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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애란을 만나다

  • 작성일 2009-10-22
  • 조회수 1,691

 

 

“가볍게 농담하며 똑바로 바라보기”

 


- 소설가 애란, 글틴과 만나다 -

: 2009.08.15 오후

장소: 서울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3

 


청소년문학관 글틴은  매년 여름이면 '글틴 여름방학 문학교실'을 열어,  문학과 글쓰기에 관심있는 전국 각지 문학소년소녀들이 기성작가들을 직접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얼마전 열렸던 2009년 여름 문학교실 초대작가는 젊은 여성작가 '김애란'. 이에 글틴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던 청소년들을 위해  아래 지면을 통해 행사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날 행사는 여러 글틴 졸업생들이 힘을 보탰고 작가소개 동영상 공개(제작- 레몬섬), 포토드라마 (제작- 민유하), 애독자 작품 낭독, 작가 특강 및 질의응답(사회-연화도령), 사인회, 기념촬영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또한 아래 내용은 지면 관계상  축약본임을 알려둔다 (편집자주)

 

 

 

  사랑의 인사를 보냅니다, 김애란입니다

 
 


오늘 강연을 하면서…… 여성 팬들이 되게 많은 편이에요, 제가. 그래서 좀 속상한데요.(웃음)아까 들어올 때 저기 양 선생님이 ‘이번에도 여자가 많다’ 그래서 되게 씁쓸하게 ‘네, 늘 이런 식이죠’ 라고 대답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웃음)

(중략)

이렇게 또 여러분들을 뵈니까 분수에 안 맞는 환대를 받아서 기쁘기도 하고 역시 ‘완전 소중 애독자!’ 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청소년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지금 얼핏 쭉 뵈면 다 평균연령 한 25세 이상씩은 되 보이는데, 제가 지금 강연 내용 수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웃음) 제가 좀 마음이 여리고 천박한 편이라서……수위 조절이 난처하긴 한데, 우선은 여러분들께 한 손을 높이 들어 사랑의 인사를 보냅니다.

(중략)

 


개인적 기원이자 문학의 기원  

저는 지금까지 두 권의 책을 냈는데요, 잘 아시는 것처럼 한 권은 아버지에 관한 내용이 많고 다른 한 권은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데뷔 이후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하나도 ‘아버지가 어떤 분이냐’ ‘아버지가 안 계신 게 아니냐’ 이런 거였어요. 최근엔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에 큰 맘 먹고 산문도 하나 썼는데. 데뷔 이후 얘기를 하기 이전에 그때 쓴 산문 속 제 기원에 대한, 부모님 연애 얘기를 잠깐 해드릴게요
(중략 


저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는데요. 읍 소재지로 나중에 승격되긴 했지만 무슨 읍 무슨 면 무슨 리로 시작되는 동네에서 열아홉 살 때까지 자랐어요. 고등학교는 읍내로 버스 타고 나갔지만 일곱 살 때쯤 집 앞에 도로가 깔린 걸 처음 본 기억이 나요. 저희 부모님 고향도 그 쪽인데, 저희 아버지는 성함이 김자 정자 래자 해서 김정래씨신데요, ‘칼자국’에도 ‘그래요’를 ‘그래유’, ‘그류’ 라고 부르는 게 나오듯이 저희 동네에선 아버지를 친구분들이 정래를 정래라고 안 하고 증래라고 해요. 그래서 매년 명절 때면 큰집 마루에 래자 돌림으로 끝나는 저희 쪽 일가. 을래, 필래 민래 청래 뭐 이런 영장류가 모여서 조상들께 절하는 걸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전 의성 김씬데요, 마루 한 쪽에서는 또 그 김씨 부인들이 모여서 의성 김씨 흉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 우리 엄마 목소리가 제일 크고요. (웃음) 아버지는 53년 생이신데 두 분이 처음 만난 건 77년도라고 해요. 그때도 아주 깡촌이라 시골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만났는데, 그 구멍가게에서 음료수 시켜 놓고 주선자 두 명이랑 당사자 두 명, 네 명이 음료수 시켜 놓고 ‘뽕을 쳤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엄마한테 ‘엄마, 뽕이 뭐야?’라고 했더니 화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서 ‘아니, 그럼 아버지 만나자마자 초면에 같이 화투를 쳤다는 거냐’ 그랬더니 그때 무슨 원카드 비슷하게 화투 일곱 장 갖고 내기하는 게임이었는데 시골이라 극장도 없고 카페도 없고 그래서 카드로 먹을 거 내기 했다고 ‘뽕친’ 얘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중략) 그래도 사람이 진솔해 보여서 계속 만나셨대요. 그러다가 이제 주로 외진 바닷가 해안가에서 만나고 데이트하고 그랬는데 아버지가 육 개월 되는 동안 한 번도 손을 안 잡기에 엄마가 ‘이 사람은 아주 숙맥이 아니면 선수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용기를 내서, 만취가 돼서 해안가까지 걸어오신 다음에 엄마 손을 처음으로 꽉 잡고 그러셨대요. 저희 엄마가 조씬데요, ‘조양, 인간을 그렇게 오래 저울질 하는 게 아니유. 김정래란 사람 한번 믿어 보시유.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유.’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래요. 그래서 그 말씀 하자마자 또 술을 많이 드셔서 토를 하기 시작하셨는데 엄마는 또 그걸 보고 안쓰러워서 ‘아유, 내가 뭐 잘났다고 이렇게 한 남자를 가슴 아프게 하나. 이 정도만 사랑해줘도 그거 바라보면서 살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허락하셨다 그래요. 그래서 그 얘기를 가만 듣다가…… 최근에 들은 얘긴데요, ‘그래서?’ 라고 여쭸더니 ‘그 때는 니네 아버지 안 됐단 생각만 했지, 지금도 이렇게 술을 마셔대면 나중엔 더 얼마나 처먹을까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엄마가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웃음)

(중략)

 



소설 쓰는 나, 김애란

 


순서가 필명 ‘림샘’님이 질문한 게 제일 먼저일 것 같은데, ‘언제부터 글을 썼고 학창 시절 글쓰기 실력이 어땠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초등학교 때는 제가 이제 오분……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는데요, 제 쌍둥이가 훨씬 글을 잘 썼습니다. 대회 나가면 그 친구가 최우수상을 타면 제가 입선을 하고 이랬었는데요, 오히려 진짜 재미를 안 거는 대학에 온 이후였던 것 같고요. (중략)

노랑이님 질문인…… 극작과 준비랑 입시 때 준비랑 궁금해 하시는 게 연결이 될 것 같아요. 또 ‘글을 쓰면서 여자라서 힘든 적은 없으셨나요?’ 라고 적어 주셨네요. 커트 보네커트가 그런 말을 했는데요,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용기가 없다면 예술을 해라, 라고요. (웃음)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고요. 대신 저희…… 시골 부모님이라, 제가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는데, 그래서 학교 시험을 몰래 봤어요. 도둑시험을 봤는데 그때 무슨 전국 에너지 절약 공몬가, 뭐 이런…… 그때 썼던 글은 다 그런 종류였던 것 같고. 거기서 다행히 수상을 해서 그때 조그마한 워크맨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건 제가 생전 처음 가져본 워크맨이었어요. 3 때였는데 MP3는 없었고, 주로 CDP가 대중화됐을 땐데요, 그걸 받고 되게 좋아하다가 원서비를 마련해야 되는데 비싸잖아요. 서울도 와야 되고 차비도 있어야 되고 그런데. 그래서 워크맨을 팔겠다고 여고 화장실에, 유리에 붙여 놨었어요. 마침 사겠다는 친구가 있어서 반값에 팔고, 또 마침 외삼촌이 그 때 팬시가게 점포정리를 하는데 그거 도와드리면서 난생처음 ‘삥’을 쳐봤던 기억도 나요. 그게 2, 3만원 정도였는데 굉장히 긴장한 채 그 돈을 꼬불쳐서, 어떻게 모아서 서울에 와서 시험을 봤고요. 그래서 ‘종이물고기’에 보면 ‘절실함은 언제나 내게 이상한 수치를 주었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게 제가 뭔가 간절히 바랐을 때, 어디에 꼭 가고 싶다거나 뭔가 되고 싶다거나, 그 십대 때 느낌을 생각하면서 썼던 문장이에요. (중략) 한편으로 집에서는 제가 딸이고 막내라서 허락을 해 주신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요새 아들들 인문학 안 시키려고 그러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여자라서 덕 본 게 있는 것도 같고, 이야기를 하고 수다를 떠는 일에 대해서 억압을 덜 받을 수 있었던 것, 점잖지 않아 보인다거나 말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거는 여자라서 좀 덜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이문, 서울 별 거 없네!

아이디 ‘서리’님이 상경했던 여자들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제 경험이 맞냐, 는 질문을 하셨는데요. (중략)

제가 처음 와 본 어떤 서울 공간은 외대 청량리역 지나서 있는 신이문역이었어요. 거기 학교가 있어서 바싹 긴장한 채 그 역에 탁 내려서 동네를 보는데, 저희 학교가 안기부 건물을 다시 리모델링 한 거라서 건축법상 그 건물보다 높은 걸 못 짓게 돼 있었어요. 그래서 꽤 낙후된 모습인데, 전 그런 것도 모르고 힐끗 본 다음에 ‘서울 별 거 없네’ 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물론 서울의 크기가 그 동네의 몇 십 배에 달한다는 건 나중에 깨달았고요. 그런 다음에 어머니랑 방을 구하러 다니던 날씨가 생각나는데 한여름이었고 땡볕 아래에서…… 엄마들은 신기한 게 무슨, 예수가 보리떡 몇 개를 몇 십 개로 늘린 것처럼 항상 돈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위기의 순간마다 목돈을 내놓으시잖아요. 그래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대학에 갓 입학할 때가 사실 집이 형편이 가장 안 좋았던 때인데, 그때도 엄마가 돈이 없다고 했지만 저는 믿지 않았었거든요. 근데 엄마는 정말 돈이 없었던 거에요. 전 좀 제대로 된 방을 구해서 애들이랑 놀고도 싶고 이런데 엄마는 계속 시원찮은 방들만 보자고 하고, 그래서 제가 나중에는 속이 상해서 길거리에서 소가지를 부리면서 입을 내민 채 서 있었어요. 철이 없었죠. 저는 시골에서 엄마가 엄청 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엄마는 비지땀을 흘리면서, 얼굴에 파운데이션이 진흙처럼 녹아내릴 것 같은 얼굴로,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그게 이상하게 유독 못생겨 보였었어요. 엄마가 못생겨 보인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괜히 싫어졌고요. 다행히 어떤 방을 구해서 계약을 하고 엄마랑 머리를 맞대고 신라명과에서 팥빙수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서걱이던 얼음 소리 같은 것도 기억이 나고요. 그래서 자취를 하게 됐고요, 자취 하면서 스스로 한 달에 ‘나는 얼마가 드는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도 처음으로 하게 됐고요. (중략)
*위 사진 왼쪽은 첫 작품집 '달려라 아비'

당시 아주 작은 자취방에 살았고요, 본체가 아주 커다란 컴퓨터를 썼었고 나중에 노트북이 생기고 엄청 기뻐했는데 어머니가 제 생명보험을 깨서 사준 거셨어요. 어찌나 부담이 되던지 글 쓰면서 ‘목숨 값 해야 된다’ 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웃음) 이제 보혐료는 제가 부어 나가고 있습니다만. 그때 생각이 자주 납니다 


진심으로 또래에게 반하기 

 필명 ‘피라’님 질문으로 이어서 가 보면 ‘극작의 어떤 부분이 소설 쓸 때 도움이 됐나요?’ 라는 거랑 ‘노량진이랑 신림동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겪은 부분이 있는지’ 라고 물어보셨어요. 실제로 극작과 가서 4년간 연극중심 교육을 받았고요. (중략) 복도에서 배우, 연기 공부하는 친구들이 막 대사 외우는 소리 들리면 너무 사실적으로 느껴지니까 ‘저 친구들은 뭔가 끊임없이 만들고 있구나’ 라는 질투가 드는 것도 좋았고요, 보통 예술 하는 학생들 하면은 왜 겉멋도 든 것 같고 허영심도 많은 것 같고 사치부리는 거 같다, 란 편견이 많을 것 같은데 오히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성숙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수련하는 모습들을 보며 되려 어른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또래에 대한 존경심도요. 그래서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오히려 선생님이나 대가를 존경하긴 쉬워도 또래한테 감동받는 게, 그리고 또래 작품을 보고 진심으로 반할 수 있는 게 복되고 자극이 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좋은 영화를 보든 음악을 보든 연극을 보든 할 때, 미적인 것이 주는 아주 정갈하고 썩 괜찮은 기분이 있잖아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런 걸 단 한 번이라도 느꼈던 분들이기 때문에 글을 쓰시는 분들 같거든요. 그럴 때는 막상 내가 그 사람 혹은 그 사람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도, 처음에는 그 작품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가 나중에는 그걸 만든 사람에 대한 존경이 생기지만, 결국은 그 작품을 존경할 수 있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 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략 

            


아름답고 가벼운 농담

 


이번에는 필명 ‘시바르봉쉐’ 님 의 질문인데요, 저 이 분 아이디 보고 좀 당황했는데요( 웃음), 어머니와 여주인공이 많이 등장하는데 ‘관계’에 대해서 물어보시더라고요.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집 구할 때도 그렇고, 칼자국은 특히 엄마 얘기, 사모곡인데요, 우리 엄마 ‘쵝오’ 뭐 이렇게 쓴 소설이라기보다는 사실, 엄마가 어느 순간 못생겨 보일 때, 나이 들면 그럴 때 있지 않나요? 자기 엄마가 못생겨 보일 때, 그때 쓴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때의 연민이나 사랑의 마음으로 쓴 건데요, 소설은 참 경제적인 예술이죠. 이 빈손으로, 열 손가락으로 부모에게 해줄 수 있는 제일 좋은 선물이 뭘까, 라고 생각하다가 칼자국을 썼던 거고요. 제가 인터뷰에서 자주 말했지만 어머니가 저에게 준 문학적 유산은 농담할 줄 아는 능력인 것 같아요. (중략) 현실과 하늘 사이, 혹은 농담이나 재치 사이에 균형감각을 잡아주는 게, 단지 웃기고 재미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사이에 '균형'을 만들어 주는 게 농담의 미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략)

 


빤히, 오래, 똑바로

 


마지막 질문이네요. 아니군요. 필명 ‘진카피’씨가……아니 하나 더…… 아니네요, 질문이 계속 있네요. 필명 ‘트윈클’씨가 질문을 많이 올려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만 뽑았었어요. ‘글의 독창성에 있어서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만큼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라고 했는데, 제 생각에는, 젊은 작품은 실험적일 수 있지만, 소재나 형식이 실험적이라해서, 실험적인 것 자체가, 전위 자체가 그 작품을 젊게 해준다고…… 그 도치되는 상황을 보장해 주는 것 같지는 않아요. (중략) 어떤 작품을 젊게 만들어 주는 건 독창성이나 소재의 참신함이 아니라... 시대도 그 작가의 나이도 아닌 작가의 통찰과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가장 오래된 작품일수록 가장 젊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새롭게 쓰겠어, 하곤 ‘난 젊으니까, 깜짝 놀래켜주겠어’ 혹은 ‘아무도 상상하지 않은 얘기를 쓰겠어’ 라는 각오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일부러 비스듬하게 보는 것 보단 빤히 오래 바라보자, 똑바로 바라보자. 그랬을 때 새로움도 선물처럼 우연히 ‘짠!‘ 손바닥 위에 올려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요. 이건 참 어느 좌담에서도 한 얘기라 다시 하기 쑥스럽지만 제가 하고도 마음에 드는 이야기라 이렇게 또 써먹게 되네요.

필명 ‘진카피’님이 맛있는 문장 얘기를 하셨는데요. (중략) 글쓰기는 항상 선택의 과정인 것 같아요. 내가 고르는 단어, 단어의 색깔, 온도, 장면의 크기, 리듬, 이런 걸 작가가 혼자서 고독하게 그때그때 선택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경제적이어야 되고, 경제적인 동시에 아름다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건 미문보다, 평범한 문장과 평범한 문장 사이의 긴장들로 이루어지는 문장을 좋아하고요. 예를 들면 이런 게 있겠죠,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그냥 담담하게,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한다거나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방식이요. 그래도 여전히 꾸미고 싶어 하는 충동이 있고 옛날에 ‘프란체스카’에서 ‘솜씨 좀 부려봤어’하는 말처럼 멋 부리고 싶어 하는 욕심은 늘 있거든요. 그래도 좀 조절을 하려고, 삼겹살에도 비계가 너무 많으면 느끼해서 못 먹잖아요. 그래서 좀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중략)


충분히 즐기세요

 


, 진짜 마지막 질문이네요. 필명 ‘희재’씨가 ‘글 쓰다 보면 중간에 턱 막혀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끝까지 쓰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라고 얘기하셨어요. 저는 글이 막 안 써질 때 꿈을 꾼 적도 있고요. (중략)  또 오르한 파묵한테 문자메시지를 꿈에서 받은 적이 있는데 자기가 중요한 특강을 한다고 당신이 꼭 와 줬으면 좋겠다, 라고 해서 꿈에서 기뻐하다가 ‘어, 근데 오르한 파묵이 한글을 어떻게 알지?’ 갸웃거리면서 ‘아, 이건 파묵이 아니라 행사를 주관하는 쪽의 알바가 보낸 거구나.’ 라고 생각했었어요. 초대가 아니라 동원이구나 하고요. (웃음)

(중략)

여러분들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요. 안 써질 때는 ‘아, 나 진지하구나.'라고 맘 잡으면 좋을 듯해요. 연애도 마찬가지잖아요. 우리는 진지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 특별히 고민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어, 나 글 쓰는 거 좋아하나 보네, 혹은 나 진심인가 보네 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고요. 또 ‘내가 안 된다는 건 된 적이 있다’라는 거다, 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의 불화가 나의 긍지다라고요.

(중략 


자박자박 무심하게

 


마지막 인사를 할까요. 여기 오기 전에, 여러분들한테 어떤 도움이 될까 해서 작법책들을 집에 있는 걸 다 찾아봤어요. 서재에 열권이 넘더라고요. 그리고 아마 세계에는 수천 가지 종류의 글쓰기 전략 책들이 나와 있을 거예요. (중략) 읽고 나서 ‘어, 그러면 이 많은 작법책 중에 글쓰기에 대해서 나에게 가장 많이 알려준 글은 뭐였을까?’ 라고 가만히 궁리해 보니까요, 저한테 글쓰기에 대해 가장 많이 알려준 글은 제가 쓴 글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미술을 하든 음악을 하든 당신이 만들었던. 그래서 한편으론 작법책을 처음부터 읽는 거에 반대하는 이유도, 읽을 때는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몸으로 겪었던 사람들은 딱 읽으면 그걸 몸으로 이해하게 되거든요. 아마 여러분도 생각해 보면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킨 글은 뭐지, 혹은 나한테 글쓰기에 대해 가장 많이 가르쳐 준 글은 뭐지, 하면 여러분들이 쓰신 글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자박자박, 무심하게 나아가시고요. 마지막으로 그렇게 인사를 할게요.

(중략)

제가 여러분들 질문 정리해서 드릴 수 있는 말씀 정도고요. 여러분들 뵙게 돼서 다시 한 번 기쁘고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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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일답>


                      "얼굴을 마주하고. 질문하고. 대답 듣기"

 



, 아까 어떤 청소년 분이 ‘학창 시절에 어느 정도 글을 쓰셨냐’ 는 걸 말씀하셨는데 그거에 대한 얘기는 살짝 하고 지나가신 것 같아서. 그리고 저흰 대학생이니까 이런저런 공모전 같은 데 내면 ‘아, 연락 또 안 왔어’ 이러잖아요. 그런데 한 번에 되셨다는 얘기를 듣고 질투도 나고 ‘원래 작가는 다 그런 거’ 이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그 전에 그럼 공모전 같은 걸 안 하셨었으면, 그리고 극작과셨으니까 자기 위치를 어떻게 가늠하셨는지도 궁금하고 어느 정도의 수준, 이라고 말하기는 뭐한데…… 어떻게 쓰셨는지 되게 궁금하거든요

 

= , 제가 처음에 영상물 틀 때 놀란 게 그 청소년…… 문학사상사에서 하는 청소년 문학상 프로필이 들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왜냐면 그건 제가 정말 숨기고 싶은 과거고, 거기서 단편소설 입선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책이 시중에 아직 잘 찾아보면 있는데 제가 다 수거해서 찢어버리고 싶은데요. 여고 때라, 그 때 그게 서산에서 유행이었는데 제가 깻잎머리에 커다란 핀을 옆으로 꽂고 있고, 시건방진 표정으로 프로필 사진이 나온 게 있고. 또 소설 내용도 말도 안 되는 거였어요. 북한 청년이 남한 시집을 우연히 읽고 남한을 그리는 시베리아 벌목공 얘기였는데, 그 땐 별 정치의식도 없었는데 지금 읽으면 어용문학 같고 이상해요. 아까 영상물에서 보고 깜짝 놀랐고 평론하시는 신형철 선생님도 우연히 그걸 봤다 그러시더라고요. 얼마나 쑥스럽던지. 언젠가 제가 모든 증인들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을 소설에 썼던 바가 있는데. (웃음) 그 때까지는 말 그대로 상 받는 게 좋아서 나갔었지만 전국대회 규모의 수상은 해본 적이 없던 것 같아요. 그래도 청소년 때 자만했던 건 ‘아, 그래도 내가 충남까진 무사히 뚫을 수 있어’ 뭐 이런 생각은 했는데(웃음) 저희 때는 문학 특기자 입학 전형도 막 생기기 시작했을 때라 그런 것도 감이 잘 없었고요, 학교 들어와서는……  대학도 아마 중간 정도 순위로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퍽 막연하게 생각하고 누가 시가 좋다 그러면 시에 재능이 있나, 있다가 금세 의기소침해 지고. 그리고 그 때 읽었던 글들을 보면, 실제로 좀 시원찮아요. 그런데 예술 할 때, 특히 창작은 계단형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일직선상으로 쭉 가다가 점프하고, 일진선상으로 쭉 가다가 점프한다 그러더라고요. 그런 비약의 순간이 여러분들에게 있을 거라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냥 막연하게 글을 쓰면서 살 수 있을 거라는 자기 암시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도 수업 시간에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거는 좀 곤혹스러웠어요. 문창과나 글 쓰는 과에 오면 청소년 시기에 한 두 번씩 다 상을 타거나 인상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경험이 있는 학생들인 경우가 많은데, 한 선배는 그렇게 조언하더라고요. 그 사실을 다 잊어버리고 시작하라고. 대학 때 들은 기억이 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문창과 다니고 있는 학생인데요. 제가 질문을 좀 많이 올렸었어요. 정말 궁금했던 질문이 있는데 언급을 안 해 주셔서 한 번 더 질문을 드릴게요. 글 쓰시다 보면 정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아니면 표현하고자 하는 표현방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좀 외설적이거나 아니면 좀 엉뚱하거나…… 어떤 생각들 때문에 사람들 시선이 신경이 쓰여서 안 쓰신 적이 있는지 여쭤보려고요.

= . 질문이 기억이 납니다. 아마 제가 쓴 소설 중에 가장 야한 거는 ‘성탄특선’인 거 같고요. 남들이 좀 오해를 하시는데 분명히 취재해서 쓴 거고요. (웃음)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는 방식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가려내고 근사하게만 보여주려고 하면 공감을 못 얻는 듯해요. 보통 사람들이 소개팅 하거나 미팅을 할 때도, 상대방이 실수를 했을 때 훨씬 더 친근감을 느낀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일단 내가 부끄러워지거나 내가 좀 창피해지지 않으면 독자와 절대 가까워지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에 되도록 그냥 담담하고 솔직하게 쓰려고 하는 편이고요. 그럴 때 아, 당신도 그렇군요, 나도 그래요 라고 이렇게 마음이 짝 붙는 소리가 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저는 필명 ‘에스키모’ 라고 하고요. 최근에 읽었던 단편이 ‘큐티클’ 이라는 단편이었는데 거기서의 화자와 작가님과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는지 궁금해요.  편리한 것도 있고 좀 좋아진 것도 있고 그것을 누리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 저는 ‘침이 고인다’ 이후로 지금까지 발표한 단편이 네 개고요. 그 중에 하나를 말씀하신 것 같아요. 주로, 아까도 나왔지만 청년 백수나 학생들, 취업생들 많이 썼다가, 이제 두 번째 책 나온 이후로 제 인물들도 저랑 같이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써야겠다’ 라고 생각했고, 또 이제 슬슬 졸업하고 나니까 친구들 결혼식이나 이런 데도 많이 가게 되고, 화제도 달라지고 이러다 보니까 그런 얘기를 쓰면 좋겠다 싶었고요. 물론 지금도 예쁜 물건, 소품 좋아하는데, 대신에 거기서 오는 공허함이나 쓸쓸함이 분명 있으니까, 대신 뭐 ’자본주의 나빠‘ 하면 너무 소설이 평면적이고 재미없어 버리니까 ’이건 나쁜 거야‘ 하고 바로 얘기하는 것 보다 거기에 우리가 얼마나 매혹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고, 어쩔 줄 몰라 하고, 그 뒤에 오는 공허함이 큰지. 그런 식으로 매혹의 지점을 먼저 얘기하는 게 오히려 좋은 전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사치의 끝이랄까요, 그게 신체 부위 중 마지막이 손톱이겠다 싶었어요. 저는 공간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데 큐티클은 제가 쓴 것 중에 일 제곱센티미터도 안 되는 가장 작은 공간을 다룬 단편이에요. 고 조그마한 공간 안에 이야기를 구겨 넣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저는 달려라 아비를 읽고 나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리얼리즘이나 현실주의라든지 이런 게 어떤 의미인지 되게 궁금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 쓰면서 문학관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지, 처음부터 제 성향을 정해놓고 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대신에 글을 쓰는 방식 중에, 이를 테면 뭔가 묘사하거나 전달하려고 할 때 내가 어떤 화법을 더 좋아하나 정도는 나중에 깨달은 것 같아요, 그게 굳이 말하자면 사실적인 묘사를 하는 방식에 애착을 더 느꼈던 것 같고요. 아까 말한 자취 경험과 생활감각도 있고, 돈을 최고로 생각해도 안 되지만 사람이 돈을 업수이 여겨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냥 성인이라면 의당 가져야 하고, 갖고 있는, 팔 뒤꿈치에 난 보푸라기 같은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감히 여쭙는데요, 저는 너무 사적…… 다들 진지하신데 전 너무 사적인 걸 여쭙는 것 같아서 죄송한데, 오늘 와서 김애란 선생님이 정말 인간적으로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쭙는 건데요, 만약에 김애란 작가분이 작가가 되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하나 더 여쭙자면 작가분이 생각하시기에 자기가 쓴 글 중에 어떤 글이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이라고 생각하세요

 

= 글쎄요, 전 아까 동영상에서 낭독 원고도 몇 개 틀어주고 그랬는데, 한참 지났지만 제가 쓴 거지만 참 아름답더군요. (웃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은 몇 개 있는데요,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도 좋아하고, 또 최근에 발표한 것 중에 ‘벌레들’이라는 단편이 있어요. 그것도 좀 무서운 얘긴데 전 언젠가 정말 정말 무서운 얘기를 단편으로 써 볼 생각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단편도 좋아하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미래에 대해 계획하고 막 철저하게 준비하고 이런 게 좀 부족했기 때문에, 수능 볼 때쯤에 두리번거리면서 내 적성이 뭔가 살펴보고 이랬었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지금 제 또래들이랑 비슷하게 현실적인 직업을 택한다면 아마 수동적으로 학원 강사를 하거나 첨삭을 했을 것 같고요. 만약 운이 받쳐줘서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면 댄서가 됐을 것 같아요. (웃음) , 이 반응…… 소설가는 앉아서 쓰는 직업이니까 몸을 움직이는 직업을 갖고 싶어요. 어릴 때 놀았던 생각도 나고, 그 때 그 개운한, 신선한 폐활량 같은 거, 헐떡임 같은 걸 생각하면 기분도 좋고. 또 가끔 집에서 혼자 추기도 해요. 언어라는 게 너무 오염돼 있고 한정적이니까, 몸으로 움직이면서 표현하는 일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축제 때 댄스 예선도 보고 그랬었어요. 젝스키스랑 디바 춤 췄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고요. (웃음)

 

 , 안녕하세요. 저는 맨 처음에 오늘 글에다가 질문을 올렸었는데 그거를 선택을 안 해주셔서 약간…… 괜찮고, 그리고 올해 서른 살이신데 축하드리고요. (웃음) 질문 선택 안 해주셔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고요. 약간 이론적인 질문인데요, 대답을 회피할 수도 있는데, 제가 어떤 평론에서 요즘 여류 작가들이 자신의 주제의식이나 감성으로써 약간 편협하거나 치중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주제나 감성에 많이 집착을 하는 걸 보여준다고 한 걸 봤는데요. 제 생각에도 다른 작가 중에 김미월 작가나…… 글들에서 일관되게 그런 감성에서 어머니의, 예를 들면, 그런 주제의식이 많이 나타나는데요.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 한 번 말씀 듣고 싶어요

 

=. 그 질문 올려주신 거 기억하고 있어요. 그 보통, 재밌는 실험이 있었는데, 똑같은 영화를 두 집단한테 보여줄 때 한 쪽은 다 보여주고 두 번째 쪽에는 보여주다 중간에 끊었대요. 2주 후에 물어보면 중간에서 보여주다 만 그룹 쪽이 그 영화를 훨씬 더 잘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인간은 늘 미결된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런다고요. 인터넷 상의 질문에서는 ‘트라우마’라는 표현을 쓰신 걸로 기억을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끊임없이 사람을 질문하게 만든다는 면에서 좋은 집착인 것 같아요. 창작자한테 한편으론 필요한 거라고 생각을 하고, 부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넓이의 욕심도 당연히 갖고 있지만, 그게 양면 뒤집기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그 사람의 세계가 반복된다, 답습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같은 주제를 심화시킨다고 말하고. 선택과 시선의 차이가 생기는데. 게으른 반복이냐 성실한 반복이냐의 문제도 있을 테고요. 그걸 작가가 어떤 에너지 쪽으로, 좋은 에너지 쪽으로 끌고 가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처음에는 집중해 보고, 점프는 못 해도 파고들어가 보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웃음)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광고에 나오는 식으로 말하자면 "후회하지 않아요."

 

 작가님이 좀 곤혹스러워 할  질문을 하겠습니다. 지금 한국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중에서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작가, 이 사람은 도대체 왜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그런 작가가 있다면 그 분의 실명을 말씀해 주세요

= 그런 얘기가 있어요. 저희 창작수업 받을 때도, ‘좋은 작품은 질투를 느끼게 하고 나쁜 작품은 안심하게 해 준다’ 이런 얘기들이 있는데 그거는 그렇죠.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세계관의 작품들이 언제나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싫어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고. , 이건 절대 제가 대답할 수 없겠네요. 죽기 전에는 어디서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웃음) 나중에 시집가서 신랑한테 이부자리에서나 할 만한 얘기를 물어보시니…… 그 대답이 정말 듣고 싶으시다면 저랑 결혼을 하셔야 될 거예요. (웃음) 좋아하는 작가는 많습니다

 저 실례지만요, 저는 달려라 아비를 술술 되게 재밌게 읽었거든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잘 못 써서 그런지 아주 짧은 글을 써도 여러 번 고쳐요.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선생님은 몇 번이나 고치시는지.

 


= 어떤 일본 작가한테 ‘당신한테 상상력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봤더니, ‘마감입니다’ 라고 얘기를 했대요. 공감하는 얘긴데요. 저도 마감 때문에 쓴 글이 많았고, 그래서 뒤로 갈수록 문장이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들을 잘 보면 찾아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발표 한 이후에 단편 낼 때까지 크게 구조나 스토리를 바꾸진 않는데요, 문장을 많이 바꾸는 편이에요. 계속 출력해서 바꾸고, 처음 초고에서 책 묶일 때도 열 번 이상은 고쳤던 것 같네요. 한 번 쓰고 나서 이상하게 정이 안 가서 잘 안 고치거나 안 쳐다보게 된 작품들도 있어요.

 

                    *초대강연이 시작되기 전 한 참석자가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낭독하고 있다*
 



저는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생각했던 게요, 뭔가 하나의 주제를 정하면 그거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잖아요. 그것들을 담을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 담으면 산만해지니까 자르거나 할 때, 자르는 기준이 있는지. 또 하나는 그 소설을 가지고 자신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주위 사람들한테 오해 받아서 불편했던 경험이 있는지.

= 자전적 소설이냐는 얘기는 아버지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 많이 들었었고요, 아버지가 그래도 시골, 집성촌 비슷한 지역사회에서 사시는데 죄송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빚 갚는 마음으로 '대산문화'에 아버지에 관한 산문을 썼고요. 이게 여기 기여를 하는가 안 하는가를 기준으로 자르기도 하고요. 많은 얘기를 다 하고 쳐내는 방식보다 하고 싶은 얘기를 천천히 길어내는 쪽으로 썼던 것 같아요. 나중에 중간이 넘어가면 스스로 내적 질서가 생겨서 편해지는 순간도 있고요.

 


 저는 최성열이라고 하고요. 질문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까 춤 추신다고 하셨는데요. 평소에 글 안 쓸 때는 뭘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주 산뜻한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거든요. 직업이 치과의사인데 4년에 한 번씩 ‘어, 올림픽이잖아!’ 하고 올림픽에 나가는 사람이 실제로 있어요. 육상 선수요. 멋있잖아요. 아니면 무슨 스킨스쿠버를 하는 공학도라든지, 물리학이 취미인 댄스가수라든지 이런 식이면 참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좋고 근사하겠다, 라는 욕심은 있지만 딱히 내놓을 만한 취미가 없어서 어떨 때는 ‘아, 내가 너무 못 노는 게 아닌가?’ 자격지심이 들 때도 있어요. 글 안 써질 때는 산책도 하고. 음 사실 제가 도피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잠이에요. 완전 해결하기 싫은 문제가 있거나 이럴 때는 기면증에 걸린 사람처럼, 거의 신생아 수준으로 자요. 식구들이 병 걸린 거 아니냐고 진찰 받아보라고 할 정도로요. 지금도 일정양의 수면을 못 취하면 다른 일을 못하는 편이에요. 숙면을 위한 세팅에도 공을 들이고요. (웃음) 가끔은 아주 시끄러운 음악을 들을 때도 있고. 차분한 노래를 반복해서 듣기도 하고, 해변가에서 성수기에 나오는 것 같은 대중가요들을 틀어놓고 어깨를 들썩이며 쓸 때도 있고요. 영화를 볼 때도 있고. 미국드라마나 애니메이션도 보고 있고. 뭐 그렇습니다. , 그리고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맥주 마시며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아해요. 오래 본 사람들이 있는데. 대화를 하며 독서를 할 때처럼 ''하고 깨닫는 순간들이 있어 기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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