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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기린 큐레이션〉 2021년 4월(메일링 서비스 편)

  • 작성일 2021-04-01
  • 조회수 2,667

[느린 기린 큐레이션]

 

 

〈느린 기린 큐레이션〉
2021년 4월(메일링 서비스 편)

 

 

조시현, 조온윤

 

 

 

 

 

    안녕하세요, 4월의 느리미와 기리니가 인사드립니다! 이제 완연한 봄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한층 포근해진 덕에 옷도 마음도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날씨가 풀리면서 외출을 계획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듯해요. 아직 마음 편히 나들이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조만간 다시 마스크 없이 산책할 날이 올 것을 떠올리면 이 시기를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여러분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여러분의 가방 속에는 어떤 책이 들어 있나요? 짤막한 시간, 본격적으로 책 한 권을 읽기는 어렵고, 또 누구의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도 많이 되실 것 같은데요, 매일 책을 고르는 고민 없이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으로 작가들의 글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답니다. 바로 메일을 통해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받아 볼 수 있는 ‘메일링 서비스’입니다. 단순히 시와 소설 같은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일기처럼 일상적인 글도 함께 받아 볼 수 있어 작가 ‘덕질’을 하기에도 굉장히 좋은 서비스라고 할 수 있어요.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메일링 서비스라는 형태가 아주 낯설지만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오랫동안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해 오고 있는 두 작가님을 만나 이야길 나눠 보았습니다. 〈하늘의 것〉을 운영하고 계신 나하늘 작가, 〈SI-BOT〉을 운영하고 계신 박규현 작가입니다.

 

 

메일링 서비스 편 : 〈하늘의 것〉의 나하늘 작가, 〈SI-BOT〉의 박규현 작가

 

 

Q. 박규현 작가님, 나하늘 작가님, 안녕하세요? 느린 기린 큐레이션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분들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A. 박규현 : 안녕하세요. 시를 쓰는 박규현이라고 합니다. 문예지 《NOISY》에 시 「아주 오래」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나하늘 : 안녕하세요. 저는 나하늘이라고 합니다. 목이 긴 양말을 좋아하고, 달팽이 백패커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Q. 두 분 작품을 인상 깊게 읽었던 독자로서 느린 기린 큐레이션의 인터뷰이로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은 메일링 서비스를 주제로 작가님들을 모셨으니, 메일링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볼게요. 먼저 나하늘 작가님께서 운영 중인 메일링 서비스 〈하늘의 것〉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A. 나하늘 : 〈하늘의 것〉은 제가 2020년 3월부터 1년째 연재 중인 메일링 서비스예요. 일주일에 두 번씩 시, 에세이, 그림, 만화 등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시는 주로 미스터리 펑키 코미디(?) 장르의 시를 씁니다. 또래 여성 작가들의 원고를 소개하는 ‘시-스터디(sisterD)’ 코너도 운영했는데, 몇 가지 고민이 있어서 잠시 쉬고 있어요.

 

Q. 이어서 박규현 작가님의 메일링 서비스 〈SI-BOT〉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A. 박규현 : 〈SI-BOT〉은 구독자분들로부터 미리 시제(단어)를 받은 뒤, 그 시제들을 조합하여 시를 써서 보내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제 연작시의 주인공인 ‘아주’라는 캐릭터가 매번 등장하는 시를 쓰기도 했고, 혹은 제가 고른 단어들을 배치하여 시를 써서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끼리 자연스럽게 배열되는 것을 목표로 연재했어요.

 

〈SI-BOT〉의 박규현 작가.


 

〈하늘의 것〉의 나하늘 작가.

 

Q. 〈하늘의 것〉과 〈SI-BOT〉의 연재 주기나 홍보, 전달 방식 등 메일링 서비스 운영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A. 나하늘 : 휴재했던 지난 6월과 12월을 빼고는 1년간 월 단위로 구독자들을 모집을 해오고 있어요. 홍보는 매달 포스터를 만들어서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iamsky421)과 트위터 계정을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원고는 보통 PDF 파일로 전달해 드리는데, 지난 3월호에는 친구 승민의 도움을 받아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었어요. 구독자 암호를 입력하면 짠- 하고 원고가 뜨는데, 공간성이 생기는 게 재밌어서 한번 실험해 보고 있어요.
 
박규현 : 원래는 일주일에 한 번을 목표로 했는데요, 운영 초기에는 제가 시를 워낙에 빨리 써서 완성되면 바로 발송하는 바람에 한 주에 두 번이 될 때도 있었어요. 연재를 거듭할수록 연재 주기가 차츰 안정되어서 주 1회가 되었습니다. 구글폼을 통해 신청을 받았고, 계좌로 구독료를 입금 받았어요. 홍보는 주로 트위터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Q. 얼마 전에 웹진 《아는사람》에서 〈SI-BOT〉과는 다른 방식의 〈SI-BOT : BETA〉 서비스 광고를 보았어요. 제시어를 입력하면 시가 만들어진다고 들었는데, 아쉽게도 비정기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사용해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정식 운영을 준비하고 있는 〈SI-BOT : BETA〉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A. 박규현 : 메일링 서비스 〈SI-BOT〉을 운영하며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저의 운영 방식과 메일링의 속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메일링은 구독자분들이 메일함에 들어가서 시를 확인해야 하는데요, 이는 ‘시를 로봇처럼 쓴다’는 저의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 속도를 맞출 수 있는 플랫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카카오톡 오픈 채널을 떠올리게 되었고요. 하루 정도 베타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1:1 채팅으로 시제를 받고 15분 내외로 시 한 편을 써서 보내드리는 운영체제가 저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점검을 끝마치면 정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Q. 나하늘 작가님의 〈하늘의 것〉에서는 시, 에세이 등의 작품 외에도 시 낭독 녹음 파일과 짧고 귀여운 만화도 함께 받아 볼 수 있었어요. 녹음 파일은 특히 배경음악과 함께 작가님의 목소리로 시를 감상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콘텐츠들의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A. 나하늘 : 맞아요, 낭독 BGM에 대한 호응이 높아요. 처음에는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전달되는 게 좀 쑥스러워서 빗소리 같은 노이즈를 깔아 봤어요. 그러다 한번은 배시은 시인과 ‘낭독회’의 형식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배시은 시인이 “낭독…… 재미없어요. 비트도 없고.”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재밌어서 종종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드럼 비트도 넣고 이상한 음향 효과도 줘보면서 시가 좀 더 신선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시도해 보는 중이에요. 그렇지만 음향 쪽은 전혀 몰라서 그냥 개러지밴드(GarageBand)A의 루프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A  애플에서 제작한 DAW 소프트웨어로 아이폰&아이패드 기본 탑재 어플리케이션이다. 샘플러, 드럼, 드럼머신, 기타, 스트링, 키보드 등 악기를 탑재하고 있으며, 전기기타를 연결해 클래식 엠프, 스톰박스 이펙트와 함께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Q. 작가님의 연재 에세이 중에서 독일에서 화가의 드로잉 워크숍에 참여했다는 에피소드도 읽었어요. 그림 강사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고요.

A.나하늘 : 그림을 전공한 건 아니에요. 저 빼고 가족들이 다 미술 전공자라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좋은 환경이긴 했어요. 지금도 드로잉을 할 때는 언니 작업실에서 물감을 훔쳐 쓰고 있습니다. 사실 그림은 저한테 글보다 오래된 편한 도구이기도 해요. 낙서도 중독 수준으로 엄청 해요. 〈하늘의 것〉에서 꾸준히 보여드리는 작업 중에 ‘책 드로잉’ 시리즈가 있는데 책에 낙서하던 습관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하늘의 것〉의 ‘책 드로잉’ 시리즈. 활자가 인쇄된 종이 위로 나하늘 작가가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Q. 그런가 하면 월별로 업데이트되는 박규현 작가님의 〈SI-BOT〉 소개 일러스트도 무척 감각적이에요. 〈SI-BOT〉의 일러스트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A. 박규현 : 최근 1월호를 제외하면 전부 한소리 씨가 맡아 주셨어요. 웹진 《아는사람》을 운영하는 기획자이고 시인이기도 한데요. 그 인연으로 알게 되어 제가 부탁드렸습니다. 지난 1월호 일러스트는 제 친구가 작업해 주었습니다.

 

한소리 작가가 작업한 박규현 작가의 〈SI-BOT〉 일러스트.


 

Q. 두 분은 어떤 계기로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또, 작가님들께서 생각하시는 메일링 서비스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A. 나하늘 : 〈하늘의 것〉 창간호 제목이 ‘영감의 원천은 입금’이었거든요. 메일링 서비스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빠르게 받을 수 있고, 작업 루틴을 만들게 하고, 종이책일 때와는 다른 형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의미와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내가 쓴 글로 내 생활비를 벌고 싶다’는 마음이 저에게는 연재를 시작하고 지속하게 하는 첫 번째 동기인 것 같아요.
 
박규현 : 저는 독자와 지면이 안정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스스로 찾아 나가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스스로 작품을 발표하는 시스템이랄까요. 메일링의 장점은 독자와 맞닿아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즉각적인 피드백이 매번 이뤄지진 않아도, 다른 플랫폼과 달리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부분에서요.

 

Q. 말씀해 주신 것처럼 빠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거나 중간 매체 없이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장점들 때문에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런 분들에게 알려주실 만한 팁이 있을까요? 오랫동안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해 오신 두 분의 노하우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나하늘 : 노하우…… 저도 계속 헤매는 중인데요. 음…… 만약 메일 본문에 원고 내용을 쓴다면 글자 크기를 12로 하면 좋습니다, 같은 쓸데없는 말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귀찮아도 포스터를 만들면 확실히 구독자 모집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박규현 : 저는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유독 신경 썼던 것 중 하나가 메일링 서비스가 갖고 있는 성격 가운데 하나인 ‘휘발성’이었습니다. 웹진이나 지면처럼 어딘가에 고정적으로 기록되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죠. 메일링을 할 때 발송할 작품의 성격이 이와 맞는지도 고민해 보시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SI-BOT〉 2021년 1월호 구독자 모집 포스터.


〈하늘의 것〉 2020년 7월호 구독자 모집 포스터.

 

Q. 작가님들 이야기도 들어 보고 싶습니다. 요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생기는 궁금증이기도 한데요, 작가님들께서는 어떻게 문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문학 작품 창작을 해오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는지도요.

A. 박규현 :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되었어요. 무엇이든 쉽게 질리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문학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제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가장 오래 고민했던 지점은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였습니다. 끈질기고 성실하게 문학을 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 스스로 그에 맞는 이유를 찾는 과정을 유독 어려워했습니다.
 
나하늘 :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예술고등학교 미술과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입시 준비를 해두지 않아서 대신 문예창작과에 시험 삼아 지원을 해봤어요. 그런데 불행히도 합격을 하는 바람에…… (웃음) 10대 때는 말수가 더 없는 편이었는데,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말하는 일이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경험이 강렬해서 계속 쓰게 된 것 같아요. 창작 자체의 어려움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었는데요. 그보다는 문학계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글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많았어요,

 

Q. 독립 문예지, 웹진, 메일링 서비스 등 최근 달라지고 있는 문학 매체의 경향에 대한 작가님들의 생각도 듣고 싶어요. 혹은 작가님들께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품 창작 및 발표 환경이 있을까요?

A. 박규현 : 최근의 문학 매체 경향에 대해선, 작가와 독자가 연결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는 것이므로 플랫폼이 계속 확장되는 건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보여요. 다만 아직까지는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게 어렵다는 점이 계속해서 고민하게 되는 지점 같아요. 가장 이상적인 건 우선적으로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할 것 같고, 독자가 원활하게 유입되어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저 역시 끊임없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어, 제가 생각하는 ‘확실한 이상’은 말씀드리기 어렵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하늘 : 가끔 한국에서 ‘문학’ 하는 일을 생각하면 숨이 막혀요. 저는 독립 문예지 《베개》의 창간 멤버이기도 해요. 제가 문예지 이름으로 ‘베개’라는 이름을 처음 제안했는데, 문창과를 다니면서 ‘문학’과 ‘작가’는 어떠해야 한다는 일종의 신화 때문에 힘들었거든요. 그런 말들이 문단 내 성폭력에서 가해자의 언어로 쓰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문학이 그냥 베고 자도 좋은 베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상상을 할 때는 겨우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아요.

 

Q. 매주 콘텐츠를 창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님들께서는 적잖은 기간 꾸준히 메일링 서비스를 이어 오셨는데요, 그간 나름의 고충도 있었을 것 같아요.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하는 데 개선이 필요하거나 힘든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A. 박규현 : 홍보를 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어요. SNS상으로만 홍보를 해야 하는데, 그것으론 한계가 명확하게 느껴졌어요. 메일링 서비스를 좀 더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을 매달 고민하곤 했습니다.
 
나하늘 : 마감이 짧다 보니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보내게 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제가 좋다고 생각했던 원고와 별로라고 생각했던 원고가 있을 때, 독자들의 감상이 저랑 같은 건 아니더라고요. 저는 꽤 오랫동안 혼자서 써왔기 때문에 작품을 내놓는 것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이 있는데, 피할 수 없는 마감이 그런 마음에 스스로 저항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Q. 작가님들께서 감명 깊게 읽은 작품 중 작가님께 큰 영향을 준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독자분들이 함께 읽었으면 하는 작품을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나하늘 : 최근에는 김뉘연 시인의 『모눈 지우개』(외밀, 2020)와 한계 시인의 『고고보이』(어패류, 2019)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모눈 지우개』는 시가 ‘문장’ 같지 않고 그냥 ‘글자’처럼 읽히는 느낌이었어요. 폰트도 메이저 출판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은 다 명조체인데 이 시집은 고딕체거든요. 뭔가 구태여 있는 것들을 다 덜어낸 느낌이어서, 그게 신선했어요. 나중에 낭독회에서 김뉘연 시인이 “구체시가 아닌 방식으로” 써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좋은 기획은 오히려 작업과 작가 사이에 거리감이 약간 있을 때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고고보이』를 읽고 나서는 ‘나 그동안 쓸데없이 엄청 무게 잡고 썼잖아……?!’ 하는 큰 깨달음을 얻었고요. 두 시집 모두 제가 여전히 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습관이나 관념들을 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충격적이었어요.
 
박규현 : 에이드리언 리치 시집 『문턱 너머 저편』을 가장 좋아해요. 최근에 나온 산문집도 좋았고요. 리치의 단호함이 매우 매력적이어서, 그러한 태도를 닮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삶을 대하는 태도와 시를 대하는 태도 사이의 간극을 해결하기도 했고요.

 

나하늘 작가의 추천 도서 『모눈 지우개』(외밀, 2020).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공모’에 선정되기도 했다.

 

[caption id="attachment_148167" align="aligncenter" width="450"] 박규현 작가의 추천 도서, 미국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의 『문턱 너머 저편』
(문학과지성사, 2011).
[/caption]

 

Q. 모두 읽어 보고 싶었던 책들이에요. 봄이 가기 전에 꼭 읽어 봐야겠습니다. 작가님들께서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프로젝트나 작품 집필, 학업 등 올해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A. 나하늘 : 일단 올해는 학위 논문을 써야 해서 아쉽지만 연재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같이 시 쓰는 ‘해양소녀단’이라는 모임이 있는데, 만나면 자주 ‘문학에서 비인간 동물을 어떻게 써야 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주제로 공부를 하고 있어요. 또, 기회가 되면 단행본을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박규현 : 우선 〈SI-BOT : BETA〉 카카오톡 채널 점검 기간을 마치고 정식 오픈하는 일을 첫 번째 목표로 잡고 있어요. 〈SI-BOT〉은 제가 시작한 가장 즐거운 프로젝트이자 집필 방식이고, 노동이니까요.

 

Q. 네, 두 분의 활동 소식과 작품을 앞으로도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박규현 작가님의 〈SI-BOT : BETA〉가 정식 오픈이 되거든 꼭 이용해 보고 싶습니다. 나하늘 작가님도 올해 학위 논문을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연재로 돌아오길 기다릴게요. 질문에 관한 답변 외에 독자분들께 전달하고 싶은 말씀이 있거든 자유롭게 전해 주세요!

A. 나하늘 : 〈하늘의 것〉 3월호 연재를 마치면 과월호를 판매할 예정이에요. 재밌을 거예요!
 
박규현 : 이 자리를 빌려 시인 박규현을 소개합니다. 더 많은 작품으로 찾아뵙길 희망합니다.

 

 

 

    이번 느린 기린 큐레이션에서는 메일링 서비스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 두 작가님을 모셔 보았습니다. 메일링 서비스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도 알기 쉽게 소개를 잘 해주신 데다 재밌는 콘텐츠도 접해 볼 수 있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느리미와 기리니도 무척 흥미롭고 즐거웠어요! 독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을 직접 전달한다는 점, 디자인 콘셉트부터 운영 방식까지 작가가 거의 모든 부분을 손수 만들어 간다는 점도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다른 작가분들의 메일링 서비스에서는 또 어떤 독창적이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날 수 있을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최근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하는 작가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취향에 맞는 메일링 서비스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느리미와 기리니는 아직도 소개해 드리고 싶은 문학 관련 콘텐츠들이 너무나 많답니다. 모두 소개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어요! 5월의 느리미와 기리니는 우리 동네의 독립 서점이라는 주제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대형 서점과 달리 독립 서점들은 특정한 장르만 전문적으로 취급한다거나 낭독회와 독서모임이 열리는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서점마다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있는 데다 대형 서점에는 입고되지 않는 독립 출판물도 구할 수 있어서 서가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저희 느리미와 기리니는 외출하기 좋은 봄날을 맞아 서점 나들이를 다녀올게요. 5월에 다시 만나요!

 

 

 

 

 

 

 

 

 

 

 

조시현

작가소개 / 조시현

2018년 실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
2019년 현대시 상반기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조온윤

작가소개 / 조온윤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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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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