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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_별_에세이] 미래의 책

  • 작성일 2013-05-15

 

 

미래의 책

 

조경란

 

 

    최근에 한 인터뷰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어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인터뷰 기사가 실릴 곳이 온라인 서점이어서 그런지 인터뷰어의 질문들 중엔 유독 ‘책’에 관련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유년기, 청소년기, 문학청년 시절, 그리고 현재까지, 저에게 인상 깊은 책들이나 크게 영향을 끼친 책들에 관해 각각 이야기해달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청소년기까지야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지만 유년기 때는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지 얼른 떠올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년기를 초등학생 시절로 간주하고는 그때 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들에 관해 떠올려보았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는 그 시절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이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때는 집에 전화나 텔레비전 한 대만 있어도 부자로 인정받는 시절이었답니다. 지금과 같은 휴대 전화나 인터넷 같은 것들이 있을 리가 없었지요. 특별한 장난감도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기껏해야 만화책을 빌려 읽거나, 『로버트 태권브이』 『플란다스의 개』 같은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볼 수 있는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저의 부모는 그 가난한 시절에 한 대형 출판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집에 들여놔주었습니다. 저희 세 자매는 그 50권짜리 동화책 을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매일 매일 한두 권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답니다. 아직 한글을 잘 모르는 막내는 책 사이사이에 흑백으로 그려져 있던 일러스트만이라도 꼼꼼히 들여다보곤 했지요. 인터뷰할 때 저는 기억을 더듬거리며 「작은 아씨들」과 「알프스 소녀 하이디」그리고 「소공녀」, 이렇게 세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작은 아씨들」에게서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법, 그리고 성장한다는 것은 자아를 찾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으며 「소공녀」라는 동화를 통해서는 ‘공간’과 희망에 관해서 배웠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는 하이디가 아픈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고 싶어 했던 갓 구운 흰 빵을 통해 풍요로운 빵의 이미지를 얻었으며 그것이 지금껏 글을 쓰는 저를 따라다니는 하나의 중요한 이미지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인터뷰어와 함께 있을 때는 제가 하는 말들이, 아 내가 그랬었나보다, 정도였는데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며 그 세 권의 책들에게서 배웠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또 앞으로의 삶과 글쓰기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다는, 거의 확신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모와 제 막냇동생의 아이들, 그러니까 조카들하고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남자 조카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사내 녀석이라 그런지 동생인 유치원생 여자아이보다 더 덜렁거리고 준비물도 못 챙겨가는 경우가 종종 있곤 해, 아이가 잠들면 저는 책가방을 다시 점검해 보곤 합니다. 얼마 전에 아이 가방에서 A4용지를 서너 장, 반으로 접어 한가운데는 실로 묶어 손으로 만든 얇은 책 한 권이 나왔습니다. 비뚤거리는 글씨로 쓴 책의 제목은 ‘미래의 책’. 각 장에 그림을 그리고 몇 문장쯤 쓴, 그야말로 초등학교 2학년이 만들 수 있는 그런 허술해 보이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종이책을 읽다가 저는 그만 슬그머니 미소 짓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자기의 꿈은 빵을 굽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농약을 치지 않은 밀가루로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이모와 함께 식탁에서 빵 반죽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조카아이의 그 미래의 책을 제 책상 서랍에 잘 넣어두었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이제 아이는 청소년이 되고 사춘기를 겪기도 하며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자신의 직업, 꿈에 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저는 아이에게 그 미래의 책을 슬그머니 내밀며 네가 언젠가는 이런 책을 쓰기도 했단다, 이런 꿈을 갖고 있기도 했단다, 라고 말해줄 생각입니다. 아홉 살 때 쓴 그 책이 미래의 청소년기 아이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이 드는 것은 제가 이미 그런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사는 게 행복하지 않고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몹시 불행하고 자기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 밤 이후로 저는 누구든 한 번씩 자신의 ‘미래의 책’이라는 것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꿈에 관한 것이든, 희망, 혹은 되고 싶은 모습 같은 것을 그야말로 한 문장씩 한 문장씩 써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막연하게 느껴졌던 꿈이라든가 롤 모델의 모습 같은 것들이 조금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문장을 쓰는 일이나 주제를 정하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면 먼저 이런 소제목들로부터 시작해볼 수도 있겠지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 만약 이런 주제로 글을 쓰게 된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잘 몰랐던 나 자신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서툴게 쓴 책이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나로 데려다 줄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 생의 재(災) 같은 것들도 만나게 되겠지요. 그러나 어두워져도 볼 수 있는 것이 별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면 결코 볼 수 없는. 우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유는 항상 무엇인가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모든 것은 결국 넬리 작스의 시 구절처럼 “잠들어 다시 별 모양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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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당신 이야기의 유령 콘셉트는 낙관적인 것이지요? 유령이란 존재 자체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낙관적이지요.1) 서윤빈 우선 하나 고백하면서 시작하겠다. 나는 여태 진실한 에세이를 써 본 적이 없다. 일곱 권의 책을 냈으니 적어도 일곱 번은 에세이 내지는 에세이격에 해당하는 작가의 말을 썼다는 뜻인데, 그중에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것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아주 현실적으로 보이는 몇 편의 글에서도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할 거짓말을 섞어 넣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별로 인기가 없는 사람이고, 인기가 없다는 건 내가 별로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일 테니까.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건 작가로서 죄를 범하는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문제는 이 글에서는 거짓말을 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원고 청탁 내용 자체가 호텔 프린스 ‘소설가의 방’ 사업에 선정된 작가의 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소설가의 방’이 10년이 넘는 연식을 가진 장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상반기, 하반기에 각각 6명의 작가가 머물렀다고 치면 대충 추산해 봐도 여태 120명 이상의 소설가가 호텔 프린스에 머물렀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무언가를 꾸며내어 쓴다면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깨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글이 턱 막혔다. 망상과 기현상 없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일단은 내가 벌인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일들을 떠올려 보자. 틀렸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유튜브 영상을 몇 편 찍은 것, 장편 소설 원고를 쓴 것, 가능한 조식을 챙겨 먹으려고 애쓴 것 정도가 전부였다. 남들 다 한다는 산책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명동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시트를 갈아주는 새하얀 침대의 느낌이 꽤 각별하기는 했으나… 그거야말로 120여 명의 작가가 다 아는 지루한 이야기겠지. 하지만 그게 꼭 내 잘못이기만 할까? 지금 객실에 관해 생각하면 객실의 공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먼지 냄새와 함께 감돌던 어떤 끈적한 기운. 그 기운은 내 몸에 부드러이 달라붙어 나를 잠으로 이끌곤 했다. 혹시 그 기운이 수많은 작가가 거쳐 간 흔적이었던 건 아닐까? 얼핏 깨끗해 보이는 객실의 벽지와 침대 시트에 사실 앞서 머물렀던 작가들의 땀과 한숨, 권태가 지층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작가 레지던시답게 ‘소설가의 방’ 중 한 객실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귀신 역시 축적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귀신은 한밤중에 슬쩍 나타나 소설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속삭이겠지. — 특별한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아. 너도 알잖아. 물론 내 방에는 귀신이 나오지 않았으니 귀신이 정말로 어떤 스타일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오해했다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하지만 나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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