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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를 읽는 밤

  • 작성일 2022-09-16
  • 조회수 2,07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중단편)]



바르트를 읽는 밤




백영






가을 학기 리플릿에서는 두 개의 강좌가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는 건축가가 영화에 대해 강의하는 것으로, 영화에 대한 공부, 건축에 대한 공부라는 차원을 넘어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고 강사는 밝혔습니다. 또 하나의 강좌는 저녁에 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첫날의 강의는, 들어가면서: 사랑, 죽음, 슬픔이었고 애도와 멜랑콜리, 또 하나의 슬픔, 슬픔과 육체, 슬픔과 사진, 슬픔과 음악, 슬픔과 도덕, 슬픔과 글쓰기… 식으로 매주 차 강의의 제목에 슬픔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낮 두 시에서 네 시까지 수업하는 영화 관련 강좌를 신청할 생각이었어요. 정작 등록한 건 저녁 강좌였습니다.
개강을 이틀 앞두고 실무자가 전체 문자를 보냈더군요. 번역 출판된 책을 교재로 쓸 예정이었으나 출판사 사정으로 아직 번역서가 출고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안내였습니다. 메일 주소를 알려 주면 번역된 텍스트 파일을 보내 주겠으며, 그걸 프린트해서 수업 시간에 가져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하루 전날, 수신 메일함에 도착한 첨부파일을 프린터로 출력해 보니 스물여덟 쪽 분량이었습니다.


오늘, 누구 만나니?
그날 어머니가 물었을 때, 선배, 이렇게 말하고 집에서는 나왔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선배를 만나러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두 달째 연락이 끊긴 상태고 내가 보내는 문자들을 읽지도 않았어요. 작업을 시작하면 동굴에 들어간 것처럼 다시 밖으로 나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전철을 탔는데 환승역에서 반대 방향으로 탄 겁니다. 두 정거장이나 더 간 다음에 거꾸로 간다는 것을 알아채고 황급히 내렸습니다. 반대쪽 열차를 타서 두 정거장을 다시 되돌아간 후에 이번에는 제 방향으로 갈아타고 세 정거장을 더 갔지요.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니? 어머니로부터 그런 잔소리를 종종 들었던 때입니다. 결국 첫 수업부터 지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10월의 두 번째 금요일이었습니다.
강의실에는 열대여섯 명의 수강자들이 나보다 앞서 도착해서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빈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아 앉았을 때 저만치에서 칠판을 등지고 앉은 강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의 첫인상은 누구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저 이는 틀림없는 내향성이군. 조용하고 착해 보이는 작은 얼굴과 구부정한 등과 왜소한 어깨. 그 어깨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내게 그렇게 전달되고 있었어요.
이윽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신은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은 그 수업이 자신이 기획한 저서의 집필을 위한 예비 강의 같은 것이라고 먼저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강의계획서에 올라간 순서대로 강의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나의 눈길을 끌었던 목차들은 다 무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게 무슨 말인 줄 알겠더군요. 당신은 미리 정한 주제대로 강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1893년에 태어나 스무 살에 루이 바르트와 결혼했고, 스물두 살에 어머니가 된 앙리에트 뱅제는 1977년 10월 25일에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뱅제의 아들은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바르트는 1980년 2월 25일 작은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고 한 달 뒤인 3월 26일에 사망합니다. 어머니의 사망 직후부터 바르트가 사망하기 전까지, 2년간 쓴 일기가 저녁 강좌의 텍스트였습니다.
금요일마다 3호선을 탔습니다. 역에 도착하여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걷고 계단을 밟고 올라가 철학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앉습니다. 다시 강의실을 나와서 똑같은 길을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시간. 월화수목금 중에서 금요일은 그래서 특별해졌습니다. 하지만 일요일이 다 가기 전에 금요일의 강의실에서 들었던 얘기는 머릿속에서 전부 사라져 버린 듯했어요. 대체 무엇을 듣고 온 거니? 월요일이면 책상 위에 놓인 바르트의 일기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지요. 애써 종이 위에 검정 펜으로 수업 도중에 기록한 흔적을 눈에 담았습니다. 그러면,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 앉은 나와 그 교실의 정경이 꿈속의 일인 양 떠오르곤 했습니다. 눈앞에 놓인 바르트의 일기만이 며칠 전 금요일 밤의 시간이 꿈이 아니라 실제로 겪은 일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어요.


바르트의 일기는 1977년 10월 26일 시작됩니다.
결혼의 첫날밤. 그러나 애도의 첫날밤인가? 여기서부터 나는 벽을 느꼈습니다. 뭘 잘못 읽은 것일까, 눈을 깜박인 후 다시 그 구절을 보았습니다. 다시 보아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날에 쓴 일기였거든요. 일기란 지극히 사적인 기록 아니겠습니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노트에 자유롭게 쓴 메모. 1차 발성어. 잠시 스쳐 가는 생각들. 삶의 짧은 순간과 순간이 정제되기 전의 언어로 분출된 형태지요. 내밀한 아카이브. 그 안을 들여다보는 수업이라니. 그런데 그 지극히 사적인 기록을 굳이 번역하기 원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요?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뒤풀이 장소에서 아마도 나는 그 질문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수업에 가지 못했기에 그 질문은 단지 물음표 상태로 남고 말았지요.


바르트의 두 번째 날 일기는 첫날보다는 여러 줄이지만 여러 개의 메모를 모자이크해 놓은 듯 보였어요. 혼잣말 같은 메모들이 이어져 있었어요.
11월 1일에 쓴 일기는 주홍색 형광펜으로 전부 칠이 되어 있었습니다. 밑줄을 긋는 대신 한 단락 전부를 칠해 놓은 거였습니다. 몇 년 뒤, 봉인된 상태의 마분지 상자 속에서 책갈피처럼 끼어 있던 일기를 다시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그 칠해진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아주 아주 나를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것: 딱딱하게 굳어 버린 슬픔-경화증에 걸린 것처럼.
〔경화증에 걸린 슬픔은 깊이가 없어진 슬픔이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표면만이 있는 슬픔-아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단단하게 둘러싸서 덮고 있는 각질층: 그런 각질층들의 커다란 덩어리들〕


인쇄체의 글씨 옆 여백 면에 검정 볼펜으로 쓰인 흘림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Aceidia.
그 철자를 쓴 것은 나였습니다. 분명 나의 필기가 맞았습니다. 기억들이 전부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는지, 잃어버린 블록 조각이 소파 밑에서 툭 굴러 나오듯이 그 철자와 함께 그 순간의 음성이 갑자기 들려오고, 동시에 화이트보드에서 나던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당신은 칠판에 그 단어를 찌익찌이익 매직펜 소리를 내가며 썼고, 그 단어의 뜻은 마른 개천 바닥, 사막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풀이해 주었습니다.
첫날 예고했듯이 강의계획서에서 제시된 순서와는 무관하게 수업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늘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기를 낭독했습니다. 한 구절이나 한 단락을 읽고 나서는, 잠시 틈을 두었습니다. 이윽고 조금 전 낭독한 구절 속의 단어에서 연쇄되는 또 다른 단어와 이미지들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입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 일이 일어납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조금 전까지 종이 위에 납작 엎드린 상태였던 활자들이 소리로 변환되어 펄럭펄럭 눈앞에서 황금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광경이 펼쳐지는 겁니다. 그게, 당신의 목소리에 실린 독특한 리듬, 즉, 시와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운율 때문인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그 말들은 난해한 시처럼 느껴졌던 바르트의 일기와 다를 것이 없었지요. 내 지각으로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나는 종종 그 운율을 따라가다가 흐름을 놓치곤 했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당신의 눈에 띄지 않게 이마를 오른손으로 덮어 얼굴 가림막을 만든 후, 고개를 책상 앞으로 숙이고 열심히 노트를 들여다보는 자세를 취하곤 했습니다. 마치 고전 음악실 뒷자리에 앉은 관객처럼 나 자신이 여겨지는 순간이었어요. 주로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으므로 다른 수강자들의 등을 바라보게 되는데 혹시 저들도 나와 같을까, 나처럼 때때로 흐름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 얼굴과 표정이 궁금해지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조금씩 눈치채지 않게 그들을 관찰했어요. 나는 수업 못지않게 그 강의실에 와 있는 사람들도 궁금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강의실의 사람들은 나와는 좀 달라 보이더군요. 왠지 철학자의 소행성에 각각 초대장을 받고 왔고, 그 별의 정원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분위기를 모두 갖고 있었어요. 너무나 몰입해서 듣는 그 분위기 속에서 자꾸만 한눈을 팔면서 딴생각을 하는 나만이 그 강의실의 이방인이 아닐까 생각되었으니까요. 수업은 이것으로 마친다는 말이 들릴 때 그 말은, 여행이 끝났습니다, 나의 귀에 그렇게 들려왔어요. 그 소리는 막 열차의 선내 진입을 알리는 안내방송처럼 들려왔고 나는 그 열차를 놓치기라도 할까, 서두르는 사람처럼 가방을 챙겨서 제일 먼저 강의실을 나왔습니다.
저녁 강의의 수강자들은 대학원생을 비롯해서 직장 다니는 이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매주 결석생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금요일까지 열 명에서 열두 명 수준이었던 출석자는 다섯 번째 금요일이 되자 여덟 명 안팎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당신은 일곱 번째 금요일에 말했습니다.
다음 주에 종강 수업이 있습니다. 그날은 강의 끝나고 뒤풀이가 있으니 결석하지 마세요. 꼭 오세요.


*


그해의 일 년 전 여름. 나는 전통 공연을 보며 한정식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한 음식점을 예약했습니다. 그 음식점 입구에는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어요. 근정전의 옥좌와 똑같이 생긴 의자가 한쪽 벽면에 놓여 있고 의자 뒤에는 장식용 병풍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 기념 의자에 앉히고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때 앞에서 활짝 웃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 안쪽에서 뇌의 한 부분이 허물어지고 있던 것과 구불구불한 내장 한쪽에서 매일 자라고 있던 부스럼 덩어리를, 그날의 내 눈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부스럼들은 일 년 후에 암이라는 정체를 드러내지요. 단지 그날의 카메라는 한 인간의 생기 어린 모습을 빛의 속도로 담았을 뿐이지요. 그 순간의 아버지는 그 이후의 시간과 비교해 보면 가장 온전한 상태였습니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일 년에 네 번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내게 부여된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가는 간격은 점점 짧아지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한 달 간격이 되었어요. 한 번 병원에 갈 때 심장내과, 소화기내과, 정형외과, 신경과, 비뇨기과를 모두 들러야 하기에 예약된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먼저 받아야 하는 일정 때문이지요. 검사 후 약 두 시간 후부터 한 시간, 또는 삼십 분 간격으로 담당 의사를 만나는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 있었습니다.
햇빛이 눈이 아프게 밝고 꽃들이 꽃망울을 막 터뜨리기 시작한 봄날, 아버지는 종합병원의 검사실에서 경직장 전립선 초음파 검사를 받았습니다. 초음파 검사 후에는 소변 속도를 알아보는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소변 속도 검사는 소변 양상을 보기 위한 검사이고 최소 150ml 이상 소변을 봐야 하므로 두 시간 이상 소변을 참고 오라고 했고 방광 내 초음파 잔뇨량 측정 검사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검사에서는 혈관 상태가 분석이 되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실핏줄이 자세히 나타난 엑스레이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나서 사진의 한 곳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에 스텐트를 삽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시술 날짜가 정해졌고 관상동맥 확장 시술을 통해 스텐트를 삽입해야 했지요. 가을이 되기 전에 최초의 시술에서 문제가 발견되었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다시 재시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한 달 가까이 병상에 있다가 퇴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하루 다섯 번에 걸쳐서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아침 식사 전에는 란스캅톤셀 한 알과 훼로바유서방정 두 알을, 아침 식후에는 플라비톨정 한 알 카프릴정 한 알 딜라트렌정 라식스정 한국유나이티드산화마그네슘정 크레스토정을 각 한 알씩, 베이슨정과 글루파정 한 알씩과 아루사민액을 한 포, 데파킨크롤정 한 알과 오팔몬과 세레브릭스정을 각 한 알씩을 먹고, 점심 식사 후에는 카프릴정 한 알 베이슨 정 한 알 아루사민액 한 포 오팔몬정 한 알을, 삼십 분 이내의 시간을 지켜 먹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카프릴정 한 알 딜라트렌정 한 알 라식스정 반 알을, 한국유나이티드산화마그네슘정 두 알 베이슨정 한 알 글루파정 한 알과 데파킨크롤로정 오팔몬정 씨잘정을 먹고 나서 자기 전에 토베이스씨발정과 아리셉트정과 하루날디정과 파나스타정과 알레그레정을 먹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고, 하루 두 번 당뇨 측정을 했습니다. 그 약들을 먹기 위해 아버지는 하루 삼 식 중 한 끼도 거를 수 없었습니다. 모범 학생처럼 꼬박꼬박 밥을 먹었으며 약을 먹었습니다. 약을 먹는 일은 아버지의 일이었고 약을 먹이는 일은 어머니와 나의 일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약을 먹는 일. 그것은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대한 의식이었습니다.
의사 처방에 따라 약국에서 받아온 약들은 크기도 색깔도 제각각 달랐습니다. 그것들은 포장된 모습으로 크고 작은 종이상자에 담겨 있었고 그 포장을 뜯고 알약을 꺼내어 분류하는 일 또한 나의 일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병원의 여러 전문의들이 발행한 처방전을 방바닥에 펼쳐 놓고 그 옆에 약상자를 놓고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자기 전 복용하십시오, 라는 지시가 적힌 약은 자기 전이라고 매직펜으로 겉면에 써 놓은 지퍼 백 안에 넣고, 식전에 먹으라고 지시한 약은 식전이라 쓴 지퍼 백 안에 담습니다. 아침 식사 후, 점심 식사 후, 저녁 식사 후를 확인하여 약들이 엉뚱한 지퍼 백에 바뀌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습니다. 하루에 다섯 번 복용해야 하므로 하루당 정확히 다섯 개의 약봉지가 만들어져야 하는 겁니다. 하루 다섯 개의 약봉지가 한 달 분량이 되려면 백오십 개의 약봉지가 생겨나야 하는 거지요. 그것들은 아버지의 몸속에 정확히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백오십 개의 비닐봉지들을 다시 다섯 개의 상자 안에 각각 나누어 담았습니다. 상자 겉봉에 포스트잇과 복용 시간표를 붙여 놓고 정해진 시간마다 상자 속에 담긴 약봉지를 꺼내어 사용해야 한다고, 아침에 먹어야 할 것을 저녁에 먹지 않도록 상자에 붙은 포스트잇을 잘 확인하라고 어머니께 설명하는 것 또한 나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정해진 날짜에 어김없이 병원에 갔고 그때마다 소화기내과 심장내과 신경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의사들은 아버지의 혈액을 분석한 검사지를 들여다보며 숫자들이 정상 범위인지 벗어나 있는지를 확인한 후 컴퓨터 안에 영어로 뭔가를 기록했습니다. 기계는 의사 지시가 적힌 처방전을 출력했습니다. 약사는 그 처방전대로 한 달 분의 약품을 내주었고 아버지는 정해진 대로 시간 맞춰 그 약품들을 물과 함께 삼켰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는 늘 약에 취해 있거나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내 방에 들어오면 비로소 나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낮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문자에 답하고, 그날의 일기를 쓰고, 종종 수업을 들었던 아카데미 홈페이지에도 방문해서 게시판에 오른 글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아카데미는 미학과 예술론과 철학 위주로 강의를 하는 곳이었고 나는 학기마다 어떤 강좌가 열리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개강을 앞둔 가을 학기 리플릿을 공지 게시판에서 발견한 날, 파일을 다운로드했습니다. 강의계획서들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여덟 번째 금요일에는 출석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병원 도착 후 입원 수속을 밟고 대기실에서 잠시 숨을 돌릴 때 시간을 확인해 보니 7시가 넘었더군요. 총 여덟 번의 강의 중 마지막 수업의 결석과 함께 11월 첫째 주 금요일에도 한 번 결석했으므로 내가 수업에 들어간 날은 여섯 번입니다.


*


두 번의 결석일 중 하루는 선배와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선배는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그동안 문자에 답을 못해 미안했다며, 작업 하나를 겨우 끝마쳤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좀 멀리 나가자고,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세단을 끌고 집 앞으로 데리러 왔지요.
차가 미사리 팔당댐을 지나 양수리를 지나가고 있을 때, 아버지는 좀 어떠셔? 문득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선배가 물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니며, 점점 지쳐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막 기억해 낸 것이었습니다. 선배에게 아버지의 병세를 시시콜콜 말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그건 하루 다섯 차례 먹는 약의 종류를 열거하는 일처럼 여겨졌어요. 나는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집 지을 돈으로 차라리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고 지금도 푸념하지만 아버지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이 층 벽돌집을 손수 지으셨다고.
D동의 산자락 밑에 자리한 집은 교통이 불편하여 전철역이 가까운 동네에 비해 집값이 늘 제 자리였어요. 이제 땅값이나 겨우 받을까. 집값은 쳐주지도 않는다고 어머니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값보다 마당을 중시했어요. 나무나 풀이 자랄 수 있는 흙이 있는 마당. 아버지는 그곳에 화단을 꾸미고 그 화단을 매일 가꾸고 화단 맨 안쪽 귀퉁이의 감나무가 자라는 것을 매일 바라보길 원했습니다. 집 마당의 터줏대감은 감나무였고 가장 보기 좋았어요. 그것은 항상 아버지의 감나무였어요. 늘 가을이면 감이 주렁주렁 맺힌 채 담장 밖으로 늘어졌어요. 이웃이 지나가다가 손을 뻗어 몇 개 따가도 모를 정도였어요. 그 감나무가 이상해졌다고. 이젠 감이 열리지 않는다고 선배에게 말했지요.


왜 감이 열리지 않는 거지?


아버지의 감나무에서 더 이상 감이 열리지 않는다니 수수께끼 같은 일이군. 선배는 무심히 대꾸하면서 카 오디오에 전원을 넣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그가 즐겨 듣는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선배는 감나무가 아니라 전날 본 영화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음향 엔지니어가 주인공인 영화를 한 번 더 봤다면서.
주인공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장면이 나오거든. 그 장면을 감독이 어떻게 그려냈느냐면 곱게 한복을 입고 꽃잎이 날리는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으로 처리해. 나도 할머니와 살았는데, 이번에 보니, 그 장면은 정말 다른 느낌을 주더군. 저렇게 그려 낼 수도 있구나.
선배가 저장한 플레이리스트의 선곡은 클래식에서 가요로 바뀌어 흘러나왔습니다. 선배의 목소리 뒤로 가수의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하늘이 세상에 내리는 비인지. 눈이 부시어 두 눈 감은 채 잠든 사이로 버스가 오지 않는 오래된 거리 정거장에 낡은 라디오 우…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낯선 이들의 시선들… 선배는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은 첫 앨범을 낸 후 성대 결절이 일어나는 바람에 영영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더니, 다시 할머니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왔는데 집이 너무 고요했어.


보통 때라면, 텔레비전이 켜져 있어서 그 소리가 현관문까지 들려와야 했습니다. 선배를 맞은 것은 괴괴함에 가까운 적막이었습니다. 그 직후, 선배는 화장실 문 앞에 쓰러진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할머니의 뼈는 점점 유리처럼 변해 가는 중이었는데 그날,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넘어진 후 못 일어나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고 이후 선배의 할머니는 영영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할 때의 선배는 시선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고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지요. 내가 알고 있는 선배가 아니라 전혀 딴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선배는 쓰러진 할머니를 보고도 바로 달려가지 못했는데, 시간이 매우 느리게 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는지 나중에 생각해 보니 몇 초간 몸이 굳어 있었던 것 같아. 시간이 한없이 느려지는 느낌. 그런 거였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했어. 그 순간에 생각난 건 119 밖에 없었지. 그다음, 또 그다음의 일들이 닥쳐왔고 그 일들을 혼자 해내었어. 아버지란 작자는 도무지 연락이 안 되었거든.
그때 나는 문득 노랫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도시 밖으로 나오면서 점점 부풀어 올랐던 기분은 바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고 감흥은 영 깨지고 말았습니다.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선배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거동을 못하게 되면서 내가 할머니의 옷을 갈아입혀 드려야 했어. 그 순간 선배의 미간은 갈매기 무늬를 만들어내었습니다.
한 번은 갑자기 할머니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시는 거야. 애그 애그 이를 어째. 할머니를 쳐다보니,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 그 순간 보았어. 할머니 아랫도리에서 뭉클뭉클 기어 나오는 몸속의 물질들을. 할머니는 정신이 멀쩡했기에 그것을 나에게 보여야 하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시는 거였어.
선배는 더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나는 얼른 다른 화제로 전환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선배가 작업에 몰두한 시간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영화 관련 강좌를 수강하려 했다가 다른 엉뚱한 강의를 수강하게 된 이야기를. 한 철학자가 남긴 일기를 두어 줄 읽고 나서 두 시간 동안 내내 일기에서 벗어난 얘기를 늘어놓는 철학 강사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부터 선배와 나는 바닷가에 도착할 때까지 선배 할머니와 나의 아버지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플레이리스트의 선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바깥 풍경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았습니다.


*


마지막 수업이 있었던 날. 응급실에 실려 간 아버지에게서 관동맥의 문제가 아닌 또 다른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건 기존의 질환들에 비해 좀 더 깊고 치명적이라는 것을 의사는 선고하듯 알려 주더군요.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되기 전에 아버지는 다른 전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병원으로 가기 전에 그동안 다니던 병원에서 검진 자료와 기록들을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퇴원 요약지를 보니 확진 진단명이 기록되어 있더군요. 관동맥 폐쇄성 질환. 패혈증. 당뇨. 저나트륨혈증. 위궤양. 신경증병. 위암. 건성습진. 확장성 울혈성 심부전.
병원 침대에 누운 아버지는 점점 움직임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는 한 권의 책처럼 반듯이 누운 모습으로 나를 기다렸습니다. 그 모습은 거실 책장 맨 위쪽 구석진 가장자리 칸에 꽂힌 크고 두꺼운 책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책. 따라서 눈 앞에 펼쳐진 적이 없는 책 말입니다. 아버지는 늘 말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말은 대부분 어머니가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 일대일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지, 저 왔어요. 물 좀 드릴까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으세요? 이걸 대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건 유리로 만든 벽이 가운데 있고, 한 사람은 벽 이편에서 또 한 사람은 벽 저편에 놓인 채, 이편에 있는 사람이 톡톡, 유리 벽을 두들겨 보며 소리를 내는 행위였을 뿐이지요. 나는 아버지의 딱딱해져 가는 다리를 주무르고 닦아 드리면서 뒤늦게 무언가를 읽어내려고 애썼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흐릿하게 실내 운동용 자전거에 올라앉은 모습으로 느리게 페달을 밟는 모습, 방문을 열고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약을 분류해서 상자 안에 넣는 나를 내려다보던 창백한 얼굴, 아버지가 앉았던 방바닥에 고여 있던 축축한 물기, 소파에 기대 누운 채 멍한 눈빛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습니다. 생명의 불꽃이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지만, 그 양초는 거의 몸통의 끝까지 타 내려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창백한 빛이 그런 의미라는 것을 안 것은 나중에 깨달은 사실입니다. 그때는 그걸 읽어 내지 못했어요.
병원에서 간호사가 심장박동을 나타내는 기계의 표시가 멈춘 것을 보고 연락을 했습니다. 새벽 5시였어요. 어머니와 내가 달려갔을 때 이미 아버지의 숨은 끊어져 있었어요. 아버지는 아무도 곁에 있지 않은 새벽녘에 홀로 육체에서 벗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입술은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몇 년 동안 본 얼굴 중에서 가장 평화롭고 젊어 보였습니다. 마치 조각가가 아버지의 시간을 되돌리고 청년의 모습으로 환원시킨 후 마지막 병상에 뉘어 놓은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살고 있지 않은 집은 더 이상 감이 열리지 않는 마당의 감나무처럼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 갔습니다. 지은 지 오래되었지만, 사람의 나이로 환산하면 마흔도 안 된 집이었지요. 집 또한 노인처럼 변해 가는 것이었어요. 어머니는 어느 날, 개미들이 수돗가가 있는 마당의 화단 쪽에서 검은 떼를 지어 이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어느 날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만큼이나 큰 검은 쥐들이 빠른 속도로 이웃집 담장 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며칠 후에 낮에 지하실의 수도관이 터져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고 바가지로 퍼내는 중인데 빨리 와 줄 수 있느냐고, 어머니가 울면서 전화했어요. 모두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동네 중개업소에서 주택업자가 재건축을 목적으로 그 근처 오래된 가옥들을 매입하고 있다며 이런 기회에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으니 집을 내놓으라고 권했을 때, 어머니는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집을 파는 데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그해가 다 가기 전에 서울과 신도시 사이의 중간쯤의 지점에 집을 구해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한 후 여러 달이 지났을 때 궁금한 마음에 그 집에 가 보았습니다. 옛집은 재건축을 앞두고 철거되는 중이었습니다. 조각난 집의 잔해들이 트럭에 실리고 있었습니다. 일 년 후 또 가 보았을 때 5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새로 건축되어 있었습니다. 새로 지어진 집의 이름은 리치 하우스였어요. 옛 집터에서 새로 지어진 리치 하우스를 바라보며 깨달은 것은 이제 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유일한 장소가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당신의 블로그를 발견한 것은 종강 이후에도 네 계절이나 흐른 뒤입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을 썼을 때 이름 밑으로 링크된 블로그가 있었어요. 링크를 클릭하자 바로 블로그로 연결되더군요. 한 해 전, 가을 학기에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과 종강 수업을 못 들은 아쉬움에 대해, 슬픔의 철학과 관련된 저서가 출판되면 꼭 보겠다고 방명록에 쓰고 나와서 다시 들어가 그 글을 지웠습니다. 누군가 귓전에서 자꾸 속살거렸어요. 얘, 이건 너무 늦은 거야.
그날은 이웃 신청만 하고 말았어요. 알림창이 뜨더니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습니다.
L님에게 이웃 신청을 했습니다. L님은 아직 가까운 이웃이 없습니다.
그렇게 나는 당신의 이웃으로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블로그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후입니다. 감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


그즈음 어머니는 늘 하는 산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대신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졸다가 갑자기 눈을 활짝 뜨며, 운동 가자, 말하곤 했습니다.
일이 생긴 건 8월의 어느 저녁입니다. 오전에는 비가 왔고, 오후에는 무더웠습니다. 그날 나는 여러 번 외출했습니다. 시에서 제공한 재난 지원금 카드를 기한 내에 사용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러느라고 저녁 준비가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바깥에서 돌아왔을 때, 집안은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에어컨을 켜는 대신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에어컨을 켤 때마다 전기세 많이 나온다, 타령이 듣기 싫어 견디기 힘들 때만 한 차례씩 틀고 선풍기를 돌리거나 창문을 열어 두곤 했어요. 남향 창에 시야를 막는 큰 건물이 없는 데다가 산이 가까워서 창문을 열어 놓으면 바람이 잘 통하고 바람이 불어오면 견딜 만해지곤 했습니다.
저녁 6시 무렵, 열린 창문 틈새로 들어온 바람은 어머니를 기습했습니다. 부엌에서 뭇국을 끓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한바탕 재채기를 쏟아 낸 끝에 어머니는 으으으, 신음 소리를 내었고,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한 느낌에 다가가서, 왜 그래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구급차가 도착했습니다. 구급대원은 뇌 쪽의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들은 스트레쳐 카를 끌고 왔고 어머니는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갈 때와 같았지요. 어머니는 겁이 많았습니다. 몸은 덜덜 떨고 있고, 컥컥, 목은 숨이 넘어갈 듯이 낯선 숨소리를 내었습니다. 며칠 후에 어머니의 목은 소리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음식을 삼킬 수 없어 콧줄을 통해 경관식을 하는 환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밤마다 미주야, 미주야, 병실에 누운 모습으로 허공을 향해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말을 못 하는 어머니의 소리 없는 비명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손나팔을 만들어 외쳐 보지만, 어머니에게 닿지 못하는 소리들이었습니다.
티브이에서는 거리두기가 연장될 거라는 말이 반복되어 들려왔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 응급실에 간 날이고 그 이후로는 면회 금지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어요. 머지않아 나는 고아가 될 테지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뛰었습니다. 예전에는 침수지였던 곳, 빗물펌프장 공터 바닥에 그려진 트랙을 빙빙 돌았습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면서. 그렇게 빙빙 돌다 보면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인해 마라톤이 취소되는 바람에 집의 발코니에서 커다란 원통 안에 들어가 뛰고 있던 한 여자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화면 속 그 여자는 인간 햄스터처럼 원통을 굴리며 뛰는 모습이었습니다. 위도와 경도가 다른 지구의 여러 장소에서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공터 옆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습니다. 오래된 구립 도서관을 리모델링해서 1층을 북카페처럼 꾸며 놓은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입니다. 여러 사서들이 실내에서 오가며 재개관 준비를 하는 걸 보았지만 아직 한 번도 그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휴관의 연장을 알리는 도서관 유리문 앞에 서서 안쪽을 기웃거리다가 발길을 되돌리곤 했습니다. 도서관 앞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맞은 편에 걸린 플래카드가 보입니다.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고민하지 말고 연락 주세요. 삶의 희망은 붉은색. 보이지 않을 때는 고민하지 말고, 까지의 문장 부분은 검은색. 연락 주세요, 부분은 강조하듯 붉은색이었습니다. 그 옆에 나란히 쓰인 말. 24시간 자살 예방 상담 전화. 당신 곁엔 1393. 플래카드를 붙인 주체는 보건복지부와 구 보건소입니다. 감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들과 자살하는 사람들. 누가 누가 더 많은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라에서는 자살 방지책을 고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런 플래카드가 이곳저곳에 걸려 있는 걸 보니. 지금 시점에서는 이 모든 상황이 언제 끝난다는 것만 알아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의 종료 후에도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다시 말을 하게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요.


*


어머니와 살던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멈춰 있어도 시간은 갑니다. 더디 가느냐 빠르게 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인 시간의 굴레 속에서, 그 굴레를 굴리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커다란 원통 속에 들어가 제자리걸음으로 통을 굴리는 여자. 그게 지금의 내 모습입니다. 앞에도 뒤에도 누르스름하고 무거운 병색 완연한 삶의 무거운 외투를 걸친 이들로 가득한 자동 도로 위에 두 발을 얹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시간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자전하고 동시에 공전하고 있으며… 해가 뜨고 지는 가운데 이따금 고개를 들어 빛의 방향으로 시선을 주는 향일성 식물처럼 그렇게 다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뛰었습니다. 뛰는 것에 더해서 단전 두드리기. 바닥에 엎드려 플랭크 자세. 등 굴리기까지도. 어머니가 매일 불경 책을 들여다보며 기도하던 그 자리에서. 심리상담사가 권해 준 것입니다. 상담사는 바닥에 눕지 말고 되도록 움직이라고, 뭐라도 하라고 하더군요.
작년 여름 거실에 내놓은 선풍기가 아직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선풍기 날개를 해체하고 검은 먼지 기름을 닦아 냈습니다. 오래된 냉장고가 우우 슬픈 소리를 내며 자신을 알아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냉동실과 냉장실의 서랍을 모두 꺼내어 기한이 지난 식품들을 끌어내고 버렸습니다. 한낮에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었습니다. 냉장고에서 2리터들이 생수를 꺼내와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문득 벽장이 생각났습니다. 몇 년째 열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바르트의 일기 프린트물은 벽장 안 상자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A4용지로 출력된 상태에서 스테이플러로 위쪽 모퉁이를 세로로 맞추어 박은 후 반으로 접힌 모습 그대로.


당신의 블로그는 여전히 있었습니다. 다시 찾은 시점에서 블로그의 전체 보기 글은 121개였습니다. 글이 많이 늘어난 것 같지 않았는데 강좌 알림 게시판에 타인이 올린 공지글이 있더군요.
L선생님의 유작이 출간되었습니다. 출판기념회에서는 고인의 유작을 처음으로 만나봄과 동시에 저자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미리 참석 신청을 해 주세요.
딸꾹질을 하면서 인터넷 창을 열고 당신의 근황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당신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것을 부고 기사는 알려 주었습니다. 가을에 시작된 강의는 이듬해 봄까지 계속되었더군요. 이제 알게 된 것은 당신이 기획한 책은 결국 출간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신은 병원에서 시한부의 선고를 받았으니까요. 그 직후부터 당신은 일기를 쓰기 시작했더군요. 바르트가 일기를 썼던 것처럼 당신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일기를 썼습니다.
동영상 강의를 서비스하는 인문학 사이트에서 당신의 강의를 발견했습니다. 강의 녹화분을 패키지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바르트를 읽는 밤’이 포함된 인문학 강의 패키지를 구입하면 동영상 강의 서비스 사이트에서는 1년 동안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수강권을 주었습니다.


*


잠시 글 쓰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어느새 달이 구름 속에 숨었습니다. 별도 보이지 않고 천지가 슬레이트 빛으로 변해 가고 있어요. 나는 달을 바라보는 대신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어 봅니다. 거기 단단한 부분 안쪽을 누르면 물집처럼 부드러운 부위가 있습니다. 그곳은 조그마한 물방울로 가득 채워진 물주머니처럼 말랑말랑해져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때때로 몸을 조그마하게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 주머니 안은 미지근하고 아늑하지요. 이 한없이 축축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그다지 나쁘지 않습니다. 마른 모래처럼 물기 없는 몸에 습기가 차오르면서 조금씩 원래의 형체를 되찾아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손을 들어 스위치를 올리면 눈앞이 점점 환해집니다. 다시 그 강의실에 입장한 나를 알아챌 수 있어요. 조도가 낮은 형광등 불빛 아래 모여 앉은 그림자들이 보여요.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지요. 첫 가을 학기 수업 때 나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나의 첫 수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일기를 낭독하기 시작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기의 한 구절, 한 단락을 읽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됩니다. 이윽고 당신의 입에서 빠져나온 말들이 허공으로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화면 재생 버튼을 지그시 눌러 정지시켜 봅니다. 당신은 입을 벌린 모습에서 자세를 바꾸고 정지한 모습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경청하는 포즈로.
선생님,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네 봅니다. 당신의 강좌가 처음 개설된 해에 나는 이듬해에 생일을 며칠 앞두고 아버지가 세상을 뜨게 될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지 못한 채 매주 금요일마다 지하철을 탔습니다. 열여섯 개의 정거장을 지났고 골목길을 걸어가 길 끝 낡은 건물 안에 있는 3층 강의실에서 밤 7시부터 9시까지 머물렀습니다. 그 강의실에서는 자신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던 치명적인 존재를 짐작 못한 채 일기를 읽어 나가던 선생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선배를 사랑했지만 몇 년 후에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 거라는 사실을 나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정지 버튼을 해제하자, 당신은 다시 일기를 읽어 나갔습니다.


10월 29일: 이상한 일이다.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목소리, 기억을 불러들이는 그녀만의 씨앗.
10월 31일:월요일 오후 3시. 처음으로 혼자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이 집에서 완전히 혼자 살 수 있어야 하리라.
11월 6일: 솜처럼 안개가 짙은 일요일 아침. 혼자다. 한 주 한 주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녀 없이 흘러가게 될 긴 날들의 행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의 음성은 무대에 오른 배우의 독백처럼 들려왔습니다.
오늘의 수업이 끝난 후 바르트의 일기를 천천히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1977년 10월과 11월 사이에 쓰인 저 일기 들 속의 ‘나’와 2022년의 나는 마치 같은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문득 기척이 느껴져 창밖을 보았습니다. 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느낀 것은 밤이 새벽으로 변해가는 시간의 기척인지요.
당신의 블로그에 다시 들어가 보았습니다. 블로그의 주인은 부재중이지만, 집은 여전히 대문을 열어 두고 있었습니다. 게시판에 있는 당신의 흔적, 섬망에 이르기 전에 쓴 마지막 일기를 읽었습니다. 안개가 짙고 바람이 조금 부는 저녁. 그런 제목 아래 단지 두 개의 문장이 있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바람이 약간 불어옵니다. 또 살아 봐야겠습니다.
알림 문자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잠시 글 쓰는 것을 멈추고 확인해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병원입니다. 다음 달부터 접촉 면회가 재개될 예정임을 알려 드립니다.

*이 글에서 인용된 일기의 출처는 롤랑 바르트, 김진영 옮김, 『애도일기』, 이순, 2012.











백영
작가소개 / 백영

201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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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이혜오 휴대폰 알람은 새벽마다 나를 밀쳤다. 나는 미지근해진 자리끼처럼 엎질러졌다. 바닥에 쏟아진 나를 겨우겨우 주워 모아 연습실로 출근해서 스트레칭을 하면, 그제야 팔다리가 달린 사람의 몸을 감각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엎질러진 나를 어떻게든 수습하는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다. * 댄스 학원에 다닌 것은 열네 살 때부터였다. 길거리 캐스팅이 될 만큼 뛰어나게 예쁘지 않은 나 같은 애들은 대개 그때부터, 혹은 그전부터 학원을 다니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대형 기획사의 공채 오디션에서는 번번이 떨어졌고, 열여섯, 중3 때 중소형 기획사 하나에서 내 영상을 보고 대면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엄마와 함께 서울에 가서 대면 오디션을 봤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가득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사옥이 위치해 있던 청담동은 내가 살던 동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동네 전체가 백화점 같았다고 할까.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그 세계의 일부가 된 것이, 나는 기뻤다. 그다음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에는 연습실에 가서 레슨을 받고, 레슨이 끝나면 밤까지 연습을 하다가 숙소에 가서 잠을 청하고 다시 학교에 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연습생 숙소에는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연습생들이 때에 따라 열 명에서 열네 명까지 모여 살았다. 어깨선을 넘는 긴 머리를 한 여자애 열네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살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진다. 끝없이 쌓이는 머리카락을 줍고, 줍고, 또 줍다 보면 문득 인간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해지곤 했다. 그곳에선 언제나,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동진에서 부모님과 살 때는 부족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것들까지. 화장실과 콘센트의 개수나 냉장고와 옷장과 침대의 넓이, 그리고 프라이버시 같은 것들. 내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이불 속밖에 없었다. 나는 좁다란 이층 침대에서 늘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잠들었다. 그 어둡고 텁텁한 공간만을 편안하다고 느꼈다. 나는 천천히,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세계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회사가 작아서인지 제대로 된 트레이닝 시스템이랄 게 없어서, 데뷔 조가 아닌 연습생들은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했다. 어린애들이 우르르 들어왔다가 또 우르르 나갔다. 들짐승처럼 방치된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했다가 또 끌어안았다가 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물론 견디지 못하는 애들이 더 많았다. 고참들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텃세로 풀었고, 신입들은 눈치만 보다가 나가떨어졌다. 매일 갈등이 있었고 매일 누군가 울었다. 누가 언제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기란 어렵다는 것. 그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을 미워하지 않고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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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5
물을 잡으면

물을 잡으면 호인 티브이 화면 가득 연한 푸른색의 거인이 누워 있다. 거인의 배가 천천히 오르내리며 숨을 쉬는 동안 배꼽에서 꿈틀꿈틀 연두색 싹이 올라온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듯 시야가 확 멀어지며 줄기가 솟구쳐 오른 끝에 등불처럼 맑고 밝은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봉오리가 활짝 연꽃으로 벌어지자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화면이 빙글 돌며 보여 주는 남자는 사방마다 하나씩 네 개의 얼굴을 가졌다. 남자가 눈을 뜨자 주변의 어둠이, 캄캄한 태초의 우주가, 섬세하게 일렁이며 여명이 밝아 온다. -멋있다. 저거 뭐니? 말을 걸 기회를 노리던 입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온다. -멋지구리하면, 게임 광고일 걸요? 한솔이는 티브이 쪽을 보지도 않고 중얼댄다. 그래도 그 정도면 근래 보기 드물게 긴 대답이다. 나는 용기를 얻어 질문을 계속해 본다. -게임? 무슨 게임인지 아니? 한솔이는 티브이를 흘끔 보더니 곧 다시 고개를 숙인다. 대답은 짧고 무성의해진다. -인도 신화예요. 지난해 동남아 여행에서 본 기억이 난다. 저 거인들은 비슈누나 브라마 같은 힌두교의 신들이겠구나. 티브이 화면이 휙휙 바뀌더니 중세 유럽풍 갑옷을 입은 힌두 신들의 영상이 번쩍거리면서 브라흐마가 눈을 뜨면 새로운 칼파가 시작된다아, 낮고 웅장한 소리가 울린다. 나를 사로잡은 건 멋지구리한 신들의 모습보다는 칼파라는 단어다. 칼파, 겁파, 겁(劫). 내가 아는 하나의 겁은, 세상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주기, 천지가 한 번 개벽한 뒤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그 무한한 시간이 게임이 서툰 아이에게는 한순간에 끝나겠구나. 그리고 곧이어 하나의 겁이 새로 시작해서 금방 끝나고, 또다시 새로운 겁이 시작하겠지. -저거, 네가 하는 게임이니? 내 질문은 어딘가 건성이 되어 버린다. -아니요. -요즘 컴퓨터 게임은 여럿이 함께 한다며? 너도 그러니? 한솔이는 수저를 탁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가 버린다. 티브이에서는 신들과 악마들이 단 몇 초 화려한 전쟁을 벌이다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하나의 칼파가 끝나 세상이 캄캄해지고 티브이 화면 가득 게임의 이름이 반짝거린다. 광고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하지만, 텅 빈 거실에서 티브이나 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남편은 집을 나간 후 생활비를 보내지 않고,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비즈 팔찌를 만들려고 작업실로 가는데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인 곁눈질이 무언가 이상한 걸 감지한다. 고개를 돌리자 어항이 보이고, 역시나, 금붕어 한 마리가 불길한 수류를 따라 떠돌고 있다. 지난 보름 사이 네 번째. 금붕어가 죽었다. 이 년 전, 남편이 한솔이를 위해 사 왔던 금붕어가. 이 년 전 지나가 버린 그 시절 책임감 있던 가장이 착했던 아들을 위해 사 왔던 그 금붕어가. -*- 시조카 아이가 우리 집에 온 건 이 년 전, 그러니까 재작년 가을이었다. 툭하면 사람을 패고 다니는 시동생이 또 사고를 치고, 동서가 죽는다고 소동을 벌인 때문이었다. 부부가

  • 관리자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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