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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웹진》 2021년 기획 연속좌담 ‘등단’ 3차 : 모색

  • 작성일 2021-05-01
  • 조회수 3,024

[연속좌담]


   본 기획은 1966년부터 시행되어 온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이 2020년 재정적 부담을 사유로 폐지되고, 전통적 등단제도(신춘문예, 문예지 신인상 등)를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발표 활동을 하는 소위 ‘미등단작가’들이 활동하는 현 시점에 맞춰, 순수문학의 발전 정체와 폐쇄적 문학계 관행으로 지적받고 있는 ‘등단제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각층의 이야기를 모아 보고자 기획되었다.

   2021년 4월호부터 6월호 사이에 총 4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시선들
   - 2차 : 확장성
   - 3차 : 모색
   - 4차 : 현장



 

 

《문장 웹진》 2021년 기획 연속좌담 ‘등단’
3차 모색

 

 

 

 

ㅇ 회의명 :《문장 웹진》 2021년 기획 연속좌담 ‘등단’ 3차 : 모색
   - 작가가 된다는 것
   - 과도기의 데뷔 풍경
   - 신춘문예에 관해
   - 문예지의 청탁과 투고
   - 아카이브와 접근성
   - 못다 한 이야기들
 
ㅇ 참여자
   - 노태훈(사회, 문학평론가)
   - 소영현(문학평론가, 웹진 《비유》 편집위원)
   - 이경재(문학평론가, 《문학인》 편집위원)
   - 이슬기(기자, 《서울신문》)
   - 한소범(기자, 《한국일보》)

 

〈개회〉

 

노태훈 : 《문장 웹진》 기획 연속좌담 3차입니다. 등단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요. 저는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노태훈이라고 합니다. 평론가 두 분, 기자님 두 분을 모셨어요. 일단 각자 소개 한 번씩 해주시고, 이 주제와 관련해서 어떤 생각들, 또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셨는지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영현 : 문학 평론 하는 소영현입니다. 저는 등단 절차를 거쳐 평론을 시작한 게 아니고, 문예창작과 강의를 많이 하지도 않았고요, 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뭘 얘기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요, 제 조건을 통해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슬기 :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신문》 이슬기 기자고요. 저는 문학 담당 기자를 2년 반 정도 했고, 2019, 2020, 2021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새로 발령이 나서 문학 담당 기자는 아니고 젠더(Gender, 社會的性) 담당 기자로 있습니다. ‘등단’이라는 제도랄까요? 시스템(System, 체제)의 한 구성원인 주최사이기도 하고 그걸 맡아서 진행했던 기자라서 저한테도 좀 민감한 주제이기도 한데, 여기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회사에 전달도 하고 싶고, 그리고 회사의 소속된 개인이라는 위치를 떠나서도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이경재 : 안녕하세요. 저는 문학 평론 하는 이경재라고 하고요. 지금 이렇게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신춘문예로 2006년에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신춘문예 예심도 한 3번 정도 했던 거 같고, 문예지에서 신인 뽑는 심사도 했고, 그리고 대학에서 등단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지도도 해보고, 같이 대화도 해보고 해서 익숙한 주제이긴 하지만 제가 이것을 가지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보거나 깊이 있는 고민을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냥 지금은 체험의 단계라고 보고 있고요. 오늘 이렇게 여러 귀한 선생님들이랑 이야기 나누면서 저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한소범 : 저는 《한국일보》에서 문학 담당을 맡고 있는 한소범 기자라고 합니다. 2019년 1월부터 지금까지 문학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신춘문예를 전담한 거는 2020, 2021이고, 2019 신춘문예는 발표 이후에 시상식 등을 해서 3년 정도 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실 신춘문예가 굉장히 오래된 제도라서 제가 3년 정도 했다고 신춘문예가 어떠한 가치가 있고, 어떠한 구습(舊習)이 있다고 대변해서 말씀드리긴 어렵겠지만 아무래도 심사 과정 같은 것들이 일일이 공개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보니까 궁금하신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1차, 2차 좌담을 보니까. 그래서 궁금하신 것들에 대해서 신문사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노태훈 : 네, 감사합니다. 각자 고민하시는 바가 조금씩 달라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앞서 1, 2차 좌담이 있었고 그 좌담 내용을 보셨을 텐데, 거기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좀 있더라고요. 이른바 지망생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이제 막 문단이라는 제도 속에 편입돼서 뭔가 도모하고 있는 분들이 보기에는 이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또 유지하고,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줘야 된다, 그런 책임이 있다는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모인 자리에서는 등단이라는 제도가 옳고 그른지, 혹은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런 이야기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모색’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이런 제도들이 개선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지에 조금 더 초점을 두었으면 합니다.

 

 

 

 
작가가 된다는 것

 

노태훈 : 그러기 전에 우선은, 불가피하게도 저희가 등단이라는 제도가 과연 필요한가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아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최근에는 등단이라는 말 자체를 별로 하지 않는 경향이 있죠?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을 통해서 데뷔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데뷔한 지면을 굳이 표기하지 않고, 그냥 ‘몇 년도에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는 형태로 언급을 합니다. 또 ‘어떤 상을 받았다’고 하기보다 ‘이런 지면을 통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식으로 표기하는 분들도 많고요. 기본적으로 이런 변화가 등단에 관한 인식의 변화를 함께 가져온다고는 생각되지만 또 역설적으로 등단이라는 관문이나 제도를 계속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한편으로는 오늘 기자님 두 분 오셨으니까, 이를테면 《서울신문》이나 《한국일보》로 데뷔하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데뷔하고 나서 이력에 《한국일보》나 《서울신문》이라는 말을 일절 쓰지 않는다고 하면 기자님들이나 언론사 입장에서 좀 섭섭할 수도 있나? 그런 생각도 좀 들더라고요. 한소범 기자님께서는 어떠신가요? 등단이라는 제도가 필요할까요?

 

한소범 : 필요할까? 바로 본론부터……. (일동 웃음)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야 되는지. (웃음) 사실은 제가 작년 1월 계간 《자음과모음》에서 2020년대의 한국 문학을 가정을 해서 결산을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2020년부터 2030년까지를 상상을 해서 2020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글을 썼어요. 그때 한 주요한 사건 중에 하나로 ‘《한국일보》를 필두로 주요 신문사들이 신춘문예를 폐지했다.’라는 가정을 해서 썼던 기억이 나고요. 그때는 사실은 낙관적으로 이야기를 했죠. 워낙에 다양한 웹진이라든가, 다양한 데뷔?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해지고 늘어나다 보니 더 이상 신문사의 신춘문예만이 작가 등용문의 기회가 되지 않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그래서 신문사들은 본인들이 꼭 신춘문예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좀 다른 길로 작가 지망생들에게 여러 가지 기회라든가 서포트를 하는 그런 걸로 바뀌어 갔다는 낙관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 글이 나오고 나서 ‘과연 그렇게 해서, 신문사가 그걸 포기한다고 해서 다른 자장(磁場)에 있는 웹진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잘 운영이 될 수 있는가는 잘 모르겠다.’라는 반응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무책임하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해주신 말씀을 보고 신문사가 “다른 통로가 많이 생겼으니 더 이상 저희가 이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없을 거 같습니다.”라고 포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다른 방식으로 작가 등용문의 기회를 늘려 주는 것이 신문사가 기여할 수 있는가’, ‘그 고민을 신문사 안에서 누가 할 것인가’라고 하면 사실 이건 답이 없거든요? 누군가는 그 역할을 떠안아야 되는데, 기자는 기본적으로 문학에 관한 기사를 쓰는 역할을 하지 신춘문예의 큰 시스템이나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역할을 떠안기는 사실 힘들거든요? 그런 제도를 마련하려면 장기적으로 고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신문사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건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고, 사실 여러 가지 고민 지점에 나와서 “등단이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냐”라고 말씀을 주시면,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라고 결론을 바로 말씀드리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소영현 : 두 분께 여쭤 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동 웃음) 그러니까 왜…….

 

노태훈 : 저도 사실 그걸 여쭤 보고 싶거든요. 신춘문예를 해마다 하는 게, 그냥 할 때가 됐으니까 다들 그냥 하는가 보다 하면서 하는 건지, 아니면 이를테면 올해 12월 신문사의 일정표가 있는데 이번에 신춘문예를 할지 말지 논의 과정을 거쳐서 하는 건지 이런 게 궁금하고. 만약에 예를 들어서 사주(社主)가 “신춘문예 그런 거 이제 의미가 있나? 그만 해.” 이러면 끝나버리는 건지. 그런 게 되게 궁금하더라고요.

 

소영현 : 과거에는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신춘문예가 필요했잖아요? 예를 들면, 신문사에 따라 다르지만, 공모 장르 중에 시조가 안 빠지고 계속 들어 있는 게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하는데, 연배 있는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신춘문예가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지금은 《한겨레》를 두고 봐도, 뭔가 출판과 관련이 된 작업을 염두에 둘 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독자 유입의 의미가 없다고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건 무엇 때문인지, 과연 유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제가 궁금한 건 이것입니다.

 

이슬기 : 일단은 앞에서 시조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희가 시조를 유지하고 있는 회사예요. 시조는 워낙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이 신청을 많이 해주시고, 몇 안 되는 언론사만이 신춘문예를 유지하고 그 가운데 시조를 받고 있는데, 《서울신문》에 시조 분야가 있다는 거에 대한 굉장한 애착들이 있으셔서 그런 기대를 저희가 계속 품고 있고, 말씀하신 대로 그건 이제 충성 독자의 저변을 넓히는 데도 조금 기여를 할 것이고. 그런데 그런 건 있어요. 이런 것들이 직접적으로 수치화 되지는 않는 거죠. 우리가 신춘문예를 갖고 있다, 시조를 갖고 있다고 해서 정말 독자의 저변이 넓어지고 그들이 계속 독자로 남아 주는가는 알 수 없기는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주제에 대해서 지켜야 할 전통이라고 일단은 생각을 하는데, 조금 전 한소범 기자가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언론이 작가 등용문으로서의 역할, 신춘문예로서의 역할을 포기한다면 다른 무엇을 하겠느냐.”에 대한 그런 정치(精緻)한 고민이 사실은 없기 때문에 없다면 하던 걸 일단은 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툭 터놓고 말씀드리는 것 같은데, 이거를 어떻게 심사위원도 잘 뽑고 감식(鑑識)도 좀 잘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유지하되, 플러스 만약에 우리가 신춘문예가 더 이상 구습이라고 해서 없애야 된다면 대안도 같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툭 없애고, 예를 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물론 ‘언론사가 작가 등용문이 되어야 하느냐.’라는 질문 자체도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하던 걸 방기해 버리면 기대하는 신문 독자들, 그리고 지망생들한테는 충격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일상에서는 인기가 없어 보이는 분야, 뭐 시조 같은 분야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전 이 주제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일단은 지켜야 할 전통이고, 새로운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된다는…… 먼저 없애버리는 게 선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소범 : 저는 개인적으로 사실 독자를 늘리는 데 기여하는지는 거의 무의미한…… (웃음) 사실 저는 의미 없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건 아마 문학 담당 기자의 개인적인 의견도 있을 거고, 또 신문사마다 이걸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문학 담당 기자가 새로 들어오면 그해 문학 담당 기자가 해야 될 일이 달력으로 나와요. 그럼 11월에는 신춘문예를 준비 한다, 그게 그냥 해야 될 일인 거죠. 그런데 그거를 제가 “아, 근데 이제 이게 구습이니까 이거 말고 다른 걸 해야 될 거 같습니다.”라고 제가 새로 왔는데 이걸 손을 들어서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굳이 손 안 들고 좀 고생을 한 두 달 하면 제도가 유지는 돼요. 그러니까 사실은 뭔가를 없애고, 들어 엎고, 새로 만들고, 이거는 엄청나게 많은 논의와 인력과, 또 뭐랄까요? 부담? 이 가중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걸 하지 않는 거지……. 그런데 물론 이제 그건 있죠. 1월 1일에 신춘문예가 발표가 나면 누가 그 과정을 맡아서 일을 했든지 간에 “그래. 올해도 1월 1일에 신문이 신춘문예를 했구나.” 그러니까 그걸 굳이 없앨 이유는 없는 거죠.

 

노태훈 : 신춘문예가 언론사에서 할 수 있는 일종의 문학 지원 사업이자 사회 문화적 환원의 일환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말과 글을 다루는 언론사의 입장에서 우리가 그래도 한국 예술, 한국 문학을 위해서 어떤 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의식 같은 게 유지의 이유가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또 문예지 쪽은 고민의 방향이 조금 다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신인상을 운영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는데요. 이경재 선생님께서는 여러 경험도 있고 하니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경재 : 90년대를 기점으로 그 이전의 신인 등용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가 신춘문예였다면, 90년대 이후에는 문예지로 많이 옮겨간 거 같아요. 그렇게 문예지로 옮겨간 이유는 첫 번째로 신춘문예가 후속 활동 같은 걸 보장해 줄 수 없는 데 반해 문예지는 나름대로 지면을 최소한 일정 기간 보장해 주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이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안 좋은 거는 어떻게 보면 그 작가의 개인적인 창작 영역이랄까? 자유가 제한되기도 하고, 문예지의 어떤 인적(人的)으로나, 문학적 경향으로나, 아주 나쁘게 말하면 종속되어 있는 그런 측면도 있을 수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문예지 같은 경우는, 특히 시나 소설 같은 경우, 특히 소설 같은 경우는 꼭 신인이 필요하죠. 왜냐하면 문예지가 내세우는 자기의 문학적 이념의 정당성 같은 걸 증명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고, 또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쉽게 원고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루트가 되는 측면에서 문예지에서 신인문학상이 유지가 되는 거 같습니다.

 

노태훈 : 문예지는 어쨌든 출판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를 발굴해서 이 작가를 우리 작가로 내세우고, 혹은 책을 만들어서 판매 수익을 올리는 일을 당연히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데, 이게 ‘상(賞)’의 형태라는 게 고민이 필요한 지점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원고를 모아 가지고 “이 작가가 되게 괜찮네?” 그러면 “작품이 좋으니까 책을 한번 계약해서 내보시죠.” 하거나 아니면 “작품이 괜찮으니까 저희 문예지에 소설이나 시를 한번 실어 보시죠.” 이렇게 시작하면 되는데, 그걸 이제 신인상이라는 이름으로 상금을 주고, 상패를 주고,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하잖아요, 보통. 아무래도 신춘문예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생각되지만 이런 부분들은 좀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소영현 선생님께서는 현재 웹진 《비유》 편집위원도 하고 계시고, 예전에 《21세기문학》 하실 때는 원고 공모나 투고들을 많이 받아 보신 경험도 있으신데, 비슷한 고민을 해보신 적 있으실 거 같아요.

 

소영현 : 네. 《21세기문학》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면, 《21세기문학》에서는 ‘신인상’과 ‘김준성문학상1)’을 운영했어요. 그리고 2017년부터 투고제도를 운영했고요. 2016년 이후에 문예지 재편의 일환으로 투고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엄청 많은 원고들이 투고되어 편집위원들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시간 확보도 어렵고 물리적으로도 처리가 힘들고요. 편집위원이 이 모든 것을 처리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고 어떤 출판사도 가능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요. 물론 전적으로 투고제도만 운영한 것은 아니고, 청탁도 함께 이루어졌는데요. 따지자면 투고제도는 결국 단기 공모의 반복과 같은 것이라서 매달 뽑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청탁하지 않은 작가 가운데 좋은 작품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적으로 새로운 경향을 뽑는다기보다는 편집위원들의 문학관(文學觀)으로 다시 수렴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본다면 투고제도를 등단제도, 공모해서 뽑는 제도와는 굉장히 다른 제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양자의 제도를 동시에 운영할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데 등단 관련해서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등단이라는 게 작가의 신분이나 지위를 사회적으로 공인해 주는 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쓰고자 하는 모두가 다 작가냐 하면, 사실 예전에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렇기도 하잖아요? 블로그와 같은 공간에서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는 거고, 지면도 예전과 달리 공인된 지면 여부를 따지기가 어려워졌고. 그래서 작가 여부를 따지기가 역설적으로 더 어려워졌는데요. 그렇기 때문에라도 어떤 기준은 필요한데, 그 기준을 오히려 협소화 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컨대 단행본을 한 권 낸 이후에 작가로 인정된다든가, 라는 식으로. 모두가 작가지만, 사회가 공인하는 작가가 있는 식으로. 이런 사정들과 연관해 볼 때, 아쉽게도 지금은 유지되지 않지만 《21세기문학》에서 운영한 ‘김준성문학상’의 의미는 굉장히 컸다고 생각해요. 그 상은 첫 작품집에 수여하는 상이었는데요, 아시다시피 작가들이 등단 후 첫 작품집을 내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한 권 내고 나서가 사실 더 어렵구요. 첫 번째 소설집에 대한 격려는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작가로 등단하는 것보다 작가로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자면, 우리의 고민은, 신진 작가가 작품 1편 실을 지면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나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로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21세기문학》에서 1998년부터 2018년까지 운영한 문학상으로 첫 창작집을 대상으로 한다. 시 부문은 2002년 신설

 

 

 
과도기의 데뷔 풍경

 

노태훈 : 등단이라는 제도가 의미가 별로 없어지려면 사실은 등단 자체보다는 등단 이후 여러 영역의 활동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리네요. 아마 후반부에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아무튼 최근에 등단이라는 제도는 약간 과도기에 있기는 한 거 같아요. 예전에는 사실 등단 아니면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굉장히 많은 방법들, 루트들이 생겨난 거 같아요. 책 분량의 원고를 투고해서 그대로 바로 단행본이 나오기도 하고, 각종 프로젝트나 지원 사업을 통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기도 하고, 아니면 독립 매체들, 메일링 서비스 등으로 자기 독자를 스스로 확보해 나가는 양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다양한 루트들이 생겨나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 대부분 긍정적으로 생각하실 듯합니다만, 제가 가진 고민을 한번 공유해 보고 싶어요.
    저 역시 등단이라는 제도로 일원화 되어서 작가의 자격을 주는 제도보다는 여러 형태의 작가들이 등장하는 게 훨씬 더 풍요로운 문학장을 만들어내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를테면 장강명 작가가 한국의 문학 공모제에 대해서 “한국의 문학 제도는 그냥 시험 제도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2018)이라는 책을 냈던 걸 참고삼아 생각해 보면,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같은 건 이른바 ‘정시’고, 기존 제도권의 네트워크를 통한 추천 등을 ‘수시’라고, 독립 매체, 메일링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각자 자기의 커리어를 만들어내는 게 ‘학종’2) 아닌가 싶어요. 다소 거친 비유이긴 하지만 지망생들에게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더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거죠. 예전에는 등단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든 등단을 해야지, 준비를 해야지.” 이런 반응이었다면 지금은 “야, 등단할 필요 없어. 요즘은 등단 안 한 저 작가도 있고, 저 신인도 있잖아. 너도 뭔가 해. 너도 메일링을 하든지 너도 독립 매체를 만들든지, 좀 적극적으로 해.” 이런 분위기가 있지 않으냐는 거죠. 이렇게 다양한 경로가 생겨난 지금이 지망생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러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는데,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계신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2)  학생부종합전형. 대학입시 방법 중 하나로 내신 성적을 포함하여 다양한 활동 기록을 보는 전형이다.

 

이슬기 :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정시, 수시 비유가 맞는다고 여겨지는데, 여러 작가가 되는 루트 중에서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는 제일 완고하고 보수적인 형태일 거예요. 왜냐하면 심사위원 구성부터, 제가 1차 좌담 보니까 심사위원에 교수가 아니신 분, 또 신인 작가를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사실 언론사는 문단뿐 아니라 대중 일반이 봤을 때도 “이 사람은 신춘문예 할 만하다.”라는 어떤 여지가 있는, 나름대로 저명한 분을 섭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간혹 어떻게 보면 보수화된 형태의 그런 장일 수 있는데,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문예지에서 투고를 받는 형태나 혹은 요새 〈아침달〉처럼 시집 단위로 투고를 받는 형태도 결국 그쪽의 편집위원, 출판사분들이 계시고, 그걸 뽑아내는 형태인데, 그분들은 이제 출판계에 계시기 때문에 훨씬 트렌디(Trendy)한 걸 더 뽑아낼 수도 있고, 웹진 같은 데서, 요새 구독 서비스하는 데서는 더 트렌디하게 다가갈 수 있단 말이죠. 그래서 저희도 이렇게 뽑아 놓고, 사실 제일 완고한 형태, 보수적인 형태로 내놨기 때문에 이분이 이 시장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저희도 항상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고, 불안한 부분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런저런 분들이 다 섞여서 어떤 식의 형태가 대중들의 욕구에 더 호소하는지, 더 오래 살아남는지 보는 식으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경재 : 저도 그래서 아까 신춘문예와 대비했는데, 문예지를 통한 등단, 그리고 문예지의 신인상이 가진 한계로 투고제를 활성화하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그것도 이제 엄밀히 살펴보면 과연 그게 신춘문예가 가진 문제점이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왜냐하면 거의 한 70년대부터 신춘문예가 문제라는 논의가 문단에 나왔거든요? 거의 한 50년 전부터 나온 거 같은데, 그때도 지금의 논리랑 거의 비슷해요. 일회적 이벤트로 끝나고, 응모 분야가 너무 한정되어 있어서 문학계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그리고 또 하나가 심사위원이 편중되고 반복되어서 어떤 저명한 문인의 문학 경향을 반복 생산하고, 에피고넨(Epigonen)들만 만들어낸다. 근데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지금 70년대부터 제기된 신춘문예 문제들 중에서 이게 문예지로 간다고 했을 때 해결되는 거는 제가 봤을 때 일회적 이벤트 정도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신문사의 심사위원 틀이 제한되어 있다면 출판사는 아예 고정되어 있는 거거든요. 신춘문예가 제한이라면 문예지는 사실 고정되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 심사위원의 문학적 경향을 반복 생산한다는 건 문예지 문제로 해소되기가 힘든 거고요. 저도 이제 문예지에서 일을 해보면, 사실 투고라는 거를 우리가 심사를 하듯이 엄밀하게 검토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그리고 그 투고제를 활성화해서 신인 선발이 가능한 거는 그야말로 메이저 문예지만 가능한 거고, 우리나라의 그 많은 문예지 중에 과연 문학의 진지한 뜻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자기 원고를 맡기는 문예지가 많다, 이렇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거 같고요. 그리고 등단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그런 거죠. 실제 작품을 출판 시장이나, 혹은 책에 내놔서 검증 받는 거, 이게 우리나라에 있는 등단제도보다 훨씬 낫지 않냐. 이게 아주 일반화 된 이야기인데요. 이런 이야기는 사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데서 보편화 된 어떤 신인의 등용문 절차이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의 시인이 왜 편의점 숫자보다도 몇 배가 더 많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소설가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아마 엄밀히 실질적으로 통계를 내보면 가장 많이 시인이나 소설가 되는 방법은 사실은 자기 출판이에요. 이미 자기 책을 출판하면서 스스로 시인, 소설가가 된 사람들이 아마 양으로는 제일 많을 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일단 자신의 실력을 대중과 시장의 검증을 받아서 등단한다는 거, 이것도 한번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태훈 : 등단이라는 제도의 대안으로 보통 이야기 되는 투고제, 특히 상시 투고제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신 거 같아요. 언제든지 원고를 보내 주면 우리가 검토해 보고, 좋은 작품은 싣겠다, 하는 게 지금 한국 문예/출판 상황에서는 등단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니까요. 한소범 기자님은 어떠신가요? 최근의 여러 흐름들에 대해.

 

한소범 : 독립 매체가 또 다른 부담이 되는 게 아니냐 하는 질문이었던 거 같아서 답변을 해드리자면, 정시가 필요한 사람이 분명히 있고, 학종이 필요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학종이 완벽한 대안이기 때문에 정시를 없애자는 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것일 거고. 그래서 이 등단의, 등단이란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고 하면 작가 데뷔의 통로가 다양해지는 것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지적할 사람은 없을 거 같고요. 대신 “그게 또 다른 부담이 되는 건 아니냐?”라고 하면, 글쎄요. 저는 거기서 본인이 맞는 걸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선택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신춘문예가 더 맞는 거 같고, 나는 독립 출판이 더 맞는 거 같고, 나는 독립 매체에 투고를 하는 것이 더 맞는 거 같고, 그러면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자신에게 적합하다 생각하는 방식을 선택하면 되는 거니까 그게 큰 부담이라기보다는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슬기 : 그리고 실제로 작가들을 만나 보면 선택을 한다기보다는 다 넣어 보시더라고요, 일단.

 

한소범 : 그렇죠. 다 넣어 보시죠.

 

노태훈 : 문제는 이제 어떤 형태로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을 때, 사실 그 이후의 ‘기회’들인 것 같습니다. 등단 문제가 지속적으로 예민하게 이야기 되는 것도 작품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지와 관계가 크죠. 특히 문예지 지면이 그렇죠. 예를 들어 신춘문예로 데뷔를 했다고 하면 잘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2~3 작품은 발표할 수 있어요, 문예지에. 《현대문학》 4월호가 있고, 《악스트》도 있습니다. 물론 거기서도 일종의 선별은 있습니다만. 또 《문장 웹진》도 신인 특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신춘문예로 데뷔하면 어쨌든 지면에 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나름대로 확보된다고 여겨지는데, 이를테면 독립 매체로 내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어떤 이름 있는 문예지에 다시 내 작품을 실으려면 사실은 또 뭔가를 통과해야 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렇게 통과해서 실리는 경우도 제가 알기로는 거의 없습니다. 직전 좌담에 참여하셨던 이미상 작가님이 웹진 《비유》에서 청년 작가 지원 사업 프로젝트로 작품을 《비유》에 싣기 시작하셔서 젊은작가상까지 받고 지금은 활발하게 작품 발표도 하고 계신데, 이런 이례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사실은 거의 없다시피 하거든요. 다시 말해 결국 등단이 여전히 이렇게 계속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어쨌든 이 보수적이고 완고한 제도를 통과했을 때 기회가 오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이런 기회를 늘리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여지는 없을까, 그런 고민들을 해보게 되는데요. 혹시 어떤 의견들, 생각들을 가지고 계신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한소범 : 기회를 늘리는 게 지면을, 발표할 장을 만드는 건 신문사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노태현 : 그런데 그런 거 안 되나요?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으면 한 번 소설을 실어 주는 거죠, 신문에. (웃음)

 

한소범 : 저희는 그런 건 있어요. 사실 신춘문예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그 뒤로는 고아가 된다는 건데, 신문사 입장은 사실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려하고, 문학 담당 기자 입장에서는 올해 우리 신문에서 데뷔한 작가가 그 뒤에 작품을 얼마나 많이 발표하는지 굉장히 주의 깊게 보고. 예를 들면 저희 이번에 데뷔하신 강보라 작가님 같은 경우에 인터뷰를 따로 했어요. 인터뷰를 하면 본인이 쓰신 수상 소감 말고도 좀 더 내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서 신문사 입장에서는 지면을 드리긴 어렵지만 좀 다른 방식으로, 예를 들면 저희가 제일 많이 받는 전화가 이제 신춘문예 끝나고 나면 출판사에서 문학 담당 기자에게 문의가 굉장히 많이 옵니다. 청탁을 위한 작가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문의가 굉장히 많이 오는데, 그러면 저는 사실 업무에는 방해 되는 일이지만 매우 기쁘게 작가님 연락처를 알려드리면서 “잘 부탁드린다. 아주 좋은 작가님이신 거 같다. 앞으로 활동을 열심히 하시면 좋을 거 같다.”라고 하는데 그게 어쨌든 보람도 있거든요. 그리고 첫 책이 나오면 한 번 더 신문에서 소개를 해드린다거나,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해드리려고 하고요. 지면을 드리기는, 그건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고아가 된다는……. (웃음)

 

노태훈 : (웃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특히 지망생분들은…….

 

한소범 : 네.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그런데 어쨌든 반대로 이야기하면 신문사를 통해 데뷔를 하면 그만큼 신문사가 스포트라이트를 주잖아요? 내 식구 챙기기지만 또 다른 차별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거 같아요. 한 번 더 이분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드리는 거? 그 정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합니다.

 

이슬기 : 같은 입장에서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는 차별이지만 저희한테는 책임의 연유(緣由)도 있는 것이고, 플러스 저희가 문학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소설을 청탁하거나 하긴 어렵지만 제가 한번 건의를 드린 적이 있어요. 저희가 매해 6명의 신춘문예 당선자를 발표하는데, 이분들이 어떤 분은 활동을 하시고, 어떤 분은 못 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제 오피니언 면에 에세이 지면 같은 거를 이분들이 좀 젊은 감각으로 소화할 수 있게 해보자 했는데, 결국은 회사에서 킬이 됐는데, 비슷한 방식으로 《조선일보》가 운영하고 있어요. ‘일사일언’ 섹션이라는 걸 하고 있거든요? 꼭 신춘문예 당선자만 나오진 않지만 여러 필진 중에 꼭 신춘문예의 매해 당선자를 넣고, 이 사람의 일상이 어떻고, 작가로서 어떻게 데뷔했는지 보여줄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경향이 있죠. 저희는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도와드리려고 하는데, 지면을 드리는 건 사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죠.

 

한소범 : 그리고 저희도 매년 1월 1일 새해맞이 기고 같은 거는 작년 신춘문예 당선자가 의무적으로 쓰게 해서 자기의 글을 쓸 수 있게, 작품은 아니지만 지면 안에 뭐라도 쓸 수 있는 코너를 드린다든가 그런 건 내부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신춘문예에 관해

 

소영현 : 두 분 지금 말씀하신 것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앞선 좌담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실제로 모든 등단 루트 자체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신춘문예에 더 주목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로 문예지의 신인상은 심사위원도 고정되어 있고, 색깔도 분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테면 대학교수는 빠져라, 라든가, 편향된 문학 경향은 뽑지 말아라, 이런 요구를 안 하는데, 신춘문예에 관해서만 유독 세세하게 문제 삼고, 심사평 읽을 것도 없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등단 관련 1년 스케줄이 있잖아요. 3월엔 어디, 6월엔 어디, 9월엔 어디, 12월엔 어디, 이런 식으로. 심사하는 사람도 응모하는 사람도 전부 이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죠. 그래서 다 아시겠지만 이 공모전에서 읽은 작품을 저 공모전에서 만나게 되기도 하잖아요. 응모자들이 수험생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도 시스템이 이렇게 운영되기 때문일 텐데요. 모두가 이 제도의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문제가 신춘문예 제도만 손보면 해결될 것처럼 문제를 호도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편으로 하고요. 그리고 추가적으로는, 2016년도 이후에 문단 제도의 많은 부분이 재편되고 나서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인 것처럼 보이지만(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문예지가 폐간되었어요, (웃음) 《21세기문학》도 그렇고요. 실질적으로 많은 지면이 사라진 거예요. 소설 지면은 말할 것도 없고 비평 지면도 줄고, 소설 분량도 100매에서 80매, 60매 이런 식으로 줄어들었고요. 전체적으로 보면 작가들이 원하는 지면은 오히려 줄어든 거죠. 그러니까 이런 사정이 상대적으로 등단제도의 문제를 더 두드러지게 보이게 한 게 아닐까 싶어요. 신춘문예 등단제도 자체도 문제지만, 매체와 지면이 줄어든 문제를 같이 놓고 이야기해야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이 문제를 신춘문예 담당하시는 쪽에만 해결을 묻기가 어렵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하구요. (웃음)

 

한소범 : 근데 바로 2번으로 넘어가도 될지 모르겠는데, 저희가 순서 없이 한다고 하니까……. 여러 가지로 신춘문예로 지적을 많이 하시는 게, 예를 들면 심사위원들이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지만, 심사위원들이 고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거는 저희도 내부적으로 탈피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일례로 일종의 고충을 말씀을 드리자면, 여기서 지적을 해주신 대로 “어느 학교 선생님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들어갔더라.”라는 시선이 바깥으로 많은 걸 아니까 점점 심사를 안 맡으려고 하세요. 그럼 이제 저희는 심사위원을 꾸려야 되는 입장에서 한 해에 한정된 언론사들이 있고, 어쨌든 최대한 안 겹치게 다양한 작가들에게 심사를 부탁하고 싶어서 저는 정말 어떤 것까지 해봤냐면, 출판사에 가면 작가 이름이 ㄱ부터 ㅎ까지 있잖아요? 그럼 ㄱ부터 ㅎ까지 다 전화를 해봐요. 진짜 어느 해는 심사를 한번 맡아 주십사 몇 십 통을 돌린 적도 있어요. 그런데 해봤자 욕먹을 거 같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래서 심사를 맡으려고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는 게 지금의 분위기인 거 같아요. 근데 심사를 안 맡으면 투고는 굉장히 많은데, 심사해 줄 사람이 다 꺼리면 점점 더 운영에 부담이 되니까 점점 지면도 없어지고, 그러니까 악순환으로 굴러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예를 들면 제가 작년에 신춘문예 심사를 김금희 작가, 김솔 작가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두 분 다 굉장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고, 한 번도 심사를 해보신 적 없는데 힘들게 설득을 했죠. 약간의 책임감을 갖고 임해 달라. 이게 많은 부담이 될 것은 알지만, 누군가는 심사를, 좋은 작품을 발굴을 해줘야 되고, 신선한 시각을 불어넣어 줘야 되면, 그 역할을 해주실 수 있을 거 같다고 하는 섭외의 고충도 좀 많고, 그 안에서는 계속 지적되어 왔던 ‘연령대가 높다’, ‘선생님들이 맡고 있다’ 이런 걸 탈피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고, 사실 작년에 저희 심사하셨던 분들 중 선생님은 거의 없어요. 왜냐하면 선생님한테는 조심스럽게 여쭤 봐도 다 일단 심사를 안 보시겠다고 하고, 그러면 심사위원은 아주 적은 풀(Pool)에서 다양하게 설득을 해야 되는 작업들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불공정성 같은 건, 어쩔 수 없이 어딘가에서 수업을 하고 계신 분들을 저희가 만약에 심사위원으로 모시면 그 과정에서 약간 의심되는 작품이 있다는 게 나오면 그 심사에서 본인은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런 말도 얹지 않는 걸로 하고. 어쨌든 내부적으로는 개선을 해가려는 거를 심사위원들도 아세요. 지금 외부의 시선들이 굉장히 날카롭게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개선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2016년 이후에 비판들이 오기 때문에 오히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지면을 없애버리다 보니까 악순환이 되어버렸잖아요? 신춘문예도 약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거 같아요. 내부적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비판이 많이 날아오니까 이러한 부담을 지고 가면서 해야 되는데, 부담을 질 바에는 안 하고 말지, 그러면 없애버리고 말지, 그러면 모든 게 해소가 되어버리잖아요. 그래서 약간 그런 악순환으로 굴러가는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안타깝더라고요.

 

이슬기 : 저는 아까 소영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 가운데 신춘문예에 대해서 유독 비난의 화살이 많이 꽂히는 게, 이걸 계속 수험생에 비교하게 되는데 신춘문예는 수능 같아서 그런 거 같아요. 아직까지도 언론, 기자는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이런 시선도 같이 존재해서 신춘문예에 대해서는 수능처럼 보고, 각 문예지에서 하는 문학상 같은 거는 각 대학에서 펼치는 대학시험처럼 생각을 하는 거예요. 확실히 신춘문예는 훨씬 더 공정해야 하고, 여기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문예지의 심사위원들은 고정이고 저희는 한정이라고 하셨는데, 고정이라고 하는 거는 바뀔 의지가 없다, 저런 사람들을 뽑는 건 저 출판사의 취향이라고 본다면, “《서울신문》이 계속 저런 스타일을 뽑아? 저거는 심사위원이 문제다.” 이렇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아까 한소범 기자가 말한 것처럼 저희도 여러 심사위원 풀 가운데서 숙고해 모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경재 : 이건 문예지에도 해당되는데요. 신춘문예의 심사와 관련해서 제일 문제는 심사위원도 그렇지만 제가 느낀 거는 물리적으로 너무 여유가 없어요. 그러니까 한나절에 몇 백 편을 보고, 이거는 사실…… ‘내가 과연 한나절에 이걸 엄밀하게 할까?’ 이런 분들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이건 엉뚱한 질문인데, 노태훈 평론가님, 사회자님한테 질문하고 싶은데, 지금 주제가 등단이잖아요? 등단의 정의는 문인이 되는 건데, 저희가 지금 작가나 시인이나 문인을 어떻게 개념 규정을 하고 이 논의를 하는 건지 궁금해요. 그러니까 주요 문예지에 자주 글을 발표하는 분을 문인으로 보는지, 그 외에 문학상도 받은 분으로 나누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문학사에 등재도 된 분을 문인으로 선정하고 등단제도를 논의할 건지, 아니면 그냥 많이 팔리는, 대중과 시장에서 각광받는 이런 분들을 문인으로 선정하고 등단제도를 논의하는 건지. 아니면 그것도 상관없이 그야말로 약간 의미 있는 한 시대의 문화적 아방가르드(Avant-Garde)로 정말 어떤 새로운 삶과 사유와 문학의 길을 개척하는 그런 분들, 예를 들면 30년대 이상 같은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문인이라 두고 논의를 하는 건지. 사회자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노태훈 : 말씀하신 대로 되게 어려운 거 같아요. 등단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를 했을 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문인의 기준이라는 게…… 아까 소영현 선생님은 자기 책을 갖고 있는 작가 말씀도 하셨지만 쉽지 않은 문제 같습니다. 하지만 이 논의에서 기본적으로 제가 전제하는 것은 공적인 차원에서 작가로 승인되는 경우입니다. 이를테면 ‘예술 활동 증명’을 통한 예술인 자격을 부여 받는 것 같은 거죠. 이를 승인 받으면 예술 활동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고 각종 예술인 지원 프로그램 같은 곳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게 예전에는 등단이 자격이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책을 냈는데요”, “제가 이렇게 작품 발표를 했는데요” 이걸로는 안 됐는데, 최근에는 개선이 된 걸로 알아요. 이를테면 ‘ISBN이 찍힌 출판물에 작품을 세 편 이상 실으면 증명을 해준다’로. 예전에는 비등단자들이 예술인으로 절대 증명 받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봐야 할 겁니다. 잠시 쉬었다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쉬는 시간〉

 

 

노태훈 : 그러면 2부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앞서 전반부에서는 등단이라는 제도, 혹은 등단 이외의 어떤 다른 경로들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 고충들 이런 걸 두루 들어 봤습니다. 후반부에서는 모색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어떤 방향으로 변화, 혹은 긍정적인 대안을 도출해 낼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면 좋겠는데요. 앞서 잠깐 이야기가 나왔지만 신춘문예 심사의 경우에 심사위원 풀의 문제도 있지만 너무 한정된 시간에 많은 작품들을 대상으로 빨리 선정해야 되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혹시 개선될 여지가 없을까 궁금합니다. 일단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기자님들이 아마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있으실 거 같아요. 일반적인 생각은 “10월 마감으로 원고를 받고 두 달 정도 넉넉히 심사위원분들한테 작품을 천천히 보시고 결정해 주십사 하면 되지 않아요?” 순진하게 질문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슬기 : 1차, 2차 좌담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에 신춘문예를 다 수기로 접수를 하는데 ‘다른 기타 시나리오 쪽 공모전 이런 것도 다 온라인 접수를 하는데 신춘문예만 그러지 않은 것은 담당자들의 의지가 없어서다.’라는 걸 봤는데, 산업 전반의 인력이 적은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례로 계속 작가 활동을 하시는 지인이 본인이 지금은 사라진 언론사에서 운영하는 어떤 문학상을 받아서 등단을 했지만, 이후에 내가 아무리 출판사에 투고를 해도 내 작품을 며칠 동안 안 보다가 메일 확인한 10분 만에 ‘귀하는 저희와 맞지 않으니…….’라는 답장이 왔다는 거예요. 작가 입장에서는 그 이야기에 분노하겠지만, 제가 들었을 때는 ‘출판사도 기존에 처리해야 할 것도 너무 많은데 투고 보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싶기도 했어요. 비슷하게 이 신춘문예도 온라인으로 받는 것에 대해서 각 언론사들이 고민을 매번 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런 시스템을 바꿀 의지와 인력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문학 기자 한 명과 문화부원들이 많은 걸 다, 봉투 뜯는 거까지 소화를 하기 때문예요. 물론 더 좋게 바꿔 보려고 노력을 하죠. 저 같은 경우엔 신춘문예를 세 번 진행하면서 심사위원님들 중에 심사 기간이 너무 짧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으셨어요. 그걸 최대한 늘리고, 삼고초려 끝에 섭외한 선생님도 계셨어요. 이렇게 짧아서는 할 수 없다고 하다가 좀 늘려서 그렇게 바꿨고……. 그런 점에서 조금씩, 조금씩 개선의 시도는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소범 : 제가 처음에 신춘문예 담당을 했을 때, 실제로 아주 구체적으로 저희 법무팀 안에 저작권 관련해서 그 고민을 하는 부서가 있는데, 거기는 긴밀하게 이거를 온라인으로 아예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그때 제가 신춘문예 있는 언론사들한테 다 물어봤어요. 혹시 온라인으로 같이 투고를 받는 방법을 고민하지는 않는지,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받는지. 근데 결론은 온라인으로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분들의 절반 정도는 이 안에서 잘 알고 있는 지망생들이 있지만, 제일 많은 것 중에 하나가 교도소, 병원 등에 근무하는 분들이 작가 활동이랑 별개로 많이 오시고, 문의 전화의 태반이 친절하게 인터넷에 공모가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으로 확인하는 분들이세요. 그렇기 때문에 마감이 되면 불안해서 우편으로 내도되는데 회사로 찾아와서 직접 제출하는 분들도 있고, 만약에 이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바꾼다 해도 온라인만 운영할 수 없는 게 뻔한 거예요. 온라인으로도 운영하고, 우편으로도 운영하고, 무조건 두 가지, 투 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왜냐하면 출판사에서 온라인 공모를 받는다고 해도 출판사에 직접 내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까지 배려를 하다 보면 최선은 아니지만 차악?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만약에 저희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다 온라인으로 바꿔버리면 노인분들은 못 보내세요. 노인분들은 못 보내시고, 어린애들도 되게 많이 보내거든요? 못 보내게 되고, 그런 문제들이 있고……. 자세히는 모르지만 저작권 관련해서 공고에 폐기한다고 나와 있잖아요? 근데 그 절차 말고 신뢰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속 온라인에 내가 제출하면 그게 어떤 식으로 유출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데 대한 고민도 있으시고, 사실 신문사 입장에서도 인터넷으로 받아서 심사위원한테 메일로 보내는 게 제일 좋죠. 저희가 3, 4일 동안 앉아서 일일이 소포 뜯고, 분류하고, 표지 뜯고……. 근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지점들이 분명히 있기는 해서. 그리고 출판사와 달리 신문사는 그냥 마지막 보루 같아요. 일반인들도 자신의 마지막 문학적 꿈을 한번 두드려 볼 수 있는 장 같은 거여서 그분들에 대한 배려를 또 안 할 수가 없어서 그런 고민도 분명히 있는 거 같더라고요. 사실 저희도 진지하게 논의도 했었어요, 법무팀이랑. 아예 온라인으로 돌리자. 그런데 진행을 하다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해서 잘 안 됐어요.

 

노태훈 : 아직도 손으로 써서 보내시는 분들 많죠?

 

한소범 : 굉장히 많으세요. 그리고 편지봉투에 넣어서 보내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고요. 정말 정말 많으시고, 온라인에도 공고가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공고를 내가 못 봤기 때문에 몇 월 몇 일자 신문으로 확인하고 싶다.” 해서 “선생님 그거 온라인에 검색하시면 다 나옵니다.” 해도 “그걸 내가 할 수가 없어요.” 하고 며칠자 신문으로 보면 되는지 전화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고, 그 연령대가 높은 분들도 굉장히 많이 공모를 해서 저희도 어떤 배려의 입장도 있기는 하죠.

 

소영현 : 배려도 배려고, 저는 그 점에 의미 있는 거 같아요. 문예지는 전문적으로 문학 공부한 사람들한테만 열린 루트에 가깝잖아요? 비교하자면 문학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는 데 신춘문예가 기여한 바는 분명한 거 같아요. 그간 공모 장르도 많이 바뀌었잖아요? 예전에는 조금 더 개입해서 장르를 바꿀 수 있던 시절이 있고, 예를 들어 시나리오도 받고, 연구 논문을 받기도 했고. 지금은 현상유지 하는 편에 가깝고. 예전에는 신춘문예가 문학의 저변도 확대하고, 문학 장르 범주 구성에도 개입하는 역할을 해왔던 게 분명하죠.

 

한소범 : 예를 들면 저희가 동시 공모가 있는데요. 재밌었던 게 작년에 동화로 한 번 등단을 하셨던 분이 동시로 또 당선이 된 경우가 있어요. 동시 부문이 있는 신문사가 《조선일보》랑 저희밖에 없거든요? 동시를 쓰고 싶어도 낼 데가 너무 없어서 선택지가 너무 없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희는 희곡도 있고, 또 《서울신문》 같은 경우에는 시조도 있고. 앞에 1차, 2차 좌담은 소설과 시 논의로 됐지만, 또 저희는 그것만 다루는 게 아니고 고려해야 될 지점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뭐를 바꾸기가 조금 어려운 점이 있는 거를 혜량해 주셨으면. (일동 웃음)

 

노태훈 : 작품 내시는 분들은 그걸 제일 궁금해 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과연 내가 낸 작품이 정상적으로 접수가 돼서 읽혔을까.’ 그것조차도 신뢰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아예 온라인으로 전환을 한다거나 다른 방식으로 하기가 어렵다면 그냥 접수번호만이라도 안내해 주는 게 어떨까 싶어요. 그러니까 그걸 일일이 종이로 줄 수는 없을 거고요, 당연히. 신문사가 웹 페이지를 하나 만들어서, 예를 들면 ‘김OO’ 해가지고 본인만 알 수 있는 표기 이후에 ‘몇 번으로 접수가 됐다.’ 정도의 리스트만 제공해도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엑셀에 매우 수고스럽게 정리를 하시기도 하니까요. 그 정도 안내만 되어도 “아, 접수가 됐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건 어떨까요. 예술위에서 나름대로 준비도 해보시려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는데, 공모 플랫폼을 국가 주도로 만들어서 각종 공모 주최측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형태는 어떨까요. 공모 심의 시스템은 정부가 만들고 응모자들은 자유롭게 투고, 주최측에서는 이용료를 내고 이를 활용한다면?

 

한소범 : 하지 않을까요? (웃음) 아마 자체적으로 구축하기에는 사실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까 안 하는 것도 분명히 있을 거 같거든요. 근데 그거를 누군가, 국가가 해준다고 하면 언론사들 설득만 한다면 굳이 마다할, “아, 우리는 그런 거 안 해!” 할 데는 별로 없을 거 같은데.

 

이슬기 : 접수 유통망을 쥐고 있다고 해서 언론사가 얻는 이득은 없어 보이거든요. (웃음) 오히려 손해만 날 거고, 국가에서 한다고 하면 좀 믿음이 가니까 이용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봐요. 그 이용 단가가 어떻게 되느냐를 봐야. (일동 웃음)

 

노태훈 :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춘문예를 각각의 언론사들이 지금 시행하고 있는데, 사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고충을 겪으시고, 또 대동소이한 형태로 운영이 되잖아요? 나름의 어떤 논의를 거쳐서 같이 뭔가를 해보려는 노력도 한번…….

 

이슬기 : 언론사들끼리요?

 

노태훈 : 네

 

한소범 : 절대 안 될 거 같은데. (웃음)

 

이슬기 : 저희는 사실 올해 어떤 신문사가 제일 좋은 당선자를 냈다더라.

 

한소범 : 그리고 응모 편수 꼭 비교합니다.

 

이슬기 : 맞아요. 그걸 확인하거든요. 올해 우리는 1,000편 왔는데 저기는 2,000편 왔으면 “왜지?”라고도 생각해요.

 

한소범 : “왜지? 아, 작년에 누가 당선돼서 그렇구나.”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웃음)

 

노태훈 : 신춘문예 같은 걸 하면 당선 시집, 당선 소설집을 내는 출판사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여러 문제가 일어나기도 하고, 왜 그걸 특정 출판사, 협회가 관여하는지 의문도 듭니다. 물론 작품의 저작권은 창작자 본인한테 있지만 시행 주최인 언론사가 너무 그냥 놔둔다는? (웃음) 신춘문예를 진행하는 언론사들이 당선자들의 두 번째 작품 같은 걸 모아서 책을 한 번 내고 그런 것도 너무 터무니없으려나?

 

한소범 : 그러면 언론 권력이 출판 권력까지 쥐어 간다는 말을 들을 거 같아요. (웃음) 근데 저희는 당선작에 한해서는 지면으로 한 번 출판을 해드린 거잖아요. 근데 그거까지 저희가 하려고 하면 정말 자기네들이 뽑은 작가들을 이제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렇게 나올 거 같아서…….

 

이슬기 : 그 예를 들면 인세는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이며, 신문사들이 여러 개 대입이 된다고 하면 또. 근데 그런 곳이 있긴 해요. 《연합뉴스》에서 수림문학상 주는데, 거기는 장편 원고를 받기도 하고 《연합뉴스》 안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을 해주는 걸로 알거든요? 그거는 장편이라는 특수성이 있고, 또 장편이라고 하는 《한국경제신문》 같은 경우는 당선되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내는 그거는 회사 대 회사로 이야기를 해서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신춘문예가 단편 위주고, 작품이 쌓여야 출간할 수 있는 그런 점도 있고, 플러스 출판 권력. 그건 이제 밖에서 보는 시선이고, 그래서 저희로서는 그거까진 저희가……. (웃음) 신춘문예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이 있긴 합니다.

 

노태훈 : 최근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했던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문학 분야의 결과물도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악스트》와 유사한 형태의 문예지 형태로 냈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협업도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이를테면 《한국일보》에서 신춘문예로 등단하게 되면 어떤 잡지에 작품을 싣게 해주는 일종의 협업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물론 여러 민감한 이슈들이 또 생겨나긴 하겠지만요.

 

소영현 : 협업은 아니지만, 예전에 《중앙일보》, 《문예중앙》, 〈랜덤하우스중앙〉 이렇게 언론사, 문예지, 출판사가 운영될 때가 있었죠. 그때 문학 단행본 출간 관련해서 기획위원을 두고 운영했었죠. 적절한 모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춘문예 등단작의 출간을 전담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한소범 : 출판부가 따로 있는 언론사들이 있잖아요? 그런 데는 가능할 거 같은데 저희도 옛날에는 책을 내는 출판부가 따로 있었거든요? 근데 사업적으로 의미가 없어져서 그것도 철수를 한 상태고 해서.

 

이슬기 : 《한겨레》도 한겨레문학상 출판하잖아요. 저희도 출판부가 있다가 없어져 가지고.

 

한소범 : 출판부도 많이 없어져서 신문사가…….

 

노태훈 : 그러고 보면 《세계일보》도 문학상을 운영하는데 외부에서 출판을 했고 출판사가 꽤 자주 바뀌었던 것 같아요.

 

 

 
문예지의 청탁과 투고

 

노태훈 : 어쨌든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좁디좁은 문학판이 그마저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웃음) 문예지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최근 몇 년 사이 문예지가 많은 변화를 겪었고, 웹진 등의 플랫폼도 꽤 활성화되었습니다. 의외인 것은 여전히 새로운 종이 문예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경재 선생님께서는 소명출판에서 창간한 《문학인》의 편집위원이시기도 한데, 신인 작가의 데뷔라든가 작품 청탁 등에 관해서 어떤 기준이나 원칙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최근 새로 창간한 모 잡지에서 비등단 작가에게 구두청탁을 했다가 이를 반려하면서 자격이나 검증을 운운해 큰 문제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이경재 : 《문학인》에서는 현재 신인상 제도를 운영할 생각은 없고요. 그냥 기본으로 작품을 싣는 원칙은 기성 문인들 중에서 나쁘게 말하면 소외되고, 많이 호출되지 않는 분들, 그런 분들을 최대한 많이 청탁하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름호까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어쩌다 보니 제가 PR을 하는 거 같은데, (웃음) 뭔가 실력 있지만 다른 문예지에서 볼 수 없었던 그런 분들을 연령을 가리지 않고 많이 청탁하려고 하죠.

 

노태훈 : 그러면 아직은 투고제도를 운영하시진 않고…….

 

이경재 : 투고제도는 운영하지 않고 있어요.

 

노태훈 : 저는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지금 말씀하신 대로 각 문예지에 일종의 청탁 방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방금 언급하셨듯이 우리 잡지는 작품의 질에 비해서 조명 받지 못한 작가들 위주로 세대, 성별 불문하고 청탁을 해보려 한다는 식의 취지가 있다면, 그런 지점을 나름대로 알리거나, 혹은 청탁의 원칙에 관해 공개적으로 밝혀 두는 게 어떨까 싶어요. 예를 들자면 우리 잡지는 지난 2년간 우리 잡지에 발표하지 않은 사람들을 선정한다는 기준 같은 것은 충분히 밝힐 수 있잖아요? 그래야 작품을 보거나 싣기를 희망하는 작가들, 혹은 독자들까지도 “아, 저기에는 이런 기준들을 통해서 작가를 청탁해서 작품을 싣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지 않나 생각하는데, 역시나 다소 예민한 문제들이 생겨나긴 하겠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이경재 : 아직까지는 그런 청탁의 기준을 밝힌 문예지는 없죠?

 

소영현 : 그렇긴 한데요. ‘수준 있는 어떤 작품을 싣겠다.’라기보다는, 어떤 것을…….

 

노태훈 : 싣지 않는다?

 

소영현 : 네. 그에 대해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하게 됐어요. 예를 들면 성범죄 관련한 경우나 법적 위반 관련 경우 등. 웹진 《비유》 편집위원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이전에는 미등단 작가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전반적으로 지면이 적다 보니, 저희는 오히려 폭넓게 열어 두고 지면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경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등단제도를 통과한 경우에도 최근에는 주목받으면 받는 대로, 못 받으면 못 받는 대로 한 해 안에 여러 곳에 글을 실으며 소모되는 경우도 있지만, 등단한 해에 청탁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다른 기회를 얻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등단 여부나 장르, 활동 경력 혹은 다른 조건들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되, 법적 문제에 연루되는 경우 등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좀 더 논의를 집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노태훈 : 그런 나름의 기준이나 청탁 절차 같은 것들을 규정집처럼 만들어서 배포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밝혀 주는 게 저는 좋다고 생각을 하는 쪽이기도 하고, 이것과 관련해서는 문예지에서 자체적으로 뭔가를 기대하기보다는 문예지 지원 사업 등의 사후 평가를 활용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한 것 같습니다. 당연히 웹진 《비유》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 공적 지면의 일환이기도 하고요. 작년부터 문예지 지원 사업에 대한 사후 평가가 시행되고 있는데 그때 이 문예지에서 어떤 작가들한테 청탁을 했는지, 혹은 조금 더 공격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아예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작가들의 비중 같은 것도 평가지표로 삼는 거죠. 현재 이런 부분들이 “문학 생태계 활성화 기여도”라는 형태로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좀 더 비중을 높인다면, 문예지 쪽에서 “지원 사업에 선정되려면 어쨌든 이번 호에 무조건 등단 절차 거치지 않은 작가 한 명은 발굴해야 돼.” 같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웃음)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상황 같아요, 저는.

 

이경재 : 저는 기본적으로 등단이라는 제도가 어떤 신문사나 문예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적 여건 수준이랑 다 연동되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보면 신춘문예 제도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잖아요. 미국이나 이런 데는 다 원고를 받은 출판사에서 가서 출판을 결정하고 안 하고를 해서 출판이 되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가 되는 거고, 많이 팔리면 인기 작가가 되는 거고, 높은 문학사적 평가를 받으면 문학사적 작가가 되는 거고, 이렇게 되는데요. 글을 내면 아주 기초적으로는 출판사 직원도 그런 걸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적, 물질적 여건이 되어야 되고, 또 어떤 교양이나 수준이 되어야 되고……. 그런데 우리 같은 경우는 과연 그런 시스템이 가능했었나? 그리고 사실 지금도 가능한가?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메이저 출판사에서 하는 문예지 회사를 못 가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도처(到處)한 데를 보면 정말 이건 뭐 가혹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는 출판 노동자들한테 그거까지 요구한다는 게 사실 불가능한 거죠. 그러니까 그 문화적 수준과 여건에서 최선이 신춘문예나 문예지 같은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근데 이제 일본 같은 데는 신춘문예를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지만 지금은 없어졌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전체적인 여건, 상황, 이런 것들과 함께 우리가 고민해 보고, 생각해 봐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한소범 : 앞선 좌담에서 어떤 분이 지적을 해주셨던 게 만약에 완전 투고제로 가면 출판사 종사자들의 노동이 굉장히 늘어날 텐데 그것을 감당할 역량이 되느냐에 대해 논의를 해주셨는데, 그게 저는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생님께서 지적을 해주셨지만, 그 전반적인 상황이 동등한 수준으로 이렇게 한 단계 높아지지 않는 이상은 옴짝달싹하기 힘든 문제인 거 같다. 예를 들면 신춘문예야 1년에 한 번 두 달 동안 우리가 고생한다 생각하고 하는 거지만, 출판사는 만약에 일 년 내내 완전 투고제를 해야 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그 업무를 감당해야 되는데, 출판사가 그 업무만 담당할 사람을 따로 둘 수 있는 여건도 쉽지 않을 것이고, 그런 논의가 진짜 같이 되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나아가기 어려운 지점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태훈 : 보통 등단이나 공모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게 상시 투고제인데, 앞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쉽지 않아 보여요. 소위 서구식 모델, 그러니까 미국이나 유럽 같은 출판 시장을 염두에 두면, 그냥 내가 쓴 작품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거잖아요? 그러기에 지금 한국의 문학 출판 시스템이 상당히 열악하고, 그에 비해 어쨌든 문학에 대한 어떤 열의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웃음) 어떻게 보면 출판사가 어떻게 책을 내고 작가를 발굴하는지는 사실 저희가 좌담할 문제도 아니죠. 문제는 한국적인 문학 지형도에서 공적인 기금이나 지원이 투여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그에 관해서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문예위에서 문예지 지원 사업을 중단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문예지가 살아남기 어려울 거예요. 즉 국민의 세금을 들여 이 문예지들을 살리고 운영하게 하는 건데 작가의 등단, 데뷔, 활동 같은 문제들에 관해 분명한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소범 : 그러니까 늘 어떤 문제든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시장 안에서의 자발적인 해결책이 없을 때는 공적인 기금의 투여라든가 관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순으로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노태훈 : 앞선 좌담에선 그런 이야기도 하셨더라고요. ‘아카이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아주 수평적이고 굉장히 이상적인 모델이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어떤 작가가 어디에 작품을 발표를 하는지, 혹은 어떤 잡지들이 있는지, 어떤 매체들이 운영되고 있는지를 좀 보여주게 해달라는 것이죠. 소위 메이저 매체들은 잘 알려지고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지만, 독립 잡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나 플랫폼은 일단 ‘홍보’부터가 너무나 큰 난관이니까요. 이런 문학 플랫폼 아카이브가 저는 나쁘지 않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나 이것도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거 같아요. 꽤 많은 예산도 필요할 거 같고, 운영도 어려울 거 같고…….

 

이슬기 : 그러면 이제 그 아카이빙을 아예 공개하는 거예요?

 

노태훈 : 제 생각에는 그건 아니고, 목차만이라도 제공해서 ‘이 작가가 어느 잡지 몇 호에 이런 제목의 작품을 실었다’ 정도만 확인할 수 있어도 좋겠다는 거죠. 예를 들면, 제 생각은 그렇거든요? 제가 문예지에서 청탁을 할 때, 이 작가의 작품을 받아 보고 싶어요. 그래서 회의에서 논의하기 전에 최근에 얼마나 발표했는지 알고 싶은 거예요. 물론 기본적으로 감은 있지만, 실제로 확인하는 건 중요하니까요. 또 예를 들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들은 그해에 거의 소모가 돼요. 특히 몇몇 작가들은 청탁이 쏟아져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기도 하죠. 각각의 문예지들은 당연하게도 청탁 상황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지면이 막 쏠리게 되거든요. 그런 걸 방지하려면 “이 작가가 최근 몇 년간 이런 잡지들에 4편 정도 발표했네. 그럼 조금 시차를 두고 청탁을 해야겠다.” 정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없어서 그냥 기억에 의존하잖아요. 보통 ‘요즘 못 본 거 같아.’ 이러면 청탁하고, ‘어, 요즘 되게 활발하게 쓰지. 지난번에 저기도 있고 그러니까.’ 그러면 또 넘어가고. 이런 식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서 좌담에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경재 : 근데 제가 좀 다른 이야기 같은데, 국가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청탁이나 등단까지도 관리를 받아야 된다 하면, 국가가 지원하지 않는 게 문학을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왜 하냐면 《문학인》이라는 잡지가 〈소명출판〉이라고 아주 군소 출판사, 거의 이익을 안 얻는 출판사인데, 이 사장이 매일 하는 말이 “그렇게 부담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거예요. 예외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그런 많은 것들을 국가에 맡겨야 된다면, 저는 ‘그게 문학을 위한, 문인을 위한 길일까?’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노태훈 : 저도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문예지 지원 사업을 없애고 그걸로 문예지 아카이브 사이트나 만드는 게 차라리 낫다고. 그 돈으로 어떤 문예지가 나오고 그런 것만 잘 정리해 줘도 그게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이렇게 수많은 잡지들을 공적 자금을 투여해서 살려 놓는 게 과연 한국 문학의 발전에 정말 이바지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어쨌든 지금 현재는 그런 제도가 유지되고 있고, 지원을 통해서 작품 발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련된 논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긴 해요. 다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기관에서는 늘 큰 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지원을 해주되 간섭하지 않는다’이기 때문에 예술 정책의 분야에서 역동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소영현 : 국가 지원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거 같아요. (웃음)

 

노태훈 : 사실 진짜 문제는 주요 출판사의 문예지와 신생 독립 잡지 사이에 있는 잡지들이죠. 각종 협회나 단체의 기관지 성격을 띤. 심사하시는 분들이 그 잡지들을 못 빼는 거예요. 그러니까 메이저를 넣고 빼고, 독립 잡지 들어가고 말고는 사실 제가 볼 땐 크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진짜 이 잡지가 지원할 만한 잡지인지 평가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거죠. 그렇게 하면 활발하게 하는 독립 잡지나 잘나가는 메이저 잡지나 다 뽑힐 거예요. 왜냐하면 나름대로 잘하고 있으니까요. 근데 굉장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심지어는 노동착취의 문제까지도 제기되는 잡지들이 문제죠. 메이저 출판사의 노동착취 문제가 자신의 직장이나 업무 환경에 관한 것이라면 제가 말씀드린 사례는 문예지에 관여하는 사람들을 기묘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행태에 가깝습니다. 이를테면 편집위원이라고 올려놓고 교정교열을 다 시키고 그에 따른 다른 비용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로 “대신 우리 잡지에 작품을 실을 시인 두 명을 네가 추천해.” 하는 방식이죠. 그게 최근에 이슈가 됐던 거거든요. 사실 비일비재한 일이고 그런 잡지가 적지 않죠.

 

 

 
아카이브와 접근성

 

소영현 : 아까 문예지 아카이브를 만드는 거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을 하는데, 저는 약간 각도를 달리한 지점에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신춘문예나 신인상 심사할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심사 일정 압박을 받으면서도 심사를 진행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좋은 작품 전부가 아니라 한 편만 뽑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선별된 작품들의 수준은 사실상 비슷한데, 결국 그 가운데 어느 한 편이 뽑히게 되는 거잖아요. 이런 상황을 두고, 공모작 가운데 수준작을 걸러내어 신인 작가 풀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1등만 뽑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을 골라내는 방식이라면 심사자, 응모자에게 서로 덜 소모적이겠다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신문사들이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이것과는 다른 층위에서 아카이브의 필요성에 동의하는데요. 등단작 같은 경우에도 아카이브를 통해 공개하는 것을 고려해 보면 좋지 않을까. 더 많은 독자가 접할 수 있고 비평할 수도 있게 하는 식으로.

 

한소범 : 전문을 공개하는 그런.

 

소영현 : 아, 전문 공개 안 해도 되겠네요. 일부만 공개하는 식으로 해서…….

 

한소범 : 저는 그 고민도 옛날에 했던 게 그러니까 문예지에서 당선된 것과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게 다른 게, 아주 이례적으로 장류진 작가의 데뷔작은 〈창비〉에서 온라인에 전문을 공개를 했지만 기본적으로 잡지를 보지 않으면 데뷔작을 볼 수 없어요. 그런데 신문사는 상금을 주기 때문에 그 데뷔작이 온라인에 전문이 공개가 되거든요? 근데 그렇게 해서 저희 예전에 데뷔하셨던 분 중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게 신문사에서 등단한 작품들은 온라인에 전문이 공개가 되니까 일종의 링크? 복사 붙여넣기 돼서 아주 많은 곳에서 링 위에 올려지는 거죠. 근데 그 링 위에 올려지는 게 당연히 순기능만 있을 수만은 없고, 아주 많은 부당한 악플, 아주 많은 부당한 비판, 뭐 “아, 이번에 《한국일보》 당선된 거 봤는데, 진짜 못 썼던데 내가 더 잘 썼는데 왜 됐는지 모르겠다.”라는 악플이 굉장히 많이 쏟아지는데, 저는 사실 그 차원의 문제를 고민했던 게, 예를 들어 기자들도 악플 굉장히 많이 받거든요? 근데 저희는 약간 훈련이 되어 있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 내가 소설가로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데뷔를 했는데 갑자기 만인이 나의 소설을 볼 수 있는 그 링 위에 강제로 올려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지만, 독자가 이 작품에 대해서 얼마만큼 진지하게 접근을 해줄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악플의 세계는 누구라도 헐뜯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제가 케어를 해드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런 거는 무시하세요. 사람들의 비난 같은 거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은 하지만, 저희는 단련되어 있는 사람들이지만, 보통 갑자기 내가 작가가 됐는데 비난을 견뎌야 되는 그 상황이 오는 거죠. 거기서 굉장히 혼란스러워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작품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이 과연 좋은가? 그런 생각도 들고, 또 이거는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제가 이제 ‘이단아’라고 문예지에 실린 단편소설을 리뷰를 하는 코너를 연재 중인데, 어떤 분이 저한테 얼마 전에 단 후기? 댓글인데, 그러더라고요. “단편소설 좋은 거 소개해 주시는 건 좋은데, 어디서 읽을 수 있어요, 그런 거? 어디서 읽을 수 있는지 얘기 안 해주시니까 좋은 거 혼자만 보는 되게 심술궂은 오타쿠 같아요.” (웃음) 사실 거기에 제가 ‘어느 지면에 실려 있다.’라는 걸 명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면 음악 같은 경우는 유튜브에서 바로 볼 수 있죠? 만화도 웹툰으로 볼 수 있죠? 영화도 OTT(Over-the-top media service)로 다 볼 수 있죠? 그런데 문학만큼은 내가 앉은 자리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약간 수고로움을, 서점에 가서 그걸 들춰 보거나 도서관에 가서 그걸 들춰 보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거의 마지막 남은 영역인데, 지금의 어떤 문화 향유자들에게는 아주 진입장벽이 높은 예술인데, 그걸 약간 유지를 해주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아예 열어 주는 것이 좋을까? 여러 가지 사례들을 보면 그것이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테 심술궂은 오타쿠 같다고 하신 분을 보고 “그건 도서관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하죠. 그런데 그분은 그걸 원하는 게 아니야. 앉은 자리에서 내가 인터넷에 검색해서 그걸 다 보고 싶은 거예요. 그 심리가 지금의 많은 독자들의 심리인 거죠. 그래서 문예지의 단편소설을 향유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요새 많이 했어요.

 

소영현 : 댓글의 악플에 대해서는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거라서 ‘아, 그럴 수 있겠구나. 고민해 봐야 될 문제겠다.’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저는 전적으로 오픈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사실.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신진 작가들의 경우에 결과적으로 평가하는 독자가 전문 평론가로 한정되는 것 같아요. 굳이 종이 문예지를 찾아봐야 하니까 비평가만 보게 되고, 되도록 더 많이 읽힐 수 있어야 문학 독자층도 더 확장되지 않을까, 저는 이런 입장이거든요.

 

한소범 : 그래서 저도 처음에 이 ‘이단아’라는 코너를 만든 것도 너무 문예지에 실린 것들은 이 장 안에서만 소비가 되니까 조금 더 저변을 넓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한 건데, 당연히 그 코너를 론칭 할 때 그 고민이 있었죠. ‘근데 그렇게 리뷰를 하면 그걸 어디서 찾아봐?’ 근데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거예요. 조금 수고로움을 견뎌야 돼요. 저도 당연히 그분한테 링크를 보내드리고 싶죠. 근데 그거는 출판사랑 저작권 협의의 문제도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좀 안타깝더라고요. 좋은 소설을 보고 싶은데 이 소설을 보고 싶으면 서점 가서 읽으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고민들? 여러 가지로……. 그런데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웃음)

 

소영현 : 그죠. 그러니까 언론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저는 문학장 전반에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웹진이나 온라인으로 잡지를 만드는 거에 대해서 문학 출판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을 온라인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운 편이고, 창비나 문학동네, 문학과사회, 자음과모음 등 많은 문예지들이 접근 가능하기도 하지만 한 계절 이상 지나야 하기도 하구요. 생각해 보면 독자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하는…….

 

한소범 : 오만한 것일 수도 있죠.

 

소영현 : 예. 저는 약간 그런 생각이…… 문예지 전체를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해도 소설만이라도 접근성을 높이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소범 : 웹툰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무료 공개이긴 했지만 돈 내고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이 됐잖아요. 왜 그게 가능하게 되었나 생각을 해보니까 처음에 이 웹툰 시장을 만든 게 네이버랑 카카오(다음)인데, 그건 완전 대기업. 처음에 네이버 웹툰을 만들었을 때 다 적자였대요. 그 적자의 시기를 견딜 수 있는 재정적인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웹툰이라는 시스템을 정착시킬 수 있었던 건데, 출판사들이 과연 그걸 할까? 이런 고민들을 내가 왜 쓸데없이 하고 있지? (웃음) 내 역할도 아닌데? 이런 고민들도 하고, 어디까지 그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좀 들어요.

 

소영현 : 노태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온라인 검색으로 그 작가가 뭘 썼는지 알 수 있으면 굳이 국가에서 돈 써서 아카이빙 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온라인으로 접근 가능하고, 어느 정도 작품 활동이 파악이 되면요. 그게 안 되니까 아카이브 같은 게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근본적으로 문학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평론가가 살길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노태훈 : 접근성의 문제가 중요한 것 같아요. 《문장 웹진》이나 웹진 《비유》처럼 웹으로 공개된 작품은 확실히 부담도 적고 손쉽게 열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아직 활발히 댓글이 달리거나 하지는 않지만요. 장류진 작가의 데뷔작이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것도 사실 그때 창비에서 신인 작가들의 작품은 웹으로 볼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거든요. 링크를 타면서 재밌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널리 알려졌는데, 만약 종이 잡지였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제 종이 문예지의 시대는 끝날 거다 말씀들을 하시는데 지금 종이 문예지 창간한 곳도 있으니……. (웃음)

 

소영현 : 모두가 함께 어디로 옮겨가는 것도 이상하고 다 없애는 것도 이상한 건데요…….

 

이경재 : 저희 다음 편집회의 때 웹으로의 전환을 한번 진지하게…….

 

노태훈 : 저는 웹으로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는데, 종이 잡지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전자책으로라도 꼭 냈으면 좋겠어요. 근데 전자책으로 거의 안 나오거든요, 문예지는?

 

소영현 : 소설이라도 꼭 읽을 수 있게…….

 

노태훈 : 맞아요. 홍보 차원에서라도 시나 소설은 바로 접근할 수 있게 해줘도…….

 

소영현 : 웹상에서의 문학 활동이 정착해야 말씀하신 댓글들을 다는 것과 같은 상호교류 문화도 생길 텐데……. 아무튼 접근성을 높여서 웹으로 창작이든 향유든 문학 활동을 하는 게 편하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못다 한 이야기들

 

노태훈 :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까 등단이라는 문제에서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 공간, 환경, 시스템 이야기까지 쭉 넘어오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을 나름대로 깊이 있게 들어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미처 꺼내지 못했던 말씀이나 조금 더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을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이슬기 : 1차, 2차 좌담, 특히 1차 좌담은 지망하시는 분들, 이제 막 작가 활동을 시작하신 분들 이야기가 되게 많아서 이 문예지로 등단한다는 것, 신춘문예로 등단한다는 제도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여기는 아무래도 그 이후 이야기를 좀 많이 하신 거 같아요. 저는 그거 보면서 그런 이야기 많이 하더라고요. “지금 한국에서 글을 쓰는 풀(?)이 거의 문창과에 많이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문창과 교수님들이 신춘문예 심사를 보고 문예지 편집위원을 하는데, 다 합평해서 봤던 작품이고, 알음알음 통과를 시켜서 당선을 시킨다더라.”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되게 많은데, 근데 저희도 그 두려움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심사위원을 선정할 때마다 엄청난 어려움이 있는데,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강단에 계신 분을 다 빼버리면 평론가분들이 풀에 들어갈 수가 없고요. 또 사설 강의하시는 분들 빼고, 빼고 하면 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물론 심사위원분들 젊은 분, 뭐 경력 있는 분 안배를 하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학 하지 않는 사람, 독자들도 소설을 본다는 걸 저희는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대중에 알려진 심사위원을 선호하는 건 사실이기는 해요. 그런데 그런저런 걸 다 감안하고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아예 그쪽에서 고사하시는 경우도 많고, 저희도 ‘저분은 섭외하기 힘들겠는데?’ 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런 심사위원 선정의 공정성 같은 부분에 대해서……. 근데 또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예를 들어 심사위원들 중에 한 분이 아는 사람의 작품이 올라왔다, 근데 나머지 분들이 봤을 때 ‘이 작품은 너무 괜찮은데?’ 이분과 이 사람이 연관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떨어트리는 것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많이 들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조언도 좀 이야기를 들어서 회사에도 전달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살짝 궁금했어요.

 

노태훈 : 그런 이슈들이 워낙 자주 생기다 보니까 제가 문예지 쪽에서 심사를 할 때는 심사위원들한테 연락을 취할 때 제척 사유를 나열해서 돌려요. 즉 본인이 아는 작품이 심사 대상으로 올라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기재를 해놓습니다. 그 작품에 대한 판단에서 아예 빠진다든지, 아니면 심사 자체에서 나가버린다든지 하는 식의 나름의 조항을 만들어서 동의하고 시작을 하게 만드는 게 있긴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야기를 자꾸 하는데, (웃음) 마치 표준 출판 계약서를 만들듯이 심사에 있어서 나름의 가이드라인 같은 것도 좀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걸 국가에서 만들 필요는 없지만, 통용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틀 같은 건 좀……. 아까 이야기하신 대로 아주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심사할 사람이 없는 그런 상황도 생기니까.

 

이슬기 : 근데 좀 딜레마인 게 그렇게 해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지만 뽑고 나서 알고 보니 아는 분이었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죠. 그렇다고 해서 지원자와 관련이 있는 심사위원을 배제해서 나머지 심사위원의 의견을 가지고 이걸 뽑았는데, 발표하고 나면 “쟤 저 문창과 교수님 수업 들었던 걔인데?”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고요. 실제로 문학판에서 그런 사안들에 대해 해명을 하더라도 외부에선 믿지 않는 사태들이 발생을 했으니까 고민이 많아요.

 

노태훈 : 제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문예지에서 곧 심사를 하게 되는데, 제가 심사를 유튜브 생중계로 하자고 했어요. 대부분의 투고자들이 도대체 심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고, 여러 오해들이 생겨나기도 하니까 그냥 스트리밍으로 실시간으로 중계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를 했는데, 거기서 가장 결정적으로 걸렸던 부분이 뭐냐면 작품이 노출된다는 것이었어요. 당연히 작품의 줄거리나 장단점 같은 걸 이야기하게 될 텐데 그게 굉장히 예민한 이슈들을 발생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에는 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심사를 어떤 식으로든 좀 공개적으로 할 필요는 있는 거 같아요. 지금은 심사평이 전부잖아요? 신춘문예는 정말이지 너무 짧죠. 문예지는 그래도 심사평을 자세히 쓰는 편인데 신문사는 굉장히 건조하게 그냥 짧은 심사평만 내다 보니까 여러 오해나 우려들이 더 생겨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한소범 : 저는 사실 신춘문예도 그렇고 문예지도 그렇고 그 과정에 대한 여러 우려, 오해, 염려, 고충에도 불구하고 목표는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올해 정말 좋은 글을 쓰는 신인 작가를 세상에 한번 내보내 보자. 사실 심사 과정에 들어가 보면 심사위원들의 목표는 다 하나예요. ‘정말 세상에 없었던 좋은 작품 하나를, 신인 작가 한 명을 탄생시키는구나.’라는 그런 어떤 아주 일차원적인 기쁨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 이후에 시상식을 준비를 하고, 그해의 신인 작가들이 모여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아무리 그 과정이나 문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으셨던 분도 아주 진심이 담긴 새로운 작가의 탄생 그 한 마디를 듣고 나면 저한테 와서 한 마디 하세요. “문학 정말 멋진 거다.”라든가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말씀을 하고 가세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생각을 하면 이 과정에서 어려운 것들이 있고, 지금 매우 과도기이고, 여러 가지 고민들이 모색되고 있지만, 세상에 좋은 작가 한 명을 탄생시킨다, 라는 목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모두가 운영해 왔던 거니까 그걸 아예 포기하는 거 말고 조금은 고민을 해가면서 유지시키려고 하는 거잖아요. 신문사도 고민은 똑같아요. 주변에서 여러 가지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운영하고 있는 거는 어떤 사회 기여의 측면도 있지만, 정말 당연히 돈 안 되고, 돈 안 되는 거 당연히 맞고요, 신문사가 그 하나를 운영하기 위해 심사위원 섭외하고, 시상식 운영하고, 그런 것들이 생각하면 이익을 하나도 내지 않고 하는 유일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신문사에서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하는 건 그만큼 어떤 보람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고민 하에 모든 것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경재 : 저는 이제 등단과 관련해서 지금 정말 예전보다 환경이 나아지고 있느냐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여러 독립 잡지도 생기고, 여러 비등단 문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이런 이야기도 하지만, 저는 환경이 그렇게 개선되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복수 등단이 상당히 활성화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김동리(?)나 이근배, 뭐 이렇게 특이한 몇 분만 한번 등단하고 나서 또 다른 신문사나 잡지사에 이렇게 등단을 했다면, 2000년대 들어와서 복수 등단이라는 제도가 활성화 되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복수 등단은 서열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해진 등단제도의 어떤 서열화를 반영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이런 새로운 등단제도에 대한 모색이 아주 절실한 과제다, 이런 느낌이 들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사실 가장 손쉬운 이야기는 그거잖아요. 그거 그냥 없애고, 비판하고. 이게 사실은 제일 쉽고, 그거보다 편한 것도 없죠, 거의. 욕먹을 일도 없고. 하지만 제가 볼 때 이 등단제도는 단순하게 신문사나 출판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아까도 말한 것처럼 한 사회의 전체적인 여건 수준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아요. 조금만 생각해도 어떻게 보면 노동 환경하고도 연결이 되고. 그러니까 그런 걸 생각 한다면 신춘문예가 됐든, 문예지의 신인상이 됐든,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긍정성 같은 거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대안을 모색해야 좀 더 의미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제가 오늘 아주 크게 얻은 게 아까 그 작품들을 인터넷 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거, 그거 너무나 좋은 거 같고요.

 

노태훈 : 소설도 웹소설이 있긴 하고요.

 

이경재 : 아~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거는 네이버 같은 대기업이 여러 가지 토대를 놓은 거죠. 그런데 우리 작은 문학잡지 같은 데서는 할 수 없는 그런 대목을 바로 국가가 나서는 게 어떨까. (일동 웃음)

 

노태훈 : 아, 그거는 국가가 나서야 된다?

 

이경재 : 네. 그런 대목은 나서고 그다음에는 그렇게 인프라만 깔고.

 

노태훈 : 네. 소영현 선생님 마무리로 한말씀 해주시죠.

 

소영현 : 저도 개인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왔는데요, 우선 심사에 대해서는, 일단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카더라식의 심사를 실제로 목격한 적은 없고요, 그런데 이 말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건, 제도 운영자나 심사자의 책임이 없지 않겠죠? 못 믿는 상황 자체가 문제일 텐데, 실제로는 심사위원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지연이니 학연이니 그런 것으로 작품을 뽑았다고 여기길 아무도 원하지 않잖아요? 그런 상황에 놓이기를 원하지 않으니까, 아까 한소범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안 하겠다” 하는 작가나 교수들이 많아지는 거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카더라식 소문이 자꾸 부풀려지는가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를 해봐야 될 문제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냥 믿어 달라 할 수도 없고, 심사 과정을 공개한다고 해도 어떻게 공개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심사평 등을 통해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드러내든지 하는 식의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비평 등단하는 문제에 대해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점차 비평 장르는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더구나 비평이야말로 등단 루트가 뻔하고, 평론가 구성도 뻔하고……. 물론 뻔해서 문제는 아니고, 평론가들 개별적으로는 다 능력 있는 분들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문학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꽤 비슷한 거예요. 디테일하게 따지자면 내부에 큰 차이가 있겠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문학에 관해 공유하는 바도 비슷한 편이고, 그래서 작품을 보는 눈도 사실은 꽤 동질적 측면이 있고. 그러니까 평론 등단이 언론사 신춘문예를 통해서도 문예지를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는…….

 

이경재 : 지금은 국문과 대학원생으로 100%, 지금 좌담에 참여한 평론가 세 명도 다 국문과 대학원생 출신이죠.

 

소영현 : 그죠. 그렇기 때문에 등단 지면에 따른 문학 작품의 특성 차이가 크지 않은 거거든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등단 지면별로 서열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다양한 관점을 갖는 평론가가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고, 문예창작학과나 국문학과 석사나 박사 이상의 사람들로 채워지는 구조도 바뀌어서 구성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평론을 하고자 하는 지망생을 위한 프로그램 같은 것도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식적인 제도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해서 좀 다양한 문학관을 가진 비평가들이 등장하고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결과적으로 다양한 문학을 읽어낼 수 있는 시야도 폭넓게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었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일동 웃음)

 

노태훈 : 사실 비평이야말로 진짜 지면이 없죠.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예전에는 등단하면 어딘가에서 전화가 오고 리뷰를 10~20매 정도 써달라고 하면 그렇게 한 열댓 개 써요. 그러면 이제 조금 긴 글이 와요. 그러면 또 쓰고. 이렇게 밟아 가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죠. 리뷰 지면도 거의 다 사라져 버렸고요. 데뷔한다고 해서 한 사람의 비평가가 기대할 수 있는 그 이후의 그림이 전혀 없는 상황이거든요? 비평이 문학권력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비평을 없애는 방식이 대안으로 여겨지던 상황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데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거 같아요. 왜냐하면 시, 소설은 어쨌든 수백, 수천 편이 들어오는 장르인데, 《한국일보》에는 없지만 《서울신문》 같은 데는 비평 투고가 아마 30편이 최대일 거예요, 많이 지원해 봐야.

 

노태훈 : 그러니 사실 가장 축소된 문학의 영역이 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죠.

 

이경재 : 소영현 선생님이 아까 말한 국문과 대학원생이 평론가 되는 것도 옛날이야기인 거 같고, 이제는 국문과 대학원생도 외면하는 거죠.

 

소영현 : 그죠. 외면하는 거죠.

 

노태훈 : 메리트가 없어요, 그게. 별로 메리트가 없어요.

 

이경재 : 그래서 사실 지금은 진짜 평론을 누가 지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엄밀히 말하면.

 

이슬기 : 그래서 평론은 당선작 없음도 문예지들에서 몇 번 나오고.

 

노태훈 : 문예지들은 그게 되게 많고요, 특히 평론은 뭐 부지기수죠. 제가 알기로는 신춘문예는 당선작 없음을 거의 선택하지 않잖아요, 웬만하면?

 

이슬기 : 근데 저는 평론 심사 보는 선생님들께 그때 저희가 열 편 이하로 들어온 적이 있어서 굳이 그렇게 두 분의 합의가 되지 않는 작품이라면 안 뽑으셔도 된다는 말씀도 저희 회사 지침으로 드렸는데 그런데도 뽑았고 지금 활동을 잘하고 계시고.

 

노태훈 : 그런데 평론은 《조선일보》에서 한 번 안 뽑은 거밖에 없어요. 그때 5편 들어와 가지고…….

 

소영현 : 근데 선생님들이 아마 심사하러 가서 그런 마음이 있으시겠죠. 진짜 그래도.

 

이슬기 : 웬만하면 뽑으시죠.

 

소영현 : 예예. 당선자 없음이라고 하면 다음해에 응모자가 망설이게 되잖아요……. 아무튼 분명한 건 비평가가 좀 더 많아져야 새로운 문학을 읽을 수 있는 눈이 폭넓게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이경재 : 곰브리치(Sir Ernst Hans Josef Gombrich OM CBE)가 그랬잖아요. 하나의 문화가 사라지는 가장 첫 번째 모습은 비평가가 사라지는 거다.

 

노태훈 : 아까 말씀하신 대로 작품에 대한 접근성이 여러 형태로 높아진다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비평도 가능해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마니아들. 어떤 장르가 흥하려면 사실 마니아들이 생겨나고 이 사람들이 막 파고들어야 하는데, 한국 순문학은 그런 걸 할 수가 없죠. 웹소설이나 장르 쪽은 나름의 그런 게 있지만 여기는……. 예를 들면 제가 한국 순문학 오타쿠여서 문예지를 계절별로 20종을 다 사 모은다? 그건 되게 상상하기 어렵고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되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오픈된 웹 환경에서 작품들을 볼 수 있고,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말씀하신 비평의 다양성이나 이런 문제도 조금은 개선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한소범 : 그래서 뭔가 그런 생각도 했어요. 영구 공개가 어려우면 일시적으로 열어 둔다든가, 왜냐하면 제가 이제 리뷰를 할 때도 ‘그 계절에 출간된 문예지를 대상으로 하자’가 기본적인 원칙인데, 그러면 다음 문예지가 나오기 전까지, 그 계절에 발표된 것들은 그 다음 호 나오기 전까지만 공개를 해놓는다든가 리뷰를 써서 링크를 걸어 두면 거기 한 번 들어가서 보고, 댓글도 달고, 뭔가 이런 선순환의 문화가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웃음)

 

이슬기 : 근데 저희 회사가 설 추석 명절 때마다 별쇄라고 해서 이미 발표된 소설 작품 여섯 편을 별쇄 지면으로 꾸려서 읽을거리로 독자들에게 제공하거든요? 근데 그 경우에도 마다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온라인에 올라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곧 소설집에 실릴 거라 안 된다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니까 이미 소설집 계약이 되어 있는데, 한시적으로라도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분이 좀 많을 거예요. 그래서 이게 물론 어디서 먼저 물꼬가 틔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생각의 전환이 여러 가지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소범 : 근데 사실 《문장 웹진》이 잘 굴러가고 있잖아요, 어쨌든지. 《비유》도 그렇고. 작가들도 점점 열리는 방식으로 가지 않을까. 영구 공개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한시적으로 공개한다든가 그런. 어떤 고료를 지급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새롭게 계약이 되긴 해야겠죠. 그냥 지면에 들어가는 거하고 다르게 책정이 되어야 될 테니까. 그런 고민을 누군가는 해야 되지 않을까……. (웃음)

 

노태훈 : 어쨌든 제가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어 본 작가들의 경우 사실 자기 작품이 읽히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어요. 방금 내 소설집에 들어갈 소설이어서 꺼렸다는 작가분은 아마 중견작가로 생각돼요. 신인 작가가 “이건 내가 따로 계획하고 있는 게 있어서 지금 공개하면 안 돼. 구독자들한테 지금 보여주기 좀 그래” 같은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죠.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 내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독자들의 반응을 듣는 것만큼 소중한 게 없거든요. 순문학의 작가들은 단행본을 내기 전까지는 사실 무반응이 일상이잖아요. 정말 말 그대로 단 하나의 반응도 없는…… 그런 작가들이 많거든요. 그런 걸 생각하면 사실 여러 문제점이나 고민해야 할 부작용들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 공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소범 : 부작용은 100% 생길 거 같아요. 왜냐하면 웹툰도 사실은 제일 많이 들어온 비판이 인신공격 같은 댓글이 너무 많아서 웹툰 작가들의 멘탈이 매우 안 좋은 상황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의 그 고민이 또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아마 이걸 공개를 하면 그런 추후의 문제들도 엄청나게 산발적으로 터져 나올 텐데, 일단은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읽히는 것이 우선인 그런…….

 

노태훈 : 근데 한국 단편소설 한 편을 전체를 다 읽고 (웃음) 어쨌든 뭔가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웹툰에 댓글 달듯이 몇 천, 몇 만까지 간다면 저는 그건 뭐 일단 대환영…….

 

한소범 : (웃음) 웹툰 독자랑은 좀 다를 거 같아요.

 

노태훈 : 웹소설도 굉장한 독자군이 있잖아요. 댓글로 거의 작가를 위협하는 수준까지도 가는데, 그런 정도로 열광적인 독자 집단이 한국 순문학에 형성된다면……. 댓글로 작가를 죽여서는 안 되겠지만. (일동 웃음) 이제 시간이 꽤 흘렀네요. 오늘 많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단이라는 제도부터 시작해서 현재 한국 문단의 여러 논의할 지점들에 대해 두루 말씀들 해주신 것 같아요. 함께 고민하면서 또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 있는 역할들을 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폐회〉

 

 

   《문장웹진 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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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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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vertheless

    신춘문예가 오늘날에도 종이로만 응모를 받는 것에 대해서 여러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대담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낡게만 느껴졌던 그 방식이 오히려 좀 더 많은 분들이 응모할 수 있도록 열린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어요. 그런 점에서 신춘문예를 담당하는 기자 분들의 수고로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각 언론사의 문학 관련 기사를 보면 그저 편의적으로 유명한 작가나 대형 출판사의 신간에만 주목을 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아요.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보다는 여기저기서 반응이 오는 경우 그 반응을 취합해 뒤늦게 따라간다는 느낌이랄까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데 기자 분들이 좀 더 발로 뛰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2021-05-26 09:16:04
    neverth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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