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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Ⅲ ― 장편소설 부문

  • 작성일 2020-01-08
  • 조회수 2,876

[기획좌담]

 


이번 좌담은 지난 10년간(2010-2019) 출간된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한 한국 문학 작품을 재조명함으로써 해당기간의 우리 문학을 총결산해 보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2019. 11. 6부터 12. 9까지(34일간), 지난 10년간 《문장 웹진》에 필진으로 참여한 평론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64명의 평론가가 보내온 설문의 취합 결과를 토대로 시집(12. 20), 소설집(12. 17), 장편소설(12. 18) 각 영역별로 3차에 걸쳐 좌담을 진행했다.
좌담 내용은 이번 소설집과 시집(1.1)을 시작으로 장편소설(1.8) 순으로 각각 게재할 예정이며, 이번 설문과 좌담을 통해 호출된 개별 작품의 상세 목록은 2020. 2월호(2.1 발행)에 발표하고자 한다.
끝으로, 설문에 참여한 64명의 평론가와 좌담에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 설문 참여자 명단 (가나다순)
    ㆍ 강지희, 고봉준, 김건형, 김남혁, 김 녕, 김문주, 김미정, 김수이, 김영삼, 김영임, 김요섭, 김정현, 김주선, 김태선, 김형중, 김효숙, 노대원, 노태훈, 민경환, 박다솜, 박동억, 박수연, 박신영, 박윤영, 박인성, 백지은, 복도훈, 서희원, 소유정, 손정수, 송민우, 신샛별, 신수진, 신형철, 안지영, 양순모, 양윤의, 양재훈, 염승숙, 오연경, 오은교, 오창은, 오혜진, 유성호, 이병국, 이성혁, 이소연, 이은지, 이지은, 이철주, 인아영, 장예원, 장은영, 전소영, 정영훈, 정은경, 정홍수, 조대한, 조재룡, 조형래, 최선영, 한 설, 한영인, 허 희
  ⁃ 좌담 참여자 명단 (분야별, 가나다순)
    ㆍ 노태훈, 박선우, 이원석, 장희원, 조시현
    ㆍ 강지혜, 김태선, 양안다, 이병국, 정다연
    ㆍ 김수온, 염승숙, 은모든, 이현석, 임국영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Ⅲ

― 장편소설 부문

 

 

일시 : 2019년 12월 18일(수) 13시
장소 :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001스튜디오
참여자 : 염승숙(사회), 김수온, 은모든, 이현석, 임국영

 

 

 

 

염승숙 : 《문장》 웹진의 기획으로 신인작가분들을 모시고 한국문학의 2010년대 장편소설에 대해서 총결산하는 자리를 마련해봤습니다. 저는 소설과 평론을 쓰고 있는 염승숙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 네 분의 작가님들이 앉아 계시는데, 돌아가면서 자기소개 한 번씩 부탁드릴게요.

 

은모든 : 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에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에 『애주가의 결심』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했고요. 은모든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수온 :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라는 단편소설로 등단한 김수온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임국영 : 안녕하세요. 저는 2017년도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임국영이라고 합니다.

 

이현석 : 안녕하세요. 저는 이현석이라고 합니다. 2017년도에 《중앙일보》의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데뷔했고요.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염승숙 : 여기 참석자분들 중에는 그럼 2017년도가 가장 빠른 데뷔인 거네요? 두 분이 2017년, 그다음 두 분이 2018년이고요. 등단 2, 3년 차의 신인분들을 모시고 이렇게 2010년대에 등장한 장편소설을 결산하게 됐는데, 기획 자체가 약간 좀 짓궂기도 하고 재밌는 것 같아요.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작가분들을 모시고 기성작가분들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데, 지금 참석하신 분들이 또 이제 2020년대에는 장편소설의 작가가 되실 분들이시기 때문에요. 이번 좌담이 지금 참석해 주신 작가분들께도 굉장히 흥미로운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은모든 작가님의 경우에는 장편소설로 데뷔하셨고 또 최근에 『안락』이라는 중편소설도 내셨잖아요. 앞으로 또 2020년대에도 또 다른 장편도 쓰실 거고요. 다른 분들도 장편을 예비하고 계실 텐데 그런 이야기들은 차차 나눠 보도록 하고요. 먼저, 이번에 《문장》 웹진의 기획으로 65명 정도의 평론가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했어요. 미리 보시고 오셨겠지만 2010년부터 올해 2019년까지 출간된 장편소설 중에서 의미 있는 작품들을 뽑아달라고 요청해서 통계를 낸 자료인데요. 이 자료를 보시고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서로 간단하게 얘기를 나눠 보는 것으로 시작해 볼까요?

 

임국영 : 이 표를 받아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심 짐작했던 작품들이나 작가분들의 이름이 이렇게 올랐구나, 라는 게 첫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다음으로는 읽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좋아하는 작가분들이지만 부끄럽게도 다 챙겨 읽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좀 가외의 이야긴데, 오늘 참석하신 이현석, 은모든, 김수온 작가님과 지난주에 우연찮게 같은 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어요.

 

염승숙 : 아 그래요? 저만 없었군요. 연락 좀 주시지 그랬어요. (웃음)

 

임국영 : 죄송합니다. 저희도 예기치 못하게 만난 거라서요. 그런 자리에서 우연찮게 만나게 될 거라 생각을 못했습니다. 지난주에 그렇게 네 명이 모여서 도원결의를 맺듯이 했던 얘기가, 안 읽은 책들이 얼마나 있으시냐고, 그 책들 모두 읽고 가실 것이냐고, 읽지 말자고, 솔직하게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과 독서량 그대로 부딪쳐 보자고 했거든요.

 

염승숙 : 그랬군요. 물론 통계표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죠. 내가 예상했던 작품 제목이지만 선뜻 읽어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정말 유명해서 마치 내가 읽은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어요. 너무 지나치게 줄거리가 자주 노출되면 독서에 흥미나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당연한 인상이었을 거 같아요. 저도 통계표가 나오기 전 기획 단계에서 이 의도를 전해 들었을 때, 좀 당황스럽기도 했었어요. 2010년대를 총결산하는 자리인데 내가 2010년대에 발표한 모든 장편소설을 읽은 걸까, 라는 두려움이 들어서요. 그런데 2010년대를 아우르는 한국 문단의 결실이 이 통계표 한 장에 전부 들어있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 비록 이 통계표에는 없지만, 우리가 미처 관심을 갖지 못한 많은 장편소설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이 표의 작품목록이 2010년대 한국문학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아마 기획 단계에서도 신인작가분들의 색다른 시선과 가감 없고 패기 있는 논의들을 더 기대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이 통계표만 보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온 씨는 어떻게 보셨어요?

 

 

김수온 : 저는 우선 이 기획을 처음 들었을 때의 얘기를 하자면, 오히려 2010년대에 저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봤던 것 같아요. 2010년대에는 저한테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학교도 다니고, 졸업도 하고, 데뷔도 해서 지금은 소설을 쓰고 있으니까요. 통계표를 보고서 10년 동안 정말 다양한 장편소설이 나왔구나, 예전에는 내가 이 장편소설을 정말 좋아했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나도 많이 변했고 시간도 많이 흘렀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지난 10년을 되돌아봤던 것 같아요.

 

염승숙 : 수온 씨가 지난 10년을 되짚어 보기에는 너무 어리신 것 같기는 한데요. (웃음)

 

김수온 : 그런가요. 어떤 소설을 학창시절에 참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런 기억을 잊고 지내고 있구나, 작품에 대한 어떤 평가를 떠나서 정말 순수하게 소설을 좋아했던 때도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추억에 좀 잠겼던 것 같아요.

 

염승숙 : 그렇죠. 2010년대 중후반에 등단하신 신인작가분들이기 때문에 이미 출간된 작품을 분석하거나 평가하고 헤아리면서 독서를 하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등단을 예비하는 과정에서 정말 즐겁게, 혹은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바라보셨을 것 같아요. 이번 좌담에 참여하면서 지난 10년을 돌아보셨다고 하니 갑자기 마음이 애틋해지기도 해요.

 

김수온 : 혼자서 2010년대 인생 결산을 했어요. (웃음)

 

염승숙 : 그러셨군요. 은모든 작가님은 어떠세요.

 

은모든 : 사실 저도 임국영 작가님이 말씀하신 그 도원결의를 했을 때 정말 다행이다 싶었어요. 쓸데없이 덧붙이는 말이지만, 제가 독서 취향에 편식이 심한 데다 좋아하는 작품을 반복해서 읽는 타입이다 보니, 좌담에 참여할 만한 소양을 갖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좌담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때도 정말 괜찮을까요, 그런 말씀을 드렸었는데……

 

염승숙 : 뭐라고 하시던가요?

 

은모든 : 신인 작가들의 목소리를 부담 없이 듣는 자리라 예고하시며 무조건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아, 제가 최근에 읽은 명문이 하나 있는데요. 성격이 외향성이나 내향성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그 중간에 속하는 사람들은 조용한 데 가서 헛소리하고 시끄러운 데 가서 기가 빨리고 온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에 마음 깊이 공감했어요. 제가 딱 그렇거든요. 조용한 데 가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막 헛소리를 하게 되고. 반대로 목소리를 높여야만 의견 개진이 되는 곳에 가면 한 발 물러서게 되고는 해요.
그런 제게 있어 한국문학의 전반적 감정의 밀도나 캐릭터, 분위기는 내향의 세계에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향적으로 약간의 거리감을 느껴 왔고요. 그런데 이 표를 보면서 다시금 생각한 것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거였어요. 제가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는 동안 이미 도래한 변화의 지점도 상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역시 더 빨리 찾아 읽어두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작품들을 되새기게 되는 효과도 있었네요.

 

임국영 : 자꾸 저희가 책을 읽지 않았다는 자기변호가 나와버리는데요. (일동 웃음) 이걸 처음에 솔직하게 털고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염승숙 : 그렇죠. 마음을 가볍게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임국영 : 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정확한 통계를 보고 비교해 보지는 않았지만 장편소설보다 단편소설로 등단할 수 있는 지면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단편소설 위주로 독서를 하게 되는 면도 있지 않나 해요. 그러다 보니까 단행본 대신 문예지에 실린 단편을 읽게 되고,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집과 장편소설이 있으면 단편집을 더 찾아 보게 되는 이상한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좌담도 단편소설, 장편소설, 시집 이렇게 세 개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있는데, 장편소설 대신 단편소설로 가고 싶다고 외친 작가분들이 몇 분 계셨어요. 이현석 소설가, 임국영 소설가라든가…… (일동 웃음) 장편은 왠지 두려운 마음에…… 죄송합니다.

 

염승숙 : 그러셨군요. (웃음) 이현석 작가님은 이번 통계표를 어떻게 보셨나요.

 

이현석 : 저는 자료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고요. 기성 문학평론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라서 그런지 리스트가 '문단문학'에 상당히 편중되어 있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염승숙 : 분단문학이요?

 

이현석 : 아뇨, 문단문학이요.

 

염승숙 : 아, 깜짝 놀랐네요. (일동 웃음)

 

이현석 : 물론 대부분 저도 좋아하는 소설들이기도 해서 양가감정이 드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염승숙 : 기획 자체가 어려운 기획인 건 맞는 듯해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통계에 기대어서만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을 텐데요. 그래도 2010년대의 흐름을 좀 짚어 보자는 측면에서 굵직굵직한 장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2011년에 나온 정유정 작가님의 『7년의 밤』이나 2014년에 출간된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2016년에 출간된 조남주 작가님의 『82년생 김지영』, 이런 굵직한 작품들에 대해서 먼저 언급을 하면 좋겠어요. 먼저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영화화가 되었던 바도 있고 거의 2010년대의 문을 여는 화제작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어떠셨나요?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임국영 : 저 같은 경우에는, 『7년의 밤』이 화제가 됐었잖아요. 워낙에 재밌고 충격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기대감을 크게 갖고 읽었는데, 꼭 그렇다고 해서 저랑 맞는 건 아니더라고요. 읽다가 중도 포기를 한 작품이었어요. 저한테는 진입장벽이 높은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기대한 흡입력이나 감정적인 몰입 같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염승숙 : 네, 다른 분은 어떠셨어요?

 

은모든 : 저는 『7년의 밤』의 경우 작품 외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한 가지 있었어요. 며칠 전에 서점에 간 김에 통계표에서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던 책들을 들춰 보다가 이 책의 뒤표지에 있는 한 소설가의 추천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 이런 부분이 있었거든요. '뒤돌아보지 않는 힘 있는 문장과 압도적인 서사, 그리고 정교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생생한 리얼리티가 여성 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여러 문학적 함정들을 너끈히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추천사에도 시대의 공기가 담겨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염승숙 : 아마 2011년도에 나온 추천사라서 가감 없이 실리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웃음) 여성 작가의 서사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고 한다면 흔히 말하는 어떤 감성적인 설정이나 진행일 텐데, 그것을 단순히 여성 작가만이 가진 결함이나 결여의 덕목이라 말하기는 애매하죠.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그 작품 스스로 독자들의 열광과 호응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문단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소설 속 공간에 인간의 본질과 본성을 뒤트는 인물들을 배치해 놓았던 작품의 주요 서사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는 것일 텐데, 소설의 서사적인 강점은 재미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대중들의 호감도를 끌어올렸다는 점이 이 작품이 지닌 큰 의의일 것 같아요. 다만 이 작품을 뽑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결말 부분에 약간의 흠결 같은 것이 있었다거나,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같은 고전적인 맥락의 윤리의식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대한 비평 같은 게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초반의 대중 독서 시장을 장악했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7년의 밤』 영화는 보셨나요? 저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이현석 : 영화가 나오긴 했죠.

 

임국영 :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었습니다.

 

이현석 : 한국 장편소설이 원작인 영화 중에 흥행한 작품이 잘 없지 않았나요?

 

염승숙 : 그런가요?

 

임국영 : 한국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최근에 흥행한 사례가 없었죠.

 

염승숙 : 알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이전에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가 2010년도에 있었는데요. 황정은 작가 같은 경우에는 2010년대를 통틀어서 『백의 그림자』, 『계속해보겠습니다』, 『디디의 우산』까지 여러 작품을 출간했기 때문에 황정은이라는 하나의 코드로 묶어서 얘기하고 넘어가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현석 : 『백의 그림자』는 연인 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노동소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황정은의 문체를 독자에게도 각인시킬 수 있었던 장편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염승숙 : 그렇죠. 『백의 그림자』로 촉발된, 세운상가라고 하는 지나간 세월의 흔적과 소시민적 노동의 삶이 집약되어 있는 공간을 최근작 『디디의 우산』까지도 끌고 오더라고요. 그래서 황정은이라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어떤 주제들, 노동의 현장과 그 안에서의 소시민적인 생활과 사랑에 대해서 조금은 일관되게 집중해서 쓰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계속하는 것, 반복해서 직시하는 것, 이것이 황정은식 서사이고 문장이다, 이런 것을 2010년대에 10년에 걸쳐서 차근차근 밟아 오지 않았나 하는 인상도 들고요.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은모든 : 방금 말씀해 주신 점이 아마 누구나 읽으면 동의할 부분들인 것 같아요. 최근에 『디디의 우산』을 읽으면서 저는 여러 이름이 떠오르더라고요. 이를테면『백의 그림자』에 등장하는 '오무사'라는 공간이요. 사실 오무사는 단지 주인공이 일하는 곳과 가까운 가게의 이름이라고 볼 수도 있잖아요. 소설의 배경을 이루는 곳 중 하나인 장소의 이름이 이렇게 10년 가까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다른 예로 가족을 호명할 때,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호칭이 아닌 개인의 이름으로 부르는 방식도『디디의 우산』까지 연결이 되더라고요. 개별의 존재로 이름을 짓고 부르는 정서와 힘, 그 자체가 소설의 공기를 이루고요. 그런 세계관은 꾸준히 이어 가면서 또 작품의 스타일은 작품마다 달라지잖아요. 그러한 점에서 지난 10년 동안 활약하셨던 것만큼이나 앞으로의 10년도 기대되는 작가님 중 한 분입니다.

 

염승숙 : 그렇죠. 다른 분들도 말씀해 주세요.

 

김수온 : 저는 황정은 작가의 장편 중에 『계속해보겠습니다』가 오래 기억에 남아요. 다른 장편들을 어쩌면 압축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각기 다른 형태로 소외되어 있는 인물들이고 그런 인물들이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면서 자라나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삶을 계속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뭔가 선언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나나가 어렸을 때 금붕어를 괴롭히자 나기가 나나의 뺨을 때리면서 지금 이 아픔을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괴물이 되지는 말라는 거죠. 그 대목에서 어느 누가 이 두 아이를 미워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둘 다 참 안쓰럽고 안타깝다, 얘네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누구라도 이 애들을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 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자란 여자 주인공 나나가 나중에 아이를 갖게 되는데, 아이의 아빠인 사람과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도 예전의 그런 기억을 갖고 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고요. 나나는 금붕어를 괴롭히면 옆에서 나기가 혼내고 나무라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아이의 아빠이면서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그 사람은 연꽃이 자라나고 있는 연못에도 담배꽁초를 버리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둘은 안 되겠다, 나나는 그냥 나나의 방식대로 삶을 계속해나가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 아프게 읽었던 것 기억이 있어요. 그런 인상이 저한텐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서, 황정은 작가의 행보는 2020년에도 그렇게 계속 확장되어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염승숙 : 작품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으셨던 것 같아요. 좋네요. 그 작품이 연재 지면에 게재됐을 때는 '소라나나나기'라는 제목이었는데,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바뀌어서 출간됐어요. 아마 그 제목이 갖는, 어떤 선언과도 같은 울림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독자들의 공감을 더 크게 얻지 않았나 싶고요. 『백의 그림자』부터 『계속해보겠습니다』, 『디디의 우산』까지 이르는 이 작가의 10년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한 작가의 내면에는 어떤 우물 같은 원형이 들어 있는 걸까, 쓰는 사람의 내면에는 뭐가 있는 것일까, 하는…… 한 작가의 내면에 무엇이 있다고 독자들이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작해 보고 싶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가가 바로 황정은 작가가 아닌가 해요. 좋은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면서 또 작가의 이면을 궁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감각이 있지 않나 하고요.

 

김수온 : 제가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그 이후에 나온 『디디의 우산』을 읽으면서 계속 싸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그 소설에서 오늘은 대통령이 파면된 그런 날이잖아요. 그날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가 겪어온 한국사회의 시대적인 흐름, 혁명의 계기가 되어온 시위나 학생운동 등 여러 일들을 회상하면서 전개가 되는데, 그런 일들의 사이사이에 학생운동을 하면서 혹은 서수경이라는 인물과 함께 살면서 여성으로서 받았던 차별이나 희롱 같은 거를 떠올려요. 자기가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계속 싸워 온 거죠. 집에는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고 이제는 안전해졌으니 그 사람들을 깨워야겠다, 말하는 이 소설의 화자처럼 이 작가도 자기가 지키고 싶은 어떤 신념을 지키려고 계속 노력해 왔던 작가구나 생각했어요. 작가의 이면 안에는 그런 게 깊게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염승숙 : 그렇죠. 모든 작가들에게는 각자만의 싸움이, 분투가 있겠죠. 또 하실 말씀 없나요? 임국영 씨는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임국영 : 저는 비교적 뒤늦게 황정은 월드에 입문한 케이스인데요. 장편보다는 단편 위주로 읽긴 했습니다. 앞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덧붙이기가 어려운데요. 계속해서 싸워나가는 작가라는 표현에 특히 동의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성장해 간다는 맥락에서 거의 완성형에 가까운, 롤모델 같은 소설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어떻게 미시적인 얘기로 말미암아 거시적인 화두를 던질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는데 좋은 예시로서 황정은 소설가가 한국 문단에 존재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인이나 가족, 자신에 대한 비교적 심적으로 가까운 이야기로 말미암아 노동과 계급, 나아가 이 시대와 사회에 관한 포착으로 나아가기도 하고요. 이런 것들을 감각적인 문장으로 직조해 나가는 게 대단하고 놀라워요. 너무 찬양인가요? 이런 소설가가 당대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배움이 된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지금도 조금씩 읽어가 보고 있습니다.

 

염승숙 : 입문한 거 맞으세요? '입덕'이 아니고요? (일동 웃음)

 

임국영 : 처음에는 주변에서 다들 너무 좋다고 하니까 이상한 거부감 같은 게 있었는데, 나중에는 사람들이 찬양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염승숙 : 네. 알겠습니다. (웃음)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번 설문조사에서 많은 평론가분들께서 뽑아 주셨는데 너무나 당연하다는 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이 작품의 성취는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 5·18과 광주에 대해서 이렇게 써낼 수도 있구나, 한강이어서 이만큼 쓸 수 있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한국문학의 어떤 정수에 도달했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어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나요?

 

 

이현석 : 저도 동의합니다. 이 설문조사에 평론가들이 간단한 코멘트를 달아 뒀던데 대부분 이 소설의 주제에 집중한 엇비슷한 평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만큼이나 형식미를 논한 어떤 분의 코멘트에 공감을 많이 했거든요. 소설이 다루는 주제뿐만 아니라 그것을 발화하고 재현하는 현실 윤리와 형식미까지, 리얼리즘적으로 재현되던 5월 광주가 또 다른 한국문학의 흐름인 전위의 계보와 만난 하나의 사건이니까, 그 형식만으로도 제 몫을 다 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더욱 지지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김수온 : 『소년이 온다』는 너무 많은 걸 해냈고, 해내고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80년대 당시의 광주의 비극을 지금 현재에 이르러서 증언하고 증명하는 소설이잖아요. 장마다 각기 다른 시간에 놓인 인물의 시각으로 그날을 보여주는데 마지막 장이 특히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요. 동호의 어머니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동호가 분명 저녁을 먹기로 했으니 올 거라고 기다리면서 남매를 집에 들이지 않았더라면 내 아들이 그 아일 찾으러 가지도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면 벌 받는다고 자책하는 장면에서 국가적으로 일어난 일로 인해 한 개인의 삶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었던 것 같아요.

 

염승숙 : 그렇죠. 네, 또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은모든 :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저는 사실 소설의 첫 장, 첫 문단을 읽으면서는 특별한 기대감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왜냐면 원래부터 압도적으로 대단한 작가님이신 데다 제목도 『소년이 온다』여서, 미학적인 문장에 집중되는 그런 식의 소설일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염승숙 : 소설의 시작도 2인칭으로 시작하다 보니까 약간의 혼란이 있을 수 있죠.

 

은모든 : 하지만 그 이후 쭉 읽어나가면서 5월 광주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군의 목소리를 생생하면서도 종합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발화, 그 장에서 탄복했어요. 한 번 읽고 나면 평생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그대로 마음에 새겨지는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5월 광주와 관련한 굵직굵직한 영화가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되니까 그걸 다룬 작품이 많을 것 같지만 사실 양적으로 많지는 않다고 느껴지는데요. 이 작품이 나옴으로써 양적으로 부족한 아쉬움을 질적인 것으로 달래주었던 것 같아요.

 

염승숙 : 광주라고 하는 소재로 소설을 써내기가 굉장히 어렵겠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지점들이 있고 그 자체로 고통을 안겨 주는 역사로 계속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소재에 대해서 발언하는 작가적 자세가 참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편 쪽에서는 박솔뫼 작가가 『그럼 무얼 부르지』 등 여러 단편을 통해서 광주를 소재로 삼아 왔고, 또 김숨 작가가 굉장히 아프고 슬픈 역사에 관해서 계속 소설로 쓰고 있잖아요. 그런 데서 문학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독서라고 하는 것이 잊지 않아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을 문학을 통해서 대신 체험한다는 의미도 있는 거잖아요. 문학적으로 끊임없이 계속 발화되어야 하는 역사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그런 점에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해갈의 의미로써 등장하지 않았나 싶고요.

 

임국영 : 앞서 이 소설의 형식과 인물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셨는데, 말하자면 옴니버스 소설이잖아요. 거대한 사건 하나를 두고 각 장에서 시공간이나 인물을 달리하면서 이 얘기들을 끌어가는 게요.

 

염승숙 : 작가 스스로 목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임국영 : 그래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말이었습니다.저는 그게 작가의 말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작가가 소설의 인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쓰게 된 경위와 정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이 소설을 완성시키고 종결시킬 수도 있구나 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계속 들려주던 소설에서 작가가 직접 등장해 직접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서요. 그런 기술적인 연출을 통해 이른바 진정성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커다란 무엇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저한텐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염승숙 : 지금 은모든 작가님을 제외하고는 첫 책을 아직 안 내신 분들이죠? 작가의 말을 많이 생각하시겠는데요? 이제 곧 작가의 말을 쓰셔야 할 테니까요.

 

임국영 : 저는 작품은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작가의 말 먼저 생각하고 있어요. 있지도 않은 작품에 대해서요. (일동 웃음)

 

이현석 : 그걸 작품으로 내면 되겠네요. 없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을요. (웃음)

 

임국영 : 그러면 한 권 분량으로 낼 수 있어요.

 

염승숙 : 네, 그리고 또 혹시 이 통계표를 보고 공감했던 작품이 있다면 그 얘기를 조금 하고 넘어갈까요?

 

이현석 : 저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작품들에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근데 좀 헷갈리는 게, 제 전공 중 하나인 역학에는 '리콜 바이어스'라는 말이 있어요. 회상 편이라고 해서 말하자면 가까운 시일에 일어난 사건을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그래서 더 중요한 것처럼 느끼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저는 2010년대 후반부에 나온 장편소설 중에 최은미 작가의 『아홉 번째 파도』,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 조해진 작가의 『단순한 진심』, 그리고 여기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윤고은 작가의 『해적판을 타고』 같은 소설들이 중요한 작품들이었다고 생각해요. 남성 작가들의 대하소설이나 신문 연재소설 같은 장편소설이 잘 팔리던 호황기가 지나간 후로 긴 공백 끝에 이제 여성 작가들에 의해 생산된 장편소설의 시대가, 특히 '웰메이드' 장편의 시대가 올 것을 알리는 징조들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장편이라는 장르는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갖출 때 평단과 독자의 호응을 동시에 얻을 텐데, 제가 느끼기에는 앞서 말씀드린 네 편의 작품들이 바로 그런 소설들인 것 같습니다. 예전, 한국영화의 황금기에도 프로듀서들의 이중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웰메이드 작품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공동경비구역 JSA〉라든지, 〈올드보이〉라든지, 이런 영화들처럼 한국 장편소설에서도 그런 작품들이 나올 거라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염승숙 : 네, 한 분만 더 말씀을 들어 볼까요?

 

은모든 : 비중 있게 언급이 되진 않았지만,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서,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 있을까 찾아봤거든요. 근데 언급이 되어 있어서 제 일도 아니지만 무척 기뻤습니다.

 

염승숙 : 그렇죠. 정세랑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 세계도 독자들의 공감을 많이 얻었고, 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많이들 즐거워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피프티 피플』 같은 경우에는 훨씬 더 색다른 형식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신선했던 것 같아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50명의 인물들이 제각각 가치 있는 사연을 다루고 있었다는 점에서요. 물론 소설의 완성도도 완성도이지만 소설을 읽는 재미까지 보장해 준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임국영 : 저도 이 표를 보면서 정세랑 소설가가 있을까 했는데 『피프티 피플』이랑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어서 되게 반가웠거든요.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서 서브컬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조금씩 주목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대의 문화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지금 성장해서 소설가가 됐고, 그 문화를 주제로 조금씩 작품을 쓰고 있다고요. 그 작가들과 동시대를 살았고 서브컬쳐에도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우리나라 소설의 어떤 지평이 앞으로도 조금씩 더 다양해지고 재밌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김세희 작가의 『항구의 사랑』도 추천표에 언급돼 있었고, 추천되지는 않았지만 이희주 작가의 『환상통』이라는 작품 같이 아이돌 팬덤에 관한 얘기를 다루는 소설도 종종 눈에 띄니까 설레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 내용도 볼 수 있구나 하면서요.

 

 

염승숙 : 사실 2010년대 중후반을 아우르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면 페미니즘, 퀴어, SF겠죠. 이 세 가지의 이야기를 빼놓고 2010년대를 이야기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지금 퀴어의 최전선에 있는 작가의 연작소설이죠? 장편이라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어서 논할 순 없을 것 같고,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과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작품도 SF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려워서, 2010년대 한국문학의 장편소설에서 퀴어와 SF를 논하기가 애매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제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82년생 김지영』입니다. 2010년대 중후반에 문단의 미투 운동도 있었고요. 그때 다들 어떠셨어요? 그때가 2015년부터 2016년 즈음이어서 아마 미투 운동 이후에 등단하셨던 것 같은데, 등단 이전에 예비 작가로서 문단의 성폭력 고발, 미투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셨는지도 궁금해요.

 

임국영 : 가외의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전공이 문예창작이었다 보니까 풍문으로 들리는 이른바 문단 내 이야기들에 다른 20대보다는 비교적 민감한 게 있었거든요. 학과의 분위기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거 같아요. 이를테면 제가 문학을 배우던 강사나 교수의 이름이 오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제가 좋아했던 작가분들의 이름을 듣게 되는 충격도 있었고, 당장 어제 술자리를 가졌던 사람이 다음날 뉴스에 나오고 있는 상황도 벌어지기도 하고요. 풍문처럼 문단의 술자리는 어떻다는 걸 들었는데, 데뷔하고 나니까 적어도 제가 겪기로는 아직 그런 끔찍하고 험한 모습들은 보이지 않아서 또 놀랐어요. 그런데 그 시대를 관통한 다른 선배 작가들은 진짜 많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피부로 느낄 일이 없었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나 보다 생각했고 부디 이 분위기가 앞으로도 유지되길 기원했습니다.

 

염승숙 : 그렇죠.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제가 너무 무거운 얘기를 했나요?

 

이현석 : 저 같은 경우에는 데뷔 이전에 문단이나 문학계와 연이 없어서 사실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염승숙 : 그럴 수 있죠. 저는 그런 일이 막 촉발되었을 때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그 현장에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분위기도 뒤숭숭했고, 마음이 어지러웠다고 해야 할까요. 한국에서 여성으로, 여성 작가로 사는 동안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침묵하고 동조했던 남성 작가 중심의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게 굉장히 씁쓸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실명이 거론되면서 어떤 추문과 추행의 증거들이 나왔을 때는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했고요. 이것이 문단의 전부가 아닌데 마치 문단의 전부인 양 폭로되는 것 같기도 해서요. 기사나 SNS를 통한 폭로도 많아지니까 불안하면서도 또 피해자가 된 그분들에게 2차 피해가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고요. 아무튼 혼란한 시기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 『82년생 김지영』이 나오면서 문단을 비롯해서 대한민국 사회 전반의 영역에 걸쳐서 페미니즘이 확대된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82년생 김지영』을 향한 대중의 환호와 문단의 환호도 적절히 뒤섞이지 않았나 싶었고요. 『82년생 김지영』의 문학적인 성취를 판별하기 이전에 『82년생 김지영』은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문단의 역사를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한강 소설에서의 작가의 말처럼 『82년생 김지영』에서도 마지막에 정신과 의사가 화자로 나오잖아요. 감춰져 있던 화자가 누구였는지를 마지막에 밝히면서 그 화자마저도 부조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언 아닌 단언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문학적인 성취나 완성도를 따지기 이전에 이 작품이 등장한 것만으로 큰 발자취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수온 : 저는 우선 고민이 많이 됐어요. 너무 익숙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작품이 한국에서 태어나 누군가의 딸 혹은 엄마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얘기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논의가 확장되는 건데, 소설이 등장하자마자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절반의 여성들한테 읽히고 공감을 샀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너무 기다려 왔던 소설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소설의 미학적인 측면 같은 걸 다 덜어내고 그냥 이 자체만으로도 너무 기다려 온 소설이다, 이 소설이 우리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얘기를 더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모두가 겪어 왔지만 명명되지 못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이제는 호명할 수 있게 된 거잖아요. 이런 지표가 마련되었으니 2020년에는 더 다양한 얘기가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되게 오랫동안 했던 것 같아요

 

염승숙 : 네, 또 어떠셨나요.

 

 

은모든 : 이 소설처럼 끊임없이 화제 몰이를 하는 소설은 한국문학사를 통틀어 봐도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올해 봄에 일본에 며칠 놀러 갔었는데, 그때 한 일본인이 자기가 한국소설을 읽었다면서 '지영짱, 지영짱 어떡해!' 하면서 절규하면서 봤다는 감상을 전해주는 거예요. 외국인에게 한국소설을 읽었다는 얘기를 들은 게 처음이었는데 심지어 한 명이 아니었어요.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가 바텐더한테 나 한국인이고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더니 자기도『82년생 김지영』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서점에 내려가자마자 벽면에 한국문학특집 책장이 있기도 했어요. 지금 얘기하는 주요 작품들이 다수 번역되어 진열되어 있었는데 특별 코너가 만들어진 것은 뭐니 뭐니 해도『82년생 김지영』의 성공 덕이었겠지요. 또한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안 해도 될 소모적인 전쟁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피로감도 쌓였는데요, 적극적으로 희망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눈을 크게 뜨고 보다 보니까 재밌는 이야기들도 많이 들어왔어요. 이를테면 민음사 유튜브에서 처음 『82년생 김지영』의 원고를 검토하신 서효인 편집자님이 책이 이렇게까지 회자되기 전에는 남녀 독자의 반응이 큰 차이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그리고 그 반응이 실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울러 흥미로웠던 게 〈82년생 김지영〉 영화도…… 아, 한국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잘 된 영화가 여기 있습니다! (일동 웃음)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둘러싸고도 일방적 음해가 난립했는데, 실제로 영화를 관람한 경우는 남녀 관람객의 별점에 차이가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쓸데없이 영화를 보지도 않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의 뉴스에 과도하게 집중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겠다, 앞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끼리 손잡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인지 잡을 수 아닌지『82년생 김지영』에 관해 얘기해 보면 자연스레 드러날 테고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평생 흥미로운 화제가 되지 않을까 해요.

 

이현석 : 마지막에 하신 말씀에 얹어서 얘기해 보고 싶은 게, 이게 어떤 의미에서는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 간의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페미니즘이라는 중요한 전선과 별개로, 혹은 좀 더 근본적으로 "(안 읽었지만) 나도 너만큼 알아"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만연한 시대를 보여주는 거죠. 당연히 앞으로도 심화된 문제일 테고요. 소설이 여전히 사상의 척후병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치로써 소설을 고민한다면 『82년생 김지영』이 가져온 '이외의 것'들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염승숙 : 『82년생 김지영』이 이슈화됐을 때 SNS 상에서 유행한 『며느라기』라는 웹툰이 있었어요. 그 웹툰도 SNS 상에서 독자의 호응을 많이 얻고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는데요. 『82년생 김지영』 이후로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라는 장편도 나왔죠. 그런 걸 생각하면 2010년대 중후반을 강타한 것은 사실 여성의 역할들에 관한 담론이었다고 봐요. 아내, 며느리, 엄마, 딸, 이런 역할들에 있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것들이 소진된 상태에서 역할 담론이 등장하지 않았나 싶어요. 가부장 사회 안에서 이 모든 역할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과 고단함, 난해함, 부조리함, 이런 것들을 발화했던 것인데 이것을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는 식으로 싸움이 붙었기 때문에 서로 간에 피로한 전쟁으로 이어진 거죠. 너 힘든 거 나도 알지,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사회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너 힘든 거 나도 알았는데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더 잘 알게 됐어, 라고 말하는 식으로 우리 사회의 논의가 진행되었다면 이렇게까지 물리적인 피로나 정신적인 권태는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마치 성대결인 것처럼 남성들 사이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 이단이 된 것처럼 배격된다든가, 읽지 말라고 하면서 간섭하는 식의 폭력적인 제스처나 발언이 돌잖아요. 성대결이 아니라 여성 집단 사이에서 발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아이러니와 난해함에 대해서 얘기해야 하는 것인데도요. 저는 이 정도면 '82년생 김철수'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동 웃음) 남성 작가에 의해서 쓰여진 '82년생 김철수'를 되게 기대하고 있는데, 그게 나와야 이 피로한 전쟁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싶어요. '82년생 김지영'이 이렇게 힘들었구나, '82년생 김철수'도 이렇게 힘들었어, 우리 이 '힘듦'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이 구조적인 난제를 타파해 가보자, 라고 하는 건강하고도 건실한 논의가 촉발되기를 저는 굉장히 기대하고 있어요. 아까 이현석 작가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문학이 단순한 텍스트를 넘어서서 어떤 사회적인 논점과 이슈를 이끌어내고 담론의 장을 열 수 있는 개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책의 힘, 문학의 힘은 아직도 유효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이 2010년대의 주요한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하고,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 같은 경우에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더 나아가 인간의 죽음, 인간의 마지막을 인간이 어떻게 예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윤리적인 테제까지 나아간 작품인 것 같아서 굉장히 좋게 읽었어요.

 

김수온 : 저도 『딸에 대하여』에 대한 인상이 남아 있는데, 거기서 엄마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소설 중반에 대학 강사인 딸이 자기의 동성 연인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장면이 있는데, 엄마가 딸을 바라보면서 아, 쟤가 왜 저렇게 됐나, 쟤 어쩌나, 하면서 속마음을 삭히는 그런 장면이 있어요. 저는 그게 어쩌면 2010년대에 동성애를 포함한 퀴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처럼 보였어요. 사실 퀴어는 사회와 대중이 인정하거나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게 옳고 그른지 판단하려 든단 말이죠. 쟤가 퀴어만 아니라면 완벽한 딸인데 쟤가 왜 저러나,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와 대중의 시선처럼 보였어요. 그런 편견 같은 게 엄마의 시선을 통해 은근하게 깔려 있어서 저도 조마조마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염승숙 : 맞아요. 강사법에 반대하고 피해자 집단에 연대하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됐었죠. 대학의 부조리함, 시간강사들을 대하는 부조리한 행태를 보여줌과 동시에 자식의 성적 성향을 인정하지 못하고 노년 세대, 그러니까 동성애는 그릇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 기성세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이 쓰였죠. 그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그릇된 것인지를 역으로 돌려주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김봉곤, 박상영 작가가 등장하기 이전에 발표되었던 문학 속에서는 동성애를 윤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게 있었는데, 그런 연장선도 있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서사에서도 계속 동성애적인 코드가 약간씩은 언급되었고요. 2010년대의 주요 이슈였던 건 맞는 것 같아요. 아직 퀴어를 소재로 삼는 장편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그건 2020년대의 어떤 과제로 이야기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또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로는 2010년대에 편혜영 작가의 『재와 빨강』, 『홀』, 『죽은 자로 하여금』 같은 작품들이 있을 것 같고, 워낙 왕성하게 활동했던 작가들이었기 때문에 이기호, 김연수 작가의 작품들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현석 : 저는 집계자료를 보면서 또 흥미로웠던 게, 시 부분의 목록을 보면 백무산 시인이나 송경동 시인의 시집이 몇몇 평론가의 지지를 얻었더라고요. 그런데 단편소설이든 장편소설이든 그와 비슷한 무게감을 가진, 노동소설을 중점적으로 파고든 작가들의 이름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특히 장편소설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고요. 시, 단편, 장편 중에서 장편이 시장의 요구에 가장 예민하기 때문인지, 노동소설 자체가 귀해지고 그러다 보니 출판시장에서뿐만 아니라 평론계에서도 소외되지 않았나, 싶기도 했어요.

 

염승숙 : 네, 그렇군요. 조금 더 얘기를 해 보자면, 눈에 띄는 작가들로는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나 『단순한 진심』 이런 작품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김숨 작가와 마찬가지로 조해진 작가도 역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소설적인 소재로 차용하고 있는 작가니까요. 탈북과 입양 등 한국사회의 굵직굵직한 주요 안건 같은 소재들을 서사적으로 잘 이슈화시키지 않았나 합니다. 장강명 작가의『한국이 싫어서』는 제목 그 자체로 독자의 눈길을 끌지 않았나 싶은데요.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작품들도 있었어요. 김희선 작가의 『무한의 책』이나 최은미 작가의 『아홉 번째 파도』, 손보미 작가의 『디어 랄프 로렌』,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처럼, 작가의 첫 장편이 통계에 오른 경우가 보였는데, 『무한의 책』 같은 경우에는 저도 굉장히 놀랍게 읽었던 책이에요. 분량도 무시무시한 분량이었고요. 2000매가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임국영 : 책이 두꺼워서 '무한의 책'인 줄 알았어요. (일동 웃음)

 

은모든 : 그래서 사실 『무한의 책』을 계속 입문해 보고 싶은데, 선뜻 읽어 보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2000매가 한 권인 건가요?

 

염승숙 : 네, 2000매로 한 권이에요. 정말 재밌어요. 이것이 장편이다, 장편의 분량이다, 라는 것을 자신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은모든 :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2010년대 전반에 걸친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 장편소설의 경량화 얘기가 많잖아요.

 

염승숙 : 그렇죠. 경장편의 붐이 일긴 했죠. 우리가 주요 작품으로 이야기한 『82년생 김지영』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도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라든가, 민음사의 '젊은소설 시리즈'도 있고요. 아르떼의 '작은 책 시리즈', 은행나무에서도 '노벨라 시리즈'라는 중편 시리즈가 있었어요.

 

은모든 : 경장편이 보통 500매쯤이니까, 2000매는 물리적으로 네 권 분량이잖아요. 꼭 읽어 보고 싶은데 약간 목욕재계하고 읽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아직 입문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 못 읽고 일단 덮어 놓고 존경만 하고 있어요. 우리가 대하소설이라 말하는 장르도 아닌데 2000매가 넘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염승숙 : 김희선 작가가 등단 이후 발표한 단편에서 보여줬던 서사적인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 역사적인 맥락 같은 것들을 굉장히 잘 버무린 장편 데뷔작이 아닐까 싶고요. 작가의 첫 장편이 통계에 올라 있다 보니까, 아직 장편 쓰지 않으신 여러분들의 첫 장편 계획도 들어 보고 싶어요. 그 전에 은모든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장편으로 등단하셨기 때문에 첫 장편을 쓰실 때의 경험이라든지 그런 얘기도 들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은모든 : 실은 등단작이 제가 처음으로 쓴 장편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 20대 때 썼던, 절대 다시 못 살릴 만한 게 한 편 있었어요. 그때 쓴 거는 그냥 작별한 느낌이고요. 그 다음으로 두 번째 썼던 장편이 1800매였어요. 제가 조금 전에 『무한의 책』에 대해 그렇게 말해 놓았는데 민망하네요. 분량이 많다 보니 맨날 농담으로 친구들한테 내가 이렇게 역작을 썼잖아, 하고 말했어요. (일동 웃음) 선이 굵은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한 이야기였는데 장편소설의 리듬이나 규격 자체에 대한 파악이 부족했지요. 그러고 나서 세 번째에는 어느 정도 소설의 규격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한 권 분량인 700매, 800매 정도 규격을 생각하면서 쓰게 됐고요.

 

염승숙 : 그래도 장편으로 데뷔하셨기 때문에 장편 작가로서 출발하는 기분은 또 단편 작가와는 다를 것 같아요. 당선되면 책으로 바로 나오잖아요. 첫 장편이 출간됐을 때는 어떠셨어요.

 

은모든 : 그때 저는 등단이 늦기도 했기 때문에 약간 주변이 들떠서 어수선한 느낌이었어요. 이를테면, 뉴스 앵커가 "누구누구 특파원, 현장의 분위기를 전해주시죠", 이러면 "네! 여기는 축제의 현장입니다", 라고 할 법한 들뜬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엄마도 너무 들뜨셔서 일상생활이 잘 안 되셨고요. 사실 신인작가의 책이 화제작이 아니면 출간된 걸 주변 사람들 정도만 알잖아요. 그래도 등단이 늦었던 것만큼 빨리 책이 나오고, 경량화의 붐 덕분에 이후 다음 단행본도 빨리 나오게 돼서 기쁠 일이 많았습니다. 다른 분들 얘기 들어 보면 첫 책을 내고 나서 여러모로 불안에 시달리신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제 경우는 불안과 축제의 교차였다고 할까요.

 

염승숙 : 장편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한국 작가의 장편도 눈길이 많이 가셨을 거 같아요. 혹시 이 통계에 관해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관심이 갔다거나 좋아하는 작품이 있었나요?

 

은모든 : 아까 말했던 정세랑 작가님이요. 저는 등단을 못하면서 막막하던 시절이 길었어요. 요즘에는 독립잡지나 독립출판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많으신데 저는 그렇게 책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주도적인 활동을 할 만큼 외향적인 에너지는 없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함만 가득했지요. '뽑히는' 소설, 세상에 드러나는 소설의 규격이랄까 범위가 제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고, 그중에 제가 열광할 만한 작품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도 했고요. 정세랑 작가님의 책들을 보면서 다양한 차원에서 반성 어린 해방감을 느꼈었어요. 지금 얘기가 나오고 있는 작품뿐만 아니라 재출간된 작품들도 그렇고, 『재인 재욱 재훈』이라는 작품이 은행나무의 노벨라 시리즈로 나왔잖아요. 그 작품도 호쾌한 에너지에 반해서 주변에 열심히 추천했죠. 노벨라 시리즈에도 좋은 작품이 많은데, 그때만 하더라도 장편소설이 얇으면 약간 애매하다는 느낌이 강했었나 싶어요. 근데 사실 장편으로 데뷔하면 그 점은 안 좋은 거 같아요. 단편 청탁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요. 축제가 끝나고 나면 어, 어떡하지? 단편을 어떻게 청탁받아야 하는 거지? 이렇게 되더라고요. 사실 장편은 많이 가지고 있을 수가 없고, 단편을 쓰다가 장편도 써 보는 건데.

 

염승숙 : 한국 문단의 현실이 단편과 장편을 병행해서 써나가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겠죠. 장편으로 데뷔했다 하더라도 단편이 의식될 수밖에 없고, 단편으로 데뷔했다 해도 첫 장편, 두 번째 장편이 또 의식되지 않을 수가 없고요.

 

이현석 : 계속 활동하다 보면 반드시 장편을 써야 한다는 압박이 있나요?

 

 

염승숙 : 저 같은 경우에는 계약을 해 놓은 장편이 있으면 압박감을 계속 받는 것 같아요. 원고 독촉이라든지 그런 것들이요. 발표된 장편소설에 대해 계속 얘기해 보자면, 이번 통계에는 없었지만 박솔뫼 작가의 『도시의 시간』이나 『머리부터 천천히』 이런 작품들도 인상적이었고, 또 정용준 작가의 『프롬 토니오』, 윤성희 작가의 『구경꾼들』, 권여선 작가의 『레몬』 같은 작품들이 좀 많이 빠져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정말 많은 작가가 꾸준히 장편을 써내고 있어서 한국문학이 앞으로 더 사랑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다른 분들은 또 여기에는 없지만 주목했던 작가와 작품들이 있나요? 아까 얼핏 얘기해 주셨던 거 같은데요.『해적판을 타고』라든지요.

 

이현석 : 윤고은 작가님의 『밤의 여행자들』이나 『해적판을 타고』 같은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죠. 그리고 다른 작가들이 미처 다루지 않은 소재와 주제들을 늘 한 발자국 먼저 능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소설들을 이미 쓰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작품은 지금보다 더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수온 : 저는 아까 말씀하신 김숨 작가님이요. 제가 그분의 소설을 되게 오랫동안 좋아해 와서 꼭 언급을 하고 싶었어요. 요즘의 행보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문학으로 역사를 증언하는 소설들을 많이 출간하시고 계시잖아요. 『L의 운동화』나 『한 명』, 『흐르는 편지』 등을 출간하셨고, 최근에 현대문학에서 나온 증언집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도 이게 장편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두 작품이 참 좋았거든요. 김숨 소설가만의 문체와 감각으로 복기를 한다고,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제껏 써온 장편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아직도 마음에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2020년에도 아마 그런 행보를 계속 나아가지 않을까 했고요. 아까 작가들의 첫 장편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김사과 소설가의 『테러의 시』도 기억에 남는 장편 중에 하나에요. 그분의 첫 장편은 아니지만 그 장편으로 김사과 소설가를 처음 알게 됐거든요. 그 소설의 인상은 저는 정말 희망이 없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주인공 여자애가 작가가 설계해 둔 지독하고 참혹한 이 도시에서, 서울이라는 이 작은 세계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겠구나, 알 수 없는 사람들한테 팔려 와서 성을 착취당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만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이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는 도통 어떤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은 소설인데, 최근의 장편 『NEW』를 읽고도 아직까지 그런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염승숙 : 『테러의 시』도 굉장히 좋은 작품이죠. 또 있을까요? 기억에 남거나.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요.

 

임국영 : 제가 읽었던 장편소설 거의 대부분이 이 자료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막 추천하고 싶다고 떠오르는 게 없는데, 좀 별개의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저는 요즘에 청소년 문학을 조금씩 읽고 있거든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를 재밌게 봤었는데, 최근에 화제가 됐던 청소년 문학 장편소설이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나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같은 소설이에요. 그리고 구병모 소설가가 최근에 『버드 스트라이크』라는 작품도 냈고요. 물론 청소년 소설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주제의식이 약간 제한되어 있는 부분이 있겠지만, 제가 갖고 있었던 어떤 선입견들을 깨고 재미 외적으로도 이른바 저희가 미학적이라 말하는 부분에서도 볼거리가 있고 얘기해 볼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방금 말씀해 주신 작품들도 좋지만 앞으로 청소년 문학 같은 것도 좀 더 조명해 보고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염승숙 : 그렇죠. 사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촉발된 청소년 문학에 대한 관심과 시장이 지금 2010년대 후반에 와서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로 더 많은 관심을 모았던 것 같은데, 『아몬드』 같은 경우에도 지금 목록에는 없지만 주목해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일단 대중의 호응도가 굉장히 컸고, 작품이 갖는 서사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독자들한테 다가갔던 이슈 같은 것들이 무엇일까 얘기해 보고 싶기도 하거든요. 어떤 맥락에서 대중이 『아몬드』에 열광했었는지 궁금한데, 우리가 청소년 소설에서 익히 보아 왔던 주인공 캐릭터와는 조금 남다른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도 했고요. 편두엽이 아몬드만큼 작아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청소년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눈앞에서 살해당해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 죽음의 크기를 인지하지 못하는데,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굉장히 가독성이 좋고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서 일진 청소년을 넘어서서 사회의 조폭, 그 조폭 중에서도 정수에 해당하는 인물이 나오잖아요. 그 인물이 판타지스럽게 등장했던 것 같아요. 사르트르 식으로 얘기하자면 절대악의 원형이 그 인물, 철사 형이라는 건데, 그런 절대악에 청소년 주인공들이 너무 쉽게 접근하는 데다 결말로 치달아 가기 위한 과정이 자극적이어서, 이게 청소년 소설의 범주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통용이 되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어요. 작가의 역량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고요.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들에 지나치게 폭력적인 결말로 빠르게 나아가니까요. 그래서 이게 어디까지 통용이 되고, 또 독자들은 어디까지 이것을 수용하고 열광하는 것인지 저는 좀 헷갈렸습니다.

 

임국영 : 『아몬드』 같은 경우에는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지만 성인들도 굉장히 많이 읽었고, 그래서 저는 『해리포터』를 떠올리기도 했어요. 『해리포터』 시리즈도 청소년 대상의 작품이었으니까요. 『해리포터』를 보면 그로테스크한 설정들이나 이미지, 괴물, 죽음이나 마법, 저주가 나오고요. 또 해리포터라는 인물은 어렸을 때 가정폭력이나 왕따 같은 문제도 겪었던 걸로 기억해요. 어른들이 보기에도 좀 폭력적으로 보이겠지만, 청소년들도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어떤 폭력성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청소년들이 접하는 어떤 작품이나 시선들은 굉장히 잔인하고 운동성이 짙고 이런 것들이기 때문에 『아몬드』 같은 이런 소설도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옳고 그른 걸 떠나서 저도 좀 혼란스럽더라고요. 이거 어디까지 가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긴 했어요.

 

염승숙 : 사실 출생이나 성장, 또 그 안에서의 상처, 트라우마, 죽음 같은 것은 인간으로서의 과정이고 문학적 테제이기 때문에 이 모든 걸 벗어나서 소설을 쓸 수는 없겠지만, 청소년과 성인 소설을 분류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안의 문학적 테제들에 조금 더 자신의 작가적인 정체성을 녹여내서 서사를 진행시킬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와 서사 진행 방식은 눈길을 사로잡을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어떤 감동을 자아낼 순 없는 것 같아서 얘기해 봤던 것 같아요.

 

김수온 : 제가 잠시 드는 생각은, 이런 게 아닐까 말씀드리고 싶은데, 2010년대의 문학은 실제로 많은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잖아요. 우리가 알던 청소년이, 그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청소년이 지금의 청소년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염승숙 : 절대악의 인물이 나와야 하는 거예요? (일동 웃음) 제가 너무 순진무구했던 건가요? 지금 제 머릿속에서도 많은 게 깨지고 있는데.

 

김수온 : 그건 저도 그래요. 그치만 그래도 청소년 소설이니까 바른 얘길 해 보자, 우리가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만 얘기를 하자는 식으로 자꾸만 돌아간다면 그게 좋은 방식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어요. 이미 수면 위로 올라왔으니 기왕이면 같이 얘길 해 보자고 하는 게 어찌 보면 문학의 순기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죠. 우리가 청소년들은 그런 거 몰라야 한다고, 혹은 알고 있겠지만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지, 이제는 같이 얘기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생각을 조금씩 하지만 물론 저도 준비가 덜 되어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있기야 하지만요.

 

염승숙 : 그렇죠. 사실은 청소년 소설에 그런 소재를 끌어올 수도 있지만, 그런 소재가 약간은 남용된다는 뉘앙스를 지울 수가 없어서 드렸던 말씀이었어요. 지금 작가님 말씀 듣다 보니까 청소년 소설과 성인 소설의 경계를 자꾸 구분 짓는 게 구시대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2020년대의 소설에서는 청소년과 성인의 소설의 경계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해리포터』도 성인들이 함께 열광한 작품이고요. 여전히 문학과지성사에서도 '푸른 문학'이라고 해서 기성작가들이 청소년 문학을 계속 쓰고 있고, 또 창비를 비롯해서 계속 청소년 소설 공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작가들이 자꾸 그 장르를 넘나들 수밖에 없는 구조도 있는 거 같아요.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쓰지 못할 게 아니고 기성작가들도 지금 여러 버전으로 쓰고 있는데, 기성작가들이 쓰는 청소년 소설이라 말하는 것에 조금 어폐가 있을 만큼 이 청소년 소설의 범주가 약간 애매해진 느낌은 있네요. 네, 또 우리가 언급 안 한 작품들이 있을까요?

 

김수온 : 저는 사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읽은 작품이 있는데, 많은 분들이 읽었을 것 같고 저만 안 읽은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읽게 된 작품이 『단순한 진심』이에요. 가장 최근에 읽어서 기억에 남아요. 읽으면서 든 생각이, 주인공이 자기가 버려졌던 나라인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일어나는 일들이잖아요. 그런데 그 화자가 버려지기 이전에 자기를 돌봐 주고 보살펴 줬던 것들을 목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도 아닌데 주인공을 보살펴 준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어떤 따뜻함을 만날 수 있어서 되게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거 같아요. 수수부꾸미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슬펐거든요. 저는 그 음식을 거기서 처음 알았어요.

 

염승숙 : 아, 수수부꾸미라는 음식을 처음 알았어요? 이것이 세대 차이인가요? (웃음)

 

임국영 : 이름이 정확히 뭐라고요?

 

염승숙 : 수수부꾸미요. 시장에 가면 왜 이렇게 자색 고구마 같은 색깔로 떡 비슷하게 생긴 거 있잖아요.

 

은모든 : 아마 파는 데가 많지는 않을 거예요. 큰 전통시장 안에는 파는 곳이 있는데.

 

염승숙 : 세대 차이인가 봐요. 수수부꾸미를 모르다니.

 

이현석 : 저는 '수수지짐이'로 알고 있어서 수수부꾸미라는 단어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됐어요.

 

염승숙 : 이렇게 갈라지네요. 수수부꾸미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김수온 : 아, 그리고 소설에서 지난 시대의 인물과 그들이 겪은 역사적인 사건과 그것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사라지지 않고 시대를 건너오잖아요. 결국에는 과거와 현재가 내밀하게 연결이 되는데, 이런 작업들을 해나가는 소설이 참 많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염승숙 : 50년대와 60년대의 전후 소설에서 전쟁이 남긴 것들에 관한 담론이 굉장히 많이 있었죠. 강신재와 오정희의 소설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것들이고요. 이범선이나 손창섭, 박완서의 소설에서도 그런 전쟁 담론이 많이 조명되고 있고요. 소설을 통해 역사적인 아픔과 상처, 시대의 의미 같은 것들이 계속 조명되는 거죠. 지금 말하고 있는 『단순한 진심』에서도 기지촌, 이태원, 아현 등 서울 곳곳의 지명의 어원을 계속 찾아 가잖아요. 주인공이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한국어도 능숙하지 못해서 계속 그것들의 사전적인 의미와 지역적인 특성 같은 것들을 불러오는 방식으로 소설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외부자의 시선으로 서울과 대한민국의 시대사를 바라보는 작품이었어요.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사건도 얼핏 등장하잖아요. 작가라는 직업군이 시대의 기록자이자 증언자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방식의 글쓰기로 보여요. 또 우리가 여태 언급하지 못했지만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은 2010년대의 다가구주택에서 살아가는 게 된 부부를 주인공으로 해서 문제화될 수 있는 점들을 조명했던 작품이고, 사회적인 문제나 역사적인 문제를 담지한 소설뿐 아니라 정한아 작가의 『친밀한 이방인』처럼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내밀한 방식으로 직조해 낸 작품들도 꽤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 이야기해 보지 않은 작품이 뭐가 있을까요?

 

김수온 : 저는 방금 잠깐 아현동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고 싶은데, 여기 『단순한 진심』에서도 아현 얘기가 나오고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에도 아현 얘기가 나와요. 그런데 제가 공교롭게도 2010년대의 아현동에서 학교를 다녔거든요. 한참 재개발이 이루어져서 도로를 기점으로 한쪽은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고 한쪽은 건물이나 대문에 붉은 엑스자 표시가 늘어나는 그런 시기에 학교를 다녔어요. 『한국이 싫어서』에서 아현이라는 동네를 현실성 있게 보여주는데, 주로 아현 시장이나 아현에 있는 까만 술집들, 그 가게의 상호들이 그대로 등장하더라고요.

 

염승숙 : 아현동에는 그런 술집들이 웨딩 타운과 같이 이어져 있어서 더 기묘한 거 같아요.

 

김수온 : 네, 맞아요. 웨딩 타운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면 나오죠. 고가도로가 철거되면서 더 잘 보이게 되었어요. 아무튼, 그런 게 등장하면서 현실성을 얻고 출발하는 소설 중에 하나가 『한국이 싫어서』인 것 같은데, 당시에 정말 '헬조선'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던 것 같아요.

 

이현석 : 좀 신기했던 게, 『디디의 우산』은 단편소설 목록이랑 장편소설 목록에 다 들어가 있어요. 어떤 평론가는 이 작품을 단편에 넣고, 다른 평론가는 장편에 넣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한국문학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염승숙 : 저 질문하고 싶었던 게 있는데, 아까 제가 이 통계표를 받아보았던 간단한 인상을 말씀해 달라고 했을 때 역시 문단문학 안에서의 어떤 선별이었다는 말씀을 하셨었어요. 문단문학이라고 하는 것과 선별이라는 것의 뜻이 정확히 어떤 맥락의 말씀이셨는지 얘기를 듣고 싶었어요.

 

이현석 : 이를테면 지금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은 이영도, 듀나, 조앤 K. 롤링 등 장르문학의 수혜를 어릴 때부터 받고 자란 세대잖아요. 혹자는 문단문학(순문학)도 하나의 장르로 보자고 하는데, 저도 전적으로 여기에 동의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 목록도 '한국 문단문학 장편소설 장르'의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가 되겠죠.
문단문학 장르 안에서도 지난 10년간 선호된 주제의식은 '윤리의 문제'일 텐데요, 장편은 아무래도 쓰는 데 오랜 걸리니까 시차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렇다면 지난 10년을 반영하는 장편소설은 아무래도 2010년대 중반부터 나온 작품들일 것이고, 그 작품들에 강한 영향을 끼친 집단 기억들이 몇 가지 있죠. 보수 정권 10년,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사건, 촛불시위 등. 하지만 이런 집단 기억의 자장 밖에 있으면서도 분명 중요하고 좋은 서사들도 있는데 그런 작품은 문단의 호명을 좀처럼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염승숙 : 그렇죠.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보수 정권 10년이나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들이 문단과 작가들에 어떤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은 맞겠지만, 똑같은 소재를 서로 다른 작가가 다루더라도 조명받는 작가들의 행보에만 집중이 되다 보니 어느 정도 주목을 덜 받는 작품들이 생겨나게 마련이고요. 세월호에 관해 작품을 쓰면 무조건 조명을 받았던 것은 또 아니었다고 봐요. 물론 지나치게 주류 작가들의 행보에만 관심과 환호가 집중되었던 것도 생각을 해 봐야 할 문제였던 것 같고요. 특정 작가의 작품을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고, 관심과 조명이 지나치게 쏠리는 문제에 대해서요. 주목받는 작품들의 이면에는 주목받지 못한 좋은 작품들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작가들 사이에서도 내 작품을 누가 읽느냐고 하는 자조가 정말 많잖아요. 실제로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도 있지만,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도 작품이 읽히지 않아 자조를 보이는 작가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저도 작가이자 평론가로서 그런 점이 씁쓸하죠. 위로한들 위로가 되지 않는 작가들의 이면이 있어요.
여러분들도 이제 2, 3년 차의 신인작가분들이시긴 하지만, 청탁 지면을 얻는 것에 대한 불안과 장편 출간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다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도 이제 2019년은 마무리되고 2020년이 다가오고요. 곧 새해니까 여러분들의 계획 같은 것도 좀 듣고 싶습니다.

 

김수온 : 저는 그런 얘기를 조금 들었던 것 같아요. 단편소설집이 나오고 얼마 뒤에는 슬슬 장편을 써야 한다고요. 다른 선배 작가님들의 행보를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소설집을 한두 권 정도 발표하시면 슬슬 장편을 다 쓰시는가 보다 했어요. 아직은 먼 미래의 과제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마음속에 사실 쓰고 싶은 장편이 있어서 가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지만요. 2020년대에 들어서서는 우선 계획돼 있는 단편소설집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쓰고 있는 단편들을 착실하게 발표한다면 그쯤엔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 앞으로 시대가 바뀌어도 읽는 일과 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장편도 쓸 것이라고, 어쩌면 장편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그런 기대를 하면서 2020년을 맞으려고 합니다.

 

염승숙 : 네, 알겠습니다. 임국영 작가님은요?

 

 

임국영 : 저는 일단 단편집 한 권을 묶을 만큼의 분량을 만들어 두고 청탁을 기다리기도 하고 투고도 해 볼 계획인데요. 그러면서 장편도 준비해 보고요. 그리고 친구랑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웹소설을 도전해 보자는 얘기도 하고 있어요. 웹소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거 대단한 영역인데, 우리 한 번 도전해 보자, 활자노동으로 돈 한번 벌어 보자, 하면서 농담만은 아닌 그런 계획도 했었습니다.

 

김수온 : 궁금한 게, 실제로 문단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웹소설도 쓰시는 분이 있나요?

 

임국영 : 이름을 숨기고 작업하는 분들이 계시다고 들었어요. 저도 직접적으로 아는 분은 없고 건너서 얘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얘길 수도 있지만, 최근의 웹소설 경향을 조금씩 살펴보고 있었는데 되게 흥미로운 상황이더라고요. 이를테면 문창과 출신 웹소설 작가들도 꽤 많이 생겼고, 한때 판타지 소설을 쓰시던 분이 소설을 그만두고 학교나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원숙해져서 돌아온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웹소설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염승숙 : 웹소설 분야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거네요.

 

임국영 : 네, 지금도 계속 지켜보고 있고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염승숙 : 저 같은 경우에는 아직 웹소설에 대한 것을 잘 몰라서, 순수문학과 웹소설이 다르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그냥 단순히 시장과 지면이 다른 게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요.

 

임국영 : 독법과 작법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수온 :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임국영 : 진술도 물론 많은데, 문장이나 활자를 활용하는 방식이 좀 다른 거 같아요. 느낄 수 있는 재미도 다르고요.

 

염승숙 : 서사 진행의 밀도 같은 것도 다르겠군요. 매체가 다르다고 하니까요. 웹소설을 종이로 출력해서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점이 다를 수밖에 없겠네요.

 

임국영 :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연재되다가 붐이 일어나면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식이었는데, 요즘에는 아예 출판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속도감이 정말 빠르더라고요. 그냥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읽는 거니까요. 아무튼 제 근황이자 목표였습니다.

 

염승숙 : 알겠습니다. 이현석 작가님은 어떠세요.

 

이현석 : 저는 지금 마감이 임박한 원고 하나 잘 마무리 짓는 게 목표입니다.

 

염승숙 : 보통 지금은 단편을 쓰느라 바쁘시겠죠. 등단 연차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임국영 : 부럽네요. 부럽습니다.

 

이현석 : 저도 이게 끝이에요.

 

염승숙 : 장편 쓰실 계획은 없으세요? 아니면 내년 계획은요?

 

이현석 : 장편은 늘 쓰고 싶고, 개인적으로 저는 단편보다는 장편에 더 잘 맞는 성향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편으로 쓰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 조각들을 모으는 중이기도 하고요. 기회가 되면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잘 써보고 싶습니다. 내년 계획은, 지금은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데 내년 3월부터는 파트타임이 가능한 자리로 옮기기로 했거든요. 이제 시간이 많아졌으니 다른 일거리도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일동 웃음)

 

염승숙 : 갑자기 뜬금없이. (웃음)

 

임국영 : 시간이 많아졌으니 소설 쓸 시간이 많습니다. 많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뭐 그런 거네요.

 

이현석 : 정확한 번역입니다. (웃음)

 

김수온 : 저는 전업이니까 저에게도 관심을…….

 

염승숙 : 수온 씨는 지금 전업작가이신가요?

 

김수온 : 네, 저는 졸업하고 한 1년 정도 글을 쓰다가 등단해서 아직까지는 전업이에요. 마감이 없을 때면 이런저런 작은 일들을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내년부터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하지 않나 싶고요.

 

염승숙 : 그렇죠. 전업작가로 살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지면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웹소설도 생각하게 되는 것 같고요.

 

임국영 : 저는 지금 한 요식업체에서 8년째 서빙을 하고 있어요. 이 시국에 이자까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염승숙 : 일본식 선술집이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임국영 : 이웃나라식 선술집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웃한 나라 양식의 선술집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염승숙 : 8년이면 굉장히 오래되셨네요.

 

임국영 : 대학생 때부터 계속 일하고 있는 곳이에요. 늘 감사한 일터지만, 그런 꿈을 꾸게 되더라고요. 활자로써, 소설로써 온전히 생계를 이어가고 연명할 수 있는 건 어떤 삶일까.

 

염승숙 : 그건 모든 작가들의 바람이 아닐까 해요. 은모든 작가님은 어떠세요?

 

은모든 : 실은 최근에 경장편 단행본 초고를 마감했습니다. 내년에 이변이 없이 책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고요. 옴니버스 소설에 대한 구상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일동 웃음)

 

염승숙 : 지금 2010년대 장편을 결산하는 자리에서 다들 단편 청탁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 아이러니를 어떡할까요.

 

은모든 : 저는 재고가 많아요. 단편 재고가 많습니다.

 

임국영 : 저는 아울렛입니다. (일동 웃음)

 

김수온 : 어디선가 들은 얘긴데 청탁 전화가 올 때 간혹 작품이 있냐고 물어보신대요. 만약에 그렇게 물으면 무조건 있다고 대답하라고 하더라고요. 없어도 있다고 해야 한다고요.

 

은모든 : 맞아요. 원고가 펑크가 났을 때 연락이 올 가능성이 있다더라고요.

 

임국영 : 그러니까, 작품 재고가 넉넉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면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좋은 거겠죠.

 

염승숙 : 다시 말하지만 2010년대 한국문학 장편을 결산하는 자리에서 다들 단편에 목말라서 단편의 허기를 계속 고백하는 이런 자리가 되었네요. (일동 웃음)

 

김수온 : 청탁은 언제든 참 좋은 거 같아요.

 

염승숙 : 이렇게 신인 작가들이 지면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걸 이 좌담을 통해서 많이 알려야 할 것 같아요. 2, 3년 차 작가들의 이 지면에 목마름을요. (웃음) 2020년이 밝아올 때 그러면 조금 더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네요. 아무튼, 굉장히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고 마음 한편이 애잔하고 아픈데요. 등단한 지 몇 년이 지나든 작품 발표 지면에 대한 허기는 작가로서 너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장난스레 얘기했지만, 지면을 가져야 작가로서 계속 자기 목소리를 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당연한 것 같아요. 2020년이 되면 이제 또 다른 10년이 시작될 텐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작품을 꾸준히 써나가는 것으로 또 다른 10년이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신인작가분들을 모시고 2010년대의 한국문학 장편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봤는데요. 저는 사회자라는 마음보다는 그냥 같이 참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저도 조금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즐거웠던 자리였습니다.

 

김수온 : 염승숙 작가님의 새해 계획은 어떠신가요?

 

염승숙 : 아, 제 계획이요? (웃음) 저는 최근 2, 3년 간 작품을 계속 쓰고 출간을 해서 지금은 월평이나 기타 등등 당면해 있는 청탁 원고들을 써야 하고요. 그리고 박사 논문도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현석 : 계획이 아니라 숙제인데요.

 

염승숙 : 네, 숙제입니다. 아이도 돌봐야 하는 엄마라서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웃음) 그럼 오늘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하시겠어요?

 

이현석 : 내년부터는 좀 더 프로가 되고 싶은데…….

 

임국영 : 결혼 축하드립니다. ('프로'를 '결혼'으로 잘못 들으신 듯.)

 

김수온 : 결혼하시는 거예요? 축하드려요!

 

이현석 : 응? 저도 몰랐던 제 결혼을…… 어쨌든 감사합니다.

 

임국영 : 김수온 작가님도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수온 : 오늘이 저에게는 정말 뜻깊은 자리였고요. 저의 지난 10년을 소설과 함께 되돌아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거 같아요. 다음 10년도 다들 건강하게 무사히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임국영 : 오늘 들여다본 2010년대 소설들, 이미 본 작품들도 있었고 또 보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다음에 2020년대를 결산하는 자리가 있다면 그때는 여기 있는 모두의 작품들과 책들이 이야기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임국영 : 오늘 들여다본 2010년대 소설들, 이미 본 작품들도 있었고 또 보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다음에 2020년대를 결산하는 자리가 있다면 그때는 여기 있는 모두의 작품들과 책들이 이야기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염승숙 : 뭔가 엔딩 요정 같은 착한 발언이었던 것 같네요. (일동 웃음)

 

임국영 : 열심히 하겠습니다.

 

염승숙 : 알겠습니다. 오늘 신인 작가 네 분 모시고 2010년대의 한국 장편소설에 대해 소소히 이야기 나누었던 자리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문장 웹진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회 장편소설 부문에 함께 자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염승숙

사회 / 염승숙

2005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소설, 2017년 경향신문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맨』 『그리고 남겨진 것들』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 장편소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여기에 없도록 하자』 등이 있다.

 

김수온

참여자 / 김수온

1994년 전남 광주 출생,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은모든

참여자 / 은모든

2018년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애주가의 결심』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집으로 『꿈은, 미니멀리즘』, 『안락』,『마냥, 슬슬』이 있다.

 

이현석

참여자 / 이현석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참(站)」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

 

임국영

참여자 / 임국영

2017년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 문장 웹진 유튜브 채널 〈문장입니다영〉 구성, 기획 중

 

 

   《문장웹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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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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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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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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