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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월간 〈읽는 극장〉 4회 - ‘춤추는 시, 시 하는 춤’

  • 작성일 2021-08-11
  • 조회수 927

[리뷰]

 

 

월간 〈읽는 극장〉 4회 - ‘춤추는 시, 시 하는 춤’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월간 〈읽는 극장〉 4회 ‘춤추는 시, 시하는 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펼쳐지는‘무용’공연에 부치는 낭독회

 

 

 

    미술관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공간이었지요. 요즘 젊은 층에게 미술관은 사진 찍으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의 공간입니다. 그와 달리 춤, 무용은 추는 것도 보고 감상하는 일도 여전히 어색하고 부담스럽고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관심이 없던 사람이 콘서트나 뮤지컬, 미술전시를 가는 것보다 무용 공연을 보러가는 게 더 뜬금없이 느껴지듯요. 특히 무용공연을 감상하는 일은 일부 전공자, 전문가들이 즐기는 문화예술의 영역처럼 여겨집니다. 많은 이들이 무용에 호감이 있어도 공연을 보러가는 것은 쑥스럽거나 난감해 합니다.

 

    7월 〈읽는 극장〉에서는 무용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즐기고 있는 두 시인과 함께 했습니다. 시집과 산문집을 집필하며 5년 이상 “취미발레인”으로 살고 있는 박연준 시인과, 시인이자 미술교사이며 동시에 “무용감상자”인 배수연 시인입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의 진행과 함께 춤과 시에 대한 두 작가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우리는 무용과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를 질문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춤이든 무용 공연이든 다른 무엇이든, 무언가를 처음 접할 때 필요한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관심이지 않나 합니다. 낯선 대상에 대해 사소하고 별 거 없는 궁금증이 생길 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을 때, 그 낯선 대상은 나의 영역 안으로 쑥 들어옵니다

 

    배수연 시인은 무트댄스의 창시자이자 창작 한국무용 장르를 알려온 김영희 무용가의 공연을 보고 “온전히 그 공연에 훅 빨려들어가서 뿌리까지 젖는 경험”을 하며 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박연준 시인은 독일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나〉를 보고 말없이도 감정과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는 장르로서 무용을 알게 되며, 몸을 쓰는 일에 궁금증이 생겼고 어렴풋이 춤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박연준, 배수연 시인이 춤과 만난 경험은 굉장히 특별하고 대단한 계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춤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두 시인의 답변은 그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왼쪽부터 배수연(시인), 박연준(시인), 양경언(진행자/문학평론가)

 

    “공연 전에 로비에 있으면 그 무대에 있는 무용수 분들이 아닌, 그 무용보러 친구, 선후배, 선생님, 제자들이 많이 오잖아요. 그런 무용수 분들을 많이 볼 수가 있어요. … 그렇게 로비에 있으면 무용수 분들이 정말.. 무심하게 걸친 옷이나 샌들에서도 발등의 그 느끼지는 그런 뭔가 (웃음) 그루브가 다릅니다. … 동경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 로비에 있으면 그렇게 저에게 설레이고, 무용 끝나고 왁자하게 막 우르르 나왔을 때 그 느낌 있잖아요. 로비에서. 꽃다발도 들고, 그 열기가 저는 너무 좋아요. 저는 그래서 그 로비를 굉장히 기대하는..” (배수연)

 

    “공연 실황보다는 계속 무용수들이 연습하는 걸 더 많이 봐요, 연습실에서. … 저희는 글을 쓰는데 사실 시와 발레가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는 언제나 무대 위에 올라선 언어라고 생각을 해요. … 그러니까 저는 인생이 수련이라고 생각을 하고, 제가 왜 발레를 계속 하냐 그런 것도 어려워서 계속 재미있는 거예요. … 뭔가 되게 발산하는 거 같아 보이지만 무용수들은 응집해서 갖고 있거든요. 뻗어내는데 안에 잠기지 않으면 코어가, 뻗을 수가 없는 거죠. 무너지겠죠 그쪽으로. … 사실 시도 그렇잖아요. 몇 글자 써놓지만 그냥 겉멋이 아니라 정말 뭔가 담고 있으려면, 에너지가 있으려면, 컨트롤을 많이 해야 하고..” (박연준)

 

    두 시인이 무용에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대단한 해석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라, 온전히 두 작가의 관점과 맥락에 따라, 마음이 끌리는 대로 흘러가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무용 공연을 즐기는 이유는 작품의 한 가운데에도 공연장 바깥에도 무용수의 움직임 하나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양경언 평론가는 영상으로 미리 감상한 ‘장은정 무용단’의 〈매스?게임!Vol.2〉에 대해 두 시인과 이야기 나누며, 작품을 보는 답이 꼭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무용 〈매스?게임!Vol.2〉 공연 영상 바로가기

 

    “각자 봤을 때의 감흥이나 무용수 한 사람을 굉장히 집중해서 볼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전체적인 이 프레임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도 있고 …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음악이랄지 무대 위에서의 조명의 쓰임 이런 것도 저는 좀 인상적이었거든요. … 꼭 어려워서 겁먹기 보다는 그냥 한 번 쑥 들어가 볼 수 있는 그런 공연일 수도 있겠다..” (양경언)

 

    많은 이들이 다양한 국가를 여행하며, 음악과 함께 오른 흥에 따라 자연스럽게 춤추는 문화를 경험합니다. 우리나라는 소위 ‘흥의 민족’이라 하지만 남들 앞에서 춤을 추는 일은 오랫동안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별과 나이, 민족과 상관없이 함께 섞여 춤을 추는 문화 속에서 부끄러움과 동시에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춤이 사실은 기분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거를 너무 어릴 때부터 눌렀던 거 같아요. 자기 마음을 표현하거나 솔직하게 말하거나 이런 걸 항상 삼가라고 배우잖아요. 근데 춤은 그걸 정말 그대로 표출해야 하는 거?” (박연준)

 

    “저도 처음 발레학원 갔을 때,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 사실 그게 처음에만 부끄럽지, 동작이 어려워서 아무도 옆에 사람을 볼 시간이 없거든요. 우리 수영장 들어가면 물속에서 옆 사람 신경 안 쓰잖아요. 그거랑 똑같은데 아무튼 장벽이 있는 거 같아요.” (박연준)

 

    사실 별 거 아니라는 박연준 시인의 말처럼 춤과 무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장벽이 낮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써, 읽는 극장에 함께 하고 계신 많은 분들이 무용을 즐기는 각자의 방법과 포인트를 찾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무용도 무용공연도, 좀 더 광범위한 ‘춤’도 그렇게 조금 더 쉽게 우리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가져봅니다.

 

    대화는 춤의 장벽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 장르로서의 춤과 무용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두 명의 시인과 함께 한 만큼, 시와 춤을 함께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시를 쓰는 시인이자 무용을 감상하고 애정해온 배수연 시인은 무용과 시를 함께 다뤘던 공연 〈무용하는 시〉의 경험을 나눠주었습니다. 배수연 시인은 무용에 대한 애정을 바탕삼아 무용수와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왔고 다원예술, 공동창작의 형식을 여러 번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용수랑 작업을 하고 싶다 라는 형식이 먼저 선행을 하니까 작업물이 힘들게 나오고 또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배수연 시인의 시 「주머니 없는 외투」로 작업한 공연 〈무용하는 시〉는 김수진 무용가와 함께 한 공연으로, 이 공연을 통해 어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머니 없는 외투」를 쓰면서 ‘아 이것은 무용이 될 수 있는 어떤 시야’라고 느꼈고.. 제가 하루는 여행지에서 건넛방에 나오는 어떤 멜로디, “띠 띠디띠 띠” 뭐 이런 거였어요. 티비 소리였는데 그걸 듣자마자 이 시의 움직임이 막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여행지에서 돌아와서 김수진 무용가한테 이 시를 보여주고 이걸로 움직임이 어떻게 만들어지면 어떨까, 그래서 좋다 재밌겠다 … 이것을 하면서 느낀 게, 아 어떤 아이디어는 그것 자체가 형식을 가지고 있구나” (배수연)

 

    “제가“띠 띠 디디” 이 음악에 꽂혀서 그걸 계속 녹음을 하고 어떤 몸짓을 만들어봤어요. 주머니가 나오니까 주머니가 없는데 주머니에 자꾸 쓰다듬는 동작이라든가, 짧은 스텝들 왔다 갔다 하는, 약간 조바심 나는 그런 동작들이 생각이 났고. … 제가 평소에 입는 트렌치코트는 주머니가 깊었어요. 거기에 많은 물건들을 넣었어요. 작은 물건, 클립부터 시작해서 약 봉투부터… 그거를 무용수가 하나씩 하나씩 주저앉아서 꺼내서 긴 줄을 만들고 나중에는 트렌치 코트도 벗고 의상을 다 벗고 제가 낭독을 시작하는 고런 형식으로 만들어졌거든요.” (배수연)

 

    시 낭독과 함께 배수연 시인의 경험을 전해들으며 “띠 띠디띠 띠”하는 소리가 “손들은 어디까지 구겨져야 하나”하고 묻는 시가 되고, 그 시가 다시 “꾸질꾸질하고 찌질찌질한” 움직임이 되는 그 과정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도 무용가도 아닌 저에게 시도 춤도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 상상에서만은 즐겁게 그 과정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어 박연준 시인은 산문 「춤, 말보다 앞선 언어」의 한 구절을 낭독해주었습니다.

 

    “말보다 더 효율적이고 강한 도구는 몸이다. 몸은 말보다 적절한 언어를 더 잘 찾는다. 말은 수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몸은 웬만해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표현을 할 때 말은 실수하거나 많은 것을 빼먹고 전달하지만, 몸은 좋아하는 정도를 거의 근사치로 표현할 수 있다. 춤은 말보다 앞선 언어다.” (박연준, 「춤, 말보다 앞선 언어」, 『소란』 중)

 

왼쪽부터 배수연(시인), 박연준(시인), 양경언(진행자/문학평론가)

 

    무용과 관련한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도, 무용 공연이 영 낯설고 어색한 사람에게도 춤은 무엇인지 질문하는 글입니다. 춤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무대 위에서의 춤 말고 내 몸에서 벌어지는 모든 움직임을 박연준 시인의 글처럼 여기고 느낄 수 있다면, 춤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를 통해서 또는 무용 공연장 앞 로비나 무용수의 힘에 대해 궁금해 하며 또는 내 몸이 나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작은 용기를 가지고 응시해보며.

 

    그렇게 우리는 춤, 무용, 무용 공연, 그리고 다시 우리의 몸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6월의 읽는 극장과 함께 한 여러분들에게도 놀이터나 노래방, 미술관 만큼 무용 공연이 편해질 수 있길, 그 시작을 위한 한 걸음을 읽는 극장과 함께 내딛을 수 있길 바래봅니다.

 

 

 

 

월간 읽는 극장 7월편 보기

 




월간 읽는극장 7월편 “작정하고‘추락’”


 

    글쓴이 : 김현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코로나와 기후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대화와 토론, 수다와 위로가 오가는 우리의 시간과 장소들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함께 춤추기를 좋아합니다.

 

 

 

월간 읽는 극장 아카이브

 

▶ 6월 읽는 극장에서 이야기 나눈 공연

 
무용 〈매스?게임!Vol.2〉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7.03-04)

 

 

 

 

 

 

 

 

박연준, 산문집 『소란』 난다

박연준, 시집 『베누스 푸디카』 창비

배수연, 시집『조이와의 키스』민음사

▶ 6월 〈읽는 극장〉에서 낭독된 문학 작품

 

 

 

 

 

   《문장웹진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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