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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게임을 한다 7 - 나의 게임 이야기

  • 작성일 2017-12-01
  • 조회수 1,344

[serialization]



우리는 게임을 한다7

- 나의 게임 이야기



염성진





재미를 찾아서


나는 게임을 한다는 일에 애정이 가득해서, 해오던 게임이 익숙해지면 늘 새로운 게임을 찾고 싶어진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요즘에는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게임이 없다. 애정을 쏟을 게임을 찾기 위해서는 책을 읽을 때처럼 닥치는 대로 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인터넷을 켜고 게임을 찾으려 하면 돌연 머릿속이 멍해진다고 할까. 세상에 게임은 너무나도 많고 재미있는 게임 역시 많을 것이지만 그것을 찾는데 드는 에너지를 소비할 용기가 지금 내게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에 나는 예전에 했던 게임들을 다시 건드려보거나 시리즈 게임의 후속편들을 쭉 둘러보곤 하는데, 문득 나는 왜 그들을 재미있어했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온 게임들을 파헤치다 보면 나를 즐겁게 해줄 새 게임의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이번에는 내가 플레이해온 게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용사는 자유가 필요해


메이플스토리. 우리나라 게이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 이름은 현재까지도 변화무쌍한 길을 걸어오며 장수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데, 지금의 메이플스토리는 세계를 위협하는 ‘검은 마법사’라는 존재를 물리치기 위한 용사들(플레이어)의 이야기로 간단히 정리된다. 때문에 전형적인 온라인 RPG게임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메이플스토리에 이런 ‘스토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목에 ‘스토리’가 들어감에도, 출시 당시 메이플에는 이렇다 할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메이플 월드’의 지도. 지금은 다른 세계까지 발견되어 더 넓어졌다



RPG게임의 기본은 플레이어의 분신인 아바타, 즉 자신의 캐릭터를 조종하며 게임 속 세계를 모험하는 것인데, 메이플의 경우 이 캐릭터가 주어진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야 한다는 제약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몬스터를 사냥해서 강해지거나, NPC들의 부탁인 퀘스트를 들어주거나, 다른 플레이어들과 협력하거나 유저 커뮤니티인 길드를 만들어 친목을 도모하며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원하는 일이 있다면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대부분 해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다른 온라인 RPG게임들 역시 이러한 ‘자유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메이플스토리는 RPG가 중시하던 ‘스토리’를 배제하고 아기자기한 그래픽을 십분 살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 헤네시스, 도시의 슬럼가를 표현한 커닝시티, 하늘 위에 떠 있는 요정들의 땅 오르비스, 척박한 전사들의 영역 페리온 등 메이플 월드의 지역들은 특정 ‘세계관’이라는 판타지의 전형적인 제약이 없었기에 독자적이고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꾸며질 수 있었다. 물론 메이플이 게임의 새 장을 열어젖힌 혁신적인 게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의 내게 이런 매력은 충분히 푹 빠져들 만큼 치명적이었다. 그렇게 메이플스토리는 지금까지도 간간히 찾게 되는 게임으로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명소?에서 사진을 찍는 플레이어들도 많다



그 자유롭고 귀여운 메이플스토리 세계 속에서 나는 단순히 레벨을 올리고 강해지는 데 연연하지 않았다. 몬스터에게 공격받지 않는 기술을 이용하여 내 캐릭터보다 훨씬 강한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던전을 탐험해보기도 하고, 애정을 담아 키우던 캐릭터가 빠져나오기 힘든 마을에 영영 갇혀버리기도 하면서, 나만의 모험으로 메이플의 ‘스토리’는 플레이어가 직접 써내려간다는 말을 직접 체험해왔다. ‘검은 마법사’라는 메인 스토리의 흐름이 정해져버린 지금도, 앞서 말한 메이플의 강점들은 여전히 살아 있어 자유로운 모험을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업데이트를 거쳐 추가된 여러 캐릭터들의 서사가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모험가’ 직업을 선택하고 이들을 메이플의 ‘주인공’이라고 칭하곤 하는데, 이것은 올드 게이머들이 메이플만의 자유도를 그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눈을 마주치면


어느덧 20주년을 넘긴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쭉 즐겨온 게임 중 하나이다. 포켓몬이라는 생명체를 기르고 힘을 겨루는 ‘포켓몬 트레이너’들의 세계 속에서 플레이어는 포켓몬 리그 챔피언이 되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아이가 되는데, 이렇게 짜인 이야기의 틀은 지금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음에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플레이어는 포켓몬 세계 속 각 지방을 여행하며 동료가 되는 포켓몬들을 만나 배틀을 거듭하고, 악당들을 물리치기도 하며 어엿한 한 명의 트레이너로 성장한다. 플레이어가 주인공이 되어 게임이 보여주는 서사의 길을 착실히 따라간다는 점은 평범한 RPG게임들과 다르지 않다. 이는 플레이의 자유가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이 탄탄하고 재미있는 모험의 구조만이 포켓몬의 장수 비결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포켓몬의 재미는 플레이어가 한 명의 챔피언이 된 뒤에, 즉 스토리를 클리어한 뒤에 모습을 드러낸다.


한글화 된 첫 포켓몬 시리즈인 ‘금/은’버전의 타이틀 화면



스토리 플레이를 마친 플레이어는 집으로 돌아오고, 아무런 제약 없이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이 때 플레이어에게 남겨진 컨텐츠는 후일담이나 외전 에피소드 플레이, 모든 포켓몬을 잡아 포켓몬 도감 완성하기, 지방마다 다른 시설 체험 - 영화 촬영, 서핑, 포켓몬 콘테스트 등 게임마다 모두 다르다 - 들이 있는데,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통신’기능을 통한 컨텐츠들이다. 플레이어는 근거리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플레이어와 포켓몬을 교환하거나, 서로 대전하는 등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플레이어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꽤나 많아서, 게임을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교류는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이 된다. 때문에 포켓몬이 있는 나라라면 어디든 포켓몬 커뮤니티가 있고, 이는 플레이어들이 각각 한 명의 트레이너로서 포켓몬의 세계에 뛰어들어 활동함을 의미한다.


다른 플레이어와의 통신 대전



게임의 개발자인 타지리 사토시는 고사양의 화려한 연출을 가진 게임보다는, 플레이어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한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 1990년대 당시 포켓몬은 가정용 게임기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휴대용 게임기에 흑백으로 제작되었고, 이것은 플레이어들이 어디서든 만나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게임이 인기를 얻은 것은 아이들의 입소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제작자의 생각이 제대로 적중한 것인 셈이다. 정해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플레이의 폭이 좁은 게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통신을 통한 ‘함께 플레이’가 재미를 배가시키는,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되기 이전이었던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게임이었던 것이다. 게임은 혼자 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포켓몬을 통해 배웠다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먹을 때마다 새로운 시리즈가 출시되었고, 새로운 모험과 새로운 포켓몬들, 더 나아가 새로운 플레이어들을 만나며 게임을 즐겨왔기 때문이다. 통신을 통한 교환과 대전이 없었다면, 포켓몬은 그렇게 나에게 인상 깊은 게임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슴이 뛰는 게임


이제껏 내가 소개해온 게임들은 모두 게임 서사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찾은 것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플레이’의 입장에는 조금 소홀해왔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을 ‘플레이어-플레이’의 구조로 정의하고 서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게임 속 플레이어의 위치는 어디인가, 플레이어는 플레이를 통해 무엇을 마주하게 되는가, 따위의 생각들로 글을 이어왔기에 ‘플레이’ 자체를 다루는 데에는 소홀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게이머들이 흔히 ‘피지컬’이라고 부르는 순수 게임 플레이 역시 소홀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 ‘플레이’는 게임의 서사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재미를 뽐내며,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취미로 삼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게임의 서사 요소는 플레이 이후에 생겨난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에는, 최근에 가슴 졸이며 플레이한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1)라는 게임을 소개해 보려 한다. 세이브가 없어 하나의 목숨만으로 무작위 던전을 탐험하는 로그라이크(Rougelike)2) 장르의 하나로, 네크로댄서는 여기에 플레이어의 행동에 ‘리듬’이라는 제약을 추가함으로써 큰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인 케이던스는 어머니가 죽은 이후 보물을 찾다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쫓아 ‘네크로댄서’의 공동묘지로 들어가는데, 그녀가 네크로댄서에게 심장을 빼앗기는 저주에 걸리면서 던전의 탐험은 모두 게임 배경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이루어지게 된다. 본래 로그라이크 게임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깊게 고민하고 천천히 플레이해야 실수가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음악의 박자에 맞추어 움직여야만 하다 보니 게임의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것이다. 키보드의 화살표 버튼 네 개만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인데 나는 어느새 온몸을 들썩이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게임음악은 게임의 분위기를 잘 받쳐 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네크로댄서는 리듬게임인 만큼 음악 자체가 게임인 것이다.

1) Necromancer(강령술사) + Dancer(댄서)
2) 해당 장르가 로그(Rogue)라는 게임을 발전시키면서 생겨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플레이 방법을 설명해주는 튜토리얼


세이브가 없으니 클리어를 위해 플레이어는 죽어가면서 생존의 요령과 리듬을 몸에 새겨야 한다. 마지막 스테이지의 보스 ‘데드 링어’를 클리어하면 그의 머리에 씌어 있던 종이 깨지면서 케이던스의 아버지 도리안이 나타나고, 그 역시 네크로댄서의 저주에 걸려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부녀는 힘을 합쳐 그들의 심장을 쥐고 있는 네크로댄서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는데, 마지막 스테이지답게 까다로운 퍼즐을 풀고 그가 가진 ‘황금 류트’를 빼앗아 공격해야만 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네크로댄서를 쓰러뜨리면 도리안은 류트를 연주하고, 그것이 자신이 홀연 사라졌던 이유라고 케이던스에게 설명하며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되찾은 아버지, 그리고 네크로댄서와의 싸움


류트를 연주했더니 죽었던 케이던스의 어머니 멜로디가 살아났다. 그러나 류트는 연주를 멈추면 살아났던 사람이 죽고 연주를 계속하면 연주자가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악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멜로디는 황금 류트를 든 채 다시 네크로댄서를 찾아가게 된다. 결국 플레이어는 류트 외의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멜로디로 게임을 다시 깨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클리어하라는 과제를 부여받은 셈이다. 이렇듯 네크로댄서는 케이던스 이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은데, 이들은 돈을 줍게 되면 죽거나, 몬스터를 죽일 수 없거나 하는 등 특별한 플레이 방식을 가져서 파고들수록 난이도가 증가하기도 한다.


이후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는 멜로디 스토리에 이어 그녀의 어머니이자 케이던스의 할머니인 아리아 스토리까지 모두 클리어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 아리아로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했다. 아리아는 한 번의 공격만으로 죽고, 박자를 놓쳐도 죽는 무시무시한 난이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확인하고 싶으면 도전해 보라고 게임이 나를 도발하는 듯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틈틈이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고, 네크로댄서는 이렇게 나의 시간을 기꺼이 할애할 재미를 주었다. 이 재미는 분명 리듬을 타며 게임을 해온 ‘나의 게임 플레이’ 자체에서 나온 것이리라.



We are all gamers


이렇게 예전부터 내가 재미있게 해온 게임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새로 할 게임을 찾을 뚜렷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지만 다른 소득은 있었다. 나는 재미를 위해 게임을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재확인했고, ‘게임 하는 일에 애정이 가득하다’는 첫 문장을 쓰고 내심 품었던 의심 역시 완전히 사라졌다. 이 게임은 이래서, 저 게임은 저래서 재미있다고 누구에게라도 신나게 말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이번 글쓰기는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잘 전달했다는 자신은 없지만, 게임은 사람들의 입에 나쁜 말로 오르내릴 것이 아니고, 그저 애타게 재미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연재를 시작할 때는 게임 역시 소설이나 영화와 동등하게 서사를 소비하는 컨텐츠라는 말을 쓰면서도 나는 ‘게임으로 세상 바라보기’는 가능할까, 하고 의문을 품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쩐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었나.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플레이어, 낡은 비유일진 몰라도 거대한 게임 속에서 재미를 찾는 플레이어이리라. 나는 글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생각들을 키워가며 게임을 계속할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게임을 계속해 주기를 바라면서.














작가소개 / 염성진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국어국문학과
글을 쓰고 싶고, 음악을 하고 싶고, 게임을 하고 싶습니다.


《문장웹진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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