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바다의 조각들」외 6편

  • 작성일 2024-09-04
  • 조회수 246

   바다의 조각들

이윤길


   암막 커튼 장미 화병 곁에는 DGPS와 몇 장의 해도 그리고 바다를 조명하는 LED 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쓰가루해협을 통과하고 사흘이 지나도 나침반 방향은 여전히 북쪽을 부둥켜안았다. 선회창 앞으로 알류산열도가 스칠 듯 다가와서 천천히 멀어졌다. 묘박지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파랑주의보가 발령되자 종생에 근접한 통신장의 주름이 깊어졌다. 수다스럽던 수평선이 퍼렇게 멍들기 시작했고 선장은 애정 하던 돈나무 화분에 아침의 절반을 토했다. 그것 또한 바다를 선택한 자의 운명이다. 눈물마저 말라버린 밤, 갑판장은 구명정에 시동을 걸면서 생각했다. 브리지로 예리한 각도의 빗방울이 연거푸 날아들 때 파랗게 질린 실습항해사는 울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뱃머리에 버려졌다.






   어느 선장의 신탁



   나는 선택되었고 권력은 해신에게서 왔다. 뱃사람은 나에게 머리를 끄덕이거나 조아린다. 해류를 따라 떠다니며 아침이면 신천옹도 긴 깃을 펼쳐 경배의 문안을 올린다. 나는 고향을 떠나 태풍의 눈 밖을 기웃거리는 운명이다. 나는 날뛰는 어둠이나 고통으로부터, 흘수선으로 몰려드는 둔탁한 파도의 공포로부터, 축축한 선실에 등을 기댄 외로움으로부터 뱃사람을 지킨다. 나는 제비갈매기가 하염없이 허공에서 재잘거리듯 흔들리며 바다를 떠돈다. 나는 선장이다.






   표류하는 사람들



   몰려오는 파도의 거친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선원들은 어깨를 맞대고 따뜻함이 흥건하도록 연고를 발라 주었다. 그러면서 늙어 갔다. 낡고 삐걱거리는 용골 위에서 숫양의 모가지를 자르는 상념은 무적이었으나 불면이 갯바위 갯강구처럼 부스럭거렸다. 오, 희망이 모두 빠져나간 표류여, 파도가 선실로 밀려들어 복숭아뼈를 적시고 발뒤꿈치 힘줄을 끌어당긴다. 만선에 매달렸던 너의 용기 나의 만용이, 우리들의 슬픔이 고통으로 가득한 선실 바닥을 뒹군다.

난파



   붉은 섬광 아래에서 흔들렸다. 고막을 찢어대는 천둥소리가 목줄을 놓친 개의 이빨처럼 달려들었다. 9월 한낮인데도 번개의 칼날은 야만처럼 빛나서 구명의 비명을 이리저리 몸에 새겨 놓는다. 태풍은 스스로 죽음 곁을 배회하는 물의 손자이자 악마가 흔드는 공포의 회초리. 두려움에 사로잡힌 푸른발부비의 시퍼런 손이 깍지 껴 배를 봉인했다. 그러나 침몰은 날카로운 뱃길이 곡선으로 구부러지거나 뒤틀리며 꾸는 꿈, 먼저 수장된 선원들이 다가와 손나팔을 만들며 경고했다. 도망쳐






   뱃사람의 이웃



   병치매가리·노랑각시서대·연어병치, 장작으로 쓴 펭귄 대가리, 주방 개수대 곁에서 바스락거리는 새앙쥐, 기회만 생기면 불을 지르는 선원, 럼주로 꿈을 대신하는 궁핍한 해적, 몸 섞었던 마도로스에게 던지는 연민 또는 몇 개의 증오가 수장된 북양, 어머니가 걸어 놓은 석등 곁 연등과 풍경 좋은 카페의 마키아토 한 잔, 기쁨과 슬픔, 출항이나 귀항의 나침반이라든지 폭풍 그 밖에도 수많은 

   





   마르 파시피고



   적도를 지났으나 뜨거웠던 흔적만 남았다. 몸을 식히려 폭풍에 젖고 또 젖었다. 저녁 식탁 대구탕의 뜨거운 국물도 잊고 디저트로 불안의 갈증을 씹었다. 오래된 습관이 트림으로 비린내를 내뿜었다. 미라로 뒹굴던 바퀴벌레도 견디지 못하여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사과나무과수원 지하로는 아, 나무여 뿌리여! 아득한 준령 너머 꽃이 필 때다. 라일락꽃이었는지 코코넛트리 잎사귀인지 하얀 그림자가 등댓불처럼 어른거렸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마르 파시피고, 마침내 바다 끝에 닻을 닿았다






   난파선 졸리 로저호



   다섯 포대 감자와 열두 판 달걀이 썩어 가는 동안 천둥 번개는 짧고 희게 번쩍거렸다. 안부를 묻으려 스스로 입을 찢던 애인의 편지가 폭풍을 품은 돛처럼 휘날렸다. 나침반이 심연을 향해 유영해 가는 졸리 로저호. 통가왕국과 쿡 해협 사이에서 흑수염 티치도 외면한 졸리 로저호. 이반 톰 아귀스 선장은 열수분출공 검은 연기를 보았다. 가라앉은 선체 파편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 대신 유황연기가 피어올랐지만 선반 위 우장용 가죽 모자에는 산호뿔산호가 무성했다. 무관심으로 뱃머리를 보호한 수백 척의 배와 수천 개의 태양이 그 위를 지나다녔다.





추천 콘텐츠

「반구대암각화」외 6편

반구대암각화 김진길 나는 돌장이다, 하여 돌을 쫀다 정 끝에서 내는 길은 극통의 꽃이려니 짓찧어 생살 떼어 낸 돌 화판에 피가 돈다. 돌망치 해진 손을 숙명으로 받아 들면 정 끝에서 나는 길은 기백 년쯤 예사려니 한 땀씩 선사(先史)의 날을 사관인 듯 쪼아 문다. 사슴의 뼈를 갈아 야생을 꿰어 오고 키 작은 고깃배로 고래를 끄는 오늘 천상에 제를 올리는 그 풍광도 새겨 둔다. 문자보다 더 선명한 돌 화판의 그림 한 폭, 행여 세월 타면 여백의 편이려니 파고여, 보일 듯 말 듯 애탈 만큼만 일어라. 간빙기 원에서 타원으로 타원에서 원형으로 태양을 향해 도는 원근의 공전 궤도 거대한 얼음 왕국이 얼었다 풀렸다 한다. 빙기와 간빙기의 순환설이 견고하다면 氷國의 부신 결정이 맥없이 풀릴 즈음 고위도 어디쯤으로 빙하는 퇴각한다. 영원의 상징 같은 고체의 위엄을 벗고 협곡을 흘러 닿은 푹하고 깊은 바다 화려한 이색 어종이 출몰을 거듭한다. 난개발 그 열풍이 지상에서 불 때마다 지도가 바뀐다는 고수위의 뉴스레터, 한여름 이상 기온에 도시 하나 급랭한다. 량이 할매 바다를 향해 열린 할매집 앞마당에 이동식 목욕차가 묵은때를 벗긴다 방파제 넘은 파도는 볼기를 찰싹 치고. 더께로 앉은 갯내 화석처럼 굳어 가는 거죽도 속도 마른 불수의 할매 바다, 이따금 웃음 한 꺼풀 대문을 넘어선다. 밤마다 가위눌린 청상의 늪 그림자 밀물 같은 그리움이 거품으로 일어날 때 남편에 자식 앞세운 죄 먼바다로 풀어낸다. 큰 칼잡이의 노래 풍어의 깃발 달고 포경선이 귀항한다 포구를 들썩이는 개선의 뱃고동 소리 간만에 대물을 맞는 고래막이 북적인다. 허리에 숫돌을 찬 큰 칼잡이 해부장이 파도의 눈빛으로 고래 등을 밟고 서서 파랗게 날 선 장검으로 인부들을 호령한다. 바다의 제왕격인 고래를 보내는 길 선도(鮮度)를 살려 내는 지존의 예법으로 한나절 내리 한나절 칼을 갈고 또 간다. 해체 쇼를 아퀴 짓는 저물녘의 칼잡이들 장골을 발라 놓고 맨정신엔 못 가는지 그 밤엔 고래가 되어 귀갓길이 흔들린다. 누구는 칼을 잡고 또 누구는 회유(回遊)하는 고래와 칼잡이의 대물림은 숙명인가 암각 된 그림 속으로 탁본하듯 달이 간다. 슬도(瑟島)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섬 하나 있다 방어진을 향하여 거칠게 달려드는 성이 난 바다의 혀를 다스리는 섬이다. 바위에서 부서진 험하고 날 선 말이 공명통 속에 들어 묵직하게 구를 때 거문고 울음소리를 낸다 해서 슬도(瑟島)인 섬. 바다로 나고 드는 길목에 우뚝 서서 불멸의 전초처럼 자리를 지키다가 잘 누빈 순한 물결을 내항으로 보내는 섬. 익명 혹은 실명으로 항해하는 사이버 바다, 양날

  • 최고관리자
  • 2024-09-26
「호주머니 속 하늘」외 6편

호주머니 속 하늘 최형만 손끝을 찔러 넣는 호주머니는 하늘 같습니다 오늘의 날씨 같은 그곳은 떠 있는 구름처럼 가벼운데요 갈라진 손금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는 이제 안심하고 울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으로 말아 쥐는 건 주먹입니다 다만, 없는 것을 움켜쥐는 빈손이 웃는 일은 어디까지나 뜬구름에 불과하죠 손가락으로 혼자 세어보는 숫자 속에서 햇살은 몇 번이나 다녀갑니까 해 질 녘이면 속을 뒤집는 호주머니 흰구름이 붉어지는 건 안쪽이 깊어질 때입니다 함박눈이 예보되면 안쪽부터 웅크릴 텐데요 바닥에 닿아서야 터지는 울음 같은 그곳은 깊이를 모르는 먹구름처럼 무겁습니까 손끝으로 찔러보면 터진 구멍들 이래서 보이지 않는 건 믿을 게 못 되나 봐요 호주머니 속은 나도 모르는 하늘입니다 눈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림자에 색칠하기 놀이동산의 컬러가 머리 위를 지난다 그때 불 꺼진 아랫동네는 물감 한 방울이 떨어지기 전쯤의 세상 굼벵이가 우화를 꿈꿀 때마다 몇 번이나 속을 뒤집어도 녹슨 공장의 철문은 언제나 문을 열고 그 말 기억해? 어둠이 뭉치면 녹물 같은 갈빛이고 무채색은 칠하는 게 아니라고 했던 말 중력에 고개 숙인 아이들은 이제 무지개도 모를 텐데요 무채색은 누구의 그림자입니까 청룡 열차가 레인을 오갈 때마다 작업 라인을 오가는 사람들 일곱 빛깔은 아이들의 몫이었는데 해피엔딩은 꿈이었구나 흑백의 그늘이 혼잣말을 하고 바닥이 온통 회색일 때마다 아이들은 또 양떼처럼 몰려갈 텐데요 누가 알까, 그림자를 칠하는 건 애벌레가 꾸는 꿈이라는 걸 먹구름을 보고도 하늘 높이 고개 드는 일인 걸, 도서관의 숲 바람 한 점 없는 곳에 나무의 숨결이 걸렸다 속을 헤아리는 주술사의 의식처럼 맥을 짚어가는 책등마다 그을린 속이 보인다 찢어진 낱장을 읽어보면 왈칵 쏟아지는 풋내, 실은 아주 오래된 씨앗들이 행을 짓다 만 흔적이다 봄물처럼 번져간 활엽의 주름에도 아지랑이만 피운 손의 순례들 큰마음 먹고 뒤적이면 오백 년 넘었다는 후박나무의 깨진 활자도 보인다 밑줄 그어둔 문장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둥지를 버리고 날아간 새들의 시간, 원시림에는 숨겨둔 그늘도 깊다 칸칸이 박제된 울음을 뱉어내는 나이테는 서체도 없이 똬리처럼 감겼다 잎이 지는 방향으로 손을 뻗으면 아슬한 등고선마다 걸리는 옹이들, 밑동은 줄기의 푸른 기억을 읽으려 했다 햇살 이고 가는 박새만 아는 체를 하는 숲 우리는 언제 이렇게 늙어왔을까 허리를 굽히면 등이 아팠다 조금씩 닳은 뼈가 중심을 벗어나는 거라고 의사는 진통제를 주면서 말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보다 누울 때의 자세에는 나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것들이 많았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것들은 언제나 몸통보다 먼저 자랐으니까 봄꽃이 쉽게 고개 내밀지 못하는 건

  • 최고관리자
  • 2024-09-26
김은후 - 「새 우주율」외 6편

새 우주율 김은후 오래된 나무에 깃들어 있는 것이 겨우살이인가 했더니 우주율이었습니다 큰바람이 늙은 참나무 나이테를 열어젖혔어요 삼백 년을 낱낱 세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그해 여름 삼백 년을 잃고 가지로 이파리로 가렸던 오래된 하늘을 새 하늘로 갈아 끼웠습니다 길들을 깎아 내며 늙은 참나무 두 그루를 쓰러뜨렸습니다 낮 발자국 밤 발자국까지 꾹꾹 찍어 놓은 삼백 년들, 커다란 기계가 웅웅거리는 반나절이었습니다 쿵! 이번에는 낱낱 읽을 수 있는 시간마저 훔쳐 갔어요 시간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삼백 년 묵은 참나무 세 그루더러 오래된 하늘 오래된 길을 갈아 끼우라는 계명은 어느 우주에서 발사되었을까요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삼백 살 넘은 나무 세 그루가 돌아가시자 그 마을 사람들이 오래된 말투로 말을 합니다 삼백 년의 세 곱절 구백 년 전의 말투 같다고 합니다 세종대왕도 모르고 동학운동도 모른다네요 하나둘 세 그루 나무의 오래된 입구로 들어갔을까요 이제 하나 남은 오래된 참나무 새길 새 하늘 그리고 이상한 마을 사람들은 다른 우주에서 발사되는 새 계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무더운 피 목소리는 언제나 ‘어디야?’ 묻는다 어디를 사회과부도로 익힐 때는 남북 회귀선 사이를 짚고 여기는 축하할 일 없는 사막이겠네, 했어요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남북 회귀선 사이 거기, 겨울이 없는 데를 가 보고 싶었어요 사막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생일 초 하나쯤 켜 보고 싶었어요 친한 사람들 생일이 겨울에 많이 있어서였을 것이에요 계절이 늘 반팔인 나라 사람들 피는 회귀선 위쪽 사람들보다 더울까요 그들에게는 소나기와 코끼리 중 어느 게 더 필요할까요 어디에는 소나기가 하찮을지 모르지만 코끼리 보단 소나기를 경배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군요 체온은 36.5도여도 무더운 피는 습도가 높다죠 어디서든 사람들이 늘 어디야라고 묻는 것은 축하할 수 있는 곳 어디를 찾는 것 아닐까요 두리안과 잭프루트를 자르면서 말이지요 거기도 새들은 제 이름을 울음으로 노래할까요 날짜 변경선 ‘김주안’은 미국으로 이민 가서 ‘조앤 킴’으로 이름을 바꾸더니 미국 남자와 결혼하여 ‘조앤 밀러’가 되었어요 허리케인 ‘도라’는 날짜 변경선을 넘어와 태풍 ‘도라’가 되었지요 날짜 변경선은 이름을 바꾸는 작명소죠 날짜 변경선을 지나면 사과는 애플이 됩니다 초록이 빨강이 되는 시간도 있을 텐데요 누구 째깍거리는 소리를 들은 사람 있어요? 시간을 그리려면 사과 모양으로 그리면 될 것 같아요 그동안 시간은 주욱 직선을 그려 왔어요 왕복하는 데 많은

  • 최고관리자
  • 2024-09-26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