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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웹진》 2021년 기획 연속좌담 ‘등단’ 1차 : 시선들

  • 작성일 2021-04-01
  • 조회수 3,579

[연속좌담]


   본 기획은 1966년부터 시행되어 온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이 2020년 재정적 부담을 사유로 폐지되고, 전통적 등단제도를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발표 활동을 하는 이른바 ‘미등단작가’들이 활동하는 현 시점에 맞춰, 순수문학의 발전 정체와 폐쇄적 문학계 관행으로 지적받고 있는 ‘등단제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각층의 이야기를 모아 보고자 기획되었다.

   2021년 4월호부터 6월호 사이에 총 4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시선들
   - 2차 : 확장성
   - 3차 : 모색
   - 4차 : 현장



 

 

《문장 웹진》 2021년 기획 연속좌담 ‘등단’
1차 ‘시선들’

 

 

 

 

ㅇ 회의명 : 《문장 웹진》 2021년 기획 연속좌담 ‘등단’ 1차
   - 소주제 : 시선들
ㅇ 일 시 : 2021년 3월 19일(금) 15:00~17:30
ㅇ 장 소 : 아르코미술관 3층 세미나실
ㅇ 참여자 : 김덕희 소설가(《문장 웹진》편집위원/사회), 작가지망생 4명
   ※ 1차 좌담 참여자는 《문장 웹진》 자체 설문조사( ́21.1.13~2.10/총 29일)에서 좌담 참여 의사를 밝힌 응답자 중 선정하였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명 및 신상 관련 정보는 공개하지 않음.

 

〈개회〉

 

김덕희: 반갑습니다. 저는 소설 쓰는 김덕희라고 합니다. 《문장 웹진》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면서 ‘등단’을 주제로 총 4회차의 좌담을 기획해 봤는데요, 그 1회차로 꾸준히 등단을 준비하고 계시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등단제도에 대해서 많은 의견이 있으신 분들을 패널(Panel)로 모셔서 말씀 듣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아무런 형식과 틀에 제약을 받지 마시고 마음껏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시작하도록 하죠. 아마 독자들은 여러분이 어떤 분야에 주로 투고하셨는지, 또 얼마나 투고하셨는지 이런 걸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도란: 안녕하세요. 저는 국문과 졸업하고, 이제 석사 들어가서 또 국문학 전공하다가 지금은 영상 미디어 콘텐츠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학부 입학 전부터 혼자 글을 써서 투고를 좀 했고요. 그런 글들을 모아서 대학 입학사정관제로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대학에 합격해서 그 이후에도 계속 꾸준히 소설 쪽으로 투고를 했고요.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시로 바꿔서 이제 투고한 지는 3~4년 되는 것 같습니다.

 

파란: 저는 소설을 주로 쓰고 있고요. 처음에 소설을 쓰게 된 건 순수문학이라 불리는 장르보다, 제가 고등학교 때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장르문학을 썼고요. 장르문학을 써서 출판도 했고, 20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순수문학이라 불리는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투고를 한 지는 10년이 넘었죠. 정확히는 12년째 되어 가고, 투고 횟수는 사실 국내에 소위 메이저라 불리는 데는 다 넣어 본 거 같기는 해요. 제일 많이 넣었을 때는 군대 가기 전에? 제가 군대 가기 전에 등단을 하고 싶어서 그때 썼던 소설을 싹 모아서 서울에 있는 모든 신문사에 다 보내 보고 가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그렇게 계속 해왔고, 최근에는 가정도 이루다 보니까 횟수는 줄었지만 2~3년 동안은 어쨌든 1년에 1~2편, 1~2곳 정도는 계속 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파도: 저는 시를 쓰면서 문예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을 입학했는데요. 사실 고백하자면 당시에는 대학 입시를 목표로 백일장을 다니고 글을 더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에는 등단에 크게 염증을 느꼈고, 학사 경고를 여러 번 받아서 퇴학 위기에 처할 때까지 학교 공부를 소홀히 했어요. 문학으로부터 완전히 거리를 둔 지경에 이른 거죠. 졸업 후에는 문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다가 어느 작가분의 수업을 듣게 되면서 줄곧 3~4년 등단을 준비했는데 또다시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더라고요. 수험생의 입장으로.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근래 2~3년은 투고를 한 적이 없고요. 같이 스터디모임을 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등단을 했고 지금은 기성 시인이 되었는데, 등단을 해도 시집을 계약하기는커녕 청탁을 받기조차 어려운 현실을 목격하면서 등단에 대해 더 큰 회의감을 갖게 된 상황입니다.

 

너울: 저는 고등학교 때도 이과였고, 대학교도 이공계를 다녔는데요. 수학, 과학을 좋아하면서도 학창 시절부터 흔한 문학소녀였고, 그러다가 투고라는 개념을 고등학교 때 알게 돼요. 고등학교 때부터 공모전을 목표로 순수문학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학부 때 국문과 복수 전공을 하고, 아예 이쪽으로 마음을 잡았어요. 문창과도 한 번 발 넣었다가 빼고, 그리고 국문과 석사를 작년에 졸업했고요. 그냥 되게 오랫동안 읽고 써왔던 거 같아요. 수험생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제가 작년에 딱 수험생 마인드로 살았거든요. 등단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진짜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밤까지 7시간 딱 쓰는. 그렇게 살아서 작년에 한 10개 정도 투고를 했고, 그중에 1편이 최종심까지 올랐는데 어쨌든 잘 안 되었고, 그래서 이제 소진이 된 것 같아요. 번아웃(Burnout Syndrome)이 됐고, 질려버렸고, 올해는 또 그렇게 못 하겠더라고요. 겨우 1년 했다고. 이제 막 ‘드라마를 써볼까?’ (웃음) 다른 분야에 눈 돌리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김덕희: 주로 어느 분야에…….

 

너울: 아, 전 소설 쓰고 있습니다.

 

도란: 의도치 않게 소설 쓰시거나 쓰셨던 분들. (일동 웃음)

 

김덕희: 먼저 제가 조금 말씀드릴 게 있는데, 공교롭게 남성분 두 분, 여성분 두 분이 모이셨고요, 시도 두 분, 소설 두 분이네요. 그리고 사실 여러분 중에 제 후배가 왔어요. 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익명으로 설문을 진행했고 응답자 가운데 좌담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들에 한해 마찬가지로 익명으로 의견서를 접수해 그 가운데 이렇게 네 분을 모셨습니다. 그 많은 응답자 중에 이렇게 후배를 만나니 세상 좁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말씀 듣고 보니까 다시금 여러분들이 여기에 자리해 주신 게 감사하네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등단이란 개념이나 등단제도에 대해 처음 접하신 게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당시의 느낌이나 생각이랄지, 그런 것도 각자 달랐을 것 같은데요.

 

너울: 출판사 누리집을 어릴 때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누리집에 공지사항, 도서, 저자 뭐 이렇게 있으면 공모전과 투고 이런 난이 있고, 전 ‘문학동네’를 많이 들어갔는데 ‘문학동네’에 상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러면 그 상 하나하나 들어가 보면서 계획을 짜고, 그러니까 저한테는 등단이라는 게 그냥 일종의 대회?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글짓기 대회 있듯이, 양성평등 글짓기, 뭐 독후감 글짓기 있듯이 그냥 수상을 할 수 있는 기회고, 그걸 통해 이력이 한 줄 생기는 기회고. 그냥 상을 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김덕희: ‘문학동네’가 상금이 세죠?

 

너울: 그런가요?

 

김덕희: 타 공모랑 비교해 보면 센 축에 들어가는 거 같아요. 좌담 전에 설문을 다 하셨겠지만 어떤 형식이나 종류의 등단 매체를 선호하는지 혹은 기피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를 묻는 항목이 있었죠. 상금의 규모도 선호도에 영향을 꽤 주더군요. 그러면 이런 것들과 연관 지어서 등단제도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던 때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떠한 인식의 변화 과정을 겪으셨는지까지 함께 말씀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파도 님은 등단제도…….

 

파도: 저는 아무래도 문창과에 진학을 하다 보니까 등단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고, 문창과 안에서도 그런 부류들이 나뉘는 것 같아요. 다들 글을 써서 대학에 들어왔지만 순수문학을 더 공부하고자 등단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드라마라든지 장르문학이라든지 순수문학을 약간 비껴간 그런 문학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는 문창과 안에서 주류가 되는, 등단을 준비하는 친구들하고 어울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덕희: 이른바 주류라는 그 친구들에게 어떤 느낌을 받으셨던가요?

 

파도: 문창과 안에 있는 학회에 참여하거나 집행부를 맡아서 하는 친구들이 소위 인싸(Insider)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김덕희: 저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 국문과나 문창과 안에서 등단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뭐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만, 복수 전공으로 창작 수업을 듣는 친구들의 시각에는 굉장한 자신감이나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것 같더라고요. 성골 의식이 있는 것 같다고까지 얘기하던데 농담만은 아니었겠죠. 저 또한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파도: 문창과 안에는 조금 배타적인 분위기가 있는데요. 굉장히 안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타과생, 전과생, 편입생들에게 거리를 두는 거죠. 복수 전공을 하거나 부전공을 해서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작품은 합평을 할 때도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요.

 

도란: 카르텔(Cartel)이죠. 카르텔.

 

김덕희: 복수 전공자들과 전공자들의 창작 수업을 따로 운영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죠. 차차 얘기를 나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전에, 파란 님? 조금 독특한 경우네요. 장르문학을 시도하다가 본격문학, 이른바 순수문학, 이쪽을 경험을 하고 투고를 시작하셨다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파란: 장르문학은 제가 처음 책으로 써낸 게 18살 때거든요. 권수로 따지면 5권까지 진행을 했는데, 쓰다 보니까 저랑 너무 안 맞는 거예요. 너무 정신적으로 소모되고 매일 뭔가를 쓰기 위해서, 편수를 채우기 위해서, 독자들을 계속 불러 모으기 위해서 계속 쓰다 보니까 저랑 일단 안 맞았습니다. 어렸을 때 인상 깊게 봤던 작품이 『반지의 제왕』 이런 거다 보니까 소설 그 자체가 좋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프로로 전향하면서 도저히 저의 글쓰기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장르문학은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 내려놓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고요. 어쨌든 그래도 소설을 쓰는 건 좋으니까 계속 쓰게 되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 처음 질문하셨던 것처럼 순수문학을 접하게 되고, 알게 되고, 체계화하게 된 것에 대해 말씀드려 볼게요. 먼저 등단이라는 단어는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스며든다, 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초·중·고등학교 때 우리가 흔히 배우는 시, 소설이라는 문학의 작가들 프로필을 보면 어디를 통해서 나왔고, 이런 것들이 다 나와 있기 때문에 ‘아, 대부분의 작가들이란 어디를 통해서, 상을 받고 나오게 되는구나.’라는 개념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심어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권위라는 것에 대한 강제적인 주입 또는 세뇌라고 봐도 될 것 같고요. 그런 식으로 문학이나 문단에 대한 선입견을 쭉 쌓아 오게 되는 거죠. 그리고 결과적으로 제가 등단을 위해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20살 때였는데, 제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어요. 그런데 제가 나온 학교에는 시, 소설 쓰신 선배님들도 거의 없고, 실제 학교 분위기도 창작에 대한 열의가 전혀 없었어요. 국문과를 희망해서 온 친구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는 학교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주위에 글 쓰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던 거죠. 학교 내에서 창작수업도 문예창작 수업이라고 4학년만 들을 수 있는 교양과목 하나밖에 없었어요. 아무튼 그런 상황이었는데 어쨌든 저는 계속 소설을 쓰고 싶어서 국문학과에 들어왔기 때문에 문예창작이 4학년 대상 수업인데도 1학년 때 신청을 해서 들어갔어요. 그때 그 수업을 강의하셨던 소설가 선생님이 계셨는데, 첫 수업 끝나고 제가 쫓아가서 “저 소설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그러면 학교에 혹시 비슷한 친구들 있으면 모아 봐라. 그러면 내가 좀 봐주겠다.”라고 하게 되었고, 그 뒤로 돌아다니면서 창작에 관심이 있는 선배들을 끌어 모아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고, 그렇게 문단 문학에 발을 들여놓게 됐죠. 그 뒤로 그 선생님도 보통은 그렇게 하고는 대충 던져 놓을 수도 있는데 거의 매주 2년 가까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그때 이제 전반적인, 소위 말하는 순수문학과 등단, 이런 것들을 접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습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덕희: 작가 소개에 보면 어디어디 등단, 몇 년도에 등단, 이렇게 꼬박꼬박 적혀 있으니까, ‘등단하지 않은 작가는 없나?’ 그런 생각도 한번 해봄 직하죠. 현재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는 또 되짚어 봐야 될 일인 것 같습니다. 도란 님은 소설 쓰다가 시로 바꾸신 케이스인데, 데뷔를 위해서 투고하시면서 계기가 있었나요? 어떻게 바꾸시게 되었는지.

 

도란: 저도 약간 파란 님이랑 비슷한데 저도 장르문학 쪽에 관심이 많아 중고등학교 때 계속 찾아서 공부도 하고, 그때는 지금처럼 나무위키나 그런 게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보니까 알음알음 동호회 같은 데 가서 정보 얻고 하다가, 저는 고등학교 이과였거든요. 그래서 대학을 좀 늦게 갔습니다. 24살에 대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전에 군대를 먼저 가서 군대에서 우연치 않게 인문학 전공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 일종의 군용 전산망이라고, 인트라넷이라고 있거든요. 거기에 제가 썼던 글들, 이런 걸 연재를 해보고, 또 거기에 있는 인문학 전공자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하면서 20대 아웃사이더(Outsider)에 대한 옴니버스(Omnibus) 소설을 하나 써보게 되었어요. 그걸 쓰고 여기저기 보여줬는데 “이건 책으로 나와도 괜찮겠다.” 하는 반응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판사들에 무작정 투고를 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대체로 오는 메일들은 ‘우리 출판사와의 방향이 맞지 않아’ 이런 식으로 거절을 많이 하고, 어떤 데는 대놓고 ‘수상 이력도 없고, 관련 전공자도 아니기 때문에 어렵다’, 오히려 관심을 보이는 데는 제가 고졸이고 이과 전공자인데도 소설을 쓰고 있다는 이런 캐릭터에 관심을 보일 뿐이지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일종의 오기가 생긴 것 같아요. 글에 대해서 그러면 한번 전문적으로 배워 보자 하는 그런 오기가 생겼고, 대학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 들어올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출판사에서 계속 이렇게 거절을 당했던 이유가 등단이라는 제도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하면서 좀 다른 사람들이랑 다른 방향으로 등단이라는 걸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김덕희: 수상 이력도 없고 관련 전공자도 아니라는 이유로 출간이 어렵다? 참 씁쓸한 맛을 남기는 피드백(Feedback)이군요. 책을 내고 싶으면 등단을 하거나 관련 학과를 졸업하라는 얘기 같으니까요. 혹시 그래서일까요?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의 심사 경위에서 응모작이 예년보다 늘었다거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었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접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등단제도를 향한 관심이 왜 이렇게 식을 줄 모르고 지속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란: 일단 많이들 공감하실 것 같은데 등단제도는 일종의 자격증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사법고시를 통과하는 것처럼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나서 ‘내가 작가라는 타이틀(Title)을 거머쥔다.’라고 했을 때 그다음부터 오게 되는 일종의 혜택들? 뭐 원고청탁이 온다든가, 내지는 문화 예술인 자격을 가질 수 있게 된다거나, 그런 여러 가지 시너지(Synergy) 효과들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다들 등단제도, ‘현재로서는 그걸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권위 있는 제도 같은 게 많이 없다 보니까 많이들 지원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요. 작품집 출간을 시도해 보는 것도 등단을 했을 때 훨씬 유리하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자료조사하고, 통계 보고, 보고서 쓰고 이런 거다 보니까 찾아봤어요. 고등교육통계조사1)를 찾아봤는데 2020년 인문학 전공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학과들이 있는데 의외로 졸업자가 제일 많은 학과가 영문학과고요. 한 해에 10,000명 정도 나오고요. 그다음이 국문학과 7,700~7,800명 정도 나오고요. 그다음이 중문학과인데, 한 5,000명 정도거든요? 나머지 어문계열 전공들은 그 이하고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국문학과 졸업자 7,700명 중에, 10명 중에 1명만 계속 졸업 후에도 글을 쓴다고 가정하면 매년 거의 700~800명의 문청들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고요. 이거를 시, 소설, 평론 정도로 쪼갠다고 하더라도 매년 수백 명의 문청들이 쌓이고, 그렇지만 해마다 뽑는 신인은 장르별로 30~40명 내외고, 그러니까 ‘적체 현상이 계속 벌어진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둘째로는 문창과를 찾아보니까 저희가 국문과가 한 80개 되고요. 문창과는 25개 내외? 그런데 문창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이 된 게 1990년대 중후반부터로 약 30년 정도 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2)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현직에 있는 작가들도 그렇고 주변의 이야기들도 그렇고 아카데미 시스템 안에서 테크닉적으로 완성된 사람들이 많이 배출이 되다 보니까 일종의 상향평준화는 유지되면서 뽑는 숫자는 정해져 있으니까 계속해서 인원들이 많아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1)  「고등교육법」 제11조의 3 및 관련 법령에 따라 연 2회(4월 1일, 10월 1일) 실시
   2)  국내 최초 문예창작과 설립은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으로 1973년 재정난으로 중앙대학교에 인수되어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으로 개편되었다.

 

너울: 저는 사실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투고작이 점점 증가한다’,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끊이질 않는다’라는 이런 말들이 비단 한국 순수문학에 해당되는 말들이 아니라 그냥 모두가 쓰고 싶어 하는 세상인 거 같아요. 순수문학뿐만 아니라 웹소설에서도 지금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읽는 사람의 수랑 쓰는 사람의 수가 똑같다.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것도 진입생들이 지금 계속해서 늘고 있고요. 습작생 수는 날로 늘고, 또는 ‘브런치’나, ‘클라우드 펀딩’, 이런 데서도 쓰는 사람들은 늘어요. 모두가 읽고 싶어 하지 않고 쓰기만을 원하는 것 같아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느는 현상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고요. 그런 흐름 속의 하나일 뿐이지 저는 이게 한국 순수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고 보기에는 조금 민망한 측면이 있지 않나, 한국 순수문학의 독자 수 증감과는 별개로 독자들 중 쓰고자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고 있다 정도로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덕희: ‘적체현상’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 맥락에 이어지는 말씀인 듯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관심과 성원(?) 이후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등단 이후’를 아직 경험하기 전입니다만 경험담은 많이 들어 보셨겠죠. 여러분의 선배나 친구들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던가요? 과연 약속된 땅이 펼쳐진다고 하던가요?

 

파란: 등단 이후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저는 당연히 아직 등단을 못 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는 못 하겠지만 저와 같이 소설을 공부했던 친구들 중에서 등단한 친구들도 있고, 여전히 계속 같이 글을 쓰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등단 하나만 못하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쓴다고 해도 등단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해요. ‘아마 그 말은 굉장히 적합한 말이 아닐까.’라고 저도 느끼고 있고요. 사실 등단 이후에 사람들에 대해서 앞서 보내주신 질문지에서도 답변을 했는데, 사실 초기에 막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이럴 때는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좋은 꽃길이 펼쳐져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제 10년이 넘게 글을 계속 쓰면서, 등단을 준비하면서부터는 딱히 바라는 게 없어진 것 같아요. 등단을 해도 내 마음이? 삶이? 바뀔 거라는 생각도 안 들고요. 실제로 제 주변의 친구들도 “등단해서 난 정말 좋았어.” “난 정말 내가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졌고, 인정해 주는 사람도 많고, 날 찾아주는 사람이 많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1명도 보지를 못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바라는 건 없어요. 그렇지만 단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가 지금 나가서 글을 쓴다, 라고 하면 다들 그냥 취미생활 하는 줄 알아요. 취미 생활 하는 줄 알고 그냥 “뭐, 판타지 써?” 이렇게 물어보죠. 그런데 적어도 등단이라는 걸 거치면 조금 더 내가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이렇게 해서 “프로 소설가로 활동 중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등단을 하지 않으면 당당할 수 없느냐, 고 자신감에 대한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모두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무리 자신감이 넘쳐도 주위의 인정이 없다면 그건 하찮은 독선이나 아집 정도로밖에 비치지 않거든요. 조금 전에 라이선스(License)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분명 라이선스는 맞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보장해 줄 수 없는 라이선스지만요. 그런데 이 라이선스가 또 없으면 안 되는 거죠. 결국 등단이라는 것은 단순히 라이선스라는 말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10년을, 20대를 통째로 다 갖다 바쳤는데, 그거를 단순히 자격증이다, 라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라이선스가 맞긴 하죠.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말이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죠. 그만큼 복잡하다는 거예요. 단순하게는 ‘애증’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네요.

 

김덕희: 처음부터 등단 이후의 삶에 별 기대가 없으셨는지, 투고를 하시다 보니, 그리고 또 주변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다 보니 그렇게 바뀌셨는지…… 어떻습니까?

 

파란: 일단 처음에 등단이라는 걸 준비할 때는 그 이후의 삶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죠, 사실. 이후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은 가야 하니까. 거기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도달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그 이후를 볼 여력도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조금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제 삶도 항상 글 쓰는 거에만 골몰하다가 주변의 여러 가지 것들이 끼어들고, 시야가 넓어지고, 주변에 하나 둘씩 등단을 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그 이후라는 것이 보기 싫어도 보이게 되는, 그렇게 변해 왔던 것 같습니다.

 

김덕희: 말씀 듣다 보니까 제가 좀 부끄러워집니다. 저 또한 10년 이상 투고하다가 등단한 경우인데 상당히 오랫동안 등단 이후의 보상 같은 걸 꿈꿨거든요. 낙선을 자주, 오래 겪으니 그런 꿈은 자연스럽게 내려놔지더군요. 선배들이 그렇게 헛된 꿈은 갖지 않도록 코치하기도 했고요. 계속해서 말씀을 들어 볼까요?

 

도란: 일단 저도 같이 스터디를 하면서 주변에 시인이 된 사람도 많고, 소설가가 된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첫째로는 등단을 한 이후에, 자기가 1~2년 사이에 잊히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는 것 같고요. 잊힌다는 건 더 이상 청탁이 들어오지 않는 시점이 발생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워낙에 많이 듣다 보니까 등단 이후에도 결과는 없다는 거에 대해서 오랜 시간 글을 쓴 분들은 다들 알고 계시는 것 같고요. 이제 한편으로는 작년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예술인 고용보험’3)이었던 것 같거든요. 제도적으로 보면. 그리고 뭐 여러 가지 서울문화재단이나 내지는 제도적으로 예술인을 보호해 주는 몇 가지 장치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문학판에서는 등단을 해야 되고요. 그다음에 등단을 한 이후에도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몇 년 사이에 문예지에 몇 편을 발표를 해야 되고, 그러니까 등단을 못 한 저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똑같이 글을 쓰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건 사실인데 등단을 한 사람들은 그런 제도적 혜택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원을 해볼 수 있고, 문청 입장에서는 그런 지원을 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는 거잖아요. 구분선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저는 더더욱 라이선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많이들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주변에 속된 말로 “그래도 너희는 등단했잖아.”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미안해하죠.

   3)  2020년 12월 8일 시행된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은 「예술인복지법」에 따른 예술인도 고용보험법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일명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라 부르고 있다.

 

김덕희: 그렇군요. 나는 쓰고 있는데, 그럼 이건 예술 활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모순을 말씀해 주신 듯합니다.

 

파도: 몇 마디만 덧붙이고 싶은데, 제가 들었던 문단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이었어요.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지인이 “누구한테 찍히면 큰일 난다. 누구한테 잘 보여야 시집 계약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2021년에도 현재 진행형인 문제이구나 싶어서 기함하듯 놀란 적이 있어요. 또 시상식에서 청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 자리에 출판사 관계자와 어르신들이 오기 때문에 신인들은 어떻게든 그들 앞에 가서 “저는 어디서 등단한 누구입니다.”라고 인사를 해야 한다는 거죠. 사실은 그런 시상식의 정보를 알고 초대 받을 수 있는 것조차도 등단을 거쳐야만 갈 수 있는,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김덕희: 저도 지금 들으면서 놀랐는데요. 자성의 목소리가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여전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군요. 문단의 불공정한 관행이나 권력 구조 문제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런 얘기가 등단하지 않은 분들의 귀에까지 닿고 있다면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겠죠. 지금 마침 말씀해 주셨는데, 등단이라는 라이선스를 따고도 과제가 있는 것 같아요. 문단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될지. 그게 지금 말씀하신 대로 ‘기성 문인들, 선배들한테 잘 보여야 된다. 얼굴을 열심히 알려야 된다.’ 그런 문제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까요? 구체적으로 ‘잘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다고 하던가요?

 

파도: 저는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아, 문단에서 한 자리씩 하고 계신 어르신들한테 예쁨 받는 사람일수록 결국에는 살아남는구나.’라고 하는. 물론 작품의 질적인 부분도 따라 주어야 하겠지만요. 요즘에는 문인들끼리 교류하는 술자리가 거의 없어서 대놓고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젊은 작가들이 침묵하는 것으로써 잘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등단에 대한 문제제기가 2015년 정도부터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이렇게 6~7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젊은 작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태를 주목해 보고 싶어요. 왜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페미니즘(Feminism)이니 환경 문제니 이야기를 하는데, 등단 문제에 대해서는 다 입을 다물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무래도 저는 혹시나 쓴 소리를 하면 그 자체로 찍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어요. 찍히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청탁 못 받는다’, ‘시집 계약 못 한다’는 식으로 이어지다 보니까 문단의 어르신과 출판사에게 잘 보이고자 등단 문제에 대해 선택적 침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덕희: 오늘 여러 패널께서 말씀해 주신 것들이 현장에서 던지는 질문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좌담들에서 또 논의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등단제도로 돌아가 조금 더 들어가 보죠. 응모작을 모집하는 공고에서부터 결과 발표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어떻게 평가하실지 궁금해집니다.

 

파란: 저 같은 경우에는 신춘문예도 그렇고 문예지도 그렇고 지금 현행되는 것이 저는 그렇게까지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이게 어차피 신춘문예든 문예지든 둘 다 평가하기 위한 경연 대회잖아요. 회사로 보면 최종 면접을 보는 거랑 마찬가지인데 거기엔 형식이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다만 신춘문예 같은 경우에는 딱 1편만 뽑는데, 그렇기 때문에 한 해에는 꼭 “아, 이런 작품이 등단이 될 수 있어?”라는 작품이 무조건 나오는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을 장기간 준비해 온 사람들이 봤을 때, “이것도 되는데.”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동시에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서 당장의 울분이 터져서 “제도가 잘못되었다.”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인 것 같고요. 그래서 신춘문예는 사실 심사하는 작품의 편수를 더 늘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반면 문예지 같은 경우에는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에 2편씩 심사해도 신춘문예보다 현격히 적은 작품이 출품되기 때문에 검토할 수 있겠지만, 신춘문예는 사실 꼭 등단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과거 문학소년, 소녀로서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내기도 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기 때문에 2편씩 받아 봤자 보기 힘들 거라는 생각도 든다는 거죠. 저도 들은 거지만 실제로 신춘문예 심사할 때는 출품작이 너무 많으니까 나눠 보다 보면 중간 즈음부터는 심사위원들도 거의 졸기 시작하고, 막 졸다가 첫 장을 봤을 때, ‘이건 문장이 좀 눈에 들어온다’ 이러면 올리고, 이러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그건 출품작을 대하는 심사위원의 태도를 떠나 물리적인 한계라고 봐요. 하지만 이런 실태를 두고 제도가 잘못되었다, 더 어떻게 바꿔야 된다는 논의를 하기에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신춘문예든 문예지든 지금 문단의 제도 방식 자체가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물론 심사위원도 조금 더 늘리고 재정도 늘려 가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덕희: 잠깐 말씀하신 부분을 정리해 보면, 지금 공모제에 대해서 공고나 이론적인 제도, 절차에 대해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도란 님도 하실 말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도란: 일단 저도 일정 부분 파란 님 의견에 동의를 하는 게 인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출판사 내지는 신문사도 마찬가지로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저희 응모자들이 돈을 내가면서 어떤 서비스를 신청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신문사나 잡지사 같은 곳에서는 작품만 받아서 열심히 검토를 하고, 그 이후에 심지어 상금까지 주면서 누군가에게 데뷔의 기회를 주는 것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이 시스템 자체가 파란 님처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다만 저는 등단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편입니다. 등단을 하지 못하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문청 입장에서는 기회조차 받을 수 없는 구조가 문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사전 질문지 받고 나서 열심히 적었던 게 뭐냐면 매체들에서 등단한 사람들 특집, 신춘문예 특집, 신인 특집, 이런 것만 진행할 게 아니라, 조금 더 예를 들면 《문장 웹진》도 그렇고 서울문화재단의 《비유》도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받아서 설령 등단을 하지 않았더라도 작품만 괜찮으면 보여줄 수 있는 기회들을 마련해 준다면 등단제도의 불합리한 점들을, 결국에는 등단을 하고 싶다는 건 내가 어딘가에 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여러 출판사들이나 신문사들에서 조금 배려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두 번째로는 아무래도 1등이 모든 영광을 독차지하는 시스템이다 보니까 그 점에서 조금 문제가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영화제나 사진전처럼 일정 심사 단계 이상에 올라간 작품들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공개를 하겠다, 기명으로 할지 익명으로 할지는 매체에서 알아서 결정할 부분이겠지만, 그런 기회들이 많이 생긴다면 등단제도에 대한 불합리한 것들이 완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파도: 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이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외부에서 진행되는 창작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다시 환기를 하느라고. 수업 중에 신춘문예나 신인상 심사에 대한 후일담을 많이 듣는데요. 이를테면 “요즘 심사를 해보니 경향이 어떻더라. 그러니까 이렇게 써봐라.”고 한다든지, “이 작품은 괜찮은데? 내가 심사하면 수상권에 넣고 싶어.”라는 식으로요. 그 선생님이 대단한 의도를 갖고 말씀하시지 않았더라도 수업을 듣는 입장에서는 선생님께 권위를 부여하게 되고,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고, 결국 그 선생님이 원하는 방향대로 쓰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신춘문예나 신인상이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당선작들이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또 한 선생님의 수업을 1~2년씩 오래 듣다 보면 그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친분이 형성되면서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어요. “선생님, 저 이번에 어디에 낼 건데 봐주세요.” 그런데 만약 그 선생님이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신춘문예나 신인상을 심사하는 작가라고 한다면 이건 개인적으로 예심을 봐달라고 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고 봐요. 그 선생님은 “이건 어디에 내고, 이건 빼.”라는 식으로 족집게처럼 봐주시거든요. 여기서 봐준다는 건 눈으로 구경한다는 게 아니라 직접 첨삭을 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앞선 두 분 말씀에 반발하는 이유는 등단이라는 구조 자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맥락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김덕희: 네. 충분히 검토할 이야기죠. 등단제도가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주면서 창작의 의욕을 계속해서 고취시키는 건 좋은데,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두운 면이 생기는 건 우리가 분명히 보고 있는 현실이죠.

 

너울: 저는 심사 과정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은 일단 많이 들어요. 특히 신춘문예에서요. 말씀하신 대로 저는 이 등단, 그러니까 모든 신춘문예, 신인상 이런 게 다 자선사업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신문사들이 대체 왜 소설가를 뽑아서 돈을 줘야겠어요. 아주 예전에는 신문사들이 소설가를 뽑아서 연재소설을 싣고, 그 연재소설로 부수가 올라가니까 그런 걸로 돈이라도 벌었지만 이제는 신문사들이 더 이상 소설가를 뽑을 이유가 없는데 하고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일단 이 사람들이 전통 살리기 프로젝트라든가 자선사업, 사회봉사의 일환으로서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라는 생각에서, 고맙지는 않지만 뭔가 유지하고는 있구나, 이런 느낌은 받고 있어요. 그런데 다만 개선의 의지는 없어 보여요. 곧 사라질 것이다. 곧 폐지할 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돈 들여서, 에너지 들여서, 인력 들여서, 비용 들여서 이걸 바꿀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몇 십 년째 똑같은 방식으로 종이로 우편으로 받고 있고, 대충 심사위원 조금 넣어서 짧은 기간에 아무거나 뽑고 그런 식으로 관행만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기억에 남는 심사 일정 중에 하나가 2019년도에 제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냈는데, 그때 12월 12일에 공모가 마감이었어요. 그때 800편이 접수되었어요. 《세계일보》 단편에. 그런데 17일에 예심이 끝났대요. 그런데 예심 심사위원이 2명이었어요. 5일 동안 800편을 2명이서 본 거예요. 계산을 해보면 하루에 80편을 봤단 이야기거든요. 말이 안 되잖아요. 정말 한 문단이나 읽었으면 다행이에요. 그냥 읽고 ‘괜찮네. 느낌 온다’, ‘안 온다’ 이렇게 나눈 거죠. 그러니까 그때 당선된 분에 대한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이 진짜로 좋은 소설을 뽑기 위한 과정이었냐, 라고 생각을 하면 신뢰가 안 생기는 거죠. 그런 타이트한 일정과 최소한의 인력 투입은 습작생들의 간절한 마음을 기만하는 자세이지 않나…… 이제는 로또 같은 거라 생각해요. 한 50편 정도 안에 내가 들면 된다. 그 안에 들 정도의 실력을 쌓기 위해서 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고, 내 운명이나 사주에 따라 내 차례가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문제다. 이 정도의 마음으로 등단에 지원을 하는 것이지, 그들이 진짜로 최고의 소설을 뽑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신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파란: 저는 솔직히 아까 하셨던 말씀 중에 공감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데, 예를 들면 신문사 같은 경우에 전통 살리기라고, 그런 느낌을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저는 신문사가 쓸데없이 자선사업을 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한 이권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신문사가 소설을 뽑아서 연재시키는 것도 아니고 옛날처럼 작가를 활용하는 건 아니겠죠. 그렇지만 문단이라는, 외부적으로 발언권이 센 어떠한 집단에 자기네 권력, 자기네 입장을 대변해 주고 좌지우지할 어떤 다리를 놓아 놓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때때로 그들이 원하는 입맛에 맞춰서 발언해 줄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들에게 미리 발을 걸쳐 놓기 위해서 신춘문예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상금은 늘 제자리걸음이고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것도 있고, 또 찬밥 대우 받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놓지 않는 이유는 그거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도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주간지에서 ‘최근 등단 10년차 작가들 얼마나 살아남았나’4) 그런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제 기억으로는 3~5% 내외가 전업 작가로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지난 10년간의 등단자 중에 10%만 여전히 글을 쓰고, 90% 가까운 작가들이 전부 글을 쓰지 않는다, 라고 봤거든요.

   4)  “등단 10년차 작가, 어떻게 살고 있나”, 시사IN 누리집, 2012년 2월 24일 작성, 2021년 3월 30일 접속,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23

 

김덕희: 말씀 중에 죄송한데, ‘살아남는다’는 건 어떤 뜻일까요?

 

도란: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데뷔 이후에 꾸준하게 청탁을 받는 것이 일단은 살아남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니까 수많은 작가들이 등단 이후에도 그런 기회를 꾸준히 얻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에서 살아남는다는 표현을 했고요. 어쨌든 그러면 지난 10년 동안 데뷔했던 작가들 중에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이 얼마나 남았나, 라고 생각을 해보면 저는 오히려 거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짜 거슬러 올라가야 지금 김영하 작가 정도? 김영하 작가도 신춘문예로는 아니죠?

 

김덕희: 아니죠.

 

도란: 그러니까 오히려 반대로 기존의 원로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문인들이 신문사나 이런 곳에 새로운 오피니언 리더를 발굴하기 위해 이 제도를 유지해 달라고 요청하는 주체는 아닐 거 같고요. 하지만 원로의 발언권이 아직 무시 못 할 수준은 아니니까 그분들의 일종의 심기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걸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신문사에서는 계속 신춘문예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첫 번째 의문이 있고요. 이제 두 번째로는 저희가 아무래도 대화 자체가 국문과 전공을 했거나, 복수 전공을 했거나, 이런 아카데미 안에 속해 있는 입장이다 보니까 저희 입장만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거 같은데, 넓은 측면에서 보면 이제 파란 님도 그러셨고 저도 마찬가지지만, 국문과에 진입하지 않은, 아카데미 안에 들어오지 않고 혼자 글을 쓰는 분들도 굉장히 많거든요? 저는 우체국 갈 때 한 번씩 깜짝깜짝 놀라는 게 그 시즌이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세요. 오셔서 거기서 같이 접수를 하고 계세요. 슬쩍 보면 한 10개씩 신문사에 내시고. 그런데 신춘문예가 없어진다, 라고 가정을 하면 저희는 기껏해야 10년, 20년 글 썼지만 그분들은 정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써오셨을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분들이 등단제도가 없어진다고 생각을 했을 때 많은 항의 같은 것들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참, 최근에 《중앙일보》 그게 없어졌잖아요. 혹시 내부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나요? 문단 내부에서도 의견이 많았을 것 같은데.

 

김덕희: 그 문제도 2차, 3차, 4차 좌담에서 대답을 기대하는 걸로 하죠. 저도 굉장히 놀랐어요. 저희 편집위원들이 등단이라는 주제로 좌담을 기획한 계기가 된 일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요. 등단제도 하나가 그냥 없어지고 마는 게 아니라 판이 흔들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침 그 일에 대해 말씀을 여쭈어 보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중앙신인문학상〉이라고 하면 상금도 굉장히 크고 상당히 많은 습작생들에게 주목을 받던 제도입니다. 그게 한순간에 예고도 없이 사라졌어요. 어떻게 보셨나요?

 

파란: 제가 봤을 때는 그냥 순수문학이 이 사회에 가진 영향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걸로 점점 축소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어요. 그러니까 이전에는 어떤 문학이라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거에 문단이 거의 강성했고, 거의 주류였고 그래 왔다면 이제는 그런 문장, 글로 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이 확대되었고, 오히려 그들이 내뱉는 말들이 훨씬 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굳이. 사실 재정적 문제라고 하지만 그들이 정말 고작 그 정도에 흔들릴 재정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아니라고 보고, 결국에는 이참에 잘 됐다, 이러한 핑계가 생겼으니까 ‘버리자. 이들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여기에 쏟았던 힘을 다른 데 쏟을 만한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됐다. 버리자.’ 하고 그냥 냉큼 버린 것 같은, 그 정도로밖에는 해석이 안 되더라고요.

 

도란: 여담인데, 100만 유튜버는 기사화가 되는데 이제 누구 작가가 이야기한 건 기사화 되지 않잖아요? (웃음)

 

김덕희: 그렇죠. 참 씁쓸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어떤 진단도 섣부른 것 같습니다. 힘든 시기에 글을 계속 쓰고 계신 것 같은데요. 어느새 한 시간도 훌쩍 지났네요. 우리 한 10분만 쉬었다가 이어 가도록 할까요?

 

 

(휴식)

 

김덕희: 자, 그러면 이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등단제도 자체의 폐해는 아니더라도 등단제도를 악용한 폐해들이 있지 않나요? 등단제도를 오래 운영해 온 여러 기관의 공모 안내나 심사 경위, 심사 결과 발표,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등단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 그리고 그분들을 지도하시는 분들이 일종의 팁? 당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요령?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 같고요. 어떤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파도: 아까 심사위원이 며칠 만에 800편을 봤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제가 들었던 공법들을 적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선생님께서는 시 안에서 사용되는 아주 구체적인 비유를 들면서 “이런 표현 3개 이상 쓰면 난 안 봐.”라고 말씀하시거든요? 수업을 오래 들은 사람일수록, 친분관계가 생길수록, 족집게 전수가 빈번하게 이뤄지죠. 그래서 수업에 더 의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그 선생님하고 친해져서 계속 비법을 전해 들어야 당선 확률이 높아지니까. 불편한 이야기지만 “어디서 당선된 누가 사실은 그해의 심사를 맡았던 누구의 제자더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퇴직한 어느 교수님께서도 “내 제자가 최종심에 올라왔는데 어떻게 안 뽑겠느냐.”는 이야기를 공공연한 자리에서 하신 적이 있고요. 저는 그 당선자들의 실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분들의 작품을 보면 어느 정도 인정을 하게 되고. 그런데 ‘등단이라는 과정 자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말 공정하게 이루어질까?’라는 의구심들이 있는 거죠.

 

도란: 저도 되게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학부생일 때랑 대학원생일 때 확실히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왜냐하면 학부생도 마찬가지고 대학원생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이미 거기에 수업을 하고 계시는 분들은 기성 문인이고, 많은 경우에 여기저기 예심을 들어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무기명으로 다 작품을 내기는 하지만 ‘어, 이 작품 기억에 남았는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하는 그런 생각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학교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저희 학교 같은 경우에는 미리 경고를 하세요. 두루뭉술하게. “어디에는 내지 마라.” “왜요?” 이러면 “그냥 거긴 내지 마.” 이러고 나중에 결과를 보면 심사위원으로 들어가 계시고. 이런 경우들이 저희 학교는 있는데 다른 학교들은 사실은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소설 쪽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시 쪽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돌죠. “누가 누구 수업을 들었다더라. 그래서 이번에 당선이 됐다더라.” 메이저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덕희: 지도한 제자를 뽑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심사하시는 분들도 이 문제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수준이 좀 안 되더라도 무리해서 제자를 뽑았을 때, 혹은 비슷한 수준의 작품이 당선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제자의 손을 들어 줬을 때 자칫하면 심사자 본인의 공신력이 망가질 수도 있는데 그걸 왜 감수하겠느냐는 변론을 더러 보고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파도: 그건 변명입니다.

 

김덕희: 변명. 단호하게. (일동 웃음)

 

파도: 왜냐하면 시 같은 경우 최종심에 3명 정도 올라가잖아요. 최종심까지 갔다면 실력은 비등하다고 봐요. 이제 거기서부터 인맥으로 갈리는 거죠. 어떤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자신은 일면식이 없지만 실력이 있는 A를 뽑고 싶은데 같이 심사를 보는 어떤 시인이 B를 가리키며 “내가 예전에 가르쳤던 애인데 믿을 만하다.”라면서 밀고 나갔고 결국 B가 당선됐다 하더라고요. 불과 몇 년 전, 아주 유명한 문예지에서 벌어졌던 이야기예요. 그래서 저는 ‘실력이 어느 정도 됐을 때는 인맥 싸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덕희: 그러니 유명한 학교로 입학을 하려고 애를 쓰고, 또 유명한 어떤 그룹에 포함돼서 더 공부를 하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그 기관이나 수업을 맡고 있는 분들이 좀 엉뚱한 언행을 하시고 그런다. 그런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겠죠. 과연 그러면 등단제도를 운영한 주최 측에서 이런 모습들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실제로 어떤 역할을,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후 좌담에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만 우리가 요청해 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요.

 

도란: 영화제를 계속 예로 들게 되는데, 사전 예고제 같은 거를 할 수는 있겠죠. 현재는 저희가 심사위원이 누군지 모르고 투고를 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미리 이번에 예심은 누가, 누가 들어가고 본심에는 누가, 누가 들어가는지 알 수 없으니까 지원자 입장에서 조심하기는 어려운 구조잖아요. 예를 들어서 ‘최종 심사에서 어떤 이해관계가 밝혀지면 당선이 취소될 수 있다.’라는 그런 조항을 넣어 주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아요.

 

파란: 이해관계가 있으면 탈락한다고 말하면 사실 한 다리씩 안 걸쳐 있는 사람은 없을 거 같은데요?

 

도란: 그렇죠. 어디까지를 이해관계라고 할 것인가 하는 여러 문제들은 있겠죠.

 

김덕희: 좀 의아한 점이 있었어요. 최종심을 보시는 선생님이 이 작품, 이 친구는 내가 믿을 만하다는 보증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 작품이 그 사람의 것인 걸 어떻게 안 거죠? 이름이 적혀 있나요? 아니면 그 작품을 미리 봤던 건가요?

 

도란: 특히 수업에서 미리 본 경우가 많죠.

 

파도: 그 선생님의 수업을 오랫동안 들었다면 작품이 조금씩 변형되었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봐요. 특히 시 같은 경우에는 글쓴이의 개성이나 정체성이 확 드러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작품을 오랫동안 봤더라면 모를 수가 없는 거죠. 요즘 문창과 교수가 심사위원을 겸업할 수 없도록 어떤 기준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저는 그걸 외부 창작 수업까지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성 작가들이 외부 창작 수업을 하시는 경우라면 아예 심사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셨으면 좋겠고요. 최근 한 3년이나 5년 정도를 정해서 그사이에 심사했던 사람은 중복되지 않도록 한다든지, 아예 신인 작가를 투입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신인 작가들은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덜하잖아요. 외부 수업을 한 경우도 많이 없는 데다 더 젊은 감각으로 심사를 할 수도 있고요. 젊은 작가들을 통해 이해관계의 선을 끊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덕희: 네. 그런 노력들이 많이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형태로 개선될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지 검토를 해봐야겠습니다만은 이런 목소리는 분명히 전달해 봐야겠습니다. 이후에 진행될 좌담들에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간단한 질문 좀 해보죠. 대개의 공모들이 종이에 출력한 작품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투고자 개인에게는 A4 용지로 10장? 시의 경우에도 그 정도 될까요? 그런데 전체 투고자는 1,000명 내외까지 올라가기도 하거든요. 그럼 그 종이는 어마어마한 양이란 말이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신 적 있을까요? 만약에 온라인으로, 파일로 투고를 받으면 무단 배포가 되어버린다거나 이런 걱정을 좀 하십니까? 어떻습니까?

 

파도: 저는 그게 공급자 중심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심사를 하는 분들은 종이로 보셔야 편한데, 그럼 주최 측에서 그 많은 분량의 작품을 다 출력해야 하니까.

 

김덕희: 네, 행정편의적인 느낌이 좀 있다, 그런 말씀 같아요. 그런데 작가들이 공공기관에 지원금 같은 걸 신청할 때는 철저히 파일첨부 방식을 따르고 있단 말이죠. 아직 문예 공모는 그걸 못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좀 고민을 해봤습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하실 말씀 있나요?

 

너울: ‘출력’에만 방점을 찍는다면 분명히 귀찮은 일이지만,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저는 그게 출판사와 신문사에게 편한 방식인지도 모르겠는 게 본인들도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도란: 저도.

 

너울: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등기우편물을 일주일간 누가 받고 있으며, 그 종이들, 종이 더미들을 관리하는 일, 손이 베이고, 부피만 차지하고, 무겁고. 본인들도 귀찮고 힘들 거 같아요. 혹시라도 분실이라도 일어날까 얼마나 마음 졸일 것이며.

 

김덕희: 돌려 달라는 투고자들도 있을 거예요.

 

너울: 아, 네. (일동 웃음) 맞아요. 그러니까 저는 양방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분야는 이미 온라인으로 받아요. 드라마 공모전이든, 영화 시놉시스(Synopsis)든. 웹소설은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어차피 온라인으로 가능한 일을 굳이 종이로 고집하고 있다는 건, 제가 아까도 이야기를 했겠지만, 바꿀 의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이 체제를 바꿔서 다시 인력을 어떻게 투입할지 고민하고, 이걸 출력을 하면 어떻게 몇 부를 출력하고, 이런 고민하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이 관행에 의존하는, 해왔던 방식으로 계속해서 하고 있다, 저는 그렇게 느껴졌어요.

 

김덕희: 심사위원들이 화면에 그렇게 낯설어하지 않는다면 작품 받는 방식을 바꿔 볼만도 하겠네요. 근데 과연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실무진들께서 어떻게 보실지 많이 궁금합니다. 자, 이제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이 종료되면 여러분들은 결과를 보시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작품이 제일 궁금할 겁니다. 그런데 작품만 있는 게 아니죠. 심사 경위가 있고, 당선 소감이 있고, 심사평들이 있습니다. 그 여러 항목 중에 특별히 눈여겨보시는 게 있는지요?

 

파란: 저는 당선 결과가 나왔을 때 무조건 작품부터 먼저 봐요. 그건 당연한 거죠. 그다음에 작가 프로필이라거나, 심사평이라거나, 이런 걸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고, 솔직히 저는 대부분은 안 봅니다. 그런데 ‘작가 작품이 좀 특출 나게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프로필을 보고요. ‘작품이 특출 나게 안 좋았다.’라고 생각할 때 심사평을 보거든요. 그런데 ‘심사평을 봐봤자.’라는 생각도. 사실 안 좋아도 욕만 하고 끝낼 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심사평이라고 해서 무슨 평론처럼 구구절절 어떻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 봤자 인터넷으로 봤을 땐 한 4~5줄?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상 정도만 나오는데 그걸 굳이 보는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보고 나서 작품이 너무 별로라서 화가 날 때, 그때 ‘도대체 왜 뽑은 거야? 무슨 생각으로 뽑았지? 누구야?’ 이러면서 보게 되는 거지 그 외에는 작품 말고는 보질 않는 것 같아요.

 

파도: 저는 당선된 작품이 좋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기억을 해놓고, 몇 년 뒤 어디서 시집을 내는지 눈여겨보는데요. 이곳에 오기 전에 작년 한 해를 기준으로 주요 출판사들의 첫 시집 출간율을 살펴봤어요. 문학동네는 총 22권의 시집을 냈는데 그중 8권이 첫 시집이었고, 문지는 15권 중에서 3권만 첫 시집이었어요. 가장 심각한 곳은 창비였는데 14권 중에서 단 2권만 첫 시집이더라고요. 그럼 14%밖에 안 되는 거거든요? 이렇게 신인들에게는 박한데 얼마 전에는 신경숙 소설가 책을 내줬더라고요? 그게 열 받는 거예요. (일동 웃음) 진짜 여기 고인물이 얼마나 많은 건가요. (웃음) 그래도 저는 민음사에서 희망을 좀 봤는데요. 13권의 시집 중에 5권, 비율로 치면 38%, 제일 높았거든요. 등단 문제가 터졌을 때 신인상도 없애고, 이번에 김수영 문학상 통해서 등단 안 한 분을 뽑기도 하고요. 그래도 주요 출판사들 중에서는 가장 진일보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김덕희: 네. 그건 연결해서 이야기를 해보죠. 당선 작품과 심사평과 이런 요소들에서 심사자 당선자 프로필을 눈여겨봤다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추적한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그 당선 이후 활동에 대해서도 함께 다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문예지들이 자사 신인 문학상 출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신춘문예 당선작 특집을 조금 더 확대해서 운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월간지 《현대문학》에서 꾸준히 해왔는데 지금은 《문장 웹진》에서도 하고 있고, 격월간 소설 잡지 《Axt》에서도 하고 있고, 등등 있잖아요. 이런 활동에 대해서 등단한 신인들은 굉장히 호의적으로 보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더 필요한 역할은 없을지, 이 방향 이상의 어떤 것들은 또 없을지 한번 생각을 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너울: 지면을 주는 거는 무조건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의도치 않은 부작용도 생기는 게, 문창과나 합평 모임 등에서 이런 말도 돌더라고요. “신춘문예로 등단했는데 《현대문학》 4월호5)에 안 실리면 망한 거다.” 이렇게. 이런 인식이 또 팽배한 거예요. 《현대문학》 입장에서는 지면을 분명히 신인 작가들을 키워 주고자 만든 거겠지만 그게 또 하나의 권력으로 공고해져 버린 상황이잖아요. 그게 참. 뭘 해도 그것의 이면이 생기게 되고, 누군가한테는 그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가 되어버리는 그런 상황이 되게 웃긴다고 생각했어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누군가는 선택을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선택을 못 받을 것이고. 근데 문학이라는 게 모두가 납득할 만한 평가 기준 같은 건 없기 때문에 그게 반드시 공정하게 어떤 실력 차이로 선택이 되는 것도 아닐 테고요. 신인 작가 특집, 신춘문예 당선자 특집, 이런 것의 어떤 이면도 있다는 거?

   5)  월간지 《현대문학》은 1997년부터 매년 4월 신춘문예 당선자 특집(소설, 시)을 진행하고 있다.

 

김덕희: 등단하자마자 또 심사대에 올라야 된다는 그런 부담감이 있다는 거죠?

 

너울: 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인 거죠.

 

김덕희: 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등단해도 걱정이 많이 될 거 같아요. 저도 “《현대문학》에 호명되지 못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 어렵다. 그래서 등단작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의 다른 재고를 하나 이상은 들고 있어야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을 거다.” 이런 조언을 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호명해 주는 지면이 좀 늘지 않았습니까? 너무 많은 작품을 등단하자마자 곧바로 발표하거든요? 아까 말씀드린 문예지 3곳에서 모두 청탁받았다고 했을 때,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1년 내에 신인이 등단작 말고 3작품을 더 평가받아야 한다면 이게 상당히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 않나 싶은데요. 제가 말씀을 다 드려버렸네요. (일동 웃음) 어떠신가요?

 

도란: 그래서 다들 등단한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일단 작품을 많이 써 놔라. 왜냐하면 심사 끝나고, 데뷔하고 바로 발표되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제 데뷔했던 지면 같은 거 외에 나중에 청탁이 들어왔을 때를 대비해서 일종의 비축분을 많이 쌓아 놓으라는 팁을 많이들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아무래도 전 시를 공부하고 있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지면이라는 표현 자체가 굉장히 고루한 표현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결국 종이에 실려야만 우리가 어디에 작품을 낼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문예지 실명을 거론하겠습니다만, 창작과비평사의 《문학3》 같은 경우는 비등단작가들의 투고를 받아서 한 번씩 이렇게 계속해서 실어 주고 있지만 지금 문예지 사서 보는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 안 팔려서 다들 허덕허덕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종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출판사들의 일종의 고집? 같은 게 결국에는 신인들뿐만 아니라 기성 문인들에게도 어떤 발표를 할 수 있는 매체 차원에서 한계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김덕희: 이제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이건 올해 신춘문예 공모요강 중 하나인데요, ‘원고는 A4용지를 출력하거나 원고지에 써서 직접 제출하십시오. 우편으로는 12월 며칠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접수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다른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했거나 응모한 분야에서 이미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경우 당선이 취소됩니다. 겉봉투에 붉은 글씨로 응모 부문과 작품 편수를 쓰고, 원고의 앞과 뒤에 별지를 붙여 각각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주십시오.’ 2021년 모 일간지의 신춘문예 공모인데요. 여기서 ‘이미 타 중앙 일간지에서 등단한 경우’ 당선이 취소된다는 문구를 좀 눈여겨보시죠. 지방 일간지는 괜찮다는 이야기로 들리죠? 여러분들은 당선자의 프로필에서 ‘몇 년, 무슨 일보 당선’, 혹은 ‘몇 년, 어떤 문예지 당선’, 이런 프로필 경력이 적혀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등단 이후에 활동 문제도 있고 해서 재등단한 케이스인데, 이게 지금까지는 무리 없이 수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란: 일단 저는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그런 표현들을 쓰고 있나.’ 그런 생각을 제일 많이 하고요.

 

김덕희: 어떤 표현이요?

 

도란: 이제 예를 들어서 어디 출신, 무슨 학교 졸업, 뭘 전공 했고, 어느 지면에 데뷔했고. 그런데 소설은 잘 모르겠고, 최근에 나오는 시집들을 보면 그런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것도 한편으로는 뭐. 예전에는 약력처럼 ‘무슨, 무슨, 무슨 시집을 어떻게 냈다.’라는 것까지 다 적었었는데, 최근에는 짤막하게 한, 두 줄. 특히 ‘문학동네’가 그런 거 같은데 그런 약력을 다 생략하고 하는 편이라서.

 

김덕희: 잠시만요. 당선자의 프로필에 대해 질문 드렸습니다만, 책이 아니라.

 

도란: 네. 그러니까 저는 그 맥락으로 당선작 역시 마찬가지로 선택에 맡기는 거 같긴 하거든요. 특히 신춘문예도 이제 자기가 학력을 밝히고 싶으면 밝히고, 아니면 말고. 그런 식으로 선택지를 데뷔한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것 같고요. 뭐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학교와 그런 걸 밝히는 거는 조금 의아했어요.

 

너울: 재등단에 대한 인식을 물어보시는 거 같은데, 많은 작가들이 재등단을 했죠. 편혜영 작가, 정유정 작가, 박서련 작가도 있고. 슬프긴 한데 어쩔 수 없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개그맨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고 잘나가는 개그맨의 길이 보장되는 게 아닌 것처럼, 결국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은 인정을 받아야 되는 거고, 자기 이름을 어떻게든 드러내기 위해서 계속해서 도전하는 거고. 그 맥락으로 읽혀요.

 

김덕희: 수용할 만하다, 라는 말씀이시죠.

 

너울: 어쩔 수 없다, 라는. (웃음) 웃기는 상황이지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끊임없이 사람들은 더 나은 곳을 찾아 이직을 하고 뭔가 도전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 도전의 방도가 공모와 심사로 이루어진 등단제도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 문학계의 한계로 지적되어야겠죠.

 

파도: 저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그 가운데서도 유력 문예지를 향한 욕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전에 어떤 선생님께서 “문학이라는 판 자체가 소외된 영역인데, 듣도 보도 못한 곳에서 등단을 하고 싶냐, 그러면 네가 어디서 등단했는지 설명해야 되잖아.”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예를 들어 “나 ‘문학동네’에서 등단했어.”라고 하면 설명이 필요 없는 거죠. 그런데 “지방 어디에서 등단했어. 아, 그게 어느 지방에 있는 거고, 거기 편집주간이 누구고, 심사위원이 누구였고” 이렇게 다 설명해야 하니까요.

 

도란: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제일 큰 원인이 신인들이 몇 년 사이에 많이들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이 구조 때문인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아까 사회자님께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수도권 주요 일간지에서 등단한 사람은 다시 등단할 수 없다.’라는 이런 조항들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저희 문청 입장에서는 등단한 사람들이 일종의 기득권자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등단 후 살아남지 못하고 재호명 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된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주변에 거기에 대한 괴로움을 이야기하는 선배들도 되게 많고요. 그래서 제도적으로, 그런 분들에 대해서, 예를 들면 ‘등단하고 10년 동안 작품집이 안 나온 경우에는 신인으로 간주하겠다.’라는 식의, 일종의 열어 두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너울: 듣고 보니까 되게 학벌주의의 연장인 것 같아요.

 

김덕희: 학벌주의의 연장이다.

 

너울: 네. “좋은 대학을 왜 가야 할까?”라는 질문에, 어떤 인터넷 강의 선생님이 “네가 똑똑한 걸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거 진짜 편리한 거다.”라고. 마찬가지잖아요. “중앙 일간지로 등단했을 때 좋은 점이 뭐야?”라고 했을 때, “네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고, 글로 먹고살 수 있다는 걸 설명할 필요가 없어.” 그냥 이런 거기 때문에 학벌주의의 연장으로 봅니다.

 

김덕희: 재등단에 이어서 다관왕 사례도 얘기해 볼까요? 같은 해애 신춘문예 중 두 곳 이상에서 당선되는 걸 말하는데요. 다관왕이라곤 했지만 2관왕 정도가 종종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서울신문과 조선일보의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가 같은 분이더라고요. 다른 작품으로 당선된 거면 상관없다는 목소리도 있고 제한된 공모 수를 감안해 이왕이면 더 많은 신인이 탄생하는 게 좋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도란: 저는 작품만 다르면 문제될 건 없다고 보거든요?

 

파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너울: 부럽다. 제 꿈이었어요.

 

파도: 저는 좀 다른 생각인데, 그분의 작품이 훌륭해서 뽑힌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신춘문예 스타일에 맞춰서 쓴 작품을 동시다발적으로 뿌렸기 때문에 거기서 건진 측면도 있다고 보거든요.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의 보는 눈이 비슷하니까 걸려든 거죠.

 

파란: 그런데 그거까지 계산하는 건 너무 광범위하게 계산하는 거죠. 물론 신춘문예 스타일이라는 게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뭘 좋아하는지, 이런 게 정해져 있지만, 그에 맞춰서 원래 쓸 수 있을 만한 필력, 능력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2곳에서 서로 다른 작품이 당선되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대해서 이 사람이 소위 신춘문예라는 스타일로 글을 써서 여러 군데 많이 뿌려서 됐다, 그래서 그게 안 좋다, 이거는 비난할 수 없는 문제인 거 같아요. 왜냐면 저도 그런 경험이 있고, 여기 계시는 분들 중에서 그런 경험이 진지하게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파도: 아, 저는 투고자를 비난하는 게 아니고요. 투고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구조, 심사위원들의 천편일률적인 심사 기준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방식으로 투고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투고자분들을 비난한 건 아니었습니다.

 

파란: 그런데 ‘이게 구조적인 문제일까?’라는 생각도 드는 게 만약에 문이 여러 군데 있다고 해서 그 문을 다 두드려 보는 거는 조금, 문은 문대로 존재할 뿐이고, ‘그게 구조가 과연 잘못됐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이야기하면 ‘이 사람이 여러 사람의 심사위원이 봤을 때, 서로 다른 심사위원이 봤을 때, 이 정도 수준 이상을 쓰는 사람이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건 구조적인 문제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이 되게 하는 구조다? 라는 거는, 다른 어떤 질문들에서 보면 충분히 도출 가능한 답안일 수 있지만,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당선된 사람에게까지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란: 저는 다른 분들한테 질문을 한번 해보고 싶은데요. (웃음) 대학원 다니시는 분들도 있고, 어쨌든 다들 학부를 졸업했을 테니까. 느끼시지 않나요? 저는 그렇거든요? 학부 졸업자 수준이라는 게 어느 정도 시각적으로 보이고, 그다음에 마찬가지로 등단하는 일종의 수준이라는 게. 예를 들어서 저는 시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 무기명으로 보더라도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거든요.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김덕희: 합평하시면서?

 

도란: 네. 합평. 특히나 합평하고 다른 등단한 작품들 보고 하면. 예를 들어서 저는 주변에 스터디 같이하는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하면 나쁜 작품, 좋은 작품, 확연하게 공통적으로 의견이 나오거든요? “이건 이래서 좋다”, “어. 나도 그거 참 좋게 봤어” 이렇게 하는 편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덕희: 당선작들 중에서 감상 의견이 갈리는 거죠?

 

도란: 당선작들 중에서도 갈리고요. 합평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김덕희: 당선작들 본 소감들을 어떻게 공유하시는지, 그런 말씀인가요?

 

도란: 그것도 있고요. 참석자분들께 질문 드리고 싶은 게 일단 신춘문예에서 데뷔를 했다는 게 신춘문예뿐만 아니라 지방 문예지도 마찬가지지만,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작품들이 받았다, 라고 납득될 때가 더 많으신지, 아니면 왜 저런 작품들이 받았지? 할 때가 더 많으신지. 저는 오히려 70~80%는 납득이 되거든요. 받을 만한 작품이 많았다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

 

파도: 저는 신춘문예나 신인상이나 결국 자신의 개성을 담아 글을 발표하는 건데, 심사위원 모두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 상황인가 싶거든요. 우리 모두가 비슷한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결국 비슷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말도 안 되는 작품, 혹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개성적인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야 문학이 입체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건데 모나지 않은, 누구에게나, 어느 심사위원이 봐도 괜찮은 작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과연 건강한 생태계인지 의문이 드는 거죠.

 

김덕희: 문예지 신인상 당선작들도 좀 그런가요? 신춘문예만 그런가요? 세간에서는 문예지는 각 문예지들만의 독특한 작품이 나온다, 이렇게 기대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도 그런가 해서요. 신춘문예보다는 조금 더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던가요?

 

너울: 작품 수준으로 따지면 전 문예지가 월등히 높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고요. 물론 신춘문예라고 해서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기본기가 없는 작품이다’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었을 때, 기대에 못 미칠 때는 대체로 전 제 취향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에요. 누군가는 이 작품을 반드시 좋아하더라고요, 실제로. 그리고 문예지가 뽑는 작품들의 다양성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셨는데, 저는 사실 다양성이 구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게, 우선 소설 투고자 입장에서 출판사마다 왠지 투고를 해야 될 거 같은 소설의 스타일이 있어요. 문지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걸 쓰는 사람들이 문지에 주로 투고해요. 그리고 창비는 노동자의 애환(일동 웃음), 일상의 소소함, 가족사, 이런 이야기를 쓰면 창비에 투고해요. 문동은 잡식이죠. 잡식이라서 뭐든 해도 되는데 그래도 일단은 전통을 좀 따르는 편이다, 이렇게 세 메이저 출판사에 대해서 성격을 정해 놓고, 저는 실험적인 걸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문지는 투고를 아예 안 해요. 투고작들이 이런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에 연연하는 이상, 다양성과는 완전히 멀어지는 거죠. 문지 출판사는 항상 실험적인 소설만 받을 거 아니에요. 이런 인식이 팽배해 있으니까.

 

김덕희: 그렇겠네요.

 

너울: 그래서 이런 세간의 인식과 소문에 의식할 수밖에 없는 등단제도는 사실 굉장히 편협하고, 다양성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심사 방식이라고 생각을 해요.

 

파도: 저도 문예지의 수준이 조금 더 높다고 생각해요. 시 같은 경우 신춘문예는 3편 내서 당선되기도 하는데 문예지 신인상은 10편씩 내잖아요. 10편을 고른 수준으로 써서 내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항상 의문인 것은 최종심 보면 보통 3분이 심사를 보던데 ‘어떻게 모두의 동의를 받아서 단 1명을 뽑을 수 있지? 심사위원을 보면 전부 다른 스타일로 글을 쓰시는 분들인데?’라는 의구심이 들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문예지에서도 특출하게 뭔가 개성적인 작품이 나온 경우는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김덕희: 이미 전형성이 만들어져 있다?

 

도란: 그러니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춘문예는 그 날짜의 특징도 있는 것 같고, 매체의 특징도 있는 것 같거든요? 소설로 예를 들자면, 자식이 부모 죽이는 내용이 너무나 문학적으로 새롭게 쓰였다고 해서 이걸 신문에 싣기에는 1월 1일인데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시 중에서도 주변의 후일담을 들어 보면 너무 잘 쓰긴 했지만, 우울하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이거는 도저히 신춘문예에는, 1월 1일에 당선작으로 선정하기에는 어렵겠다고 해서 정말 좋은 작품이 걸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들었어요.

 

김덕희: 그건 참 안타깝고 억울한 경우네요. 저는 반대로 극도로 침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은 데 대한 일종의 사과 같은 심사평도 봤어요. ‘신춘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지만, 선자들은 이렇게 택했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와 같은 식이었죠.

 

파란: 솔직히 그런 것들도 있긴 하지만, 신춘문예 같은 경우에는 최종심에 드는 경우에, 심지어 최종심마저도 심사위원이 읽어 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제가 어떤 확실한 소속을 지닌 분께 듣기로는 오랜 시간 최종심 위원으로만 활동해 오신 모 심사위원 같은 경우에는 최종심 대상 작품을 10~15편 추려서 메일을 작품별로 나누어 보내 드렸더니 심사가 끝나고 당선작이 발표될 때까지도 읽지 않은 메일이 반 통 이상 있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러니까 애당초 최종심에 든 작품조차 제대로 안 읽는다는 거죠. 그냥 제목 보고 ‘아, 이 제목 재미있겠는데 한번 읽어 볼까?’ 해서 그중에 하나 자기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 거죠. 그러고 가지고 가서 이제 모일 거 아니에요. 그때 만약 의견이 갈릴 경우에는 대체적으로는 누가 문단 권력이 센가, 혹은 누가 연장자인가에 따라서 수렴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만약에 나이도 비슷하고 권력도 비슷하고 그냥 비등비등한 두 사람이 싸운다고 하면 여기서부터 자존심 싸움. 여기서 지면 나는 얘보다 못한 거라고, 진다고 생각해서 거기서 물고 뜯고 싸운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두 명이 동시에 당선된 경우도 그런 권력 다툼의 산물이지 않을까 싶어요.

 

도란: 그러니까 당선작이 안 나오는 경우에 그런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심사위원들끼리 의견이 너무 부딪히니까 아예 그냥 공평하게 둘 다 하지 말자. 이런 경우들이 왕왕 생긴다고.

 

김덕희: 실제 심사장 풍경이 어떤지 점점 더 궁금해지네요. 이후 좌담을 통해 궁금증이 해소되길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신춘문예와 문예지 신인상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독립 문예지처럼 스스로 작품 발표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사례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 혹은 여러분들은 그런 방식의 등단을 생각해 보셨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네요.

 

도란: 일단 저는 독립 문예지에 가끔씩 작품을 내고 실린 적이 있는데, 그런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더 이상 나는 손을 댈 수가 없다. 내가 이 이상의 뭔가를 더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독립 문예지에 보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그 작품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그런 매체들이 많아지는 거는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지금, 특히나 젊은 세대에서 당연히 매체 환경은 변화를 하고 있지만 기성의 제도들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보니까 일종의 대체 자원으로서 그런, 예를 들면 〈던전〉이라든가 《베개》라든가, 이런 것들이 나와 주는 거에 대해 저는 되게 다들 열광하게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또 이런 게 기사화 되고 그런 걸 보면 언론이나 이런 여러 부분에서도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파도: 저는 그런 현상을 볼 때면 환영하고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어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등단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지속되었는데 왜 이것밖에 변화가 안 되고 있는 건가 싶어서요. 뭔가 다음 판을 깨는 게임으로 비유한다면 ‘최종 보스가 뭐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제가 내린 결론은 문단에 고인물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나이에 따른 위계구조? 서열? 그게 변하지 않으면 젊은 작가들이 일으키는 이런 움직임은 그냥 잔물결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근본적인 변화가 되지 않으니까. 이미 문단은 고령화 사회가 된 것 같고, 유교적으로 고착된 위계 문화에 따라서 나이가 많은 작가들에게 더 많은 출판과 청탁의 기회가 부여되고, 소위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심사위원과 문예지의 핵심 보직을 독차지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펼쳐지는 활동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싶고요.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많이 찾아봤거든요? 문단의 기성세대들이 등단 관련 문제에 언론과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 그런데 반성을 안 하시더라고요. 일단 전제가 ‘나는 잘못이 없다.’예요. 자기 입장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수준이더라고요. 문예지가 어려우니까 상황을 봐달라는 식으로요. 결국 저는 이분들이 물러나지 않으면 젊은 작가들의 시도는 금방 동력을 잃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조금 도발적일 수도 있지만 기성세대 작가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어요. “20~30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당신의 작품이 질적인 수준에서 정말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느냐”고요. 이 질문에 대한 확답이 없는 채로 더 많은 자리와 기회를 누리고 있다면, 이제는 과감히 내려놓고 젊은 작가들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또한 문단에 쓴 소리를 해도 비교적 생계의 위협이 적은 분들, 이를테면 대학에 정교수로 몸담고 계신 작가나 비평가분들이 등단에 대한 문제제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란: 지금 《문장 웹진》의 〈느린 기린 큐레이션〉(기획&제작 : 조온윤 시인, 조시현 소설가)이 웹진 인터뷰를 3회차? 다음 달까지 4회차 진행하시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기 전에 한 번씩 소개된 웹진에 들어가 봤어요. 그런데 2개인가 3개인가는 이제 재정적 사정으로 당분간 쉽니다, 이런 경우도 있고, 아예 누리집이 없어진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파도 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종의 안타까움? 애틋함? 같은 것도 많이 느껴졌어요.

 

김덕희: 아주 따끔한 지적이고 참 가슴 아픈 이야기이긴 합니다. 이른바 마이너한 매체들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참 부족하죠. 그런 동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 참 희망적인 이야기인데 그게 가능할까요? 아니면 기성들의 지원이나 양보, 이런 것들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좌담회로 예정되었던 시간을 이미 30분도 더 초과하고 있네요.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 하는데 못 다한 말씀 있는지요?

 

도란: 일단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글을 쓰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돈은 아니거든요? 일단 이미 생업을 택했고. 다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가난한 직업이 소설가고, 시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등단해도 아무런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저를 글 쓰게 만들어 주는 거는 누가 아무리 인정을 안 하더라도 나는 시인의 자세를 갖추었고, 나는 작가로서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제도는 인정해 주지 않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문학예술인 지원제도 같은 걸 보면 다 등단을 해야 되고, 그래야만 지원금을 신청을 해볼 수 있고. 지금 어떤 사회보장제도에 있어서 문학 파트뿐만 아니라 영화 찍는 사람들, 공연하는 사람들, 전부 다 힘든 상황인데, 수상 경력 없고 제도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소외가 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3년 동안 매년 5편의 작품을 써서 이걸 어디 공공기관에 내거나 하면, 다른 건 몰라도 박물관, 미술관 같은 공공시설은 조금 할인을 해준다든가 무료로 해줄 수 있는 작은 제도라도 있다면, 우리가 문학을 하고 있다는, 창작을 하고, 이제 국가에서도 내지는 여러 기관에서도 이 부분에 있어 우리를 예술인으로서 인정해 주고 있다는 일종의 제도적 외연을 만들어 주면, 저희도 글을 쓰는 입장에서 좀 더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사실 큰 걸 바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파란: 저는 《문장 웹진》 자체 설문조사 주관식 답변에도 적었는데, 등단이라는 거에 대해서 폐해라고 하고 안 좋은 것들을 지적하고 했지만, ‘공고하다’, ‘고루하다’, ‘바뀌어야 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저는 이 문단을 현재 지탱하고 있는 것, 문단을 지지하고 있는 것 또한 저는 습작생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하면 많은 습작생이 문단 자체가 무너지길, 해체되길 바라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그래서 문단이라는 집단이 너무너무 나쁘다는 생각 들지도 않아요. 물론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나쁜 일을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권위를 받쳐 주는 게 권위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권위가 없는 저희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어떨 때 개개인 분들께 정말 그러면 등단제도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시는 선생님들도 그럼 이 등단이 해체되고 무너지길 바라시느냐, 뭐 이걸 내버리고 변신하길, 이 표현이 잘못된 거일 수도 있지만, 변하길 진심으로 바라느냐, 그런 의문도 들어요. 왜냐하면 저 같은 경우에는 등단하고 싶다고 말하고, 등단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당연히 등단해서 그들이 말하는 단이라는 곳에 올라가고 싶겠죠, 당연히. 그거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등단이라는 제도가 무너지길 바라진 않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공고한 것인지도 잘 알고. 왜냐하면 제가 문단에서 활동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 하는 일도 어떤 이권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들이 법을 어떻게 교묘하게 이용하는지 그들이 그들만의 카르텔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그게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그들보다 작은 집단을 지능적으로 깔아뭉개고 짓밟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게 무서우면서 한편으로는 그 테두리 안에 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 들기도 해요. 너무 세속적인가요? 그런데 그 이권이라는 것이 소속된 사람들의 권리를 얼마나 잘 지켜주는지도 알거든요. 그래서 더 문단이라는 이권 단체에 포함되고 싶은 것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여기 왔을 때 역으로 물어보고 싶었어요. 여러분들은 정말 이 등단이라는 제도가 해체되고, 무너지고, 없어지길 바라시느냐. 내가 너무 억울해서, 이 제도가 너무 불합리하니까 정말 진심으로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게 없어지면 여러분들께서는 섭섭하지 않으시겠느냐, 이렇게 묻고 싶었습니다.

 

파도: 정말 없어지길 원하니? 네, 없어지길 원합니다. 점차 투고문화로 갔으면 좋겠어요. 상시 투고를 받아서 분기별이나 6개월에 한 번씩 여러 명의 좋은 신진 작가를 공개하는 방식으로요. 이건 상금 없어도 돼요. 그렇게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 더 열어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폐쇄적으로 심사해서 1등한테 몰아주는 방식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도란 님께서 잠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작가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저는 거기에 대해서 조금 반발심이 있거든요.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외부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권위 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가 좋다는 말을 해줘야 비로소 작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거죠. 주변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혼자서 “나 작가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적어도 이 좁은 한국 사회에서는요. 저는 문단이 사람들의 그러한 인정 욕구를 등단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용하는 거라고 봐요. 그 문제의 핵심에는 기성세대가 있고요. 만약 기성세대가 계속 그 자리에 있다면 의사 결정은 수직적으로 전달될 것이고 신인들, 저희 같은 습작생들은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 등단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처럼 신분화가 되어 버렸잖아요. 마무리를 하려고 보니 제가 오늘 주로 비판적인 논의를 많이 한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저희 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거의 없거든요. 이렇게 저한테까지 발언의 차례가 온 걸 보면 느리기는 하지만 한국 문학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고요. 혹시라도 오늘 제 발언에 불편함을 느꼈거나 반발심을 갖고 계신 문단의 기성 작가 혹은 어르신들이 있다면 이곳에 적극 해명의 자리를 요청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너울: 너무 마무리를 잘해 주셔서 그냥 인사하고 가야 될 거 같아요. (일동 웃음) 여쭤 보셨잖아요. 등단제도가 정말 없어지길 바라냐.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없어지면 또 방법이 생길 거예요. 꽤나 재미있는 풍경이 될 거 같아요. 〈중앙신인문학상〉 이야기가 앞서 나왔는데, 그때 폐지되고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그때가 8월이었는데, 그때 터졌던 게 김봉곤 작가의 사적 대화 무단 인용 사태, 그게 터져서 문단, 출판사, 편집자, 작가가 얽힌 그 카르텔에 크게 회의를 가지고 ‘미래가 없다. 문단에는 미래가 없다. 신춘문예도 이제 신문사들이 하나둘씩 손을 놓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때, ‘나도 메일링 서비스를 해봐야겠다. 인스타툰을 그려서 우편 서비스를 해볼까?’ 하는 사업 구상을 했어요. 물론 다 무산됐지만……. 저는 일단 파도 님이 말씀하신 거에 너무 동의해요. 원로 작가들이 양보하지 않는 이상 바뀌는 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왜냐하면 신춘문예나 신인상 당선작들에 의구심이 드는 경우는 없냐는 그런 이야기를 아까 나눴잖아요. 그런데 제가 문예지에 실린 단편소설들을 읽다 보면, 정말 충격적으로 질적으로 낮은 소설들이 의외로 많이 실려요. 메이저 문예지에도. 그리고 대체로 다 나이가 많으신 원로 작가들의 소설이고, 그냥 이 시대에 통용되어야 할 기본적인 윤리의식도 너무 없고, 요즘 시대의 소설이라고 믿기지 않는 소설이 많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면 정말 지면이 너무 아까운 거죠. 세상에 좋은 소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이런 게 실리고 있구나, 가슴이 아프고요. 근데 또 이제 되게 유의미한 어떤 변화들도 많이 보인다고 생각이 드는 게 이번에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라고 해서 신인 작가들이 중단편소설 6~7편을 쌓아야지만 소설집을 낼 수 있는 관행을 깨려고 3편만 모으면 소설집을 내는, 그런 시리즈를 시작을 했어요. 그런 기획들이 전 되게 좋다고 생각을 해요. 6편 모아야지 소설집 만들 수 있다는 걸 누가 정했냐는 거예요. 청탁을 자주 받지 못하는 소설가들은 6편 모으는 데 10년씩 걸리기도 하는데, 모으고 나면 너무 옛날 소설이 되어 있다는 거죠. 그간의 관행을 버리고 이제 새로운 시선으로 문학을 다루는, 그런 시도들이 습작생이나 신인 작가들에게 큰 응원이 되는 것 같아서 제가 요청 드리고 싶은 건 딱 그건 거 같아요. 좀 새로운 걸 시도해 달라. 기존에 하던 거 그만 해달라. 이상입니다.

 

도란: 등단을 하고 싶냐, 안 하고 싶냐? 하고 물어보면 저는 하고 싶습니다. 해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여기저기 얼굴도 좀 팔고. 저는 글을 쓰는 목적 자체가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제도는 유지가 되었으면 좋겠고, 다만 이제 외연을 좀 더 확장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제 다른 좌담들이 연속해서 있다 보니까 질문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주변에서 글 쓴다고 그러면 거의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아휴, 그 힘든 걸.” 하고 불쌍하게 생각하거든요? 영화 한다, 유튜브 한다, 그러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글 쓰는 사람들을 힘들게 가난하고, 비루한 직업으로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서 선배들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김덕희: 제가 다음 좌담 때 패널로 참석하지 않는 걸 상당히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일동 웃음) 한번 그 대답을 기다려 보죠. 가벼운 이야기로 정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데요, 여기에 오실 때, 아주 가까운 분들한테는 “나 이런 데 나간다.”라고 하셨을 거 아니에요? 반응들이 어떻던가요? 그게 궁금했어요.

 

도란: 일단 뭐 재미있겠다고 반응들을 하고요. 등단한 사람들은 특히 재미있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가봐야 변하는 게 있어?”라는 말도 많이 하죠.

 

파란: 대부분이 거의 일관되게 “그딴 걸 왜 하냐”, “그 따위 걸 왜 하냐”라고 말을 하는데, 그에 깔린 건 아무래도 견고한 문단은 어차피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아무리 저희가 여기 와서 떠들고, 젊은 제 주변의 작가들이 떠들어 봤자, 소위 쥐고 계시는 분들은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애초에 우리가 이렇게 떠들었다는 걸 어쩌면 무덤에 가실 때까지 알지도 못할 텐데, 또 “이제 와서?” 이런 반응도 좀 있었어요.

 

김덕희: 이제 와서?

 

파란: “이제 와서 왜 또 하냐. 피곤하다. 언제 그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이제 와서 그 이야기를 또, 궁금하나?”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파도: “등단 못 하니까 열패감(劣敗感)에 사로잡혀서 그런 이야기 하는 거 아니야? 그럴 시간에 좋은 글을 한 편이라도 더 써.”라는 식의 시선이 있었는데요. 저는 외치고 싶었어요. “등단의 부조리를 알면서 가만히 있는 게 더 나쁜 거 아니야? 그거 알면서 문단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거, 침묵하고, 방관하고, 거기에 어떻게든 이름 하나 놓고 싶어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이야기를 못 했고 (일동 웃음) 그랬습니다.

 

너울: 저는 다들 그냥 “어, 재미있겠다”, “어, 나는 안 가” 이런 반응으로 나뉘었고, 제가 스스로 자조했죠. 내가 《문장 웹진》에 소설을 실었어야 되는데, (일동 웃음) 등단 못 한 습작생 신분으로 인터뷰를 가게 되었네. 이런 식으로 자조하고 그랬습니다.

 

김덕희: 쭉 말씀 들어 보니 많은 회의적인 의견들을 받아 안고 오신 거 같아요. 그러면 오늘 이 좌담은 이렇게 정리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목소리를 냈다. 오늘 나온 이야기들은 2, 3, 4차 좌담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한국 문학의 미래가 현재에게 던지는 질문으로도 이해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 선생님들께 각별히 감사를 드리고 싶고요,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박수)

 

〈폐회〉

 

 

   《문장웹진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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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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