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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네모」 외 6편

  • 작성일 2022-09-23
  • 조회수 1,73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시]



미래 네모




이진양






늪에 빠져 태양을 끌어안았어


하루는
바늘을 염원하는 풍선도 아닌데


모호한 것들의 편을 잘 가르는 아이는
가장 미래적인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살다 보면 공중분해되는 웃음도 있었고
목이 꺾여 죽은 바람에게는 가제트 팔을 선물해 주자


망가지면 다시 살면 그만이라고 다짐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쌓여 가는 성냥 더미


건물에 불이 붙습니다 외로운 나는 즐거운 펭귄을 생각하며
불타는 네모를 바라봅니다


긴 고민 끝에 조언을 구합니다


이 모든 사건이 장난인 게 들통난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텐데요


너는 자유로웠지
말이 어눌했거든


우리는 천천히 날아올랐다 날다 보면, 그렇게 한참을 웃다 보면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게
보호색을 띠는 아이도 보였다









내가 오지 않는 약속 장소에서 오펭 씨를 기다리는 나의 그림자






미래는 불충분했어 불필요하게 펭귄은 웃었어 거시적인 그래프로 보면 추락에 가까워지는 거지 얼음은 유령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말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가치가 있다 정적의 정점을 휘감으면서 초라해지고 있다 이렇게 흔한 혼잣말을 하려고 망상의 테두리로 춤을 추는 건 아니지 마주침은 억지로 몸을 뒤트는 싸구려 오르골일 뿐이어서


리듬을 바꾼다 뾰로통하게 뾰족뾰족
새침하게 늘 윤리 파괴의 눈빛을 실천하는
고물상 텔레비전의 몰골로



<오지 않는 편지에 대한 대필 편지>

그림자 군, 오늘 밤 오펭 씨와는 잘 있었소?

그렇소, 당신은 잠시나마 안락의자로 머무른 것이오?

작정은 무엇이오? 작심과는 무엇이 다르오?

내 질문에 먼저 대답을 해 주시오.

하지만, 알고 보면 오펭 씨는 노골적인 물고기 아니오?

얼마나 긴 세월 동안 분노를 숨기고 있었소? 그 분노는

투명이었소?

투명이었소

당신 앞에서 정말로

투명이었소

누가 누구에게 하는 질문이오?

새벽 333시 333분, 배후에 어느 누구도 남지 않은 그 관념에조차

미스터 오펭은 이글거렸소?

너무 차가웠소 닿으면

(사이)

정말

희나리가 될 것만 같았소?

그만하게 자네, 나의 말투를 빼앗지 말게나

왜?

어째서?

왜?

왜?




사람은 일방적인가
어째서
남겨진 오펭 씨의 얼굴을
대신 쓰고서


봉산탈춤을 배우면서 히득거리면서
무형문화재의 희귀성을
만끽하면서


(그건 가면도 못 되는 포장지에 불과한데도)


새벽녘 오펭 씨 나타나다 눈을 질끈 뜨다 바깥을 촘촘히 쌓아 올리다 구겨 신은 신발에 영원을 구겨 넣다 시선 없는 세계에서 대머리 독수리로 출몰하다 곧장 멸종을 만끽하다 희미해지며 다시 나타나 유령의 흐느낌으로 초면인 초인을 놀래키다 그러나의 계절이 들이닥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피자 한 판으로 담겨서 싸구려 팽이처럼 가볍고 위태롭게 돌아가다 처음으로 살 만하다 예쁘다 그러나 모조리 한가롭다 여전히


레몬 나무에는
레몬이 너무 많이 열려 있고 무럭무럭


열리고 있었고


공휴일의 사형식; 오펭 씨를 다시 만난다면 확성기로 귓속말해야지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게 파란 사이렌 터뜨리고 나불거려야지 보이지 않을 만큼 잘게 빻은 유리 조각을 연료로 회전하는 싸구려 소용돌이를 내 속에 키우며; 그 녀석에게 꿀꿀이죽을 매일매일 모종삽으로 퍼먹이며; -그 아이는 자라서 무화과나무가 되었다-


왜곡하고 있네
너는 감히 오펭 앞에서
겁도 없이


너는 오펭 씨를 닮아 갔다 과거는 기타리스트로 돌변하고 오직 돌변만을 반복했다 변심에 중독되었다 과거는 사람의 탈을 쓴 사이비 신성 탑이었다 과거가 내 앞에 나타나고 연인이 되고자 귀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노새는 붕괴되고


끝에 닿을 수 있다는 촉감만으로도
몸은 무한해질 수 있는 거야? 정말로?


율 동 이 야?


오펭 narration비로소 너는 먼 훗날의 지루함을 리와인드하고 있구나.


이름 모를 함성Mr.open! 오르페우스 신화를 아시나요?


오펭 narration나는 그런 비슷한 영화를 본 적이 있어


나방의 춤모든 영화는 끝나질 않아요. 이 숲의 찰나처럼.


이름 모를 함성비루한 비약이야.


나방의 춤내 몸엔 함성이 부족해 그러니까 오로지 네가 부족해 내 몸에 오펭 씨만 넘쳐흐르고 있어. 젠장.


이름 모를 함성이제야 연극이 시작된 것 같군요!


오펭 narration애틋한 인칭이군.


(civil night scene 앞에서 무대 감독은 관객들에게 정중한 사과를 요청합니다)


미래 거장방관자들이여, 고개를 숙여라.


자체발광 13월은 영원하고


변증법적 후회에 적응한다 6사단 공병대대 연병장에서 오후 7시 30분, 분 단위로 파탈을 실천하는 영롱한 궤도의 구슬이 되어 온몸에 새겨진 실금으로 ([일본어]kizu[傷]) 동시대의 천방지축을 실현한다 어젯밤 내 몸에는 3인칭이 너무 많았다 (그건 2942년에도 여전해) 모두 꽁꽁 숨어 있었다 얼음산이었다 나는 다만 골똘한 그림자와 사귀고 싶었다 이를테면 F1 사고 현장에서 사진사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즉사한 레이서의 너덜너덜 찢어진 그림자; 추적추적 쏟아지는 새들에게 박혀 죽은 유리창들은 추적추적 날카로운 소낙비로 다시 진화해 눈보라처럼 쏟아진다 거짓이다 차가운 호수에 빠져 퉁퉁 불어 버린 오후, -지금부터는 괄호가 많아질수록 선언에 가까워진다고 믿는 한 오펭의 소망입니다- (소용돌이는 어디로 몸을 숨겼을까?) 매미 울음 잠잠해지고 진흙탕 속 나자빠진 아니, 나사 빠진 조랑말을 옭아매는 오펭 씨의 망사 스타킹; ((진정한 의미로서의 헤드록인가?)) 아니 아니, 오펭 씨는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오펭 씨는 먼 훗날 알래스카 펭귄들의 위대한 초상이었다; 그런데 오펭 씨의 흔적을 추적하는 뻐드렁니 롤렉스 피보나치 토끼들과 안티소프라노풍으로 resale하던, 소리 낮게 흐느끼는 쇠팽이의 남루한 잔상은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행동의 원인을 도출하고 있는 지경인가? 고작 그 정도가 미련의 전부였나? 65년도 Jean Luc Godard의 SF 필름 ‘Alphaville’에 출연하는 프랑스식 들들 끓어 대는 가래 발성의 거대 콤퓨타처럼? [{(클로즈, 그 정도면 모른 척할 수도 있지 않는가?)}] NO NO NO, 그건 너무 밝은 나의 그림자 그래서 짓밟은 너의 그림자 하얀 글씨로 적는 미래 그림자 (((조금만 더 기다리도록))) 단 하루치 활용가치를 뽐내고 있는 그리운 오펭 씨의 키 작은 그림자 그림자 그림자 골똘한 모양으로 기다리는 오펭 씨의 초상화 따위는 이제 더 이상 기록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자유를 탓한다 나는 자유의 뺨을 때린다 자유의 자지를 깨문다 자유의 가벼운 피를 바른다 나는 이제 자유에서 탈락한 야경꾼 그림자와 잼(jam)을 한다 나는 다만 그림자에 집착하는 너의 대과거를 염탐하는 나의 먼 미래는 공공재일 뿐, 이라고 굳게 선언한다 <그래도 나는 증발한다> 하지만 그림자만을 그리는 화가의 초상화는 다른 그림자와 쉽게 몸을 섞는다는 점에서 가엾다 충성스러운 조바심으로 물들어 간다 아니다 그것 역시 처음 마주치는 오펭 씨에 대한 나의 맹신; (에 불과하겠지만) 차라리 그건 형식상 서류에 집착하는 나의 영원에 가까울 것이다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차라리 너와의 철없는 작별이다 질척거리는 절벽이다 마지막 공중전화 부스를 엽총으로 겨냥하는 사냥꾼이다 부스가 터진다 부스는 사라지지 못하고 부스는 계속 부서지기만 한다 부스- 터진다 부스-부스- 터진다 부스가 팡 팡 팡 풍선처럼 사춘기 오펭의 불알처럼 부스-팡! 부스-팡! 터진다 팡 팡 팡 팡 팡 터진다 펑! 터진다 부스- (((부스는 터지다 그만 지친 것만 같다 –그 사실이 어린 시절의 나 ‘펭오’는 너무 외롭고 질투난다-))) 부스는 어디 갔을까? 부스는 망가져서 부스였을까? 부스는 먼 나라 아르페지오처럼 팡 펑 팡 물 흐르듯이 죽지는 못하고 부-우-스-으- 까끌하게 무전도 못 하고 계속 사라지기만 한다 펑! 팡! 펑! 여전히 사라지고 있다 팡! 팡! 팡! 오, 펭! 펭! 펭! 저기요, 사라짐은 영원에 가닿을 수… (((닥쳐))) 목숨도 없이 블랙홀 속 오펭 씨 떠오르다 청순한 물귀신의 짜릿한 무게감으로, })질량 이탈의 법칙!({ 그것과 별개로 너의 시선은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너의 뒤통수에 닿는다 그걸 너는 ‘끈질긴 오펭’이라 (((명명))) 한다. <<<그러나 너도 없다 그때쯤 나처럼 아주 증발했겠지>>> 그 무렵 어느 소행성 넓디넓은 들판에서는 침묵을 꼴딱꼴딱 삼켜 대는 왜소한 오펭들만 남을 것이고, 그중에 가장 황홀하게 희미한 Mrs. 오펭과 너는 나는 우리는 작별 작별 작별 작별 작별 (((((선장님, 갑자기 어떤 오류입니까?))))) 보수주의와의 작별 작별 작별 진보적 파시즘과의 작별 작별 작별 작은 이별 후 불타는 작별 불멸 작별 불멸 작별 작별 작별 이별은 못 되는 불온하고 이로운 짝짝이 별 작별 작별 작별 아나키즘 니힐리즘 프로테스탄티즘과의 작별 코스모스((COSMOS))적 비잔티움과의 작별 작별 작별 작별 작별 작별 작은 별 (((유치해 나는 뒤쫓지 않을래))) 작별 작별 작별 벌떼 같은 별 별안간 마주칠 때마다 벌벌 떨어야 하는 사단장의 별 별 별 별 별 하나! 별 둘! 별 삼! 별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 (우리는 이 섬에 남겠다!) 작별 작별 작별 작별 작별 작별 작별 별 둘! 별똥별 셋! ()()()(그렇다면 겨울밤 오펭의 미지는 어느 물컹거리는 불판에 몸을 던졌을까?)()()() 사납고 사악한 별 별 별 (((진정하라구, 이런 인간적인 기계장치))) 작별 중력 작별 작별 작별 중력 작별 별안간 별들의 멸망이 눈에 훤히 보여도 별수 없었던 망조 왕국의 프린세스(PRINCESS) 오펭; 중세 유럽풍의 웨딩드레스 입고서 오지 않는 우리를 기다리던 (((((((자웅동체))))))) 오펭 씨는 자신의 초상화를 구경하다가 그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공간성을 잃어버렸다 하릴없이 오펭神의 정원에서 자신의 동공을 쪼아 먹었다 그렇다면 오펭 씨는 사기꾼이었을까? 아니면, 사람 구실로 연명하는 무지갯빛 흑백사진에 불과했을까? 그건 훨훨 날아올랐을까? 나비였을까? 하지만 여태껏 오펭의 가게에는 거렁뱅이의 흉상조차 남지 않았다…… 사람 하나 없이 시차(((時差)))끼리 새끼손가락 걸고서 단 하나의 오펭像을 기약하고만 있었고…… 우리가- 그런데_ 여태껏- 무엇을_ 기념했었지? 라는 도돌이표 귓속말을 꽃씨처럼 흩뿌린 채…… sorrow uiversity 폐건물 후미진 귀퉁이에서 꽁꽁 얼어붙은 입술로 ‘완성된 오펭’의 추상화를 간유리에 새겨 넣으려 하는…… ‘우리’ 혹은 ‘너희’라는 무지갯빛 낯빛의 비물질은……


((((((((((((((((((불타는 레몬 나무 한 그루를 기억한다)))))))))))))))))









너무 나무






레몬 나무에는 레몬이 너무 많이 열려 있다.


거짓말, 속삭이며 나는
커다란 창문이 그려진 얼굴로 구경한다.


바람이 불면


레몬은 따로따로 흔들리고
하나가 되기도 하고


반대편이 훤히 비치는 투명 해파리의 흐느낌처럼
하루는 불어난다.


정확해지지 못하고 영원히 정교해지는
나무 한 그루로 기다리면서


내 몸에
레몬 모양의 아이가 넘쳐흐르고 있다.









TOMBOY






모든 변주는 소름 끼치게 뾰족한 지붕이 된다.
여자가 감았던 낡디낡은 오르골의 태엽마저도


면도날 파도가 걸어온다. 너를 흘겨본 순간 나는 날개로부터 자유로웠지, 홀로 피어난 흑목련이 말대꾸한다. 언덕 너머에선 창백을 비추는 어둠이 증식하고. 그 아래 영원을 꿈꾸는 저 나무의자의 골똘함. 조그맣게 흔들리는 창틀의 密屠. 일말의 회오리. 가장 흐릿한 입김 중에 가장 뚜렷한 파도. BOY는 묘사하는 일에 중독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다. 움츠러들고 있었어 작은 이유도 없이. 새로운 얼굴을 찾는다는 변명을 떨고 있었지. 또 다른 BOY는 중요한 말들을 번복할 것이다. 장미 덤불 사이에서 떨고 있는 저 마분지 인형처럼. 어디서 태어났을까? 밑변이 아주 긴 오각형의 오두막이 차가운 어둠에 타들어 간다.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하지만 전망할수록 삶은 느리게 흐른다. 가끔 멈추기도, 무거울 만큼 삐걱거리기도.



마지막 BOY는 세상의 모든 입체를 삼킨다. 한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얼마나 많은 침몰을 견뎌 내야 침묵을 조립할 수 있을까? 초겨울 자연광 앞에 서 있을 때면 자연광 앞의 가면으로 머무르고 있을 때면 없는 손가락을 접으며 사람의 독백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무한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한가로울 수도.


속이 텅 빈 벽돌 모양으로 흰 구름은 기다린다. 너무 많은 새벽이 우리를 애무하고 있어. 눈에 훤히 보여. 연필깎이에 고개를 파묻는 기분이야. 회전의 중심축으로 흐느끼는 인기척이야. 창경궁 앞에서 boy는 울었다. 아파트를 살 수 없어서. 메아리가 양수에 갇혀 있어서. 사냥꾼의 누추한 코트에서는 먼지가 나비처럼 떨어지고. 물이 바람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물이 바람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맑은 총






너의 얼굴은 해맑다


벼랑은 新 이데올로기에 중독되었으므로
새벽 끝에 서 있는 초침만이 발자국이다


노란 머리 나팔바지
아 아 아 너무 아프다


눈치 보며
살아 있다


어제는 어제를 흐느끼지 못하는 인간들과 절교하느라 시간을 다 써 버렸다
그들은 해맑다








온몸에 총이 돋아나는 라르가 있었어
구름빵으로 허기를 달랬어


거짓이었어
노래는 총이 되고 노래는 헤엄쳐 갔어


젊은 게 너무 싫었다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 갈수록


날개 많은 새는 앙상하게 흔들리는 나무를 질투했다네 차라리 잠수함이나 될 걸 영원히
헤엄치고 돌아오면


과거의 일에 침착하게 질투하면


나는 자유로 시들었다 너는 그늘 밑 물고기보다 짙은 검정이 된다 그렇다면 기계적 진보란 무엇일까? 바탕색은 형광 명멸은 파탈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나는 느려질까 봐 두렵다 광고비를 많이 쓴다면 좋을 것이다 박수 두 번 치고 죽은 개의 몰골로 곯아떨어진다 팽이가 씽씽 돌아가며 추궁한다 네 우울의 낡아 빠짐은 어느 초인의 레트로 테라포밍이냐? 바늘처럼 얇은 동유럽 음치 가수의 목소리 이리 박수 낙타 박수 혹은 미련의 풍자적 이지메イジメ 더 이상 끝말잇기를 지속한다면 우리들의 의리는 요철을 쓰다듬는 파랗게 충혈된 동공이어서


웃기지 마, 파랗게 남겨지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어?


창문에 비친 바람에 희롱당하는
어떤 키링의 완성으로 헛구역질처럼 맴도는지


찌그러진 주전자에
어린 폭죽의 목숨이 끓고 있는데


사방팔방 막혀 있으면서 겨울의 뒤나 졸졸
따라다니면서 흐물거리는 막대기 흐물거리는 너의 눈빛 광활하고 첨예한 흐물거리는 너의 첫 섹스 납득으로 가득한


나폴레옹의 낯빛은


화사하고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긍정한다 육신을 갉아먹는 육중한 리듬의 후퇴 철퇴를 질질 끌고 다니는 퇴보의 변주 주말을 파쇄기에 넣고 돌리다 쓰러진 골방에서


나의 귀여운 포클레인이
눈물 많은 콘크리트를
파먹고 있었는데도


너는
심각하게 노려보며 그걸 즐기고


새벽마다 미세먼지로 분열하는 기쁨이 있어
우리는


구슬치기에 중독되었네


아첨하였네
이탈하였네
변절하였네


우리는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가자 우리의 뒤통수를 으깨서 핥아먹자 우리는 우리를 녹이며 우리 안에 갇혀 있고 그건 자유롭지만 자유는 뭘까 씨발 좆같은 새끼가 침이나 퉤퉤 뱉으며 ‘야 나는 살아 있다’ 따위의 해맑은 웃음이나 질질 흘리며 네가 그러고도 라르로 존재하는 것이냐? 따위의 서로의 근원적 악마성에 관한 기조연설문 작성하면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으르렁거리며 울음을 제거하는 기계에 다시 갇힌다 꽃들은 바다 꽃들은 총 입을 다물지 못하는 파랑이 우리를 기다린다 너에게도 홀로 남은 기대가 있어 나에게 질문을 던지네 어떤 질투를 당신은 품고 있는지 어떻게 당신의 질투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잃어버리며 사나운 입 모양의 쇠꼬챙이로 진화하는지 불현듯 인기척에 뒤돌아보면


라르에게는 여러 가지의 개가 있다 여러 마리의 죽음은 사라졌다 여러 가지의 슬픔 여러 가지의 허무 여러 가지의 희망을 개처럼 다루는 법을 통달한 라르는 우리의 뒤통수로 영원하다 갈고리 같은 물음표로 태양 없는 날 태양의 위치에 각인된다 그런데 그녀는 왜 우리에게 속하지 못했을까 라르의 개들은 나무로 자란다 그건 하나의 목숨이 고요를 즐긴다는 뜻이지 개들이 실재한다는 믿음은 아니다 멀리 아주 멀리


놀이를 떠난 날, 그건 내 딴에는 의무였을지도 모르지만


낚시는 즐거워
앵무새는 진화하고 있었어


말들을 조합하면서


자신의 혼잣말 속에서
무채색으로


너는 머물렀어 외딴섬


(라르는 어디로 간 거지?)


언제나 뒤늦은 말을 따라 하는 말들이
휘윙휘윙 갈퀴를 흩날리며 도망치는 총들이


(총구는 이미 식어 있었다)


그런데 탕,
이 개새끼들아
하나같이 입 닥치고 있으면서 탕,
도대체 뭘 하겠어
그런데 이 개새끼들아
정말로 탕,
내가 (혹은 너희가)
도대체 뭘 할 수 있겠어 탕,
반항도 못 하면서 나불거리는 거품이
사방팔방 총구를 다 막아 놓고서 탕탕,
어떻게 처음 만난 라르를
미워할 수가 탕,
있겠어 이 개새끼들아 탕, 구제불능의 탕,
미움으로 가득한 설레는 이 마음에 탕 탕 탕, (재판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주세요.)
누가 이 개새끼들아 마지막으로 탕,
감시자 되어 주겠어


온 나라의 흉터가 나를 보며 웃는데


눈에 훤히 보이는 곳에서 라르가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하는지 너희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자의 의무 같은 건 아니다. 중얼거리기 연습. 연습을 중얼거리기. 라르는 언제나 좋은 것만 가두고 싶다. 싶어. 그래. 눈. 코. 총. 맑은 총. 구름 한 점 없는 총. 이기적인 총. 다시 총. 촘촘한 총. 총. 총. 죽은 토끼야 불어나지 마라. 죽은 토끼야 오늘 하루만 불어나지 마라.









크로키






알프스는 심심했다. “나도 굶다 보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해 여름에는 심심한 사람들이 많았다. 571조 번째 여름이었고 과속과 드리프트를 즐기는 중이었다. 은회색 빛 새의 날갯짓 속에도 거울이 들어 있었다. 폭죽처럼 물러터진 시선들은 안쪽에서부터 날카롭게 말아지는 패턴이 되었다. ‘그건 정말 꽃이 아니었던가?’ 알프스는 미움에 대해서 탐구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알프스는 높고 가파른 세모를 존경했다. ‘존경은 아기의 처음 돋아난 머리털을 쓰다듬어 주는 작은 손과 같다.’ 어느 회사의 사보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은 없었지만. 알프스는 믿다 보면 구슬의 깨진 모양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글을 쓰는 것은 크레파스로 국을 끓이는 것과 같다, 녹이다 보면 덧칠하는 맛을 전혀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눈빛은 가장 경제적인 언어이다.’ 알프스의 아버지는 석간신문을 펼치며 새벽 내내 양치했다. 마음을 졸였다. 비가 내렸다. 비는 산발적으로 쏟아졌다. 비가 무심하게 솟구쳤다. 비는 무료하게… 비는 무식하게… 망치질할수록 세상은 펼쳐졌다.


알프스는 산책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태양은 언제 어디서나 알프스의 머리통으로 기다려 주었다. 암만 두리번거려도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알프스는 걷고 또 걸었다. 가끔씩 죽이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그런 밤이면 알프스는 둥둥 떠다니는 기관단총에 의해 살해당하는 꿈을 꾸기도 했으나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잠시 머무는 마구간에 생명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고. 모든 걱정을 살해하기 위해서. 바람을 살해하고 난 다음 날이면 공개수배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돌아올 수 없는 곳이면 좋을 테지.” 알프스는 야간 스키를 타고 올라가며 흐느꼈다. 망각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휘발과 발휘는 뭐가 다르지?’


알프스는 시조새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렇다고 시조새가 될 수는 없었다. 알프스는 시조새가 되지 못한 채 시조새를 뛰어넘었다. 미끄럼틀의 쓸쓸함과 이기심을 장착한 채로… 732살 무렵의 파란 구름이 알프스를 잡아끌었다. 알프스는 기계의 손과 악수했다. 따뜻했다. 눈빛은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났다. 알프스는 수도 없이 불어났다. 불을 뿜는 조그만 불사조 한 마리. 꼬리는 푸르고 영롱했고. 그건 살아 있을까? 다이아몬드처럼 윤곽을 살해하며 빛을 뽐내고 있었고. 녀석은. 나를 만나지 못한. 천천히 죽어 가는. 불치병을 앓고 싶어 했던. 그렇다면, 정말 물건이었을까? 몇 초 동안 살아 춤출까? 그런데 살해는 무엇일까? 대답에 대한 강요가 싫어서 알프스는 홀로 끓고 있었다. 끊고 있었다. 영원을. 졸업식 날 했던 약속을 저버리듯이. 너무 짠 수프가 되어 가는 느낌. 영영 더러운 스푼으로 기다리는 느낌. ‘나도 과속하다 보면 정규 연쇄 추돌사고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스타카토! 아니야, 차라리 트래킹 해야지.’ 그러나 총총거리는 미소를 열 마리 잡아도 작고 귀여운 아이들에 대한 편견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이 욕심 덩어리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 과정에 불과하면 또 어떻단 말인가? 온종일 일하고 돌아온 기계는 왜 사람의 꿈을 대신 꾸었을까? 어째서 알프스는 카메오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까? 알퐁스(6촌 누나)는 6.8혁명 당시 어느 삼류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있었는가? 텔레비전으로 가득한 방, 반투명한 유리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외딴섬의 역사를 재생하고 있었고. 모든 순간의 알프스는 날개가 몸의 15배나 되는 붕새를 가두는 새장이 되었다. 혼자 딱딱했을까? 찰칵! 사진을 한 장 찍으면 이따금 또 다른 돌연변이 붕새로 태어났지만. 찰칵! 꿈을 이뤘을 때보다 꿈을 열망할 때가 더 분쇄에 가까웠다. 찰칵! 찰칵! 찰칵! 섭섭했다. 다시 살아남았다. 시체처럼, 차갑고 비좁은 마음에 울었다. 울음은 빛으로 가득한 멍. 멍의 사요나라さようなら.


알프스는 절대로 산에 가지 않을 것을 스스로에게 당부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산성으로 웃고 있었으니까. 온 마음을 다해서 해맑게 죽었던 날, 알프스는 다시 깨어났다. 검정으로 충만했고. 새치가 한 가닥 돋아 있었다. ‘이제 영영 새치기를 해야만 하겠지.’ 알을 깨고 들어가는 새보다 알에서 삐져나와 죽은 새가 더 아름답다, 생각하며 무표정을 끓이는 알프스의 손이 떨고 있었다. 벌써 밤인가? 야광나무였다. 율도국에서 율무차나 한 잔 마시고 싶다. 그러나 장난은 새가 되었다. 그러나의 겨울이 지나고 그러나의 봄도 살해당했다.









불과 시소






노인은 뭉텅이 바람.
공룡 껍질 벗기는 놀이를 반복한다.


마주 보는 눈빛은
다른 시간에 살고 있었지.


새벽 뒤편의 새벽


우리는 각자의 안락의자에 앉아
비몽사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이는 얼마나 썩어 있을까?


노인에게 없는 전사들.
소외감이 낳은 불씨들.


차라리 당신의 빛나는 얼굴을 깨물고 싶어.


암만 노력해도
도돌이표의 횡포를 거역할 수는 없으니까.


반대편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노인은 없었다.


오후에는 분절된 태양과 5분 동안 산책했다.
작은 것들에 대한 몰두가 삶을 망쳤다.













이토록
작가소개 / 이진양

1993년 광명 출생. 2021년 시인수첩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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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 그림자」외 6편

박제 그림자 김뱅상 더듬이가 잘려 나간 그림자들 거짓말을 쏟아 냅니다 형광 깜박입니다 신발을 더듬는데 문득,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엊그제 붙잡힌 슬픔엔 고막도 없다던데 핀 박힌 가슴 하나, 떠올립니다 무슨 울음이 이리 더듬거릴까요? 현관에서 ⁕ 현관 센서 등이 켜진다 더듬, 더듬 빛이 사라진다 누가 다녀가는 걸까? 문 쪽을 바라본다 여닫이문 열리지도 않았는데 다시 불 켜지고 문 앞, 웬 발자국? 귀 기울이면, 박각시나방 한 마리 더듬이 겹눈, 불빛 따라 어두워지고 저런, 몸에 꽂힌 저 핀 좀 봐 얼마나 오래 뽑지 못한 가슴일까? 녹이 슨 몸통하며······ 깨진 날개 끝 그래, 녹슨 게 어디 나방 몸통뿐일까? 현관, 어두워진다 어떤, 어둠은 등으로부터 오는 걸까? 머릿속, 어두워지고 어둠 속에선 왜 눈을 감아야만 돌아볼 수 있을까? 어둠에도 센서가 있는 걸까, 나를 닫으면 빛 들어온다 들어서지 못하던 발자국들, 다시 돌아온 게 틀림없어 ⁕ 문 앞을 서성이는 그를 본다, 이내 돌아서는 환한 어둠 속에서 손 맞잡고도 이렇게 커다란 틈 하나 비집지 못하는, 뒤꿈치 든 저 발자국 그런가, 너도 가슴에 박힌 핀 하나 네가 빼지 못하는구나, 빈 머리를 흔드는 더듬이를 꿈틀거려 보지만 잘려 나간 촉감, 어느 불빛을 따라갔을까? 한밤, 현관에 불 켜지다 꺼지면 자꾸만 출렁거리는 나방 한 마리, 또는 그림자 한 쌍 날 만나지도 못하고 힐끔 돌아서려는 ⁕ 무슨 그림자들이 이리 희번덕거릴까요? 어떤 슬픔은 왜 자꾸 더듬거리죠? 옆자리가 비었다 -피아노 계단 우린 가끔 야생적이지, 계단에 서서 왈츠를 구르며 왼쪽으로 스텝을 옮긴다 레 미 오른쪽으로 돌면 눈빛 하나 파에 머물고 돌아갈 수 없는 아니, 다시 찾은 왼쪽이랄까? 바람 지나가자 출렁이는 높은음자리 층계참까지 흘러내리고 눈을 접으면 꽃잎 하나 떨어지고 왼손을 풀자 계단마저 출렁거리고 왜 머리가 흔들리는 거지? 피보나치*로 확산하는 겨드랑이? 시 도, 음자리 술렁이고 머릿결 흔들린다 입술 치켜들면 건반 소리 커진다 포르테 포르테, 뻗어 나가고 내 얼굴, 속이 비어 있다 누가 탈출한 것일까? 동그라미, 이건 그림자들이야 끊어진 통화음이 부푼다 구름 부숭부숭 뭉그러진다 한 계단 오른발 내딛자 나 한 걸음 더 밖으로 사라지고 뭉개진 것은 음계였나? 아니, 계단엔 여물지 못한 네가 나뒹군다 반음 내린 건반을 밟는다 미, 여태 계단 아래 묻혀 있고 그가 한 발 더 구른다 레, 그래 오늘 오후는 느린 템포다 왼쪽으로 턴, 미끄러진다 출렁거리던 옆구리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끊어졌던 통화음 다시 들리고 길게 이어지지만 버튼을 누를 수 없다 반음 위의 계단을 밟을지, 내린 계단을 밟아야 할지 나는 숨을 고른다 바람개비 빠르게 리듬을 탄다 층계참 지나자 파,

  • 관리자
  • 2023-11-15
「숲속의 버진로드」외 6편

숲속의 버진로드 박재숙 숲길을 걷는다 곁은 바람, 곁은 메아리, 곁은 아프리카, 때때로 곁은 알 수 없는 통증, 숲을 바라보는 계절의 입술은 또 한 차례 바뀌었다 곁은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나란히 언제 어디까지 걸어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언덕 끝, 뱀의 혀처럼 구불거리는 아지랑이를 들었다 저 아지랑이는 어떤 술래가 흘리고 간 잔기침일까 곁에 대한 생각이 발걸음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내일로 손을 잡는다 어디까지 걸어야 마을이 나타나지? 처음 느껴보는 내 마음 같은 마을, 곁과 함께 걷다 보면 꽃바람이 금세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수시로 몰려오는 불안이 눅눅하게 젖어오는 가슴 한쪽을 휩쓸고 지나간다 언뜻 보이는 옷자락 사이로 이정표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느 날 내게 불쑥 다가온 곁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 곁의 이름은 우연이라고 했다 그 이름이 별명인지 애칭인지 모르지만 곁과 함께 구덩이 속의 구더기 같은 시간을 보냈다 입에서 달싹거리던 통증의 속말을 한 동이씩 담아 바깥세상에 쏟아버렸다 저 강물의 입자들은 참 곱기도 하지, 꿈이 내 안의 미끄러운 물을 버진로드에 내다 버리기도 하니까 갑자기, 내 살을 어루만지던 소문이 실루엣처럼 빛나고 있다 곁의 손을 잡았던 내 손이 다시 바람의 손을 잡는다 나는 누구일까 새로운 이정표가 바람 곁에 다가와 내게 무언가 말을 걸고 있다 안경학 개론 해와 달을 태초의 어두운 안경이라고 했다 신 안경 속에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있었다 작자미상의 新창세기에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빛을 따라가는 것을 안경 산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산책길을 따라 궤도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자 한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 웃음을 우주의 파장이라고 했다 쏟아진 웃음들을 주워 모으자 뜻밖에도 동그라미가 되었다고 한다 어디론가 무작정 굴러가야 할 것 같았다고 한다 동그라미는 구르면서 반짝이는 눈빛이 되었다고 한다 목마른 눈빛의 유일한 탈출구가 동그라미였을까 구르다 보면 균열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래서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다리가 필요하다 요즘은 그 다리를 와이파이라고 하지만 두 개의 동그라미가 만나면 안경이 된다 안경다리 밑에는 코가 큰 얼굴이 있다 어떤 말을 맡으려는 걸까? 얼굴은 태초의 빛을 기억하고 있다 그 빛을 생각하며 세상에 꽃씨를 뿌리고 있다 꽃씨는 자라서 동그라미를 낳을 것이다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나비의 날갯짓 같은 다리가 생기고 동그라미 속에 새로운 우주가 들어설 것이다 흑요석처럼 까맣게 빛나는, 그것을 누구는 구슬이라고, 누구는 둥근 씨앗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 사랑이었다 너와 나의 비트박스 웃음 코드가 맞지 않아 투덜대는 너와 나, 우린 왜 서로를 의지하는 거니 봄이니까 이젠 희망의 싹을 틔워보자고 약속했지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피리 부는 고양이가 유리문에 찰싹 붙어 커다란 눈을 뜨고 있는 가게 옆 골목길을 따라 오른편에 자리한 치킨 가게에서 보자고 했어 치킨 가게가 보이지 않는데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

  • 관리자
  • 2023-11-15
「사거리 옛날 뻐꾸기」외 6편

사거리 옛날 뻐꾸기 황성희 홀딱 벗고 대곡 사거리에 서 있어 보았다 1972년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담대함 또는 무지함으로 내년부턴 미국인과 나이 세는 법이 같아진다는데 아무도 내가 홀딱 벗은 것에 놀라지 않아서 놀란다 사거리 한복판에 서 있지만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서너 대 정도는 예의상이라도 비켜 갈 줄 알았는데 차들은 유유히 나를 지나치며 자기들끼리 교행한다 어쩌다 나는 가드레일보다 못한 지경까지 왔는가 그때 나는 우리로 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나 그때 나 홀로 사는 것이 우리에 대한 험담이던 시절 그때 나의 알몸에 반응하지 않던 차들이 갑자기 경적을 울린다 나는 좀 더 큰 목소리로 그때는! 이라고 외쳐 보았다 그러자 차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끽끽 멈춰 서며 당장 그 입을 닥치라는 듯 경적을 드높였다 그제야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대곡의 사거리 한복판에서 알몸으로 그때는! 그때는! 뻐꾸기처럼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절대 잘못 떨어진 뻐꾸기 새끼가 아니다 여기는 나의 둥지 너의 둥지 우리의 둥지가 아닌가 그때는! 그때는! 내가 날뛰자 차들은 덜커덩! 덜커덩! 부딪치고 멈춰 서며 사거리는 조금씩 엉키기 시작했다 이 꿈결 같은 시간이 언제 또 올지 몰라 나는 실컷 내가 되는 재미를 누려 두려고 건너편 인도에 벗어 둔 1972년의 옷 같은 건 잊어버리고 그때는! 그때는! 하고 옛날에는! 옛날에는! 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날갯짓처럼도 보였다 가진 것이 개미밖에 없는 개미 그때 나는 딱 중간 지점이었다 어디와 어디의 중간인지만 몰랐고 나머지는 다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첫 번째 개미는 제림아파트 시소 안장에서 죽었고 두 번째 개미는 102동 화단 옆 소화전 밑에서 죽었고 세 번째 개미는 노인정 앞 정화조 뚜껑 위에서 죽었고 네 번째 개미는 죽을 예정이나 일단 국기 봉부터 오른다 대부분의 개미들은 지하에서 태어난 게 분명하지만 비행기를 삼킨 애벌레는 시간 밖으로 날아오르려 했고 몸속 가득 영혼만 모은 애벌레는 선지자를 꿈꾸었으며 한 여왕개미 꽁무니가 뒤틀릴 때마다 조각달은 떨어지고 어떤 개미는 거기에다 대고 앞발을 비비며 소원을 빌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개미들이 아침을 달라고 아우성치고 죽었다던 개미 중 몇몇은 되살아나 사촌과 만나고, 이미 추억이 되어 버린 어떤 개미는 자신의 허구성을 참다못해 더듬이 속 끝까지 뚫고 내달려 몸 밖으로 뛰어내리고 태양까지 기어갔다던 개미는 눈이 먼 채 돌아와 개미 말고는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고 울부짖었다 그걸 기도로 착각한 개미들이 덩달아 울부짖다 어느 날은 수천 마리씩 날쌔게 뭉쳐 고양이인 척 생쥐를 덮쳤고 어느 날은 뭉게뭉게 생각을 키워 코끼리가 되었다가 너무 긴 코에 우스워져 배가 터지는 개미들도 있었다 그때 나는 딱 중간 지점에 있었다 어디와 어디의 중간인지만 몰랐지 나머지는 다 알았다 개미가 가진 것이 개미밖에 없다는 것도 개자식 여러분 개처럼 사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 관리자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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