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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값」외 6편

  • 작성일 2023-10-13
  • 조회수 561

흙 값

박재연


발과 팔의 안쪽에 씨앗을 심으면 어떻습니까

욕이 됩니다


새 흙을 받아 마당에 펴고 흙 값을 계산하면서

이리 더하고 저리 빼도 계산이 맞지 않는다고

당신은 욕을 합니다


욕은 B음입니까

C음입니까

배설입니까

똥입니까


우리의 삶이 고통으로 절정일 때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처음 욕을 발성했지요

B음으로 A 씨팔


나는 작게 흘렸는데 당신은 잘도 숨겼다가

걸핏하면 후렴처럼 사용합니다

팔보다는 발이라고 할 걸 그랬습니다


야산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는 공사장에서 실려 온

잡티 하나 없는 고운 흙


우리는 서로의 혼잣말에 책임이 있습니다*

당신이 욕을 하면 표정은 내 몫입니다


새 흙을 받아 꺼진 땅을 고르면서

감정을 쏟고 욕을 뿌리고


이 모두를 거름으로 쓰고 열매를 주는

흙에게 우리 계산을 들키지 말아요

욕은 말고 콧노래를 심어요


* 허은실 시 ⸀반려⸥에서 차용






총알 박은 사나이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던 어른이 죽어 화장했다. 총알 열여덟 개가 나왔다. 따뜻한 피와 살 속에서 녹슬지 않은 총알, 얌전해진 총알, 있지만 없는 듯 숨을 감춘 총알, 총알 박은 몸으로 막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처자식을 건사하고 집안의 애경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서 거칠고 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시던 고등학생 신분의 학도병. 십팔 십팔 욕도 못 하고 일기예보의 팬터마임을 몸으로 연기하시던 늙은 용사. 육백만 불의 사나이처럼 솨르릉 솨르릉 쇳소리를 견디며 세월의 강을 건너오신 분. 말 수 적고 기골이 장대하고 빙긋이 웃던 표정은 가져가시고 총알만 남기셨다. 이 사실 밖에 또 무엇이 삶의 흔적이란 말인가. 총알 박은 사나이가 총알만 남겨 놓고 돌아가셨다.






저기, 핀란드

 


   꼬리를 자르고 날아가는 두체동물처럼

   이미지는 선명하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저기 있잖아

   핀란드 사람들이 페리 호 타고 가서 위스키 대량으로 사 오는 그 나라가 어디지?

   라일락 향기에 파묻혀 웃통 벗고 술 마시는 오월의 나라

 

   동사를 잊고 명사를 기억할 것 같은데  

   단어들도 운동을 해야 근육을 유지하는 것이리라

 

   사월이는 이병헌이 아끼던 궁녀의 이름

   오월이는 박 군이 키우는 강아지

   나의 오월은 핀란드의 라일락

   쥐약 같은 이륙의 공포는 똑 자르고 날고 싶은 향기의 나라

 

   어머니를 앞에 두고 집사람을 찾던 아버지처럼

   끝내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조차 잊는 날이 있으니

 

   에스토니아는 생각나지 않고 태양 아래서 핥던 아이스크림과 웃통을 벗고 엉키던 서양남자들의 패싸움만 따라와서 묻고 또 묻는다

 

   있잖아

   저기 있잖아

 

 

 

 

 

나쁜 패턴

 

 

늙은 잉어 한 마리가 왔다

손맛만을 즐긴다는 취미 생활자의 선물이다

 

목욕하는 대야에 지하수를 틀고 담그자

기왓장 같은 비늘을 사정없이 떼어 흔든다

S O S 요동친다 

  

스르륵 흰 배를 보여 준다

 

실지렁이, 갈고리, 손맛, 꾼의 희열, 주는 기쁨, 공짜는 없어요, 비타 오백 한 박스

 

붉은 고무장갑 낀 손을 대자

죽을힘을 다해서 

SSS-O-S

수염을 늘어뜨린다

 

잉어야 잉어야 저수지에 살던 잉어야 

잉어의 눈을 감긴다

 

입술이 벌어지고

부레를 내어 놓는다






목발



계단은 오를 때 보다 내려갈 때가 위태롭지

오른발이 넘어지면 덩달아 넘어지는 왼발

 

뜀박질은 그림의 떡

 

히말라야는 흰 말의 갈기가 차갑게 쉬는 영원의 영봉

‘히말라야’라는 아이디로는 끝내 오를 수 없는 희원의 세계

 

발차기의 종목을 춤의 세계로 바꾼다면

무예는 무용을 발휘할 수 있을까

 

위기가 기회라는 낱말 너머로 서리가 내리고

천천히 흑백의 대비가 엷어지는 아침 햇살

 

관객이 없어도 성실한 햇살이 추는 춤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슬픔의 관념어를 지우며

네 발로 추는 춤의 세계는 열리리

 

몸을 말아 웅크렸던 개는

한껏 기지개를 켜고서야 꼬리를 흔들지

 

자기는 몰라

사과 한 알의 무게가 얼마나 무릎을 아프게 하는지

 

점심에 먹으라고 넣어 준 사과를 다시 꺼내며

도서관 입구부터 큐알 코드를 터치하며

 

네 발의 균형을 조심스레 맞추며

사과는 집에 와서 먹을게






수상한 시절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렀더니

제수씨가 왔더라네

아빠에게 남자 친구를 보였더니

얘야 네 오빠일지도 모른단다

울면서 엄마에게 말했더니

걱정 마라 네 친아빠가 아니란다

송어 횟집 남자는

바람피우는 제 아내의 살점을 여몄다네

그러거나 말거나

쌍계사 벚꽃 십 리 길은 일간신문 메인을 장식하네

꼼짝없는 낮닭은 뒤틀리는 목을 뽑아 아무 때나 울고

샤머니즘의 붉은 깃발 펄럭이는 달동네

일대의 개들은 사람처럼 흐느껴 우네

두 명씩 짝을 지은 펭귄 교도들

수시로 팔목을 붙들며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네

말세라네






추인(追人)



이것은 당신의 영업 비밀, 시를 영접할 때 당신은 세르게이 트로파노프 Sergei Trofanov의 몰도바 Moldova를 듣지. 그러나 그건 울타리 같은 대외용 기표. 사실은 잊혀진 가수의 오래된 트롯을 듣네. 트롯 속에 시마를 알아본 그녀는 두 달간 시마와 동거했네. 누구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백 번쯤 들으니 그분이 왔다지만 또 누구는 내장을 독주에 흔들어 그분을 부른다지만 그녀의 시마는 동트는 새벽에 우주와 접속했네. 시마(詩魔)! 이거 무서운 마귀지. 옛사람이 전하는 시마의 다섯 가지 죄목을 들어 볼까?

 

그 마귀는 사람의 본성을 잃고 화려하게 꾸미기를 좋아한다지. 그것으로 사람을 현혹하여 뼈마디를 녹이고 마음에 풍랑을 일으킨다지. 하늘과 땅의 오묘한 신비를 염탐하여 천기를 누설한다지. 칼을 차지 않고도 사람을 찌르고 조롱하고 잘난 체한다지. 그리하여 정신을 가로채고 메마르게 하여 병들게 한다지. 병들어 죽는 순간까지 못 잊게 한다지. 시는 아무리 미문을 쓰려 해도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들어 올릴 때, 헤 하고 벌어지는 여자의 입 속을 숨겼다네. 징글징글 성형한 문장은 흘러내리네. 갈 곳이 없어지네.

 

돌아온 탕아가 돌아간 어머니의 자궁을 그리듯이 시인은 시 안에서 안락사를 꿈꾼다네. 그러면 내 안의 당신, 침묵의 돌에다 부레를 달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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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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