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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하고 아름다운 추억에의 오마주, 연극 <사물의 안타까움성>

  • 작성일 2014-05-20
  • 조회수 887

[이달의 리뷰리뷰]




추하고 아름다운 추억에의 오마주, 연극 <사물의 안타까움성>




배혜지 (문학특!기자단)





건물마다 수많은 소극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주변, 일명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은 가장 많은 소극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과는 조금 떨어진 혜화 로터리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지도를 보면서도 ‘여기에 과연 극장이 있을까?’라고 반신반의하며 걸어가다 보면 보이는 건 공연 중인 극의 입간판. 그 간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 보면,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극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외관도, 실내도, 전형적인 소극장. 식당과 같은 건물이라 얼핏 봐서는 극장이 있다는 것도 알기 어렵지만, 공연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면 정면에서 봤을 때 건물 왼편에 위치한 매표소가 북적이기 시작한다. 극장은 지하. 독특한 구조의 매표소 창구에서 표를 받고, 지하로 내려가면 극장이다. 아담한 공간 속 개별 자리 구분 없이 계단식으로 붙어 앉는 좌석과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무대. 소극장이 점점 많고 다양해지면서 대극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세련된 자석을 마련해 놓은 극장도 많지만, 역시 투박하다 싶은 좌석도 소극장의 매력 중에 하나는 아닐까.
따로 좌석 번호가 없는 만큼 자리는 자유석.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냉큼 첫째 줄로 가 앉으려 하니, 안내해 주시던 관계자의 목소리. “앞에 앉아 계시면 공연 중에 술이 튈 수가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잠시 망설이다 결국 둘째 줄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서 새삼 떠오르는 팸플릿 문구. ‘매 공연마다 20여 병의 맥주가 소비되는 연극.’ 어떤 연극일까, 점점 기대됐다.
공연 시작 시간이 되자 관계자가 공연 중 주의사항을 안내한 뒤 간단한 이벤트가 있었다. 진행자와의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두 사람에게 연극의 원작 소설책을 증정하는 이벤트. 행운의 당첨자가 나오고, 이어 본격적으로 연극이 시작되었다.
연극이 시작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첫줄에 앉으려는 관객에 대한 경고가 결코 허울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베르휠스트 가문’에 대한 일종의 소개였던 첫 장면을 제외하고 무대는 시종 술로 채워졌다.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맥주병을 따는 경쾌한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배우들이 허름한 술집에서 낄낄대고 떠들어대는 시정잡배들처럼 맥주병을 테이블 위에 탕탕 내려칠 때마다 맥주거품이 한가득 솟았다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무대가 전환될 때마다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데도 바닥이 마를 새도 없이 또 다시 난장판 술 파티가 벌어졌다. 주정뱅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그 술들이 눈가림용 소품이 아니라 정말로 알코올이며 배우들이 내내 그걸 마셔서 정말로 취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술에 취한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첫 공연이었던지라 아직은 조금 대사가 입에 완전히 붙지는 않은 듯 보이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버벅대는 게 오히려 더 술 취한 것처럼 실감나는 측면도 있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원작소설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디미트리가 자신의 베르휠스트 가문에 보내는 일종의 오마주다. “별 볼 일 없는 어른이 될 바에는 인류 최고의 술꾼이 되어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디미트리의 아버지를 필두로 매일같이 생산적인 일 따위는 하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기에만 바쁜 베르휠스트 가문의 남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조모. 그들은 가난하고 인간쓰레기들이라 손가락질 받고 게으르고 추레한 놈팽이들이지만, 그들이 베르휠스트이며 모두에게 인정받는 주정뱅이라는 긍지를 잃지 않는다. 술 많이 마시기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쥔 게 가문의 자랑이고, 술을 마시다 인사불성이 되어 병원에 실려 가는 건 예삿일이며, 직접 자전거 대회 ‘투르 드 프랑스’를 본뜬 24시간 술 마시기 경주를 고안해내기도 할 정도로 그들은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주정뱅이들이다. 어린 디미트리는 가출한 엄마의 빈자리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삼촌들 속에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당연하게 맥주에 콜라를 섞어 마시는 등 결코 바람직하지는 못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은 유쾌하고, 안타깝도록 아름다웠다.
전반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던 극은 결말부에 이르러 어느 정도 분위기가 반전된다. 어른이 된 디미트리는 소설가가 되기는 했지만 베르휠스트의 일원답게 알코올 중독으로 이혼 조정 중에 있으며 양육권을 빼앗길 상황에 처해 있다. 아버지는 이미 술 때문에 돌아가신 지 오래고, 할머니는 자식과 손자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로 요양원에, 삼촌들도 금주 클리닉 같은 곳에 들어가 있는, 우울하지만 현실적인 상황. 그 와중에 민속학자의 요구로 삼촌들은 디미트리나 할머니로부터 그 옛날 술꾼들이 술집에서 흥얼거리던 저속한 노래를 채록하려 하고, 디미트리는 거기에 반감을 느낀다. 노래를 채록한다 한들, 그 ‘학자들’은 그 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별 볼 일 없는, 인간쓰레기나 다름없는 주정뱅이들이 흥얼거리던 노래들, 정도로 넘어갈 뿐이다.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그 주정뱅이들이 얼마나 긍지에 차 있었는지, 그 시절이 얼마나 유쾌했는지, 그 노래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이미 지나가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 지저분하지만 아름다웠던 그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 기억을 잃은 조모가 마지막에 과거를 바라보는 듯 묘한 미소를 띠우고 흘리듯 흥얼거리는 그 노래는 그래서 슬프고, 찡하고, 안타깝고, 아름답다.
디미트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는 불행하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불행하다. 집안사람은 모두 술꾼이고, 그 와중에 도박 빚으로 가산을 탕진하기도 하고, 결국 디미트리도 그러한 전통(?)을 따라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은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함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좁게는 베르휠스트 식의 유쾌함이었고, 더 넓게는 유럽 대륙식 유머였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정뱅이가 자신의 ‘소변주머니’를 유머의 소재로 삼고, 도박 빚으로 TV가 넘어간 상황에서 ‘로이’의 콘서트 중계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마을을 헤매고, 기억을 되살리겠다며 조모가 있는 요양소에서 술판을 벌이는 웃을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희화화. 독일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울한 상황을 희화적으로 그려내는 심드렁한 듯 시니컬한 유머가 극 전체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매력을 한층 배가시킨 건 일본인 연출가의 연출이었다. 연출가가 일본인이라는 사전 정보를 가지고 봤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 자체에 녹아 있는 유머가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방식은 통속적이고 과장된 일본 특유의 ‘극적인’ 분위기에 가까웠다. 벨기에인 원작 작가와 일본인 연출가, 그리고 그걸 연기하는 한국 배우들. 두 시간 가량의 극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어우러져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난장판이고 대책 없고 구질구질한, 그러나 아름다운 그들의 인생. 그 극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었던 까닭 중 하나는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작고 낡은 소극장에서 보여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똑같은 내용이었다 해도 깔끔하고 고상한 대극장에서였더라면 한층 더 멀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투박하고 거친 소극장이었기에, 그 ‘별 볼 일 없는’ 주정뱅이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진솔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극은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무대에서 쉴 새 없이 비워지는 술병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미워할 수 없는 주정뱅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마지막에는 디미트리와 함께 그 시절을 안타깝다고 연민할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하찮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추하지만 아름다운 추억과 그에 대한 연민은 우리 모두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물의 안타까움성>을 한 개인의 특별한 자전적 이야기를 넘어 모두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을 어느 추억에 대한 오마주라고 표현한다 해서 과장은 아니지 않을까.


덤. 연극은 일주일 정도 짧게 공연한 뒤 이미 막을 내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앞에서 잠깐 언급한 원작 소설이 한국에도 번역 출판되어 있다. 소설에는 연극에서 미처 소개되지 못한 일화들도 잔뜩 들어 있으니, 유쾌한 인류 최고의 주정뱅이들, 베르휠스트 가문을 만나보고 싶다면 원작 소설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공연정보]
연극 ‘사물의 안타까움성’
공연 시기 : 2014/04/30 ~ 2014/05/07
장소 :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
출연 : 전운종, 김수아, 김보경, 윤정로 등
연출 : 쯔카구치 토모 (https://www.facebook.com/tomo.tsukaguchi)
국내 발간 원작 : ‘사물의 안타까움성’ 디미트리 베르휠스트 지음, 배수아 옮김, 출판사 열린책들 2011년 07월 20일 출간


사물의-안타까움성





《글틴 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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