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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게임을 한다 - 언더테일 2

  • 작성일 2017-07-01
  • 조회수 2,113

[serialization]



우리는 게임을 한다

- 언더테일 2



염성진





게임을 향한 의지


1회차 플레이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해피 엔딩’, 즉 불살 엔딩을 보기 위해선 아무도 죽이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특정 괴물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게임을 처음 플레이한다면 아무도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하므로,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자신이 노말 엔딩까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게임의 데이터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리셋 플레이는 평행이론을 떠오르게 한다. 어떤 플레이어는 자신이 처음 선택했던 결과와 다른 게임의 진행을 보고 흥미로워 할 테고, 어떤 플레이어는 이미 겪었던 같은 사건들의 흐름에 지루해할 것이다. 어쨌든 언더테일이라는 게임은 첫 번째 플레이에서 해피 엔딩을 절대 볼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게임이니, 이 리셋의 과정은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던 ‘게이머의 자세’를 불러일으키려는 제작자의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더 나은 엔딩’을 위해, 게이머는 리셋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가, 되어줄래요?


가장 먼저 친구가 될 수 있는 괴물은 스노우딘에서 플레이어를 막았던 파피루스이다. 조금 멍청해 보이지만 유쾌한 파피루스와의 만남들은, 이전에 이야기했듯 폐허에서 무거웠던 게임의 분위기를 환기해준다. 스노우딘에서의 모험은 유머로서의 게임에 충실하다고 할까. 파피루스와 돌발 상황들을 겪을 때마다, ‘인간 사냥에 미친놈’이라고 동생을 소개한 형 샌즈가 동시에 파피루스는 ‘위험하지 않다’고 이야기한 이유를 점점 납득하게 된다. 인간을 잡아서 왕실 근위대로 인정받겠다고 파피루스는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의 퍼즐은 허술한 장난에 가깝고, 싸움에서 그는 주인공을 결코 죽이지 않는다. 다른 괴물들과의 전투와 달리 파피루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하면 주인공은 죽지 않고 파피루스의 손님방에 가두어지는데, 문은 안에서 잠겨 있어서 플레이어는 창고를 빠져나가 다시 그와 싸울 수 있다. 심지어 계속해서 파피루스에게 지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전투가 끝나면 플레이어는 파피루스와 친구가 될 기회를 얻고, 전투 중 파피루스를 유혹했다면 ‘데이트’를, 아니라면 ‘친구 되기’를 그의 집에서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파피루스와는 언제나, 어떻게든 친구가 될 있는 셈이다. 주인공이 파피루스를 죽이려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여담으로, ‘데이트’와 ‘친구 되기’에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파피루스가 데이트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데이트가 더 재미있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왕 재미있는 거, 더 재밌으면 좋지 않은가. 게임은 재미를 위해서 하는 것이니만큼.


파피루스와 친구가 되었다면, 다음은 왕실 근위대의 수장 언다인의 차례다. 파피루스와 친구가 되었다면 언다인에게서 도망칠 때 그가 언다인에 집에서 셋이 놀자고 전화를 거는데, 이후 언다인이 핫랜드에서 쓰러졌을 때 물을 뿌려 주었고 이때까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면 파피루스와 함께 그녀의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자신이 죽여야 했던 인간이 파피루스와 함께 오니 언다인은 탐탁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친구 되기’가 성사되는 것일까? 여기에도 파피루스의 천진함이 한 몫 하게 된다.



언다인을 자극하는 파피루스


파피루스는 호전적이고 도전을 좋아하는 언다인의 성격을 잘 알기에, 언다인이 주인공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자신의 과대평가였다며 그녀를 도발하고 도망친다. 이윽고 현 시간부로 베프가 되겠다며 ‘도전’을 받아들이는 언다인. 인간과의 어색함을 극복하고 친해지기 위해 원래 파피루스가 받기로 했던 요리 수업을 진행하기로 하는데, 의욕이 넘쳐 불조절에 실패해 그만 집이 불이 나 버리고 만다. 언다인은 자신의 불같은 성격이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며, 친구 같은 거 관두고 지난 싸움의 결판을 내자며 싸움을 건다. 그녀는 선제공격을 허락하고, 플레이어는 공격하는 척을 할 것인지 실제로 공격을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지만 이미 주인공에게는 언다인을 해칠 마음이 없는지 실제로 공격을 해도 전혀 먹히질 않는다. 괴물들의 몸은 마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공격하는 자의 살의나, 공격받는 자의 의지에 따라 공격의 피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이 정말로 괴물을 해칠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언다인은 주인공을 친구로 인정하게 된다.


언다인은 친구가 된 후 알피스 박사에게 전해달라며 편지를 준다. 플레이어는 알피스의 연구소 입구에 편지를 밀어넣고, 발신자의 이름이 적히지 않은 편지에 알피스가 오해하면서 데이트가 시작된다. 알피스 역시 데이트에 서툴러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서처럼 애정도를 높여야 한다며 ‘아이템’을 주인공에게 주려 한다. 철제 갑옷 광택제, 비늘에 바르는 방수 크림, 마법 창 수리 세트. 전부 언다인을 위한 것들이다. 이어 아이템은 잊어버리자며, 알피스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언다인과 항상 갔던 곳이라며 쓰레기장으로 주인공을 데려 간다. 쓰레기장에선 언다인을 마주치게 되는데, 알피스는 자신이 데이트하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며 숨고, 플레이어는 편지는 자신이 전해 주겠다며 돌려달라는 언다인을 따돌린다. 그렇게 언다인이 가 버린 후, 알피스는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언다인이고, 주인공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데이트하는 척 한 것이라고 말이다. 이어 주인공은 거짓말쟁이인 자신에겐 언다인이 과분하다는 알피스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를 주기 위해 역할극을 하자고 제안한다. 괴상한 선택지로 가득한 역할극을 하고 있으면, 그 때 언다인이 주인공과 알피스를 발견한다. 그제야 언다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알피스. 작은 자신의 거짓말들을 낱낱이 이야기하며 그것들이 모두 언다인에게 어필하기 위했던 것이었다고 자신을 자책하지만, 호탕한 언다인은 알피스의 분석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좋아한다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엉망진창인 데이트는 언다인이 파피루스를 시켜 알피스에게 자존감 트레이닝을 받게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후에는 파피루스로부터 알피스의 연구소로 가 보라는 전화를 받게 되며, 여기서부터 데이트의 과정은 끝나고 엔딩을 향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대체 알피스는 무슨 거짓말을 했길래 그렇게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일까. 어떤 큰 거짓말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 연구소 안에는 진실을 알고 싶으면 욕실 속으로 들어오라는 쪽지가 놓여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


욕실 안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동력이 저하된다는 경고와 함께 플레이어는 정전된 연구소에 떨어지게 된다. 연구소 내부에는 알피스가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실험 일지들이 흩어져 있으며, 플레이어는 이것들을 확인하며 동력실을 열기 위한 열쇠들을 찾는 탐험을 하게 된다. 연구소 내부에는 지금까지 만났던 괴물들과는 달리 흉측하게 일그러진 형체들의 괴물들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흡사 공포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가 연구소 전체에 퍼져 있다.
알피스의 실험 기록과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이들은 죽어가던 괴물들이 한데 섞인 ‘융합체’라고 한다. 여러 괴물들이 그대로 합쳐진 것도 있는가 하면, 서서히 과거의 기억을 잃어가는 흐릿한 의식의 괴물도 있는 등 전투에는 혼란스럽고 어려운 점이 많지만, 지금까지 상대해 온 종류의 괴물들이 합쳐진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플레이어는 이 난관을 제법 쉽게 헤쳐 나갈 수 있다. 알피스의 말처럼 배가 고파 조금 제멋대로가 된 것 뿐이다. 겉모습이 흉측해 보여도, 모두 평범한 괴물들인 것이다.



순서대로 정리한 알피스의 실험 기록


알피스의 연구 일지에는 ‘의지’에 대한 실험 기록이 담겨있었던 셈이고, 그녀가 자존감이 없어 보이는 이유도 융합체가 되어버린 괴물들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알피스의 과거 외에도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괴물의 육체는 의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버린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인간도 괴물도 아닌 꽃에 의지를 투여해 보았다는 것. 게다가 사라져버린 ‘황금꽃’의 정체는 플라위일지도 모른다는 것까지도.
그녀가 성 근처에서 발견한 테이프는 노말 엔딩에서 이야기했던 아스고어 가족의 과거가 담긴 듯 보인다. 모두 소리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괴물들의 목소리가 저마다 다른 게임의 특성상 토리엘과 아스고어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게임을 시작할 때 플레이어가 지었던 이름이 비디오 속에서 자꾸 언급된다는 점이다. 아스고어를 아빠라 부르는 아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두 아이는 왕자 아스리엘과 첫 번째로 지하에 떨어진 아이의 이름인데, 그 아이는 이미 죽지 않았는가. 비디오에서는 인간 아이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고, 주저하는 아스리엘이 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강해져서 모두를 해방시키자’는 아스리엘의 말과 아스고어가 먹고 아팠던 버터컵 꽃을 가져오겠다는 계획, 게다가 마지막 비디오에서 죽음의 고비에 빠진듯한 아이의 모습에 아스리엘이 해내자고 다짐하는 것은 아이의 죽음이 의도된 것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결계를 빠져나가려는 데에는 인간 하나와 괴물 하나의 영혼이, 결계를 부수는 데에는 일곱 인간의 영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1회차 플레이를 통해 알게 된 플레이어는, 이 죽음이 아스리엘을 결계 밖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결국 ‘진실의 연구소’라는 이름답게 이곳에서 언더테일의 세계가 많이 드러난 셈이다. 다만 플레이어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의문점이 생기기도 했다. 왜 플레이어가 지은 이름이 첫 번째로 떨어진 아이의 이름인가? 전투를 할 때 가장 왼쪽에 있는 이름도, 메뉴 버튼을 눌러 상태 창을 열면 확인되는 이름도, 분명 플레이어가 지은 이름이 아닌가? 얼핏 모순 같아 보이는 이 문제는 엔딩에 가서 확인할 수 있다. 연구소의 동력을 복구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면,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갔다’는 의문의 통화가 걸려온 뒤 플레이어는 왕의 성에 도달하게 된다.



Here we are


주인공이 타고 온 엘리베이터는 덩굴로 막혀 있어 뒤로는 돌아갈 수 없다. 왕의 성에서 플레이어는 왕 아스고어와의 결전을 다시 맞아야 하는데, 시간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아스고어는 이전과 똑같이 전투를 준비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전투에 돌입하려는 찰나 주인공을 공격하려던 플라위를 내쫓던 것과 같은 불길이 아스고어를 덮친다. 토리엘이 나타난 것이다. 이 결계를 지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그런 주인공이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고 한다. 아스고어의 아내였던 토리엘은 자신을 반기는 아스고어에게 얌전히 인간의 영혼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그의 소극적 태도를 비난하고, 아스고어 역시 자신을 자책하며 싸움을 멈춘다. 이어 언다인, 알피스, 파피루스, 샌즈, 그리고 메타톤까지. 플레이어가 친구가 되어온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서로를 소개하고 인사하며 분위기는 시끌시끌해진다. 이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토리엘은 주인공이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사귀었으니 지하에서 계속 살아도 분명 행복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누가 이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일까. 알피스는 파피루스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파피루스는 이 일을 ‘작은 꽃’이 도왔다고 한다.


또다시 주인공을 가로막는 플라위



이윽고 여섯 영혼을 이미 흡수한 플라위가 나타난다. 플라위는 괴물 친구들을 모두 구속하고, 지금 이 상황을 모두 주인공이 만들었다며 비난한다. ‘이들이 널 사랑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플라위의 의미심장한 말은 계속 이어진다. 자신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이것이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주인공이 만족한 채로 지하 세계를 빠져나가면 게임에서 ‘이기게’ 되는 것이고, 주인공이 ‘이겨 버리면’ 더 이상 자신과 놀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 결국 주인공이 승리하지 못하게 백만 번이라도 죽이면서 영원히 여기에 붙잡아둘 것이라는 그는, 첫 번째 만남에서처럼 피할 수 없는 총알로 죽이려 한다. 그러나 여기서 붙잡힌 괴물들이 하나씩 플라위의 공격을 막아 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격려의 말들. 또 지금까지 지하에서 만나온 괴물들도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주인공에게 힘을 나누어 준다. 롤플레잉 게임의 해피 엔딩을 향하는 이 왕도 같은 전개에서, 한 번 더 반전이 드러난다. 한자리에 모인 모든 괴물들의 영혼까지 플라위가 흡수해 버리는 것이다. 한 인간의 영혼은 모든 괴물의 영혼을 합친 것만큼 강하다, 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일곱 개의 영혼을 모두 모은 셈이 되는 것이다. 노이즈와 함께 화면은 하얗게 변하고 그 뒤에 플레이어는 작은 염소 괴물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꽃의 모습은 질렸다며 플레이어가 지었던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괴물. 그 이름을 가졌던 아이의 ‘최고의 친구’인 아스리엘 드리무어다.



죽지도, 죽이지도 말아줘


곧바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된다. 아스리엘은 더 이상 세계를 파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며, 주인공을 쓰러뜨려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을 되찾아 모든 것을 되돌리겠다고 한다. 플레이어의 모험을 모두 무로 돌려놓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할 것이라고. 재미있는 점은 아스리엘이 게임이 리셋되어도 플레이어는 ‘해피 엔딩’을 보기 위해 다시 여기까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듯 말을 한다는 부분에 있다. 아스리엘이 플라위였던 때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해피 엔딩을 쥐고 플레이어를 패배시킬 테니 포기하지 말고 자신과 계속 ‘놀아달라는’ 뜻인 셈이다. 이것은 지하 세계에서 만난 괴물들과 교감하고, 그로 인해 더욱 해피 엔딩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게이머의 의지를 꿰뚫어 보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 의지가 정말 대단해서인지, 이 마지막 관문에서는 죽을 수 없다. 체력이 0이 되고 영혼이 쪼개지려는 순간, ‘하지만 버텨냈다’라는 말과 함께 다시 전투에 돌입한다. 전투 자체는 게임의 주도권을 뺐기는 노말 엔딩에서의 신선한 충격과는 달리 꽤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아스리엘의 모든 공격을 피하면, 지금까지는 진정한 힘의 일부였다며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까지도 기존 게임들의 ‘보스 캐릭터’다운 전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재미있는 것은 지금부터다.



길잃은 영혼 부르기


모습이 바뀐 아스리엘 앞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몸부림뿐이고, 그는 플레이어가 죽을 때마다 이 세계에서 점점 멀어진다고, 친구들도 플레이어를 잊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마치 리셋을 하라는 협박처럼 들린다. 다시 게임을 처음부터 시작해서 자신과 놀아달라고. 하지만 플레이어는 여기까지 와서 멈출 리 없다. 그 플레이어의 의지에 맞추어 게임도, 세이브 파일을 불러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아스리엘에게 흡수된 다른 영혼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는 힌트를 준다. 이어서 ‘행동하기’ 버튼이 ‘부르기’ 버튼으로 바뀌며, 괴물 친구들의 영혼을 불러 기억을 되돌릴 수 있게 된다.1) 이전까지 겪어온 전투들의 경험을 살려 여섯 친구들의 기억을 되찾으면, 아직 불러와야 할 사람이 남았다며 플레이어는 아스리엘의 이름을 부른다. 아스리엘은 플레이어가 지은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와 헤어지기 싫다며 제발 자신이 이기게 해 달라고 아이처럼 울기 시작한다. 이윽고 아스리엘은 엄청난 공격을 퍼붓지만, 플레이어의 체력은 소수점까지 떨어지며 0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외롭고 무서웠다는 아스리엘의 고백이 이어지며, 전투는 끝이 난다.

1) 영어 원문에서는 게임을 저장(save)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다른 무언가를 구할(save)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부르기’ 버튼도 원문에서는 ‘구하기(save)'이다.


사실은 아스리엘도 주인공이 첫 번째로 떨어진 그의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아스리엘을 부르는 회상 장면에서 나왔던 과거에 떨어진 아이는, 자세히 보면 티셔츠의 줄무늬가 하나다. 지금 플레이하는 주인공의 티셔츠는 줄무늬가 둘이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떨어진 인간의 이름을 묻던 것은 애초에 우리가 조종할 주인공이 아닌, 첫 번째로 지하에 떨어진 인간의 이름을 정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아스리엘은 주인공의 이름을 묻고, ‘프리스크’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 아스리엘은 영혼이 없던 꽃일 때와 달리 모두의 영혼이 자신에게 들어오자 자신의 감정 뿐 아니라 괴물들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며,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끔찍한 일들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플레이어가 용서를 받아들이든 아니든, 아스리엘은 영혼들을 되돌리기 전에 ‘일곱 개’의 영혼이 모인 지금이야말로 괴물이 자유로워질 때라며 결계를 부순다. 모든 괴물의 염원이 하나라는 말처럼, 괴물들의 영혼 모여 하나의 인간 몫의 힘을 발휘하는 것인 셈이다. 그 뒤, 자신은 꽃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며 작별을 고한다. 엄마, 아빠를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결계를 부수는 아스리엘



다시, 어떤 엔딩


이후 프리스크는 토리엘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며, 다들 기억이 없고 결계가 부서졌다는 말을 듣는다. 이제야 비로소 해피 엔딩에 도달한 것이다. 부서진 결계를 넘어 지상으로 올라가면, 프리스크는 아스고어로부터 괴물과 인간 사이의 대사 역할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토리엘과 함께 살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지금까지 만나온 괴물들이 지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며, 게임은 끝이 난다. 결계를 통해 나가면 괴물들 또한 모두 지상으로 올라가는데, 그 전에 플레이어에겐 자유로운 행동을 할 시간이 주어진다. 지금까지 모험했던 지하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만났던 괴물들과 지하에 나가는 소감을 묻거나 하는 식으로 소소한 변화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결국 불살 엔딩은 고전적인 롤플레잉 게임의 재미를 따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게임에의 이입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메타게임적 요소들이 받쳐주는 식으로 이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언더테일의 재미와 즐거움을, 글에 다 담아낼 수 없는 부족한 나의 능력이 안타깝기도 하다. 때문에 글의 끝에 노말 엔딩부터 불살 엔딩까지 플레이 영상의 전부를 남겨 두려고 한다.
노말 엔딩에서 확인했던 언더테일 세계의 수수께끼는 어느 정도 풀렸지만, 그리고 ‘진짜 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결말도 맞이했지만, 왜 프리스크에게 첫 번째로 떨어진 아이의 이름이 계속 따라다녔는지, 플라위는 왜 그렇게 ‘죽거나 죽이거나’를 외치는 꽃이 되었는지 등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기도 하다. 게다가 이렇게 플레이어의 자유도가 높은, 게임은 아직 해 볼 것들이 많다. 실제로, 해피 엔딩을 ‘평화 엔딩’이 아니라 ‘불살 엔딩’으로 부르는 이유도, 괴물을 상처 입히면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게임의 시스템을 이용해서 ‘폭력적으로’ 아무도 죽이지 않는 방법 역시 해피 엔딩을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엔딩을 본 플레이어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되어야 할까. 게임을 다시 켜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 괴물들에게 가장 큰 적은 리셋의 힘을 가진 플레이어라며, 프리스크와 괴물들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되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플라위가 나타난다. 여기서 그 말에 동의하고 게임을 멈출 수도 있지만, 시간을 되돌려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길 또한 남아 있다. 다음 글에서는 그 다른 엔딩, 몰살(학살) 플레이에 관해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 (영상 재생 목록) 노말 ~ 불살 엔딩까지의 언더테일 플레이 영상












작가소개 / 염성진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국어국문학과
글을 쓰고 싶고, 음악을 하고 싶고, 게임을 하고 싶습니다.


《문장웹진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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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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