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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편(3)

  • 작성일 2020-12-01
  • 조회수 2,051

[느린 기린 큐레이션]

 

 

〈느린 기린 큐레이션〉 12월(문예지 편 3)

 

 

조시현, 조온윤

 

 

 

 

 

    안녕하세요, 〈느린 기린 큐레이션〉입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시간이 참 빠르게 느껴집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는데요,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겠죠. 다들 무사히 건강히 지내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2020년은 유독 많은 일이 있었던 데다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아요. 여러분은 한 해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느리미와 기리니는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도 기존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문예지들을 만나 보았는데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새로운 작업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어쩐지 겨울이 춥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느린 기린 큐레이션〉에서 만나 본 문예지는 문학과 패션을 결합한 문학패션잡지이자 활자예술 매거진인 《MOTIF》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사와 함께 문학을 비롯한 여러 예술 장르를 다루는 문화 매거진 《언유주얼(an usual)》입니다. 그럼 제작자분들께 《MOTIF》와 《언유주얼》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① 문학에 패션을 입히다, 《MOTIF》

    의식주는 우리 모두에게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삶의 요소입니다. 그중에서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 어떤 패션을 구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취향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패션으로 문학을 재해석하는 문예지가 등장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작품을 패션으로 구현하여 작가와 함께 일종의 문학 화보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죠.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고 편안하게 문학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데요, 패션과 문학을 접목시킨 문학 레이블 ‘공전’의 《MOTIF》를 소개합니다! 특히 공전은, 문학패션잡지를 만드는 것 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기획함으로써 문학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잠시 휴지기를 가졌다가 곧 시즌 2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어 더욱 기대되는 문예지입니다. 그러면 공전 팀을 만나 《MOTIF》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 보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먼저 《MOTIF》에 대해 자유롭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MOTIF》(이하 모티프)는 ‘비주얼 문예지’를 표방하고 있는 활자예술 매거진이에요. ‘문학패션잡지’라고도 하고요. 문학 작품을 패션 화보로 재해석해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사진을 싣고 있어요. 화보에 사용되는 오브제, 모델의 구도, 표정, 스타일링까지 해당 작품을 모티브로 하여 기획됩니다. 패션잡지처럼 쉽게 소비되고, 대중적으로 널리 읽힐 수 있고, 외적으로도 세련되고 멋진 문예지를 만들어 보자는 목적으로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Q. ‘모티프(motif)’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예술적 표현의 중심적인 동기나 의도’라고 나와요. 잡지 이름인 모티프도 이와 같은 의미인지, 어떻게 모티프라는 이름으로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모티프를 대표하는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는 문구가 있는데요. “What is the motif in you?”라는 문장이 매번 잡지의 표지에 삽입되거든요. 당신만의 모티프는 무엇입니까, 이런 의미인데요. 저희 잡지가 독자로 타깃팅 한 소비층이 기존의 문학에 이미 참여하고 있거나, 문학을 소비하고 있는 분들이 아니었거든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예지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싶었고요. 모티프라는 책을 통해서 독자들만의 문학적 모티프를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짓게 된 이름이었습니다.

 

Q. 문학레이블 공전의 멤버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A. 공전은 현재 4명의 정식 멤버와, 1명의 명예 졸업(?) 멤버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모티프의 발행인이자 운영을 맡고 있는 유수연과, 행사 기획과 포토디렉팅을 맡고 있는 이유수, 책임편집인이자 패션디렉터인 저(이리)가 있습니다. 원래 마케팅 담당이었던 김의석이 명예 멤버로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채워 줄 사람으로 소설 쓰는 이원석을 영입했고요.

 

[caption id="attachment_147182" align="aligncenter" width="640"] 지난 2018년 ‘문학나이트’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공전의 멤버들.
왼쪽부터 이리, 김의석, 이유수, 유수연. ⓒ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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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레이블(label)이라고 하니 래퍼들이 모여 활동하는 레이블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레이블 이름인 ‘공전’은 무슨 뜻인지, 어떻게 문학레이블로 모이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처음 공전을 설립했던 건, 문학을 하는 예술인들의 종합 공동체 겸 소속사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였어요. 아직도 원고료를 책이나 상품권 같은 걸로 지급하는 문예지들이 많고, 작가 개인이 이러한 관행에 목소리를 낸다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소속되어 있는 작가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 주고 싶었거든요. 그러면서도 회사나 소속사의 개념보다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를 지향하고자 ‘레이블’이라는 이름을 채택했어요. 레이블이라는 게 힙합씬(Hip Hop Scene)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잖아요. 힙합도 처음에는 차별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소수의 음악이었는데, 이제는 ‘메이저’ 장르가 된 것처럼, 문학도 기성의 불공평한 매트릭스를 타파하고 ‘모두의 예술’로 자리 잡기를 바랐던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공전’이라는 네이밍은 ‘세상과 가까운 문학’을 하겠다는 의미로 붙였어요. 달이 지구의 주변을 공전하듯이, 끊임없이 대중들 곁에 존재할 수 있는 문학을 추구하고 싶었습니다.

 

《MOTIF》 신인특집호(3호) ‘시발점’의 표지와 화보 브로마이드. ⓒ공전


 

Q. 처음 모티프가 나왔을 때 문학과 패션을 교차시킨다는 점이 무척 신선했는데요, 어떻게 두 장르를 접목하게 되었는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A. 처음부터 문학이랑 패션을 콜라보 하자는 생각이었던 건 아니고요. “왜 문예지는 문학잡지면서 잡지로서의 특징을 전혀 살리질 못할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어요. 정기간행물은 단행본과 달리 그 시대의 트렌드를 최대한 반영해야 하잖아요. 단행본은 언제든지 소장할 수 있지만 정기간행물은 해당 호의 생산이 끝나면 구입할 수 없다는 특성이 있으니까요. 이런 포지셔닝이 가장 잘 된 정기간행물이 바로 패션지라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문학잡지와 패션잡지 두 가지의 특성을 모두 지닌 문예지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삶의 기본 요건인 의식주 중에서도 ‘의’가 개인을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자 가장 대중적인 매개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잡지는 잡지답게, 쉽게 소비되고 쉽게 읽히는 문예지가 되고 싶었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처럼 녹아들 수 있는 문예지. 그게 모티프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Q. 다른 인터뷰에서 “문학도 패션이 될 수 있다”고, “문학에 대한 아날로그적 편견을 타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작가를 ‘셀러브리티(Celebrity)’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답변해 주신 것이 생각납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부담 없이 문학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을 즐길 수 있다는 것(즐겨도 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모티프만의 새로움이 있다고 여겨졌어요. 새로운 콘셉트의 문예지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문학을 향유하는 방식도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티프의 이러한 시도는, 말씀해 주신 대로 문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티프의 지향점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A. 모티프는 문학패션잡지잖아요? 이름값을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패셔너블한 예술’로서의 문학을 만들고 싶어요. 패션은 단순히 의복을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패셔너블하다’는 말의 뜻도 그렇고요. 단순히 ‘나’라는 옷걸이에 어울리는 옷을 잘 입는 사람을 ‘패셔너블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죠. 당대의 트렌드를 가장 기민하게 포착하고, 그 변화를 수용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제가 생각하는 ‘패셔너블’이거든요. 문학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고, 고인 것은 버리고, 그러면서도 ‘문학’의 본질은 잃지 않은 상태로 지속하는 것,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더라도 존속할 수 있는 예술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시장의 파이가 커져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문학의 형태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어요.

 

Q. 트렌드를 기민하게 포착하되 문학의 본질은 잃지 않으려 한다는 게 참 좋은 고민인 것 같아요. 모티프를 통해 작가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작품이 어떻게 패션으로 재해석되고 형상화되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저도 좋아하는 작가의 포스터를 구하려고 구매했던 기억이 납니다. 화보 모델이 되는 작가 섭외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화보 콘셉트가 정해지는지 기획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신인특집호 굿즈인 작가 브로마이드를 구매하셨군요! 반갑고 감사합니다. 첫 기획회의를 할 때 각 호의 모티프(motif), 즉 대주제를 먼저 정해요. 1호는 ‘Dirty Cash’, 2호는 ‘Miss Call’, 4호는 ‘Time-Off’였고요, 3호가 ‘신인특집호’였어요. 당시의 사회적 이슈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동시에, 문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주제를 고르는 편이에요. 예를 하나 들어 보면, 창간호의 주제였던 ‘Dirty Cash’는 기획 당시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비트코인 사태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돈’으로 상징되는 사람의 물질적인 욕망에 대한 글을 써주시면 좋겠다고 청탁을 드렸어요. 주제를 정하고 난 뒤에는 해당 모티프에 어울릴 만한 작가님들을 찾아요. 기존에 발표하셨던 작품들을 참고하기도 하고, 다른 매체에서 진행하신 인터뷰를 보기도 하고요. 화보 촬영은 청탁 드린 작품이 편집부에 모두 도착한 뒤부터 콘티 작업이 시작되는데, 문학 작품을 작가에게 ‘입힌다’는 생각으로 스타일링을 하고 화보 콘셉트를 정합니다. 원고가 들어오면 모든 멤버가 작품을 읽고, 기획회의에서 1차적으로 전체 디자인 콘셉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요. 2차적으로는 포토디렉터인 이유수와 패션디렉터인 제가 화보와 스타일링 콘티를 만들고요.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 다양한 포토그래퍼의 사진 작품,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 등 아주 다양한 레퍼런스를 참고해요. 포토디렉터가 먼저 화보의 레퍼런스와 콘티를 제게 전달하면, 어울릴 것 같은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을 찾아서 스타일링 콘티를 작업하죠. 질문자님께서 구매하셨던 3호는 화보 콘셉트가 ‘작가 6명의 데뷔 앨범 재킷 사진’이었어요. 디자이너님께도 이 부분을 강력하게 어필했어요.

 

《모티프》 2호 ‘MISS CALL’에서는 황정은 작가의 소설 「양의 미래」를 화보로 재해석했다. ⓒ공전


 

Q. 표지를 봐도 문학잡지라기보다는 세련된 패션잡지로 볼 수도 있겠다고 느꼈어요. 본문에 텍스트만큼 사진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도 눈에 띄었고요. 그동안 활자로만 이뤄진 문예지를 읽어 오셨던 분들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내지 편집이나 표지 디자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나요?

A. 작가분들에게 청탁을 드릴 때, 꼭 마감 기한을 지켜 달라고 말씀드려요. 앞 질문에서도 잠깐 언급하기는 했는데, 저희는 책에 실릴 작품이 편집부에 모두 들어오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내지와 표지 편집을 시작하거든요. 작품을 바탕으로 포토디렉터인 유수와 패션디렉터인 제가 화보 콘티를 짜고, 그 콘티를 바탕으로 편집부 전원이 초기 디자인 회의를 해요. 이런 화보가 이런 느낌으로 촬영될 예정이니까, 표지는 어떤 콘셉트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요. 그리고 이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디자이너님을 만나죠. ‘오늘의 풍경’의 신인아 디자이너님이 모티프의 2호부터 4호까지의 디자인을 맡아 주셨는데, 형식의 변화나 파격적인 텍스트의 배열 같은 디테일한 부분들은 디자이너님께서 먼저 제안해 주신 게 많아요. 늘 감사하죠. 저 역시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보니 활자 중심의 틀을 깨는 데 망설임이 없을 수가 없거든요.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Q. 많은 분들이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신 덕분에 매번 파격적인 형식의 문예지가 나올 수 있었군요. 그간 전문 모델을 섭외하기도 하고 작가분들을 모델로 섭외하기도 하셨는데, 작가분들께도 모티프의 이런 시도가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모델로 참여했던 작가분들의 후기(?)는 어땠나요?

A. 제가 대신 답변해도 될 만한 질문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모든 작가님들의 의견을 들어 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신기해하시더라고요. 생각보다 본격적(?)이라서 놀랐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스튜디오에서 전문가들의 스타일링을 받고, 열 명이 넘는 스태프들 사이에 서서 패션 화보를 찍는 게 흔한 경험은 아니잖아요. 저도 그 심정은 이해가 돼요. 문예지에서 청탁을 받았는데, 사진을 찍는다기에 현장에 가보니 상상했던 그림이 아니더라, 뭐 그런 기분이요. 입장 바꿔서 생각해도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 작가님들이 항상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시거든요. 결과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요. (하하) 이건 여담인데, 그래서 모티프 촬영 현장에 오면 서로 신기해하는 광경을 목격하실 수 있어요. 특히 헤어랑 메이크업,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스태프님들이 “이분들이 다 소설가랑 시인이라고요?” 하면서 놀라시곤 해요. 본인들이 생각했던 ‘글 쓰는 작가’에 대한 이미지와 너무 다르다고요. 그러면 저는 항상 “그래서 제가 모티프를 만드는 거예요.”라고 답변해 드린답니다.

 

Q. 그렇군요. 모티프를 만드는 것 외에도, 공전의 SNS에서 재작년과 작년에 ‘공전 문학나이트’라는 작가들과 함께하는 연말 파티를 개최한 걸 보았어요. ‘문학나이트’는 어떤 행사였는지 좀 더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A. 대개 문학을 주제로 열리는 행사들은 포맷이 거의 비슷하잖아요. 낭독회일 경우에는 특히나 더 그렇죠. 그런 정형화된, 정적인 행사만이 문학의 오프라인 이벤트라는 인식을 좀 깨보고 싶었어요. 길거리의 버스킹을 예로 들어 보면, 주변이 아무리 소란스럽더라도 (어쩌면 소란스러울수록 더) 원활하게 진행되잖아요. 록 페스티벌이나 힙합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록이나 힙합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함께 즐기며 놀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문학 행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렇게 해서 기획된 게 ‘문학나이트’고요. ‘문학나이트’의 아이덴티티(?)처럼 자리 잡은 게 바로 노래방 기계인데요. 정식으로 섭외된 작가님들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노래방 마이크로 자작시나 본인이 좋아하는 시를 낭독할 수 있도록 했어요. 노래를 부르며 함께 놀기도 했고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고, 분위기가 분위기이다 보니 ‘각 잡고’ 낭독할 필요가 없어서 다 같이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좋아했던 자리라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 번 열어 보고 싶습니다.

 

2019년 연말 행사로 열린 공전의 ‘문학나이트’ 포스터. ⓒ공전


 

Q. 말씀해 주신 ‘문학나이트’ 외에도 여러 행사를 주최하고, ‘토요 문학회’라는 이름으로 문학 강연도 진행하신 것을 보았어요. 모티프 발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해온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활동들이 계획되어 있나요?

A. 기획안이야 언제나 넘쳐나요.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한 수많은 문학 행사들이 기획안으로 남아 있는데,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무리가 있어서 아직 빛을 보지 못했죠. 마지막 행사였던 ‘문학나이트 2019’ 이후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고요. 만약 이후에 또 다른 행사들을 개최하게 된다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포스트 코로나’ 페스티벌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때인 것 같아요.

 

Q.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서 공전의 새로운 행사가 열리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금 코로나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전에 만나 본 문예지 제작진분들이 대부분 자본과 관련한 어려움을 호소하시더라고요. 모티프를 만드는 데 따른 어려움,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는 동기는 무엇일까요?

A. 모티프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고 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을 꼽아 본다면, 역시 화보 촬영 아닐까요? 들어온 작품을 읽고, 콘티를 짜고, 콘티에 맞게 장소를 섭외하고, 스케줄을 짜고…… 사람이라도 많으면 모르겠는데, 독립 문예지 특성상 소수의 인원으로만 이 모든 작업을 소화해 내야 하니까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요. 특히 2호 화보를 촬영하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한여름이었는데, 장마 기간까지 겹치는 바람에 현장에서 콘티도 많이 수정해야 했어요. 야외 로케이션 중 하나는 연희동 꼭대기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의상을 갈아입고 헤어랑 메이크업을 바꿀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옥을 맛봤죠. 이제는 체력이 그렇게 안 따라 줘서 다시 하래도 못 할 것 같아요.
자본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셀 수도 없이 많아요. 이건 어떤 독립 문예지에게 묻더라도 똑같을 거예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고요. 그 근본적인 대책을 고안해 내는 것을 업계의 종사자에게만 기대해서는 안 되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문예지발간지원사업〉은 그러한 대책의 일환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어 갈 수 있는 동기는 별거 없어요. 그냥 재밌고 좋아서 하고 있어요. 당연히 거기에서 오는 보람도 있죠.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그저 꿈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만들어 나간다는 것.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예술에서 이상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잖아요?

 

Q. 중간에 휴식기가 길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모티프와 공전의 소식을 기다리고 궁금해 하셨을 것 같아요. 왜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는지, 휴식기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A. 우선 모티프의 발행인인 유수연이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어요. 본인 말로는 글로벌 모티프(?)를 꿈꾸고 있다는데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고요. 저는 모티프를 만들다 보니 개인적으로 스스로의 한계점을 느끼기도 했고, 조금 더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어요.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이유로 잠깐은 생업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예요. 가장 중요한 건, 팀원 모두 공통적으로 ‘모티프가 더 이상 종이 문예지의 형태를 띨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이제는 오래된 패션지들도 순차적으로 폐간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이왕 문학패션잡지를 표방했으니 모티프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어떻게 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이후로도 존속될 수 있는 문학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장 세련된 형식의 문예지로 남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새로운 형태로의 진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형식의 근간을 바꾸는 작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Q. 공전 팀이 최근에 휴식기를 마치고 모티프의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됐는데요. 지난 ‘시즌 1’과 달라지는 건 무엇일까요? 모티프를 기다리는 독자분들을 위해 조금만 귀띔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패션과 문학 중에서 패션의 비중을 조금 더 높이려고 계획 중이에요. 어느 정도 초기 모델도 구상한 상태고, 함께해 주실 분도 찾았죠. 제가 이전 질문의 답변에서 모티프를 편집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한계라는 게 비단 문학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패션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라서요. 문학은 더 공부하려고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패션 업계 종사자도 전문가도 아니라서 이 부분은 시행착오가 자꾸 생기더라고요. 준비 기간이 길어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우선 기존 종이 문예지의 포맷을 벗되, ‘패셔너블한 문학’이라는 모토는 유지할 예정이라고만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덧붙이고 싶은 소개나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전해 주세요!

A. 문학 레이블 공전을 만든 게 2017년 겨울 즈음이니까 벌써 3년이 흐른 셈이네요. 그동안 한국 문학계가 정말 많이 바뀌었음을 체감하고 있어요.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이후의 문학이 어떤 모양일지 정확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기를 지속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공전은 세상과 가까운 문학을 꿈꾸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꿈꾸고 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⑥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매거진, 《언유주얼》

    밀레니얼 세대, N포 세대, 일본의 사토리 세대 등 지금의 20대와 30대 청년들을 가리키는 다양한 신조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는 대학 진학률은 높아졌지만 경제 발전이 침체하면서 고용난을 겪고 있는 1980, 90년대생 청년들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모두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청년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들이지만, 정작 이들 청년 세대 대다수는 자신이 무엇무엇 세대라는 식으로 정의 내려지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렇게 정의되는 몇 가지 특징들로 개인이 지닌 가치와 개성이 모두 뭉뚱그려지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들 밀레니얼 세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된 문화 매거진이 바로 《언유주얼(an usual)》입니다.

 

 

Q. 《언유주얼》 제작진 여러분, 안녕하세요. 취재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언유주얼》을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반갑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문화 매거진 《언유주얼》(이하 언유주얼)입니다. 저는 언유주얼 대표로 《문장 웹진》 인터뷰에 응하게 된 이윤주 에디터입니다. 언유주얼은 밀레니얼 세대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키워드를 한 호의 주제로 잡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제 소스(기획)를 곁들여 한입(초단편)에 냉큼 삼킬 수 있도록 차려 놓은 별미입니다.

 

Q. 이윤주 에디터님, 반갑습니다! 언유주얼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로고를 유심히 보니 언유주얼의 철자가 ‘unusual’이 아니라 ‘an usual’이더라고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맞습니다. 언유주얼은 이름 그대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함(an usual)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함(unusual)에 주목합니다. 발음은 같지만 뜻은 다르죠. 개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하루는 매번 반복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 미묘함의 차이가 쌓여 우리는 어제의 나와 또 다른 사람이 되죠. 정지우 작가님께서 언유주얼에 보내주신 글 중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오늘을 사랑할 구석은 있고, 삶이란 바로 그렇게 내가 사랑해 낸 오늘의 어떤 부분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는다.”
결국 언유주얼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해 낸 오늘의 어떤 부분을 소설로, 에세이로, 시로, 그림으로 담아내고 독자분들께 잘 가닿길 바라는 것이죠.

 

Q. 평범하게 보낸 오늘을 위로해 주는 듯한 문장이에요. 언유주얼을 ‘밀레니얼들의 문화 매거진’이라 소개하는 걸 보고,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나 문제의식을 지니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 독자층을 밀레니얼 세대로 설정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덧붙여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언유주얼의 생각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관심은 한때 우리 모두의 관심사였습니다. 각종 미디어와 콘텐츠에서는 ‘90년대생이 온다’며 앞선 세대의 기대, 흥분, 걱정, 두려움을 전했고,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자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그들을 관찰하기 바빴죠.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들을 정의 내리는 걸 꺼립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눈치 채셨겠지만, 언유주얼 팀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합니다. 저희는 일하는 모습, 취향, 심지어는 소통 방식도 다 다르죠. 밀레니얼 세대라는 한 범주에 들었다는 이유로 특징지어진다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더 많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이것이 언유주얼이 내린 결론입니다.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는 이야기를 담으려는 노력,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는 콘텐츠는 걸러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합니다.

 

Q. 언유주얼 팀이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해 있어서 더 큰 애정과 관심을 가질 수 있었군요. 지금 언유주얼 팀에는 어떤 분들이 계시나요? 언유주얼을 만드는 분들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언유주얼 팀은 다섯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이윤주 에디터)는 기자로 3년 넘게 일하다가 문학과 에세이 분야의 편집자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스튜디오봄봄(언유주얼 발행처)’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언유주얼 매거진의 청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제 이름으로 청탁 메일이 도착하거든 부디 거절은 거두어 주세요.)
최근 합류하신 최남연 에디터님은 다양한 관심사와 신선한 감각으로 언유주얼 이름으로 나가는 모든 콘텐츠를 필터링해 주고 계시는데, 다음 11호부터 본격적으로 매거진에 존재감을 드러내실 예정입니다.
김희라 편집장님은 이선용 대표님과 함께 스튜디오봄봄을 공동 창업하신 분입니다. 언유주얼 기획부터 인쇄 및 발행까지 편집장님의 손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없죠. 에디터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빈 부분을 채워 주시고 사고를 확장시켜 주는 언유주얼의 중추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언유주얼에 있는 모든 시각적 이미지를 담당하는 장유초 비주얼 디렉터님은 국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유망한 젊은 작가들과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분이에요. 미학을 전공하셔서 ‘아트’로 통하는 모든 것에 조예가 깊고, 저희는 항상 디렉터님의 감각을 빌리곤 한답니다.
이민영 대표님은 언유주얼 매거진 디자인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원고와 디자인이 합을 이루기 쉽지 않음에도, 모든 원고를 직접 읽어 주시고 이에 어울리는 감각을 더해 주고 계시죠. 언유주얼을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도록 예쁘게 꾸며 주시는 숨은 조력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선용 대표님을 소개합니다. 다양한 스터디와 모임을 통해 저희가 필요한 인사이트를 가져와 주시고 저희에게 고루고루 나눠 주십니다, 업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옥상으로 바람 쐬러 가시죠.”라며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는 역할도 맡고 계십니다.
언유주얼 팀 한 명 한 명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나의 빈틈을 옆 사람의 경험과 의견으로 채우기도 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혼자라면 부족할 수 있지만, 언유주얼이라는 팀으로 만났기에 가능하다고 토닥이며 호마다 성장하고 있습니다.

 

Q. 짧은 소개만으로도 팀워크가 참 좋다는 걸 알겠네요. 얼마 전에는 언유주얼 발간이 1주년을 맞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1주년을 축하드려요! (짝짝짝) 지난 1년을 돌아보았을 때 소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언유주얼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는지, 지난 1년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감사합니다. (짝짝짝) 언유주얼 10호까지 다양한 필진들이 참여해 주셨고, 또 읽어 주셨던 독자님들이 있으셨기에 오늘의 언유주얼이 있었다고, 이 지면을 빌려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언유주얼의 시작엔 카카오페이지가 함께했습니다. 다소 의외의 조합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두 회사의 인연은 꽤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언유주얼이 탄생하기 전 회사 스튜디오봄봄의 이름으로 온라인 환경에 적합한 문학 콘텐츠 ‘초단편’을 시도할 때, 카카오페이지 일반도서팀 이수현 과장님께서 큰 관심을 보여주시고 카카오페이지 독자분들에게 초단편을 소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습니다. 이후에도 새로운 플랫폼과 콘텐츠 포맷에 대해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 갔고 두 회사의 접점으로서 매거진 창간에 뜻을 모았습니다. 카카오페이지에서 공동 기획자이자 투자자로서 창간과 3호까지의 출간을 함께했습니다.
《문장 웹진》의 에디터님들도 잘 아시겠지만 매거진을 만드는 사람에게 1년은 사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에요. 한 권의 매거진을 만드는 주기를 반복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고 금세 1년이죠. 지난 1년은 말 그대로 쏜살과 같았어요. 하지만 앞으로의 1년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키워드를 정하고, 세부 주제를 그려 보고 필진을 섭외하고 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원고들이 메일함에 쌓이죠. 작가님과 소통을 하다 보면, 어느새 최종교가 완성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한 권의 매거진이 책장에 꽂혀 있어요.

 

창간호부터 지난 10월 발행된 10호까지 《언유주얼》을 장식한 표지들. ⓒ언유주얼


 

Q. 맞아요. 한 달 한 달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언급해 주신 것처럼 언유주얼은 매호 주제가 되는 키워드가 있는데요, 10월에 발행된 10호의 주제는 ‘젠더’이고, 9호는 ‘치킨’이었어요. 때로는 위트 넘치고 때로는 진지한 주제들인 것 같아요. 이런 키워드들은 어떻게 정해지나요?

A. 다음 호에 대한 편집부 회의를 시작하면 언유주얼 팀원들은 그간 고민한 몇 개씩을 준비해 모입니다. 엄청난 키워드는 아니에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거나, 친구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이죠. 서로가 내놓은 키워드를 조합하고 끼워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거다!’ 하는 게 수면 위로 올라와요. 사실 키워드 선정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작업인 조작적 정의를 매만지는 데 더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사전적 정의가 아닌, 해당 키워드 이면에 숨어 있는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만의 정의를 찾아 나가는 일이죠.

 

Q. 언유주얼엔 문학 작가를 비롯해서 만화가, 사진작가, 유튜버, 영화감독 등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의 창작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대중문화 매거진 속에 문예지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문학을 자주 접하지 않았거나 어렵게 느꼈던 분들께는 벽을 낮춰 줄 것 같다는 기대를 했어요. 독자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언유주얼 독자분들께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이렇게 다양한 필진을 한 권의 매거진에서 만나기 쉽지 않기에, 언유주얼은 종합선물세트 같다고요. 언유주얼은 그 호의 키워드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청탁합니다. 문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창작자들의 전문성을 보여주면서 자유롭게 논하고자 했던 최초 기획 의도를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기도 하죠. 평소 문학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분도 부담 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모두에게 친근한 언유주얼이 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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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유주얼》에는 시와 짧은 산문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실린다.
위의 그림은 《언유주얼》 10호에 실린 서수연 작가의 작품. ⓒ언유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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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성 작가뿐만 아니라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것도 언유주얼의 장점인 것 같아요. 필진 섭외의 기준이나 작품 구성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고 싶어요.

A. 정확하게 봐주셨네요. 평소 베스트셀러 작가부터 신인 작가에 이르기까지 틈틈이 작품을 읽고 기억해 두었다가 알맞은 키워드가 나오면 그에 맞는 작가님께 청탁을 드리는 편입니다. 그리고 작가님마다 잘 쓰실 수 있을 법한 세부 주제를 고민해 보고 청탁할 때 함께 제안을 드리죠. 꼭 그대로 써주셔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키워드 안에서 톤이 겹치지 않도록 조율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청탁 기준은 하나입니다. 하나의 주제 안에서 가장 개인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필자를 찾는 것. 우리는 거대한 담론에 맞서는 개인의 이야기를 모으는 매거진이기 때문에 평범하고 개인적인 것들을 모아 전체로 나아가기를 늘 바라며 매번 작업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Q. 격월간으로 꾸준히 문화 전반에 대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간 잡지를 만들면서 겪은 애로사항이 있나요?

A. 콘텐츠를 만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기획이죠. 어떤 옷을 입히느냐에 따라 콘텐츠의 깊이가 달라지니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주제 중 하나가 9호 ‘치킨’인데요. 당시 에디터들은 ‘우리에게 치킨은 무엇일까’를 오랜 시간 고민했어요. 그런데 자꾸만 ‘음, 치킨. 맛있지’, ‘아 몰라 치킨 먹고 싶다’라는 결론으로 끝이 나는 거예요.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사실 치킨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해 주는 ‘무엇’이면서도, 하루의 끝을 위로해 주는 ‘무엇’이잖아요. 치킨 때문에 머리를 짜내느라 지친 제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것도 결국 치킨이었듯이. 이 느낌적인 느낌을 조작적 정의를 통해 빤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어렵거나 비약적으로 다루지 않게끔 정리해 텍스트화 하는 작업이 어렵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언유주얼 9호 : 응 치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호가 되었답니다.

 

《언유주얼》 9호 키워드 ‘응 치킨’의 표지. ⓒ언유주얼


 

Q. 어려움도 있겠지만 반대로 여기서 얻었던 즐거움도 많을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나는 즐거운 일화 같은 게 있을까요?

A. 《언유주얼 9호 : 응 치킨》 표지와 페이크 인터뷰 화보를 찍기 위해 이태원에 간 적이 있어요. 홍콩 영화에 심취하신 사장님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술집을 대여했고, 여러 치킨 브랜드의 제품을 왕창 주문했죠. 언유주얼 7호에 화보를 실었던 김세연 작가님의 작품 느낌이 좋아서 작가님을 포토그래퍼로 섭외했고, 아트 디렉터님을 필두로 편집자 셋이 매달려 조명과 치킨의 각도를 이리저리 재가며 작업했어요. 비 오는 저녁, 어둡고 붉은 조명에 알 수 없는 홍콩 노래가 흘러나오고, 테이블 위에는 통 치킨이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참으로 그로테스크하고 묘한 분위기였어요. 통통했던 치킨이 조명 때문인지 점점 말라 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기름 냄새 맡으며 힘들게 촬영했지만, 지금은 9호 표지만 봐도 그날이 기억나 혼자 웃곤 해요.

 

Q. 분량이 많지 않은 글들이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부담 없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장문의 텍스트가 가진 위압감이 사라져 선뜻 집어 들게 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문학 작품을 이렇게 간편하게 읽을 수 있게끔 만든 데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A. 이미 우리 모두는 짧은 글에 익숙해져 있어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무의식중에 다는 댓글 등 그때그때 필요한 글을 생산하고 또 탐독하죠. 그 짧은 문장 안에도 나름의 완결성을 가진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언유주얼은 짧은 분량 안에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담고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문예지가 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언유주얼의 대부분의 콘텐츠는 두 페이지를 넘지 않아요. 지하철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카페에서, 자기 전 하루를 정리하며 읽기에 좋죠. 언유주얼 독자분들이 문학은 결코 먼 존재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언유주얼》에 수록된 글은 대부분 두 페이지를 넘지 않아 앉은자리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언유주얼


 

Q. 다음으로 발간될 언유주얼의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다음 호를 기다리는 독자분들께 살짝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미리 살짝 언급해 드리자면, 11호의 주제는 ‘접속’입니다. 2020년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AC(After CORONA)라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는데요. 우리는 그간 당연히 여겼던 출근, 등교, 모임, 관람 등의 영역이 급격하게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경험을 했죠. 어쩌면 곧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태를 구분하지 않거나 구분할 수 없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한 초(super) 온라인 상황과 마주한 우리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접속’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나중에 잡지를 보시면 참여하신 분들이 정말 찰떡이라고 느끼실 거예요!
요즘 언유주얼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독자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이벤트와 재미있는 얘깃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죠. 지난 11월에는 아트페어에 갤러리로 참여해 언유주얼 매거진에 참여했던 아티스트분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언유주얼을 마주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해 주세요. 평범하지만 특별한 하루 속에서 만나요. 감사합니다!

 

 

 

    지난 11월 호부터 이번 편까지 느린 기린 큐레이션에서는 모두 여섯 개의 문예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창작자 혹은 기획자 개인에 의해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문예지가 있는가 하면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협업으로 제작하는 문예지도 있었고, 혹은 그보다 규모가 큰 단체로서 좀 더 다양한 범위의 예술 장르를 다루는 곳도 있었죠. 모두 문학을 글로만 국한하지 않고 여러 예술 장르와 연결 지음으로써 문학의 저변을 확장하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다만 이번 큐레이션을 꾸리면서 저희가 느꼈던 것은, 많은 문예지 제작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문예지의 ‘지속 가능성’이었어요. 개인 창작자가 창작 활동과 더불어 제작하고 있는 문예지의 경우에는 언제 발행이 중단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속 가능한 여건이 불확실한 환경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다양한 개성을 띤 문예지가 공존하기를 원한다면 어느 정도 안정적인 활동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잇따르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제작자분들이 ‘그들의 문학’이 아닌 ‘우리의 문학’, 나아가 ‘모두의 문학’이 될 수 있도록 지향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벅차게 다가왔습니다. 고착화되고 정형화된 문예지의 틀을 깨기 위해 직접 움직이고 있는 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더 좋았던 것 같아요. 다양한 매체가 있는 덕분에 문학도 장르적으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비단 문예지에서만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종이 문예지에 비해 생산비용이 낮고 접근성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웹진은 그런 장점들을 활용하여 다른 방면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요, 다음 호의 〈느린 기린 큐레이션〉에서는 다양한 웹진들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느리니와 기리니는 2021년에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 뵙게 되겠네요. 정말 생소한 숫자입니다. 우리, 남은 한 해 마지막까지 무사히 잘 보내고 내년에 건강하게 다시 만나요. 2020년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계획과 함께 밝은 얼굴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 안녕!

 

 

 

 

 

 

 

 

 

 

 

조시현

작가소개 / 조시현

2018년 실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
2019년 현대시 상반기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조온윤

작가소개 / 조온윤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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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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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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