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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이모작] 김혜나 작가, 몸과 글을 쓰는 건강한 시간들.

  • 작성일 2013-05-19
  • 조회수 1,401



[Culture이모작] 김혜나 작가, 몸과 글을 쓰는 건강한 시간들.


인터뷰 : 김혜나



[김혜나 작가 인터뷰]


    작가라고 하면 제도권 안에서 좋은 학교 가고 글 잘 쓰고 똑똑한 분들이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편견을 갖고 있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못 쓰는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던 것 같아요. 작가라면 소망이 있거든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써야겠다는 욕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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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직군 그리고 세계, 조금 다른 시선으로 확장해간다



‘글틴 리포터가 간다’ 첫 인터뷰이는 두 번째 장편소설 『정크』를 발표해 꾸준히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김혜나 소설가다. 『제리』로 2010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감각적 색채의 젊은 작가로 주목받았다. 현재 소설가와 요가 강사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요가에 관한 에세이집도 출간될 예정이다. 작가이자 동시에 요가 전문가로서 활동 영역을 굳혀가는 김혜나 작가. 글 쓰고 몸 쓰며 독자들에게 힐링 에너지를 발산 중이다.
지난 4월, 글틴 독자들을 대표해 〈 문학 특!기자단 〉 팀이 김혜나 작가를 만났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고 누군가에는 무덤덤한 삶의 색채를 그만의 진솔하고 따뜻한 어법으로 들려줬다.
김혜나 작가가 그리는 문학과 몸짓은 어떤 프리즘으로 현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걸까?


인터뷰-대표사진


○ 정크,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한 남자’의 방황을 그리다


   글틴 : 작가님의 소설 『정크』나 『제리』는 소위 비주류 삶을 다루고 있는데요. 특별히 그러한 삶에 대해 평소에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혜나 : 저 자체가 어릴 때부터 주류 문화에 편입된 인물은 아니었어요. 우린 보통 제도권 사회 안에서 성장하니까 그 안에서 공부 잘하고 데드라인 안에 들어야 하는 모범생 규정을 따라야 하잖아요? 그런데 전 그런 제도권에서 어긋나 있는 인물, 주류라고 규정될 수 없는 인물이었죠. 어릴 때 공부를 되게 못했거든요. 공부가 너무 싫어서 학교도 싫었어요. 지각하고 결석하고 혼자 책만 읽고 딴짓하는 학생이었어요. 어울리는 친구들도 저와 비슷한 친구들이고, 학교에서 도태되고 소외된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녔어요. 어릴 때 노래방 가고 그런 게 일탈이 되고 기쁨이 되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항상 ‘문제학생’이라고 낙인찍혀 있었고, 공부에 관심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대학에 안 갔어요. 대학을 안 가면 ‘루저’고 실패자고 낙오자라는 그런 사회적 편견이 있어서, 항상 내 자신이 비주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스무 살 때 소설 『제리』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알바하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어울려 다니는 것만 좋아했어요. 자연스럽게 저처럼 대학 안 가고 일하면서 사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됐죠. 만나면서 얘기를 많이 듣게 되고 비주류 청소년 삶의 형태, 애환, 절망 그런 것들을 알고 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소설 쓰기 시작한 게 22살 때였는데, 아무래도 익숙한 것들을 습작하게 되잖아요?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한편으로 그런 것들을 쓰고 싶기도 했어요.
작가라고 하면 제도권 안에서 좋은 학교 가고 글 잘 쓰고 똑똑한 분들이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편견을 갖고 있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못 쓰는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던 것 같아요. 작가라면 소망이 있거든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써야겠다는 욕망이요.
물론 이야기라는 게 완벽히 새로운 건 없고 유사한 이야기이고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가 재구성되고 새롭게 쓰이는 것들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한다거나 아니면 그래도 그나마 남들이 하지 않는 얘기, 보편적이지 않은 특수한 얘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글틴 : 이번 작품 『정크』에서 동성애를 다룬 이유가 있나요?
   김혜나 : 주제를 잡았을 때 처음부터 동성애로 잡은 건 아니에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한 남자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보기에는 아버지도 있고 애인도 있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해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청년의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좀 더 극한으로 몰아가다보니깐 사생아라는 설정이 나왔고 애인이 있지만 애인에 대한 일체감을 갖기 어려운 사람, 애인에 대한 큰 절망감을 지닌 인물이 나왔어요. 동성애자라고 하면 내 애인이라도 친구들하고 있을 땐 애인이라고 못 하잖아요? 그래서 기본적인 소외감과 불편한 면들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성애자끼리 그런 건 없잖아요? 남의 사람인 것 같다거나 그렇진 않을 텐데, 동성애 설정을 하면 극한의 절망감으로 가는 데 (적절한) 역할을 할 것 같았어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익숙하기도 했어요. 어릴 때 커밍아웃한 친구가 있었는데 스무 살 되면서 놀 때, 이태원이나 종로에 있는 바, 술집,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가서 봤어요. 그때 봤던 것들이 일반적이지 않잖아요. 일상적인 공간은 아니었어요. 『제리』에서 나온 노래바, 호스트바도 그렇고요. 인상 깊은 공간을 보면 안 잊히거든요. 언젠가 소설에 쓰게 되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 겪어보지 못한 문화를 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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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부터 가식에 반하는 진실 추구


   글틴 : 『정크』에서 그려낸 가식의 분위기를 느낀 적이 있는지요?
   김혜나 : 아주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제도권 안에서 성장해야 됐으니까 집과 학교 공간이 거의 생활의 전부였는데요. 기본적으로 집은 이런 거예요. 지금은 가족이 다 흩어져서 살지만 예전에는 가족이 같이 살았는데 제 위로 오빠가 있었어요. 남들은 되게 행복한 가정이고 단란한 아파트 안에서 안온하게 사는 것처럼 알지만, 안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가족들은 매일 싸우고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하고 서로 구속했어요. 안에서는 갈등이 너무너무 심한데 왜 외부로는 보이지 못하는지, 왜 외부에 드러나는 것은 항상 좋은지, 저는 그게 이상한 거예요. 진실은 숨기고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건 되게 거짓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도 그랬어요. ‘선생님’ 하면 은혜로운 교육자 이미지이고 ‘학교’는 배움의 공간, 교육의 전당인데 제가 볼 땐 그렇지 않은 거예요. 혼나러 가면 애들 인권은 다 무시당해요. 여학생 성추행하는 선생님들도 얼마나 많아요? 저처럼 공부 못하는 학생들한테는 욕설도 심하게 내뱉고 더러운 모습을 많이 보인 거예요. 너무 쓰레기 같은 사람들도 있었어요. 학교란 곳이 진저리를 칠 만큼 싫었고 추악했어요.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건 그렇지 않잖아요? 그게 너무 이상했어요. 내가 속한 현실에서는 거짓의 힘이 더러운 진실을 완벽하게 가려놓았어요. 진실은 되게 추악하지만 그 진실을 쫓고 싶었어요. 진실을 말하고 싶었고, 진실하게 살고 싶었고, 진실을 찾고 싶었어요.
스무 살 때 만나던 친구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비주류라고 하지만 그들은 욕설을 툭툭 내뱉더라도 솔직하고 자기감정을 숨기거나 위장하지 않았거든요. 사회에 나와서 회사 생활도 해보고 대학도 가보고 지금도 일을 하고 있는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솔직하지는 않잖아요? 뭔가 감추고 있어서 격식 있는 자리 가면 되게 불편함을 많이 느껴요. 깨끗하고 격조 높고 품위 있는 곳일수록 불편하고 너무 다 거짓말 같고 그랬어요. 진짜 어떤 게 더 나쁜지 덤벼보고 싶은 거죠. 있는 그대로 진실을 드러내지 않고 천박하다고 치부되는 것들을 다 덮어놓고 좋은 것만 이야기하고 예쁜 것만 이야기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그건 위장술이잖아요? 그런 데에 대한 화두를 문장으로 쓰고 싶었어요.


   글틴: 첫 소설 『제리』를 보면서 자연스럽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거든요. 제리는 호스트바 선수였는데요. 실제로 주변에 그런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작가님이 그런 감정을 느낀 사람이 실제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혜나 : 스무 살 때 친구 중에 호스트바 선수가 있었어요. 그 친구 통해서 일하는 곳에 놀러가 보게 됐고 그 공간을 잘 보게 됐어요. 화류계 시스템이나 호바, 노래바 손님들은 이렇게 한다더라 하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전 어릴 때 공부 못했던 콤플렉스가 있지만, 스스로 타고났다고 인정하는 게 있어요. 기억력이에요. 기억력이 좋아요. 보통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소름끼쳐 할 정도로 10년 전에 만났을 때 뭘 먹었고 어떠했고 그런 걸 다 기억하거든요. 인상에 박힌 건 안 잊어버려요.
어릴 땐 작가가 될 줄도 몰랐다가 스물여섯 살 쯤 『제리』를 썼는데요. 그때 이전에 인상 깊었던 게 다 기억이 났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쓰게 됐죠. 『정크』나 『제리』 다 마찬가지인데, 캐릭터들이나 설정은 주변에서 자주 봤던 사람들로 했어요. 그 안에 제 연애 얘기도 많이 넣었던 것 같아요. 전 연애를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실패한 짝사랑 경험이 많아요. 『제리』에서도 제가 쓸 당시 스물대여섯 살에 좋아했던 남학생, 그에게 지닌 감정들을 잘 관찰했어요. 내 안의 감정들을 가지고 많이 쓰죠.


   글틴 : ‘정크족’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있나요?
김혜나 : 『정크』에 쓰인 ‘정크족’은 사회에서 많이 외면당하고 소외당하고 도태돼있고 제도권 밖으로 튕겨 나온 인물들이에요. 그런 인물들이 오히려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물질적으로나 권력적으로 입지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진정성 있고 살아 있는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거든요. 정크족이라고 치부되는 사람들이 진짜 존재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되게 훌륭하다는 사람들 만나보면, 오히려 쓰레기 같을 때가 있어요. 보이지 않는 데서 별짓 다하는 사람 많잖아요? 그런 대비되는 속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글틴 : 작가님의 실제 성격은 어떤지 여쭤봐도 될까요?
   김혜나 : 양면성이 다 있는 것 같아요. 『정크』에서 외적으로 보이는 건 다 어두운 것만 있는데, 문장으로 인간의 변증적인 성향들, 이중성, 양면성을 모두 표현하려고 애를 썼어요. 문장을 보면, ‘있지만 없고 멈춰있는 것 같지만 가고 있고.......’ 그런 분위기로 되게 많이 표현했어요. 그게 제 성격인 것 같아요.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도 같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뭔가를 하고 있고, 밝은 것 같지만 어두운 게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말이 없고 되게 얌전할 때도 있어요. 한쪽에서는 동적이고 활발한 성향이 있거든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성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제 안의 성격, 감정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까 여러 가지가 다 있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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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을 더 잘 알고 싶어서 간 대학, 인문학의 붕괴 아쉬워


   글틴 : 최근 들어 대학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거나 그와 관련된 책을 출간한 대학생도 있었는데요. 스무 살에 한국에서 대학 없이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김혜나 : 전 스무 살 때 대학을 안 갔는데 그때는 어떤 의식이나 목표 의식, 내 주체성 확립 같은 것 없이 학교 공부, 일 아무 것도 하기 싫었던 시기였어요. 싫은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었어요. 하기 싫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안 하고, 하고 싶은 건 하고, 분명했거든요. 고집도 세고 자아도 강하다보니까 수능을 아예 보기 싫었어요. 아침 아홉시에 가서 저녁 여섯시에 나오는데 어떻게 앉아있으라고? 그리고 어린 생각에는 그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저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어요. 그런 친구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거든요. 대학이라는 건 생각도 못 하고 꿈도 못 꾸는데, 그런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숨기니까 많이 가려져 있죠. 나중에 대학을 간 것도 졸업장에 편입되고 싶어서 간 게 아니었어요.


    『정크』에서 성재는 직업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저는 실업계를 나왔어요. 저 같은 친구들은 대학 안 가면 미용 자격증을 따거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려고 학원을 다녀요. 요리 학원, 제빵 학원, 자동차 학원 같은 데를 가죠. 아니면 아예 연예인 엔터테인먼트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연극배우 하려는 친구도 많았고요.     저도 그 중에서 뭔가를 하긴 해야 될 것 같은데 아무리 고민해도 저는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미용이나 메이크업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좋아하지만 남 해주고 그런 건 하기 싫었어요. 알 수가 없었어요. 속기사 해볼까 생각해봤는데 막상 그것도 강렬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중학생 때 공부 안 하면서 딴짓하고 잠만 자다가 공부하는 척해야 하니깐 교과서 사이에 소설을 꽂아 두고 많이 읽었어요. 〈 상록수 〉나 〈 소나기 〉 같은 국어책 속 소설이 다 재미있었거든요. 문학 단행본을 교과서 사이에 넣고 읽었어요. 모든 수업을 소설로 때워야 하니 〈 무정 〉, 〈 유정 〉, 〈 흙 〉, 〈 운현궁의 봄 〉, 〈 태평천하 〉, 〈 삼대 〉 그런 책을 그때 다 읽었어요.
나중에 술 먹고 놀다가 재미있는 걸 찾고 있을 때 어릴 때 읽고 싶던 소설이 생각났어요. 그때부터는 매일 책을 읽었어요. 6개월 정도 책을 읽다보니 문학에 대해서 알고 싶었어요. 너무 좋은데 이해되지 않는 게 많은 거예요. 왜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하는지 어려운 거예요.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하면 이 사람을 좋아하긴 해도 이해하긴 어렵고 계속 알아가야 되잖아요?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고, 그런 감정이 있잖아요. 내가 소설을 좀 알고 싶다 생각했는데 소설은 학원이 있는 게 아니니까, 문학을 배우려면 문학 전공이 있는 대학을 가야 되겠다고 그때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떤 목표의식을 갖고 대학을 갔던 게 아니에요. 졸업장을 따서 취직 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전혀 못 했고, 문학을 더 잘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어서 스물한 살 때부터 수능을 공부해서 대학에 갔어요.
그때부턴 대학에서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친구들하고 MT 가고 OT 가고 동아리 가서 술 마시고 그런 건 더 이상 하기 싫었거든요. 그 삶이 싫어서 대학에 온 거니까. 매일 책 읽고 과제 읽고 발표 준비하고 내가 읽은 책에 대해서 토론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서술형 시험 보는 거나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나 물어보는, 이런 게 너무너무 좋아서 대학 4학년 내내 장학금 받고 되게 행복하게 다녔거든요. 대학 다니는 동안 취직을 준비하진 못했어요. 소설가 꿈만 있다 보니 대학 나오면 어디 취직해야지 그런 게 없었어요. 학점만 좋고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는 거예요.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더라고요. 대학 나와서 대학 다닐 때처럼 아르바이트하면서 습작을 계속 했어요.
대학의 의미에 대해서 제가 깊이 생각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 대학이 완전히 자격증 따기 위해 가는 기반이 되어버렸잖아요. 그러지 않고 대학이 좀 더 학문의 전당이었으면 좋겠어요. 대학 다니는 게 16주인데 시험 빼고 축제 빼면 수업 듣는 게 10주가 될까 말까 해요. 챕터 투나 쓰리에서 끝나요. 깊이 들어가려는 학생도 없고 교수님도 ‘성의껏 더 하고 싶으면 대학원 오든지’ 그래요. 다들 어차피 졸업장 따러 온 거라고 하죠. 정말 어마어마하게 돈을 들여 대학에 오는데, 돈 주고 졸업장 따러 오는 공간이 됐단 느낌을 저도 받았어요. 학문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학문의 최고봉은 철학이었는데 철학도 다 없어지잖아요. 국문학도 그렇고요. 인문학의 중요성이라든가 진정성이 사라졌어요. 무조건 취직, 돈이 중요하니 대학이 완전히 장사가 됐어요. 그런 것만 남아서 세계가 잘 유지돼 흘러갈 수 있는지 의심이 들어요. 인문학 교육이 굉장히 중요한데 너무 무너져 있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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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크』를 쓰기까지, 내 안의 모르는 얘기를 끌어내는 2년 이상의 퇴고 기간


   글틴 : 『정크』의 집필 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나요?
   김혜나 : 초고는 7-8개월 걸렸지만 퇴고를 2년 넘게 했어요, 저는 항상 퇴고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리』도 4년간 고쳤어요. 초고는 빨리 쓰는 편인데, 퇴고를 좀 오래 하는 스타일이죠.



   글틴 : 『정크』를 쓰려고 직접 취재를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에피소드 좀 들려주세요.
   김혜나 : 뭐랄까? 에피소드보다 시선이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요. 어릴 때 동성애 극장을 갔는데, 아무래도 남자들만 오는 공간에 가니깐 다 쳐다봐요. 여자 한 명도 없는데 ‘쟤는 뭐지?’ 특이하게 보고 신기하게 봤던 사람들의 눈빛 같은 게 기억이 나요. 보건소 검사 받을 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나 시선도요. 제가 요가 학원 강사 일과 글 쓰는 일을 같이 하니 평일에 시간 내기 되게 힘든데, 보건소 갈 때는 힘들게 시간을 빼서 가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왔어요. 2년 전 원전 방사능 비라고 할 때였는데, 너무 기분이 안 좋은 거예요. 비 오는데 피도 뽑아야 하고 찝찝하고 안 좋고, 나를 다 방해하는 것 같았어요. 너무 외로웠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것들이 글쓰기에 도움이 됐어요. 그날 일기를 그대로 썼거든요. 비 오는데 영등포 로터리 걸어서 우산 쓰고 가고, 뭔가 맘대로 안 돼서 버스 탔는데도 제대로 못 가고, 도서관 갔는데 문 닫혀 있고, 백지 상태에서 나를 아무도 안 도와주는 것 같고, 그렇게 직접 다녀보면 계속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능력은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취재를 하면서 많이 사용을 하죠.


   글틴 : 지난 소설 『제리』를 읽을 때 서술자의 독백 중에 함축적인 문장들이 두드러지던데요. 그런 문장은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건지, 그 문장을 주제로 삼아 유기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신 건지 궁금합니다.
   김혜나 : 둘 다 작용을 하는데요. 저는 소설을 쓰기 전에 트리트먼트를 철저하게 짜는 편은 아니에요. 습작하는 친구들에게 좋은 방식은 아닌데요. 기본적인 관계 설정만 하고 써요. ‘나’와 이미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강’이라는 남자가 있고, 사귀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지 뭔지 모르는데 만나고 있는 ‘제리’, 이 세 명의 삼각관계를 설정하고 배경을 짜기는 했어요. 『정크』에서도 사생아 성재랑 아버지와의 장면으로 시작하잖아요. 엄마는 매일 술 마시고 노래방 도우미 나가는 설정을 해뒀고, 동성애 애인과 몇몇 친구들, 그렇게 인물을 만들었는데요. 결말이 어떻게 될 거라는 스토리라인을 미리 짜놓진 않았어요.
일단 첫 문장과 첫 장면을 쓰면 그 안으로 따라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내 안에서 끄집어 나오는 문장들이 있어요. 이를 테면 소설작법을 배울 땐 플롯을 짜놓아야 딴 데로 샐 때 잘못 빠지지 않고 원래 스토리라인으로 나간다고 하는데, 그 방식이 나쁜 건 아니지만 저랑 잘 안 맞아요. 저는 다른 데로 새는 이야기가 더 궁금해요. 왜 이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될까? 어차피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이니 막거나 차단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갑자기 터져 나오는 것도 예견된 느낌이에요. 내 안에 감춰져 있던 이야기 같아요.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무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던 이야기죠. 나 스스로도 감춰져 있던 이야기가 궁금하고 쓰고 싶죠. 그걸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이야기를 전개해가다 보니깐 사람들이 감각적이라고 해요. 단점은 있죠. 얘기가 진행되는 확률이 완벽하지 않은 거예요. 안전하지 않은 방법이죠. 그러다보니 퇴고 시간이 길어져요.
전 처음 쓸 때 생각나는 걸 다 써요. 거기서 뺄 건 빼고 플롯을 어느 정도 만들거든요. 플롯을 짜놓고 만들기보다는요. 사실 편집장님들이 그건 비효율적이라고 해요. 2000매 써왔는데 반은 덜어내야 하니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거죠.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충고를 받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이 방식이 저는 좋아요. 버리게 되더라도 한 번 끌어내보고 싶고, 그렇게 하다 보니깐 유기적으로 감정선에 맞춰서 이어졌던 것 같아요.


   글틴 : 『제리』, 『정크』 둘 다 제목이 기억하기 쉽고 좋은데요.
   김혜나 : 『제리』는 제목 때문에 힘들었어요. 제리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인공 ‘나’의 얘기였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나’의 욕망과 절망을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을 찾았는데 못 찾았어요. 제가 제목을 잘 못 지어요. 학교 다닐 때도 창작 수업 들었는데, 카피나 슬로건이나 사람 이름 짓는 데에 창의력이 별로 없었어요. 긴 서술 문장은 이어갈 수 있는데 단문은 쓰기 힘들더라고요. 주인공 인물 중에 가장 튀는 게 제리였고, 제리는 닉네임인지 진짜 이름인지 모르잖아요. ‘강’이라는 인물보다 더 소설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모호함이 있어서 ‘제리’ 라고 붙여놓고 썼어요. 책으로 출간 될 때도 논의가 많았죠. 결국 제리가 강렬해 보여서 제리로 쓰게 됐어요.
『정크』는 제목을 못 정하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주인공 이름인 ‘성재’로 파일명을 해뒀어요. 그런데 또 주인공 인물로 제목을 쓰기는 싫어서 다 쓰고 나서 ‘정크’로 정했어요. 쓰레기, 마약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 성재 스스로 자꾸 쓰레기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니까 정크라고 써보면 어떨까 하며 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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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서 끌어올린 얘기들을 담담히 소설로 표현


   글틴 : 스물두 살부터 글을 쓰셨으니 아주 어릴 적부터 상상한 모습으로 사는 것은 아닐 텐데요. 다른 작가들을 만나고 이렇게 글 쓰는 청소년들을 만날 때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김혜나 : 외부에서 보기에는 인생이 갑자기 확확 변하고 역전된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스스로 저를 봤을 때는 긴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변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확 변한 건 아니에요. 처음 소설을 쓰게 됐을 때 스물두세 살에 이런 순간이 오면 되게 감격스럽고 놀랍고 그럴 줄 알았어요. 문단에서 주목 받고 그러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만 같다는 환상들이 있었죠. 그런데 제 일 하면서 계속 글 쓰면서 꾸준히 살아왔어요. 꿈꾸던 미래에 온 건 맞는데 어떤 면에서는 되게 담담해요. 놀라울 것도 싫을 것도 불편할 것도 너무 좋을 것도 없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그냥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죠. 요가를 오래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요가를 하다보면 너무 좋거나 싫거나 그런 것들을 버리게 되고 없어져요.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커지는 것 같아요. 모든 걸 자연스레 받아들여요.


   글틴 : 소설을 처음 쓰실 땐 어떻게 얘기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김혜나 : 고전 문학을 배우다보면 고대의 이야기꾼들에 대해서 공부하게 돼요. 강독사, 강창사 이런 분들이 있거든요. 예전에는 책이 많지 않고 문맹도 많으니, 이야기꾼들이 있었던 거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으면 읽어주는 사람이 이야기를 좀 더 첨가하고 해설도 하고, 거기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거예요. 노래가 되면 강창사, 이야기가 되면 강독사,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는 사람들이 구미를 느낄 수 있는 얘기를 가져다가 재미있게 재조립하고 맛깔나게 전달할 수 있는 자의 위치에는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는데, 전 만들어내지도 못해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이야기를 전하는 자가 있고, 하는 자가 있어요.
처음 소설을 쓸 때 많이 ‘소설 대체 어떻게 쓰지?’라는 생각부터 하잖아요. 뭔가를 창조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떠오르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너무 불가능한 영역이다. 못 쓰겠다 소설가가 되기 힘들겠다’ 생각했는데 계속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자연히 깨달았던 게, 소설은 대단한 이야기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내 경험, 내가 본 거 그 단면을 그대로 쓰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때부터는 내 눈에 보이는 것, 내가 경험한 것, 내가 마음에서 느낀 것을 소설이라는 틀 안에, 제 이야기를 넣게 된 거예요. 다른 사람의 얘기를 전달한다기보다 꾸밈이나 수사 없이 담담하게 하자는 그런 의식이 있었어요. 문장에도 공들이거나 멋 들이는 것 없이 내 안에서 끌어내지는 이야기들을 썼어요.
먹은 게 있어야 토할 수 있잖아요. 먹어야 뱉을 수도 있어요. 많이 듣고 보고 쓰는 게 중요한데, 조금 더 팁이 있다면 남들과는 좀 다르게 읽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쓰려는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글틴 : 작가님, 글 쓰시면서 글을 정말 못 썼다 자괴감이 들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김혜나 : 계속 쓰는 거예요. 글이 너무 안 좋고, 안 써지고, 그럴 땐 쓰는 거밖에 방법이 없어요. 더 안 좋은 글만 나오고 안 써질 때 많이 써야 되는 것 같아요. 끝까지 밀고 가면 좋은 글이 나오죠. 맘에 안 들 때는 빨리 인정해야 되는 것 같아요. 안 좋은 글도 쓸 수 있는 거잖아요. 삶의 모든 순간들이 좋은 순간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수순이라는 걸 받아들이세요. 삶에 있어서 글쓰기에 있어서 문제라는 게 없을 수가 없거든요. 문제는 늘 발생하는 거고 문제가 있어서 유지되는 거지, 문제가 있는 건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에요. 이런 과정이 일어나는 게 내가 지나가야 할 과정이고 성장할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면 좋은 일로 다가오더라고요.


   글틴 : 청춘 3부작을 쓰실 예정인가요?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도 들려주세요.
   김혜나 : 『정크』도 『제리』로 등단하고 나서 기획한 작품이에요. 2010년 가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요. 『제리』가 등단작인데, 젊은 청춘들의 절망을 쓰면서 아쉬움이 많았어요. 너무 어릴 때 쓴 소설이었고 그러다보니 『제리』에서 다루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어요. 주인공이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근원적인 고찰 같은 게 너무 없던 것 같아요. 르포르타주처럼 현상만 보여줬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너무 못 다룬 것 같아서, 비슷한 분위기 소설을 더 써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획하고 집필했던 소설이에요. 그러던 중에 다음 작품을 자연히 하나 더 쓰게 된 거죠. 원래는 단편으로 쓰려던 이야기였는데 소설의 스토리랑 구조상 장편이 더 맞더라고요.
두 번째 소설은 자연히 연결된 건데, 다음에는 청춘의 상처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제리』는 청춘의 방황에 초점이 있었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거죠. 『정크』에서는 하고 싶은 건 없지만 바라는 게 있는데 현실은 받아주지 않고 현실의 벽에 부딪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청춘을 썼어요. 청춘의 절망에 초점이 있었고, 청춘의 원초적인 상처, 받을 수밖에 없었던 극한의 상처에 대해 썼어요. 고집이 있어서, 쓴다고 하면 끝까지 파고들어가는 성격이에요.
누구나 겪을 법한 흔하고 밋밋한 상처가 아닌, 처절하게 깊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소설까지는 좌절과 절망, 방황에 맞춘 소설을 쓰고, 그 다음에는 밝고 아름답고 보편성을 많이 띤 인물을 그려보고 싶어요.
이미 써놓은 장편 중에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도 있거든요. 쓰기는 써요. 잘 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일단은 이 청춘의 얘기들을 잘 파고들어서 다 보여준 다음에 웃긴 소설도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미적인 대상, 미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예쁜 걸 워낙 좋아해요. 아름다움에 대해서 많이 매료당하고 끌리는 편이에요. 그래서 문장이라든가 표현이라든가 배경이라든가 소재라든가 이런 게 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 위주로만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소설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 갈등 없는 얘기도 써보고 싶어요. 사람들은 위기감 있게 몰아치고 지지고 볶고 싸우고 그런 데 확 빨려 들잖아요? 그런 게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데, 제 안에는 그런 갈등 없이 평이하고 평온하고 안온하기만 하고, 그런 세계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거든요. 한 번쯤은 갈등 전혀 없이 예쁘고 아름답기만 한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글틴 : 소설 말고 쓰고 싶은 장르가 있으세요?
   김혜나 :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몸을 사용해왔던 사람이 아니거든요. 건강이 되게 안 좋았어요. 그랬던 제가 요가를 하게 되면서 느낀 내적 감정의 변화를 한 번 얘기하고 싶었어요. 요가 관련 에세이를 쓰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아직 엄두는 안 나지만 언젠가는 시인이 되고 싶단 생각이 있어요.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 같은 것들은 소설보다는 시에 맞을 수 있단 생각이 들어요. 위기, 절정, 갈등 이런 게 없이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는 데에는 시의 속성이 맞을 수 있고, 요가를 하면서 시에 관심을 더 갖게 됐거든요. 요가는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여요. 그게 은근히 문학 중에서도 시의 속성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 시로 정리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산문집이나 소설 작업이 많아서 당장은 엄두를 못 내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고요. 육십이 돼서 시집을 내도 되는 거고, 천천히 써보고 싶어요.


   글틴 : 가장 듣고 싶은 ‘진심어린 거짓말’이 있나요?
   김혜나 : 아무래도 ‘내 이야기 같더라’ 그런 말 들을 때 좋아요. 약간 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진심을 담아서 해주는 말이요.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고 힘이 되는 게 아무래도 제 소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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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다한 후속 인터뷰는 메일로 진행했습니다. 김혜나 소설가가 정성스레 작성한 답문들입니다. 글틴들이 글쓰기 고민에 빠져있을 때, 글쓰기 외의 또 다른 직업을 찾고 있을 때 진심어린 도움이 될 만한 경험담과 조언이 가득합니다.



[김혜나 작가 서면 질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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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작가, 소설과 더불어 요가 강사로 사는 법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다 가까스로 기어 나와 맨 처음 시작한 것이 바로 요가였어요. 삶에 모든 희망과 욕망을 잃은 채 텅 빈 상태로 요가 수련실에 앉아 요가를 하면서 저는 비로소 제 안에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나, 라는 존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이를 테면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존재해야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죠.



   1. 요가는 직업인 동시에 작가로서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분야인 듯한데요.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시는지요?
   김혜나 : 글쓰기는 끈질긴 사유의 과정을 통해서 발현되는 작업인데, 요가는 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고를 모두 비워내는 작업이에요. 그러다 보니 요가 수련이 깊어질수록 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너무 많았어요. 분명히 뭔가 쓰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요가 수련을 하고 나면 ‘쓰고 싶다’라는 생각마저도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 수련을 계속 해 나가다 보니, 이마저도 결국 글쓰기의 영감으로 다시 연결되어 나가더라고요. 요가를 통해 내가 완전히 비워진 상태, 완벽한 공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곧 글쓰기의 순간으로 연결되는 체험을 여러 번 했어요.
특히 명상 중에 내 안에 잠재한 세계와 조우하게 되면서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죠. 예전에는 스스로 글을 너무 못 쓰는 것 같다는 자괴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는 했는데 요가를 통해 그러한 불안과 걱정, 두려움 등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나 자신과 글쓰기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죠.


   2. 요가에 심취하신 계기와 현재 일을 하면서 장단점은?
   김혜나 : 요가를 처음 접했을 적에는 체중조절 외에 별다른 이유나 목적이 있지는 않았어요.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20대 초반의 저는 소설 『제리』의 인물들처럼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매일 술 마시고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청춘이었어요. 스무 살이 끝나갈 무렵 소설이라는 꿈을 찾으며 방황의 늪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과도한 음주와 흡연, 불규칙한 식생활로 인해 비만과 위장장애, 우울증을 앓게 됐죠.
그래서 이런저런 다이어트와 운동을 시도해 보다가 2005년부터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때 20킬로그램에 가까운 체중을 감량하며 효과를 봤는데, 그 뒤로 대학에 다니며 소설까지 쓰다 보니 요가를 꾸준히 하지는 못했죠. 그런데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다 보니 허리와 어깨, 목 등이 너무 아프고 소화도 잘 되질 않더라고요.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그만한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어요. 그때부터는 체중감량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설을 쓰기 위해서 요가를 꾸준히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창작하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면 하루 한 시간 짬을 내기도 빠듯한 게 사실이지만,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체력을 키워야만 더 오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계속해서 소설을 쓰기 위해 취직은 하지 않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요가를 배우면서 생활을 이어갔어요. 삶의 소소한 즐거움까지도 모두 포기한 채 오로지 소설 쓰기에만 매달리며 하루하루를 이어갔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등단이 되지 않자 곧 좌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죠. 5년 동안 신춘문예와 문예지 신인상에 수도 없이 많은 소설을 투고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낙선이었으니까요. 한 가지 일에 5년 동안이나 매달려 왔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니 엄청난 절망감이 밀려왔어요. 그것이 곧 중증 우울증으로 이어져 병원에 가서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해봤지만 상태가 전혀 나아지질 않았어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단 하루도, 한 순간도 제대로 살아 있지 못했죠.
그때, 그런 저를 일으켜 세워 준 것이 요가였어요. 왜, 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다 가까스로 기어 나와 맨 처음 시작한 것이 바로 요가였어요. 삶에 모든 희망과 욕망을 잃은 채 텅 빈 상태로 요가 수련실에 앉아 요가를 하면서 저는 비로소 제 안에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나, 라는 존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이를 테면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존재해야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죠.
그 뒤부터, 소설가로서의 등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제 삶의 방향을 비로소 바꿔 나갈 수 있었어요. 소설가로서의 등단과 관계없이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만한 직업을 찾아 안정적인 토대부터 마련한 뒤에 소설을 써나가고 싶었죠.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 마음이 편안한 일을 하자,라고 생각해서 좀 힘들긴 하지만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기로 했죠. 그렇게 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가 강사로 일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도 분명 어려움이 따르긴 했지만, 그로 인해 생계의 불안을 해결함과 동시에 내적으로도 훨씬 강인해졌어요.
등단에의 욕망을 버리고 존재를 똑바로 세우자 글쓰기 또한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지더라고요. 그렇게 요가 수련과 요가 강습, 그리고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생활하던 중 2010년 소설 『제리』가 오늘의 작가상에 당선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그 이후로 작가와 요가 강사라는 두 개의 직업을 가지게 된 거죠.
소설과 요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에 대한 장점은 무척 많은데, 우선은 역시 체력 관리에 도움이 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등단을 한 이후에 동료 작가들을 보면 대부분이 다 척추 측만증과 전만증,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 좌골 신경통 등을 앓고 있음은 물론이고, 소화 불량에 두통, 불면증, 수족한증 등에 시달리고 있더라고요. 하루 종일 앉아서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이니(그것도 창작을) 사실 당연한 일이에요. 오랜 시간 한 자세로 앉아 있다 보면 체내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서 오는 질병들이죠. 저 또한 이러한 질병들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 받았지만, 요가를 하면서 모두 치유할 수 있었고 지금은 정말 건강한 상태로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또 요가를 하다 보면 제 안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글쓰기의 소재가 되기도 해요. 소설쓰기에 ‘영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을 제 외부에서 일부러 찾아 나서지 않고 요가를 통해 제 안의 감각과 현상에 집중하게 된 것이죠. 요가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문학의 속성과도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반면 요가 수련과 강습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이어가다 보니 아무래도 전업 작가에 비해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들이 현저히 부족한 편이에요. 먹고 살려면 어쨌건 일은 반드시 해야 하니 요가 강습은 나가더라도 요가 수련은 좀 줄이는 게 좋지 않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무언가를 가르치려면 우선 많이 배워야 하잖아요. 요가 수련을 하지도 않는 사람이 요가를 가르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수련은 매일 해나가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는 등의 사사로운 만남을 최대한 자제하게 됐어요. 사실 그런 사적인 만남보다는 글 쓰고 책 읽고 요가 하는 시간 속에서 더 커다란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크게 아쉽거나 불편하지는 않아요.
다만 매일 새벽 요가 수련과 오전 오후 강습을 이어가다 보니 낮 시간에만 겨우 글을 쓸 수 있거든요. 그러니 창작 작업 외에 달리 받게 되는 원고 청탁 등의 일들을 소화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매일 이어지는 수련과 강습 시간 때문에 밤새워 글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 보니 마감 기한을 지키기가 어려워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청탁을 거절하게 되는 상황이 많은 게 가장 큰 단점이에요.


   3. 향후 소설가로서뿐만 아니라 요가 강사로서 지향하는 점, 꿈이 있으신지요?
   김혜나 : 단순히 ‘소설가’, 혹은 ‘요가 강사’가 아닌, 많은 이들에게 빛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전할 수 있는 훌륭한 ‘선생’이 되고 싶어요. 소설가로서 등단하기 전에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식은 없이 무조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만 급급해 있었죠. 그때의 저는 아마도 높은 곳에 올라가 사람들이 저를 올려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위로 오르려고만 하다 보니 항상 힘들고, 지치고……. 뭔지 모를 회의와 불안, 걱정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어요.
처음 요가 강사를 시작할 적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때는 무조건 잘 가르치는 강사가 최고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람들 앞에 서서 요가를 가르치는 게 사실 긴장도 많이 되고, 잘못 가르쳐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며 늘 불안하고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정통 하타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께 요가를 배우면서부터 내가 얼마나 잘못된 가치관으로 살아왔나 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선생님은 요가를 지도하실 때 사람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사람들을 그저 도와주려고 하는 분이었거든요. 사람들이 나를 올려다볼 수 있게끔 높은 곳에 올라 나를 뽐내고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 몸을 낮추고 사람들을 섬기며 보살피는 직업이 바로 ‘선생’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사람들이 예수를 랍비(선생)라고 불렀던 것도 그래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었어요. 예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온 선생이 아니라,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몸소 섬기며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선생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한데 저는 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 소설을 통해 나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하려고 했고, 요가를 통해 사람들을 가르치려고만 했던 거예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만 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함으로서 타인과 소통을 하는 것이잖아요. 그것은 곧 하나의 나눔이라고 봐요.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세계를 소설로 써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과거에 제가 소설을 읽으며 감동과 환희, 그리고 깨달음 등을 느끼며 성장해 왔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저의 소설을 읽고 힘겨운 삶에 조금이나마 위안이나 휴식 같은 것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됐어요. 더불어 저마다의 상처와 절망, 고통 같은 것들이 치유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요가 강사로서의 일도 그와 전혀 다르지 않아서, 요가를 통해 제가 체험한 변화와 치유의 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공유하고 싶어요. 특히 과거의 저처럼 많이 아팠던 사람들이나 과체중,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요가를 통해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보고, 느끼고, 체험한 모든 것들을 소설과 요가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과 나누며 사랑을 실천하는 훌륭한 선생이 되는 게 지금의 제 꿈이에요.


   4. 요가와 소설은 일상에서 어느 정도로 배분하시나요?
   김혜나 : 요가 수련을 새벽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하루 2회씩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하고 있어요. 그 외에 강습은 오전 오후로 1시간 내지 2시간 내외로 하고 있고요. 그러니 요가 수련과 강습에 들이는 시간이 최소 5시간에서 6시간은 되는 것 같아요.
글쓰기는 하루 3시간에서 5시간 정도로, 주로 강습이나 수련이 없는 낮 시간에 쓰는 편이에요. 사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후에 소설 『정크』를 집필하면서 3개월 정도 수련과 강습을 모두 쉬고 글쓰기에만 매달린 시기가 있었어요. 어쭙잖게 전업 작가 흉내를 내면서 살아본 것인데, 어쩐 일인지 저에게는 그런 생활이 잘 맞지 않더라고요. 글을 쓸 시간이 아무리 많이 주어져 있다고 한들, 글을 쓸 수 있는 양에는 결국 제한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제 경우 하루 최소 30매에서 50매 정도의 원고를 쓰고 나면 더 이상은 쓰기가 힘들었어요. 나머지 시간에도 글을 써보겠다고 낑낑대고 앉아 있어봤지만 괜히 몸만 더 피로해질 뿐이었죠. 건강하게, 오래도록 작품 활동을 해나가려면 규칙적인 생활과 요가 수련이 필수적이다,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는 다시 수련과 강습, 글쓰기를 병행하는 생활을 쭉 해왔어요.
지금의 이러한 생활 패턴에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 읽을 시간이 좀 부족하다는 것이에요. 등단 전에는 뚜렷한 직업이 없었던 탓에 책 읽을 시간이 정말 많았거든요. 특히나 저는 사실 글쓰기보다 책 읽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요가 수련과 강습, 소설 창작 모두가 중요한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책 읽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비정규직 시간 강사이니 강습을 나가는 이동 시간에 틈틈이 책을 읽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책 읽기에 집중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에요.
만약 한 달 내지 두 달 정도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남국의 그림 같은 리조트에서 하루 종일 책 읽고, 요가하고, 시간 나면 수영도 하면서 지내보고 싶다는 꿈을 가끔 꿔요.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죠.


   5. 소설가를 직업으로 택하려는 글틴들에게 조언 부탁합니다.
   김혜나 : 지금으로서는 소설가로서의 등단이 가장 중요한 일처럼 여겨지겠지만, 사실 등단 그 자체가 내 인생에 있어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 게 좋아요. 등단에 대한 욕심 없이 문학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즐기면서 글을 써나가다 보면 등단은 그냥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거든요. 문제는 등단을 하고 못하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등단을 하든 하지 못하든, 내 삶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에 있는 것 같아요. 등단을 했거나, 하지 못했거나 글을 쓰면서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물론 심리적으로는 등단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일이 굉장히 큰 어려움이고 부담일 수 있죠. 하지만 등단을 한다고 해도 당장의 생계비가 마련이 된다거나, 매달 생활비가 생긴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매달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야만 안정되게 글을 쓰면서 생활해 나갈 수가 있어요. 그러니 글 쓰는 일과, 돈 버는 일에 대한 배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글 쓰며 살아가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러 다니다 보면 결국 글 쓸 시간이 없어져 버리고, 그렇다고 돈 벌이를 줄이고 글만 쓰다 보면 먹고 살 수가 없어 결국 또 글을 쓸 수가 없게 돼버려요. 그러니 어느 한쪽에도 너무 치우지지 않도록 되도록 욕심을 좀 내려놓고, 적게 벌더라도 글을 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편집자, 방송작가, 논술교사 등의 직업을 선택해서 돈을 벌며 글을 써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중요한 것은 그 일 또한 분명히 자신의 ‘업’이므로, 반드시 좋아서 할 수 있어야 해요. 싫은데 억지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궁여지책으로만 하다 보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감 때문에 글쓰기가 더욱 힘들어지기도 하거든요.
그러니 글 쓰는 일 외에도 분명히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되 전업보다는 부업으로 하기를 추천하고 싶네요. 비록 정규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처럼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겠지만,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을 가지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으니 훨씬 행복한 삶이라는 사실을 빨리 알았으면 해요. 무엇보다도 문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가야 할 과업과도 같은 것이니, 절대로 조급해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으며 매일 꾸준히 글을 써 나가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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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김혜나 소설가, 〈 문학 특! 기자단 〉 전원
정리 : 변인숙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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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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