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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Ⅰ ― 단편소설 부문

  • 작성일 2020-01-02
  • 조회수 5,205

[기획좌담]

 


이번 좌담은 지난 10년간(2010-2019) 출간된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한 한국 문학 작품을 재조명함으로써 해당기간의 우리 문학을 총결산해 보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2019. 11. 6부터 12. 9까지(34일간), 지난 10년간 《문장 웹진》에 필진으로 참여한 평론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64명의 평론가가 보내온 설문의 취합 결과를 토대로 시집(12. 20), 소설집(12. 17), 장편소설(12. 18) 각 영역별로 3차에 걸쳐 좌담을 진행했다.
좌담 내용은 이번 소설집과 시집(1.1)을 시작으로 장편소설(1.8) 순으로 각각 게재할 예정이며, 이번 설문과 좌담을 통해 호출된 개별 작품의 상세 목록은 2020. 2월호(2.1 발행)에 발표하고자 한다.
끝으로, 설문에 참여한 64명의 평론가와 좌담에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 설문 참여자 명단 (가나다순)
    ㆍ 강지희, 고봉준, 김건형, 김남혁, 김 녕, 김문주, 김미정, 김수이, 김영삼, 김영임, 김요섭, 김정현, 김주선, 김태선, 김형중, 김효숙, 노대원, 노태훈, 민경환, 박다솜, 박동억, 박수연, 박신영, 박윤영, 박인성, 백지은, 복도훈, 서희원, 소유정, 손정수, 송민우, 신샛별, 신수진, 신형철, 안지영, 양순모, 양윤의, 양재훈, 염승숙, 오연경, 오은교, 오창은, 오혜진, 유성호, 이병국, 이성혁, 이소연, 이은지, 이지은, 이철주, 인아영, 장예원, 장은영, 전소영, 정영훈, 정은경, 정홍수, 조대한, 조재룡, 조형래, 최선영, 한 설, 한영인, 허 희
  ⁃ 좌담 참여자 명단 (분야별, 가나다순)
    ㆍ 노태훈, 박선우, 이원석, 장희원, 조시현
    ㆍ 강지혜, 김태선, 양안다, 이병국, 정다연
    ㆍ 김수온, 염승숙, 은모든, 이현석, 임국영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Ⅰ

― 단편소설 부문

 

 

일시 : 2019년 12월 17일(화) 14시
장소 :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001스튜디오
참여자 : 노태훈(사회), 박선우, 이원석, 장희원, 조시현

 

 

 

 

노태훈 : 안녕하세요. 《문장 웹진》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노태훈입니다. 오늘은 2010년대 "한국 문학 총결산"이라는 이름으로 그중 소설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일단 이 기획의 취지를 간단히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이 좌담이 업로드 될 때는 2020년이 되어 있겠네요. 햇수가 바뀌는 것을 기념 삼아 지난 2010년대 한국 문학에는 어떤 작품과 작가들이 있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저희가 2010년대에 《문장 웹진》에 글을 주신 평론가분들께 소설집(단편), 장편소설, 시집, 이렇게 3개 부문에 걸쳐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행본을 3개씩 뽑아 달라고 요청을 드렸어요. 그 결과 60명이 넘는 평론가분들께서 회신을 주셨고요. 오늘은 그 결과를 토대로 소설집 부문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좌담을 진행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인작가분들과 조금 편하게 대화를 나눠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2010년대에는 아마 가장 열정적인 독자이셨을 것 같고 이제 2020년대에는 활발히 활동하게 될 작가이시기도 하고요. 각자 자기소개를 해주시고, 더불어 2010년대를 어떻게 지내셨는지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시현 : 안녕하세요. 저는 시와 소설을 쓰는 조시현이라고 합니다. 소설은 2018년 실천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어요. 저는 2010년대를 문학과 함께 시작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문예창작과에 11학번으로 입학했거든요. 사실 그때는 재수를 하려는 마음으로 들어갔었는데, 어쩌다 보니 문학에 빠져서 학교도 두 번 다니게 되었어요. 그렇게 2010년대를 내내 문예창작과에서 보내게 됐습니다.

 

노태훈 : 문예창작학과와 함께 최근 10여 년을 보냈다는 것은 2010년대 한국 문학의 산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웃음) 2010년대에 시인이자 소설가로 데뷔하시기도 했고요. 그럼 10년대 내내 계속 학생 신분이셨던 건가요?

 

조시현 : 네, 2011년에 처음 입학해서 2016년에 첫 학교를 졸업했고, 같은 해에 다시 다른 학교에 재입학해서 2019년 2월에 졸업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산증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노태훈 : 그렇군요. 옆에서 박선우 작가님께서 경청하고 계시는데, 박선우 작가님도 자기소개와 더불어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선우 : 안녕하세요.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선우라고 합니다. 저는 2010년대를 학생과 편집자로서 보낸 것 같아요. 서사창작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부터 출판사에서 근무했거든요. 직장을 다니면서 습작을 이어 가다가 운 좋게 발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2010년대는 소설가로 살아가게 된 밑바탕,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노태훈 : 마찬가지로 2010년대를 거의 한국 문학의 내부자처럼 보내셨군요. 장희원 작가님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희원 : 저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장희원이라고 합니다. 저도 앞서서 작가님들이 말씀하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많이 갈팡질팡했었어요. 그래서 국문학과를 다니면서 신문방송학과를 복수 전공하기도 했고 짧게나마 다른 활동을 해보기도 했는데, 역시나 문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서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2010년대를 대학원생으로 마무리한 거 같습니다.

 

노태훈 : 그리고 이제 2010년대의 끝자락에 소설가가 되신 거군요.

 

장희원 : 네, 감사하게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된 거 같습니다.

 

노태훈 : 이어서 이원석 작가님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원석 :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소설을 처음 발표하게 된 이원석이라고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2010년에 딱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고등학생이 돼서부터 본격적으로 문예창작학과에 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기 시작했었어요. 고등학생 시절에는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백일장도 많이 나가고, 청소년 공모전에 출품도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가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요. 입학하고 나서는 그냥 계속 썼던 거 같아요. 한국 문학에 대해 어떤 걸 이루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언젠가는 등단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계속 썼던 거 같은데, 학교를 오래 다닌 끝에 굉장히 운이 좋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만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노태훈 : 유일하게 청소년기를 2010년대 초에 보내셨네요. 아무튼 다들 어느 정도 비슷하게 지난 10년을 지나오신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저는 2010년에 대학원에 입학을 해서 그 이후는 이른바 순수 독서의 기억이 별로 없어요. (웃음)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책을 읽을 때는 감흥을 많이 느끼고 환호도 하고 화도 내면서 열정적으로 뭔가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무적으로 할 말을 찾기 위해서 작품을 읽었다는 느낌이 조금은 있습니다. 대체로 비슷하셨을 거 같아요. 단순히 취향이나 취미로서의 독서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이번 설문 결과를 다들 받아 보셨잖아요. 소감이 어떠셨나요?

 

이원석 : 저는 결과를 받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여기 다 있네? 라고 생각했어요. 2010년대에 들어서서 꾸준히 읽고 공부했던 작가들의 작품들, 저뿐만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거의 모든 한국 문학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텍스트들이 여기 있구나, 그렇게 받아들였던 거 같아요.

 

노태훈 : 그럴 것 같네요. 사람마다 좋은 작품의 기준이 완전히 상이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런 생각도 하셨을 거 같아요. 이 작품은 아주 좋게 읽었는데 생각보다 득표수가 낮았다든지, 아니면 결과에서 빠져 있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나요?

 

장희원 : 저는 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어요. 다만 몇몇 작품들은 득표수가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노태훈 : 개인적인 애정이 담긴 작품들이 있었군요.

 

조시현 : 저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기대했던 이름이 없거나 혹은 득표수가 적거나 한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조금 의외의 부분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노태훈 : 역시 평론가들은 좀 특이하구나, 하는? (일동 웃음)

 

조시현 : 아니요. 그냥 제가 이상하구나 생각했어요. (웃음)

 

박선우 : 저는 이 결과표를 받기 전까지는 아무 예상도 안 하고 있다가 결과를 보고 난 후에야 뭔가 예상대로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득표수를 보고서야 아, 그렇지, 2010년대 한국 문학이 이랬지, 라는 생각을 사후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어떤 작가의 어떤 소설이 좋은지 이런저런 얘길 들을 때마다 그 사람들이 유별난 편이 아닌데도 각자가 추구하는 문학이 조금씩 다르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설문을 통한 결과 값을 보니까 우리가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문학적 성취라는 게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설문이라는 형식이 사람들에게 주관적인 취향은 좀 억누르고 객관적으로 납득이 갈 만한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원석 : 지금 저희가 다루는 게 개별 작품이 아니라 단편 작품들이 모여서 나온 단편소설집인데, 최고의 작품집과 최고의 작품은 당연히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차이를 가시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노태훈 : 맞아요. 소설집이라는 건 결국 2년에서 4년가량 꾸준히 써온 단편소설 예닐곱 개 정도를 묶어서 나오는 형태가 보편적인데, 그 작품집 안에 완벽한 작품만 다 실려 있을 가능성은 사실 낮죠. 또 그중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에 어떤 작품은 그렇게 와 닿지는 않는 작품도 있을 거고요. 장편소설이나 시집의 경우엔 그 단행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생각하면 크게 무리가 없는데, 단편집의 경우에는 각자의 판단이 다 다를 거라서 좀 더 고려해 봐야 할 게 있는 거 같기도 해요. 그렇잖아도 비슷한 질문을 제가 생각했었거든요. 다들 단편소설로 등단하셨고 첫 책도 단편소설집이 될 가능성이 클 텐데, 단행본 한 권으로서의 완성도와 개별 작품으로서의 완성도 두 가지 중 어떤 쪽에 조금 더 중점과 가치를 두시는지 궁금해요. 물론 모든 단편이 다 주옥같고 그걸 다 모은 책 한 권이 굉장히 훌륭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 두 가지를 다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박선우 : 저는 소설집의 경우 한 권의 책으로서 완성도라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수록 작품들이 개별적인 시간성과 성취를 갖고 있고, 소설집이라는 형식 자체가 그 작가의 관심 분야나 변화의 궤적 같은 걸 보여주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소설집을 읽을 때 맨 앞의 작품만 읽고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라고 추측하다가, 네다섯 번째 단편을 읽을 즈음 아, 이 사람은 내가 짐작했던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하는 깨달음이 들기도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한 작가의 다채로운 면을 볼 수 있는 게 소설집의 특징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단행본 한 권으로서의 완성도랄까 완결성은 소설집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책 안에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많이 수록되어 있으면 무척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쓸 때 얼마나 공을 들이셨을까, 책으로 묶을 때는 또 얼마나 고심하셨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반대로 아쉬운 작품이 과반이다 싶으면 좀…….

 

노태훈 : 돈이 아깝다……? (일동 웃음)

 

박선우 : 아뇨. (웃음) 그냥 좀 힘드셨나 보다, 이것들을 쓰고 모을 때 뭔가 부침이 있으셨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노태훈 : 그런 게 또 소설집의 매력인 거 같긴 해요. 작품마다 편차가 있다는 게요. 작품들의 시차와 편차가 하나의 책 안에서 보일 때 그게 실망이나 아쉬움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 차이들에 대해서 또 독자가 나름대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지점도 소설집의 매력이지 않나 싶어요. 아예 다른 색깔의 작품들이 여러 개가 모여 있는 소설집도 그 자체로 다채롭고, 일관된 주제 의식을 깊게 파고드는 작품이 모여 있는 소설집도 거기서 오는 무게감이 있고요.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어찌 됐든 한 권의 책이라는 완결성을 무시할 순 없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원석 : 저 같은 경우엔, 그게 어떤 작가가 빚어낸 첫 작품집이라고 한다면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굉장히 동감해요. 다들 다양한 걸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1년 동안에도 단편집을 두어 개씩 내는, 책을 무척 많이 내는 작가님들 같은 경우에는 개별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것들도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이시는 것 같아요. 특히 편혜영 작가님을 접할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와 반대로 이전에 냈던 작품집과 그다음에 낸 작품집이 너무 변해 있는 작가님도 계시잖아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요. 저는 그런 식으로 작가님들에 대해 얘기해 보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해요. 작품집이 나온다는 건 어떤 한 명의 작가가 그 시대를 통과해 낸 체험을 소설로써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노태훈 : 소설집 같은 경우엔 요즘에는 그런 표현도 쓰잖아요. 음반에서 쓰는 표현처럼 1집, 2집, 3집이라고요. 여러 곡의 트랙을 모아서 하나의 앨범으로 내는 형태가 소설집과 흡사한 지점이 있기는 하죠. 그리고 아시겠지만, 예전엔 표제작이라고 해서 가장 대표성을 띠는 단편 작품의 제목을 소설집 제목으로 정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많아요. 소설집의 제목은 작가가 새롭게 짓는 거죠. 그런 경우를 보면 이원석 작가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작가분들도 이제는 관행적으로 단편을 모아 소설집을 내던 것에서 조금 벗어나 한 권의 책으로서의 의미를 조금 더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이야길 나누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이번 설문에서도 한 권의 단행본으로서의 가치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선정된 작품도 있고, 아니면 그 소설집에 수록된 특정 작품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이 책은 도저히 뽑지 않을 수 없었다는 식으로 선정된 경우도 있었어요. 이를테면 황정은 작가님의 『디디의 우산』이 굉장히 많은 지지를 받았는데, 사실 『디디의 우산』은 좀 독특한 구성이랄까요. 일반적으로 단편소설을 모은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작소설집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한 측면이 있죠. 황정은 작가님은 이 소설집을 '예전에 썼던 작품을 부수어서 만들었다.'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고요. 그런 걸 보면 이제는 모인 작품을 그냥 단행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꼭 써야 할 것들에 대해서 깊이 고심해서 엮어내는 책들이 독자들의 호응을 좀 더 받는 거 같아요. 박상영 작가님의 『대도시의 사랑법』도 몇몇 분들이 추천을 해주셨는데, 작품들이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더욱 매력적으로 읽히는 듯하고요. 그런가 하면 권여선 작가님의 『안녕, 주정뱅이』도 굉장히 많은 호응을 받았는데, 평론가분들이 써준 한 줄 평을 보면 「봄밤」이 실려 있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집은 의미가 있다, 이렇게 써준 분들이 있었어요. 2010년대 독자라면 아마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을 단편이죠. 한 편의 소설이 정말 매력적이라면 그 소설이 거기 실려 있단 것만으로도 그 소설집은 읽어 볼 가치가 있다,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장희원 : 저는 여담이지만, 방금 사회자님께서 말씀하신 『안녕, 주정뱅이』의 「봄밤」도 분명 사람의 마음에 크게 남는 단편이지만, 다른 단편 작품들도 권여선 작가님께서 직접 지으신 『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 안에 함께 묶인다고도 생각하거든요. 등장인물들이 전부 알코올의 영향을 받고, 마음과 마음이 부딪치고, 이런 부분들이 일치하기 때문에 『안녕, 주정뱅이』는 완결성에 있어서도 성과를 이룬 게 아닐까 싶어요.

 

노태훈 : 그렇군요. 『안녕, 주정뱅이』도 '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들어 있는 소설집은 아니죠?

 

장희원 : 네. 그리고 저도 마음에 남는 작품이 수록된 책에 끌리긴 해요. 사람의 마음에 남는다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큰 힘을 지닌 거잖아요. 하지만 너무 잘 쓴 단편들이 빽빽하게 들어 있는 단편집을 마주할 때면 호흡이 좀 가빨라지는 면도 없잖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독자를 흡입하게 하는 잘 쓴 단편과 그렇지 않은 단편들이 어우러지는 게 독자 입장에서 훨씬 더 얻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네요.

 

노태훈 : 이런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문예지에 실렸던 좋은 작품들은 이런저런 문학상의 후보작이 되기도 하고, 수상작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 경로로 주목을 받고 난 후에 소설집으로 엮였을 때는 기시감이 드는 경우도 있잖아요. 어떤 작가의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거의 다 상을 받은 작품일 때도 있고요. 그럴 때면 작품들이 하나같이 훌륭해서 좋지만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독자로서는 뭐랄까, 이상한 종류의 아쉬움이 있을 거 같아요. 어떤 작가를 내가 좋아한다고 했을 때는 사실 망작도 보고 싶은 게 사실이잖아요. (웃음) 이 작가님이 이런 이상한 소설도 쓰시네? 하면서 느껴지는 팬심 같은 게 있는데, 빽빽하게 잘 쓴 작품만 채워 넣으면 방금 말씀하신 그런 부담도 있는 거 같아요.

 

장희원 : 지금 든 생각인데, 어떤 작가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자주 만나게 되면 작가의 작품들을 자주 접했다는 이유로 그 작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 쉽잖아요. 망작의 기준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면모의 작품을 접했다는 자체가 기쁜 거죠.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순수하게 독자로서의 기쁨인 것 같아요.

 

노태훈 : 한 가지 기억나는 게, 2010년에 나온 권여선 작가님의 『분홍 리본의 시절』에 보면 수록작 중에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어요. 게임 유닛이 미네랄을 캐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 장면이 인물의 상황과 관계에 어떻게 비유적으로 읽히는지 쓰신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저는 그 작품을 읽고 되게 이상한 매력을 느꼈어요. 사실 게이머 이야기가 소설에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야 가끔 했지만 권여선 작가님이 그런 소설을 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권여선 작가님이 스타크래프트에 대해서 꽤 마니아적인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기도 했고요. 그런 소설을 접하면 확실히 더 애정이 느껴지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저희가 이번 설문조사의 순위를 발표하거나 득표수를 공개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작품집은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 많은 분들이 예상했던 작품집일 수도 있고, 또 많이들 이 결과에 공감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번 설문에서는 최은영 작가님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쇼코의 미소』는 다들 읽어 보셨으리라 생각하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결과인 것 같아요. 최은영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기도 하고요. 신인작가의 첫 책이 2010년대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집으로 뽑혔다는 건 대단한 일일 텐데, 다들 어떠셨나요. 『쇼코의 미소』를 읽고 난 후의 감상이 있다면요.

 

조시현 : 저는 이 작품집을 되게 좋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신짜오, 신짜오」의 경우엔 필사도 했었고요. 작품집 전체적으로 각자의 궤도를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겹쳐졌다가 멀어지는 순간, 그리고 그 어쩔 수 없음을 따뜻한 시선으로 잘 풀어내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단순히 감상적인 게 아니라 바깥의 여러 이슈들과 얽어 함께 얘기하고 있어서 풍성하게 읽혔어요. 그런데 약간 맥락이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일부 한국 소설 작품들이 착해지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던 거 같아요. 일련의 흐름 안에서 지인들과 '좋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의견이 더 다양해서 재미있었어요.

 

노태훈 : 착해지려 한다는 건 도전적이면서 조금은 거친 매력을 가진 작품들이 위축되었다는 의미이겠죠? 그런 면이 공감가지 않는 건 아니에요. 2010년대 중반부 이후로는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고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인지에 대해서도 아주 치열한 논의가 있어 왔으니까요. 근데 어떻게 보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설은 쓰기 쉬운데, 독자를 불편하지 않게 하는 소설을 쓰기란 오히려 어려운 일 같기도 해요. 지금 독자들이 원하는 서사에는 누구도 혐오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이야기도 있는데, 작가 입장에서는 정말로 쓰기 어려운 이야기일 테니까요. 실제로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들은 꽤 불편한 지점들을 많이 건드리고 있는데, '착함'이라는 감수성이 도드라지게 부각되는 것은 최근 몇 년간의 한국 문학의 변화와 사실 겹쳐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소설이라는 게 대단히 문제적인 인물의 실패와 몰락, 그리고 거창한 비극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을, 이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마음에 큰 울림을 남기는 소설도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나요?

 

이원석 : 저는 『쇼코의 미소』 같은 경우는 두어 번 정도 읽었던 소설집이긴 한데, 처음 읽었을 때는 사실은 뭔가 맹한 맛이었어요. 물을 너무 많이 넣고 끓인 라면 같은 느낌의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다들 워낙 좋다고 해서 제가 그때까지 너무 자극적인 어떤 것에 맛이 들어 있었던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특히 「쇼코의 미소」라든지, 아니면 「신짜오, 신짜오」 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데, 한국 문학에서 최은영 작가님 이전에도 타인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에 대해서 발언하는 작품집과 작가들은 늘 있어 왔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도 저는 최은영 작가님이 되게 용감하다고 생각했던 게, 한 평론가님께서는 이 소설에 대해서 '이해가 아니라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을 써주었는데, 저는 이해가 아니라 오해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상황에서 쓰였을 땐 조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 오해라는 건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봐야지 할 수 있는 이해의 실패작인 거잖아요. 현실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한 번이라도 삐끗 실패하고 오해하면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버리지만, 그걸 마음껏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소설이라고 최은영 작가님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됐어요. 이해라는 불가능을 그럼에도 시도해 보려는 마음의 따뜻함이 느껴졌고요. 그래서 그 이후 한국 문학의 흐름이, 이해할 수 없다면 오해하자는 쪽으로 흘러가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장희원 : 저도 출간 당시에도 물론 재밌게 봤고, 또 설문에서도 굉장히 많은 득표수를 받아서 이번에 다시 한 번 읽었는데, 역시 진정성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어요. 화려한 기교나 문체, 이런 것들도 중요하고 또 마음이 끌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 모든 걸 뛰어넘을 수 있는 건 진정성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쇼코의 미소」라는 단편만 놓고 보았을 때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면,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거잖아요.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을 담았고, 또 마지막 장면의 쇼코를 보면 씁쓸함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따스함이 차오르면서 끝나거든요. 결국 성장이라는 이야기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박선우 : 저는 『쇼코의 미소』가 나오기 전과 후의 맥락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쇼코의 미소』가 성공한 이후 한국 문학이 좀 더 공감이라는 정서에 주목하게 된 거 같긴 해요. 많은 사람에게 이해와 동조를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달까요. 이게 최근 여성 서사에 대한 주목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한국 문학을 주로 읽는 독자들이 현재 명백하게 원하는 이야기가 있고, 그걸 문학적인 언어로 보여주려는 시도가 많아졌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작가가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문학을 했고, 그래야만 했다면, 이제는 소통과 부응의 역할을 하려는 측면이 늘어난 것 같고, 그게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쇼코의 미소』가 문학적으로,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제는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다수의 독자와 교류하고 교감하는 것에 거부감을 덜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첨예한 상황과 인물만 다루던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누구나 겪었을 만한 사건과 감정에서 문학적인 순간을 짚어내는 경향이 많아진 것 같아요.

 

노태훈 : 저도 『쇼코의 미소』에 한 표를 던졌는데요. 저는 최은영 작가님의 『쇼코의 미소』를 계기로 소설을 읽은 뒤에 '감동을 받았다'라는 표현을 다시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예전에는 어떤 소설을 읽고 감동했다고 얘기하면 뭔가 초보적인 감상을 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말 그대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자체가 소설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은영 작가님 이후로 그런 인상을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고요.
단행본 자체로는 『쇼코의 미소』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긴 했지만, 작가를 기준으로 보면 가장 많이 언급된 작가는 바로 황정은 작가님입니다. 최근에 2010년대 한국 문학을 결산하는 여러 매체나 설문조사에서도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작가죠. 2010년대에 나온 세 권의 소설집이 모두 상위권에 올라 있는 데다 장편소설도 세 권을 내셨는데, 장편 부문에서도 많은 분들의 선택을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황정은 작가님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과 2010년대 내내 문학으로 싸워 오신 작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작품이 이견 없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제일 좋았던 작품은 「양의 미래」라는 단편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작품을 읽었을 때 소설을 이렇게까지 쓸 수가 있구나, 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다들 황정은 작가님의 책이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조시현 : 저는 황정은 작가님을 굉장히 좋아해요. 말씀하신 「양의 미래」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고요. 아까 작품집과 단편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저는 『아무도 아닌』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모든 단편소설이 하나같이 매우 훌륭한 작품들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무인도에 책 한 권을 가져가야 한다면…….

 

노태훈 : 너무 관습적인 표현 아닌가요? (일동 웃음)

 

 

조시현 :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아무튼, 그 책을 가져갈 것 같아요. 거기에 수록된 모든 단편을 정말 잘 읽었고, 그 외에 다른 작품들도 다 좋았어요. 이번에 설문 결과표를 보고 작가님께서 처음 쓰신 작품부터 다시 한 번 쭉 읽었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작품집을 모아서 읽으니까 작가님이 거쳐 온 변화라고 해야 할까요, 분기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보여서 좋으면서도 마음이 아팠어요. 2010년대 한국 사회를 살면서 거쳐 왔던 사건들도 함께 곱씹어 보게 되었고요. 지금 여기, 지금 우리에 대해 감각을 첨예하게 곤두세우고 반응하고 계시는 작가님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초기작에 비해 환상성이 점차 사라지면서 지금 여기를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고 말하려고 하는 게 느껴졌어요. 변화를 처음부터 되짚어 보면서 '덕질'하는 기분으로 읽었던 거 같아요.

 

이원석 : 황정은 작가님 글을 누가 싫어하겠느냐마는, 그중에서도 뭔가 황정은이라는 한 명의 작가가 완성된 책을 꼽으라면 저도 『아무도 아닌』을 꼽을 것 같아요. 조시현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정말 좋아요. 소설집의 완성도를 봤을 때도 그렇고요. 거기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들이 후일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잖아요. '오랫동안 나는 그 일을 생각해 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웃는 남자」라든지, 아니면 「양의 미래」 같은 경우도요. 그런 후일담 형태의 소설들은 자칫 잘못 쓰면 재미없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현재성이 없으니까 의외성도 없고 당연히 긴박감도 떨어지고. 그런데도 황정은 작가님이 굳이 그런 후일담의 형식을 채택하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현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현상성을 제거한 뒤 정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후일담은 소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형식 중에서도 가장 정확한 잣대 같은 형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그것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단편집을 여러 권 내신 작가님들 중에서도 소수의 작가님들만이 전체 작품들을 관통하는 테마를 끌고 와서 한 권의 완벽한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황정은 작가님이 『아무도 아닌』에 와서 완성됐다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이 책을 '덕심'으로 영접했던 것 같습니다.

 

노태훈 : 그 책도 '아무도 아닌'이라는 수록작은 없는 거죠? 그리고 책날개의 작가 이력도 별다른 내용 없이 작가 이름만 있었던 것 같고, 흔한 해설이나 작가의 말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역시 상당히 공을 들인 소설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원석 : 「명실」이라는 작품이 처음 발표됐을 때의 원래 제목이 「아무도 아닌, 명실」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거기서 '아무도 아닌'을 책 제목으로 끌고 오고 '명실'은 그대로 단편 제목으로 남겨 두셨던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요.

 

노태훈 : 그렇군요. 장희원 작가님과 박선우 작가님은 황정은 작가님의 작품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장희원 : 사실 좌담하기 전에 2010년대를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책을 몇 권 골라 봤어요. 『아무도 아닌』과 『파씨의 입문』 이 두 권을 골랐는데, 저는 그중에서 「데니 드 비토」라는 작품을 꼽고 싶어요. 형식과 절제의 미학과 작품 안에 담고 있는 감정, 모든 박자들이 잘 맞아서 시너지를 일으키는 그 파문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아요. 저는 소설과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가끔 깊이 고민할 때가 있는데, 황정은 작가님의 소설이 그 고민에 대한 어떤 방향성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항상 존경심이 들었어요. 소설을 읽고 난 후에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많이 나눠 볼 수 있게 하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해요.

 

 

박선우 : 저는 황정은 작가님의 작품을 습작 시절에 가장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스터디에서 합평하거나 문학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 훌륭한 본보기로서 황정은 작가님의 단편을 자주 접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 생각이지만, 소설 쓰기를 공부하는 분들에게 지금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작가가 아닌가 싶어요. 저는 황정은 작가님의 신작을 볼 때마다 뭔가 계속 새로워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요. 작품이 확 달라진다기보다, 이 작가가 어디론가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고 그걸 멈추지 않으려 한다는 의지나 박력 같은 걸 텍스트 외적으로 전해 받는 것 같아요. 이런 분이 현재 한국 문학장에 존재하고 선배로 계시다는 것 자체가 소설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다들 존경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노태훈 : 그렇군요. 또 설문에 자주 언급된 작품집들을 보면, 역시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집 『비행운』과 『바깥은 여름』도 언급이 많이 됐어요. 『바깥은 여름』 같은 경우는 2010년대 작품들을 모은 단편집이고, 『비행운』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2000년대에 쓰신 작품이 많이 수록된 책이긴 한데, 이 두 권은 어땠나요? 개인적으로 저한테 김애란 작가님은 2000년대의 아이콘 같은 느낌이어서, 소위 청춘들의 한 시절을 그려내던 그때와 비교하면 2010년대인 지금은 원숙한 중견작가로 가고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다들 어떻게 읽었을까요?

 

박선우 : 『비행운』을 좋아해서 완독 후에도 거듭해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수록작품 속 인물들과 제가 비슷한 연령대여서 몰입이 잘 되기도 했거든요. 이삼십 대에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처들을 세심하면서도 사려 깊게, 때로는 참담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여주는 작품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의 내밀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많고, 이를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 짓는 방식도 인상 깊었어요.

 

노태훈 : 최근에는 장류진 작가님이 독자분들의 호응을 많이 얻고 있는데, 장류진 작가님이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는 감각과 제가 2000년대에 김애란 작가님을 접했을 때에 환호했던 지점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거 정말 내 얘긴데, 나도 그랬는데, 하는 것들을 섬세하게 건져 올려 준다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대체로 『비행운』에 실린 작품들이 그랬던 거 같고요. 다른 분들은 또 어떠셨는지요?

 

이원석 : 저는 『바깥은 여름』을 조금 더 좋아하는 거 같아요. 『비행운』 같은 경우에는 저는 대학교 신입생 때, 그게 아마 2013년? 비교적 2010년대 초반에 읽었던 작품집이어서 살짝 가물가물한 감도 없잖아 있긴 한데, 김애란 작가님께서 『비행운』에서 『바깥은 여름』으로 건너오면서 챙겨 오신 것을 저는 '가족사'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김애란 작가님께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저는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히 「입동」이나 「가리는 손」 같은 작품이 굉장히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리는 손」 같은 경우는 작가님이 어느 지점에서 멈추거나 안주하지 않고 지금 이 시대에 어떤 혐오가 새로 만들어지고, 또 어떤 혐오가 조금씩 완화되어 가고 있는지 굉장히 예민한 레이더로 포착하고 계시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노인에 대한 혐오라든가, 아이에 대한 혐오 같은 것이요. 소설 속에서 화자인 어머니가 아이에 대해 이 아이는 지금 모르는 것을 미래에 알 수 있을 거다, 라고 여기는데 사실 미래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은 것이잖아요. 그리고 아이가 현재의 어떤 사실을 모를 거라는 것도 보장되지 않은 어떤 관념에 가까운 건데, 우리는 끊임없이 믿음이라는 이름하에 그런 혐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첨예하게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작품이었던 거 같아서, 『바깥은 여름』 속에서도 「가리는 손」 같은 작품은 2010년대 최고의 단편 중에 한 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노태훈 : 「가리는 손」에는 아이가 겪는 인종의 문제도 있잖아요. 소위 다문화 가정이면서, 또 편모 가정의 아이로 자라나는 청소년이기도 하고요. 그런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 노인 혐오 같은 다른 종류의 혐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치밀한 작품이었다고 기억되네요.

 

이원석 : 조금 더 덧붙이자면, 2010년대 소설은 아니지만 「달려라 아비」에서 「가리는 손」으로 오는 과정을 보면, 화자가 길러지는 아이의 시선에서 기르는 엄마의 시선으로 이동한 거잖아요. 이번 조사의 한 줄 평에서 본 표현인데, 그게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인물들과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그 평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어요. 그렇지, 이런 작가가 정말 소중하지, 라는 생각을 했던 작품이었어요.

 

조시현 : 저는 처음으로 문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김애란 작가님의 「칼자국」을 읽고부터였어요. 의식하고 읽은 최초의 한국 문학이었는데, 그걸 읽고 너무 좋아서 이런 게 문학이라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김애란 작가님의 작품집을 계속 쭉 따라 읽고 있어요. 근데 저는 신기했던 게, 『바깥은 여름』을 처음 읽었을 때와 이번에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달랐거든요. 처음 읽었을 때는 『비행운』을 비롯한 전작들이 압도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바깥은 여름』이 정말 좋은 작품집이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아까 말씀해 주신 「가리는 손」도 그렇지만, 「노찬성과 에반」이라는 작품도 기억에 남았어요. 「입동」도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예요.

 

노태훈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조시현 :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가족이라든가, 노량진이라든가, 굉장히 일상적인 배경으로 시작하는데, 그 안에서의 잔잔한 균열이 무척 조용하게 돌이킬 수 없음으로 치닫게 되잖아요.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느꼈던 건 그 잔잔함 아래에서 작가님이 굉장히 첨예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비행운』의 파국은 가시적인 것인데 『바깥은 여름』은 오히려 일상 속에서,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천천히 돌이킬 수 없게 되잖아요. 이상하게 그게 마음에 오래 남더라고요. 읽으면서 내상을 입은 기분이었어요.

 

장희원 : 김애란 작가님의 작품 중에 좋은 단편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라는 단편을 말하고 싶어요. 화자가 한 도시의 겉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 평범한 모습의 이면 아래에 있는 모두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죠. 그런 점을 통해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최근작 중에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좋아해요.

 

노태훈 : 네, 얘기하다 보니까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작품들이 거의 다 언급된 것 같네요. 다른 작품집도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설문조사에서 또 많은 지지를 받았던 작품집이, 김봉곤 작가님의 첫 소설집인 『여름, 스피드』가 있고 박상영 작가님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와 『대도시의 사랑법』도 두 권 다 고른 지지를 받으면서 2010년대에 기억할 만한 소설집으로 언급되었어요. 그런데 두 분 작가님의 책들이 2018년과 2019년, 그러니까 2010년대의 극후반에 나온 책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호명되었다는 것은 현재 한국 문학의 어떤 흐름이 많이 반영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그건 퀴어 서사겠죠. 다들 어떠셨나요. 퀴어 서사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이게 굉장히 매력적인 서사라는 것을 저를 포함한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최근 몇 년 동안 느꼈을 것 같은데요.
사실 단편을 읽을 때 정말 완벽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감탄하게 되는 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받았던 작품이 박상영 작가님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였어요. 이렇게 막 펄떡거리는 듯한 소설이 아직도 가능하고 또 이렇게 매력적으로 쓸 수가 있구나, 하는 걸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의 작품들 역시 말할 것도 없고요.

 

 

이원석 : 작품집 말고 개별 작품에 관해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노태훈 : 그럼요. 저희가 다루는 게 단편소설이니까 개별 작품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시면 좋죠.

 

이원석 : 저는 김봉곤 작가님의 작품집 『여름, 스피드』에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올해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발표됐던 「그런 생활」이라는 단편을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그 작품이 이전에 읽었던 김봉곤 작가님의 작품들과도 굉장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정확히 어떤 게 달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작품을 읽고 저는 김봉곤 작가님이 굉장히 매력적인 글을 쓰시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 같아요. 이런 글을 여태까지 계속 써왔던 작가였나? 뭔가 조금 느낌이 다른데? 이런 추상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제 경험상 처음에 읽었을 때 추상적인 느낌을 받았던 작품들은 그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활」 같은 소설은 단일 작품으로만 놓고 본다면 2010년대에 나왔던 작품 중 한 명의 작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새로운 가능성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노태훈 : 사실 김봉곤 작가님이 『여름, 스피드』가 나온 뒤에 쓰신 소설들이 꽤 있어요. 거의 한 권의 단행본을 또 엮을 수 있을 만한 소설들이 있는데, 만약에 그 소설들이 모여서 2019년이 가기 전에 나왔더라면, 아마 저는 다 제쳐 두고 그 책을 1순위로 꼽았을 것 같아요. 그럴 정도의 소설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희원 : 두 작가님을 같이 묶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함께 묶는다면, 저는 두 분이 진솔한 사랑의 노래를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들이라고 생각해요. 두 분의 작품을 읽고 사랑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자기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는 그 용기와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거든요. 김봉곤 작가님의 경우에는 「컬리지 포크」를 정말 무릎을 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고요. 박상영 작가님은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이 기억에 남아요.

 

노태훈 : 두 작품 모두 그런 소설이네요. 둘 다 정말이지 장희원 작가님의 말씀대로 사랑에 미친 소설이에요.

 

장희원 : 네, 맞아요. 저는 그런 진솔함이 정말 좋거든요. 그런 에너지가 한국 문학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건 아닐까 생각해요.

 

조시현 : 저도 앞에서 말씀하신 것들에 동의해요. 김봉곤 작가님의 「라스트 러브 송」을 정말 좋게 읽었어요. 그냥 혼자 앉아 있다가도 종종 생각나는 작품이에요. 어떻게 보면 두 작가님은 퀴어 소설이라는 걸 가시화한 분들이잖아요. 작품 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만약에 게이 이외의 다른 정체성을 밝힌 작가가 비슷한 논조의 소설을 발표했을 때 과연 똑같은 평가와 반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같은 스탠스로 계속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그렇고요.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다들 어렵지 않겠냐고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되게 씁쓸했던 마음이 있었는데, 두 작가님이 만들어주신 좋은 기세를 잘 타서 2020년대에는 더 많은 것이 가시화되고 호명될 수 있으면 좋겠다, 새로운 방향의 좋은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던 것 같아요.

 

노태훈 : 트렌스젠더, 레즈비언 작가, 그리고 그런 서사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호명의 정도나 주목받는 걸 보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측면이 없다고 할 순 없죠. 지금 얘기하고 있는 두 작가분도 자연스럽게 함께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사실 정체성에 있어서, 또 소설 내적으로도 결코 동일하게 논의할 수는 없겠고요. 박선우 작가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퀴어 서사를 많이 쓰시기도 하고요.

 

박선우 : 게이가 주인공인 소설이 도드라져 보이고 평론가를 비롯해서 많은 독자분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레즈비언 소설이나 그 외의 성소수자 서사가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주목도가 다른 것 같긴 한데, 글쎄요. 저는 아직 퀴어 문학이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고, 당장에 레즈비언 소설가가 나온다고 해서 게이 소설가와 어떤 차등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놓고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테고요. 다만 그런 생각은 들어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성적 지향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그 작품에 대해 어떤 평가도 내릴 수 없게 써놓지 않으면, 그러니까 퀴어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면 대다수의 독자는 작품 안에 퀴어적인 요소가 넘실대도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아요. 뭔가 감지를 하긴 하는데, 동성 인물들이 섹스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 관계를 그저 친밀한 우정이나 연대로 보아 넘긴달까요. 어떤 작품에서는 여성 인물들이 같이 잠만 안 잤다뿐이지 거의 사랑한 사이처럼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웃음) 다양한 층위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적다 보니 퀴어 문학의 폭이 좁은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노태훈 : 예를 들면 황정은 작가님 같은 경우 물론 예전에도 퀴어 단편을 발표하기도 하셨지만, 이번 『디디의 우산』에서도 레즈비언 주인공의 이야기가 꽤 중요하게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박선우 : 그것에 대해 많이 얘기하진 않죠.

 

노태훈 : 네, 거의 얘기를 안 하죠. 촛불 혁명과 세월호, 그리고 여성의 문제까지 두루 논의가 되지만 '퀴어'에 관해서는 다소 생략되는 면이 있습니다. 소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는 그 순간에 사실 주인공이 레즈비언으로서 공동체를 영위하고 삶을 지속해 나가는 문제에 관해서도 아주 깊이 고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하지만 박선우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갈 길은 멀고, 또 조금씩 레즈비언 서사 역시 확장되는 것 같기도 해요. 김혜진 작가님도 꾸준히 레즈비언 서사를 쓰고 계시고 최근에 등단하신 김지연 작가님을 비롯해 신인분들이 레즈비언 서사를 많이 쓰시더라고요. 다시 저희 주제로 돌아오면, 2010년대에 주목받았던 퀴어 서사는 확실히 게이 소설이었고 김봉곤, 박상영 작가님이 그 주역이지만 2020년대에는 레즈비언을 비롯해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퀴어 서사가 늘어나고 또 그런 이야기들이 독자분들의 호응을 크게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또, 꽤 많은 지지를 받은 두 분 작가님까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김금희 작가님과 정지돈 작가님인데, 돌이켜보면 김금희 작가님도 정말 좋은 단편들을 꾸준히 써오셨어요. 2010년대 작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성취가 있었던 것 같고요. 설문조사에서는 『너무 한낮의 연애』가 표를 더 많이 받기는 했는데, 『오직 한 사람의 차지』도 언급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어떠신가요. 김금희 작가님의 작품 중에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이 있나요?

 

 

이원석 : 김금희 작가님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님이에요. 그런데 좋아한다는 어떤 마음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황정은 작가님으로 잠깐 얘기를 되돌려 보자면, 저는 황정은 작가님 소설을 읽으면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세상이 뭔가 거대한 위험에 처해 있고, 나는 지금 그곳에 속해 있는 사람이고, 그렇다면 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은가? 빨리 벗어나고 싶다, 이런 식의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요. 김금희 작가님은 반대인 것 같아요. 김금희 작가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어, 나 좀 안전한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반월」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면, 아무래도 여성 서사를 다루는 작품이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지만, 그 작품의 마지막에 이모가 조카를 물속에서 뭍으로 떠밀어 주려고 노력하다가 도저히 힘에 부쳐서 그게 안 되니까 같이 물에 떠 있는 선택을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불꽃이 터지면서요. 저는 그 불꽃이 터질 때 안전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도 '필용'이라는 인물이 타 부서로 좌천에 가까운 발령을 받잖아요. 거기서 필용이 가장 신경 쓰는 건 타인의 시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양희'가 해주는 <나무는 ㅋㅋㅋ 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연극을 보고서도 그치, 나무는 웃지 않지, 약간 이런 식의 안전한 기분을 받았어요. 「조중균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사람을 안전하게 만드는 소설이야말로 가장 궁극적인 형태의 필요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김금희 작가님의 글은 제가 통과해 온 2010년대에서 제가 가장 사랑할 수 있었던 글이 아닌가 싶었어요.

 

조시현 : 소설의 종류를 거칠게 나눠 본다면, 사람보다 세계가 더 큰 소설과 세계보다 사람이 더 큰 소설이 있는 것 같은데, 김금희 작가님의 작품은 후자인 것 같아요. 이원석 소설가님이 말씀하신 대로 황정은 작가님의 작품은 세계보다 작은 인물들이 너무 큰 세계 안에서 압도당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면, 김금희 작가님의 작품은 세계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훨씬 더 큰 작품들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따라가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는 거 같아요.

 

노태훈 : 저도 방금 말씀하신 안전함이나 위로 같은 느낌을 김금희 작가님의 작품에서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김금희 작가님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전반기의 묘한 감수성과 분위기 같은 걸 잘 포착하는 작품을 많이 쓰셨는데, 김금희 작가님의 그런 회고 방식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디테일이 뛰어나다거나 재현을 잘했다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라, 어떤 감각을 갖고 그 시대를 살았었는지 생각하게 되면서 제 개인적으로는 아까 말씀하신 위로의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네요. 박선우 작가님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박선우 : 아, 저는 이원석 작가님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셔서 그게 뭘까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가 김금희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하고요. 저는 김금희 작가님의 작품에서 자주 느꼈던 것이, 이 작가님이 단단히 화가 나 있다는 인상이었어요. 작품의 시작 부분에서 뭔가 호기심 어린 분노랄까, 저 사람은 왜 저래?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하는 감정을 동력으로 삼아 이야기를 끌고 간달까. 그것이 어떤 갈등의 상황으로 서서히 휘말려 들어가서 동화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너무 한낮의 연애』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최근에 발표하셨던 「마지막 이기성」이라는 소설을 보면…….

 

노태훈 : 바로 《문장 웹진》에 게재된 작품이죠. (웃음)

 

박선우 : 네, 맞아요. 그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투쟁의 한 방식으로 배추밭을 일구는데요. 그런 장면에서 아까 말씀하셨던 안전함까지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속하기만 하면 이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닿겠지, 조금씩 달라지긴 하겠지, 같은 막연한 희망을 놓지 않는달까. 그게 안전하다는 느낌일 수도 있고, 따뜻하다는 느낌일 수도 있고, 좀 더 살아 봐도 좋지 않겠느냐는 위로처럼 와 닿는 것 같아요.

 

노태훈 : 네, 말씀하신 부분들 하나하나 공감이 되네요. 정지돈 작가님도 한번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2010년대 한국 문학에 여러 흐름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정지돈 작가님을 필두로 해서 소위 '후장사실주의'라는 그룹에 계신 작가님들, 그리고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소설을 쓰는 분들도 꽤 주목을 받았던 것 같은데요. 이번 설문에서 배수아 작가님도 『뱀과 물』이라는 작품집으로 많은 지지를 받으시기도 했고요. 한동안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과 전략들이 소설의 유희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었다면, 최근에 정지돈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소설과 예술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평론가분들이 첫 소설집인 『내가 싸우듯이』가 의미 있는 단행본이라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특히 소설을 쓰시는 분들, 최근에 소설을 창작하고 계시는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작품들에 대한 나름의 감상이 없진 않으실 거 같은데요. 이번에는 장희원 작가님부터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희원 : 저는 새로운 읽기의 재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후장사실주의자 중에서는 오한기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긴 하는데, 정지돈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각주를 많이 쓰시잖아요. 어떤 때는 '메타픽션' 같은 요소도 있고요. 그런 점들을 보면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글쓰기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독자의 입장에서는, 제가 아는 것이 많지가 않아서 만약에 내가 모르는 부분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면 조금 더 완벽하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리고 그런 점이 매력이자, 읽기의 재미라고도 생각해요.

 

노태훈 : 그 아쉬움은 작가 역시 느낄 거라 생각해요. 아, 내가 이걸 다 알았다면 더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요. (웃음) 제 생각에는 그런 인용의 풍부함이 꼭 그것과 관련된 콘텐츠들을 어느 정도 알아야 느끼는 재미를 의도했다기보다, 그것들을 모르고 읽어도, 혹은 전혀 모른 채로 읽었을 때 더 좋은 작품이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독자들에 따라서 느끼는 방식이 다르겠죠. 어떤 독자들은 재미도 없고 난해하기만 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독자들은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느낄 수도 있는 거니까요. 말 그대로 정말 읽는 사람의 취향과 직결된 서사가 아닌가 해요. 이런 생각도 드네요. 소위 후장사실주의자에는 오한기나 이상우 작가님도 계시는데 정지돈 작가님이 아이콘처럼 이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어버린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이 작가분들의 작품이 굉장히 다르고 각자의 매력이 있거든요. 앞서 김봉곤 작가님과 박상영 작가님을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그냥 퀴어 서사로 뭉뚱그려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 작가들도 후장사실주의라고 하는, 지금은 후장사실주의자라고 하지도 않지만, 아무튼 하나의 범주로 묶여서 언급되는 게 그렇게 의미 있는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원석 : 정지돈 작가님이 속한 그, 동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처음에 동인을 발표했을 때 해석 혹은 서사 자체에 대한 거부를 목적으로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뭔가 거부당한 듯한,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그게 의도라고 생각하면서 읽었지만요. 착한 독자라면 작가가 밀어내면 밀려나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밀려났습니다……. (일동 웃음)

 

조시현 : 저는 읽으면서 작가가 어떤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이원석 : 그런데 이상우 작가님 얘기를 잠깐 해보고 싶어요. 이상우 작가님의 소설집 제목이 『프리즘』이잖아요. 그 소설집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한 게, 빨주노초파남보 색을 빛을 투과해서 만들어낸다면 처음에 「중추완월」이라는 등단작은 빨간색이었던 것 같아요. 프리즘에 빛이 많이 굴절될수록 아래 색깔로 내려간다고 알고 있는데, 한국 문학이라는 하나의 유리막을 대고 이상우라는 빛을 쐈을 때 점점 더 굴절되어 가는 느낌을 작품집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읽으면서 책을 정말 잘 만들었다고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계속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지만요.

 

노태훈 : 이렇게 새로운 서사를 써내려고 하시는 작가들은 아주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하셨다고 생각하고, 그게 늘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새로운 소설을 쓴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이전에 있었던 것들을 변형하거나 전복시키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해보려는 실패들을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정지돈 작가님을 비롯한 여러 작가님들의 작품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외에도 많은 작가님의 작품집이 언급되었는데, 이걸 저희가 하나하나 전부 언급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각자 이제 조금 편하게, 설문에 언급되지 않았거나 빠져 있어서 아쉬운 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이원석 : 몇 편 정도 말하면 좋을까요?

 

노태훈 : 마음껏 말씀하셔도 됩니다.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이원석 : 그런 작품을 하나씩 던져 본다면, 저는 이승우 작가님의 단편집 『신중한 사람』을 새롭게 읽었거든요. 아무래도 이승우 작가님께서 늘 해 오시던 그 작업이 워낙 성취가 높았던 작업이기 때문에 201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뽑기에는 조금 어려운 감이 있었을 것 같지만요. 그럼에도 저는 이승우 작가님이 『신중한 사람』이라는 소설집에서 했던 시도에 대해서 크게 감명을 받았었는데 그게 뭐였냐면, 우리가 뜻을 잘못 알고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굉장히 많이 교정하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어 '그냥'이라는 단어도 저희가 아무렇지 않게 이 단어를 뱉지만, 사실은 그 의미가 굉장히 뚜렷한 단어잖아요. '그런 모양으로 줄곧', 이런 뜻을 가진 단어인데, 저희는 그런 단어를 그냥 의식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뱉는다는 말이죠. '신중하다'라는 단어도 저희는 긍정적으로 쓰잖아요. 저 사람은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을 그르칠 리가 없다, 이런 말을 할 때 '신중하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승우 작가님의 『신중한 사람』에 나오는 '신중한' 사람은 직역하자면 굉장히 비겁한 사람이에요. 변화를 두려워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도태되는 걸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 저는 도태된다는 게 우리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하는데, 신중한 사람은 그것을 기꺼이 선택한 사람들인 거죠. 이승우 작가님께서 그럼 신중한 사람을 비판하려고 그런 이야기를 썼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했어요. 핵심적인 질문은 도대체 뭐가 저 사람을 신중하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이죠. 신중하다는 건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건데 그런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실은 혼자가 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고 그 부양한 가족들이 변치 않고 내 곁에 머물러 주는 게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궁극적인 꿈이란 말이죠. 가족이 해체되지 않는 것이요. 그런데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족이 해체되고는 하는데, 그런 가족의 해체가 이 사람들을 신중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읽었어요. 이 사람들은 가족의 해체를 막는 것을 한 번 실패해 봤기 때문에 좀 더 조심하고 신중한 거예요. 이런 신중함이 계속 반복되면 언젠가는 그 신중함이 지나치게 축적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고, 바로 그런 사람들이 이승우 작가님이 『신중한 사람』이라는 단편집 안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2010년대, 그러니까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어른들이라고 하는 기성세대들에게 늘 가져 왔던 의문이었어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신중할까. 뭘 지키려고 하는 걸까. 그럴 때에 그런 사람들을 가장 잘 대변하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노태훈 : 이승우 작가님도 2010년대에 장편과 단편을 가리지 않고 정말 작품을 많이 쓰셨죠. 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소설들이고요. 또 돌아가면서 좋았던 소설을 더 얘기해 보죠.

 

장희원 : 설문 자료에도 언급되었던 김숨 작가님의 『간과 쓸개』에 대해서도 거기 나오는 표현주의와 그 이미지에 관해서 얘기하면 재밌을 거 같아요.

 

노태훈 : 김숨 작가님의 『간과 쓸개』가 2010년대 초반에 나온 작품집이죠?

 

장희원 : 네, 맞아요.

 

노태훈 : 김숨 작가님도 2010년대에 특히 작품을 많이 쓰셨는데, 여러 가지로 많이 바뀌셨죠. 작품의 경향이나 스타일도 많이 바뀌시고,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정말 안정적으로 잘 쓰시는 분이셔서 언급할 수밖에 없는 작가님이신 거 같아요. 박선우 작가님도 설문 자료에는 없지만 특별히 재밌게 읽었던 작가가 있나요?

 

박선우 : 제가 순발력이 없어서 예상했던 질문이 아니면 뭘 대답하기가 참 어렵네요. 당장에 떠오르는 책이 없어요. 그냥 이 설문 결과에 승복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노태훈 : 승복은 하는데 추가로 언급하고 싶은 작가는 없는 건가요?

 

박선우 : 말해야 끝나는 건가요. 시간을 주시면 떠올려 보겠습니다. (웃음)

 

조시현 : 저는 강화길 작가님이요. 사실 개인적으로 소설에 답답함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어요. 2014년과 2016년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많은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현실에 비해 소설은 너무 느리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떤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진다기보다는 사후적으로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계속 곱씹는 것 같았어요. 그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에 비해 소설이 너무 느린 게 아닌가 싶어서 쓰는 일에도 고민을 많이 했었고, 읽으면서도 소설은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이게 다일까, 하는 생각들로 괴로웠어요. 현실에 대한 무력감이 문학에 대한 어떤 기대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거기서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는 작품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와 다시 읽어 보면 제가 미처 보지 못했을 뿐 작가님들의 작업들이 굉장히 치열하더라고요. 최근 작품들을 보면서는 그 답답한 시기를 돌파했구나, 작가님들은 각자의 시선과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소설은 계속 나아가고 있구나, 좋은 소설이 정말 많구나, 쉽게 좌절하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소설에서 답답했던 부분이 소설에서 풀리고 있다는 감동 같은 것을 최근 작품들을 읽으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고, 그래서 저는 20년대에 나올 작품들을 기대하게 됐습니다.

 

노태훈 : 그런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신호탄을 쏴주신 작가, 그리고 작품으로 강화길 작가님의 『괜찮은 사람』 같은 작품집이 인상적이었단 거네요. 저도 언급되지 않은 작품 중에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 첫 번째로 생각나는 건 박솔뫼 작가님의 『겨울의 눈빛』이라는 소설집입니다. 2010년대 전체를 봤을 때도 박솔뫼 작가님이 보여준 여러 가지 성취와 이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저는 훨씬 더 많이 언급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겨울의 눈빛』에 실린 소설들은 정말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아름다운 작품들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세대와 시대의 출현을 보여줬다고도 생각해요. 문학적으로, 형식적으로도 이렇게 새롭게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밀도 높은 작품집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의외로 언급이 잘 안 된 것 같아서 아쉬워요. 이런 작품들이 또 뭐가 있을까요?

 

이원석 : 저는 송지현 작가님의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요. 그냥 다 떼놓고 최근에 읽었던 단편집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단편집이고요. 특히 「구석기 식단의 유행이 돌아올 때」라든가 「흔한, 가정식 백반」 같은 작품들이요. 송지현 작가님을 만나서 여쭤 본 적은 없지만, 작가님께서 정말 그런 생각을 하신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고민한 것 같은……. (웃음)

 

노태훈 : 아주 중요한 주제죠. (웃음)

 

이원석 : 네. 「구석기 식단의 유행이 돌아올 때」는 그런 작품인 거잖아요. 저희가 신석기 혁명을 통해서 도구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게 됐고, 그러자 농경사회가 시작됐고,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까 가족이라는 씨족 사회로 이어졌는데, 지금 저희 세대는 그걸 해체하는 수순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다시 수렵의 세계로 가려 하고 가족을 해체하고 싶어 하거나 해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고요. 그런 과정을 볼 때 송지현 작가님의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라는 작품집의 「구석기 식단의 유행이 돌아올 때」라는 소설은 그 사이클 머신을 밟으면서 끝나잖아요. 아무리 밟아도 나아가지 않는 자전거지만 그걸 밟으니까 뭔가 진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라는 마지막 문장이 주는 임팩트가 저는 최근에 읽었던 모든 결말 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문장인 것 같아요.

 

노태훈 : 그렇군요. 장희원 작가님도 말씀해 주세요.

 

장희원 : 저는 정영수 작가님의 『애호가들』이요. 특히 괄호를 통해 더 깊은 측면으로 들어가는 화법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노태훈 : 그렇군요. 박선우 작가님은 혹시 생각나신 게 있나요?

 

박선우 : 아, 저는 김세희 작가님의 『가만한 나날』이요. 이 책이 통계표에 없는 건지 제가 못 찾는 건지 보이질 않네요. 예상보다 많이 언급되지 않아서 의외인 소설집입니다. 연말이라고 평론가분들이 이렇게 외면하실 줄 몰랐습니다. (일동 웃음)

 

노태훈 : 이 설문조사가 작품집 세 권을 뽑아야 했던 조사라서요. 너무 많이 뽑아 달라고 하면 힘드니까 세 개 정도가 적당한 숫자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주변 반응을 들어 보면 세 개만 뽑으려고 하니까 오히려 힘들었다고들 하시더라고요. 더 많이 뽑을 수 있었으면 이런저런 작품도 추가적으로도 고려해 보았을 텐데 딱 세 개를 뽑아야 하니까 결국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작품으로 몰리게 되었던 경향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저도 지금 다시 뽑으라고 한다면 이주란 작가님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무조건 넣을 것 같아요. 2010년대를 통과하는 인물이 어떻게 살아내고 견뎌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작품들이 가득 실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설문을 진행할 때는 출간이 안 됐던 터라 뽑지 못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무조건 뽑아야 하는 작품집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시현 작가님도 또 이런 작품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조시현 : 저는 윤해서 작가님의 『코러스크로노스』요. 문장과 이미지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정말 사랑하는 책입니다.

 

노태훈 : 최근에 첫 장편 『0인칭의 자리』도 내셨는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들어요.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윤해서 작가님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죠. 또 있나요?

 

이원석 : 이렇게 계속 도나요? (일동 웃음)

 

노태훈 : 네, 계속 돕니다. 끝날 때까지 돌아요.

 

박선우 : 언제 끝나나요? (웃음)

 

이원석 : 저는 저까지 차례가 오기 전에 이 작가님이 언급될 줄 알았는데, 윤이형 작가님의 『러브 레플리카』요.

 

박선우 : 아, 그렇죠.

 

장희원 : 표를 많이 얻었던 작품집인 것 같아요.

 

노태훈 : 네, 있긴 있어요. 근데 『작은마음동호회』 쪽으로 투표된 것도 있어서요.

 

이원석 : 『큰 늑대 파랑』, 『러브 레플리카』, 『작은마음동호회』, 이게 2010년대에 발표하신 단편집으로 알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저는 『러브 레플리카』에 굉장한 작품들이 많이 수록됐던 것 같아요. 「루카」도 굉장한 작품이고 「대니」도 엄청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표제작인 「러브 레플리카」가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의 마지막에 이렇게 묻잖아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과장되게 부풀리거나 좀 더 재밌게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너한테 있다고 해서 그걸 하는 게 옳은 일이냐고, 네가 지금 잘하고 있는 짓이냐고. 마치 저를 혼내는 듯한 그런 말들을 읽고 멍해졌던 적이 있어서. 읽은 지 꽤 됐음에도 그 문장들을 거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정말 좋아요.

 

노태훈 : 윤이형 작가님도 그렇고, 『러브 레플리카』도 그렇고, 기억할 만한 작가와 작품이라고 생각되네요.

 

장희원 : 저는 원래 윤해서 작가님 이야길 하려고 했는데 앞서 조시현 작가님이 언급하셨으니까, 임현 작가님의 『그 개와 같은 말』을 뽑고 싶어요.

 

노태훈 : 임현 작가님도 첫 소설집에 있는 작품들이 문제작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죠. 여러 가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어떤 화두들을 많이 던지는 작품이고, 저는 임현 작가님 또한 2010년대 후반부 한국 소설의 한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임현 작가님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가끔 해보는데, 어땠나요. 아니면 얘기해 보고 싶은 다른 작가가 있나요?

 

박선우 : 방금 떠올랐는데, 저는 김연수 작가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소설 쓰기 전에 찾아 읽고는 해요. 그 작품집은 뭐랄까, 교과서적인 훌륭함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소설을 어떻게 썼더라? 어떤 방향과 구성으로 시작해야 하지? 혼자 의아해하면서 어떤 모범적인 사례를 찾을 때마다 김연수 작가님의 책을 들춰 보는 것 같습니다.

 

조시현 : 저는 김희선 작가님의 『라면의 황제』랑 『무한의 책』도 정말 잘 읽었고, 입담이 훌륭하신 작가님인 것 같아서 언급하고 싶어요.

 

노태훈 : 『라면의 황제』가 김희선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죠? 『무한의 책』은 장편이고요.

 

조시현 : 네, 맞아요.

 

노태훈 : 최근에 『골든 에이지』가 두 번째 소설집이고요. 저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하나 더 있습니다. 2017년도에 나온 김사과 작가님의 『더 나쁜 쪽으로』입니다. 아무래도 김사과 작가님은 2000년대 후반 혹은 2010년대 초반에 굉장히 임팩트가 컸던 작가라서 지금 와서 돌아보면 기억이나 인상이 좀 옅어진 감이 있는데, 여전히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무엇이 우리를 아주 곤란하고 이상하게 만드는지를 굉장히 예리하게 짚어내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 작품집 안에 있는 「카레가 있는 책상」이라는 작품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원석 : 네, 저는 김성중 작가님의 『국경시장』도 말하고 싶어요. 김성중 작가님이 현대문학상을 「상속」이라는 작품으로 받으셨잖아요. 「상속」으로 가는 과도기에 놓인 작품이 『국경시장』에 있는 「한방울의 죄」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작가를 만들어내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그 소설책에 있다는 건 중요한 부분이지 않나 싶어요. 김성중 작가님이 어떤 행보를 걸어가실지는 알 수 없지만 「한방울의 죄」가 거짓말의 세계에서 벗어나 보이겠다는 선언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면, 「상속」은 대놓고 진실을 말하는 에메랄드를 삼키겠다는 유형의 작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태훈 : 그렇죠. 네, 또 있나요?

 

장희원 : 저는 여기서 그만 하겠습니다.

 

박선우 : 네, 저도요.

 

조시현 : 저도 여기서 끝내고 싶은데, 최은미 작가님의 『목련정전』을 꼭 얘기하고 싶어서요. (웃음) 굉장히 서늘하면서도 끈적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 그런 작품들을 쓰셔서 그 책도 꼭 추천하고 싶어요. 이미지도 굉장히 잘 쓰시고요.

 

노태훈 : 저도 사실 여기서 끝내고 싶어요. (일동 웃음) 더 얘기하면 좋았던 작품들이 끊임없이 나오겠지만, 지금 말씀하신 정도만 해도 사실 2010년대에 저희가 정말 매력적으로 따라 읽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상당히 언급된 것 같아요. 저는 이번에 2010년대 한국 문학의 소설집들을 돌아보면서 2010년대가 정말 풍성했다고 느꼈어요. 얘기하자면 정말 끝도 없이 나올 2010년대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희한하게도 2000년대가 문학적으로 앙상했던 시기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열렬한 독자였던 그때가요. 그만큼 2010년대에 좋은 단편, 좋은 소설집이 많았다는 것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오늘 좌담에 참여한 소감을 여쭤 보겠습니다. 더불어 이제 2020년이 되니까 개인적으로 바라고 기대하는 2020년대 한국 소설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이원석 : 2010년대라고 하면 저한테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두 개의 시기, 세대에 놓여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2010년대 초반에는 청소년이었고 그 이후에는 성인으로, 그리고 지금은 20대 중반의 나이가 됐으니까요. 사회적으로도 사실 저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세 명의 대통령을 뵙게 될 줄은 몰랐었어요. 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오셨을 때까지만 해도 투표권이 없는 상태여서 스스로 사회의 일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들을 굉장히 많이 했었던 거 같은데, 마찬가지로 문학에서도 저는 2010년대 이전부터 여러 작품을 읽어 오긴 했지만 그게 정말로 내가 참여하는 문학이고 독자로서 소통하는 문학이었나, 하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그런데 2010년대의 문학은 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고요. 내가 이 작품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사명감으로 삼아 앞으로 더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오늘 좌담 하는 내내 했던 것 같습니다. 불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장희원 : 저는 2010년대를 돌이켜봤을 때 사회적으로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제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리면 세계가 싫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종국에는 연대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힘들 때마다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서 많은 위안과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가장 잘 치유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2010년대를 통과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2020년대도 그렇게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한국 문학이 나아갈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박선우 : 저는 2010년대가 끝나 가는 이 시점에도 한국 문학은 여전히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들을 겪으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정화의 속도가 다소 빨라진 것 같긴 하지만, 아직 모르죠. 바뀌어야 할 것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용케 굴러가고 있구나 싶을 때가 많거든요. 그저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들 그런 마음으로 문학을 하고 있으리라 믿어요. 저라는 사람도, 제 글쓰기도 그렇게 나아갔으면 합니다.

 

조시현 : 저는 한국 문학을 읽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인 사건들을 문학과 함께 통과하게 되었어요. 망연해질 때마다 그래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구나, 그래도 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해서 의지가 많이 됐어요. 모두가 뭔가를 말하고 있구나, 그 감각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서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던 것 같고요. 그런 좋은 에너지와 기운을 받아서 저 역시 어떤 방향성을 갖고 계속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에는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과 플랫폼도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한국 문학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쓰일 수 있는 창구가 생긴 거 같아서, 그게 2020년에는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태훈 : 네,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부담스러운 자리였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평론가들이 2010년대의 좋은 작품들을 투표한 결과를 두고 신인작가분들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는 게 다소 난감한 일이었을 텐데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참여해 주시고 또 좋은 얘기 많이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0년의 끝자락에서 2020년을 앞두고 한국 문학의 현재를 생각해 보면, 여기 계신 작가님들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단은 그래도 희망적이지 않나 생각해요. 한국 문학의 어떤 병폐와 고질적인 편향으로부터도 많이 벗어난 것 같고, 또 매체나 독자를 만나는 방식도 다양해진 것 같고요. 다양한 작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쓰고 있어서 2020년대의 한국 문학은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독자들로부터 주목받는 장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와주신 작가님들께서 20년대에 발간하실 첫 소설집도 응원하겠습니다.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노태훈

사회/원고정리 / 노태훈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 평론부문 등단.

 

박선우

참여자 / 박선우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이원석

참여자 / 이원석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문학레이블 공전

 

장희원

참여자 / 장희원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조시현

참여자 / 조시현

2018년 《실천문학》 소설부문, 2019년 상반기 《현대시》로 작품활동 시작

 

 

   《문장웹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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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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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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