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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웹진》 2021년 기획 연속좌담 ‘등단’ 2차 : 확장성

  • 작성일 2021-05-01
  • 조회수 3,738

[연속좌담]


   본 기획은 1966년부터 시행되어 온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이 2020년 재정적 부담을 사유로 폐지되고, 전통적 등단제도(신춘문예, 문예지 신인상 등)를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발표 활동을 하는 소위 ‘미등단작가’들이 활동하는 현 시점에 맞춰, 순수문학의 발전 정체와 폐쇄적 문학계 관행으로 지적받고 있는 ‘등단제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각층의 이야기를 모아 보고자 기획되었다.

   2021년 4월호부터 6월호 사이에 총 4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시선들
   - 2차 : 확장성
   - 3차 : 모색
   - 4차 : 현장



 

 

《문장 웹진》 2021년 기획 연속좌담 ‘등단’
2차 ‘확장성’

 

 

 

 

ㅇ 회의명 : 《문장 웹진》 2021년 기획 연속좌담 ‘등단’ 2차 : 확장성
   - 문단의 폐쇄성, 등단제도에 관한 인식 변화
   - 등단제도의 효율성, 청탁과 투고 문제
   - 투고제는 상시 등단제와 어떻게 달라야 할까
   - 입시 제도, 매년 배출되는 작가, 개천에서 용 났다... 비등단 작가들
   - 각자가 생각하는 대안
 
ㅇ 참여자
   - 최가은(사회, 문학평론가)
   - 이미상(소설가, 2018 웹진 《비유》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 조해주(시인, 2019 출판사 〈아침달〉에서 첫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발간하며 작품 활동 시작)
   - 박서련(소설가, 2015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문학 플랫폼 〈던전〉 운영자)
   - 한소리(기획자, 웹진 《아는사람》)

 

 

〈개회〉

 

최가은 : 안녕하세요. 오늘 좌담회 사회를 맡은 최가은이라고 합니다. (박수) 오늘 모신 작가님들은 작품이나 SNS로 이미 내적 친밀감을 쌓은 분들이라 오는 길이 설렜습니다만, 함께 나눌 이야기 주제 자체가 조금 무겁고 예민한 이슈이기도 해서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좌담 연락을 받고 나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을 했어요. 선생님들께서도 지금 다들 웃고 계시지만 아마 속으로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실 것 같아요.
    저는 등단 문제에 관해서 언젠가는 글을 쓰게 되거나 공석에서 질문을 받게 될 거라고 막연하게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하게 되어서 많이 놀랐습니다. 등단 문제가 문학계 내외부에서 굉장한 이슈라는 것,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감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문단 내 성폭력 말하기 운동’ 이후로 활성화되고 있는 제도 비판의 한 양상으로서 등단 문제 역시 계속해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제인가 1차 좌담이 올라왔잖아요?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 좌담을 보니까 저희에게 넘겨주신 질문도 꽤나 많던데요. (웃음) 등단의 확장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기대하시는 답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획 측에서 선생님들을 대표로 모신 이유는 등단제도에 관한 이력이 특별하다거나 제도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는 문학계의 인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차례로 자기소개를 해주시되, 이처럼 등단과 관련한 혹은 무관한 자신의 이력을 포함해서 소개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미상 작가님부터 소개를 시작할게요.

 

이미상 : 저는 소설 쓰는 이미상이라고 합니다. 저도 한번은 등단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나중에 글로 쓰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주어졌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을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웹진 《비유》로 ‘등단했다’라고 할지, ‘발표했다’라고 할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발표’는 다소 중립적인 뉘앙스로 사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한편 “웹진 《비유》로 등단했다”고 하면, 제 기억에 당시 ‘문학청년 활동지원 1단계’ 선정 인원이 100명이었고, 선정된 사람 중 원하면 누구나 웹진 《비유》에 게재했던 것인데요, 웹진 《비유》로 100명이 함께 등단했다는 의미도 될 것 같았습니다. ‘백 명이 등단했다.’ 이것은 국가가 돈이 많아서 가능한 일이기도 한데요. 여하튼 문단 자체를, 웹진 《비유》도 문단에 들어가, 하는 의미로 확장해 쓰고 싶은 것도 있었습니다. 문단의 범위, 등단의 의미를 어떻게 설정할지의 문제였는데요. 물론 지금도 제도적·실질적 차별이 있지만, ‘등단’이라는 말이라도 뺏어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등단과 문단의 범위가 굉장히 좁고 그에 어떠한 혜택이 주어지는지는 명백한 현실의 문제로 둘지라도요. 한편으로는, 그죠, 〈던전〉이나 《비릿(be:lit)》이나 《아는사람》 다 문단에 속하죠. 이제는 정말 속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저는. 여하튼 요즘은 복잡한 마음에서 등단, 발표, 데뷔, 혼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데뷔는 외국어라 더욱 모호하고 차등을 뭉뚱그리는 측면이 있죠.

 

최가은 : 맞아요. ‘발표’냐 ‘등단’이냐. 문예지에 글을 발표할 때도 이력을 써야 하는데, 저도 사실 아직 뭐라고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부언이 길어지기도 하는데요. (웃음) 다음 한소리 작가님, 기획자로서 소개를 한번 해주실까요.

 

한소리 : 네. 안녕하세요, 저는 시를 쓰는 한소리고요. 웹진 《아는사람》을 기획하고 운영 중입니다. 미술 갤러리 큐레이터(Curator) 일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문예창작 대학원에 재학 중이기도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웃음)

 

최가은 : 네, 감사합니다. 이제 박서련 작가님으로 넘어갈까요?

 

박서련 : 소설 쓰는 박서련입니다. 지금 문학 플랫폼(Platform) 〈던전〉의 운영진으로 함께하고 있고요. 저는 2015년에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전통적이라면 전통적인 등단 루트(Route)를 타고 있는 사람이기는 한데요. 등단 이후에 발표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해서 이게 맞는 건가 싶었고 등단 이전부터도 등단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회의감이 있었지만 등단하지 않은 채로 등단에 대해서 말하면 ‘허공의 신 포도를 보면서 욕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오히려 오기로 등단을 하고 싶었던 그런 마음도 있었던 거 같아요. 제 경우에는.

 

최가은 : 네. ‘허공의 신 포도를 보면서 욕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1차 좌담에서는 ‘열패감(劣敗感)’이라는 단어도 나왔던 것 같아요. 좋습니다. 조해주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조해주 : 안녕하세요. 저는 시를 쓰는 조해주라고 하고요. 2019년에 〈아침달〉 출판사를 통해서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라는 시집을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최가은 : 네, 감사합니다. 방금 시집 출간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사실 제가 등단과 관련한 이력을 통해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 이유는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등단 절차를 밟아 작가가 된다는 것은 신인임을 공표(公表)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올해 신인은 이러이러한 사람들입니다.”와 같이 발표가 되면 청탁이 가고, 그렇게 작품 활동을 이어 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라고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등단 절차 이외의 것을 상상하려 해도, 정확히 어떤 방식과 절차가 있는지, 어떤 사례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조해주 시인께서는 그 다른 과정을 통해 작가로서 활동을 이어 가고 있기 때문에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작품집이 먼저 출간되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조해주 : 제가 투고했던 당시에는 아침달 시인선이 한 권도 출간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정보가 많지는 않았어요. 아침달 출판사에서 시인선을 준비하고 있고,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당시 함께 시 쓰던 지인이 제게 알려주었어요. 뭔가 낯설고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투고를 했는데, 얼마 뒤에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았어요. 그런데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어요. 어쨌든 제 입장에서는 소중한 원고들을 한꺼번에 바깥세상에 내어놓는 셈이었는데, 시집 출간 뒤에 시인이 된다는 확신이 없었거든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상황도 각오해야 했기에 망설임이 앞섰어요. 이런 고민들 때문에 출간 일정을 미루기도 했고요. 어쨌든 여차저차 결정했고, 2019년 1월 마지막 날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지요.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나진 않았지만, 달라진 점도 있는 것 같아요. 2021년 4월 기준으로 아침달 출판사에서 첫 시집을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 저를 포함해 4명이 되었으니 시집 출간을 염두에 두신 투고자들께서 참고하실 수 있는 케이스(Case)가 조금은 늘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가은 : 지인을 통해서 시집 투고에 관련된 정보를 알게 되고, 투고를 통해서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등단 문제가 청탁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투고제가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요. 〈던전〉이나 《아는사람》의 기획과 편집 방향이 등단 문제와 연결되어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건 이제 저희가 차차 이야기를 하고요. 우선, 등단과 관련한 작가님들의 자기소개를 잘 들었습니다. 사실, 같은 ‘문학 등단’에 관한 문제라고 할지라도 저희가 속한 영역이 다른 만큼 등단이 각각의 글쓰기 장르와 기획 영역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 문제점 등도 각기 다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평론, 소설, 시, 기획 등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아 놓고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과연 생산적인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드는데요.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겠지만, 공통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최대한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문단의 폐쇄성, 등단제도에 관한 인식 변화

 

최가은 : 《문장 웹진》의 한 좌담에서 〈던전〉의 대표이자 시인이신 서호준 작가님께서는 한국 문단은 문단 자체뿐만 아니라 문단을 지망하는 지망생 집단조차 강한 폐쇄성을 띠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1) 쉽게 말해 전공자와 유사 전공자 이외에는 작가가 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어떤 교육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말은 반대로, 이른바 관련 전공자인 문단 지망생 내부에서는 등단이라는 과정과 절차가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텐데요. ‘등단’이라는 문제가 끝없이 대화의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도 이것이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나, 매년 이야기 되는 ‘등단제도 폐지’와 같은 급진적인 해결책으로 쉽게 전환되지 않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지망생의 경우 등단이라는 절차를 우회하거나, 그 바깥에서 무엇을 찾아 활동을 시작하지 않는 이상 등단 문제에 관한 첨예한 고민, 토론을 해보기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실상 등단제도는 기성 작가들이 아니라 지망생들이 거쳐야 하는 루트이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토론과 그 과정의 가시화가 매우 중요한 과제일 텐데도요. 등단제도에 관해서 각자 활동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특정한 입장이나 의견을 지니고 있으셨는지, 활동 이후와 이전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2020년 예술위 현장소통소위원회&《문장 웹진》 공동기획 연속좌담 4차 〈신진의 시선으로〉, 《문장 웹진》 2020년 7월호,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462222020

 

이미상 : 저는 일단 전공자도 아니고 유사 전공자도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문인 친구 한 명 있는데, 거의 은퇴해 가지고 문인 친구 없어요. 아예 없어요. 그래서 ‘지망생 집단의 강한 폐쇄성’에 관한 질문을 보고 생각해 보았는데…… 사실 등단 절차는 ‘신춘문예’ 검색해서 정해진 기간에 내면 되는데……. (웃음) 사실 폐쇄성이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폐쇄성을 느낄 정도로 그 장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요. 저도 등단하고 싶었고, 저는 사실 미등단자, 비등단자, 반등단자를 막 오갔는데요. 강한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떤 해에는 신춘문예에 내보고, 어떤 해에는 안 내고, 어떤 해에는 ‘아, 됐어, 제도 꺼져’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왔다 갔다 했어요. 그래서 여기 나올 자격이 없기도 해요. 특히 플랫폼을 직접 운영하고 계신 다른 분들을 생각하면요. 결과적으로 전통적 등단을 안 하고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죠, 결과적으로. 여하튼 확장성이라는 상징을 입기에는 민망한 일이고요. 제가 판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것은 별로 없죠. 어쨌든 글이 잘 됐을 때는 내보기도 했고, 안 내기도 했고. 그냥 그래도 좋을 것 같아요. 미등단, 비등단, 반등단을 오가도요. 신념 강한 분들을 존경하면서도 개인이 그런 부담을 짊어지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저도 등단하지 않았을 때 제 글이 어떻게 독자와 만날 수 있을지는 고민했어요. 그건 고민했죠.

 

최가은 : 이미상 소설가께서는 등단 절차가 ‘공모’의 형태이기 때문에 절차 자체에 대해서는 폐쇄성을 느끼지 않으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절차적인 폐쇄성도 있지만 이른바 ‘되는’ 글들의 어떤 전형성이랄지, 이런 것에 대해서 관련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접근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관련해서 이어 가고 싶은 질문은 기획자분들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이미상 작가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창작자로서는 첫 글이 발표가 되고 나서 청탁이나 투고와 같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활동을 이어 가게 되는 경우, 활동 이후에도 등단제도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고민을 확장해 나가기는 사실상 어려운 구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 독립 문예 잡지 기획을 하실 경우에는 등단과 청탁, 투고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중요한 키워드일 것 같은데요. “등단자, 비등단자 구분하지 않고 투고를 받겠다.”라고 선언하는 것 자체도 어떤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그런 기획을 하게 되었는지 한소리 기획자께서 먼저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소리 : 네. 저는 문예창작과로 대학교를 다녔다 보니 아무래도 등단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었어요. 폐쇄성이라는 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니까 인지를 못 하고 있다가 오랜 시간이 흐르고 그걸 인지하고,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을 때, 이미 너무 견고하게 쌓여 소리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걸로 저는 보거든요. 대학교 다닐 땐 그러한 폐쇄성, 즉 당연하다는 생각에 들어앉아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는 문단 내에 속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외부인처럼 살았거든요. 학교를 계속 꾸준히 다닌 게 아니라 졸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중간에 사이버대학교를 가고, 다시 회사를 다니고, 뭐 이것저것 하느라 문단 내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크게 가지지 못했고, 참여도 못 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다시 시를 제대로 쓰고 공부해 보고자 대학원에 들어간 뒤에는 문단이라는 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등단 자체가 신인상이나 상으로 주어지잖아요? 그런데 이게 상을 타지 않으면 ‘내 창작 활동은 끝나’, ‘내 예술은 끝나’라는 것처럼 보이고, 또 그렇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아, 이거 뭔가 좀 문제가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제가 모 지방지 신춘문예에 투고를 해보려고 준비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말리더라고요. 왜 거기에 투고를 하느냐, 아깝지 않냐 하면서요. “근데 나는 거기 상금도 많이 주고……. 뭐, 좋잖아.” 그랬더니 ‘거기에서 처음에 상금을 받으면 그다음에는 아예 줄이 끊긴다.’라고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이거는 결국 사람들이 메이저(Major)나 인지도가 있는 곳에 투고를 하는 것 자체가 사실 상금이나 그런 거 때문이 아니고, 인지도가 필요하고, 그 뒤의 일들을 보상 받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등단제도, 특히 더 유명한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저기에서 등단을 하면 그 이후로 보장되는 활동들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걸 보장해 준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에요. 그냥 상처럼, 대회니까 대회 끝나면 끝나는 거거든요. 그해에 대회는 누가 우승했고, 상금 탔고, 끝. 끝인데 이상하게 이게 정말로 보장이 된다는 거예요. 메이저에서 등단을 하면. 신인상 같은 경우에 문예지나 출판사에서 하는 경우는 일간지에 실릴 수 있고 그게 계속 이어지는 것도 있고, 그걸 통해서만 사람들이 청탁이나 그런 게 들어오니까 그런 보장성이 너무 당연하게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또 메이저 같은 곳에서는 그런 보장성을 잘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아는사람》을 만들었어요. 나름의 보장성으로요. 청탁을 받지 않아도, 누군가가 보장해 주지 않아도 언제나 작품을 선보일 지면이 있다는 건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최가은 : 등단이 작가로서 나의 존재와 글을 보여주는 공식적인 과정이자 향후 활동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작가 지망생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된다는 말씀인데요. 특히 활동의 지속성 문제 때문에 많은 분들이 소위 메이저를 통해 등단하기를 원한다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고요. 그렇다면 《아는사람》은 작가들의 활동을 이어 가기 위한 또 하나의 공론장으로서 기획된 셈이군요.

 

한소리 : 네. 그런데 《아는사람》을 비등단자들을 위한 웹진이라고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무척 많더라고요. 근데 저는 비등단자를 위한 웹진이나 플랫폼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비등단자, 그러니까 등단을 안 해도 누구나 투고를 할 수 있고, 올릴 수 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시작한 게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거든요.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비등단자도 투고 가능합니다.”라는 말을 거의 안 했어요. 오히려 비등단자를 거론함으로써 등단 자체가 기준이 확고해지는 어떤 효과도 있고, 또 심지어 저희는 이제 투고를 만날 받으니까 투고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주변 말도 듣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그게 있는 거예요. 비등단자들을 위한 독립 매체라는 그런 생각이 있으니까 등단한 친구들도 그 투고에 넣기가 굉장히 애매하고 고민되고 너무 미안하대요. 왜 미안하냐 했더니 그래도 비등단자들은 아예 등단을 못 했으니까 그런 기회가 없는데 자기들은 어쨌든 등단을 했으니까 그들의 파이를 뺏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가 됐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등단한 사람들이 투고를 굉장히 많이 하고, 저희 웹진에서 등단한 사람들이 투고를 해서 뽑히는 일도 있고요. 계속 이렇게 등단자가 생기면 나가서 여길 찾아오지 않고, 그런데 그게 더 잘 돼서 여기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 뭔가 비등단자들을 위한? 그래서 결국 등단제도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갇혀 있는 플랫폼이랑 발표장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는사람》으로 참여를 한다고 했을 때 저희가 고려한 것은 ‘비등단자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매체든 처음에 비등단자도 투고가 가능하다는 말이 한 번이면 괜찮은 거 같아요. 굳이 그 뒤에 계속 ‘비등단자도……’, ‘기성 시인이 아니더라도……’ 이런 말 없이 그냥 누구나.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에 중점을 두고 보는 것 같아요.

 

최가은 : ‘비등단자만을 위한 독립 문예지’라는 소개가 오히려 등단과 비등단 사이의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고, 그 때문에 그러한 표현을 지양하신다는 말씀 인상적입니다. 〈던전〉도 한말씀 해주실까요?

 

박서련 : 네. 〈던전〉에 참여하기 전에 작가 지망생이었고, 작가가 된 저의 입장하고 〈던전〉 운영진으로서의 저의 입장 차가 있냐는 질문으로 저는 받아들였는데요. 특정한 의견이나 입장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변화했는지에 대해서 물어 주셨으니까…….
    제 경우 자기소개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등단제도에는 의구심이 있지만 등단을 못 한 채로, 또는 등단을 하지 않은 채로 이야기하는 건 어떤 콤플렉스(Complex)나 열패감 때문인 것처럼 취급되는 게 싫어서 오기로 등단을 한 사례고 그럼에도 등단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심했던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던전〉에서도 역시 등단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그러니까 등단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할수록 등단이라는 제도를 인정하는 게 되어버린다는 인식이 있어서 등단이라는 제도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운영하려는 점이 있는데요. 냉정하게 말하면 저희가 청탁제 대신 채택하고 있는 투고제는 계속해서 원고 검토를 해야 하는 작업이고, 이건 등단제의 미니버전이 계속 반복되는 거하고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하는 동안에 깨달은 것은 사실 등단이라는 제도는 굉장히 효율적이라는 것이었어요. 딱 1년에 한 번씩 한 매체에서 모든 원하는 사람들, 지망생들의 원고를 한 번에 받아서 예심과 본심을 거쳐서 한 명의 작가를 선발해 낸다는 것은 얼마나 효율적이고,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잘 쓰는 글을 갖고 있는 작가를 찾아내는 길인지, 그 단 하나의 목표를 두고 생각한다면 잘 만든 제도라고 생각돼요. 그렇지만 동시에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면, 그래서 그 잘 만들었다는 것이 ‘어떤 목적성? 무엇을 유지하기 위해서’ 잘 만들어진 제도인가를 생각했을 때, 저는 약간 제사랑 비슷한 면이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가부장제라는 것을 유지하는 것 말고 제사에 어떤 목적이 있지?’를 생각해 보면 뭐랄까, 어떤 가족의 문화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지 우리가 다 양반이고 현대 사회의 남성들이 다 선비여서 제사를 지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사가 왜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가 물어보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자기가 양반이었는지 노비였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너무 많을 텐데……. 등단제도도 비슷한 맥락에서 ‘아마 처음 시작할 때는 의미가 있는 제도였겠지’, 그러니까 가령 ‘일제강점기 때 우리말 우리글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등단 및 추천 제도가 굉장히 의미가 있는 제도였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시대에도 그런 제도가 의미가 있는지 물었을 때 아무도 모르고, 그냥 그때부터 해왔는데 없애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을 다 모으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있는 제도 정도로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최가은 : 등단제도가 효율적인 부분이 있다는 말씀에는 저도 동의하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다시 이야기를 나눠 보고요. 먼저 조해주 시인께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조해주 : 여러 가지 키워드(Keyword)가 포함된 질문이라 사실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난처할 정도인데요. 저는 ‘폐쇄성이 없는 집단이 이 현대 사회에 있나?’ 그런 생각이 우선 들고요. 왜 문학 집단에 대해서만 폐쇄성이 문제가 된다고 이야기하는가, 그 맥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문예창작과 학생들을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만, 다른 전공 과 학생들도 폐쇄성을 갖고 있죠. 폐쇄성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전문성과 함께 가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까 이미상 작가님께서도 “신춘문예 정보 같은 거는 사실 검색하면 나오는 거 아닌가요?”라고 하셨는데 맞아요. 그걸 가지고 지망생들끼리 정보 공유를 하는 게 뭔가 문제가 된다고 이야기하는 거는 무리가 있다고 봐요.
    ‘지망생’이라는 표현 또한 조심스럽습니다만, 편의상 ‘지망생’이라고 하겠습니다. 작가 지망생은 제도를 이루는 중요한 톱니바퀴 중 하나이고, ‘잘 만들어진’ 제도일수록 그 안의 구성원이 제도의 문제를 알아차리기는 어려운 거 같아요. 이를테면 ‘비등단’이나 ’미등단’이라는 단어의 경우에도, ‘등단’이라는 단어를 신춘문예, 또는 문예지 신인상에 국한하기 때문에 그거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미로 쓰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미 그 단어는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제도를 통과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깊이 내면화가 되어 있는 거죠. 제 경우에도 ‘지망생’일 때 ‘등단’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고, 신춘문예와 문예지 신인상 제도의 응모요령을 기준 삼아 5~10편의 원고를 만들기 위한 훈련을 거듭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활동 이후에 ‘등단’제도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됐어요. 아까 박서련 작가님께서 ‘〈던전〉도 투고된 원고를 심사하고 선정된 원고만을 게재한다는 점에서는 ‘미니 신춘문예’라고도 볼 수 있고, 등단제도의 본질로부터는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던전〉과 같이 최근 ‘등단’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전의 제도와 본질은 비슷할지 몰라도 각각의 새로운 지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문제도 생겨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면 오히려 기존의 등단제도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시도들을 보완해 나가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바라건대, 등단제도에 대해 논의할 때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제도 ‘통과’ 여부를 기준으로 논의의 자격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제도를 통과한 작가를 ‘위선자’, 통과하지 않은 작가를 ‘패배자’로 바라보지 않았음 하는 거지요. 그런 식이라면 아무도 토론에 참여할 수 없게 되니까요.

 

최가은 : 실제로 그런 인식은 여전하지요.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지망생이 등단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너 그거 열패의식이야”, 물론 아무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지만, (웃음) “그렇게 오해받을 수 있으니 일단 등단해.”와 같은 말들을 한달까. 말씀하신 것처럼 반대로 등단 절차를 거친 이들이 논의에 말을 보태면 “너는 어쨌든 등단했잖아.”라는 식으로 받아치는 지점도 있지요. 이런 인식 때문에 작가로서의 승인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토론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많은 지망생들은 일단 등단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미상 작가님, 덧붙일 말씀이 있으신 것 같네요.

 

이미상 : 저는 진짜 아는 게 없긴 한데요. 아까 조해주 님의 말씀이 와 닿아서. 저도 일단은 비등단 작가고, 제 상태는, 사실 저는 잘 몰랐지만. 여하튼 자격의 문제도 자격의 문제지만 정보의 문제가 큰 것 같아요. 제가 정보를 갖고 있느냐 하면 그렇겠죠. 원고비를 받거나 계약을 해본 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 있는 저희 전체가 가진 정보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일하는 분들, 또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이 가진 정보는 차원이 다르겠죠. 정보 부족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등단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등단 이후 활동 수준에 따라서 알게 되는 정보가 다른 것 같아요. 어쨌든 폐쇄성은 정보의 양과도 관련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정보가 공개되어야 할지, 무엇을 더 알아야 할지, 무엇이 더 알려져야 할지, 물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자체도 뭘 알아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요. 그때 중요한 것은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하는 말을 존중하고 그 의의를 생각하는 일일 것 같아요.

 

최가은 : 토론에 참여할 자격이라는 것이 정보의 문제와도 관련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소위 ‘판이 돌아가는 방식’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의견에 귀 기울여 주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정보량에 개의치 않고, 등단제 외에 가능한 여러 트랙(Track)에 대해 작가님께서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계신 것도 있나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미상 : 네, 등단제가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점을 개선해 나가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경로를 만드는 것, 이렇게 두 가지 트랙으로 가는 것을 생각하게 돼요. 제가 등단하기 전에는 〈던전〉이나 《아는사람》이 없을 때여서, 다른 독립 문예지가 있기는 했지만, 여하튼 등단 못 하면 친구랑 독립 출판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가능성을 버리지 않았는데, 늘 ‘나는 PDF 문학을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사실 너무 어렵잖아요. 교정/교열/편집/맞춤법. 저는 인디자인(Adobe Indesign)도 모르는데. 맞춤법도 다 틀리고.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춰야 출판도 가능한데 그게 없어서. ‘나는 글 써서 PDF 파일로 뿌리고 돈 대신 독자의 편집을 대가로 받겠다.’는 포부가 있었어요. 원고비 대신 독자가 교정/교열/비평을 해주는 거예요. 그럼 저는 다음 회를 보내고. ‘그럼 조금 읽지 않을까?’ 싶었어요. 누구 거 고치는 거 재밌잖아요. 빨간 펜도 좀 긋고. 여하튼 이래저래 안 되면 나는 PDF 문학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망할 아이디어이기는 한데 이런저런 방법, 다양성, 난무(亂舞)가 필요하다고도 생각해요. 글은 속성상, 우리가 글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한데, 누구나 쓸 수 있고, 내 생각을 옮기는 것이고, 다른 장르보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투고 수가 많죠. 최근에 트위터에서 봤는데 《베개》에 시 1,000편이 투고됐다고…… 1,000편 읽어야 하는 거거든요. 한 편당 읽는 사람에게 오천 원만 지불해도 어마무시하죠. 등단제를 폐지하고 투고제로 바꾸면 사실상 상금을 주지 않는 상시 등단제예요. 어마무시한 편수고, 그것에 편집부의 노동이 투여되지 않을까 싶어요. 노동착취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이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등단제 폐지를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문제예요.

 

 

 
등단제도의 효율성, 청탁과 투고 문제

 

최가은 : 네. 말씀 감사합니다. 관련해서 〈던전〉이랑 《아는사람》에 여쭤 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박서련 작가, 이미상 작가께서 차례로 등단제도의 효율성을 언급해 주셨는데요. 등단제도를 통한 작가 생산이란 심사자의 입장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한 명의 작가를 뽑으면 되고, 작가 입장에서도 한 번만 승인을 받으면 되도록 만드는 구조이지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이것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가장 효율적인 제도이기에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 추가적인 질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웃음)
    여기서 등단을 청탁 문제와 한번 연결해 볼까요. 청탁이 신인에게 한정된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 문단 주류 문예지가 기본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절차가 청탁이고, 이 때문에 신인에게는 등단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텐데요. 그렇다면 등단과 청탁의 협조적인 관계는 아마 문예지의 편집위원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이미상 작가님께서 《베개》를 경유해 말씀해 주신 것처럼 투고작을 일일이 검토하는 일이란 뼈가 갈릴 정도로 힘든 작업일 것 같거든요. 해당 호의 기획회의와 별도로 많은 투고작들을 다 검토하고,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게재 여부에 대한 합의를 거치고, 그 결과를 투고자에게 설득시켜야 하는 과정을 상시적으로 진행해야 하니까요.
    반면 등단제도를 통한 청탁은 심사를 거쳐 발표된 신인의 글을 통해 다음 글을 요청하고, 그 글 자체에 대해서는 교정․교열과 피드백(Feedback) 정도로만 개입하는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독립 잡지들이 새로운 기획 방향을 모색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관련한 문제점도 상당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실제 투고제로 잡지 운영을 하시는 입장에서 발생할 문제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앞서 이미상 작가님께서 지적해 주신 것처럼 투고작 검토가 편집부/편집위원들의 착취 수준에 가까운 노동력을 기반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게재할 작품을 ‘뽑는다’는 의미에서 제기될 수 있는 권력 행사의 문제일 듯합니다. ‘투고제가 상시 등단제에 다름없다.’라는 말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한소리 : 사실 너무 어려운데. 제가 창작자라서 하는 고민이기도 했는데, 어떤 걸 운영하기 위해서는 저는 기획자․편집자․창작자 중에서 다 같이 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만 어쨌든 객관적으로 보이는 면모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내가 이 웹진을 운영을 할 때, 완전히 기획자의 입장이 되어야겠다.’라고 선택을 하고 시작했고, 그래서 사실은 뭔가 다른 사람들? 다른 편집자나 기획자들한테는 제가 막연한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저 사람도 당연하게 어떤 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믿음 때문인지. 저는 이제 투고 작품 선정을 한 달에 한 번씩 진행을 했어요. 사실 완성된 작품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일단 한 달에 1편씩, 그것도 주제를 바꿔 가면서 주제에 어울리는 것을 투고를 받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가 완성도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투고가 몰려오면 그걸 다 읽잖아요. 하긴 이 읽는 게 사실은 굉장히 힘들고 그렇지만 힘들다고 말하기에는 자발적으로 하는 거니까, 내가 하자고 했으니까 그냥 해야지, 묵묵히 해야지, 이런 면에서 하는 게 좀 있는데, 제가 느낀 게 저는 이번에 지원 사업을 신청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때 사업자 등록을 하면 안 되는 사정이 있어서 못 했는데, 이제 나라에서 지원을 할 때,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그런 책들, 그런 고료 지원 같은 것만 제한하지 말고, 고료 지원을 해줘도 그쪽에서 인력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는 어떤 자금이 모이거나, 아니면 인력 보충 등의 그런 지원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 그냥 지원 받는 곳들에서는 거의 의무적으로 인력을 보충할 수 있게 자금을 주고, 지원 사업을 하는 곳들은 다 무조건 투고를 조금 하는 형식으로 하면 어떨까.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는데 아쉬운 점이 고료 지급에만 쓰니까. 여러 글을 봤는데, 사실 〈던전〉 같은 경우에도 지원금을 창작자 고료로밖에 못 쓰니까 어떤 운영진들 간의 문제는 따로 돈이 지급되지 않는 거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지원의 한계나 문제가 있지 않나 싶었어요. 요약하자면 문예지 지원 사업 같은 경우에 작가들의 고료도 중요하지만 그런 거를 노동착취라고 말하지 않을, 그러니까 노동착취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떤 정당한 대가를 지급할 수 있는 인력 문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최가은 : 등단이 청탁 과정과 굉장히 긴밀히 이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그 대안으로 투고제가 계속 이야기 되는 것이고, 독립 문예지들이 투고의 형태를 많이 띠게 되는 사정도 그러한 맥락과 관계되는 것일 텐데요. 관련해서 궁금했던 부분을 잘 말씀해 주신 것 같아요. 첫째 편집자들의 노동력 문제에 있어서는 인력이 확장되고, 금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면 물리적인 한계가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이셨고요. 둘째 편집권의 문제에 관해서는 편집 기준에 대한 고민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기존의 문학장과 비슷하게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콘텐츠로서 조금 더 독자적인 성격을 밀고 나갈 것인가와 같은 고민을 지속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한소리 : 왜냐하면 아까 그 창작, 편집, 기획자로서의 어떤 입장을 이야기했는데, 이게 사실 사람들이 투고를 했을 때 굉장히 기획자로서 고민도 많이 하잖아요. 이 작가의 이 작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걸 보는 독자들이, 즉 독자가 창작자이기도 하고, 기획자이기도 하고, 편집자이기도 해서 그걸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다가 글을 올리고, 자유게시판 같은 경우에도 올려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희가 항상 이야기를 하는 게 이건 발표와 동시에, 그냥 작품 공개와 동시에 ‘나는 이 사람을 여기서 보여줬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을 제발 알아봐 달라’, 그리고 ‘이 사람한테 이런 매력이 있으니까 혹시 관심 있으시면 꼭 한 번만 같이 일을 해보세요’ 같은 느낌으로 저희가…… 그래서 항상 이런 작가들에게 청탁 같은 거는 저희한테 아무 말 없이 하셔도 된다고 몇 번 공지를 했어요. 좀 신기했던 게 다시 이런 말로 들어가자면 좀 이상하지만 정말로 《아는사람》을 통해서 어쨌든 등단을 하지 않은 분들한테 청탁이 많이 갔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소위 아예 모르는 곳만도 아니었고, 또 그분들의 작품을 저희 팀원들이 봤을 때 “저건 완전 너무 잘 쓴 글이야.” 하지 않은 글을 보고서도 굉장히 많이 청탁을 해주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어떤 편집자나 그리고 어떤 것을 운영하는, 문예지 관리하는 분들이나 그런 분들의 능력 같은 건 아까도 말했듯이 이미 믿음이 있어서 그들에게 더 확신해도 괜찮다, 지금까지 실패하면 좀 이상한 거 올렸다고 사람들이 욕하고 이런 거 없다, 괜찮다, 라고 하려면 이제 운영 쪽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던 거를 좀 더 보충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최가은 : 〈던전〉 역시 《아는사람》처럼 청탁권을 투고작에 대한 검토와 편집권으로 전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서련 : 먼저 〈던전〉에는 등단자분들도 가끔 투고를 해온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어요. 상당히 비중 있는 비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등단자라고 해서 특별히 우대하거나 페널티(Penalty)를 주는 것 없이 원고만 보고 결정하거든요. 그리고 반려할 경우 왜 반려하는지 피드백 메일을 저희는 꼭 보내드리는데…….
    청탁제도하고 투고 100% 제도하고 차이가 있다면 등단할 때만큼은, 그러니까 원래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같은 경우에만큼은 완성된 원고를 본 다음에 작가를 뽑잖아요? 그런데 청탁할 때는 작가의 이름을 보고, 그 사람에게 완성되지 않은 원고를 지금부터 써달라, 미리 발표 원고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 그때부터는 순서가 달라지는 것이지?’라는 근본적인 의문도 있고. 그래서 저희는 꼭 작가가 검증됐으면 원고도 검증된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원고를 먼저 보여주시면 그걸 보고 말씀을 드린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요. 재연재를 희망하는 작가도 예외가 아니고요.

 

최가은 : 〈던전〉 투고의 특이성 중 하나는 어느 정도의 연재가 가능한 분량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들을 대상으로 투고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일 겁니다. 박서련 작가의 말씀을 고려하면, 그것이 작가의 ‘이름’을 보느냐, ‘작품’ 자체를 보느냐의 차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데 투고작 검토와 관련한 〈던전〉의 인력 문제는 어떤가요? 막상 해보니까 많이 힘들진 않으신가요?

 

박서련 : 현재 던전지기 전원이 무급으로 운영에 참여하고 있어요. 감사하게도 〈던전〉 역시 ‘2021년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에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작가님들께는 좀 더 정당한 고료를 드릴 수 있게 되었지만, 저희는 웹 플랫폼이어서 지원금을 어느 정도 사이트 안정성을 좀 더 보수할 수 있는 비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렵다고 해서 원칙대로 100% 원고료로 집행하기로 했고요. 원고료로 집행할 때 문제가…… 저희는 작가를 엄청나게 많이 뽑거든요. 저희는 일간지 개념에 좀 더 가깝기 때문에 작품 연재 수도 다른 문예지에 비해서 훨씬 많은 편인데, 그러면 원고료로 집행을 하려고 해도 모든 작가님들께 똑같이 많이 드리는 건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어떻게 집행해야 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웹 플랫폼에 대해서는 다르게 적용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희 의견이기도 한데, 아직 과도기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아마 내년, 내후년 사업에는 저희가 하는 거에 달려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싶네요. (웃음)

 

최가은 : 투고작 검토에 있어서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힘든 점이 많을 것 같다고 지레짐작했는데 물리적 한계를 분명히 느끼긴 하시지만, 이를 부당하다거나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기획자 두 분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청탁이란 작가 이름, 이전 발표 글을 보고 다음 글을 맡기는 과정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해당 원고 자체를 가지고 이런저런 검토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작가의 이름을 보고 어떤 내용의 글을 쓰든 게재를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요. 특히 그 지점에서 〈던전〉과 《아는사람》은 나름대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동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탁 절차를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할 수만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유지되는 데는 분명 어떤 긍정적인 기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거든요.

 

한소리 : 저 말을 좀 얹어도 될까요?

 

최가은 : 네, 그럼요.

 

한소리 : 청탁에 관한 문제도 제가 좀 많이 고민했던 것 같은데요. 저희 웹진이 시작하자마자 처음 시가 4편이 올라왔어요. 그런데 그건 저희가 청탁으로 이루어졌던 거거든요. 일단은 어떤 식으로 시가 올라온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어떤 인지도 문제 때문에도 청탁한 게 있었고, 그리고 뭔가 취향? 그런 것도 좀 반영이 됐을 거고.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저희가 청탁을 그런 식으로는 안 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심지어 저는 조해주 시인님께도 청탁을 했는데 저희가 청탁할 때는 그 사람이 시인이면 시를 청탁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작가들한테 청탁을 할 때, ‘이 사람이 이런 시를 쓴다.’ 이런 건 이미 다 알고, ‘이 사람이 이런 평론을 쓰고, 이런 사람이 이런 소설을 쓴다.’라는 것도 다 알고 있는데, 뭔가 저희 쪽에서는 청탁을 하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약에 독자들이 궁금하다면 이런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지 않을까 해서 청탁을 할 때 무조건 그 사람의 주요 활동 분야 말고, 저희가 진짜 이 사람한테 듣고 싶고 궁금한. 그래서 저희가 주로 에세이 청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래서 청탁에 대한 문제 같은 거는 사실은 좀 가져오기도 했고……. 청탁에서 중요한 건 저희는 청탁을 했을 때, 받는 원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반려할 때도 있어요. 청탁이라서 드리는 것 같아요. 원래 투고가 아니고 청탁이 어쨌든 부탁을 드리는 거고 어떤 일을 같이하는 건데 편집이나 교정․교열을 제외하고 “뭔가 이 원고가 독자들한테 전달됐을 때 이 부분이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같은 피드백이나 “이 부분이 좋은데 이 부분이 너무 짧게 나온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혹시 붙여 주실 수 있냐.” 이런 식으로 반려를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잘 되어 있거든요. 잘 되어 있진 않고 그냥. (웃음) 그래서 약간 그런 건 좀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어떤 플랫폼 같은 데서 청탁을 한다면 어쨌든 사람들한테 청탁을 하는 기준이 알려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저희는 알려지지 않은 기준들이 많아서 많이 애매한 상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약간 그런 과정 같은 걸 말한다면 그래도 사람들이 보는 게 덜 배타적이고, 더 부정적이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청탁을 할 때 그런 부분도 중요하게 작용을 했고, 또 다른 데서 청탁을 할 때 무조건 저는 ‘이 사람들한테 청탁해서 받으면 끝이야.’라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글은 이미 완성도는 체크됐어.’라는 게 너무 그래서 그런 부분으로 저도 청탁하시는 분들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그런 면이 있었어요.

 

최가은 : 중요한 말씀 해주신 것 같습니다. 청탁 과정 자체 역시 복잡한 측면을 지닐 수 있고, 그러므로 청탁제도 내에서도 그 나름의 확장성이나 가능성을 개별적으로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는사람》의 경우에는, 그처럼 청탁제도를 적절히 활용하되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식으로 접근해 보는 노력을 겸한다는 이야기였는데요. 해당 작가의 주 장르와 다른 장르의 청탁을 맡기는 방식을 대표적으로 언급해 주셨습니다.

 

 

 
투고제는 상시 등단제와 어떻게 달라야 할까

 

조해주 : 그런데 기존의 등단제도 통과 여부를 불문하고 모든 작가들을 매번 심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예를 들어, 가수들의 경우 ‘믿고 듣는 oo’라고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이전에 경험한 작품을 기준으로 아직 발매되지 않은 작품을 기대하고 구매하는 건 나쁜 게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작가들의 경우에도 어떤 작가의 전 작품이 좋았으면 그다음 작품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고, 청탁을 준다든지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오히려 매번 작가들의 작품을 투고 방식으로만 취합하고 작품을 심사하고 선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심사자와 작가 간의 위계가 문제가 될 수는 있을 거 같아요. 이미 기존 제도에서도 발견되었던 문제들이지요. 신인 작가에게 청탁을 주면서 여러 편의 작품을 요구한 뒤에 편집위원이 작품을 셀렉(Select)했다거나 수정을 요구했다는 경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어요. 이건 단순히 교정교열의 차원은 아니고, 발표 지면이라는 권력을 쥐고 요구한 것이기에 작가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거죠. 이러한 사례들을 되짚어 보는 것은 필요해요. 한소리 기획자께서 《아는사람》 운영 주체들 간의 신뢰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잡지 운영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도덕성은 물론 중요하지요. 그러한 선의를 의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요. 다만 기존 문예지들의 안 좋은 선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문예지를 운영하는 주체의 도덕성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가은 : 네. 한소리 기획자님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봐야 되겠지만 그전에 정리를 한번 하겠습니다. 투고제의 경우, 작가가 심사를 계속해서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투고작을 검토 받는 과정에 대해 심사라고 표현하신 것이죠?

 

조해주 : ‘기존의 등단제도를 통과했다고 해서 그 작가의 이후 모든 작품이 검증된 건 아니다.’라는 식의 태도가 기존의 등단제도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작가들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라서 공평하게 보이는 측면도 있을 수는 있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위계에 대하여 절차상 보완이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지요.

 

최가은 : 투고작 검토 과정에서 게재 여부, 수정 사항과 관련한 피드백도 중요하지만, 이 피드백이 검열이나 부당한 권력 행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도덕성에 의존하기보다는 내부의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신 것 같아요. 관련해서 기획자분들 나름의 고민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네. 두 분 다 발언 신청을 하셨네요. (웃음) 박서련 기획자님부터 말씀해 주세요.

 

박서련 : 저도 아까 〈던전〉에서도 꼭 등단 작가라고 해서 작품을 투고해 왔을 때 그 작품을 반드시 좋게 봐주고 하진 않는다, 이 작품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읽었는지, 반려를 할 경우엔 왜 반려를 하는지 피드백을 반드시 보내드린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여기서 권력 관계? 권력과 위계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착각이겠죠. 그래도 작품을 선별하는 기준에서 최소한의 권위는 있어야 이 매체를 사람들이 신뢰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권위를 완전히 거부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 물론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라면 당연히 다 싣고 싶지만, 아무리 웹 플랫폼이어도 지면의 한계가 있어서 모든 작가님들에게 기회를 다 드릴 수는 없기 때문에 제한이 발생하는 거 같고요. 검증된 작가에게 원고를 그냥 받을 것인지, 아니면 가능한 많은 작가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 선택하려 할 때, 권위로 해석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던전〉의 경우에도 초창기에는 최초 연재자분들은 모두 청탁을 통해 모았어요. 왜냐하면 〈던전〉이라는 사이트를 오픈했는데 이용자분들이 보실 원고가 하나도 없으면, 작품이 하나도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데 청탁을 하면서 느낀 바는 결국은 아는 사람들한테 청탁을 하게 되는 것이었어요. 그냥 지인인데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평소에 작품을 눈여겨보던 작가일 수도 있는데, 이게 또 문제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사람이기 때문에 보는 시야에 한계가 있잖아요. 저는 모든 문예지를 체크하지는 않고,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문예지를 다 체크하지 못하고, 지인이라 하더라도 저한테 먼저 글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은 그 사람이 어떤 글을 쓰는지 알 수도 없어요. 그런데 그런 조건 속에서 청탁을 꼭 해야 한다면, 굉장히 자연스럽게 제 시야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하게 되잖아요. 그것이 청탁제의 한계가 아닌가 싶어요. 결국엔 아는 사람에게 청탁을 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투고제, 그래도 글을 보여줄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서 글을 받겠다는 대안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최가은 : 청탁제나 투고제 둘 다 각각의 문제와 한계가 있고, 〈던전〉은 둘 중 투고제의 한계를 선택한 거라는 말씀이네요. 〈던전〉 측은 청탁의 가장 큰 문제를 인적 네트워크(human network)에서 보신 거고요. 말씀하신 것 중 인상 깊은 부분은 다음 글의 청탁을 ‘아는 사람’에게 맡긴다고 할 때, 이때의 ‘안다’가 말 그대로 지인일 수도 있지만, 기획자/편집자의 시야 자체를 의미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니까 안다는 것의 범위가 기획자/편집자 개인의 취향, 개인의 바운더리(Boundaries) 내에서만 가능한 선별인데, 그게 과연 온전히 공정한 과정인지 의문이 든다는 말씀이었어요. 또 권위가 부당한 권력 행사로 이행되는 부분의 우려에 관해서는 ‘독립 잡지로서 최소한의 권위는 필요하다.’라는 말씀 덧붙여 주셨습니다.

 

이미상 : 저, 그런데 저 같은 경우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말씀인지 잘 아는데 사실은 많은 문예지가 동인지 수준에서 시작했고, 저도 사실은 독자 입장에서 거기에 신뢰할 수밖에 없어요. 〈던전〉은 당연히 처음에 김승일 시인과 민경환 평론가의 대담이 실렸고, 김유림 시인, 강보원 평론가의 글이 있었는데, 이런 게 없었으면 〈던전〉을 처음에 주목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어쨌든 ‘아는 사람’이라는 바운더리이긴 한데, 그게 선택을 해야 된다면 내 취향이나 내 기준이나 이런 게 사실은 신뢰와도 거의 붙어 있기 때문에…… 그게 애매하긴 한데, 어떤 의미에서는 폐쇄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 독자 입장에서 덜 선택하게 되죠. 그렇게 시작을 해서 확장해 갈 수도 있고요. 어쨌든 한 플랫폼이나 한 집단이 완벽하게 다 갖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던전〉은 전 그런 면에서 좋은 면이 있고, 《아는사람》은 그것보다는 좀 더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아는사람》 같은 경우에는 공지사항을 통해 현재도 계속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고 있고요. 플랫폼 자체가 늘어나야지, 하나가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고, 또 문동, 창비 이런 대규모 문예지도 아니고, 실질적으로 그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지도 않고, 지금 무급 노동하고 계시고, 그런 부분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하는 편인 거 같아요. 어떤 선택에 단점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한 상태에서 선택을 했을 것이고, 장점도 있기 때문에.

 

한소리 : 저는 사실 다른 이야기도 다 공감했지만 조금 다른 의견이 있는데요. 청탁과 반려 과정에서 약간의 위계가 있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해야 된다는 게 저희가 이제 웹을 사용하잖아요. 종이 지면에 그냥 딱 싣는 그런 거 말고도 굉장히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데, 저는 그래서 청탁을 하거나 어떤 작가와 기획을 해서 “우리 이걸 한번 해봅시다.” 해서 오케이 되면 같이 협업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사람이 뭘 보내 줬을 때, “이게 마음에 안 드니까 내 마음대로 고쳐라.”가 아니라 상대방이 쓴 어떤 콘텐츠의 기술이든 뭐든 저희는 다 같이 하니까 “여기에 이런 게 있으면 진짜 더 좋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어떠냐”, 만약에 여기서 원하시는 게 있으면 저희가 한번 시도를 해보고, 저희가 장르 불문하고 같이 뭔가 만들어 간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 입장에 사실은 작가분은 크리에이터(Creator)라고 생각하거든요. 더 이상 돈 주고받고 끝, 이게 아니라 저는 뭔가 시도하는 의미에서 종이가 아닌 웹 플랫폼을 선택했고, 그래서 항상 청탁서나 계약서를 보내도, 청탁 계약서 이런 것들이 진부하고 형식적이지만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 외에 같이 기획을 해나가는 데 그 사람의 어떤 단점이나 내 마음에 들어라 하는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같이 이를 만들어 가는 데 소통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고요. 그리고 아까 말씀해 주셨듯이 한 플랫폼이 계속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게 아니라 어떤 원하는, 추구하고자 하는 게 다 달라야 된다는 말에 동의하는 게 〈던전〉도 그렇고, 〈던전〉처럼 어떤 그런, 웹툰 형식 같잖아요. 그런 형식을 하는 것도 〈던전〉밖에 없고, 저는 그런 것이 좋았지만, 제가 시도해 보고 싶은 거는 그런 형식이 아니어서, 그러니까 다른 걸 시도를…….
    또 지금은 활동을 멈추셨지만 《모티프(MOTIF)》 같은 경우에도 사실 비주얼 문예지라고 하면 사람들이 긍정 심리보다는 부정 심리가 더 컸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지금 작가들은 스타성이나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가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그런 말들도 많고, 문제제기가 많아서 《모티프》가 꾸준히 뭔가를 밀어서 우리가 좀 더 《모티프》를 강렬하게 기억을 하고, 또 인식했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 플랫폼? 어떤 프로젝트 자체에서 “나는 이것을 할 것이다.”라는 주장이 확실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왜 우리가 글을 자꾸 재미없게만 해야 되냐? 우리 비주얼적으로도 한번 가보자.” 이런 시도도 저는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다양한 폭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그게 굉장히 유지하기도 좀 어렵고……. 제가 아까 그 말에도 동의하는 게 저는 이제 웹진 같은 거나 뭘 할 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대부분의 기획자분들이나 운영진들이 그렇더라고요. “우리가 돈을 줄 테니까 해라.”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가 이걸 필요하다 느끼고 이게 뭔가 어떤 시도가 되니까 자발적으로 운영을 하는 분들인데, 저는 그랬을 때 기본적으로 신뢰가 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거를 시도해 보려 했고, 단점이나 그런 게 당연히 있겠지만 나는 그런 걸 감수하고도 계속 뭔가를 보고, 의지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뭔가 아카이브(Archive) 사이트가 없어서 정말 아쉬워요.

 

최가은 : 어떤 사이트요?

 

한소리 : 어쨌든 대안으로 떠올랐잖아요. 독립 매체들이. 그런데 아카이빙 되는 게 없어요.

 

최가은: 아, 독립 매체들을 아카이빙 하는 사이트 말씀인가요?

 

한소리 : 네. 최근에도 웹진이 많이 생겼는데, 미술, 시각예술, 비평, 음악, 글 다 이런 식으로 상관없이 사진도 엄청 많이 올라오는 새 웹진을 제가 올해 들어서 5~6개는 본 거 같아요. 그런데 그것들을 어디서 찾느냐가 문제인 거죠. 저는 일 벌이는 거에 관심이 많아서 항상 스타트업(Startup)이나 어떤 일이 새로 기획될 때 그걸 찾는 게 습관이 돼서 알아볼 수 있었지만, 만약에 이거를 내가 아니고 평범한 사람, 그러니까 서치(Searching) 같은 걸 기본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면 영영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그걸 아카이빙 해줬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그 아카이빙을 누가 할 것이며, 또 그걸 무슨 기준으로 할 것인지, 이런 거에 대해서도 확실하지 않고 그런 부분이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미상 : 제가 하나만 더 첨언하면, 실은 독립 문예지는 청탁하는 사람하고 편집자가 붙어 있잖아요. 대부분은 편집위원이 청탁을 하기에 청탁자와 편집자가 다르지만, 독립 문예지는 같은 사람이고, 그럴 경우 수정을 요청하는 것은 의미가 다른 것 같아요. 일방적으로 수정을 요청하기보다는 약간의 협업 같아요. 그리고 편집이 어떤 면에서는 창작의 영역에 속하기도 하고요.

 

최가은 : 청탁자, 혹은 편집위원의 수정 요청과 편집자의 그것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말씀인가요?

 

이미상 : 네. 편집자가 하는 거는 약간 협업같이. 네. 다른 것 같아요.

 

최가은 : 한소리 작가님, 이미상 작가님이 차례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먼저 ’웹’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이 창작자와 편집자/기획자 사이의 소통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는 말씀, 또 편집자, 기획자, 청탁자의 업무가 분리되기 힘든 독립 문예지의 특성 때문에, 그 경우엔 편집자의 개입이 창작자에게 ‘협업’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는 말씀이었어요. 쉽게 말해 독립 문예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계나 권력의 문제를 주류 문예지의 상황과 곧바로 등치시켜 사유할 수는 없다는 지적인 것 같은데요.

 

 

 

 
입시 제도, 매년 배출되는 작가, 개천에서 용 났다... 비등단 작가들

 

박서련 : 질문하고 조금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아까 하신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제가 잠깐 메모해 놨던 거 위주로…… 조금 감상적인 이야기가 되는데요. 지금이 과도기적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웹 플랫폼의 등장 관련한 과도기적인 부분 말고도 등단이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지망생들과 지망생이 아니거나, 등단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안 해본 사람들이나, 이미 등단한 사람들, 모두에게 약간 과도기적인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지점이 지금인 것 같은데, 서호준 시인의 경우 〈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 직접 투고를 해서 시집을 낸 케이스고, 이기리 시인의 경우 미등단, 비등단자로 〈김수영 문학상〉을 최초 수상해서 작년 연말 즈음에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등단하지 않아도 단행본을 먼저 내는 것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어떤 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되지만, 그 정도 되는 재능을 가져야만 어떤 제도를 뚫고 나올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개인의 재능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자수성가하는 고시제도에 대한 믿음하고 되게 비슷한 거 같고, 그걸 생각해 보면 등단제도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사람들의 시선이나 인식이 고시랑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고시와의 차이는, 우리가 점수로 뽑는 게 아니잖아요. 점수로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예술이어서, 굉장히 주관적인 범위 안에서 합격과 탈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심사 결과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지망생들도 많이 나오고, 그리고 심사 결과라는 것이 채점이 아니기 때문에 심사가 정말 공정했는지에 대한 검증도 굉장히 어려운 제도고…… 그런데도 이것을 약간 고시처럼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최가은 : 네. 그렇다면 박서련 작가님의 말씀과 더불어 이제 조해주, 이미상 작가에게는 편집권과는 다른 맥락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방금 박서련 작가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과 드리고픈 질문을 조금 연결해 볼게요. 서호준, 이기리, 조해주 시인의 경우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행본으로 책이 출간되면서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하시게 되었는데요. 세 분 모두 활동의 양상과 책의 출간 과정 자체가 각기 다르지만 등단 문제와 관련해 묶여서 이야기 되는 면이 있어요. 이처럼 등단 과정을 우회하여 활동을 활발히 이어 가는 작가들이 등단제도를 확장한 한 사례로서 인식이 될 때, 그 작가 개인들의 활동이 특별한 사례로서 부각되는 것을 우려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례가 제도에 대한 첨예한 비판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시를 유독 잘 쓰니까 등단 따위 상관없는 거야.”와 같은 말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잘한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등단제도의 확장성을 작가 개개인들의 어떤 역량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도 좀 위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 개인들에게도 부담이 될 테고요. 음, 지금 표정들을 보니까 부담을 전혀 안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만. (웃음)

 

조해주 : 새로운 시도가 의미를 획득하려면 ‘좋은’ 사례가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저를 포함해 앞서 언급하신 시인들 이전에 유진목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면서 등단했고,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오셨잖아요. 그러한 시도들이 누적되면서 또 다른 시도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존의 등단제도를 통과하지 않은 작가들에 대해서 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시선은 없지 않은 듯해요. 제도 간의 위계를 작가 개인의 ‘특별함’으로 뛰어넘어야 할 만큼 기존의 등단제도가 공고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새로운 방식으로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편견 없이 바라보는 태도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가은 : 맞는 말씀인 것이 사실 이전에도 등단의 루트를 거치지 않고 활동 시작하신 작가분들의 사례가 없지는 않았잖아요. 그러한 개별 사례들이 누적된 선례 자체로서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럼에도 등단자와 비등단자 사이에 평가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는 부분 역시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말씀해 주셨고요.
    이어지는 내용이기에 다음 질문으로 바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등단에 관해 많이 제기되는 비판은 ‘등단이 시험이다.’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이기도 할 텐데요. 등단이라는 것이 사실상 작가가 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관문이자 작가임을 승인해 주는 제도로 인식되어 있기에 심사위원의 심사 기준 부정확성, 심사위원의 자격 문제, 투고작 대비 극도로 소수인 당선자 배출 등의 문제와 관련한 비판이 일종의 공정성과 다양성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문제는 다른 회차의 좌담에서 더욱 자세히 이야기가 나올 것 같고요. 저희는 비등단 작가로서의 활동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를테면 일각에선 한국 문학계가 매년 매체당, 장르당 1명의 신인을 배출해야만 하는 절차 때문에 과도하게 많은 작가들이 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막상 활동을 시작하신, 또 활동의 새로운 장을 생산하고 계신 분들의 입장에서는 이 지점 역시 중요한 문제일 것 같아요. 지면은 한정되어 있는데, 입시제도처럼 시험을 통과한 자에 한해 매년 정해진 숫자의 작가들이 작가로서 승인되고 이것이 문단과 문단 지망생 집단의 폐쇄성을 재강화시킨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지요. 그해 신춘문예가 끝나면 등단자를 중심으로 특집을 기획하는 문예지도 있잖아요. 이와 관련해 마치 대학입시처럼 등단 기수 이야기도 하고요. “쟤랑 나랑 등단 동기다”, “우리가 어디 출신이다”, 어쩌고저쩌고. (일동 웃음) 그처럼 등단제도를 통해 매해 생산되는 작가들 사이에서 비등단자들은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껴 있다는 생각도 들 것 같아요. 활동하시면서 그런 부분을 체감하지는 않으시나요. 가령, 앞서 조해주 시인께서 말씀해 주신 등단자/비등단자에 대한 평가 기준의 상이함 역시 시험이라는 인식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할 테니까요.

 

조해주 : 기존의 등단제도를 둘러싼 두 가지 시선이 있는 거 같아요. ‘너무 적게 뽑는다./너무 많이 뽑는다.’ 둘 다 결국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전자의 경우 투고자 수에 비해 당선되는 인원이 적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 한정된 발표 지면과 단행본 출간의 어려움 때문에 생겨나는 의견이겠지요. 이 때문에 전자가 제기하는 등단제도의 공정성 비판에 대해 후자는 ‘통과해도 별거 없더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거 같고요. 완벽한 제도가 없다는 의견에 동의해요.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제도가 ‘블라인드(Blind) 심사’로 진행되잖아요. 그럼에도 그 이상 공정성이 개선되지는 않았고, 그래서 등단제도 폐지론도 제기되고요. 물론 공정성은 너무나 중요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권력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다양성 없음’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기존의 등단제도를 작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때 생겨난 문제들은 끔찍했지요. 신춘문예 출신 작가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쉽게 저지를 수 있었던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도의 유일한 입구 앞에서 발휘하는 권력이란 어마어마하니까요.

 

최가은 : 말씀하신 블라인드 심사에 관한 지적이 1차 좌담에서도 나왔지요. 심사자가 가르쳤던 학생들의 작품을 심사할 때, 이 작품을 과연 모를 수 있느냐와 같은 문제 말입니다. 공정성과 관련해서도 사실 따져 볼 문제가 많은데 조금 뒤로 미루어 이야기 나눠 보고요. 과도한 작가 배출의 문제에 관한 질문, 〈던전〉에게도 드려 보고 싶은데요. 〈던전〉 같은 경우는 일간지니까 원고료 문제도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박서련 : 일단 저는 작가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작가가 너무 많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작가가 너무 적다고 하는, 그러니까 너무 적은 사람만을 뽑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글쎄요. 그러면 모두를 작가로 만들어 주거나, 아니면 아무도 작가가 아닌 걸로 하면 된다는 느낌이 드는데, 극단적으로 그냥 둘 다 통하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던전〉에서 투고제로 작가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게 그 기조에 들어맞는 거 같기도 하고요.
    약간 이상한 이야기 같은데, 질문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도 너무 많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지면은 한정되어 있는데 작가는 꼭 한 명씩 뽑으니까. 신춘문예를 운영하는 각 일간지에서 1명씩 뽑고 문예지 신인상 1년에 한 바퀴씩 돌리고, 그런 식으로 해서 반드시, 거의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게 작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런데 그 사람들만 작가로 부른다고 했을 때는 작가가 너무 적게 느껴지고, 매년 작가로 선출?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는 작가 수는 누적되니까 많게 느껴지는 거잖아요. 저는 지면이 많아지면 다 자연히 해결되는 문제라고 보고, 그러면 지면을 많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독자가 많아져야 하는데, 독자가 많게 하려면 결국 글 쓰고 싶은 사람을 많게 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읽게 되어 있거든요 어떻게든.

 

최가은 : 글 쓰는 자가 곧 독자라는 말씀. 지면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쓰려는 사람이자 곧 읽으려는 사람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지면이 확장되면 작가와 독자가 동시에 많아질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박서련 : 제가 책을 내고 나서 편집자님들을 만나면서, 제 원고에 편집자라는 것이 생겼을 때, 약간 충격 받았던 게 있어요. 편집자님들은 다들 “좋은 작가 있어요?”라고 물어보세요.

 

최가은 : 주변에요?

 

박서련 : 네. 저에게도 물어보시고, 그냥 제가 “이 사람 좋다.”라고 했을 때 그분하고 만약 계약을 하신다면 그분에게도 또 “좋은 작가 모르냐.” 이렇게 물어보세요. 저는 ‘단행본을 낸다’라는 것이 ‘작가가 된다’에 좀 더 가까운 의미라고 생각해요. ‘등단이 된다’가 ‘작가가 된다’가 아니라. 그러니까 단행본을 낸 사람, 단행본을 낼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고 편집자들은 단행본을 낼 작가들을 늘 찾고 있고, 어딘가에서 뭔가 끊겨 있다는 의미가 되죠. 이 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사실은 근원적인 질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를 항상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항상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하는 수단이 필요하고, 그것이 등단이라는 바늘구멍은 아니어야 한다? 정도가 이야기가 되겠네요.

 

최가은 :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신 것 같아요. (웃음) 관련해서 1차 좌담에서 트리플 이야기가 나왔잖아요. 단편을 6~7편씩 모아야만 책을 낼 수 있는 관행 역시 결국 또 청탁 문제와 연결되는데요. 청탁이 적어서 발표 기회가 적은 작가들은 그만큼 첫 단행본을 내는 시간 자체가 늦어진다는 말씀이었죠. 그런데 트리플은 3편에서 끊어 주다 보니까 좋은 시도인 것 같다고요. 어딘가 돌고 도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지만, 결국 등단제도의 문제와 그 확장성은 이들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청탁, 지면의 한계, 활동의 지속성 문제를 전반적으로 같이 고민해야 제대로 이야기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소리 : 아까 이야기의 연장선이에요. 저는 사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등단했는데, 청탁 안 와.” 이거 “대학교 힘들게 4년제 왔는데 취업 안 돼.” 같거든요? (일동 웃음) 솔직히 그건 열심히 거기에 간 그 사람 잘못도 아니고, 또 취업을 안 시켜 주는 그곳도,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러면 결국 이 사람도 잘못 없고, 이 사람도 잘못 없고, 이렇게 만든 그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결국은 대학도 그렇고, 그냥 사회잖아요. 그런데 저는 다음번 좌담에서는 조금 이런 걸…… 떠미는 거 같지만…… (웃음) 그러니까 결국은 이런 거를 만드는 것은 정작 어떤 배경이나 사회 같은데, 그럼 이렇게 봤을 때 여기서 뭔가를 더 할 수 있는지, 사실은 주변에 등단한 친구들이 많은데 “등단했는데 청탁이 안 와.” 하는 소리를 엄청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한테 뭔가 이 친구들 되게 열심히 하는구나 느꼈던 게 청탁이 아예 안 와도 어떻게든 투고를 찾아서 하더라고요. 저는 진짜 ‘이런 문예지도 있었어?’ 싶을 만큼 자기가 열심히 찾아요. 오히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찾지 않았으면 영영 몰랐을 그런 문예지들을 자기가 알아서 찾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작가가 “등단하면 끝이야. 그래서 청탁 안 와. 내 인생은 망했어.”가 아니라 계속 거기서 뭔가 시도하고,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찾는 작가들이 있고, 그러면 또 그들의 움직임이 어쨌든 이런 새로운 지면의 생성? 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다음 좌담에서는 그렇다면 이걸 누가, 어쨌든 이걸 조성한 누가 있을 텐데, 그 누구가 누구면 어떤 책임을 해야 되는지 다뤄 주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려요.

 

박서련 : 잠깐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여기서 ‘작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아무래도 시 쓰는 분들은 시인들을 위주로 생각하실 거고, 저는 소설가다 보니 소설가를 떠올리는 게 자연스럽죠? 물론 저도 친구 중에 시인이 있어서 상황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 입장 위주로 작가가 너무 많다, 적다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시와 소설만큼은 제가 약간은 안다고 생각하면서 일단 말하자면, 지형이 너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가령 시인선(詩人選)은 점점 줄어들고, 〈아침달〉이 예외적으로 가장 최근에 시인선이 생긴 사례라서 신선하게 보고 있지만, 아무튼 시인선은 거의 줄어드는 추세인데, 시를 싣는 문예지 지면은 상당히 많아요. 그래서 발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시인 친구들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소설의 경우 지면은 굉장히 적어요. 연재나 단편소설 발표를 할 수 있는 지면은 진짜 바늘구멍 같지만 출판 되는 책을 보면 소설 종수가 훨씬 압도적으로 많단 말이죠? 시인선은 없지만 소설은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많은데 이런 격차도 같이 고려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미상 : 저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 상 받고 청탁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고민이 없지는 않았지만, 정신승리를 위해 거울 보면서 그런 걸 많이 했어요. ‘세상이 너한테 청탁을 줘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냐? 없지, 그럼 그냥 넘어가.’ 이런 게 있었어요. 청탁을 받거나 하는 거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 약간 제 손을 떠난 게 있고, 이건 진짜 안 되면 그냥 난 PDF 파일 돌린다. 이게 제가 그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작가는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대안

 

최가은 : 벌써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요. 마지막으로 등단제가 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점들 중에서 작가 개인으로서, 기획자로서, 혹은 독자로서 제기할 수 있는 대안과 수정 방향이 있다면 편안하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미상 : 저는 아까 박서련 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작가 상태를 만들어 주는 플랫폼들이 늘어나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 것 같고, 대신 그 생각은 들어요.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들은 조금 변화가 빠른 것 같아요. 표준계약서도 더 빨리 적용을 하고 어쨌든 더 빨리 빨리 바뀌어요.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곳은. 그런데 출판사는 그것보다 약간 지체되는데 그게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제가 생각할 때는 그냥 하던 대로 관성에 의해서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잖아요. “문예지 발간 지원금 받잖아. 너희에게는 공공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공적인 역할이 있어.” 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럼 출판사들이 “우리 그럼 안 받아. 안 받아도 운영되니까 안 받아.” 하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 아니죠. 이미 가지고 있는 권력이 공공 자금이 투입되지 않더라도 크기 때문에 도덕성이나 공정성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방법은 저는 일단 심사위원에서 교수진은 빠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 없으면 쿼터(Quarter)를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교수 정도만요. 작가들이 소규모로 몇 명 모아서 수업하는 것까지는……. 그 인원 빼면 심사위원 할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고. 블라인드 심사라고 해도 모르지는 않죠. 어떤 경우는 자신이 봐줬고 자신이 고쳐 준 글인데 이름을 지워도 알 수 있죠. 그러니까 심플하게 아예 배제하는 것도 어떨까 싶어요. 어떤 심사위원분들은 편하기도 하실 것 같아요. 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시는 분들도 계실 듯해요.

 

최가은 : 1차 좌담에서는 사설 아카데미에서 강의하시는 분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지요.

 

조해주 : 아까 한소리 기획자님께서 ‘독립 매체 아카이빙이 좀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박서련 작가님께서 ‘편집자들은 좋은 작품을 찾는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 두 가지 문제를 아카이빙 시스템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나이스’ 시스템2)의 경우 교직원, 학부모, 학생 등이 인증 절차를 거치면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문학 분야도 마찬가지로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만들어서 잡지나 작품 등을 아카이빙 해놓고 작가, 편집자 등 관련 업계 종사자에 한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잘만 구축되면 정보의 격차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작가를 찾는 편집자들에게도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2)  2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 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2002년부터 사용된 교육행정 시스템으로 교육부와 17개 시/도 교육청, 산하기관, 174개 교육지원청, 1만 여개의 각급 학교를 아우르는 대형 네트워크. 학부모/학생 서비스를 통해 성적표, 생활기록부, 시간표, 급식표 등을 열람할 수 있다.

 

최가은 : 그러니까 독립 문예지까지 포함해서 현재 문학장에 어떤 잡지나 작품들이 생산되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시스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조해주 : 네, 독립 문예지까지 물론 포함해서요. 그런데 이게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누가 할 것인지, 얼마나 예산이 들어갈 것인지 되게 복잡한 문제가 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다만, 저작권 문제 때문에 독자한테 이걸 공개를 하는 건 아닌 거 같고, 관계자들이 서로서로 정보 공유가 안 되니까 생기는 문제들이 아카이빙 시스템을 통해 상당 부분 해결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최가은 : 말씀해 주신 대로 어마어마한 일이 될 것 같긴 하네요.

 

조해주 : 그런데 대안만 있고 돈이 없어요. (일동 웃음)

 

한소리 : 저는 사실 정말 놀랍게도 문학판이 가장 희망이 있다고 느껴요. 어쨌든 미술이든 다른 데든 제가 워낙 이것저것 많이 하고 다녀서 겪어 봤는데, 근데 다 그렇진 않았겠죠. 그런데 일단 제가 느꼈을 때 몸 담근 데의 어떤 권위적인 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데, 문단이 제일 그걸 들어 주는 것 같은? 어쨌든 들으려고 하는? 이런 모임 자체가 어쨌든 저는 문단 말고는 거의 없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인맥도 어떻게 보면, 인맥 문학? 이런 것도 많이 있었잖아요? 사실 다른 곳에 비해서 저는 문학 쪽이 그렇게 인맥 비중이 높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문학 쪽으로 만나고 좌담을 하고 이런 것만으로도 이미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아서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아까 말씀하셨듯이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과도기라는 것이 뭔가 치열하게 겪고 지나가면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지 않겠어요? 그래도 아직 문학판에 기대를 많이 하니까 계속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 이런 자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좌담 연락이 왔을 때 ‘분명히 작가 지망생 대상으로 좌담을 연다고 했는데 오는 사람들이 작가 지망생이 아니네?’ 하면서 속으로 좀 실망했어요. 죄송합니다. (일동 웃음) ‘설마 아니겠지. 다른 좌담이 있었겠지’, ‘만약에 없었으면 어떡하지’ 했는데, 다행히 그전에 작가 지망생분들이 한 게 있더라고요. 저는 이것도 굉장히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난 좌담이 되게 길어서 저는 만족했어요. 서슴없이 말을 줄여야 돼서 줄이고 쳐낸 느낌이 없었어요. 정말 말할 수 있는 만큼을, 이 자리에서 가능한 것을 다 뽑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튼 솔직히 말하면 불신도 있었지만, 다음 좌담도 그렇고 앞으로 문학판, 문단 내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최가은 : 되게 긍정적인 마무리를 해주셨는데요. 저희가 오늘 이렇게 모여 있는 것 자체를 한소리 작가님께서는 문학판의 희망으로 보고 계세요. (웃음) 등단에 관련해서 《문장 웹진》의 좌담 기획이 4차까지 예정되어 있죠. 섭외 전화를 받았을 당시에는 등단과 관련해 여러 단계의 기획이 있는데, 그중 한 회차에 사회를 맡아 달라, 까지만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후 1차 좌담이 올라온 것을 보고 나서야 저도 ‘아, 매우 단계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대화의 장을 마련하시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한소리 기획자께서는 이런 단계적인 장 자체를 확장성의 한 사례로 봐주신 것 같습니다.

 

이미상 : 저는 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좌담을 조금 섞었어야 되지 않나. 왜냐하면 저는 전에 좌담하신 분들께 궁금한 점도 있고. 이게 집단이 나뉘었잖아요. 그러지 않은 상태로 해도 좋았겠다고 생각해요.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에는 쿼터제가 있나요? 메이저 출판사와 아닌 출판사를 나누든지 해서. 예를 들어 차별을 방지하고 소수자의 입장이 고려될 수 있도록 성별 쿼터를 둔다든지 하잖아요. 기관에서도 지원 시, 문학은 장르마다 차등이 있기 때문에 소설, 시, 평론이 메이저고 소설 중에서도 청소년 문학이나 동화는 차별 받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실질적으로 보정하죠. 다양성 쿼터제 도입이 기준점 잡기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문예지 지원도 아예 쿼터제를 두는 것은 어떨까 싶은 거죠. 기업 지원이 아니고 문예지를 통한 작가 지원이기는 하지만, 독립 문예지가 독립 창작자를 지원하기도 하는 구조인 것 같아서요. 마지막으로 제가 등단을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어쨌든 작가로서 가장 차이를 느낀 점은 독자가 있느냐 여부인 것 같아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도 작품 한 개는 지금과 똑같이 쓸 수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적든 많든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면, 비록 제 상상 속의 독자일지라도, 이 작품과 다음 작품을 상상하게 돼요. 작가는 작품 하나로 말하기도 하지만 작품과 작품 사이로 말하기도 하니까요. 그것은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독자와 만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을 여러 문학 플랫폼이 하고 있고, 여기 계신 분들이 하고 계시고, 말 그대로 확장하고 계시기에 쿼터제를 통해 지원을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다, 그 정도네요.

 

최가은 : 이미상 작가님께서는 대안으로서 매체별, 장르별 ‘쿼터제’ 도입을 언급해 주셨고, 등단 자체보다도 작가로서 독자와의 만남을 추진할 수 있는 장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는 심사에서 빠져라’를 강조해 주셨고요. 박서련 작가님,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서련 : 최근에 〈던전〉에서 연재하셨던 작가님 한 분이 “〈던전〉에서 연재한 게 등단이 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해오셨어요. 그러니까 질문의 톤이, 지금 문장을 보시고 아셨겠지만, 등단제도와는 거리가 먼 이력을 쌓아 오셨던 분이에요. 작품의 퀄리티(Quality)와 관계없이. 그래서 뭐라고 대답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의 질문을 듣고 다시 〈던전〉에서 연재를 한다는 것이,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일단은 〈던전〉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자꾸 말하니까 자랑하는 것 같은데, (웃음) ‘2021년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에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어 좀 더 매체로서의 공신력?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생겼다는, 작가님들께 뭔가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 증명’ 등록 기준에 문학인의 경우 문예지 발표를 기준으로 하잖아요. 또 여기서 문예지의 기준은 ‘3년 이상 발간이 되어 온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가 있는 문예지’라는 식으로 되어 있어요. 문예지 지원 사업에서 선정된 3년 이상 운영이 된 플랫폼이 되면 〈던전〉에도 좀 더 권위라는 것이 생기게 될 텐데, 그러면 여기서 연재하는 작가님들께도 이제 “네. 등단하셨다고 해도 됩니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할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동안에, 오래된 제도와 권위의 화신들이 그러했듯이, 그러니까 문단 내 성폭력으로 고발된 사람들처럼, 우리가 권위를 잘못 사용하게 되는 일은 없을까, 하는 불안감 같은 것도 생겼고……. 그에 더해서 저희가 과연 3년이나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좀, 좀이 아니라 굉장히 많이 있는데, 이런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작가가 많아져야 된다고 주장했던 것과도 연결되는데요, 작가를 많이 만들 수 있는 플랫폼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지속 가능해졌으면 좋겠고, 등단이라는 오래된 제도가 잘못된 권위를 휘두르는 화신들을 더 만들어내지 않길 바라는 바에서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최가은 : 네.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 끝난 마당에 조금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저는 오늘 좌담에 나오면서도 회의감이 컸던 것 같아요. 또, 등단 이야기…… 더 할 얘기가 있을까, 만날 하던 얘기나 하는 거 아닐까, 이야기를 한다고 뭔가 바뀌기는 할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요. 그런데 오늘 작가님들이 개인적으로, 또 팀의 일원으로, 문학장의 변화에 대해 꾸준히 이어 가는 고민과 활동을 전해 들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생각보다 저희들 사이에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이 많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들을 지적해 주셔서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결국 작가님들이 치열한 고민의 와중에 잠정적으로 내린 대안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난무하는 장과 난무하는 길의 생산’일 텐데요.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계신 분들과 흥미로운 이야기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의 이야기를 계속 잘 이어 가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좌담을 마치겠습니다.

 

〈폐회〉

 

 

 

 

 

   《문장웹진 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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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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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nevertheless

    이미상 작가님의 의견을 인상깊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 'pdf 문학을 하겠다'는 다짐이 흥미롭네요. 단순히 생각해낸 독특한 발상이 아니라 등단과 청탁의 구조적인 문제 안에서 작가 개인의 나름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는 다짐 같아서요. 작가로서 많은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일이겠지만 정말 한번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 2021-05-04 11:06:39
    neverth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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