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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월간 〈읽는 극장〉 6회 – 기억전쟁

  • 작성일 2021-10-08
  • 조회수 941

[리뷰]

 

 

월간 〈읽는 극장〉 6회, 〈기억전쟁〉 리뷰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월간 읽는 극장 6회, “기억전쟁’”
연극〈별들의 전쟁〉에 대해 나누는 연출가와 번역가의 문학 낭독회

 

 

 


    누군가 베트남전쟁에 관해 한국이 공유하는 기억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저는 ‘애국 참전용사’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모자, 뱃지, 노래부터 기념비까지. 그러나 역사의 저편에서 어떤 이들은 한국의 참전 군인을 두고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라 말합니다. ‘왜 그랬냐’고, ‘제대로 사과하라’고 말합니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의 증언을 들은 우리는, 한국의 가해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오랜 역사에서 우리는 항상 피해의 민족이었기에 더더욱 사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상규명을 통해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의 결과가 내가 속한 이 나라의 ‘국가자격상실’이라면, 국가적 책임을 지는 일이 일개 국민인 나의 생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면. 여전히 우리는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고, ‘가해의 책임이 있는 피고 대한민국은 유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8월의 월간 <읽는 극장>의 주제는 ‘기억전쟁’입니다. 극단 신세계의 김수정 연출가와 소설 쓰는 최은영 작가가 극단 신세계의 연극 <별들의 전쟁>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극단 신세계의 연극 <별들의 전쟁>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루며, 우리의 ‘피해자성을 내포한 가해자성’을 직접 대면하기를 요청합니다. 연극은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재판’을 다루는 형식으로, 원고 자리에는 베트남전쟁 당시 가족들을 잃고 살아남은 여성 ‘응우옌티쭝’이, 피고의 자리에는 대한민국이 불려왔습니다. 연극은 실제 재판의 과정으로 진행되며 관객들은 제3자의 구경꾼이 아닌 배심원의 자격으로 연극에 함께 했습니다.


    김수정 연출가와 최은영 작가, 그리고 양경언 문학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별들의 전쟁>이 던지는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다시 전쟁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 위치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역사를 불편하게 말해야 한다.’

 


    “저는 학교에서 계속 한국인은 절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고 가해국가가 아니라는 거를 배웠고 그게 저한테는 자부심 같은 것이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었고, ‘사실 어른들이 거짓말하고 있었다니?’ … 민간인 학살이라는 것(에) … 제가 그 잔학성에 되게 충격을 받았던 거 같아요.”

 


    “베트남전쟁을 통해서 한국이 굉장히 경제적으로 이득을 많이 취했고 그래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고 그런 토대가 되었다는 것을 (통해서) 이 전쟁에 참전(한 것에) 대한 어떤 당위성을 계속 부여하는 것 같았어요. 근데 언제든지 다시 전쟁에 참여하면서 이런 식의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돈 때문이다’, ‘경제 때문이다’.” (최은영)

 


    최은영 작가는 처음 베트남전쟁에 대해 알게 된 순간을 떠올리며, ‘피해국으로서의 한국’이라는 자부심과 믿음이 깨지는 경험이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베트남전쟁을 애국 봉사의 참전으로, 경제발전의 계기로 기억해왔고 그렇게 전쟁의 원래 모습을 잊어버렸습니다. 전쟁은 지면 새로운 판을 열면 되는 게임이 아니라, 절대 돌이킬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폭력이라는 진실 말입니다.

    이에 대답하듯, 김수정 연출가는 <별들의 전쟁>을 포함해 극단 신세계가 계속 해서 고통스럽고 힘든 작품들을 만들어오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불편함을 직접 마주하기 위함이라 말했습니다.

 


    “제가 이 작품뿐만 아니라 쭉 계속 그런 식의 작품들을 하고 있는 이유는 ‘진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허구로 아름답게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불편해서 외면한 것들을 직접 마주해야지만, 아까 작가님이 얘기해 주신 대로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동의하거든요. <별들의 전쟁>은 '진짜 전쟁 이야기’를 해보려고 되게 노력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김수정)

 


왼쪽부터 최은영(소설가), 김수정(연출가), 양경언(진행자/문학평론가)

 


    지금까지 우리가 외면하며 아름답게만 그려왔던 그 전쟁 이야기의 출처는 우리의 국가, 연극 <별들의 전쟁>에서 피고의 자리에 불려온 대한민국입니다. 당시의 참전 군인에게도 결코 뿌듯하기만 할 수 없었을 ‘전쟁’을 국가 내부의 단합을 위한 기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미화된 베트남전쟁과 애국 참전용사의 신화는 아직까지도 유효합니다.

 


    “제가 이 공연을 보러 들어가는 길에 어떤 유인물을 받았는데, 참전군인 단체인 거 같은데 “베트남전쟁에서는 단 한 명의 민간인도 학살하지 않았다” …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역사를 왜곡해서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잘못한 일을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로 생각을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니까 좀 씁쓸하더라고요.” (최은영)

 


    <별들의 전쟁>이 상연되는 극장 앞에서 뿌려진, 참전군인단체의 민간인 학살 자체를 부정하는 유인물은 한국의 현 위치를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한국에서의 갈등은 ‘민간인 학살’을 진실로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벌어져 사과와 배상까지도 가기 어려웠고, 적어도 국가적 역사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국가가 진상 규명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는 베트남 정부에게 사과의 말을 건넨 적이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하며, 국가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2018년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들은 한국에서 진상규명과 사과를 위한 시민평화재판을 열었고, 바로 작년인 2020년에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첫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법원은 증거를 가져와 입증하라고 하지만, 전쟁 당시에 대한 연구와 자료는 2000년도에 뚝 끊겨있습니다. 아무리 시민사회와 연구자들이 노력해도 각 정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아닌 국가를 향한 말 뿐인 사과가 아니라, 양경언 평론가의 말처럼 ‘진심 어린 사과라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묻게 됩니다.

 


    김수정 연출가는 ‘사과’를 구체적으로 사유하며 ‘내가 나를 가해자의 자리에 둘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내가 나를 가해자의 자리에 둔다는 것은, 가해자로서 져야 할 책임까지 당연히 생각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연극 <별들의 전쟁>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을 지나간 역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에게 연결지어, 문제를 지금 여기로 가져오고자 했습니다.

 


    “유죄/무죄는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있고 형량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게 제 3자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로 다가올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 국가 자격을 상실하게 되면 그 국가의 국민인 나로 연결이 되잖아요. ‘잠깐만, 내 나라가 없어진다고? 내가 왜?’ 여기까지를 접근시켜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김수정)

 


    배심원 자격으로 연극에 참여해 피고 대한민국의 유무죄를 결정한 관객들은 연극의 결론에만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양경언 평론가의 통찰처럼 “사회구성원으로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지금 사회가 다른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는 진지하고 무거운 비유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연극 <별들의 전쟁> (극단 신세계제공)

 


    연극 <별들의 전쟁>은 포장되고 편집된 기억을, 다시 사실을 밝히는 데에서부터 출발해 2021년 지금의 한국 사회로서 역사를 대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겨주었습니다. 이는 전쟁의 역사 자체가 불충분하게, 잘못 쓰였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역사를 쓸 것인가’에 대해 최은영 작가는 소설 『밝은 밤』으로 대답합니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밝은 밤』은 “증조할머니부터 나까지 이어지는 4대의 걸친 모녀들의 이야기”로, 어마어마한 시간의 두께에서 있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여성의 입으로 말하는 작품입니다. 최은영 작가가 <읽는 극장>에서 작품의 일부를 골라 낭독해주었습니다.

 


    “… 할머니는 한 사람에게 총을 여러 번씩 쏘는 장면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됐으므로, 감정 없는 사람을 연기하며 나무처럼 서 있었다. 더운 날이었지만 식은땀이 흐르고 추웠다. 차라리 빨리 끝나기를, 한 번에 죽기를, 한순간에 끝나기를 바라면서 할머니는 손바닥에 피가 날 때까지 손톱으로 찔러댔다. 그렇게라도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모두 열 명이 총살되는 것을 끝까지 보고 나서야 운동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증조모는 앞만 보면서 걸었다. 감정적인 동요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열두 살 할머니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려 애썼다. 증조모는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은 뒤에도 그저 정신 차려야 한다,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죽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때 죽은 사람이 그 열 명만은 아니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 증조모, 증조부, 할머니는 죽음으로 서로 헤어질 때까지 그날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셋 다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부서졌다. … 증조모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약이 없이는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사람을 쉽게 의심했고, 자신이 언제든지 아무렇게나 처리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 마음을 누구도 고쳐주지 못했다.” (최은영, 『밝은 밤』 중에서)

 


    여성과 어린이, 약자들이 겪은 전쟁은 총을 잡은 구국열사의 역사가 아닙니다. 총 뒤에서 총 너머에서 숨죽이며 안에서부터 무너져 가는 시간을 서로에게 기대고 버티며 살아온 역사였을 것이라고, 『밝은 밤』은 이야기합니다. 다른 위치에서 경험한 전쟁을 듣고자 한다면 역사는 완전히 다르게 쓰일 것입니다.

 


    여전히 다시 쓰여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도 역사는 펜을 쥔, 힘과 돈을 가진 이들에 의해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또한 지금 우리 곁에 여전히 있습니다.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등 우리와 연결된 세계 각국의 땅 위에서 끔찍한 폭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전쟁 앞에 ‘무엇이 국가인가’ 나아가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질문하며 나를 이곳에 불편하고 힘겹게 연루시켜야, 비로소 전쟁을, 역사를 다시 쓰고 새로이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역사는 생명을 앗아간 폭력 위에 세워진 빌딩 같은 모습이 아니길 바랍니다. 이미 우리의 삶이 그런 빌딩들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빌딩 위에 사는 이가 아니라 빌딩 아래 깔린 이들의 위치에서 역사를 써가길 바라봅니다.

 

 

 

 

월간 읽는 극장 9월편 보기

 


월간 읽는 극장 9월 편 “움직임, 움직임, 움직임”


 

 

    글쓴이 : 김현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급박한 전환을 안팎으로 요구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기후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동료들과 발견한 가능성은 선명한 상상을 남기고 강력한 힘을 줍니다. 그런 대화와 토론, 수다와 위로가 오가는 우리의 시간과 장소들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여성과 퀴어, 소수자에 관심을 갖고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함께 춤추기를 좋아합니다.

 

 

 

월간 읽는 극장 아카이브

 

▶ 8월 읽는 극장에서 이야기 나눈 공연


연극 <별들의 전쟁>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8.21~29)

 

 

 

 

 

▶ 8월 〈읽는 극장〉에서 낭독된 문학 작품

최은영,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최은영, 『밝은 밤』, 문학동네

이길보라, 곽소진, 서새롬, 조소나
『기억의 전쟁』, 북하우스

 

 

 

 

 

 

   《문장웹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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