궁금하다고.
    가벼운 걸음으로 나갔던 그녀의 남편은 화각만큼이나 다채로운 얼굴빛으로 돌아와 외쳤다.
    ― 세상에, 당신 믿어져? 이 조그만 게 집 한 채 가격이라는 게 믿어지냐고!
    화각장이 집 한 채 값이든 쌀 두 말 값이든 그녀에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녀가 아는 건 이것이 소중하다는 사실뿐이었다. 값비싼 공예품이라서가 아니라, 이것을 만든 사람과 이것을 지켜온 사람의 삶과 애정이 오롯이 녹아든 작품이라서 그랬다. 모든 것이 서럽고 낯설던 타지에서, 길을 걷다 보면 사물의 그림자마저 자신에게서 물러나 도망치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 외롭던 시절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유일한 것. 시간과 추억이 더께처럼 쌓여 이제 소뿔보다 단단한 무엇이 되어버린 귀중한 것.
    다만 그녀는 궁금해졌다. 이것을 아껴 온 사람은 그녀라지만 이것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누구의 손길이 이토록 오래 그녀를 보듬고 다독여 주었을까. 그녀는 한국에 세간들과 함께 남겨두고 와야 했던 사람들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장문의 편지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 사진을 보내왔더라고.
    이재만1)은 말했다.
    당신이 한국에서 유명한 화각공예 장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게 누구의 작품인지 알고 계십니까. 정중한 내용의 문의 메일에는 사진 여러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재만은 사진 첫 장을 보자마자 알았다. 그것은,
    ― 내 작품입니다.
    이재만은 그녀에게 답했던 때처럼 힘주어 말했다.
    ― 그건 젊은 시절 내가 만든 작품입니다. 가난할 때, 내 삶이 너무 가난해서 작품을 만들기 바쁘게 누군가에게 팔아야만 삶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고단한 시절에. 그렇게 답을 보냈지.
    윤은 이재만의 말을 받아 적다 말고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경매 가격이 얼마였는데요? 목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키고 윤은 이렇게 물었다. 그 일이 선생에겐 어떤 의미였나요? 선생에게 ‘그 시절’은 어떤 시기였죠?
    ― 가장 어려울 때였지. 작품과 혼을 소비해 돈을 만들어야 했으니까. 작품을 만들면 어떻게 팔아야 되나 궁리부터 했거든. 그걸 팔아야 돈이 생기고, 돈이 생겨야 쌀을 사고 새로운 재료를 사서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기술적으로는 그 시기가 제일 완성도가 높았을 거야. 어쨌거나 나는 젊었고, 열정적이었고, 쉬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런 의심이 들더라고. 현물로 바꾸기 위해 소비되고 있다면 이건 상품이지 작품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 작품을 만들었으나 상품으로 소비되던 시절이었다?
    ― 그렇지.
    ― 쌀 두 말에 화각장을 사갔다는 것도 그래서?
    ― 그랬겠지. 제대로 값을 받을 수가 없었거든. 지인들이 알음알음 팔아 주었으니 개중에는 그게 화각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겠지.
    ― 그 소장자는 왜 선생을 찾았던 건가요? 원작자를 찾아서 어쩌려고요?
    ―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대.
    ― 감사인사요?
    ―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젊은 시절 내가 만든 작품들이 전부 사라졌다고만 생각했어. 팔아버린 걸로 그 세계는 끝났다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내게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 전시회 제의가 들어와도 정작 곁에 남은 작품 하나가 없었어.
    ― 힘드셨겠네요.
    ― 그런데 나를 찾아낸 소장자가, 내게 감사하다고 하는 거야. 작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그게 자기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아느냐고 말하면서 울어. 고맙다고, 그냥 그 말을 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해 나를 찾았다는 거야. 그때 알겠더라고. 작품 속에 심어 두었던 내 혼이, 오랜 시간 여러 곳을 돌아 내게 돌아왔다는 사실을. 그 시절은 낭비된 것도 사라진 것도 아니었던 거야. 그러니 나도, 내게 해줄 말이 생겼지.
    ― 해줄 말이요?
    ― 그래. 전화를 끊고 나한테 말했어. 잘했다고. 이재만이 너, 지금까지 잘 해왔구나 그렇게 말해 줬어. 내 지난했던 시절을 한순간 보상받는 느낌이었거든.

  1)  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華角匠)

 

    윤은 지난하다, 라고 받아썼다. 노트북 하단을 보니 인터뷰를 시작한 지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녹음기를 확인하고 문서를 저장한 뒤 고개를 들자 이재만이 있었다. 세 시간 전과 똑같은 자세로. 첫 인사를 나누던 순간과 똑같이 담담하고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래도 왼쪽 어깨가 조금 기울어지긴 했네. 윤이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그러곤 이내 깨달았다. 앉은 자세를 여러 번 고치면서 저도 모르게 책상에 몸을 기대 시계(視界)가 기울어진 사람은 윤이었다.

 

<화각장 이재만>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윤은 여러 곳을 훔쳐보았다. 이재만 뒤에 자리 잡은 화려한 문양의 화각장이라든지 방 안을 가득 채운 넓고 낮은 책상들이라든지 선반마다 자리 잡은 화각 작품들이라든지. 죄다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윤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이곳에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문학경기장 앞에 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그뿐이겠는가. 윤은 문학경기장 안에 축구장과 야구장만 있는 줄 알았지 눈썰매장과 공연장과 박태환수영장이 있다는 사실 또한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윤은 그토록 시야가 좁은 사람이었다.)
    스무 평 남짓한 화각교육장 안에 길게 뻗은 책상을 바라보자 이재만은 기다렸다는 듯 설명했다. 아이들과 부모가 와서 화각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책상이라고. 아이들이 화각판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색칠해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책상 위엔 도료 자국이 얼룩덜룩 남아 있었다.
    — 그러니까 요즘 애들이 향초 만들기나 쿠키 만들기 체험을 하는 것처럼요?
    — 직접 보고, 만들어 보고, 느껴 봐야지. 실생활에서 전통문화를 접해 보지 못한다면 그걸 어떻게 전수하고 보존해 낼 수 있겠어. 가까이 있어야 돼, 뭐든지.
    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하는 동안 이재만은 물을 마시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접힌 다리를 펴서 두드리지도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쉽게 엉덩이를 들썩거려서는 완성해 낼 수 없는 크기의 작품들이 사방에 있었다. 아니, 작품 크기야 어찌 됐든 화각공예 자체가 지나치게 정교하고 지난한 작업이었다. 윤은 쥐가 난 종아리를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비스듬해진 상체를 바로잡고 새로운 문서를 열었다. 내내 우리 곁에 있었으나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이, 지금 윤 앞에 놓여 있었다.

 

*

 

    첫인상은 그저 어여뻤다. 실로 어여쁜 작품이었다.
    윤은 전통공예에 대해 잘 몰랐지만 대개 끈질기고 고단한 작업 끝에 만들어지는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전시장 안에 놓인 화각이 그랬다. 매끈하고 다채롭고 또렷해서 단번에 눈에 띄었다.

 



 

 

    다만 ‘화각’이란 단어 자체는 낯설고 막연했다. 소뿔, 소뿔이 어떻게 생겼더라. 둥글고 길고 끝이 뾰족하지. 그러나 완성작 어디에도 꼭짓점과 곡선이 없었다.
    ― 뿔을 일단 펴야지.
    이재만이 말했다.
    ― 편다고요? 뿔이 원래 펴지고 그러는 건가요?
    ― 그럴 리가 있나. 펴지게끔 공정을 히는 거지.

 

    일단 어떤 소뿔이냐가 중요해. 우리 한우 황소, 그것도 2~3년생 수소가 제일 좋지. 열대지방 소뿔이나 대만 중국 일본 뿔을 다 비교해 봤는데, 습도 높은 지역에서 자란 건 뿔 자체가 약하고 투명도가 떨어져서 못 써. 지금은 소뿔 구하기도 일이지. 사료를 먹고 갇혀 자라니 옛날처럼 좋은 게 드물거든. 직접 소를 보러 가서, 몸체 좋고 골격이 잘 살아 있으면서 소뿔도 건강한 놈을 골라야 돼. 그마저도 힘들 때가 있는 게, 구제역이나 큰 병이 오면 소들을 바로 땅에 묻어버리잖아.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지.
    일단 좋은 소뿔을 구해와. 들통에 물을 붓고 삶아. 연한 불에 세 시간 정도 끓이면 뿔 속에 있는 뼈와 살이 녹아 분리되거든. 그걸 단번에 잡아 뽑으면 원뿔형의 딱딱한 부분만 남지. 뿔 속에 왜 살이 있냐고? 아니, 그럼 뿔이 무슨 돌멩이 같은 건 줄 알았어? 소뿔 안에 든 고깃점을 뽑아낸 다음엔 속이 텅 빈 소뿔을 찬물로 식히는 거야. 소뿔 삶는 냄새? 설렁탕 냄새랑 비슷한데, 지독하지. 아주 진하고 독해.
    식힌 소뿔은 안팎을 잘 살펴. 내부 굴곡이 완만한지 검은 부분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시커먼 건 갈아내도 깨끗해지질 않거든. 투명한 푸른색을 띠는 게 좋은 뿔인데, 그걸 갈아서 각지로 만들면 윤이 나고 아주 맑아. 그림 그리기 딱 좋지. 꼭지를 잘라내고 뿔이 아직 젖어 부드러울 때 세로로 갈라. 숯불을 피워서 뿔을 구우면서 발로 조심조심 밟아서 펴. 어느 정도 펴지면 소뿔을 무거운 철판으로 꾹 눌러 하루를 재워. 그쯤 해야 식은 다음에도 돌돌 말리지 않지. 종이고깔 알지? 그걸 잘라 편다고 생각해 봐. 가오리 모양이 되면 뿔이 펴진 거야.
    편평해진 소뿔은 투명한 부분만 남기고 표면을 전부 갈아내야 돼.
    소뿔 두께가 3~10밀리미터쯤 되려나? 그걸 대략 0.8밀리미터가 될 때까지 가는 거야. 갈고 또 갈고, 어느 정도 갈아낸 뒤엔 하루를 그냥 둬. 다음날? 다음날에 뭘 하겠어, 또 갈지. 도안 크기에 맞춰 재단한 다음부턴 아주 본격적으로 갈아. 장갑을 왜 끼나. 뿔의 잔선을 없애고 구멍 나지 않게 연마하려면 계속 만져 보면서 작업해야 되는데. 촉감으로 두께를 파악하면서 계속 갈면, 소뿔 하나에서 가로 12, 세로 8센티미터 정도 되는 각지 한 장이 나오지.

 

    — 한 장이요?
    — 그렇지.
    — 고작 한 장?
    ― 딱 한 장.
    ― 그렇게 며칠을 갈고 갈아서 소뿔 하나에 각지 한 장이요? 게다가 이렇게 작은데?
    ― 얇고 투명하고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완벽한 각지 한 장이지.
    ― 좋아요, 네, 그렇군요. 그럼 이제 작업이 끝난 건가요?
    ― 최초 공정 정도는 끝났으려나.
    ― 공정 과정이 몇 개나 되는데요?
    ― 스물다섯개쯤?
    그만두고 싶다, 고 윤은 생각했다. 뿔을 갈고 갈고 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쁜데. 거기다 뿔을 구울 때는 어떤가. 전통 숯으로 직접 풀무질을 하면서 불을 피워, 뿔이 타나 안 타나 지켜보고 뿔을 펴고, 그렇게 편 뿔을 갈고 또 갈고. 그럼에도 이것이 고작 첫 작업이라니.
    이재만이 가져온 소뿔은 거대한 고깔 모양이었다. 표면이 거칠고 두껍고 말한 대로 속이 텅 비어 있었다. 뿔을 켜 편편하게 만든 것도 거칠긴 마찬가지였다. 이걸 아무리 갈아낸다 한들 그림을 그릴 만한 판이 될 것 같지 않았다.
    — 대체 왜 소뿔이죠?
    윤이 묻자 이재만이 대답했다.
    — 소뿔은 원래 우리 전통 활을 만들던 중요 재료야. 만들기가 힘들고 재료값이 비싸 왕족들이 사용하던 공예품에만 쓸 수 있었지. 화각을 왕실공예, 귀족공예라고 부르는 게 그것 때문이야.
    — 왕실공예라. 그래서 집 한 채 값이…….
    — 중요한 건 말이야. 어쨌거나 이건 당시 실생활용품으로 쓰였다는 사실이야. 그러니 우리가 실생활에서 화각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의미 없지.
    윤은 이재만이 새로 꺼내온, 1차 공정이 끝난 각지판을 들여다보았다. 우윳빛깔이 나는 각지는 너무 얇고 단정해 새침해 보일 정도였다.

 



 

    각지판이 마련되면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혀. 도안? 당연히 직접 그려야지. 스승에게 물려받은 도안이야 있지. 한데 그건 스승의 도안이지 내 것이 아니잖아. 뭘 그릴지 어떻게 표현할지 어떤 색을 칠할지는 오롯이 내 몫인 거야. 뭘 그릴지 모를 땐 스케치를 하러 이곳저곳 둘러보러 다니면 돼. 그것까지가 전부 작업 과정이니까.
    자, 여기다 도안을 먹선으로 따라 그려. 각지판에 색을 칠할 때는 밝은 색부터 해나가는 거야. 원래는 오방색을 사용하는데, 나는 색을 섞어 더 여러 가질 만들지. 여기, 이런 옥색도 만들고 연지색도 만들고 갈색도 만들고. 그러니까 도안도, 간색을 사용하는 것도 다 내 방식이야.
    화각은 말이야, 복채법을 써서 그림을 그려. 앞면에 그림을 그리면 금세 지워지거나 색이 벗겨지잖아? 그러니 애초에 뒤집어서 그림을 그리는 거지. 화각 뒷면에 그림을 그려서 비쳐 보이게 만드는 게 복채법이거든. 그림이 잘 안 보이지 않느냐고? 그렇지. 안 보이지.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힌 각지를 목재에 붙이고 나면, 앞면을 싹 갈아내. 그림이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아까 각지가 0.8밀리미터쯤 된다고 했잖아? 인두로 지져서 목재에 붙인 각지판을 그림이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갈아내고 나면, 실제로는 0.2밀리미터밖에 남지 않아. 그쯤 되어야 이렇게 선명하고 또렷한 그림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거야.

 

    ― 또, 또 간다고요?
    ― 또 갈지.
    —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이 정도로도 충분한데요.
    — 부족해서가 아니야. 더 완전해지기 위해서지. 예를 들어, 이 각지판을 붙이는 골재를 봐. 목재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서랍장이라 누군가에게는 이것 자체가 완성품일 거야. 그런데 나한테는 아닌 거지. 타인에게 완성품일지라도 내게는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거든.

 

[caption id="attachment_142069" align="aligncenter" width="640"] <화각을 둥글게 눌러 붙여 만든 브로치
ㅡ 완성품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윤을 내는 마무리 작업이 아직 남아 있다.>
[/caption]

 

    ― 혹독하네요.
    ― 쉽진 않지.
    ― 화각 뒷면에 그려져 불투명하게 비치는 그림이 선명해질 때까지 앞면을 갈아낸단 말씀이시죠. 네, 알겠어요. 그럼 이 모든 과정, 그러니까,
윤이 숨을 몰아쉬었다.
    ― 소뿔을 삶아 펴고, 각지판을 갈고, 도안을 창작해 내고, 먹선을 따 채색을 하고, 각지판을 또 갈고, 민어부레풀을 쑤고(아니, 그건 왜 직접! 값싸고 좋은 목재 접착제도 많은데요!), 숯불에 달군 인두로 각지판을 목재에 붙이고(코에 인두를 대서 수증기로 온도를 감지한다고요?), 소 정강이뼈를 볼펜심만큼 얇게 갈아(또, 또, 또 갈아서!) 이음매를 채워 판을 고정시키고, 사포로 갈고(깊은 한숨), 갈퀴질로 화각 표면을 깎아 그림을 선명하게 만들고, 다시 또 윤을 내고…… 그런데 이 모든 게 필요한 과정이다 이거지요?
    ― 그렇지.
    ― 소뿔 두께가 1센티미터 정도라면서 마지막에 남는 게 고작 0.2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데도요?
    ― 마지막에 남는 건 소뿔이 아니라 화각이니까.
    ―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화각공예가 선생님 체질에 딱 맞았나요? 선생님은 원래 외출을 싫어하고 앉은 자리에서 꼼짝 않고 아주 오래 끝도 없이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세요?
    ― 그럴 리가. 난 역마살이 낀 사람이야. 한 곳에 오래 있질 못해. 여행을 다니고 몸을 움직여야 살아 있는 것 같거든. 사람 만나는 게 좋고 새로운 곳 다니는 게 좋고 운동도 좋지. 몇 십 년째 축구를 하고 있고, 자일 걸고 하는 등산도 다니고.
    ― 그럼 도대체.
    윤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하고 싶었던 질문을, 드디어 꺼내놓았다.
    ― 도대체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계속>

 

 

 

 

 

 

 

 

 

 

 

 

 

 

작가소개 / 안보윤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모음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 7의 고백』, 중편소설 『알마의 숲』, 장편소설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이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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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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