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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좌담 : Ⅳ. 신진의 시선으로

  • 작성일 2020-07-01
  • 조회수 4,564

[기획특집/좌담]


본 연속 좌담은 고착화된 문단권력과 창작자의 불평등 문제, 관행화된 불공정 거래 문제에 대한 반발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따라, 현황 진단 및 개선 과제 도출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ㅇ 회차별 주제
   – (1차) 문예지 원고청탁 및 작품 발표 과정
   – (2차) 문학상과 유사 공모제도 참여 과정
   – (3차) 작품집 발간과 계약 등 출판 과정
   – (4차) 신진의 시선으로



 

 

2020년 예술위 현장소통소위원회·문장웹진 공동기획 연속좌담 :
Ⅳ. 신진의 시선으로

 

 

 

- 왜 하필 문학이었는가?
- 문예지 중심의 문학현장에서 웹플랫폼으로
- 동시대 작가 모임, 문학 커뮤니티의 필요성
- 국가·공공기관 차원의 문학 지원사업

 

사회 : 노태훈(문학평론가, 사회)
좌담 : 이유리(소설가), 서호준(던전 대표, 작가), 차도하(시인), 한의연(비릿 편집자, 작가)

 

 

 

□ 좌담 내용

 

왜 하필 문학이었는가?

 

노태훈 : 안녕하세요. 《문장 웹진》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문학평론가 노태훈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아마 다들 초면이실 듯하지만, 지금 한국 문단의 가장 첨예한 현장이라 할 수 있는 트위터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웃음) 오늘은 동세대 혹은 지금 한국 문학의 현장에서 이제 막 뭔가를 시작해보려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좌담은 연초에 이상문학상 사태로부터 촉발되어 기획되었는데요. 그 이후로 여러 일들이 있었죠? 윤이형 작가님이 절필 선언까지 하시고, 문학상 혹은 공모제도에 관한 문제들이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행태들에 대해 성토 같은 게 이어졌고요. 또 작가들이 책을 내고 작품을 싣는 청탁이나 계약 과정에서의 문제들도 많이 터져 나왔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전반적인 내용들에 대해 한번 같이 이야기를 나눠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앞서 열린 좌담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자료로 공유가 됐고 다들 살펴보셨기 때문에 그걸 제가 요약해서 다시 말씀드리는 건 불필요할 것 같고요. 우선은 오늘 참여하신 분들께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을 해볼 텐데요. 소개하시면서 오늘 어떤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오셨는지도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미리 간단한 질문지를 드리면서 ‘왜 하필 문학이었나요?’라고 여쭙기도 했는데요. 그 질문에 대해 운을 떼주시면 어떨까 싶네요.

 

한의연 :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자료를 보면서 ‘왜 하필 문학이었는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저는 ‘어쩌다 보니까’였던 것 같아요. 문학계에도 엘리트 코스라고 할 만한 게 있다고 보는데 저는 그와 가까운 코스를 밟아 본 적은 없는 것 같고요. 고등학교 때 시인지 가사인지 모를 그런 애매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었는데, 대학을 가야 해서 검색을 좀 해보니 유명한 작사가들이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더라고요. 그래서 전국에 있는 문예창작학과를 쫙 리스트업해서 수시를 열 몇 군데 지원했어요. 그렇게 이 길에 들어오게 된 케이스고요. 사실 지금도 제가 뭘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조금 긴 시를 쓰는지, 소설을 쓰는지, 그게 아니면 다른 어떤 글을 쓰는지. 그 때문인지 시나 소설 같은 장르 구분 자체에도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작가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장르가 주어진 채로 쓰게끔 되어 있잖아요. 너는 시를 써라, 너는 소설을 써라. 그러면 각 문학 갈래에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는 형식적 속성을 의심해 보기 전에 그냥 쓰게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작가의 글이 어느 한 갈래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현상 또한 어쩌면 구태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시와 소설, 각 장르를 기준으로 신인을 뽑는 여러 과정을 통해서도 그런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지 않나 싶고요. ‘어쩌다 보니까’ 문학을 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지금은 ‘어쩌다 보니까’ 《비릿》을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이 됐습니다.

 

노태훈 : 네, 《비릿》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말씀을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차도하 시인께서도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차도하 : 안녕하세요. 저는 차도하고요. 지금 너무 긴장이 되는데요. (웃음) 편하게 말을 하자면 ‘왜 하필 문학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문학 앞에는 왜 꼭 ’하필‘이 붙어야 하나?’ 이었어요. 왜냐하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러하듯이 문학 하는 사람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경우가 많거든요. 이게 창작에 있어서는 좀 게으른 답변일 수도 있겠지만, 저도 그냥 어쩌다 보니까 문학 하게 된 거고요. 남들 다 그렇듯이 어렸을 때 책을 좀 좋아했을 뿐, 그리고 글을 썼는데 칭찬을 좀 받았을 뿐, 그래서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을 뿐. 요약하면 문학이 재미있었는데 더 잘하고 싶었어요. 이거 말고는 문학을 왜 시작했는지에 대한 더 멋있는 대답을 못 찾겠어요.

 

노태훈 : 네, 역시나 자세한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이따가 나누기로 하고요. 서호준 작가님께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호준 : 저도 차도하 시인님 말씀처럼 문학 앞에 ‘어쩌자고’ 아니면 ‘하필’ 이런 말이 붙는 게, 자조적이면서도 은밀하게 도취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것 같아요. 물론 문학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거의 없고, 돈을 못 벌기 때문에 이걸 직업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것도 사실인데, 이런 부사 같은 것들을 안 붙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요. 글을 처음 쓰게 된 계기는 저마다 다를 텐데,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다들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재밌어서 쓰고, 칭찬 들으니까 쓰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쓰고, 이 셋 중에 하나일 거고요. 문학에 입문한 계기는 전부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중학생 때 삼국지 모의 전쟁이라는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을 했었어요. 그 카페 운영자의 닉네임이 ‘황제’였는데, 황제가 한시 대회를 열었어요. 한시 대회에서 장원을 하면 그 카페에서 쓰이는 금 1만 냥을 주겠다고 해서, 그때 처음 한시도 아닌 시조 같은 것들을 열 몇 개를 써서 냈었어요. 그때는 참고할 정보가 없으니까 교과서에 실린 시조 같은 것들을 참고해서 썼거든요. 근데 그게 꽤 재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맘때 제가 외당숙한테 시 쓰기가 재미있다는 말을 한 마디 했더니 외당숙이 기형도 시집을 선물해 줬어요. 그게 좀 더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노태훈 : 금 1만 냥을 따지는 못 하셨나요?

 

서호준 : 아, 땄어요. 그게 칭찬을 받는 일과 다를 바 없었던 것 같아요.

 

노태훈 :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을 하게 됐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이유리 작가님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유리 : 안녕하세요. 올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로 등단해서 처음 작가로 활동하게 된 이유리입니다. 저는 지금 직장을 다니고 있고요. 저처럼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분들을 위한 메일링 서비스를 한 달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작가라는 콘셉트로 ‘낮직밤작’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메일링 서비스에 대해서는 이따가 자세하게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글을 쓰는 이유는 대개 비슷한 것 같아요. 글쓰기밖에 잘하는 게 없고 (웃음) 유년 시절에 친구가 책밖에 없던 시절이 한 시절쯤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책 읽고 글 쓰고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건 없네요.

 

노태훈 : 다들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면 특별한 계기나 대단한 포부가 있어서 시작한 게 아니고, 그냥 해보니까 재밌어서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이런 생각들이신 것 같아요. 저도 평론을 쓰고 있지만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나 생각이 되고요. 이어서 여쭤 보고 싶은 것은, 재밌으니까 해보자는 결심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알아보셨을 텐데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학 작가로 활동하려면 어떠한 제도와 시스템들이 있는지를 아마 차근차근 알아 가는 과정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쨌든 지금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셨으니까 활동을 하시기 전에 직·간접적으로 느꼈던 한국 문학계는 어땠는지, 그리고 데뷔를 하신 뒤에 여러 활동을 하시면서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혹은 어떤 제도들이 눈에 띄었는지 자유롭게 한번 말씀을 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차도하 : 저부터 얘기를 할까요? 저는 우선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까, 학교를 열심히 다니면서 시 수업을 들었는데요. 그 시 수업에서 선생님이 그냥 쓰기만 하면 안 되고 쓰고 나서 어디든지 투고를 해야 한다, 자기 작품이 속된 말로 구리다고 생각해도 작품을 모아서 투고를 해봐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투고를 염두에 두고 쓰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는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열심히 쓰고 잘 쓰고 투고하고 인정받는 것, 딱 거기까지만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저는 문단의 부조리함에 대해 게으르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문단의 인식이 안 좋더라도 우선은 거기에 진입하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수업 때 종종 문단의 부조리함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선생님들이 항상 한 80퍼센트 정도 체념한 표정으로 말씀을 하셨어요. 저도 그냥 ‘그래, 뭐 어떡하겠어. 나는 어쨌든 쓸 건데. 나는 지금 대학생이고 대학 졸업하기 전에 등단하면 참 좋을 텐데.’ 이런 생각으로 그냥 열심히 썼어요. 그런데 정말 그 문단이란 곳에 제가 진입하고 나니까 이건 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등단했을 때 선생님들한테 당선됐다고 연락을 돌리니까 혹시 힘든 일이 있거나 조언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 말씀이 너무 고마웠는데, 제가 막상 문학세계사의 신춘문예 당선시집 청탁이나, 00출판사의 원고료가 기재되지 않은 청탁서를 받아 보니 ‘이걸 내가 선생님한테 개인적으로 조언을 구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조언을 구했다면 선생님이 ‘그래, 너 잘 생각했다. 그냥 거절해.’ 이러시거나 아니면 ‘아니야. 그래도 승낙하는 게 나아.’ 이런 답변을 해주셨을까요? 어쨌든 곤란해 하실 거 같아서 여쭤 보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이런 것까지 다 상상하고 나니까 마지막에는 ‘아, 내가 왜 이런 상상을 하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데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지 억울하기도 했고요. 저는 너무 멘탈이 약해서 한 2년 즈음 뒤에도 이 상황이 반복된다면 글을 못 쓸 것 같은 거예요. 저는 글을 계속 쓰고 싶은데. 그래서 그냥 미래의 내가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게 지금 미리 선수를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어요. 누군가 경고하는 것처럼 문단에서 찍히거나 하는 그런 게 실제로 있다면 그냥 미리 찍히고 일찍 다른 경로를 찾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등단 전과 등단 후 저의 변화인 것 같아요.

 

노태훈 : 데뷔하시기 전에는 시를 잘 써야 하겠다, 열심히 써야 하겠다, 그런 마음만 가지고 있는 편이었고, 문단의 구조가 어떻고 불합리가 어떻고 이런 문제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으셨는데, 문단에 진입하시자마자 그런 문제들을 바로 맞닥뜨리신 거죠. 등단하시고 나서 일련의 어떤 결심들을 하시면서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저희가 이후에도 많은 얘기들을 하겠지만, 들어 보니까 역시나 쉽지 않은 결정들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한의연 : 저도 이어서 말씀 드리자면, 저한테 문단은 ‘나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2008년에 대학 입학해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투고를 해본 경험이 없어요. 이걸 누가 뽑아 주겠냐는 생각에 그냥 애초에 도전도 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처음으로 투고해 본 게 2015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시가 아니라 갑자기 소설로. 저는 비수도권 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는데, 그래서인지 저와 문단 사이에 몇 겹의 레이어가 더 놓여 있는 듯한 막막한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서울 및 수도권 대학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작가들과 시인들이 교수진으로 모여 있고, 매년 그들 학교에서는 신인들이 배출되잖아요. 제가 졸업한 학교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런데 제가 만난 선배들 중에는 정말 멋있는 선배들도 있었거든요. 물론 시인이나 작가의 환상이 덧씌워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멋있고 존경스러운, 그런 사람들도 안 되는데 내가 감히 등단을 해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했죠. 여하간 작년부터 《비릿》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제가 느끼는 문단은 그런 것 같아요. 일종의 계모임 같은 것. 저는 엄밀히 내부인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지난번에 송승언 시인이 쓴 트윗 이야기를 여기서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되게 인상적이었거든요. “문학판은 현재 책 쓰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과 나중에 책 쓰고 만들고 팔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팔아 주는 책이 절반 이상은 되는 듯… 망한 판이다 진짜.” 저 역시 지난 일 년간 《비릿》 에디터들과 잡지를 운영해 오면서 비슷한 감각을 느껴 온 터라 ‘아, 이 일로 돈 벌 생각은 하면 안 되겠구나’ 이야기 나누곤 하는데, 마음 한편에는 낙관을 남겨 두고 싶어요. 이왕 계모임일 수밖에 없는 거라면 모임을 더 키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아직 아무도 찾지 못했을 뿐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식의 낙관을 말이죠.

 

노태훈 : 말씀하신 계모임이라는 표현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언급하신 내용도 그렇고 우리가 고민하는 여러 문제들이 사실은 이 문학판이 작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판에서 아옹다옹 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절망도 하게 되고요. 그리고 판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들인데 판이 작아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그런 고민도 생겨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도록 하고, 다른 두 분의 말씀도 들어 보겠습니다.

 

서호준 : 네, 문단이 밖에서 봤을 때 굉장히 폐쇄적으로 보이는 것도 맞고요. 폐쇄적으로 보인다기보다는 안 보여요.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요. 저는 예전부터 문예지를 구독하고 도서관에 가서 읽고 그랬는데, 문예지를 읽으면 담론들은 알 수 있어도 실제로 문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 정보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고요. 근데 저는 문단뿐 아니라 문단에 진입하려는 지망생 집단 자체도 굉장히 폐쇄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문학 관련 전공을 하지 않았거든요. 시는 계속 썼지만 시를 써도 보여줄 데도 없고, 주변에 쓰는 사람도 없고, 정보를 찾아도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문예창작과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고 되게 부러워하면서 학교에 다녔어요. 다니고 있는 학교에 그래도 뭔가 문학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교내 문학 동아리를 찾아갔는데, 동아리가 망해 있었어요. 동아리 방만 있고 아무도 없었어요. (웃음) 그래서 교내에서 사람들을 모집해서 동아리를 새로 꾸렸는데 문제는 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거였어요. 지도하거나 가르쳐줄 사람도 없고 합평을 한다고 해도 서로 그냥 아무 말이나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있다가 20대 후반쯤에 사설 강의 같은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문지문화원’ 같은 사설 아카데미가 몇몇 있는데, 거기에 가서 처음으로 선생님이 있는 합평 모임을 했거든요. 되게 충격적이더라고요. 이런 게 있다는 걸 지금까지 알 수가 없었던 거예요. 저는 인터넷 검색도 많이 했는데 그런 정보 자체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점에서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자체도 굉장히 폐쇄적이라고 느꼈고요. 데뷔 혹은 활동 전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저는 지금 제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겠어요. 신인 공모전이나 시집 원고 투고 같은 것도 많이 해왔고, 지면에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는 그냥 학교 동아리에서 회지를 만들거나 시 쓰는 동인에 들어가 동인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겪으며 보니 약간 정신 승리 같았어요. 왜냐하면 그걸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책을 유통시킬 유통망이나 홍보를 할 방법도 딱히 없었거든요. 학교 커뮤니티에나 홍보하고 학교 내에서 팔고 그랬는데, 그게 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떤 피드백이나 리뷰나 비평 이런 것들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런 거에 갈증을 가장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 문학, 문단에 대해서는 투고를 하면서도 항상, ‘싫은데 끼고 싶다.’ 이런 생각을 줄곧 해왔던 것 같아요.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까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제가 처음으로 동인지 말고 작품을 발표했던 곳이 《더 멀리》라는 독립 문예지였는데, 투고작을 실어 줘서 기뻤지만 그게 끝이었어요. 그 후에도 다른 독립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는데, 독립 잡지가 대부분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드는 것이다 보니까 독자 수가 명확히 나오잖아요. 2백 명 혹은 백 명 이런 식으로 후원자 수가 나오면 그 잡지의 독자도 백 명, 2백 명으로 끝인 거고요. 작년에 《문학과사회》에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것도 청탁을 받아서 발표한 게 아니라 제가 시집 원고를 투고했다가 시집 계약은 힘들고 대신에 문예지에 시를 발표해 보겠냐는 식으로 얘기가 왔거든요.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내가 시인인가?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시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남들, 그러니까 문단에서는 너 시인 아냐! 말하는 느낌. 느낌이라기보다는 실제로 겪은 일들도 있고요. 도저한 위계랄까. 그래서 저는 유사 시인이라고 트위터 프로필에도 적었어요. 말이 좀 길어지는데 더 얘기하자면, 가령 시집 표지를 보면 그 사람의 약력이 적혀 있잖아요. 이름, 생년, 출생지, 학력, 등단 지면, 수상 내역, 출간 내역, 이 정도가 보편적인 약력 같은데 그중에서 생년, 출생지, 학력은 자주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어떤 시집에서도 등단 지면이 빠지는 것은 본 적이 없어요. 사회에서는 학벌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제가 느끼기에 문단에 있어서는 등단 지면이 곧 학벌이 아닐까 생각해요. 실제 학력보다도 등단 지면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태훈 : 말씀하신 내용을 들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싫지만 끼고 싶다.’라는 그 느낌이었어요. 저는 이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서호준 시인께서는 정보가 없었다고 하셨지만, 아까 차도하 시인께서는 문단이 어떤 곳인지 알고는 있어도 그냥 시를 열심히 써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하셨잖아요. 어쨌든 정보를 찾아보고 알게 되면 문단이란 곳에 대해 이상하고 싫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여기에 끼지 않으면 누구도 내 작품을 읽어 주지 않을 것 같은 거죠. 또 여기에 끼어서 열심히 재밌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도 드니까요. ‘싫지만 어쨌든 끼어야지.’ 이런 마음이 생긴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 여러 생각을 또 하게 하네요. 소위 문창과 중심의 어떤 문학판, 그리고 아까 한의연 시인님께서 말씀하신 지방의 문제, 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비 문창과의 경계, 이렇게 여러 가지 계열을 생각해 보면 고민할 지점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차근차근 얘기를 해보고요, 이유리 작가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이유리 : 네, 한국 문학에 대한 생각을 데뷔 전후로 나누는 게 사실 저한테는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요. 일단 얘기를 해보자면, 어차피 한국 문단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병폐들이 있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작가 혹은 작가 준비생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일반 독자들은 크게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이슈화된 사건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지, 문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자세하게 궁금해 하지 않으니까요. 근데 이게 또 아이러니한 게,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어차피 이 판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삼성이라는 기업에 비리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취업 준비생이라면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요. 그렇듯이 습작생 입장에서 문단의 병폐를 얘기하는 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말씀 나왔던 것처럼 이 집단이 상당히 폐쇄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엄청나게 관심 깊게 쳐다보지 않는 이상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기가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이슈에 대한 접근성 자체나 정보를 얻는 방식 등이 상당히 폐쇄적이라는 말씀에는 적극 공감해요.

 

 

문예지 중심의 문학현장에서 웹플랫폼으로

 

 

노태훈 : 일단은 전반적으로 문학계, 문단이라는 곳이 상당히 폐쇄적이고 정보를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건 정말 큰 이슈가 될 만한 일들이 가시화되는 것이지, 사실 은연중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말씀하신 대로 알기 어려운 부분도 많고요. 내가 어떤 절차를 거쳐 문단에 진입했다 하더라도요. 이제 자연스럽게 두 번째 주제, 문예지 문제로 넘어갈까요. 어쨌든 활동을 시작하려면 지면에 작품을 발표하는 게 당연히 그 시작일 테고, 그러면 지면을 얻어야 하거나 지면을 만들어야 할 텐데요. 일반적으로 데뷔를 하게 되면 문예지를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투고 혹은 청탁으로 이뤄지게 되죠. 그리고 등단을 하신 분들께서는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문단의 직접적인 연락과 접촉이 보통 청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랬을 때 이 시스템이, 그러니까 작품을 청탁받고 거기에 따르는 고료를 안내받고 마감일을 지켜서 작품을 발표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시 지면과 소설 지면에서 꽤 차이를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아무래도 소설은 기본적인 분량이 있어서 그런지 청탁 시기도 그렇고, 고료에 있어서도 어떤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시의 경우 지면이 워낙 각양각색이고 활동하는 시인 분들이 많은 데 비해 실리는 작품의 숫자는 한두 편이 대부분이어서 여러 문제가 불거지는 듯합니다. 이 문예지 청탁 과정과 관련해서 자신의 경험이라든가 여러 생각을 자유롭게 좀 더 나눠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서호준 : 저는 사실 원고료 논란 보면서 ‘나는 무료로 실어도 상관없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건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가령 시 두 편을 달라고 청탁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미 발표를 많이 했거나 과작을 하기 때문에 당장 곳간에 시가 없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시를 새로 써야 하고 또 시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면 굉장히 부담이 되는데, 고료도 제대로 안 주거나 얼마인지도 모르면 당연히 화가 나겠죠. 그런데 시의 곳간이 넘치고 다작하는 편이면 고료 안 줘도 상관없거든요. 꼭 다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면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비슷할 것 같고. 어쨌든 그런 생각이 먼저 들어서 깜짝 놀랐어요. 이게 완전히 나만 딴생각을 하는 것인가, 싶었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게 일종의 부조리인데 각자에게 와 닿는 부조리의 종류가 되게 다양하고 서로 상충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가령 《던전》 같은 경우 구독료 수익을 정산하여 세금과 서버비 등을 제외한 전액을 작가 전체에게 나누는 형태인데, 그렇게 지급되는 고료가 통상적인 고료에 비해 적거든요. 그런데 얼마를 받느냐랑 관계없이 발표를 한다는 것 자체에 만족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건 좀 씁쓸한 얘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쓰는 사람에 따라서 고료를 제때 주고 얼마를 주는지에 집중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노태훈 : 차도하 시인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웃음)

 

차도하 : 아, 티가 나는군요. (웃음) 근데 청탁하는 사람이 ‘너는 곳간에 시가 넘치는 것 같으니 무료로 실어도 괜찮겠지?’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편수와 장르를 고려해서 고료를 매기고 청탁하는 것이고, 누구는 시가 많으니까 싸게, 누구는 시가 적으니까 비싸게 값을 매길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가격 책정의 기준이 될 수 없잖아요. 원고료 이야기를 더 하자면,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청탁서에 적힌 금액을 수용하잖아요. 그런데 금액을 수용하는 건 그 금액에 대한 정보값이 있을 때 ‘수용’이라고 부를 수 있잖아요. 금액이 형성된 기준이랄지, 매겨진 과정이랄지. 그런데 지금은 작가가 금액을 보고 알아서 상상해야 해요. 얘는 어째서 5만 원도 3만 원도 아니고 2만 5천 원일까? 하고서. 아예 금액에 대한 정보가 적히지 않은 경우도 있고요. 작가의 상상력을 이런 데까지 발휘해야 하나요?

 

서호준 : 말씀하신 대로 금액을 안 알리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시 원고를 달라고 하고 마감 기한도 알려주는데, 얼마를 받는지 안 알려주는 게 문제겠죠. 저는 시 한 편에 천 원을 주든 만 원을 주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라서요. 만약에 원고료로 5천 원을 준다고 했을 때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거절하면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이건 또 다른 문제인데, 청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거절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거절했다가 발표가 끊기면 어떡하느냐는 게 본질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어느 지면에서 청탁이 오든 한 번 거절하면 그런 얘기가 떠도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몇 번 거절했더니 그 후로는 청탁이 뚝 끊겨서 고생했다는 그런 얘기요. 그런 걱정을 거의 모든 작가한테, 특히 아직 책을 내지 못한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노조 얘기도 있었지만, 스탠스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집단적으로 이런 걱정에 연연하지 않도록,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아무 손해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하게 되면 그 문제 자체가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차도하 : 3회차 좌담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잖아요. 전화로 청탁을 얘기할 때는 금액을 안 알려드리는 게 에티켓이라고 생각해서 안 알려드리는 거였다고요. 근데 저는 그게 왜 에티켓인지 납득이 잘 안 돼요. 그냥 말해도 되지 않나 싶고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거절했을 때 나오는 반응이 있어요. 제가 원고료가 n만 원 미만인 경우 청탁을 거절하려고 한다고 메일을 드린 적이 있어요. 웹진 《비유》에도 발표했던 내용인데, ‘다른 신문사 수상작은 다 실리는데 한국일보만 없어서 아쉽지만,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길 바란다.’ 이런 식으로 답장이 온 거예요. 그거는 사실 그냥 격려가 아니잖아요.

 

노태훈 : 그러니까, ‘너만 빠지는데, 그래 얼마나 잘 되는지 보자.’라는 거네요. (일동 웃음)

 

차도하 : 네, (웃음) 얼마나 잘 되는지 보자는 것도 있고요. 저 말고도 이런 식으로 청탁을 거절하면 이런 답변이 온대요. ‘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일동 웃음) 근데 그거는 진짜 그냥 응원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선은 거절을 잘할 수 있는 문화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까 《던전》 얘기하시면서 《던전》에서는 수익이 거의 안 나는데도 불구하고 글을 실을 곳이 있다는 것에 기뻐한다고 하셨는데, 《던전》은 수익 구조를 엄청 투명하게 그대로 적어 놨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예 그 퍼센티지를 적어 놓으시지 않았나요? 저는 그 페이지 보고 ‘아, 다른 데도 좀 이렇게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원고료 책정 구조가 공개되면 적은 금액이어도 수용하고 실을 것 같아요.(웃음)

 

노태훈 : 그런데 지난 좌담에서도 정용준 작가님이 말씀하셨던가요? 말씀하신 대로 원고료를 보는 순간 왜 이 정도 금액이냐는 생각을 작품을 쓸 사람이 상상하게 만드는 게 문제니까, 그냥 그 원고료를 전부 공개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요. 예를 들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 같은 데서 어느 문예지는 고료가 얼마이고 다른 문예지는 고료가 얼마인지 이런 정보를 쭉 나열해 주면 원고료를 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보면서 판단하기 쉽지 않겠느냐는 그런 말씀도 하셨는데요. 근데 그게 또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잡지를 만드는 데 돈이 얼마가 들어가고 실제 판매량은 대충 어느 정도이고, 그래서 계산해 보면 이 정도 금액의 고료밖에 지급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 있죠. 경영 구조하고도 관련이 있는 거니까요. 고료는 당연히 밝혀야 하는데 이게 어떤 방식이어야 할지, 말씀하신 대로 《던전》처럼 모두가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구조가 최선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이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두 분도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유리 : 제가 말해도 될까요? 저는 주변에 글 쓰는 선배들이 몇 분 계시지만, 등단하고 나서야 고료에 대해서 알았어요. 사실 고료라는 게 개인의 수입이다 보니까 실제로 그걸 받는 작가들이 액수를 밝히기가 애매한 부분이기도 하죠. 특히 얼마를 받는 게 부당하다고 할 만큼의 값인지 모르잖아요. 단편소설 같은 경우는 80매에서 100매 정도가 일반적인 청탁 원고 분량이고, 제가 지금까지 받아 본 청탁 중에 가장 저렴한 원고료는 70만 원이었고, 가장 많은 건 150만 원이었어요. 이렇게 액수가 거의 두 배 차이가 나는데, 그렇다고 제가 70만 원짜리 청탁에는 잘 못 쓴 작품을 보내고 고료가 많은 청탁에는 잘 쓴 작품을 보내고 그러진 않거든요? 어쨌든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한 작품들을 보내는데 제가 받는 액수는 거의 두 배 차이가 나니까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기준이 뭔지도 궁금했고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잡지사가 고료를 밝힌다는 건 제 생각에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부작용도 있을 듯해요. 왜냐하면 독자들까지 이 글이 얼마짜리 글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이게 백만 원짜리 글이야?’처럼, 금전적으로 글의 가치를 평가할 수도 있게 될 것 같거든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 어떤 글로 얼마를 벌었는지는 사실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인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그 액수를 밝히는 것보다는, 제가 항상 친구들끼리 토론하는 것 중에 하나인데, 제 생각에는 고료의 최저임금을 정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최저임금을 정해서 그 기준이 매당 만 원이라고 하면 매당 만 원 이상으로만 청탁하고, 그 이하로 부르면 불공정 계약인 것으로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렇게 힘들면 문예지를 안 만들면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있는 게, 최저임금을 못 주는 기업은 기업을 운영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기업을 운영할 깜냥이 없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을 못 주는 문예지는 문예지를 운영할 깜냥이 안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저임금 비슷하게 매당 얼마 밑으로는 안 되는 것으로 강제성이 있는 기준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게 제가 항상 친구들하고 하는 얘기예요.

 

차도하 : 만약에 최저임금이 만들어지면 소설은 매당 만 원인가요?

 

이유리 :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매당 만 원이 되겠죠?

 

서호준 : 매당 만 원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노태훈 :노태훈 : 저는 평론을 쓰는데, 평론은 원고료가 거의 매당 만 원이거든요. 200자 원고지 한 장에 만 원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문예위에서 예전에 평균 원고료 조사한 자료에서는 그것보다 조금 낮더라고요. 7천, 8천 원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시는 분량에 있어 조금 얘기하기가 어려워서 논외이고요. 산문 장르의 경우에는 매당 만 원이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정도의 합의는 암묵적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유리 : 실제 최저임금 자체도 나라에서 논란과 논의가 많고 매년 오르고 내리고 하는 그런 부분이 있듯이, 만약에 원고료의 최저 기준을 만든다면 그것도 아마 엄청나게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제 생각에도 매당 만 원이 현재 적정가에 맞는 것 같아요. (웃음)

 

노태훈 : 근데 만약에 말씀하신 대로 아주 과격하게 매당 만 원을 못 지키는 문예지는 못 만들게 해야 한다는 정도까지 얘기가 된다면 이제 대부분의 문예지는 없어지는 거잖아요? 저는 대형 출판사도 조금은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최저 원고료를 지키지 못하는 문예지는 발행할 수 없게 하면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굉장히 많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겠죠. 그게 작품을 발표할 기회와 공간이 충분히 있는 작가들이야 뭐 걱정이 없겠지만, 작품을 발표할 공간을 찾지 못하거나 기회가 거의 오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는 많은 창작자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런 생각이 좀 들긴 들어요. 그 문제는 저희가 뒤에 또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한의연 작가님도 말씀해 주시겠어요?

 

한의연 : 저는 아무래도 청탁을 받는 입장보다는 청탁을 드리는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요. 앞선 좌담에서도 원고료가 오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잖아요. 데뷔한 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원고료는 여전히 똑같다고요. 그런데 작가나 시인이 해마다 백여 명씩 데뷔하잖아요. 뭔가 공장식으로 신인들의 데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에 비례해서 지면이 늘어나는 건 아니니까요. 지면이 한정적이라는 그 환경이 자연스럽게 원고료를 올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정당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 추가로 고민해 볼 만한 문제는 누가 그 문예지를 사서 봐주느냐는 거죠.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면 원고료를 단순히 올리지 않는 게 아니라 올릴 수 없는 여건도 있는 것 같아요. 지역 문예지 얘기를 들어 보면, 제가 그들을 옹호하거나 비호할 생각은 없는데, 어떤 곳은 산문 기준 매당 삼천 원 정도로 고료를 책정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원고지 3매에 만 원, 이런 식으로요. 저도 그 문예지로부터 청탁을 받아서 소설을 한 편 보낸 적이 있는데, 제 기억으로는 60매에 20만 원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이후 해당 문예지 편집인에게 이야기를 들어 봤는데 정말 열악하게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그 지역이 제2의 도시라고 해서 자본이 비교적 모여 있는 편이고, 문예지 역시 지역 안에서는 나름 명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밖에 줄 수 없는 형편인 거죠. 《비릿》의 경우에는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최대치의 원고료를, 아니 그보다는 살짝 오버해서 드리고 있는데요. 지역의 장벽을 허물려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중앙문단 고료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실제로 2호를 만들 때 시인 한 분, 소설가 한 분께서 원고료가 예상보다 커서 놀랐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우리 원고료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가 보다’ 했죠. 그런데 몇 달 뒤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평균 원고료 조사 결과 발표한 걸 보는데 시 평균 원고료가 7만 원인 거예요. 저희 시 원고료가 그보다 살짝 낮아서, 그제야 ‘아, 제대로 드리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했어요. 한편으론 청탁 받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점도 문제인 것 같은데. 워낙 다양한 층위의 현실이 얽히고설켜 있다 보니까 원고료라는 게 특히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기관에서 원고료를 조사해서 투명하게 공개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건 합의만 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원고료는 원고료일 뿐 각 지면에 실린 작품의 질을 서열화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니라는 공식적인 규정으로서의 합의가 가능하다면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수많은 장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원고료가 작품들을 서열화하는 기준으로 작용할까 봐, 나아가 문예지와 출판사의 서열화만 가속화할까 봐 우려스럽기도 해요.

 

서호준 : 문예지 중에는 그냥 문예지만 운영하는 곳도 있고 단행본과 문예지가 연결되는 출판사도 있잖아요. 모든 문예지가 다 손해를 보면서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출판사의 경우에는 어떤 작가를 발굴하고 밀어 주고 해서 단행본이 나오면 사실 손해가 아닌 거라고 들었어요. 단행본 시장에서 소설의 경우에는 그래도 잘 팔리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 그래서 적자가 나는 그런 구조는 아닌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문예지도 적자고 단행본도 적자면 이미 망했겠죠. 그러니까 문예지 사업이 사실은 단행본 출판으로 그 손해를 메우고 있는데, 그런 연결고리가 잘 안 드러나는 것 같아요. 문예지들의 종류가 되게 많지만 단행본을 내는 출판사가 아니라면 진짜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후원금이나 정부 지원금, 가령 문예지 지원 사업의 지원금으로 겨우 적은 고료라도 줄 수 있는 거고요. 문예지 지원 사업에 선정이 안 돼서 잡지 성격을 바꾼 데도 많잖아요. 가령 《현대시학》 같은 경우에는, 제가 혼자 알아본 거라서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예지 지원 사업에서 한 해 탈락한 다음에 격월간으로 바꿨더라고요. 《현대시학》은 사실 꽤 오래된 잡지고 전통이 있는 잡지인데도 불구하고 억 단위가 아니라 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정도 액수인 지원금을 못 받아서 잡지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라면 다른 문예지들도 마찬가지로 힘들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좀 다른 얘기지만 문예지 지원 사업에 대해서도 이 방향이 옳은가? 싶은 게 시 원고료로 7만 원을, 소설 원고료로 매당 8천 원에서 9천 원을 기준으로 잡아서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 이 기준 이상으로 고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한 것으로 확인했거든요. 근데 제가 느끼기에는 자기 자식한테 ‘너는 학원에 다니니까 반에서 20등 안에는 꼭 들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요. 잡지를 만드는 데 잡지의 구성이라든지 발행주기라든지 이런 것들이 다 제각각이잖아요. 그렇게 제한을 두는 거는 말하자면 천만 원에서 2천만 원의 지원금을 주고 1년 동안 알아서 원고료로 다 쓰라는 식인데, 그 고료가 시 7만 원으로 고정되어 있으니까 게재할 수 있는 편수도 제약이 되고, 문예지를 기획하는 측면에서도 제약이 굉장히 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액수로 제어를 하는 게 과연 옳은가? 평균이라는 게 그런 근거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까 소설 표준 원고료가 매당 만 원이라는 것도, 저는 매당 만 원이 통상적인 기준인 이유가 숫자가 깔끔해서인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문예지를 내는 출판사 입장에서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매당 8천 7백 원을 줘야지 본전치기가 된다고 하면 그 숫자는 깔끔하지가 않아서 기각된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1만 1천 2백 원을 주었을 때 본전이 된다고 해도 만 원이라는 금액이 깔끔하니까 만 원을 주겠죠.

 

노태훈 : 그런 얘기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지금 발행하고 있는 문예지 중에서 문예지 사업만으로 자본의 순환이 되는 구조를 가진 곳은 제가 알기로는 단 한 곳도 없을 거예요. 지난번에 서효인 시인께서 민음사의 《릿터》조차도 적자를 계속 보고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릿터》가 그래도 판매량이 꽤 되는 잡지 중에 하나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 외에 다른 어떤 문예지라고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판매를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다 적자일 텐데, 그래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국가 공공기관에서 지원 사업을 해주고 있는 거죠. 문예지 지원 사업으로 1년에 많게는 4천만 원, 5천만 원씩 주면서 지원해 주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문예지라는 제도, 어떤 문학 창작의 현장을 우리가 고수해야 하나? 그러니까 문예지를 국가에서 지원해 줘야 운영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문예지가 중심이 돼서 돌아가는 문학 현장을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비릿》 같은 독립 잡지도 있는 거고, 《던전》 같은 새로운 웹플랫폼도 운영하고 계시는 거고, 차도하 시인님과 이유리 소설가님 두 분께서는 메일링 서비스로 다른 어떤 통로를 개척하고 계신 것 같아요. 앞선 좌담에서 그런 얘기가 진짜 많이 나왔거든요. 문예지의 시대는 끝났다, 혹은 끝이 날 거다, 이거는 뭐 확신한다, 그런 얘기들요. 저는 사실은 좀 생각이 다르긴 한데요. 아무튼 문학이 종이 잡지로 주기를 갖고 찍혀 나오는 구조는 없어질 거다, 다른 방식을 생각해 봐야 한다, 등의 의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서호준 : 문예지 적자가 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안 읽어서잖아요. 저는 문예지의 존재 가치에 동의하는데, 그게 동시대의 한국문학 얘기인 것 같거든요. 굳이 단행본을 안 읽고 문예지를 읽는 이유는 현재, 오늘, 바로, 지금 발표된 작품들이나 문학 담론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서인데, 그 욕망 자체가 되게 희귀한 욕망이죠. 가령 동시대 문학이 교양이었던 시절도 있었고, 문학이 선언이었던 시절도 있었고. 지금은 문학이 킬링타임인 시절 같아요. 웹소설 같은 경우에는 그런 점이 작용해서 많이 읽힌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동시대 한국문학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누구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이것과 더불어서, 동시대 한국문학이 안 궁금한 이유는 그걸 나와 함께 궁금해할 만한 사람들, 그러니까 문학 커뮤니티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거든요. 한국문학 독자가 아무리 적다고 해도 수만 명은 되잖아요. 전체 인구에 비례하면 한 줌인 건 맞지만, 만약 그 수가 5만 명이라고 하면 그 자체만으로 적은 숫자는 분명히 아닌데. 어떤 종류의 커뮤니티를 꾸리기에는 충분한 숫자인데 모일 공간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아까 비전공자로 오랫동안 창작을 하면서 찾아낸 온라인 공간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검색을 하다가 ‘디씨인사이드 문학 갤러리’를 발견했는데, 꽤 활성화되어 있었어요. 또, 제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 구절이 기억이 안 나서 찾아본 적이 있는데, 클릭하고 보니 ‘일간베스트’였어요. 당황스러워서 게시판을 살펴보니 꽤 진지하게 시 얘기를 하고 자작시도 올리고 있더라고요. 이처럼 ‘디씨’나 ‘일베’ 같은, 그야말로 음성적인 커뮤니티에서만 문학 얘기가 오가고 있는데, 이 대목에서 문학 종사자들이 다 함께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양지’가 없는 거죠. 문학 얘기할 곳을 찾다가 겨우 흘러든 곳이 방금 말한 사이트들일 테니까요. 예전에는 출판사마다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판이 딸려 있었는데, 운영에 이런저런 무리가 있었는지 다 없앤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기능을 하는 게시판이 남아 있지 않고, 별도의 커뮤니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커뮤니티라는 건 보통 온라인에서는 단일한 게시판을 뜻하는 게 아니잖아요. 가령 축구를 예로 들면, 축구 관련 카페나 축구 관련 웹사이트에서 꼭 축구 얘기가 아니어도 다들 아무 얘기나 막 하고 축구선수 얘기도 하고 조기축구회 결성도 하고 그러는데, 문학은 그런 온라인 공간 자체가 없는 게 치명적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동시대 한국문학이 궁금하다는 생각조차 가질 수가 없는 거죠.

 

한의연 : 말씀 들으면서 현장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는데요. 선생님들이 문예지 읽으라고 권하시면서 덧붙이는 말씀이 보통 ‘지금 문학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너희들이 잘 감지하고 읽고 써야 한다.’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장의 시간과 나의 시간 사이의 간격이 무척 짧아졌다는 거예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현장의 액션에 실시간으로 리액션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엊그제만 해도 한 인스타그램 작가가 문학동네 시집 표지 디자인을 표절한 사건이 논란이 됐는데, 문예지들은 계간이든 격월간이든 월간이든 이런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는 거죠. 이런 문제를 갑자기 이번 여름호에 실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음 가을호에 실을 수도 없는 거예요. 이처럼 현장에 반응하는 상대적인 속도의 차이가 문예지를 뒤처져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환경이 변한 거죠. 문예지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역할과 책이라는 형식이 더 이상은 함께 가기 어려운,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서호준 시인님이 말씀하신 커뮤니티라는 것도 웹 환경을 기반으로 해야 상상 가능한 것인데. 요즘에는 커뮤니티별로 그런 게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어떤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고 있으면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그 드라마를 같이 보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같이 막 댓글 달고 게시글 쓰고 그냥 웃고 떠드는 거죠. 그런 식의 소비가 이뤄질 수 있는 토대와 공동체적인 시간 감각이 있는데, 문학에서 그러한 시간 감각을 그나마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저한테는 트위터예요. 문예지의 장점이었던 현장성이 이제는 트위터만 못하게 되면서 역으로 단점이 되어버린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오늘 좌담을 준비하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기면서 생각해 온 대안이 두 가지 있는데, 먼저 단기적인 대안을 말씀드리자면 단행본 출판사와 문예지 출판사가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단행본 출판사가 마치 문예지로 어떤 세력을 만드는 것처럼 보여서요. 물론 어느 문예지에 작품을 실었다고 해서 무조건 그 세력에 포섭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어떤 사람은 문학동네 계열의 작가이고 어떤 사람은 문학과지성사 계열의 작가라는 식의 라인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계열조차 갖지 못하는 작가도 많고요. 비유하자면, JYP와 SM과 YG가 각각의 매체를, 무대를 갖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네 식구 위주로 챙기면서 간간이 다른 계열 작가들도 낄 수 있게 해주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이 문예지라는 것 자체가 조금 애매해지지 않나 싶어요. 예전에는 문학계의 대형 출판사가 각각 어떤 문학·예술적인 스탠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만큼 저마다의 시대정신을 품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대정신에 따라 설립하고 방향성을 날카롭게 다듬고 끊임없이 토론하고 싸우면서 발전하는 양상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오늘날의 출판사로서는 정신력으로 상업성의 논리를 이길 수 없겠죠. 그걸 문학계를 대표하는 출판사들의 책임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문예지라면 상업성보다는 시대정신 혹은 문학정신을 좀 더 밀고 나갈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실제로 여전히 수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단행본 수입으로 적자를 메우면서까지 운영을 이어 가겠죠. 그럼에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모순이 보이는 것 같고, 모순을 극복하려면 단행본 출판사와 문예지 출판사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예지 출판은 당연히 적자니까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겠고요. 불가능하겠죠. 보다 장기적인 대안으로는, 저 같은 경우는 항상 공적 지면의 가능성을 상상하곤 했는데요. 그러니까, 작가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원할 때 주체적으로, 자발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그런 지면을요. 어쩌면 작가들이 많이들 호소하는 스트레스는 책을 못 내는 데 연유한다기보다는 작품을 발표할 수 없는 환경에 기인하는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아까 그 현장성이라는 것도, 어떤 작가가 지금 이 2020년 여름 대한민국 문학과 사회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거죠. 아니, 그보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 가깝겠네요. 그런데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어떤 사람은 권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을 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의 말은 실리고 어떤 사람의 말은 실릴 수가 없어요. 그러면 실리지 못하는 작가는 어쩌면 더 나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입장을 내비칠 수가 없고, 오히려 뒤쫓아 가는 사람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인 거죠.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문예지를 안 만들면 되잖아요.’라는 생각에는 반대해요. 그건 거꾸로 가는 것 같고. 이 문예지라는 것을 지금 당장 어떻게 갈아엎거나 통합을 하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 차원에서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원에서든 어떤 공적 지면을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막연히 청탁을 기다리거나 투고를 해놓고 결과를 기다리거나 하는 식의 수동태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음악 하시는 분들 노래 발표하고 싶으면 발표하잖아요.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주느냐에 따르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최근 논란이 됐던 스트리밍 조작 같은 병폐도 있을 수 있고, 마케팅에 들어가는 자본력의 한계도 있겠지만, 발표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조차 없는 건 차이가 있으니까요. 누구나 발표할 수 있게 되면 아무래도 너무 무분별해지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지 않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일단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판사들끼리 책임의식을 갖고 연대를 하든, 아니면 국가 차원에서 나서 주든, 단행본 출판사들을 끼고 있는 지금의 문예지와는 다른 모양새로 출범했을 때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봐요. 물론 불가능하겠죠. 저는 메일링 서비스를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하시는 작가님들 역시 주체적으로, 자발적으로 뭔가를 하려는 거잖아요. 그런 욕구들과 여전히 원고청탁 하고 잡지 발행하는 구조 간의 불일치가 시대적으로 너무 뒤처져 있는 형식에 근거하는 것 같아요.

 

노태훈 : 네, 말씀 듣다 보니까 《문장 웹진》 차원에서 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도 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한편으로 저는 웹소설 장르의 플랫폼이 떠오르기도 하거든요. 웹소설 플랫폼은 누구나 자기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종의 등급이 나뉘어 있죠. 어떤 프로모션이 붙느냐에 따라서, 또 얼마나 조회 수가 높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소위 등급이 올라가서 훨씬 더 노출이 많이 되는 게 있지만, 아무나 그냥 작품을 써서 올릴 수는 있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그런 플랫폼이 등장하거나 그런 형태의 변화가 있다고 해서 지금 자기 작품의 독자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작품이 많이 읽히지 않는 데서 오는 외로움과 고통이랄까, 이런 것들이 과연 해소되고 어느 정도 나아질까 싶어요. 그렇게 자기 작품을 음악 사이트에 올리는 식으로 어떻게든 발표할 수만 있으면 그럼 다 된 건가, 그런 생각도 한번 하게 되고요. 차도하 시인님과 이유리 작가님께 관련한 이야기를 더 들어 보고 잠깐 쉬었다가 이야길 이어 가 보겠습니다.

 

차도하 : 제가 먼저 말할까요? 우선은, 아까 동시대의 한국 문학을 읽는 게 문예지를 읽는 이유라면 이유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동시대의 한국 문학을 읽어야 할 마땅한 이유가 딱히 없으니까 문예지가 안 팔리는 거라고요. 이런 흐름으로 말씀하신 것 맞나요? 네, 근데 저는 들으면서 생각한 게, 동시대의 한국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생기더라도 그게 문예지를 구매해야 할 이유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거는 문학에 대한 자조가 아니고요. 문학 대신 어떤 단어를 여기에 넣어도 그래요. 동시대 노래를 들어야 하는 이유가 생기면 앨범을 사나요? 아니잖아요. 그래서 시장에서의 성공은 그런 당위성으로는 이뤄지지 않을 것 같고, 결국 그 재화를 구매하게 하는 매력을 사는 사람이 느껴야지 팔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문예지 같은 경우도, 문예지가 무엇인가를 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동시대 한국 문학을 열람할 수 있도록 모아 놓은 건데, 근데 그걸 물질성이 있는 책 한 권으로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팔려고 한다면 그게 구매자가 구매해야 할 재화로서의 가치가 크진 않죠. 문예지를 만드는 출판사에서도 이런 점을 알고 있어서 문예지를 점점 더 예쁘게 만들고, 구매를 원할 만한 타깃층을 전보다 더 세세하게 설정해서 만들고 있는 것 같거든요. 어쨌든 문예지가 가지고 있는 동시대성이라는 특징을 생각해 보면 제가 봤을 때는 웹에 무료로 공개하는 형태가 제일 적합한 것 같기는 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수익은 어디서 내느냐? 하는 문제가 남겠죠. 아까 그 문예지 출판이랑 단행본 출판이랑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분리되는 쪽이 아니라 문예지처럼 시의성 있게 작품을 웹으로 내놓되 그걸 모아서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그 단행본으로 수익을 올리는 쪽이 유효한 전략일 거 같아요. 지금 이게 《주간 문학동네》가 하고 있는 방식 아닌가요? 상품성 적은 장르는 빠졌지만요.

 

노태훈 :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물론 고료를 주고 연재를 하고 있긴 하지만요.

 

차도하 : 네, 어쨌든 지금 기성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작업은 그런 작업인 것 같고요. 앞서 예시로 웹소설 플랫폼 그냥 궤도에 오른 사람 말고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지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엔 저도 동의를 하는데, 그걸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을까요? (웃음) 제가 생각해 봤는데 국가 차원에서 하려면 아무래도 좀 저어되는 부분이 있을 거 같아요. 제가 지금 발화할 수 있는 마땅한 용어를 못 찾겠는데 공적인 공간, 국가가 만들어 놓은 공간에 올리기에는 다소 적절하지 않은 그런 스타일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까지 다 포용할 수 있어야 그 지면이 커질 텐데,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노태훈 :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지금 문예지 지원 사업의 예산이 제가 알기로는 몇 억 원 될 거예요. 그 예산을 그냥 《문장 웹진》에 쏟아 붓는 거죠. 문예지에 주는 게 아니고 《문장 웹진》에 예산을 줘서, 이를테면 소설 한 편에 200만 원, 시 한 편에 30만 원으로 원고료를 책정하고 모든 걸 투고제도로 바꾸고요. 청탁이 아예 없을 때 웹진에 작품을 내고 싶으면 내는 거예요. 그 돈을 나름의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 모두에게 아주 넉넉한 고료로 나눠줄 수 있고 또 모두에게 열려 있는 방식으로 지면을 운영하는 이런 생각도 한번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사실은 실현 가능할지 의문이 들지만요.

 

차도하 : 네, 그럼 좋겠지만 의문스럽기는 해요. 제가 트위터에 그런 말을 적은 적 있거든요. ‘종이 문예지는 진즉에 망해야 한다.’ 친구한테 이의제기를 받았어요. 왜 꼭 종이 문예지가 망해야 하냐고, 둘 다 하면 안 되냐고.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확실히 웹으로 옮겨가려면 돈을 투자해야 할 텐데, 종이 문예지와 동시에 할 수 있을까 싶어요.

 

노태훈 : 그러니까 종이 문예지를 웹으로 옮긴다고 하면 제가 예상하기로는 사실 비용이 그렇게 많이 절약되진 않거든요. 책을 찍어내는 비용만, 그러니까 말 그대로 종이값과 인쇄비만 빠지는 거예요. 편집자들의 노동력에 대한 임금과 원고료는 그대로 남아 있는 건데, 웹으로 옮긴다고 했을 때 그게 과연 훨씬 더 나은 형식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좀 들어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출판사가 만약에 종이 문예지를 안 내고 웹으로만 운영한다고 하면, 《주간 문학동네》 같은 곳은 당연히 적자죠. 왜냐하면 구독료를 안 받잖아요. 그런데 작가들한테 원고료는 지급할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적자인데 그걸 왜 운영하느냐면, 출판사는 단행본 하나만 터지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만회되고 다시 의욕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죠. 그래서 종이 문예지를 웹으로 옮기는 정도의 변화가 과연 문학 출판 관행이나 어떤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해요.

 

차도하 : 당연히 웹에 맞춘 뭔가가 더 있어야겠죠.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주간 문학동네》는 적자겠지만 단행본이 터지면 만회된다고 하셨잖아요.

 

노태훈 : 그렇죠. 그런 걸로 만회하는 거고, 다른 문예지도 마찬가지고요.

 

차도하 : 네, 그래서 저도 문예지 사업이 적자라고 얘기하셨을 때 그 얘기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문예지 사업만 놓고 보면 수치적으로는 적자겠지만, 크게 보면 출판사에서 이득 보는 부분이 있어 운영하고 있는 사업이지 않나 하고요.

 

노태훈 : 일종의 상징 자본인 측면이 분명히 있죠. 네, 이유리 작가님 말씀을 마저 듣고 조금 쉬었다가 얘기하겠습니다.

 

이유리 : 제가 하려던 얘기는 앞에서 다들 말씀해 주셔서 사족이 될 것 같네요. 휴회 전에 제가 들은 얘기를 덧붙이자면,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제가 《문장 웹진》의 소설 청탁을 받아서 소설을 싣게 됐는데, 선배 작가님이 그 말을 듣고는 ‘《문장 웹진》에 보낼 거 잘 써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왜요?’라고 물었더니, 출판사 직원들이 작가한테 연락할 때 제일 먼저 《문장 웹진》을 본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또 ‘왜요?’라고 물었더니 ‘온라인이잖아.’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인즉슨 작가나 편집자들마저 종이 문예지를 잘 안 읽거나 혹은 온라인보다 후순위로 읽는다는 말이 되는데, 그럼 종이 문예지는 누가 읽는 걸까요? 저도 습작 생활을 거의 10년 넘게 해왔는데 사실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구독하고 있는 문예지가 몇 권 안 되거든요. 그래서 아까 말씀 나왔던 것처럼 현장성과 접근성 둘 다 온라인이 월등하고, 더군다나 지금 문학을 주로 소비하는 20대, 30대는 갈수록 온라인 매체가 편해질 것이기 때문에 문예지도 온라인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온라인 문예지를 꼭 공짜로 풀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문학 커뮤니티가 없는 상태라면 온라인 문예지가 그런 커뮤니티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은 어떤 문학 커뮤니티가 따로 있다면 문예지가 그런 기능을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하듯이 한 달에 3천 원, 5천 원씩 내고 온라인 문예지와 그 문예지에서 운영하는 문학 커뮤니티 게시판을 같이 이용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어요. 이런 식의 구독 개념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문예지가 있으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태훈 : 서호준 선생님이 《던전》을 운영하고 계시기도 하지만, 사실 돈이 더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문예지들이 종이를 찍어내는 식으로 운영하다가 웹으로 옮겨가 서버 구축하고 웹디자인 작업하고 원활하게 접속과 운영이 되게끔 유지비를 쓴다고 하면 비용이 적지 않게 들 거예요. 그런 얘기도 많이 하잖아요. 문예지 아카이빙이 필요하다고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데서 모든 문예지를 검색하게 해주고 적어도 목차라도 볼 수 있게 해주면 얼마나 좋겠냐는 그런 얘기도 많이 하는데, 그렇게 되면 좋긴 하겠죠. 그런데 그러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문예지를 보는 사람도 없고 찾는 사람도 없고 문학판이 너무 작으니까 어떤 것도 사실은 의미 있는 대안이 못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얘기하고, 10분 정도 쉬었다가 나머지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휴회〉

 

 

 


동시대 작가 모임, 문학 커뮤니티의 필요성


 

노태훈 : 2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가 2부에서 나눌 얘기들이 앞서 1부에서 꽤 많이 나온 것 같긴 합니다. 2부에서는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고 또 여러 가지 문학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앞선 좌담들에서도 언급이 꽤 되었던 건데, 문학계에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하셨고 좌담에 참여하셨던 분들도 대체로 공감을 표하셨는데요. 실제로 이제 막 문단에 진입하셨거나 뭔가를 도모하시려는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이신지 들어 보고 싶습니다.

 

차도하 : 오리엔테이션을 열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희가 앞에서 현실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고료 책정 과정이나 수익 구조가 공개되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이유도 신뢰성 있는 정보를 구할 수가 없어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서 그런 거니까요. 그리고 2020년도 신춘문예 시 당선자 분들 중 몇몇 분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게 있는데요. 이원석 시인이 SNS 등을 통해 연락이 닿는 분들께 의견을 물어서, 저, 이유운 시인, 차유오 시인, 김동균 시인과 함께 ‘가시화 프로젝트’라는 걸 꾸리게 되었어요. 저희가 등단하고 겪었던 일들을 말해 보면서 문제 되는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가시화하고, 또 다른 신인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런데 사적인 집단이 할 수 있는 일과 공적인 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리엔테이션을 개최하고, 공적인 기관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한의연 : 저도 오리엔테이션을 해서 나쁠 게 당연히 없다고 생각하는데, 비등단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자격이나 안내가 부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그래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사업자이다 보니까 얼마 전에 국세청에서 메일을 보내왔더라고요. 종합소득세 관련 가이드가 PDF 형식으로 적혀 있었는데,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그런 가이드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오리엔테이션은 오리엔테이션대로 하고요.

 

이유리 : 저는 당연히 오리엔테이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처음 오리엔테이션에 대해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궁금했던 건 문창과에서 왜 이런 걸 안 가르칠까, 이었거든요. 문창과야말로 작가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인데 왜 문창과에서는 이런 거에 대해서 아무도 말 안 해주지? 어떻게 계약을 해야 하고 불공정한 일에 대해 어떻게 항의해야 하는지를 왜 안 알려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럼 문창과 안 나온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 없게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대형 출판사들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래서 제가 등단하고 나서 첫 책 계약을 위해 편집자님을 만나 뵈었을 때, 그분한테 여쭤봤어요. 혹시 신인 작가들을 불러 놓고 오리엔테이션을 하시는 게 없냐고요. 그랬더니 오리엔테이션은 어렵겠다는 대답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대형 출판사라고 해서 그런 것들을 개최할 의무도 없을뿐더러, 만약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한다고 했을 때 문학과지성사의 청탁을 받지 않은 작가들은 청탁도 안 받은 채 그냥 불러서 알려주기만 하고 집에 가라고 하는 건데, 그것도 그림이 좀 이상하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런 오리엔테이션을 대형 출판사에서 개최하면 또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이게 어떤 카르텔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출판사는 냉정하게 말하면 이익 집단이니까요. 출판사의 오리엔테이션에 초대받은 작가와 초대받지 않은 작가가 또 나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게 되면 또 정보가 편중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마지막 결론은 저도 정부 기관이 이런 일을 맡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카르텔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리엔테이션 모임으로 이익을 얻지 않는 곳이 이걸 개최해야 맞는데, 그런 의미에서 가장 공정할 수 있는 정부 기관에서 이 일을 맡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호준 : 저는 오리엔테이션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이 들었는데, 하나는 ‘신인이 누구를 지칭하는 거지?’라는 거고, 둘째는 ‘어느 단체가 개최해야 하지?’라는 거였어요. 방금 이유리 작가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요. 일단 신인에 대해서 말하자면, 문예지의 종수가 정말 많아서 가령 어떤 곳은 월간지인데 신인을 매달 스무 명씩 뽑아요. 그러니까 한 해에 등단하는 신인이라고 했을 때 일단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알 수가 없고 기준을 잡는 순간 그건 바로 구분이 생겨버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준이 없다고 하면 신인이 만 명이 될 수도 있어요. 신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니까. 출판사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개최하는 것도 되게 이상한 일이죠. 왜냐하면 앞으로 상대해야 할 게 출판사인데, 그런 교육을 출판사한테 받는다는 게. 국가에서 교육을 맡는 것도 그래요. 만약에 작가를 뽑는 국가고시라면 국가가 맡을 수 있어요. 말하자면 행정고시는 국가에서 공채로 뽑는 거니까 국가에서 교육을 맡을 수 있지만, 작가는 민간에서 뽑는 건데 국가에서 교육을 한다는 건 되게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오리엔테이션을 누가 열어야 하느냐고 했을 때의 답은 노조라고 생각해요. 작가 집단에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계약이나 불공정 사례에 대한 정보는 약간 암묵지처럼, 문창과에 다니는 경우 선생님이나 선배들한테 정보를 듣는 게 유일했을 것 같아요. 그중에는 틀린 정보도 있고 왜곡된 정보도 있을 거고요. 공식적인 게 아니니까요. 어쨌든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다는 거는 누구나 동의한다고 생각하고, 노조에 해당하는 대표성 있는 작가 집단이 있어야겠죠.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지금 대표성 있는 집단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작가회의도 있고 한국시인협회도 있고 한국문인협회도 있는데, 저는 이 단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비꼬는 게 아니라, 제가 가입자가 아니어서 모르는 걸 수도 있는데, 이 단체들이 작가에 대한 복지 단체인지 아니면 노조인지 그 성격을 알 수가 없고 그냥 일종의 이익 집단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국가에서 하는 문화 사업들을 보면 이런 협회들이 되게 많이 들어가 있어요. 여러 문화 사업 지원금을 많이 받고 있고요. 그렇다면 당연히 지원금을 받는 이런 단체들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데 그 단체들이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단체를 새로 발족할 수도 있겠죠. 단체는 아무나 만들 수 있으니까요.

 

차도하 :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있고, 예술인 활동증명을 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기는 해요.

 

노태훈 : 그렇죠. 그러니까 아예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앞선 좌담에서도 서호준 선생님께서 해주신 그런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은 그런 단체들이 적어도 젊은 창작가들에게는 유명무실하죠. 이를테면 한국작가회의 같은 곳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작가들이 소속되어 있는 대표적인 단체라고 할 수 있는데, 제가 한국작가회의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나 촛불 정국이나 세월호 사건이 있었을 때 성명을 발표하는 건 봤어도, 신경숙 작가 표절 사태라든가 문단 내 성폭력이라든가 이상문학상 사태라든가 이른바 ‘문단의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대응하는 건 전혀 못 봤어요. 그러니까 한국작가회의는 정치 집단입니다. 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돕고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지금 전혀 하지 못하고 있어요. 사족입니다만 한국작가회의가 생겨난 지 꽤 됐죠. 원래는 자유실천문인협회였고, 민족문학작가회의였다가 2007년경에 민족문학이란 단어를 빼고 한국을 붙이게 됐는데, 이제는 진보라고 하기도 어려운 그런 문인분들이 모여서 정치적인 의사를 표하는 단체가 되어버렸어요. 최근에 조금 젊은 목소리들이 들리기는 하는데,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고요. 다른 단체로는 아까 말씀하신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국제펜클럽 이런 데가 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단체들을 전혀 모를 가능성이 높고, 이 단체들을 안다고 해도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누가 그곳에 관여하고 가입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죠. 심지어 한국문학평론가협회도 있어요. 나름대로 활동을 하기는 하는데 전혀 실효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막 문학계에 진입한 세대들이 노조 같은 걸 새로 만들어야 하나? 협동조합 같은 형태의 새로운 연대를 구상해야 하나? 그런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는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우리가 다 알고 있죠. 앞선 좌담에서도 그런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런 연대를 꾸리려면 돈과 노동력이 엄청나게 들어가요. 돈은 괜찮을 수도 있어요. 한국작가회의 같은 단체는 국가에서 돈을 많이 주죠. 그래서 거기는 어르신들이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데, (웃음) 아무튼 젊은 세대가 그런 새로운 연대 단체를 만들면 돈은 국가에서 챙겨 준다고 쳐요. 그런데 이걸 누가 주도할 거냐는 거죠. 다들 창작자이고 자신만의 문학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 이 판에 뛰어든 건데, 이런 형태의 노동을 감수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노동을 맡아 주길 요구하거나 우리가 뭔가 나서서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득하다는 느낌밖에 없는데, 다들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계시는지 한번 들어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연대를 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방식이 가능할지 이런 차원에서요.

 

한의연 : 그런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차도하 시인님께서) 지금 뭔가 계획하고 계시지 않나요?

 

노태훈 : 정말요? (웃음)

 

차도하 : 아니, 저는 학교에 다녀야 하고, 부양해야 할 제가 있어서요.

 

한의연 : 저는 작가협회나 시인협회에 어떤 경로로 가입되는지 아는 바가 없는데, 데뷔하면 그냥 자동으로 단체에서 연락이 오는 구조인가요?

 

노태훈 : 그렇진 않을 거예요.

 

이유리 : 한국소설가협회에서는 작가로 등단하면 등단한 직후에 바로 연락이 와요. 그래서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에 작품을 싣겠냐고 물어보고, 싣겠다고 하면 작품을 보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얘기는 출판계의 불공정 계약에 관한 이슈가 나왔을 때 말씀드리려고 했던 건데 신춘문예 당선자가 발표되고 나면 1월 초쯤에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연락이 와요. 그래서 신문사에 보냈던 당선작 원고와 당선 소감, 프로필 사진을 달라고 합니다.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에 싣기 위해서죠. 그런데 고료에 대한 말씀이 없으시길래. ‘당선 작품집은 고료가 없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네, 없습니다.’ 하고는 작가협회라는 데서 발행하는 계간 잡지가 있다고, 12월에 발행되는 그 잡지에 제 당선작을 실을 거니까 거기에 대한 고료로 50만 원을 주겠다는 거예요. 결국 당선 작품집에 대한 고료는 없다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이게 맞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때 저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게 제가 최초로 받은 원고청탁이었어요. 원고를 달라 하니까 주는 게 맞을 거라고, 일단은 협회라는 이름도 달고 있고 당선 작품집을 만든다고 하니까 이렇게 해야 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그러고 그 당선 작품집이 발행되고 나서 책을 받아 봤죠. 그런데 책값이 1만 8천 원인 거예요. 거기에 2020년 신춘문예 당선 작품이랑 심사평이 다 실려 있는데, 거기에 대한 고료는 한 푼도 주지 않았으니 결국 책을 공짜로 낸 것이잖아요. 심지어는 당선작에 대한 고료는 차치하고 심사평에 대한 고료도 안 준 거잖아요. 심사평을 교정·교열한 기자들의 노고도 무시된 거고요. 내년에 신춘문예에 등단할 신인들도 비슷한 절차를 겪지 않을까 싶은데, 작품을 싣는 건 자유지만 여기에 대한 고료가 없는 건 부당하다는 지식 정도는 미리 갖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까 차도하 님이 말씀하신 예술인 활동증명 얘기도 하고 싶은데, 예술인 활동증명을 받으려면 제 예술 활동을 증명해야 해요. 그런데 소설가 같은 경우는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으로 세 편 이상을 증명해야 합니다. 근데 이 작품 세 편이라는 것의 기준은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표준도서번호) 또는 ISSN(International Standard Serial Number, 국제표준연속간행물번호)이에요. 이걸 서지정보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웹 출간물은 여기서 인정을 받을 수가 없어요. 종이로 출간된 작품만 인정을 받거든요. 저는 그래서 이 활동증명에서 퇴짜를 맞았어요. 그런데 종이 지면에 세 편 이상 발표를 해야만 작가인가요? 그건 아니잖아요. 물론 작품 발표해야만 작가라고 할 수 있다거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아도 작가일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논의는 차치하고, 예술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종이 지면에 세 편 이상 작품을 실어야 한다는 건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까 서호준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인이란 기준은 뭐고 작가의 기준은 뭐고 더 나아가서는 어떤 사람이 교육을 받거나 받을 수 없는 기준은 무언지, 이게 되게 애매한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던 노조 같은 것도, 제가 생각했을 때는 노조나 조합을 공식적으로 만들려면 분명히 어떤 기성세대의 개입이 필요해요. 젊은이들끼리 뭉쳐서 이 탄탄한 기성세대를 깨는 것도 물론 그림은 좋지만 정말 힘들 거란 말이에요. 어떤 깨어 있는 기성세대가 최소한 한두 명은 끼어서 같이 힘을 보태 줘야지만 가능한데, 그렇다면 이게 또 새로운 카르텔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단체에 속한 사람은 어떤 이득을 받고, 속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불이익을 받게 돼서요. 결국에는 또 다른 문단 구조를 만드는 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냥 제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연대라는 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차도하 시인님이 지금 하고 계신 것처럼 작가들끼리 일단 사적으로 친분을 쌓고 서로 알아 가고 정보 공유도 하고 열려 있는 사적인 장을 많이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출판사 편집자분들을 만났을 때도 출판사 단위로 작가들이 모이는 친목의 밤을 개최하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옛날에는 출판사마다 그런 모임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 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문단 내 성폭력 이슈 이후로 그런 술자리를 만드는 걸 금기시하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거든요. 제가 할 말이 없더라고요. (웃음)

 

노태훈 : 네, 그런 얘기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조합을 만들거나 대안을 모색해 보자고 하기 전에, 동시대에 같은 세대의 작가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사실 교류가 너무 없지 않은가 하고요. 예전에는 사실 그런 교류를 문단 내 술자리로 때웠죠.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번에 등단했으니까 오라고 해서 술을 막 먹고요. 거기서 엄청난 부조리와 폭력들이 발생했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그런 술자리가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했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제가 알기로도 지금은 출판사에서의 그런 모임이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하거든요. 시상식 술자리가 있을 때가 거의 유일하고요. 연말에 큰 출판사들의 시상식 몇 개가 모여 있으니까 그때 그나마 얼굴을 보는 정도이지, 그 외에는 결집할 수 있는 계기가 없어요. 이 판에 있는 사람들끼리 조금 더 자유롭게 교류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하긴 한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 궁금해요. 그냥 가만히 놔두고 ‘교류 열심히 하세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렇다고 무슨 집합시키듯이 ‘다 모여 보세요.’ 할 수도 없는 거고요. 같이 고민하고 문제를 느끼는 사람들끼리 어떤 식으로 연대하고 움직일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하게 되는데 어떤 생각들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서호준 : 아까 노조 얘기에서 나왔듯이, 단체를 만들려면 확실히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하잖아요? 총대를 메기가 어렵긴 하죠. 그런데 지금까지 총대를 메는 사람이 아예 없진 않았잖아요? 가령 ‘페미라이터’가 있었고, 지난번 1차 좌담회에 나오셨던 이성미 시인님이 계시는 ‘여성문화예술연합’도 있고요. 물론 이게 작가 권익 전체를 포괄하는 활동은 아니었어요.

 

한의연 : 저도 말씀 조금만 보태면,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그런 작가연대를 상상해 보게 되더라고요. 최근에 제가 제일 무기력했던 건 윤이형 작가님이 전면에 나서서 그렇게 전투적으로 발언을 할 때, 제가 할 수 있는 게 리트윗밖에 없다는 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구체적인 결집력을 형성하는 그런 움직임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점이요. 트위터가 나쁜 것은 아니고 분명히 엄청나게 큰 효과와 잠재력을 가진 것이지만 한계는 있잖아요. 한 발 더 나아가려면 결국 어떤 현실화된 움직임으로 이어 가야 할 텐데 말예요. 이건 좀 너무 앞서 간 상상이지만 윤이형 작가님 같은 분이 장이 되셔서 그 회원들이 매달 만 원씩이라도 기부하는 구조로 돌아가는 새로운 작가연대가 출범한다면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기성 작가협회와는 다르게 강제로 가입하는 구조도 아니고 단순히 작가들의 어떤 생태계나 환경을 고민하고 더 나아갈 지점들을 모색하는 그런 조직으로서요. 2020년의 정서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연대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요?

 

서호준 : 신인의 범주도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글 쓰고 싶은 사람이나 글 쓰는 사람인 거고, 가입을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개방해도 상관이 없잖아요.

 

한의연 : 네. 독자들도 팬심으로, 작가들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가입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이라면 더욱 좋겠죠.

 

서호준 : 커뮤니티로서의 ‘문단 술자리’가 있었고 또 나쁜 결과들도 있었잖아요. 그게 아까 제가 말했듯이 제대로 된 문학 커뮤니티가 없어서 그런 음성적인 방식으로만 존재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SNS에서도 여러 이슈가 나오고 있는데, SNS는 공론장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에 적합한 매체가 아니잖아요. 이런 연대의 출발점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어떤 단체가 갑자기 생겨날 수는 없잖아요. 다들 명분에는 동의하고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얘기를 충분히 나누기 전에는 결성조차 힘들겠죠. 아니면 정말로 그냥 무모하게 총대를 메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그야말로 소진되는 일이니까요.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려면 공론장으로서의 문학 커뮤니티,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노태훈 : 예전에 용산 참사가 있었을 때 여러 작가, 시인, 평론가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서 거기서 활발하게 대화도 나누고 의견도 나누는 일이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지금은 뭐 다 없어졌겠지만요. 시대랄까, 세대 감각이 좀 달라졌다는 생각을 해요. 그때는 어떤 사회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우리 뭐 해보자고 말하면 같이 시작하는 데 별로 주저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있죠. 뭔가 행동을 하려면 그게 절차적으로도 소위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세대에는 어떤 일을 진행할 때 폭력이나 불합리 따위가 없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아까 말씀하신 페미라이터 같은 연대체도 일련의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고요. 대의에는 찬성하지만 대의를 위해서 어떤 부분을 놓치거나 혹은 은폐하거나 아니면 불합리한 무언가를 찝찝하게 남겨 두는 걸 이제는 사람들이 못 견디기 때문에, 그런 지점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대로 그냥 누가 총대 메고 한번 해보자고 하기에는 감각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어요. 2020년의 감각이라는 것이요

 

이유리 : 예를 들면 저희는 지금 신인 작가들인데, 현재 활동하고 있는 기성 작가들하고 만날 일도 없고, 굳이 이런 자리가 아니면 그분들하고 얘기할 기회도 없고요. 등단한 사람과 등단 안 한 사람들도 서로 섞이기가 힘들고요. 그렇게 서로 층이 딱 갈리는 게 연대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공공기관이나 자본과 인력을 갖춘 어떤 단체에서 나서 주면 어떨까 싶어요. 예를 들면 멘티․멘토 같은 식으로 개인과 개인의 연대 혹은 집단과 집단의 연대를 할 수 있게 해서 최소한 서로 얼굴은 알 수 있게요. 그런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장치라도 일단은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노태훈 : 네, 또 의견을 주실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차도하 : 아까 말하려다가 못 한 건데, 예술인 활동증명을 할 때 시인은 발표 편수가 다섯 편 이상이어야 하거든요. 저도 아직 그 활동증명을 못 받았는데, 저는 다행히 지금 청탁이 들어와서 좀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문학세계사가 신춘문예 당선시집에 딱 다섯 편을 싣게 한단 말이에요. 문학세계사의 당선시집 청탁을 거절했을 경우 웹진 외의 문예지로 그 기준을 만족시키려면 두 계절은 지나야 해요. 보통 문예지에 한두 편을 실으니까요. 그건 청탁이 잘 왔을 때 이야기고 아닌 경우엔 더 많은 계절이 지나야 할 거예요. 그럼 가장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도움을 못 받아요. 왜 그 기준에 웹진이 포함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그렇게 기준을 정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기준에 대해 저도 동의가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그 예술인 활동증명 얘기를 제가 먼저 꺼내서요.

 

노태훈 : 《문장 웹진》에 글을 실어도 예술인으로 증명을 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는 거죠.

 

차도하 : 네, 맞아요. (웃음)

 

서호준 : ISBN이 있어야 한대요.

 

이유리 : 제도가 시대를 못 따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요?

 

차도하 : 네,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서호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최근에 했던 창작준비사업 같은 경우에는 온라인 플랫폼에 발표한 작품도 다 인정이 되었어요. 개인 블로그나 카페 같은 데 올린 것만 제외한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노태훈 : 그렇게 되면 실무를 하시는 분들이 조금 번거로우실 수도 있죠. ISBN같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고 온라인 플랫폼을 들여다봐야 하는 구조라면 일이 많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 변화를 따라가야 하는 측면도 있긴 있는 것 같아요.

 

차도하 : 한국작가회의에 대해서도 말을 얹고 싶은 게 조금 있어요. 한국작가회의가 고등학교 백일장도 개최하는데요. 백일장 참가비도 받아요. 아마도 그 참가비로 백일장 상금이 충당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거기서 수상을 하면 문학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지원할 수가 있어요. 물론 무조건 붙는 건 아니지만요. 어찌 되었건 한국작가회의가 그 외에도 여러 공모전들과 연관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한국작가회의가 그걸 통해서 얻는 게 뭔지, ‘한국 작가들’과 관련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솔직히 구조를 공고히 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노태훈 : 한국작가회의가 이것저것 많이 하긴 하죠. 작은서점 지원 사업도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 그걸 아는 사람이 거의 없죠. 한국작가회의가 뭘 하고 있고 거기가 어떤 단체인지요. 차도하 시인님만큼 아는 게 정보를 많이 갖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거는 사실 좀 이상하긴 이상한 거죠.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문학 단체인데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고, 안다고 했을 때가 더 이상한 거고요.

 

차도하 : 네, 맞아요.

 


 

 


국가·공공기관 차원의 문학 지원사업


 

노태훈 : 그러면 이제 그 이야기도 한번 해보죠. 우리가 앞서서 공공기관 얘기를 했잖아요. 공적 지면 얘기도 하셨고, 문예지도 지금 공공기관이 지원하고 있고요. 어쨌든 문학에 대한 지원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도로 공공기관이 많이 하고 있는데, 이것 자체가 필요한지 불필요한지는 사실 크게 논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많은 사업과 예산이 있는데, 이게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야 실제로 도움도 되고 의미도 있을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까 문예지 지면 말씀하실 때도 제가 문예지 지원 사업 들어가는 예산을 그냥 다 《문장 웹진》에 써야 하는 거 아니냐는 그런 생각도 해봤는데, 그런 것처럼 지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한번 들어 봤으면 합니다.

 

 

서호준 : 일단 문학에 지원을 왜 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자고 하셨으니까 그걸 빼고 얘기하자면, 지금 문학이 망한 이유가…… (모두 웃음) 죄송합니다, 문학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이유가 읽는 사람이 없어서잖아요. 쓰는 사람은 늘 많고 더 많아지고 있고요. 또 쓰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매체도 되게 다양해지고 있고요. 《브릿G》 같은 플랫폼의 경우에는 특정한 장르의 문학을 표방하지도 않아요. 소설을 쓰는 분들이 거기에 작품을 많이 올려요. 왜냐하면 개인 블로그에 작품을 올리면 누가 허락 없이 퍼가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들고 누가 읽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브릿G》는 누구나 볼 수도 있고 저작권에 대한 고민도 없으니까 손쉽게 올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소설에 국한된 얘기이긴 하지만요. 국가가 문학을 지원해 준다면 읽는 사람을 양성하는 데 힘을 많이 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문학 사업의 종류들을 보면 작가를 지원하거나 아니면 잡지를 지원하거나 작품집을 지원하는 쪽에 치중되어 있어요. 물론 독자와의 만남같이 소규모 오프라인 행사들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문학 독자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아이디어부터 수집해야 하는 것 같아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문화재단에서 아이디어 공모전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고요.

 

한의연 : 저는 이게 너무 먼 이야기이거나 무책임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근본적으로는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한국의 문학 교육이라는 게 사실상 제대로 된 독서 인구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요. 앞서 언급한 시집 디자인 표절 사건 같은 이슈를 보면, 논란이 된 작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만 명이 넘어요. 조각글 하나 올리면 기본적으로 수천 명의 독자가 반응하고요. 검색해 보니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더군요. 이런 장면을 보면 문학을, 무엇인가를 읽고 싶은 욕구가 적은 건 아니거든요. 읽고 싶은 욕구는 충분히 많아요. 마찬가지로 쓰고 싶은 욕구도 적지 않다고 보고요. 그저 읽고 싶은 욕구와 쓰고 싶은 욕구를 한국의 교육이 잘 건드려 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지금 교육 현장에서 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진 않잖아요. 이를테면 시 쓰기 교육이나 소설 쓰기 교육 같은 것들이요. 우리가 그림을 그리거나 조형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교육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정규 커리큘럼에서 시를 쓴다거나 소설을 쓴다는 상상을 하기는 어렵거든요. 사실상 한국의 문학 교육은 민족사관에 입각한 역사 교육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현대문학이 아예 안 들어가지는 않지만, 제가 최근 한 3년 정도는 교과서를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이전까지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 중에서 가장 최근 작품이라고 해봐야 200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의 작품들인 것 같거든요. 그마저도 극히 일부고 대다수는 역사적인 작품들이죠. 그런 작품들은 그냥 역사 수업 때 배워도 되지 않나 생각해요. 그러니까, 문학 수업의 본질은 문학 수업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과연 문학 수업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고요. 수업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은, 책을 한 권 읽고 싶은 욕구를 발동시켰을 때 문학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 기억에 남는 문학 수업은 지루하고 따분했어요. 당연히 문학 성적이 좋지도 못했고요. 흥미 자체가 생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일단 교육에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생각을 하고요. 현직 교사들이 쓰기 교육을 할 수 없다면 시인이나 작가를 계약직 교사로라도 투입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게 되면 유소년들, 청소년들 또한 쓰기와 읽기에 원초적인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 맨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처음부터 시인이 되겠다거나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문창과에 들어간 건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우연의 연쇄로 문학계에 발을 디딘 케이스인데, 제가 결국 이런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쓰는 게 재밌구나’ 하는 단순한 깨달음이었어요.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재료가 거의 필요 없잖아요. 요즘에는 종이와 펜이 없어도 쓸 수 있죠. 아무것도 없어도 할 수 있는 순수 예술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낮은 장르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왜 이렇게 읽는 사람이 없는가 한탄하기 전에 쓰는 문화가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보고요. 여기서 이어지는 문제는 한국 문학 출판계의 마케팅이 너무 ‘읽기’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에요. 독자를 어떻게 유입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이 현상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문학을 공급하는 입장에서 독자가 일방적으로, 순종적으로 소비만 해주기를 기대하는 태도는 2020년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어쩌다 한 번씩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면 창작자로서의 즐거움이 녹아 있는 걸 느껴요. 당연히 그 사람들은 창작자니까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다들 처음에는 리스너, 소비자로 시작하잖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아, 나도 이 사람처럼 랩하고 싶어.’ 하는 단순한 욕망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게 힙합 씬이 부흥하게 된 단순한 포인트 같거든요. 저는 그래서 문학계의 현 상태가 무척 절망적이고 암울하다고는 하지만 지금 SNS상에서 느껴지는 쓰고 싶은 욕망과 읽고 싶은 욕망을 보자면 그렇게 발현시킬 씨앗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차라리 그런 욕구들을 받아 줄 제도가 전무하다는 점, 백 년 전의 신춘문예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문제이고요. 물론 아예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문제 자체가 보인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면도 있다고 봐요.

 

노태훈 : 음악이나 미술처럼 문학이라는 교과 자체를 실기 실습 교과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신 것 같아요. 저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문학 교육을 교과서에 있는 작품을 읽고 해석할 게 아니라, 학생에게 무언가를 쓰게 하거나 아니면 서점에 가서 골라서 마음에 드는 책을 가져와서 소개해 보게 하는 식으로, 실습하는 교과처럼 커리큘럼을 조정한다면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고요. 아까 서호준 시인님도 말씀하셨지만, 결국은 국가와 공공기관에서 문학을 지원할 때 생활이 힘든 작가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재미를 알게 해서 독자를 발생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그러니까 독자들을 늘리는 지원일 텐데 그게 어떤 방식일지는 고민을 많이 해봐야겠죠. 말씀하신 대로 문학 교육을 실기 실습으로 바꾸면 어느 정도는 또 그런 가능성이 생기기도 하겠지만요. 일반적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국가 기관이 지원할 수 있는 방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좀 하게 되는데, 차도하 시인님과 이유리 작가님의 얘기도 한번 들어 볼게요.

 

차도하 :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사실 문학이 아니고 국어이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예체능 과목에 문예가 개설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서호준님이 문학이 망했다고 말씀하시려다가 말을 약간 고치셨는데 (웃음) 어쨌든, 문학이 망했냐고 물어보면 저는 망한 것 같진 않아요. 그러니까, 시장 측면에서 사실 소설 단행본만 보자면 시장 규모가 크잖아요. 아닌가요?

 

노태훈 : 음악이나 영화 같은 다른 예술 장르하고 비교하면 굉장히 왜소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규모가 아주 막 쪼그라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죠. 어쨌든 그래도 몇 만 부, 몇 십만 부씩 팔리는 책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시집도 그렇잖아요. 최근에 많이 팔리는 시집들도 있고요.

 

차도하 : 네, 에세이 시장도 지금 확실히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다만 이 문학 시장에 진입한 신인을 창작자라고 하지 않고 생산자로 분류해서 말하자면, 새로운 생산자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끔 하는 정보와 기틀이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시장이 망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장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자면, 국가에서 문학을 지원하는 건 주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거 같아요. 도서관, 공공기관 등에서 개최하는 행사 등이요. 물론 우리나라 도서관은 성공사례이지만요. 지원 양상을 바꾸어서, 국가가 투자자로서 문학을 지원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시장이 정상적으로 운용되게끔 하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잖아요. 문학은 시장이라는 단어를 쓰면 사람들의 저항성이 엄청 크잖아요. 우선 국가에서 그런 저항감을 버리고 문학으로 사업을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밀어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많은 분들이 안 좋게 생각하시는 청담동에 개관한 ‘소전서림’ 같은 곳 있잖아요. 물론 거기는 국가 지원 같은 거 필요 없겠지만, 그런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말했듯이 문학 시장이 수요자들의 가격 저항이 너무 높은 시장이다 보니까, 문학은 어떤 계층이든 즐길 수 있는 장르가 되어야 한다는 공공성을 목적으로만 지원이 계속되면 결국 시장이 발달하는 게 아니라 평평해진다고 생각해서요. 상업으로서의 문학에 관심을 좀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패션이랑 접목한 문예지로 《모티프》라는 문예지가 있었잖아요. 그 문예지와 관련한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패션 편집숍 같은 데도 그 문예지를 배치해 놓는 걸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그런데 《모티프》가 문예지 지원 사업 선정이 안 되어서 지금은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인데, 이름을 그대로 언급해 버려서 약간 민망하지만, 그런 곳에 지원을 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호준 : 문예지 지원 사업 선정됐을 텐데요.

 

차도하 : 어? 그런가요?

 

노태훈 : 처음에는 떨어졌는데 아마 뒤늦게 추가로 선정됐을 거예요. 왜냐하면 너무 기성 잡지들로만 선정되었다고 그래서요. 그렇죠? 아마 작년엔가 한 번 추가로 심의하지 않았나요?

 

서호준 :올해 선정 리스트에 있어요.

 

차도하 :지원 사업에 선정됐군요. 죄송합니다. 작년에 지원 사업에 선정된 문예지 중 사업을 포기한 사례가 있어 추가로 선정되었다고 하네요.

 

노태훈 : 어쨌든 말씀하신 방향은 문학의 어떤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비즈니스를 해보겠다고 하는 그런 시도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이를테면 《던전》 같은 곳이요. 그렇죠? (웃음)

 

차도하 : 네, 맞아요. (웃음)

 

노태훈 : 네, 또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이유리 작가님?

 

 

이유리 : 제가 이 좌담을 준비해 오면서 ‘공공기관이 어떻게 문학을 지원해야 할까.’라는 이 꼭지에 대해서 세 가지를 적어 왔는데, 신기하게도 다들 제가 생각해 본 것들과 똑같은 말씀을 하셔서 너무 놀랍네요. 먼저 교육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교육은 개인 단위로서는 건드릴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더욱 공공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에 대한 저의 의견은 아까 너무 잘 말씀해 주셔서 덧붙일 말은 없고요. 두 번째로, 작가들의 복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면, 익명으로 운영되는 고충센터 같은 게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 이런 곳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알기로는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익명으로 운영되는 온라인 고충센터가 있어서 만약에 부조리한 일을 당하거나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에 작가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조언을 구하며 자신의 신분을 밝힘에 있어서 2차 피해를 입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겠죠. 그런 기관을 운영하는 게 복지에 있어서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까도 나왔던 얘기지만 작가와 작가의 작은 연대들을 국가가 약간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일단은 국가가 작가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성 작가와 신인 작가를 연결해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약간의 도움만 주면 되게 잘 뭉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쓰면서 다들 외롭잖아요. 자기 또래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많은 것 같은데, 뭉칠 만한 계기가 없기 때문에 조금만 뭔가를 던져 주면 잘 알아서 뭉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노태훈 :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상담 창구가 있긴 한데,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죠. 제도적으로 조금씩 개선이 되더라도 공유가 되지 않는 측면도 큰 것 같아요. 이를테면 문예위에서 진행하는 청년예술가 지원 사업이라는 게 있습니다. 꽤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운영되는 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아직은 규모도 작고 실효도 적기는 하지만 조금 더 생산적인 연구, 소규모의 창의적인 프로젝트 등을 지원하는 좋은 제도인데 잘 모르시는 것 같더라고요. 현장소통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창구가 있기도 한데 문학 분야에서도 좀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튼, 오늘 말씀하시는 것들은 하나도 거를 게 없이 그렇게 해결되면 좋은 것들이고, 또 그렇게 됐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데요. 이제는 그런 생각의 실천이 어떻게 가능할지가 문제일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면서 좌담을 마무리하면 어떨까 싶네요. 서호준 선생님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서호준 :저는 이 자리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한 자리니까 제안을 몇 가지 드려 보고 싶은데요. 하나는 문예지 과월호에 대한 아카이빙 사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이거는 제가 작년에 국민신문고로 질문을 올렸었어요. (웃음)

 

노태훈 : 답변 같은 게 왔나요?

 

서호준 : 네,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이 왔어요. 지금은 아카이빙이 학술지와 묶여서 이뤄지고 있잖아요. ‘DBPia’나 ‘RISS’나 ‘교보 스콜라’ 같은 데서 이뤄지고 있는데, 문제는 그 사이트에 문예지들이 다 있는 게 아니라, 가령 DBPia에는 《문학과사회》와 《시작》, 《창작과비평》 등 열 군데 정도 문헌이 있고 교보 스콜라에는 《문학동네》만 있는 식으로 사이트마다 잡지들이 따로따로 있거나 아예 없는 잡지들도 많아요.

 

노태훈 : 그렇죠. 《릿터》, 《Axt》 같은 문예지가 전혀 없죠.

 

서호준 :네, 저는 《현대시》 같은 문예지도 보고 싶은데, 그런 아카이빙 사업은 예산도 필요하고 문예지 주체들도 참여해야 하니까. 또 하나는 가능성이 있는 얘기인지 모르겠는데, 이것도 문예지에 관한 얘기인데요. 문예지를 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하나도 없잖아요. 뭔가 문예지 통합 어플리케이션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넷플릭스’ 같은 문학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한국 문학 그 자체가 문학 플랫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지금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한 건데,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들이 붙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되게 큰 아쉬움을 느끼는 게, 아까 동시대 한국 문학의 수요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문학이 망한 건 아닌데 동시대 한국 문학의 수요가 없는 건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예지가 안 팔리는 이유가 딱 그거인데, 이 문제는 동시대 문학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동시대 한국 문학의 존재를 아예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이 축구와 관련한 잡지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영화와 관련한 잡지도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문학잡지가 있다고 하면 놀라거든요. 문학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요. 누군가 시를 쓴다고 하면 ‘아, 요즘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네.’ 이런 식으로 약간 이상하게 전통예술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어요. 아까 한의연 작가님이 말씀하신 대로 교육하고 닿아 있는 문제인데, 보통 사람들의 시계가 윤동주에서 멎어 있어요. 지하철 스크린도어 얘기를 꺼낸 이유가, 스크린도어에 지금 시민 공모작도 있고 옛날 시들도 있고 요즘 시들도 있는데, 2020년의 스크린도어 사업을 2019년에 발표된 작품들 대상으로만 하면 완전히 동시대의 현대시가 되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시를 읽을 때 아예 그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는 것과, 알고는 있지만 그냥 관심 없어 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그런 시도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노태훈 : 나름대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 세 가지 정도 말씀해 주신 것 같네요.

 

차도하 : 저도 완전 동의하고요. 국가에서 지원할 수 있는 공공 지면이 있다면 스크린도어가 바로 그런 지면인 것 같아요. 사람들도 지나다니면서 많이 보고요. 그런데 그 작품들은 다 시민들한테 공모 받아서 대부분 무료로 건 거잖아요. 제가 말했던 것처럼 국가에서 문학 지원 사업 하는 데 있어서 공공성을 목적으로 시장을 평평하게 만든다는 것의 예시가 스크린도어거든요. 그 스크린도어 작업하는 데 돈도 되게 많이 들 거 아니에요. 그거를 좀 현대시들로, 최근작들로 조성하면 좋을 것 같아요.

 

노태훈 : 또 뭐가 있을까요. 실천적인 어떤 방식이 있다면요.

 

 

한의연 : 저도 문예지의 역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읽는 사람이 현저히 적다고는 하지만. 나아가서 작가들이 오늘 쓴 글을 오늘 발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그게 당장은 어렵다면 문예지들을 함께 모아서 볼 수 있는 통합 어플리케이션 또는 전자책이라도 출시된다면 좋겠어요. 그마저도 어렵다면 가격을 대폭 낮춰서 전자책 체제로 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에는 핸드폰으로도 전자책을 많이들 보니까 독자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는 지자체나 국가기관에서 SNS 운영을 가볍게, 재밌게 해서 대중적인 관심과 인기를 얻기도 하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문학이나 예술 분야도, 이를테면 《문장 웹진》 같은 매체도 SNS를 활용해서 보다 재미있고 아기자기하게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서 소설, 시, 비평, 좌담 등이 웹진에 업데이트되었을 때, 관심 있으면 찾아서 들어오게끔 만드는 구조가 아니라 먼저 다가와 주는 그런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인력을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문장 웹진》이나 웹진 《비유》 같은 채널은 그런 식의 운영이 가능한, 대중적인 잠재력이 있는 채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말 그대로 공짜로 어떤 읽는 재미를 향유할 수 있는 매체잖아요. 하지만 그런 채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고, 그래서 보다 적극적으로 소개가 되면 좋겠다 싶어요. 특히 웹진 《비유》는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눈에 띄는 감각을 처음 보여줬던 거 같은데, 뭔가 문학이라고 하면 아까 서호준 시인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전통예술같이 느껴지는 면이 있잖아요. 저는 최근에 날이 갈수록 시 같은 예술은 최첨단 예술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거든요. 소설 같은 경우도 점점 그런 방향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고요. 여하간, 문학에 자리 잡은 고리타분한 종류의 인식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잖아요. 그런 사고를 깨뜨려 줄 수 있는 다양한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태훈 : 네, 이유리 작가님은 보태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이유리 : 저는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제가 하고 있던 메일링 서비스에 대해 얘기하고 마무리하고 싶네요. 지난주에 마지막 회차를 보내고 나서 지금은 그만뒀는데, 그만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제가 더 이상 SNS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강제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SNS 말고는 이걸 홍보할 곳이 없거든요. 사실 메일링 서비스는 작가의 개인 SNS로만 홍보를 하기 때문에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결국에는 또 인기 있는 작가만의 전유물이 될 확률이 크거든요. SNS로 홍보를 한다고 해도 팔로워가 많거나 인지도가 있거나 작품 발표를 많이 해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작가여야지 신청할 거란 말이죠. 제가 처음에 이 좌담회에 참석했을 때 ‘메일링 서비스가 출판의 대체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물어보실 줄 알고 준비를 해왔는데, 사실 저는 이게 답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하고 메일링 서비스를 했고요. 그래서 아마 더더욱 공공기관에서의 어떤 플랫폼 사업 지원이나 작가 개인에 대한 복지 지원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생각에는 작가 스스로 지금의 이 제도에 대해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메일링 서비스나 독립 출판 같은 것일 텐데, 이것의 한계를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까 더더욱 개인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까 말씀이 많이 나왔던 것 같고요.

 

노태훈 :전반적인 이야기를 제가 굳이 종합을 해보자면, 서호준 시인께서 말씀하셨지만, 결국은 소위 문학 커뮤니티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커뮤니티를 통해서 작품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누고 독자도 많이 확보하고 자유롭게 소통도 하고 뭘 만들어 볼 수도 있고요. 그런 어떤 나름의 공동체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까 우리가 조합이나 노조 얘기도 했지만, 당장 조합을 만들자고 하면 사실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또 어떤 노조의 형태가 될지는 저도 상상하기가 힘들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활발하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는 시기가 오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볼 때는 그 역할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국가기관에서 맡아서, 커뮤니티 형성에 필요한 어떤 나름의 지원들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차도하 : 저, 말을 조금만 더 해도 될까요? 죄송합니다. 메일링 서비스 얘기를 듣고 나니까 퍼뜩 생각이 나서요. 저도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해서 이 자리에 초대를 받았던 것 같은데, 저는 3월에 메일링 서비스를 했어요. 음악 하는 친구와 함께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 7월쯤에 새롭게 서비스하기로 했고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SNS 홍보에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고 유통사가 없으니 작가가 창작부터 홍보까지 모두 부담해야 해요. 지속적으로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해서 수익을 올린다면 사업자 등록도 해야 하고요. 메일링 서비스가 기존 제도를 대체할 만한 시스템은 아니긴 해요.

 

서호준 : 저도 얘길 더 하자면, 아까 이 질문을 지나친 것 같아서요. 대안 플랫폼의 가능성이나 한계점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은데, 지금 기획의 측면에서 대안 플랫폼인 것도 있고 매체의 측면에서의 대안 플랫폼도 있잖아요. 《공통점》, 《영향력》, 《더 멀리》부터 《비릿》, 《베개》, 《토이박스》, 《모티프》, 《소녀문학》, 메일링 서비스들, 이렇게 다양하게 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은 크라우드 펀딩을 한단 말이에요. 텀블벅으로 한다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계좌를 열어서 구독료를 받는다든지 하는데,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입장이나 소규모 집단의 입장에서 홍보가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다른 건 그냥 뭐 자비 들이고 고생하고 그러면 되는데 홍보는 불가능한 것 같더라고요. 제가 독립 문학잡지들을 전부 관심 있게 봐서 텀블벅에서 그런 것도 많이 봤거든요. 최종적으로 그 독립 문예지를 몇 명이 샀고 얼마가 모였는지를 쭉 봤는데, 백 명에서 삼백 명 사이인 것 같더라고요. 가장 많이 모였던 곳이 최근에 나온 《토이박스》인데, 구매자가 삼백 명 대였나 그랬어요. 진짜로 열심히 모았는데도 그 정도예요. SNS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홍보로는 천 명이 안 된다는 뜻이죠. 이거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일이어서, 뭔가 지원이 있다면 이런 홍보 쪽에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냥 지원금을 주는 것 말고요. 돈을 주는 건 가령 천만 원이나 2천만 원을 지원금으로 주면 당연히 도움이 되긴 하죠. 원고료로 쓸 수도 있고 사이트 개발하는 데도 쓸 수 있고 도움이 되는데, 홍보는 규모가 다르잖아요.

 

노태훈 : 실제로 트위터에서 메일링 서비스에 대해 나름의 홍보와 안내를 해주는 계정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큰 도움은 안 되겠죠. 만약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데서 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새로운 시도들이나 플랫폼들에 대해 홍보를 지원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던전》 같은 플랫폼이 아마 이번에 천만 원 가까이 지원을 받으셨을 텐데, 그런 지원금으로 이를테면 서울 시내버스나 택시에 마치 영화 개봉작 홍보물을 붙이는 식으로 예산을 쓸 수 있게 하는 거죠. 그게 차라리 사이트 개발이나 원고료로 쓰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겠네요. 말씀하신 대로 작품 올리고 사이트 만들고 하는 건 어떻게 하겠는데, 이걸 알리는 게 너무 힘들다는 의견이니까요. 그런데 그러면 또 뭐, 상업적이라는 말들이 나오겠죠. 아무튼, 되게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은 것 같아요. 이제 간단하게 소감 한마디씩 하고 마무리할까요. 오늘 아마도 좀 부담스러운 자리였을 거라고 생각이 되고,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지 못한 것도 있으실 거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실 텐데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소회를 듣고 끝마치겠습니다.

 

한의연 : 네. 일단 너무 즐거웠고요. 뚫린 입이라고 너무 아무 말이나 다 해버린 건 아닐까 염려스럽긴 한데, 그래도 이런 자리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과 만나 뵐 수 있어 좋았어요. 독립 잡지를 만들든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든 아니면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하든, 그런 모든 행동의 시발점은 결국 답답함인 것 같아요. 너희가 안 시켜 주니까 우리가 일단 해본다는 식이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시적인 대책일 수밖에 없는 거 같기도 해요. 《비릿》 역시 개인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한계에 맞닥뜨리게 되거든요.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주체적으로 글을 쓰고, 스스로 작가임을 확인하는 분위기가 점점 더 짙게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 즐겁기도 해요. 이런다고 문학계나 제도가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지만. 유튜브 채널 만들려면 등단해야 되는 거 아니잖아요. 만들고 싶으면 만드는 거죠. 문학판 역시 점점 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스스로 작가라는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좌담에서 나온 얘기 중에 공감했던 내용 중 하나는, 작가를 조선시대 선비처럼 바라보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남들에게 작가로 인정받으면 영광스럽겠지만, 그 영광이 왜 반드시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지, 이게 2020년에 어울리는 구조인지, 고려해 볼 만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등단제도가 지금까지 해온 역할과 의미가 분명히 있지만, 당장 철폐할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신의 예술성을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노태훈 : 네, 차도하 시인님께서도 말씀해 주시겠어요.

 

차도하 : 저는 말 그대로 소회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좀 유치하지만 저는 망해야 할 사람들은 망하고 저희는 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노태훈 : 네, (웃음) 서호준 시인님도 소회 부탁드립니다.

 

서호준 : 저는 등단에 대해 좀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작년에 어떤 신문기사를 봤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서 분신자살했다는 기사였어요. 일단 거기까지 봤을 때는 어떤 사건·사고잖아요. 그런데 기사 내용을 보니까 그 사람이 시를 쓰는 사람이었고 문맥상 아마도 등단을 오랫동안 준비한 사람으로 보였어요.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저랑 또래였거든요. 그런 내용을 보니까 맘이 굉장히 찢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등단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등단을 시도했는데 등단하지 못한 상태의 사람에 대한 얘기는 그냥 가려져 있는 것 같아요. 문학잡지에 간혹 ‘나의 습작기’라는 종류의 산문들이 실리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등단한 다음에야 실을 수 있는 거니까.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어도 등단에 대한 얘기는 왠지 잘 안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종의 출발점인데.

 

이유리 :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제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건, 작가들끼리 좀 폐쇄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어요. 젊은 작가들끼리건, 혹은 등단했건 안 했건 간에 글 쓰는 사람들끼리는 일단 기본적으로 서로 애정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이런 사람들이 더 신나게 뭉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해봅니다.

 

노태훈 : 네, 저는 오늘 사실 제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참여하시는 분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 관심 있게 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고민을 새로 얻게 된 것 같아서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마지막에 이유리 작가님께서 폐쇄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요. 누군가를 호명하고 모이게 만드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젊은 분들께서 여러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도 《문장 웹진》에서 자주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일동 박수)

 

〈폐회〉

 

 

 

 

 

 

 

 

 

 

 

 

 

 

 

노태훈 사회 / 노태훈

문학평론가.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 으로 등단

 

서호준 참여자 / 서호준

시인. 문학 플랫폼 《던전》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연 참여자 / 한의연

비등단 작가. 문학잡지 《비릿》의 에디터

 

차도하 참여자 / 차도하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유리 참여자 / 이유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20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등단.

 

 

   《문장웹진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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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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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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