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기획인터뷰]문장의 소리는 포용력 있는 문학라디오, 내구성이나 품이 넓다고 할까

  • 작성일 2015-05-18
  • 조회수 621


[글틴 10주년 기념_기획인터뷰]



문장의 소리는 포용력 있는 문학라디오, 내구성이나 품이 넓다고 할까?

- 문장의 소리 녹음현장 취재탐방기




인터뷰 : Q. 박지영(문학특!기자단 2기 학생기자)
진행·정리 : 변인숙(baram4u@gmail.com)





피디는 균형감 있게, 디제이는 입체적으로, 작가는 큐레이터처럼 녹음 참여
무려 400회 넘긴 문학 팟캐스트 ‘문장의 소리’



문장의 소리가 400회 방송을 맞이했다. 현재 김경주 시인이 프로듀싱을 맡고 있다. 최창근 극작가, 조연호 시인, 김중혁 소설가 등에 이어 400회 제작을 마쳤다. 100회, 200회 특집은 조연호 시인, 300회 특집은 김중혁 소설가가 만들었다. 디제이는 현재 김민정 시인으로 한강, 이기호, 김중혁, 황정은, 최민석, 김선우, 이문재 작가 등에게 마이크를 이어 받았다. 이렇듯 인기 작가들이 손수 만드는 작가 중심 방송인지라, 참여 작가 고유의 매력이 여느 문학 관련 매체보다 강하게 드러난다. 현장에서도 작가들이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제작진 겸 동료 작가들의 배려가 돋보인다.
지난 4월 20일 월요일, Q. 박지영 학생기자가 녹음실을 찾아 이곳의 분위기를 살피며 작가와 피디를 인터뷰했다. 녹음이 진행된 곳은 서울의 서교동,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부근의 스튜디오다. 문장의 소리 녹음과 믹싱을 전반적으로 소화하는 곳이다. 2005년 5월부터 지금까지 여러 신인, 중견 원로작가들이 이곳을 스쳐갔다. 2005년 5월 시작된 문장의 소리가 10년 넘게 이어진 곳이자, 국내 문인들의 목소리가 가장 많이 축적된 곳이다.
지금 문장의 소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홈페이지(munjang.or.kr) 외에도 유튜브, 팟캐스트 사이트 팟빵이나 아이튠즈에서도 들을 수 있다. 15년 4월 기준, 405개 클립이 업로드됐다. (http://www.podbbang.com/ch/4295)
“십 년의 긴 기간 동안 문학도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던 방송”, “기관에서 만든 팟캐스트인데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네요”, “ 김민정 시인 목소리 좋아요. 다정한 언니 같아요” 등등의 청취자 반응이 댓글로 달려 있다. 처음에는 소수의 문학팬들이 듣기 시작했지만, 차차 문학 외적으로도 청취자 층이 넓어졌다. 회차가 쌓이면서 한국문학의 ‘살아 있는 박물지’ 역할도 하고 있다.


Q. 박지영 글틴 기자가 녹음 스튜디오를 방문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으로, 이원경 기술감독이 ‘명작극장’에 참여한 배우 목소리를 매끈하게 다듬고 있었다. 이 날은 이범선 작가의 1959년 작 ‘오발탄’ 제2막 중 ‘철호의 어머니’ 대사 레벨을 조절하는 중이었다.
“난 모르겠다. 암만 해도 난 모르겠다. 삼팔선. 그래 거기에다 하늘에 꾹 닿도록 담을 쌓았단 말이냐? 어쨌단 말이냐? 제 고장으로 제가 간다는데 그래 막는 놈이 대체 누구란 말이야? 이게 어디 사람 사는 게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명작극장’은 문장의 소리에서 올해 새롭게 선보여, 1920년부터 2000년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이나 희곡을 배우들이 읽어주는 코너다. 김경주 시인이 기획, 박성석 연출가가 각색과 연출, 허희 문학평론가가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았다.
녹음실에서 ‘명작극장’ 사운드 믹싱이 이뤄지던 오후 4시경, 정지향 소설가, 김경주 시인, 김민정 시인 등 제작진들이 차례대로 도착했고, (5월 출연진) 심상대 소설가, 박근혜 가수 등 출연자의 녹음이 진행되던 중, 짤막히 인터뷰를 진행했다.


002


[정지향(구성작가) 소설가에게 듣는 문장의 소리]


문창과 재학 중 ‘문장의 소리’ 구성작가로 활동
선배 작가에게 조언 구하듯 즐겁게 참여


Q. 박지영 학생기자 : 작가 일은 어떻게 하게 됐나?
A. 정지향 구성작가 : 2014년에 등단해 아직 학부생인데, 문장의 소리 측에서 같이 하자고 연락 주셔서 시작했다. 구성 작가는 데뷔 5년 미만 작가가 하는 편이고, 디제이나 피디는 등단 연차가 좀 있는 분이 하신다고 들었다.


Q. 박지영 : 현재 전공은?
A. 정지향 : 문예창작과.


Q. 박지영 : 초대 작가들의 섭외 기준이 있나?
A. 정지향 : 기존에 출연하지 않으셨던 분들, 처음 나오는 분들 위주로 많이 한다. 다시 섭외할 때는 2년 정도 시간을 둔다.


Q. 박지영 : 대본을 쓰려면 출연자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고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아야 할 텐데, 본인만의 집필 노하우가 있나?
A. 정지향 : 일단 신작이 나오는 작가들 위주로 섭외를 하니까 신작은 최대한 노력해 읽는다. 소설은 페이지수가 빽빽하니 전체적으로 본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한다. 대본 쓸 때 내가 궁금한 걸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선배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느낌으로 질문지를 구성한다. 힘들지 않다. 재미있게 하고 있다.


Q. 박지영 : 대본과 실제 방송은 유동성이 있나?
A. 정지향 : 문학 외 출연자에게는 예상 답변을 받지만, ‘작가의 방’ 코너는 작가에게 질문지를 보내고 따로 답변지를 받지 않는다. 아무래도 부차적인 게 나오고 유동성이 있는 편이다.


Q. 박지영 : 회의는 언제 하나?
A. 정지향 :수시로 한다. 피디 님과 녹음 날에도 많이 하고, 회의 때는 섭외를 한다. 그동안 문장의 소리에 안 나온 분인지 확인하고 신간을 본다.


Q. 박지영 : 코너 구상도 같이 하나?
A. 정지향 : 기본 포맷이 있으니 코너를 구성하는 부분은 피디 님이 하시고 각 회에 대한 구성은 내가 한다. 작가의 방 질문은 10개 정도 들어간다.


Q. 박지영 : '글틴' 출신 작가로 이 일을 하고픈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A. 정지향 : 내 주제에 무슨. (웃음) 2월에 시작해서 지금은 일한 지 3개월밖에 안 됐다. 한 달에 두 번 녹음을 하니까, 여기 오는 날은 카페에서 선배들이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듣는 기분이다. 나오시는 분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한다.


Q. 박지영 : 글틴 때 어느 게시판에서 주로 활동했나?
A. 정지향 : 백일장 많이 다녔는데, 1학년 때 ‘주장원’ 받은 적이 있다. 얼마 전에 생각이 나서 보니까 글이 남아 있었다. 비밀번호 생각해 내서 아득바득 삭제했다. 깜짝 놀라서.


Q. 박지영 : ‘궁냥궁냥’ 게시판 보면 자기가 쓴 글 내려달라는 졸업생들이 있다.
A. 정지향 : 젊은 시인들 중에 글틴 출신 있는데, 다들 글 내린다고 하더라. (웃음)



001


[김경주(피디) 시인에게 듣는 문장의 소리]


문장의 소리는 지속적으로 열려 있는 콘텐츠
문학 안팎의 목소리를 듣는다.


Q. 박지영 학생기자 : 문장의 소리 400회를 맞이한 소감은?
A. 김경주 프로듀서 : 내가 400회를 다 한 건 아니지만, 정말 많은 작가들이 문장의 소리에 출연했다. 지금도 출연했으면 하는 작가가 되게 많다. 프로듀서를 해보고 10여 년 동안 거쳐 왔던 손님들 보면서 문학 외연이 넓고, 목소리를 가진 분들이 많단 생각을 했다.
물리적인 시간보다는, 문학과 관련된 콘텐츠가 예술 정책이나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성을 갖는다는 게 중요하다. 문학은 동시대성을 반영하긴 하지만 그 어떤 장르보다도 인간의 본질에 닿아 있고 인간의 떨림에 관련을 맺고 있는 장르다. 지속적으로 작가와 문학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프로가 있다는 게 가치 있다.


Q. 박지영 : 문장의 소리만의 매력이 있다면?
A. 김경주 : 열려 있는 콘텐츠이다. 원로 선생님 근황이 궁금할 땐 모실 수 있고, 젊은 작가들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지방 문학을 다룰 때는 (좋은 의미로) 토호의 지방색이 드러난다. 문학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책 작업을 하거나 다른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도 초청하고 있다. 갖고 있는 내구성이나 품이 넓다고 할까? 포용력이 넓은 팟캐스트다.


Q. 박지영 : 작가로서 프로듀서를 하며 느끼는 점은?
A. 김경주 : 작가로서도 좋다. 처음 시작 했을 때는 굉장히 마니아적인 느낌이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뿌리를 만들고 있다. 20~30년 뒤, 한국 근현대사에서 정말 많은 작가들의 목소리가 아카이브되는 것이다.
라디오 명작극장도 올해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 문학이 굉장히 소중하다. 독서 시장이나 출판 시장에서 라이트노블 등 외국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고 출판 점유율도 외국문학이 높지만, 우리 문학 쪽 유산이 중요한 게 많다. 191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근대문학을 각색해 연극배우들이 (라디오 드라마 형식으로) 들려준다. 대학로 스튜디오에서 만든다. 배우들, 연출이 따로 있다. 나는 기획을 했고 각색을 같이 했다.


Q. 박지영 : 프로듀서로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A. 김경주 : 이제 2년 차인데, 그 사이 디제이가 세 번, 작가가 세 번 바뀌었다.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작가들이 만드는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팟캐스트 특징 자체가 ‘리버럴’하잖나? 콘텐츠 운영 방식은 탄력적이다. 특히나 작가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어떤 지점에서 자기 목소리를 담고 싶어 하는지, 친밀성이 있다. 그런 점이 저희들이 갖고 있는 지점이다.
문학 바깥 얘기도 열심히 들어야 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들만 듣는 건 아니니깐. 새로운 문화 생태계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박지영 : 팀워크는 어떤가?
A. 김경주 : 지금 디제이는 김민정 시인이다. 사전에 방송 원고와 질문지를 주고받아서 피드백을 한다. 디제이마다 초청 작가들과 친해지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다 다르다. 디제이의 화음과 화성에 의해서 색깔이 정해지니까 디제이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나도 라디오 고정 출연을 꽤 많이 했다.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9개월, ‘정엽의 푸른 밤’을 1년 가까이 했다. 그런데 프로듀서로서는 균형감을 갖는 게 되게 중요하다. 어떤 작가를 섭외하고 신간을 어떻게 청취자에게 전달하느냐,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 디제이는 입체적인 방식으로, 작가는 전반적인 큐레이터적인 역할로서 방송을 맡고 있다. 이원경 실장님은 이 스튜디오의 주인이기도 한데, 모든 작가를 다 봤으니깐 이 분의 경험과 노하우가 방송에 도움이 된다.
이후에 다른 디제이와 프로듀서가 오겠지만, 문장의 소리만큼은 여러 가지 입장들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문학의 결을 찾아가며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박지영 : 제작하면서 애로사항은?
A. 김경주 : 한 번 정도 목소리 듣고 싶은 작가들이 있는데, 은둔자형으로 개인 기질 때문에 못 나오면 아쉽다. 그 외에는 즐겁게 하는 편이다. 다만 오래 하고 싶다. 왜냐하면 뭐든지 하나를 제대로 보려면, 좀 깊게 겪어야 되잖나? 촌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애로사항은 별로 없는 것 같다.


Q. 박지영 : 문장의 소리만의 매력이 있다면?
A. 김경주 : 열려 있는 콘텐츠이다. 원로 선생님 근황이 궁금할 땐 모실 수 있고, 젊은 작가들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지방 문학을 다룰 때는 (좋은 의미로) 토호의 지방색이 드러난다. 문학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책 작업을 하거나 다른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도 초청하고 있다. 갖고 있는 내구성이나 품이 넓다고 할까? 포용력이 넓은 팟캐스트다.


Q. 박지영 : 방송에 대한 주변 피드백은 어떤가?
A. 김경주 : 일단은 물리적인 측면에서, 홈페이지 한 번 올라가고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도 올라가니 작가들에게 오는 피드백이 있다. 굉장히 많은 피드백이다.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중요한 것 같다. 팟캐스트나 SNS, 유튜브로 연동이 안 되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굉장히 많이 접할 수 있다. 넓게 퍼져 있고, 인지도도 두꺼워졌다. 홍보 차원이라기보다는, 작가들이 책을 내고 문장의 소리 나가는 게 어깨 힘 들어가지 않고 참여하고 싶은 일인 것 같다. 공영방송이나 다른 방송에 출연하는 것에 비해 자기 책 이야기를 가장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정작 내가 프로듀서란 것은 노출을 많이 안 한다. 방송 콘텐츠 자체가 알려져 있다. 공개 방송을 일 년에 두세 차례 하는데, 청소년 현장에 많이 갔다. 안양예고 학생들이 참여한 적도 있다. 거리로 나가 ‘보이는 라디오’도 했다. 이번 6월에도 나주에 가서 한다.


Q. 박지영 : 문장의 소리에서 청소년이 참여할 만한 콘텐츠가 있을까?
A. 김경주 : 구체적인 청소년 코너는 현재로서는 없는데, 좋은 기회가 있다면 만들어질 수 있다. 아직은 생각 못 했지만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청소년 잡지 ‘풋’ 창간할 때 편집위원으로 일했고, 글틴에서도 4년 넘게 글쓰기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제자들이 꽤 많이 데뷔했다.


Q. 박지영 : 특별한 청취자 사연이나 이벤트를 기획한 게 있나?
A. 김경주 : 문학보다도 작은 공간의 콘텐츠, 시스템이나 속성의 문제에 대해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고 질문하면 좋겠다. 나도 활동 초기에 라디오 방송 구성작가로 일한 경험이 있다. ‘방송 작가는 어떻게 해요?’, ‘라디오 팟캐스트는 어떻게 만들어요?’, ‘라디오 프로듀서는 어떻게 하나요?’ 등 문학을 하는 친구들이 요청하면 언제든지 얘기할 수 있다.


Q. 박지영 :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글틴들이 있다. 이들의 출연도 가능할까?
A. 김경주 : 두드리면 된다. ‘이런 게 있는데 소개하고 싶어요’ 얘기하면 된다. 내가 보는 것의 한계가 있다. 프로듀서로서의 입장은 항상 열어두고 있다. 독립서적, 독립책방 등 특집이 마련되면, 글틴 참여도 환영한다.


003



《글틴 웹진 5월호》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