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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조각들」외 6편

  • 작성일 2024-09-04

   바다의 조각들

이윤길


   암막 커튼 장미 화병 곁에는 DGPS와 몇 장의 해도 그리고 바다를 조명하는 LED 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쓰가루해협을 통과하고 사흘이 지나도 나침반 방향은 여전히 북쪽을 부둥켜안았다. 선회창 앞으로 알류산열도가 스칠 듯 다가와서 천천히 멀어졌다. 묘박지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파랑주의보가 발령되자 종생에 근접한 통신장의 주름이 깊어졌다. 수다스럽던 수평선이 퍼렇게 멍들기 시작했고 선장은 애정 하던 돈나무 화분에 아침의 절반을 토했다. 그것 또한 바다를 선택한 자의 운명이다. 눈물마저 말라버린 밤, 갑판장은 구명정에 시동을 걸면서 생각했다. 브리지로 예리한 각도의 빗방울이 연거푸 날아들 때 파랗게 질린 실습항해사는 울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뱃머리에 버려졌다.






   어느 선장의 신탁



   나는 선택되었고 권력은 해신에게서 왔다. 뱃사람은 나에게 머리를 끄덕이거나 조아린다. 해류를 따라 떠다니며 아침이면 신천옹도 긴 깃을 펼쳐 경배의 문안을 올린다. 나는 고향을 떠나 태풍의 눈 밖을 기웃거리는 운명이다. 나는 날뛰는 어둠이나 고통으로부터, 흘수선으로 몰려드는 둔탁한 파도의 공포로부터, 축축한 선실에 등을 기댄 외로움으로부터 뱃사람을 지킨다. 나는 제비갈매기가 하염없이 허공에서 재잘거리듯 흔들리며 바다를 떠돈다. 나는 선장이다.






   표류하는 사람들



   몰려오는 파도의 거친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선원들은 어깨를 맞대고 따뜻함이 흥건하도록 연고를 발라 주었다. 그러면서 늙어 갔다. 낡고 삐걱거리는 용골 위에서 숫양의 모가지를 자르는 상념은 무적이었으나 불면이 갯바위 갯강구처럼 부스럭거렸다. 오, 희망이 모두 빠져나간 표류여, 파도가 선실로 밀려들어 복숭아뼈를 적시고 발뒤꿈치 힘줄을 끌어당긴다. 만선에 매달렸던 너의 용기 나의 만용이, 우리들의 슬픔이 고통으로 가득한 선실 바닥을 뒹군다.

난파



   붉은 섬광 아래에서 흔들렸다. 고막을 찢어대는 천둥소리가 목줄을 놓친 개의 이빨처럼 달려들었다. 9월 한낮인데도 번개의 칼날은 야만처럼 빛나서 구명의 비명을 이리저리 몸에 새겨 놓는다. 태풍은 스스로 죽음 곁을 배회하는 물의 손자이자 악마가 흔드는 공포의 회초리. 두려움에 사로잡힌 푸른발부비의 시퍼런 손이 깍지 껴 배를 봉인했다. 그러나 침몰은 날카로운 뱃길이 곡선으로 구부러지거나 뒤틀리며 꾸는 꿈, 먼저 수장된 선원들이 다가와 손나팔을 만들며 경고했다. 도망쳐






   뱃사람의 이웃



   병치매가리·노랑각시서대·연어병치, 장작으로 쓴 펭귄 대가리, 주방 개수대 곁에서 바스락거리는 새앙쥐, 기회만 생기면 불을 지르는 선원, 럼주로 꿈을 대신하는 궁핍한 해적, 몸 섞었던 마도로스에게 던지는 연민 또는 몇 개의 증오가 수장된 북양, 어머니가 걸어 놓은 석등 곁 연등과 풍경 좋은 카페의 마키아토 한 잔, 기쁨과 슬픔, 출항이나 귀항의 나침반이라든지 폭풍 그 밖에도 수많은 

   





   마르 파시피고



   적도를 지났으나 뜨거웠던 흔적만 남았다. 몸을 식히려 폭풍에 젖고 또 젖었다. 저녁 식탁 대구탕의 뜨거운 국물도 잊고 디저트로 불안의 갈증을 씹었다. 오래된 습관이 트림으로 비린내를 내뿜었다. 미라로 뒹굴던 바퀴벌레도 견디지 못하여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사과나무과수원 지하로는 아, 나무여 뿌리여! 아득한 준령 너머 꽃이 필 때다. 라일락꽃이었는지 코코넛트리 잎사귀인지 하얀 그림자가 등댓불처럼 어른거렸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마르 파시피고, 마침내 바다 끝에 닻을 닿았다






   난파선 졸리 로저호



   다섯 포대 감자와 열두 판 달걀이 썩어 가는 동안 천둥 번개는 짧고 희게 번쩍거렸다. 안부를 묻으려 스스로 입을 찢던 애인의 편지가 폭풍을 품은 돛처럼 휘날렸다. 나침반이 심연을 향해 유영해 가는 졸리 로저호. 통가왕국과 쿡 해협 사이에서 흑수염 티치도 외면한 졸리 로저호. 이반 톰 아귀스 선장은 열수분출공 검은 연기를 보았다. 가라앉은 선체 파편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 대신 유황연기가 피어올랐지만 선반 위 우장용 가죽 모자에는 산호뿔산호가 무성했다. 무관심으로 뱃머리를 보호한 수백 척의 배와 수천 개의 태양이 그 위를 지나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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