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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디

  • 작성일 2022-10-21
  • 조회수 666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장편)]



버디




장은진






물이, 계단 한 칸을 삼켰다.


도시는 사라졌고 일부가 남았다. 남은 도시의 일부는 모두 높이를 자랑하던 것들이었다. 높이를 가져서 살아남았노라 자랑하는 듯하지만, 언제까지 사라지지 않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비극이었다.
남은 것들은 섬의 형태로 남았다. 섬과 섬을 잇는 길은 없었다. 땅, 인류가 착실하게 닦아 온 길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도시와 바다, 땅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없다는 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갈 수만 있다면, 가는 곳은 다 우리의 길이 되었다. 그 많은 길은 발자국을 허용하지 않았고, 아무리 걸어도 흔적이 남지 않았다. 혜미는 슬픈 눈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도시는 물속을 거니는 자들에게 가까이 보였다. 나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사람도 섬의 형태로 남았다. 죽어서 물 위에 홀로 떠 있거나 살기 위에 물 위를 홀로 헤엄치는 모습을 무수히 보며 나는 인간의 본질이 섬이란 걸 알았다. 그러나 인간이란 섬은 죽지만 않으면 움직일 수 있었다. 움직이면 찾아갈 수 있었고, 손잡을 수 있으며, 둘이 될 수 있었다. 혜미는, 내가 처음으로 찾아가 손잡아 준 섬이었다. 손잡은 우리 둘은 9층 창문으로 주소가 지워진 도시를 내려다봤다.
“무서워.”
혜미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땀에 젖은 내 반팔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혜미 팔에 안긴 새끼 고양이 루나는 가냘픈 울음소리를 냈다. 루나도 무섭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지금 내려다보는 건 망망대해였다.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 지어진 빌딩에 있었다. 그런데 누가 바다에 빌딩을 짓겠는가. 바다가 도시를 침범한 것이었다. 꼭 바다만은 아니었다. 강, 호수, 계곡, 빙하. 세계의 물이 하나가 되어 도시를 차지해 버렸다. 경계가 사라졌으므로, 저 물은 바다이기도 강이기도 호수이기도 계곡이기도 빙하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냥 바다였다.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고 깊으니까. 내가 알던 바다보다 크고, 하얀 파도는 멈추지 않고 빌딩을 부술 듯 계속 쳐 대니까. 하지만 바다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고 배웠던 아름다운 바다, 나한테 늘 벅찬 감동을 주던 그 바다는 아니니까.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지만, 붙이면 불러야 하고 부르면 저 끔찍한 광경이 계속 호출될까 봐 어쩔 수 없이 바다라고 한다. 달리 부를 이름이 없으니까 그냥 바다라고. 단, 저것은 내가 결코 몰랐던 아름답지 않은 바다다. 저런 괴이한 바다는 상상 속에도 없었다. 아니 괴이한 도시라고 해야 할까.
도시는 난지도 같았다. 무너진 집과 건물에서 흘러나온 온갖 물건들, 부러진 나무, 자동차들이 알록달록한 색깔을 띠며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물에 잠긴 후 도시의 소음은 사라졌지만 파도 소리와 슥슥, 끅끅, 하고 잔해가 바다를 긁고 지나가는 소리는 하루 종일 들렸다. 그 쓰레기 더미 사이에는 죽은 사람과 동물도 있었다. 저렇게 떠다니다 무거운 것들은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가벼운 것들은 계속 표류하다 어딘가로 영영 흘러가 버렸다. 사람과 동물은 썩어서 흩어진 뒤 밑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땅이 없어서 물에 스스로 묻히는 것이었다. 찾아보면 난지도에도 쓸 만한 물건이 있듯이, 살펴보면 저 바다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혜미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펴보면 우리 엄마 아빠도 있을까?”
길도 끊기고 통신도 끊긴 상황이라 서로의 생사 확인은 어려웠다. 열일곱은 부모가 아직은 필요한 나이였다. 남자지만 나에게도 필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걸 간신히 참으며 혜미의 손을 꽉 잡고 약속했다. 부모님을 찾아 주겠다고. 많은 것들이 물속으로 사라진 지, 우리가 많은 것들을 동시에 잃어버린 지 벌써 닷새째였다. 물 위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고, 모두가 공평하게 불행해졌다.


더 불행해지라고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다. 하늘에 가득 찬 먹구름은 기이한 형상으로 꿈틀대며 비를 뿌렸다. 거칠고 역동적으로 넘실대는 구름이었다. 마치 폭풍 치는 바다가 거꾸로 뒤집혀 하늘에 놓인 듯한 모습이었다. 하늘이 은빛 거울이어서 물결치는 아래쪽 바다를 그대로 비춘 것도 같았다. 바다에는 파도가 있고 하늘에는 구름이 있으니 강풍을 만나면 같은 형태로 굽이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가 보트 다이빙을 하러 서해로 나갔을 때 샘 아저씨가 저런 형태의 구름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거친 물결구름’이란 이름의 그것은 2006년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주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악마 구름’으로도 불린다고 했다. 기상학자들은 국제 구름 도감에 등재된 악마 구름이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온 현상을 밝히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거라고 했다. 그날 갑자기 안 좋아진 날씨로 거칠어진 조류와 다크한 빛깔의 서해는 저 구름처럼 무서운 음영을 띠며 너울댔다.
“드디어 왔구나.”
샘 아저씨가 우리 뒤에서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는 이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했다. 마치 저 구름이 바이러스 감염 후 발현되는 첫 번째 증상인 것처럼. 아저씨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이어서 말했다.
“폭풍우가 되진 않는다고 들었는데 저놈은 비를 품었구나.”
나는 아저씨의 눈길을 따라 수면에 닿을 듯 낮은 자세로 이글거리는 먹구름을 올려다봤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구는 감염되었고, 그날 지구는 이상 증상을 몸부림이란 방식으로 보내왔다. 우리가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누구도 몰랐다. 이대로 살아야 한다면 살아질까. 아저씨는 지구의 몸부림이 다 안 끝났다면서, 살려면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혜미와 내 어깨를 감싸고 사무실로 데려갔다.
아저씨는 책상 여러 개를 벽에 붙인 뒤 군용 담요로 두툼하게 덮어 침대 세 개를 만들어 주었다. 넓은 침대가 필요한 아저씨는 정작 창가의 작은 소파에서 지냈다. 키가 크고 덩치도 산 만한 아저씨한테는 좁고 불편해서 누울 때마다 새우처럼 몸을 구부려야 했다. 소파 앞 테이블에 아저씨가 마련한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
나는 자고 있는 동생 세아의 침대로 갔다. 어젯밤에도 세아는 두려움과 공포에 떨다 늦게까지 잠을 못 잤다. 내가 옆에 누워 손을 움켜쥐고 세아가 좋아하는 신비한 바닷속 얘기를 들려주자 겨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그래서 깊이 잠든 세아를 깨우는 게 겁났다. 아홉 살 세아가 마주친 세상은 열일곱 살 내가 마주한 세상과 완전히 다른 빛깔로 기억됐을 것이다. 혜미와 내 눈동자에 담긴 빛깔과 샘 아저씨 눈동자에 새겨진 빛깔 또한 다를 것이다. 벽을 보고 누운 세아의 얼굴을 가만히 넘어 봤다. 좋은 꿈을 꾸는지 한 번씩 입가를 씰룩거리며 웃었다. 무슨 꿈인지 알 수 없지만, 세아를 향기로운 그 꿈속에 계속 두고 싶었다. 꿈을 깨면 악몽이 시작될 테니까. 이보다 더한 악몽을 꾸더라도 꿈에서는 안전한 엔딩일 테니까.
그때 누군가 하늘을 찢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밖에서 천둥소리가 났고, 깜짝 놀란 세아가 눈을 뜨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아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헤맨 듯 멍한 표정으로 눈을 가물거리다 내 얼굴과 창밖의 소용돌이 구름을 한참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내 현실이 악몽임을, 닷새 동안 본 꿈의 빛깔을 기억해 내고는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를 찾는 세아의 울음소리가 내 심장을 움켜쥐었다. 혜미가 달려와 세아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괜찮아, 괜찮아를 자장가처럼 고요하게 읊조렸다. 그러자 세아의 울음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혜미가 세아의 품에 노란 줄무늬 루나를 안기며 꼬리로 장난을 치자 울음은 완전히 그쳤다. 루나는 작고 까끌한 혀로 세아의 손등을 핥아 주었고, 세아는 간지럽다는 듯 고개를 비틀며 조금 웃었다.
테이블에는 삶은 옥수수 다섯 개와 견과류가 든 율무차가 놓여 있었다. 바닥에 내려 두자 루나는 납작한 그릇 앞으로 발랄하게 뛰어갔다. 그러고는 긴 꼬리를 잔잔한 수면 위 부표처럼 살랑대며 자기 몫의 우유를 핥았다. 번개가 칠 때마다 루나는 우유를 먹다 말고 앙증맞은 귀를 쫑긋거리며 유리창을 올려다봤다. 아저씨가 커튼을 쳐서 창문을 가렸다. 우리는 그제야 옥수수를 한 개씩 손에 쥐고 먹었다.
아마 이것이 우리에게 남은 식량의 전부일 테다. 우리의 식량이 떨어졌으니 다른 층 사람들의 식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 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내 눈빛 메시지를 받은 아저씨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아저씨와 알고 지낸 지도 8년. 아저씨와는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다. 그 눈으로 현재의 기분과 감정, 몸 상태까지 알 수 있었다. 8년 동안 목숨처럼 다지고, 신망으로 지켜 온 물속 우정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물속에서처럼 수신호를 보냈다. 나는 아저씨의 물음에 그러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과 수신호가 오가자 지금의 세계가 물속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 세계는 이미 우리에게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아까 아저씨와 눈빛과 수신호로 나눈 대화는 이렇다.
‘먹을 게 다 떨어졌어요?’
‘그래.’
‘잠수할까요?’
‘그래야지.’
‘언제요?’
‘비 그치면. 프리로 하자.’
‘네.’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구름이라 그런지 악마 구름은 소멸하는 것도 빨랐다. 점심때쯤 구름이 걷히자 아저씨와 나는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드라이 슈트로 갈아입은 다음 드라이 글러브를 슈트에 장착하고 후드를 머리에 썼다. 그리고 슈즈를 신고 정강이에는 나이프, 손목에는 시계처럼 생긴 다이브 컴퓨터를 찼다. 나머지 다이빙 장비인 물안경과 랜턴, 스노클, 롱핀, 채집망 등을 챙겨서 계단을 내려갔다. 혜미와 세아가 따라 나왔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14층짜리 빌딩 9층이었고, 물은 5층 3분의 1까지 차 있었다. 기어오르겠다는 듯 물결은 쉴 새 없이 빌딩 안으로 쳐들어와 벽에 부딪혔다. 아저씨와 나는 장비를 마저 착용하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드라이 슈트 덕에 물이 차갑지는 않았다. 뒤에서 혜미와 세아가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물을 극도로 무서워했다. 어두운 물이 건물 안에서 철썩대자 겁먹은 둘은 손을 꽉 잡고 뒷걸음쳤다. 그 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를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일부러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내 임무는 그들의 불안을 이 물속에 좌초시키는 것이었다.
아저씨와 나는 빌딩 밖으로 나왔다. 빌딩을 나왔는데도 땅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물속을 걸어야 살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걸었듯 아무렇지 않게 헤엄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저마다의 몸에 새로운 기능 하나를 추가해야 하는 것이었다. 반인반어(伴人半漁). 나는 물고기처럼 물을 가르며 아저씨가 5층 창문 쇠창살에 묶어 둔 고무보트로 올라탔다. 오늘 우리의 다이빙 포인트는 빌딩 50미터 옆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도시의 주소는 물에 잠겨 사라졌으니 새로운 감각으로 장소를 찾아 나서야 했다. 아저씨가 노를 저어 보트를 움직였다. 보트는 물 위에 떠 있는 쓰레기를 헤치고 물결을 둥실둥실 넘어 앞으로 나아갔다. 진로에 방해되는 쓰레기는 내가 보트 앞머리에 앉아서 미리 치웠다.
포인트에 도착한 우리는 의식처럼 잠수 순서와 안전 수칙을 브리핑했다. 서로 확인하고 서로에게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아저씨는 공기탱크 없이 입수하는 프리 다이빙이라고 브리핑을 건너뛰거나 간소화하지 않았다. 브리핑은 잠수에 앞서 심리적 긴장감을 해소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아저씨는 제일 먼저 컨디션 체크와 장비 점검을 했다. 빠진 장비나 고장 난 장비가 없는지 우리는 교차 점검까지 했다. 그러고 수면 상태를 확인한 뒤 수심에 따른 체류 시간을 보수적으로 잡아 손목에 찬 다이브 컴퓨터에 타이머로 맞췄다. 나는 입수 후 수중 환경을 파악하는 일과 임무를 수행한 뒤 상승해서 수면 출수까지의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 봤다. 다이빙은 물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왔을 때야 비로소 안도하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궁극의 다이빙 포인트는 물속의 어딘가가 아니라 공기가 있는 안전한 물 바깥인 것이다.
우리는 수신호도 점검했다. 말을 할 수 없는 다이버들이 물고기 종류나 잠수 상황을 수신호를 통해 대화하듯 우리는 편의점에서 가져올 품목에 대한 수신호를 미리 정해 두었다. 물이 탁해서 수신은 랜턴을 이용하기로 했다. 프리 다이빙은 잠수 시간이 짧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하강해야 한다. 초속 1미터로 움직여야 해서 이동에 효율적인 플러터 킥을 구사할 예정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팀 호흡이었다. 아저씨와 나는 허리를 끈으로 묶어 놓은 것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항상 같이 이동해야 한다. 서로가 눈에 보이는 자리에 있어야 하고,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 다 아는 것이지만 아저씨와 나는 매뉴얼을 확인하고 공유하고 정리했다. 안전에 대한 룰 숙지는 늘 과해야 했다. 수면을 10센티미터 앞두고 죽을 수 있는 곳이 물속이기에 조금의 실수나 방심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빈틈없이 점검해도 문제가 생길 때가 있었다. 공기가 없는 우주처럼 물속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제2의 우주처럼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곳이므로 우리를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걸 명심해야 한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물속에서 욕심부리지 말 것을 강조했다. 물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수칙과 약속과 시간을 지키는 것만이 목숨을 지키는 거라고 말했다.


아저씨와 나는 공기를 폐 주머니에 가득 담고 입수했다. 물속을 거닐어 물이 차지해 버린 도시 일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물이 탁해서 시야 확보는 다소 어려웠지만 랜턴 불빛에 건물의 형체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그곳은 짙은 안개 속에 잠긴 유령 도시 같았다. 아무도 없을 테니 유령 도시인 건 맞았다. 우리 집도, 혜미 집도 현재 이런 모습일 것이다. 모두 무사할까. 집과 가족을 생각하자 어김없이 집중력이 흩어졌다. 물속에서는 물 밖은 잊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물속은 며칠 전까지도 물 밖이었기에 고통스러웠다. 내게 늘 신비함과 경외감을 주던 그 물속이 아니라서 참혹했다. 물속 경험이 많음에도 불현듯 두려워졌다. 그때 아저씨가 랜턴 불빛으로 수신호를 보냈다. 내 심리 상태를 꿰뚫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엄하게 주의를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수직 하강하는 속도만큼 재빨리 우리의 매뉴얼로 돌아왔다.
아저씨와 나는 편의점에 도착했다. 지금껏 간판 불이 꺼진 편의점을 본 적 없어서인지 순간 물속이란 사실을 잊고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들어가도 되나. 돈이 있어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숨을 참아야 들어가는 편의점이라니. 그런데 어디 편의점뿐이랴. 물속 커피숍, 물속 서점, 물속 마트, 물속 성당, 물속 PC방, 물속 학교, 그러니까 물속 도시. 편의점 출입문은 떨어져 나가고 없었고, 유실되지 않고 남은 물건들은 바닥에 죽은 듯 가라앉아 있었다.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는 섞여 도시를 헤엄쳐 다녔다. 나는 랜턴을 비추며 필요한 것들을 채집망에 담았다. 그러나 필요하지 않다고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서 보이는 족족 무조건 담았다. 그렇게 서너 개 집어 들다 보면 다이브 컴퓨터는 잠수 가능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타이머로 알려왔다. 올라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저씨와 나는 그렇게 입수와 출수를 반복했다. 현재 우리는 물질하는 해남이나 마찬가지였다. 물고기나 해산물이 아니라 물속 편의점에서 라면을, 부탄가스를, 통조림을, 바나나 우유를 건져 올릴 뿐이었다. 보트에는 우리가 숨을 참은 만큼 필요한 것들이 쌓여 갔다. 우리를 숨 쉬게 해 줄 것들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숨으로 숨을 구하는 것이었다. 숨으로 숨을 맞바꾸는 일이었다.
신비와 경외감을 주던 바다는 아니지만 지금의 물속이 내게 낯선 건 아니었다. 물에 잠긴 도시는 훈련 차원에서 아저씨와 여러 번 동행했던 동굴 다이빙이나 서해 다이빙, 난파선 다이빙 때의 환경과 흡사했다. 서해와 동굴이 가진 어둠, 건물 형태와 닮은 난파선. 아직은 가 본 적 없지만 물속 도시는 수몰된 고대 유적지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사람이 있었던, 그들이 생활했던 자리. 상실의 고통과 죽음의 현장. 내가 살던 도시가 과거에 탐험했던 동굴과 난파선처럼 미지의 세계, 탐사 대상이 되리라는 사실이 낯설 뿐이었다. 물은 한순간 그렇게 인류의 것을 다른 세계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이빙 막바지에 아저씨는 생수를 찾으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많은 걸 파괴한 물속에서 마실 물을 건져야 하는 아이러니. 다행히 멀쩡한 형태로 살아남은 쇼케이스가 있었다. 나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차가운 쇼케이스 문을 열고 에비앙을 집어 들었을 때처럼 어렵지 않게 그것을 꺼냈다. 생수 값은 돈 대신 숨으로 지불했다. 그렇게 마지막 잠수까지 끝낸 우리는 에비앙을 끌고 무사히 수면으로 도착해 안도의 공기를 마셨다. 10여 초 먼저 수면에 도착해 있던 아저씨가 숨을 헐떡거리는 내게 물었다.
“마지막에 보낸 수신호는 뭐였니?”
올라가자는 수신호를 교환해 놓고 내가 늦게 나오자 아저씨가 조금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는 에비앙이 든 채집망을 끌어올리며 덧붙였다.
“우리가 정한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시신이요. 시신을… 봤어요.”
물에 휩쓸려 가는 주검은 봤지만 물속에서 시신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아저씨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룰을 어기지 말라고 주의를 주며 나를 보트로 끌어올렸다. 후드를 벗자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한여름 태양 빛이 정수리에 날카롭게 닿았다. 저 태양열에 물이 모조리 증발해 버렸으면 좋겠다. 태양은 그런 힘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듯 갑자기 생겨난 소용돌이 먹구름이 해를 가렸다. 그러자 곧바로 장대비가 쏴아, 하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져 내렸다.


비를 맞으며 아저씨와 나는 보트 가득 ‘숨들’을 싣고 빌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가 다이빙을 안전하게 마치고 돌아온 사이, 물이 계단 한 칸을 삼켜 버렸다.


*


지구가 몸부림을 친 건 닷새 전이었다. 토요일 오후 7시였고, 동쪽 하늘에는 황금 거울 같은 보름달이 예쁘게도 걸려 있었다. 보름달과 그믐달이 뜨면 바다의 조류는 엄청나게 강하고 거칠어지지만, 주말 도시의 흐름은 한없이 고요하고 차분하기만 했다. 폭풍 전야처럼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서 나는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도시를 내려다봤다.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불빛은 질서 정연한 흐름으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심해에 사는 발광어 떼처럼 어스름한 저녁을 동그랗게 밝히며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다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지 거리는 평소만큼 북적대지 않았다. 도시 특유의 분주함이나 신경 쓰일 정도의 소음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능적으로 숨죽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날의 차분한 도시와 달리 내 마음은 몹시 들뜬 상태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오래전부터 계획해 두었던, 팔라우에서 리브어보드 다이빙을 하기로 한 날짜가 바로 다음 날이기 때문이었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전단지를 돌리거나 파트타임으로 치킨 배달을 했고, 주말에는 아쿠아리움에서 잠수 알바를 했다. 다이버들의 성지 중 하나인 팔라우 3대 다이빙 포인트 블루홀과 블루코너, 저먼채널을 다이빙할 예정이었다. 버킷리스트 포인트였던 팔라우에서 돌아오면 바로 국내 동굴 다이빙을 가기로도 되어 있었다. 아저씨 회사 다이버들과 사무실에서 집합해 출발하기로 했지만, 기분이 들뜬 한편 뭔가 불안해서 나는 전날 미리 장비를 챙겨 아저씨 사무실로 갔다. 역시나 서두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잠깐 외출 나간 아저씨를 기다리며 다이빙 장비를 점검하다 로그북이 빠졌다는 걸 알았으니까.
로그북은 다이빙 일기 같은 것으로 다이버들이 자신의 다이빙 경험과 경력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작은 노트였다. 다이빙 날짜와 장소, 다이빙 횟수, 포인트, 수심, 입수 시간, 잠수 시간, 출수 시간, 장비 등 다이빙의 모든 걸 그 노트에 적어 두었다. 단순히 다이빙 환경이나 수치뿐 아니라 다이빙을 마친 감상과 느낌까지 적어 두었다. 그렇게 기록해 두면 다이빙 실력이 어떻게 변화 발전해 왔는지, 누가 자신을 물속에서 지켜 주었는지, 다이빙 중 어떤 문제와 사고가 발생했는지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복기하다 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어 스킬 향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언젠가 아저씨 로그북을 본 적이 있었다. 36년이란 다이빙 경력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권수의 로그북이었다. 내게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라기보다 수천 번 다른 세계로의 여행에서 무사 귀환했다는, 저승을 지나쳐 왔다는 통과증이었다. 다른 나라로 여행 갈 때 필요한 여권처럼 로그북은 물속 여행을 다녀왔다는 도장 찍힌 증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크기도 여권과 비슷했다. 나는 지층처럼 색색이 쌓인 낡은 로그북을 대할 때마다 아저씨처럼 로그북 지층으로 시간을 증명해 보이리라 다짐했다. 그것은 다이버만의 독특한 삶의 기록이자 기억의 방식이었다.
그러니 로그북을 챙기지 않았다는 건 나의 여행을 증명할 수 없으리라는 전언이었고, 무사 귀환을 못 해서 저승에 발이 묶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징조였으며, 삶의 어느 날을 기록하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슬픈 예감 같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로그북을 가지러 집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서 사무실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쌌다며 출국하기 전에 꼭 먹이고 싶다는 엄마의 전화였다. 아저씨와 같이 먹으라며 엄마는 세아 편에 도시락을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사무실로 도로 들어서며 세아에게 책상 서랍에 넣어 둔 로그북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날 나의 로그북은 저승 통과증이 맞았다. 세아와 나를 물속에서 건져 주었으니까.
50분 후 택시가 도착했다. 세아는 배낭에서 김밥과 로그북을 꺼내며 다이빙 떠나기 전 오빠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마 세아는 김밥 배달을 자신이 하겠다며 떼를 썼을 것이고,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세아를 택시에 태워 보냈을 것이다. 마침 아저씨도 외출에서 돌아와서 우리 셋은 테이블에 앉아 우주에서 가장 맛있고 예쁜 엄마 김밥을 나누어 먹었다.
다 먹고 마지막 남은 김밥 꽁다리를 서로 양보하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리면서 축이 흔들린 듯 지구가 크게 한번 몸부림을 쳤다. 그러더니 삽시간에 거대한 무언가가 도시를 덮쳤다. 정전이 됐고,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초쯤 흘렀을까. 지축을 흔들던 진동, 깨지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들이 일순간 사라지자 우리는 테이블 밑에서 겁먹은 짐승처럼 기어 나와 창가로 갔다. 그러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했다. 어두웠지만 더없이 선명하게 보였다. 공포에 떨며 세아가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높고 거친 파고의 첫 번째 해일은 낮은 건물을 짓눌렀고 높은 건물을 허물어뜨렸다. 모두 어, 하는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그만큼 순식간이었다. 잠시 후 뒤로 물러났던 해일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 그때는 낮은 높이와 느린 속도로 밀려들어 왔다. 들어오면서 해일은 무너뜨렸던 것들의 잔해를 모두 데리고 도시 깊숙이 파고들었다. 슥슥, 끅끅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그것은 부드러웠지만 멈추지 않았고 지치지 않았다. 바다란 원래가 멈추지 않고 지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흘러서 어딘가에 기어코 닿고 채웠다. 이번에는 도시의 땅이었다. 경계를 넘어서까지 차지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미워서인지, 혼내 주려는 것인지, 욕심이 나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물은 형태를 갖지 않아서 어떤 형태로든 차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틈 하나 없이 도시를 완전히 꼼짝 못 하게 틀어막고 포위했다. 딱 맞아서 원래부터 자기 것인 양 위세를 떨었다. 자기 자리인 것처럼 위용을 부리며 넘실댔다. 그렇게 물은 도시의 형태를 가졌고, 거기서 더 높이 가지려고 지금도 시시각각 손을 뻗었다.


내가 머물던 빌딩은 운 좋게도 파고를 견뎌 냈다. 높은 층이란 이유 하나가 우리를 살린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전혀 해본 적 없는 낯설고 생경한 여행을 로그북에 기록해야 한다.


*


빌딩 6층에도 공평하게 불행해진 사람들이 담요를 바닥에 깔고 앉아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들 서로 모르지만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닮아 가고 있었다. 잃은 것도 얻은 것도 같은 기후 난민들. 우리와도 다르지 않은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 본 적 없는 낯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냄새 나는 옷으로 여러 날을 버티고, 적은 식량으로 매 끼니를 간신히 넘기며 지내고 있었다. 얼굴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았다. 남녀노소 구분만 가능했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다른 얼굴이란 걸 알았다. 그들은 더러워진 얼굴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눈동자, 어디로도 갈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고 물이 도시를 돌려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들은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남은 평생 기억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편의점 소시지를 란희 누나에게 건넸다. 작지만 우리는 물속에서 가져온 것을 빌딩 사람들과도 나누었다. 란희 누나는 학교 선배인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나오다 휩쓸렸다고 했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창문에 간신히 매달려 살 수 있었다며 지유 이모와 달리 누나는 창문을 고마운 눈빛으로 종종 쳐다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창문을 쳐다보는 누나의 눈가가 촉촉했다. 늘 밝고 긍정적이었던 누나라 나는 좀 놀랐다. 지금까지 밝은 척해 왔던 것이리라. 오히려 밝은 게 이상한 일이었다.
“선배는 해병대 출신이라 무사할 거라 믿어.”
누나는 내가 건넨 소시지를 다른 사람들과 조금씩 나누었다. 그러고는 망가진 휴대폰 뒤에 붙여 둔 커플 사진을 보여 주었다. 박력이 넘치는 남자였다. 남자친구는 영어를 잘해서 통역사가 꿈이라고 했다.
“누나 꿈은 뭐예요?”
내가 물었다.
“뭘 하든 행복해지는 거.”
누나는 늙어 버린 사람의 얼굴로 대답했다.
“멋진 꿈이네요.”
“근데 닷새 전에 누가 나한테 똑같은 걸 물었다면 다르게 말했을 거야.”
누나는 아껴 먹듯 소시지를 조금 베어 물었다.
“어떻게요?”
나는 누나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부자가 되는 거.”
“부자도 행복하지 않아요?”
“거꾸로 됐더라고.”
그때 누나의 눈빛이 찰나적으로 반짝였다.
“거꾸로요?”
“행복하면 부자는 저절로 되는 거더라고. 근데 부자가 목표인 사람은 절대 행복해지지 않아.”
부자였던 적이 없던 나는 부자가 행복한지 알 수 없어서 물었다.
“왜 그렇죠?”
“부자라는 목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거거든. 채워지지 않으니 행복해지지도 않지.”
누나는 물에 잠긴 도시를 살아서 마주 보자, 그 한가운데 숨 쉬며 서 있자 지금부터의 인생은 덤으로 얻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덤이 이전과 똑같아진다면 그 인생은 밑 빠진 독일 거라고. 가치의 순위를 바꿔 준 저 물은 만 권의 책이나 100년을 산 사람의 시간 같은 걸까. 나는 누나가 그 선배와 함께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누나를 살린 창문으로 사라져 버린 도시를 내려다봤다. 음악을 들을 수 없어서 누나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허밍으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등 뒤에서 애잔하게 들려왔다. 노래는 잊고 견디기 위한, 누나에게 하나 남은 수단이었다.


*


밤은 어두웠다.
원래 밤에는 어디나 어둡지만 도시는 밤에도 대낮처럼 환했던 날들이 많아서 이 어둠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는 전기가 들어오려면 오래 걸릴 거라고 했다. 촛불인지, 랜턴인지 알 수 없지만 몇 군데서 빛 점이 반짝거리기도 했다. 샘 아저씨는 전깃불이면 태양열에서 얻은 빛일 거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살 방도를 나름대로 찾아 나서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층에서 지내는 윤 씨 아저씨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윤 씨 아저씨가 복도 끝 창문 앞에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윤 씨 아저씨란 걸 알았다. 아저씨는 죽을 방도를 찾는 사람처럼 항상 창밖만 내다보며 지냈다.
먹구름이 잠깐 걷힌 사이 샹들리에 같은 큰 달과 꼬마전구 같은 수억 개의 별빛에 혜미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달빛은 검은 바다 위에서 노란 춤을 췄다. 그때 아래층 창에서 란희 누나가 부르는 노래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차라리 밤이 나은 것 같아.”
혜미가 아침보다는 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내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아서. 정말 고요해.”
혜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란 게 저렇게 많은 건 줄 몰랐어. 꽉 찼어. 물처럼.”
혜미에게 밤은, 세아가 아침에 꾼 향기로운 꿈같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꿈이란 건 깨기 마련이듯, 밤이 지나고 낮이 찾아오면 그것은 우리에게 닥친 악몽을 환하게 보여 줄 것이다. 세아처럼 혜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울어버릴까 봐 혜미를 이 밤에 오래 머물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말했다.
“혜미야, 물속이란 건 밤에 꾸는 꿈같은 거야.”
혜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도 혜미를 쳐다봤다. 수면에 비친 달처럼 혜미의 검은 눈동자가 달빛에 반짝였다.
“밤은 어두워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처럼, 물속도 알 수 없는 곳이야.”
혜미가 물 위에서 출렁이는 달빛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대신 밤에 우리는 꿈을 꾸잖아. 알 수 없는 물속이지만 꿈을 꾸는 것처럼 몽환적인 곳이 또 거기야.”
“악몽이란 것도 있잖아.”
혜미가 자기 손등에 턱을 괴었다.
“맞아. 물속도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아. 심사가 뒤틀리면 위험하고 무시무시하게 돌변하기도 해.”
“지금은 악몽인 거겠지.”
두려움과 체념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낮과 밤이 왜 있는 줄 알아?”
내가 물었다.
“왜 있는데?”
“낮에는 사람이란 별을 보고, 밤에는 하늘의 별을 보라고.”
혜미가 눈을 치켜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서 실컷 보라고 저렇게 됐나 봐. 그동안 사람들이 하도 별을 안 봐서, 다른 사람까지 별을 못 보게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켜 놓고 살아서, 지금부터라도 보라고 다 꺼 버렸나 봐.”
“우리 잘못인지도 몰라.”
“질리게 보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줄까.”
나는 대답하지 않고 별을 봤다. 태어나 지금까지 봤던 별의 개수를 오늘 밤 다 보는 것 같았다. 평생 헤아릴 별의 개수를 지금 다 헤아리는 것 같았다. 질리게 별만 볼 수 있도록 밤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라도 헤아려 줄 테니. 물에 잠긴 저 기이한 도시가 보이지 않게.
“별도 섬 같네.”
혜미가 말했다.
“그래도 이을 수는 있어.”
혜미가 손등에 괴고 있던 턱을 들어 나를 쳐다봤다.
“이으면 별자리가 돼. 사람들은 외롭게 혼자 두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별을 이어서 이름을 붙였어. 이름이 생기면 힘도 생겨.”
“이렇게?”
혜미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그날 내가 혜미 손을 잡았던 것처럼. 혜미와 나를 이으면 어떤 별자리가 될까. 세아와 아저씨, 그리고 고양이 루나까지 이으면 이름 하나를 지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로 인해 혜미는 이 밤에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렀다고 느꼈을까. 망망대해에서 길잡이가 되어 주는 건 별자리다. 물은 도시를 삼켰지만 밤하늘의 별자리는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윤 씨 아저씨도 창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란희 누나가 부르는 담담한 노래도.


선으로 다섯 개의 별을 이어 성좌가 된 것처럼 루나와 네 사람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낮에 그물로 잡아 온 것으로 식사를 했다. 테이블 가운데 수중 랜턴을 촛불처럼 올려놓고 천천히 먹었다. 세아가 눅눅한 비스킷을 입에 문 채 테이블을 둘러보며 말했다.
“감자 먹는 사람들 같아.”
식사를 하다 말고 모두 세아를 쳐다봤다. 심지어 루나도 통조림을 먹다 말고 세아를 올려다봤다. 혜미가 우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 보더니 말했다.
“진짜 그러네.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
나도 그 그림에 대해서라면 안다. 다섯 명의 남루한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램프 아래서 감자를 먹는 그림. 가느다란 램프 불빛 때문에 그림의 분위기는 어두침침했고, 감자 먹는 사람들의 거친 얼굴에서는 가난과 노동의 피로가 실감 나게 꿈틀댔다.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랜턴 불빛을 받은 우리 얼굴도 고흐의 그림처럼 짙게 음영 져서 가난하고 몹시 지쳐 보였다.
“감자 먹는 사람들도 다섯인데 우리도 다섯이야.”
세아가 비스킷을 마저 먹으며 말했다. 다섯이라 좋아하고 안심하는 것 같았다. 조금 밝아진 표정의 세아는 집을 나올 때 메고 왔던 배낭에서 『어린이를 위한 미술 이야기』란 책을 꺼냈다. 배탈 난 세아를 대신해 보름 전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었다. 아쉽게도 페이지마다 실린 그림을 누군가 가위로 오려 간 상태였다. 그날 세아는 미술 책은 그림이 생명인데 확인도 안 하고 빌려 왔냐면서 배를 움켜쥐며 화를 냈었고, 나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무안했었다.
그림 감상을 좋아하는 세아가 나한테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오빠, 얘는 왜 등을 보이고 앉아 있을까? 모자도 안 썼어.”
세아는 그림 속에서 혼자만 모자를 안 쓴 채 등지고 앉아 있는 가운데 여자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여자애의 얼굴을 몹시 궁금해하는 목소리였다.
“그림에서는 안 보이지만 여자애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아?”
당시 나는 그렇게 물었고, 세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행복한 표정일 것 같아.”
“왜?”
“모자를 안 썼으니까.”
왠지 나도 그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소녀만은 피곤하고 지쳐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미소 짓고 있을 거라고. 아니 어쩌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고흐도 그렇게 생각하라고 소녀의 얼굴을 보여 주지 않고 등지게 그렸는지 모른다고.
세아가 루나를 팔에 끌어안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오빠, 나. 우리 집도 다섯 명이야.”
세아는 고흐의 그림이 잘려 나간 책을 들여다봤다. 세아는 우리 가족이 다섯 명이라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좋아했던 걸까. 그때 바람이 촛불을 꺼 버린 것처럼 랜턴 불빛이 스르르 꺼져 버렸고, 지독한 어둠만 남았다. 그러나 아무도 당황하지 않고 놀란 소리도 내지 않으며 테이블의 음식을 더듬더듬 찾아서 먹었다. 서로를 위해 다들 참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암흑이기에, 별이었다면 한자리에 모인 다섯 개의 점은 선으로 이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게 반짝였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새로 탄생한 별자리에 이름을 지어 줬을 것이다. 다섯이 똑같은 이름을 갖는다면, 같은 이름으로 묶인다면 당분간은 버티고 이겨낼 수 있으리라. 나는 어둠 속에서 저 우주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별자리를 쳐다보며 이름을 떠올렸다.
감자 먹는 사람들 자리.


혜미와 세아, 루나는 책상을 붙여서 같이 잠을 잤다. 다들 깊이 잠들었는지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숨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했다. 밖에서는 빗소리와 파도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바다의 심장이 뛰는 소리인 파도 소리. 그 두근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두근거리는 내 심장 소리에 깨어나 아침을 맞는 삶을 오래전부터 바라왔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내가 원할 때 찾아가는 것이었지 이토록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갑자기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누구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 우리 앞에 벌어지고 만 것이다. 빌딩 가까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그 파도에 슥슥, 끅끅 잔해가 밀려오는 소리가 편안해지는가 싶던 숨을 답답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까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오다 마주쳤던, 물에 잠긴 빌딩을 떠올리자 엉덩이 하나 걸칠 정도의 절벽 섬에 홀로 선 기분이었다. 뒤척임에 아저씨가 가만히 내 이름을 불렀다.
“세호야.”
깜깜한 어둠 속에서 들려온 아저씨의 침착한 목소리는 나를 구해 주는 듯 부드럽고 편했다. 마치 심해 다이빙 중 공기탱크가 고장 났을 때 수신호로 안심시킨 뒤 아저씨의 공기를 나눠주었던 것처럼. 기절하려는 순간 숨을 쉬게 해 주었던 그날처럼.
“두렵니?”
그건 물이 두렵니? 라고 묻는 것이었다. 다이버가 물을 두려워하면 끝나는 거니까 던진 말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걱정 마라. 내가 있으니까. 네 옆에는 항상 내가.”
“아저씨.”
“우린 버디잖니.”
버디.
“난 두렵지 않다. 내 옆에는 네가 있으니까.”
“그렇죠. 전 아저씨 버디니까요.”
스쿠버다이빙에 입문하고 ‘버디’라는 멋진 시스템에 대해 배웠을 때 내 첫 번째 꿈은 아저씨의 버디가 되는 것이었다. 버디는 물속에서 나와 일정 거리 떨어지지 않게 다이빙을 하며 나를 지켜 주고 보호해 주는 짝을 말한다. 다이빙 중 서로의 안전과 목숨을 끝까지 맡아 주고 챙겨 주는 무조건적인 관계. 버디는 물속에서뿐만 아니라 물 밖에서도 다이빙 계획과 장비 점검 등 다이빙의 모든 시작과 끝을 함께 하고 돕는 사이다.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숨 같은 존재. 호흡 기체가 떨어졌을 때 내게 숨을 불어넣어 줄 유일한 친구. 물속에서는 버디가 나이고 내가 곧 버디가 된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다이빙은 물 밖으로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드시 짝 다이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이빙 신이라도 절대 혼자 물속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나는 아저씨를 보살피고 지켜줄 버디가 되고 싶어서, 아저씨만큼의 실력을 쌓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따라다니며 훈련했다. 그리고 7년째 되던 해 드디어 첫 꿈을 이루었다. 나는 아저씨의 버디가 되었고, 아저씨는 나의 버디가 되었으니까. 공식적인 한 팀의 일원으로 첫 고난도 동굴 탐사 다이빙을 완벽하게 마무리해 까다로운 아저씨의 버디로 인정을 받았으니까.
우리는 거추장스러운 대화 한마디 없이도 상대를 너무 잘 알았고, 어떤 거짓말도 믿을 수 있는 사이지만 아저씨가 나를 버디라고 명명해 주자 감격스러웠다. 아저씨가 직접 버디라고 말해 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다이빙 경력 36년과 8년도 물속에서는 동등한 버디가 될 수 있었다. 물속에서 나를 지켜 줄 듬직한 버디가 있기에 두렵지 않았다. 아니 두려울 수 없었다.
나의 버디, 샘 아저씨는 36년 동안 총 4,200회 이상의 다이빙을 했다. 스쿠버다이빙 연구소와 아카데미센터를 이끌고 있고, 수중 동굴과 난파선 탐사, 해양 조사, 심해 장비 계류 회수, 해양 과학 잠수, 산업 잠수, 인명 구조 등 특수 잠수 용역 회사도 운영하고 있다. 아저씨는 한국 태생이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 사업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러고 미국에서 맞은 첫 여름방학 때 가족과 떠난 괌 여행에서 체험 다이빙을 한 뒤 스쿠버에 매혹되고 말았다. 투명하고 깨끗한 바닷속은 아저씨한테 또 다른 세계였다. 그것은 지구 안의 작은 우주였다. 어두워지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별의 세계와는 또 다른 우주여행이었다. 아저씨 나이 여덟 살 때였다. 그날부터 아저씨의 인생 조류는 스쿠버다이빙으로만 줄곧 흘러갔다. 동아리, 커뮤니티, 대학 전공, 아르바이트, 연애, 직업 등 모든 게 스쿠버로 이어졌다.
전문 스쿠버다이버가 된 후 아저씨가 돈을 버는 직업으로써 미국에서 선택한 첫 잠수 업무는 워터 해저드에 빠진 골프공을 회수하는 일이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선택한 일이었고, 저택에 살 만큼 실제로 돈도 많이 벌었다고 했다. 그렇게 문제없이 잘 흘러가던 아저씨 인생의 조류가 급류처럼 방향을 틀게 된 것은 다이빙 중 버디를 잃는 사고를 당하고서였다. 항상 버디와 함께해야 한다는 버디시스템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비극이었다. 버디는 조류에 휩쓸려 실종됐고, 깊은 자책과 트라우마에 빠진 아저씨는 한동안 물 근처도 갈 수 없었다. 오랜 수색에도 시신을 못 찾자 버디의 유족은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저씨는 골프공이 아니라 의미 있는 걸 물속에서 찾는 다이버를 꿈꾸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저씨는 해양 사고가 있을 때마다 팀을 꾸려 현장으로 달려가는 인명 구조 다이버가 되었다. 대형 여객선이 침몰했던 그해에도 아저씨는 남해 바닷속에 있었다.
버디는 물속에서만 나를 지켜 주는 게 아니었다. 아저씨의 침착하고 믿음직한 말을 듣고 나자 답답함이 누그러졌다.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와 파도 소리에 맞춰 심호흡을 하며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이틀 후, 물이 계단 두 칸을 삼켜 버렸다.


*


바다에 물결이 졌다. 아저씨는 그것을 바다의 주름이라고 불렀다. 바다는 그 주름으로 움직이고 청소도 하며 살아갔다. 바다는 큰바람을 만나 물결이 커지면 뒤섞였다. 그렇게 한 번씩 뒤집어져야 플랑크톤이 올라와서 생태계는 활성화되고 높아진 자정 작용으로 물은 깨끗해졌다. 물결이 멈추면 물은 죽어서 썩었다. 그러나 바다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주름이 살릴 것이고 주름으로 젊어질 것이기에 인간보다 오래 지구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주름은 바다의 무빙워크 같은 거라서 고무보트에 탄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잿빛 구름 잔뜩 긴 하늘에서 그쳤던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자 아저씨는 노를 빨리 저었다. 나는 물 위를 떠다니는 과자 봉지나 쓸 만한 것들을 발견하면 보트로 건져 올렸다. 그때 등을 보이고 떠 있는 두 구의 주검이 보트를 스쳐 지나갔다. 얼굴을 보지 않으면 그나마 괜찮지만 하늘을 향한 자세로 떠가는 주검을 만나면 끔찍한 현실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지만 누군가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이기에. 오늘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만든 가지각색의 배를 타고 잔해와 주검 사이를 이동했다. 생필품을 찾아서. 안부를 찾아서. 그때 아저씨가 말했다.
“탱크로 하자. 다음부터는.”
그 말은 공기탱크를 메고 입수하는 다이빙을 하자는 얘기였다. 탱크로 하면 긴 잠수가 가능해서 많은 것들을 건져올 수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오래도록 물속 도시를 거닐 수 있었다.
“더 늦어지기 전에 혜미네 가 봐야지. 너희 집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다이빙 포인트는 빌딩 오른쪽 50미터 지점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도시에 편의점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이었으니 편의점이 많은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모두 어디로 가 버렸을까. 어떻게 되었기에 도시가 이토록 고요하고 분주하지 않을까. 사람이 없어서, 오늘의 불 꺼진 물속 편의점은 모래바람 부는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무인 가게 같았다. 지난번에 갔던 편의점보다는 공간이 커서 진입하기가 수월했고 물건도 훨씬 많았다. 혜미가 구해 달라고 수줍게 부탁한 물건도 있었다.
점심을 먹자마자 잠수를 나가려고 장비를 챙기고 있을 때 혜미가 루나를 안고 내 앞에서 한참을 주저하다 세호야, 하고 불렀다. 나는 오리발을 집어 들다 말고 혜미의 얼굴을 쳐다봤다. 혜미는 루나의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꾸물댔다. 저기, 그게, 하며 혜미가 루나의 긴 꼬리를 자신의 집게손가락에 돌돌 감았다. 너무 바짝 감아서 아팠는지 루나가 고개를 획 돌려 혜미의 손등을 할퀴어 버렸다. 피가 났지만 혜미는 그날처럼 루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괜찮아?”
놀란 얼굴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혜미는 손등을 허리 뒤로 감추었다.
“할 말 있어?”
장비를 마저 챙기며 내가 물었다.
“저기.”
혜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말해. 괜찮으니까.”
“있지 나, 그것 좀 구해다 줘.”
“그거, 뭐?”
“내가… 그날… 이라서.”
혜미가 한쪽 눈을 살짝 감고 고개 숙이자 긴 머리카락이 난처해하는 얼굴을 가렸다.
“그날?”
“….”
바보같이 나는 한참 만에야 그날의 뜻을 알아차렸다.
“어, 그래. 그날, 나도 알지. 어.”
나는 다녀올게, 라고 말하며 얼른 계단을 타고 내려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급하게 오느라 어떤 브랜드를 쓰는지 묻지 못했고, 날개형과 일반형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종류별로 다 담았고, 혜미가 앞으로 지내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잠수 내내 그것만 찾아다녔다. 그것은 혜미뿐만 아니라 란희 누나나 옥주 아줌마, 지유 이모 등 빌딩의 다른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아쉬워서 빌딩을 나오며 머리를 쥐어박았다.


해일이 도시를 덮친 다음 날, 나는 어둠이 걷히자마자 빌딩 5층 창틀에 걸터앉아 망해 버린 도시를 내려다봤다.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비가 얼굴을 스쳤다. 시리도록 푸르스름한 새벽빛과 회색빛 구름이 꽉 찬 하늘 아래, 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잠잠하게 출렁였다. 데칼코마니로 찍어 낸 듯 바다 저 끝에는 비구름과 수평선이 맞닿아 있었다. 죽은 물고기 떼처럼 떠다니는 잔해만이 참상을 물 위에 똑똑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잔인한 현실과 참담한 고통을 끝도 없이 나열하고 있었다. 똑같은 장면을 무한 반복해 보여 주고 있었다. 악마가 휘갈겨 쓴 짧은 시, 되풀이되는 어휘, 단조로운 운율, 잔인한 은유.
나는 어디까지 쓰여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기록을 읽어 내느라 바빴다. 무너진 집을, 엔진이 꺼진 차를, 껍질처럼 벗겨진 옷가지를, 손때 묻은 살림살이를, 사랑받았을 반려동물을, 누군가를 사랑했을 사람을. 슥슥, 끅끅. 무덤덤하다 못해 평화롭게 점을 찍고 획을 긋고 있어서 무서웠다. 나도 거기에 동화되어 무덤덤해질까 봐 겁이 났다. 엄청난 그 분량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해서 온몸의 근육이 풀렸다. 그것은 언젠가 세아의 미술 책에서 봤던 설치미술 같기도 했다. 바다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온갖 생활용품들을 가져다 덕지덕지 붙여 놓은.
순간 귀가 멀어 버린 듯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목소리를 잃은 듯 조그마한 탄식조차 나오지 않았다. 허파에 물이 찬 것처럼 숨은 안 쉬어졌다. 아무래도 내가 죽은 것 같았다. 죽지 않았다면 곧 죽을 것 같았다. 죽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니까 조만간 죽을 것이다. 분명한 건 바다는 저러다가도 자기 몸에 쓴 기록을 흔적도 없이 지울 거라는 것이었다. 파쇄해 가라앉힌 뒤 철면피처럼 다시 무구한 자세로 우리를 대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귀도 성대도 잃어버린 적막 속에서, 죽어 가는 회색빛 기록 속에서 빨간 꽃망울을 터트리듯 허우적대는 소리와 살려달라는 목소리였다. 공기와 물의 파동을 따라가자 자동차 창틀에 간신히 매달린 여자애가 보였다. 한쪽 손에는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것 같아서 자세히 보니 노란 새끼 고양이었다. 고양이를 쥔 여자애 팔은 힘이 빠져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솟아오르기를 반복하며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고양이를 놓고 두 손으로 창틀을 붙들면 될 텐데 여자애는 허우적대면서도 고양이 쥔 손을 잠기지 않게 하려고 온 힘을 다했다. 자신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 고양이를 살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그때 빗줄기까지 거세졌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창에서 뛰어내렸다. 빠른 속도로 잠수해 그쪽으로 달려갔다. 도착한 지점에서 자맥질을 멈추기 시작한 팔다리가 보였다. 나는 고양이를 쥔 그 하얀 손이 물속으로 잠기려는 순간 움켜쥐고 끌어올렸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지만, 고양이를 안전하게 붙들고 있는 걸 보니 정신을 완전히 잃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여자애의 목을 끌어안고 헤엄쳐 빌딩으로 무사히 데리고 갔다.
나는 바닥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쉬는 여자애한테 물었다. 왜 고양이를 놓지 않았느냐고. 나뭇가지에 아슬하게 매달린 새끼 고양이를 구하려고 헤엄쳤을 때 혜미가 있었던 자리로 건물 벽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혜미는 고양이가 자신을 살렸다고 믿었고, 그 믿음의 고양이를 차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고 젖은 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혜미는 그때까지도 고양이를 놓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루나를 놓지 않은 그 손을 내가 잡았다. 어쩌면 내 손을 또 다른 누군가가 잡아 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잠수를 마치고 아저씨와 함께 수면으로 올라오자 빗줄기는 굵어져 있었다. 촘촘하고 빠른 속도로 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물 위로 삐죽삐죽 솟은 건물들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굵은 빗방울은 수직으로 쏴아, 하고 내리꽂히며 바다로 녹아들었다. 경기장에서 관중들이 파도타기 하는 것처럼 비는 순차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제아무리 몸을 비틀어 물을 짜내도 바다는 젖지 않았다. 빗방울이 아무리 많은 동그라미를 물 위에 그려도 닿는 순간 무늬들은 사라져 버렸다. 한패니까 그런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한패가 아닌 우리는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빌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물속에서 아저씨와 나는 한패, 버디다.
빌딩에 도착하자마자 혜미가 부탁한 물건을 검은 봉지에 싸서 주었다. 혜미는 부탁할 때처럼 받을 때도 쑥스러워하는 얼굴로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아쿠아밴드를 꺼냈다. 옆 건물에 약국이 있어서 비상약으로 쓸 만한 것들을 이것저것 챙겨 왔다. 옥주 아줌마가 그저께부터 당부했던 감기약과 지유 이모가 소심한 목소리로 부탁했던 모기 기피제, 그리고 민규 형의 식염수도. 루나한테 할퀸 혜미의 손등 상처는 제법 깊었다. 나는 혜미의 손목을 잡은 뒤, 무릎에 올려놓고 밴드를 붙여 주었다. 혜미가 손으로 밴드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물속은 어떤 곳이야?”
내가 과거에 다이빙했던 곳을 말하는지 오늘 다녀온 물속 도시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창문 너머로 빌딩 절반이 잘려 나간 도시를 바라봤다. 아니 물을 바라봤다. 폭우가 쏟아지며 물이 무섭게 넘실대고 있었다.
“파라다이스.”
나는 과거를 말했다.
“그리고 우주.”
나는 과거를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신비한 데야?”
혜미가 공포보다 궁금해진 얼굴로 물었다.
“지상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지구의 70프로가 바다잖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빛깔, 물고기 떼, 신기한 모양의 산호초. 그리고 고요와 평화, 행복. 항상 내 상상을 뛰어넘는 곳이었어.”
혜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 물속을 상상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방금 내가 말한 것들은 저 물속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니까.
“저 물속 도시도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거라, 봐본 적 없는 거라 신비하긴 하겠다. 상상을 넘어서는 곳이라 재밌긴 하겠다. 저런 끔찍한 상상을 누가 하겠니?”
혜미가 증오의 감정을 담아 말했다. 그러고는 창문 너머를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응시하다 결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가르쳐 줘.”
나는 혜미의 부릅뜬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잠수하는 법.”
혜미는 그날 이후 물속이란 들어가면 몸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늪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 된 것 같다고 말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수영하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었다. 혜미가 잠수를 배우려는 건 곤란하거나 불편한 부탁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 한번 물러서지 말아 보라는 듯, 그날 밤 폭우로 불어난 물이 계단 한 칸을 삼켜 버렸다.


*


어렸을 때 나는 한없이 어둡고 우울한 아이였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몰라서 외톨이었다. 불평불만은 일상이었고, 사고는 부정적이었으며, 세상에 나만 불행하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다. 어디에도 쓸데없는 잉여 인간이라고 여겨서, 당장 내가 죽으면 슬퍼해 줄 사람이나 장례식에 찾아와 그동안 미안했다고 용서를 빌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 죽는 것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물론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고, 그런 골치 아픈 걸 왜 해야 하는지,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사는 게 매일 괴로웠다. 좋아하거나 잘하거나 관심 가는 것도 없었다. 정말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다는 걸 눈치챈 친구들로부터 무시를 받기 시작했다. 무시는 때려도 되는 인간으로 비쳤다. 아무것도 없는 애라 맞아도 아픈 게 뭔지 모르는 바보일 거라 생각했는지 욕을 하고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아무것도 없어서 처음에는 정말 때리는 족족 스펀지처럼 흡수하듯 맞고만 살았다.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가, 몇 번은 아픈 것 같지도 않았다. 며칠 지나면 상처가 금방 낫기도 했고, 참을 만도 했다. 아홉 살 무렵의 일이었다. 먼 훗날 나이를 더 먹고 그 시절을 떠올리며 문제의 근원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는 떡을 빚느라 휴일도 없이 바빴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 밥 먹고 TV를 보다 잠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또 욕을 하고 발로 찼다.
“너희 엄마 아빠는 떡 치는 일을 한다며? 할아버지는 절름발이라며?”
그렇게 놀리면서 때렸다. 이유 없이 무턱대고 맞는 것과 이유를 알고 맞는 것은 달랐다. 처음으로 꼭지가 돌았다. 적어도 그게 맞는 이유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걸 알아서였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아서였다. 나에게 가족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맞은 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내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똑같이 알게 해 주고 싶어서, 딱 그만큼만 욕을 하고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친구는 죽은 것처럼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친구의 그 말에 내가 죽을 만큼 아팠던 것이다.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 가던 날, 할아버지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내 손을 잡아끌더니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도착한 곳은 스쿠버다이빙 아카데미센터였다. 시커먼 옷, 복잡하고 무거워 보이는 장비들, 작은 가스통처럼 생긴 것들 너머로 파란 바닷속을 헤엄치는 잠수부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아쿠아리움에서 보던 장면과 비슷했지만 뭔가 더 그럴듯해서 자꾸 시선이 머물렀다. 할아버지와 샘 아저씨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나는 그 파란 사진만 줄곧 쳐다봤다. 할아버지가 샘 아저씨한테 부탁한 건 딱 두 마디였다.
“이놈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게 해 주시오.”
원래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서 뭘 더 없애 달라는 것인지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 짓도 못 하게 진짜 나를 바보로 만들 셈일까. 할아버지는 아저씨한테 넙죽 고개 숙인 뒤 이어서 한마디를 더 했다.
“이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시오.”
나는 그 대목에서 울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아저씨한테 맡기고 절뚝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 쓸쓸하고 흔들리는 뒷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교육을 다 받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최고의 스쿠버 강사를 찾기 위해 잘하지도 못하는 인터넷을 밤새 뒤져 가며 정보를 수집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멀쩡한 다리를 가졌을 때 할아버지의 꿈이 스쿠버다이버였다는 사실도.
그날로 나는 아저씨의 교육생이 되었다. 교육은 이론 교육, 수영장 교육, 해양 실습으로 구성되었다. 아저씨는 첫인상대로 말수 없고 침착하고 진중한 스타일이었고, 스타일대로 수업도 기본과 실전, 안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첫 다이빙에 성공했을 때가 생각난다. 마음이 느긋해지면서 놀랍게도 무념무상의 상태가 찾아왔다. 다른 차원의 세계에 도착한 것처럼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먼지 같은 세상의 일들과 나를 때렸던 놈들의 얼굴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고통들이 다 무엇이랴 싶어지자 원망과 미움은 솜사탕처럼 사르르 물에 녹아 버렸다. 나를 우울하게 했던 생활과 왜 나만 불행한가, 라는 생각에서도 해방되었다. 물속의 나와 숨소리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기꺼이 어린 나의 버디가 되어 준 아저씨와의 파트너십에 유념했다. 그러자 힘들게 사는 것 같지 않고 편하게 쉬는 것 같은 느낌이 찾아왔다.
바다를 품는 자에게는 모든 걸 품을 수 있는 품이 생기는 법이었다. 그리고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항상 옆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그 힘이 지닌 아름다움을 배웠다. 여전히 나를 무시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바다를 모르는 시시한 아이들이라 무시하고 더 깊고, 더 넓고, 더 푸르고, 더 아름다운 바다에 대한 도전과 탐험 계획을 짜는데 몰두했다.
무엇보다 내게는 듬직한 버디가 있었다.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해야만 하는 아저씨가. 물속 안전을 위해 물 밖의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신뢰의 상대가. 그러면 아저씨는 그 고민을 물속 깊이 데려다 놓고 깨끗하게 빨아 주었다. 깊은 다이빙을 무사히 마치고 물 밖으로 나와 쉬는 첫 호흡에는 애쓰지 않아도 인생철학이 서려 들었다. 깊은 바다에 다녀오면 못할 것도 없었고 무서울 것도 없었다. 이제는 나만 너무 행복한 게 아닐까, 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물속의 신비로움을 만난 자는 물 밖의 신비로움도 볼 줄 알게 되었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행복해하고 감사할 줄 알았고,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의미가 없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더불어 세상 어디에도 하찮게 취급받아야 할 인생은 없었고, 내게 주어진 동등한 그 시간 또한 눈부시게 귀한 거였다는 사실도. 고통과 불행조차 나름 쓸모가 많아서 행복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는 거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나한테 머릿속을 비우고 마음을 편하게 해 줄 방법을 찾아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 같은 세아가 태어났다. 세아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내게 자주 말을 걸어 주는 신비한 아이였다.


가늘어진 빗줄기에 물결이 잠잠해지자 세아의 불안도 수그러들었다.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던 세아가 일어나 빵과 우유를 찾아 먹었다.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양초를 하나 더 꺼내 불을 붙였다. 랜턴을 아껴야 해서 밤에는 양초로 어둠을 밝혔다. 세아는 어두운 걸 싫어하지만 촛불이 물리쳐 주는 어둠에서 아늑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11층 민규 형도 촛불을 옆에 켜 놔야 마음이 안정돼서 잠이 온다고 했다.
촛불 다섯 개가 테이블 위에서 일렁였다. 다섯 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거려 선으로 이었더니 진짜 감자 먹는 사람들 별자리가 되었다. 나는 다섯 개의 불꽃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불꽃은 추위에 바들바들 떠는 것 같기도 하고, 뜨거움에 몸부림치는 것 같기도 했다. 혜미는 오랜 세월을 지나온 사람의 눈동자로 불꽃을 바라봤다. 혜미의 눈빛처럼 우리 모두 며칠 사이 많은 시간을 살아버린 듯했다. 이보다 더한 공포와 고통은 없을 테니 어쩌면 우리는 일생 동안 겪을 일들을 압축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아가 빵을 한 개 더 먹자 안심되는지 아저씨가 소파에 누우며 말했다.
“세아야, 그림 하나 읽어 주겠니?”
세아는 그림을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감상하는 걸 더 좋아해서 미술 책을 많이 빌려 봤다. 처음에는 그림 위주로만 보다, 화가와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했는지 조금씩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똘똘해서 글을 일찍 깨우친 덕이었고, 보통 아이들과 달리 세아는 미술책으로 읽기 연습을 했다. 읽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할아버지한테 쪼르르 달려가 물었다. 하도 많이 물어봐서 할아버지도 찾아가며 대답해 주다 보니 나중에는 미술에 조예가 생길 정도였다. 세아의 꿈은 그림을 알기 쉽고 재밌게 읽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림에는 저마다 이야기와 사연이 있었다. 없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이면 되었다. 세아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좋아했다.
“재밌는 거로 읽어 드려요, 슬픈 거로 읽어 드려요?”
아저씨의 부탁에 세아가 빵 봉지에 공기를 불어 넣으며 물었다.
“재밌는 게 좋지 않을까?”
시작을 알리듯, 세아는 공기가 빵빵하게 든 비닐봉지를 손바닥으로 눌러 터트렸다. 소리에 놀란 루나가 혜미의 무릎으로 올라갔다. 세아는 그림 없는 미술 책을 무릎에 펴서 책장을 뒤적였다.
“마네라는 화가 알아요?”
모두 들어 봤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세아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네는 아스파라거스 다발이란 그림을 그려서 아주 친한 미술상한테 판 적이 있습니다.”
“얼마에 팔았을까?”
아저씨가 거들 듯 물었다. 나는 추임새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800프랑에 팔겠다고 했는데 그림을 보고 무척 마음에 들었던 미술상이 200프랑을 더 지불했습니다.”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200프랑을 더 줄 정도면.”
“마네니까요.”
“마네는 기분이 아주 좋았겠구나.”
“좋아서, 그림을 또 그렸대요.”
“어떤 그림을 그렸지?”
차분한 성격의 아저씨가 조금 다급하게 물었다. 궁금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혜미도 그러는 것 같았다. 세아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마네는 웃돈을 얹어 준 미술상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 작은 그림을 한 점 더 그려서 보냈습니다.”
“어떤 그림이었을까.”
이번에는 혜미가 허공에 대고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가 선반에 떨어져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아저씨가 고개를 들어 세아를 쳐다보자 책을 마저 읽었다.
“마네는 ‘저번에 자네한테 보낸 아스파라거스 다발에서 한 줄기가 빠져 있지 뭔가’라는 편지와 함께 그림을 보냈다고 합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혜미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제법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알겠다. 더 받은 200프랑어치의 아스파라거스를 그려서 보낸 거구나.”
“맞아, 언니.”
“참 센스 있는 사람이다. 마네란 화가는.”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마네는 부자인데도 마음이 넓어서 가난한 인상주의 후배들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상주의 그림을 한 점도 안 그렸음에도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마네는 좋은 아버지였구나.”
“그 그림 보고 싶네.”
혜미가 다시 허공을 보며 읊조렸다. 그 말이 신경 쓰였는지 세아가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이게 다 오빠 때문이야! 바보같이 그림을 오려 간 책을 빌려 와서!”
세아는 아직도 나한테 화가 나 있었고, 나는 여전히 무안했다. 세아는 우리한테 그림을 보여 줄 수 없는 걸 계속 아쉬워했다. 비록 그림은 볼 수 없었지만 모두들 세아가 읽어 준 그림 이야기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기분이 조금 나아진 세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날 이후 처음 보는 세아의 웃음에 불빛이 닿는 공간이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다.
조금 이따 세아가 침대에 눕자 우리도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금방 오지는 않았지만 왠지 오늘보다 내일이 더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은진
작가소개 / 장은진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와 2004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데뷔했다.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당신의 외진 곳』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 없음』 『날씨와 사랑』이 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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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멜들다

멜들다 양혜영 멜*이 들어왔다. 강 선주가 포구 안으로 들어온 멜 떼를 발견했다. 강선주는 포구에 매어 둔 배를 살피러 나왔다가 방파제 아래 바닷물이 은색으로 팔딱이는 것을 보고 멜 떼가 들어온 걸 알았다. 강 선주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양동이와 족대를 챙겨 나오며 멜이 들어왔다고 마을 안쪽을 향해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소도리 포구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급히 나오느라 베개에 눌린 머리와 엉덩이께 대충 걸친 바지 차림을 하고도 양손 가득 뜰채와 양동이를 들고 나오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랑이가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바닷물 속으로 텀벙텀벙 들어가 뜰채로 멜을 건지기 시작했다. 사방에 은빛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아이구, 이제랑 좀 앉아 쉬어 보카” 일찍 멜을 발견한 덕에 양껏 멜을 건진 강 선주가 슬그머니 방파제 한쪽에 술자리를 벌였다. 그 모습을 본 남자 서넛이 뜰채를 넘기고 방파제로 올라와 강 선주 옆에 앉았다. “아이고, 맛나다.” 검지 끝으로 멜의 꼬리지느러미를 잡아 입 속에 털어 넣으며 장 씨가 웃었다. “그냥 녹암쪄, 녹아.” “입 속에서 꿈틀꿈틀 헤엄쳠서.” “아이고, 맛 좋다. 맛 좋아.” 누가 채여 가기라도 할 것처럼 남자들은 쉴 새 없이 멜을 집어 먹었다. 멜이 수북이 쌓였던 접시가 어느새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아이고, 다 떨어지기 전에 여기들 왕 한잔씩 합써.” 강선주가 선심 쓰듯 바다에서 멜을 건지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좀 조용헙써! 바당 전세 냈수과!” 갑자기 강 선주를 향해 볼멘소리가 날아왔다. 대성호를 모는 박 선주였다. 민망해진 강선주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박 선주를 쏘아보았다. 박선주도 강선주의 눈을 피하지 않고 한판 붙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옆에 있던 박 선주의 아내가 황급히 박 선주의 팔꿈치를 낚아챘다. “그냥 멜이나 건집써. 시간 아깝수다.” 아내의 말에 박 선주가 고개를 돌리고 다시 멜을 건지기 시작했지만, 잔뜩 굳은 어깨가 못마땅한 심사를 그대로 드러냈다. 강 선주는 그런 박 선주의 뒤통수를 계속 노려보다 바지통을 잡아끄는 일행의 손끝에 못 이긴 척 앉았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보통 멜 떼가 머무는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한 소도리 포구 사람들은 죄다 포구에 나와 있었다. 이미 강 선주와 박 선주 사이가 껄끄럽다는 소문을 아는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둘을 힐끗거렸다. 강 선주는 그런 사람들의 눈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 눌렀다. 포구 사람들 사이에 끼어 멜을 건지던 정순도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둘 만큼이나 정순도 그들과 껄끄러웠다. 몇 년 전 화재 보상 문제로 생긴 앙금이 다 풀리지 않은 탓이었다. 한숨을 쉬며 시선을 내리자 바닷물 속에서 희끗거리는 멜 떼가 보였다. 정순은 손을

  • 관리자
  • 2023-11-15
물을 잡으면

물을 잡으면 호인 티브이 화면 가득 연한 푸른색의 거인이 누워 있다. 거인의 배가 천천히 오르내리며 숨을 쉬는 동안 배꼽에서 꿈틀꿈틀 연두색 싹이 올라온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듯 시야가 확 멀어지며 줄기가 솟구쳐 오른 끝에 등불처럼 맑고 밝은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봉오리가 활짝 연꽃으로 벌어지자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화면이 빙글 돌며 보여 주는 남자는 사방마다 하나씩 네 개의 얼굴을 가졌다. 남자가 눈을 뜨자 주변의 어둠이, 캄캄한 태초의 우주가, 섬세하게 일렁이며 여명이 밝아 온다. -멋있다. 저거 뭐니? 말을 걸 기회를 노리던 입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온다. -멋지구리하면, 게임 광고일 걸요? 한솔이는 티브이 쪽을 보지도 않고 중얼댄다. 그래도 그 정도면 근래 보기 드물게 긴 대답이다. 나는 용기를 얻어 질문을 계속해 본다. -게임? 무슨 게임인지 아니? 한솔이는 티브이를 흘끔 보더니 곧 다시 고개를 숙인다. 대답은 짧고 무성의해진다. -인도 신화예요. 지난해 동남아 여행에서 본 기억이 난다. 저 거인들은 비슈누나 브라마 같은 힌두교의 신들이겠구나. 티브이 화면이 휙휙 바뀌더니 중세 유럽풍 갑옷을 입은 힌두 신들의 영상이 번쩍거리면서 브라흐마가 눈을 뜨면 새로운 칼파가 시작된다아, 낮고 웅장한 소리가 울린다. 나를 사로잡은 건 멋지구리한 신들의 모습보다는 칼파라는 단어다. 칼파, 겁파, 겁(劫). 내가 아는 하나의 겁은, 세상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주기, 천지가 한 번 개벽한 뒤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그 무한한 시간이 게임이 서툰 아이에게는 한순간에 끝나겠구나. 그리고 곧이어 하나의 겁이 새로 시작해서 금방 끝나고, 또다시 새로운 겁이 시작하겠지. -저거, 네가 하는 게임이니? 내 질문은 어딘가 건성이 되어 버린다. -아니요. -요즘 컴퓨터 게임은 여럿이 함께 한다며? 너도 그러니? 한솔이는 수저를 탁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가 버린다. 티브이에서는 신들과 악마들이 단 몇 초 화려한 전쟁을 벌이다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하나의 칼파가 끝나 세상이 캄캄해지고 티브이 화면 가득 게임의 이름이 반짝거린다. 광고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하지만, 텅 빈 거실에서 티브이나 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남편은 집을 나간 후 생활비를 보내지 않고,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비즈 팔찌를 만들려고 작업실로 가는데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인 곁눈질이 무언가 이상한 걸 감지한다. 고개를 돌리자 어항이 보이고, 역시나, 금붕어 한 마리가 불길한 수류를 따라 떠돌고 있다. 지난 보름 사이 네 번째. 금붕어가 죽었다. 이 년 전, 남편이 한솔이를 위해 사 왔던 금붕어가. 이 년 전 지나가 버린 그 시절 책임감 있던 가장이 착했던 아들을 위해 사 왔던 그 금붕어가. -*- 시조카 아이가 우리 집에 온 건 이 년 전, 그러니까 재작년 가을이었다. 툭하면 사람을 패고 다니는 시동생이 또 사고를 치고, 동서가 죽는다고 소동을 벌인 때문이었다. 부부가

  • 관리자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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