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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 작성일 2022-10-28
  • 조회수 85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중단편)]



사라지는




박무진






목구멍에 손가락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쓰디쓴 위액 두어 방울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 메마른 입 안에서 흡수되었다. 조금만 더. 일 그램이라도 더. 변기에 고개를 처박으며 손바닥 안쪽으로 명치를 눌렀다. 흡. 너무 세게 눌렀는지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손바닥으로 명치께를 살살 어루만졌다. 숨이 뱉어지면서 급작스럽고 극심한 통증이 명치로부터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통증을 견디지 못한 내 몸은 경기를 일으켰다. 의지로는 몸의 극렬한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눈앞이 뿌예지면서 나는 좁은 욕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절로 뻗어진 팔로 인해 제대로 닫히지 않았던 욕실 문이 손끝에 닿았다. 욕실 문이 천천히, 숨이 막히도록 더디게, 먹이를 삼키려는 짐승의 아가리처럼 벌어졌다. 누군가 내 갈비뼈 사이로 전동 드릴을 박아 넣는 것 같았다. 한계를 넘는 통증에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뇌까지 마비됐는지 통증이 저 혼자 공간을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경기는 지속됐다. 편한 침대에 눕고 싶었다. 그러면 경기를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온몸에 힘을 줬다. 몸이 들썩거리긴 했는데 일으켜지지는 않았다. 경기 발작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 그래도 나는 다시 죽을힘을 다해 보았다. 몸이 둥실, 떠올랐다가 내려앉았다. 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이상했다. 몸에서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욕실 바닥에 누운 채 팔을 뻗고 있는 내 육체가 보였다. 혼란스러웠다. 내 눈에 보이는 육체가 정말 나인지 의심스러웠다. 육체에 나를 겹쳐 보았다. 정확히 들어맞았다. 내 육체는, 나였다. 안도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상했다. 눈물의 질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눈앞이 흐려지지도 않았다. 영화에서 보던 영육 분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내 육체에 눈물이 고인 걸 보면 나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구해야 했다, 내 육체인 은형을. 나는, 아직 나인 은형은 꼭 가야 할 데가 있었다.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나의 분신 같은 스마트폰에 나는 저항 없이 이끌려갔다.
‘젤리 님. 오늘 나오시죠?’
스마트폰, 그러니까 트위터 앱 속의 레몬트리가 내게 보낸 쪽지가 보였다. 내 스마트폰과 레몬트리의 스마트폰은 트위터 앱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길도 아니고 선도, 자석도 전기도 아닌데 연결의 힘은 강했다. 나는 순식간에 레몬트리에게 닿았다. 내가 물질이 아니어서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레몬트리는 내가 생각한 모습과 달랐다. 입버릇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해서인지 나는 레몬트리가 아무 데나 널브러진 채 흐리멍덩한 표정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레몬트리는 눈빛을 반짝이며 스마트폰 자판을 쳤다.
‘다들 청소년들이라 젤리 님이 안 나오시면 아무래도…. 그런데 별일 없으신 거죠?’
이렇게 썼다가 레몬트리는 잠깐 고민한 후 메시지를 전송하지 않고 지웠다. 별일 없는지 궁금해하는 건 걱정이었다. 내가 걱정되면 연락을 해 보세요. 내 연락처를 알고 있잖아요. 헛웃음이 쳐졌다. 육체를 벗어난 내게서 목소리가 나올 리 없었다.


내가 트위터에서 해시태그를 걸고 프로아나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여 준 사람이 레몬트리였다. 청소년이 대부분인 프로아나족 중 드물게 성인인 레몬트리는 내가 곧 성인이 된다고 하자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레몬트리는 청소년 프로아나들과 교류가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 내게 자주 쪽지를 보낸 걸 보면 말이 없는 사람이어서는 아닌 듯했다. 레몬트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따금 아르바이트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푸념을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부모님 눈치가 보여 밥을 잘 안 먹게 되면서 프로아나가 되었다고 했다.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 나왔다. 시간이 많았고 눈치 볼 사람도 없었다. 비만까지는 아니지만 과체중이긴 해서 살을 좀 빼 보기로 했다. 외모에 신경을 쓰면 애인도, 친구도 쉽게 생길 것 같았다. 성인이 되면 즐겁고 신나게, 외롭지 않게 살고 싶었다. 가까운 헬스장에 등록하고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짰다. 안 하던 운동을 하니 온몸이 쑤셨고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니 목구멍에 걸렸다. 드문드문 헬스장에 갔고 식단은 가끔만 지켰다. 이 주 후에 몸무게를 쟀다. 일 킬로그램이 빠졌는데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이어트 방법을 검색했다. 그중 유튜브와 트위터에 해시태그와 함께 붙어 있는 프로아나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트위터의 해시태그를 따라가니 뼈말라, 개말라, 디에타민, 마그밀, 성프오프 등의 단어도 같이 태그되어있었다. 프로아나는 찬성을 의미하는 ‘프로(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애너렉시아(anorexia)’의 합성어였다. 그들의 주된 화제는 성공한 프로아나의 모임, ‘성프오프’였다. 프로아나의 이상인 ‘뼈말라’는 키에서 125를 뺀 숫자의 몸무게였지만 뼈말라든 개말라든 말라든 날씬이든 상관없었다. 정해 놓은 목표를 달성하면 성공한 프로아나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월 말일로 정해놓은 성프오프 날까지는 정확히 십 주가 남아 있었다. 트위터에서 프로아나들은 다른 SNS 관계보다 각별해 보였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속말을 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도 하고 가족 욕도 했다. 그에 비난은커녕 공감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 오가는 걸 보며 나는 그들 사이에 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목표를 정해야 했다. 그들은 연예인들의 프로필을 올리며 우리는 더 날씬해질 수 있다고 서로 고무하고 격려했다. 여자 연예인 중 키가 백칠십에 가까운데 오십 킬로도 안 되는 몸무게를 유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가늘고 아름다운 몸으로 격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밤을 새워 연기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개말라, 그러니까 백육십삼 센티인 내 키에 사십삼 킬로면 살아가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목표를 개말라로 정했다고 하자 레몬트리는 내게 왜 프로아나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저 스스로 결정한 일이에요. 꼭 성공하고 싶어요.’
생각만 했을 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레몬트리가 멋지다고,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며 내 트위터 글을 리트윗하자 순식간에 프로아나들이 리트윗에 동참했다. 레몬트리와 비슷한 내용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동시에 나에게 관심을 주고 나를 응원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레몬트리는 옷 몇 벌을 꺼내 입어 보더니 셔츠, 바지, 코트까지 검은색으로 골랐다. 나의 참석을 확신하지 못한 채로 성프오프에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원래도 마른 편이었던 레몬트리는 목표를 말라로 정했기에 심하게 조일 필요가 없었다. 옷을 다 입은 레몬트리는 트위터에서 나와 주고받은 쪽지를 살펴보았다. 레몬트리의 머릿속에 내가 떠올랐다면, 내가 답장도 하지 않고 삼 일째 트위터에 나타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면, 내게 연락해 볼 수도 있을 텐데 레몬트리는 연락처를 열어 보지 않았다. 레몬트리는 방문을 열다 우뚝 멈춰 섰다.
“엄마, 집에 있었어?”
“알바 구하러 나가냐?”
“아니 그냥 잠깐…”
레몬트리 엄마는 레몬트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레몬트리는 신발장에 있던 신발을 꺼냈다.
“넌 밥이라도 좀 제때…”
레몬트리는 신발에 발가락만 겨우 집어넣은 채 현관문을 재빨리 빠져나왔다. 스마트폰을 늘 손에 쥐고 다니는 나와 달리 레몬트리는 가방 안에 넣고 갈 길을 갔다.


나는 내 스마트폰으로 돌아왔다. 트위터 앱에 확인해야 할 알림이 숫자로 표시되었지만 물질로 이루어지지 않은 나는 앱을 터치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육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나는 좁은 욕실에서 손을 뻗은 채 누워 있었다. 가망이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한 순간 내 육체의 눈에 맺혀 있던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내 연락처를 아는 사람에게 닿아 보기로 했다. 연락처를 훑어 내렸다. 아빠, 엄마. 언니는 레몬트리에 비해 나를 잡아당기는 힘이 너무 약했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아빠의 연락처로 갔다. 아빠에게 거의 닿았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은형이를 독립시키길 잘했어. 속이 다 시원해.”
“당신은 아빠가 돼서 어쩜 그렇게 매정하게 말해요?”
임신 중인 새엄마는 내게 원래도 관심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다. 비싼 과외를 시켜 줘도 공부를 못 한다고 내내 나를 못마땅해한 건 아빠였다.
“집 얻어 줘, 학비 대 줘, 생활비 대 줘. 내가 애비 노릇 못한 게 뭐가 있다고 다정하기까지 해야 해?”
“나중에 우리 애한테도 그럴 거예요?”
“무슨 소리. 얘는 태교부터 철저히 해서 우리의 보물로 만들어야지. 은형이처럼 실패하지 않을 거야.”
“은형이한테는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그만 듣고 싶었다.
“죽기 전에 은형이와 내가 만날 일은 없어. 누가 먼저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에게 기대하다니, 마음이 급해 시간만 버리고 말았다. 이동해 돌아온 내 스마트폰에서 띵동, 알림이 울렸다. 아빠가 백만 원을 송금했다. 약속된 돈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 미안한 마음을 아빠는 그렇게 씻어 버리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나는 아빠에게 살려 달라는, 목소리 없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는 걸 이제야 알아챘다.


가장 애정을 가졌던 만큼 나를 가장 강하게 끌어당기는 트위터 앱으로 다시 갔다. 항상 보이던 갑자기 사람이 한참 나타나지 않았을 때, 자살을 예고한 사람과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트위터 사람들의 신고로 사람을 찾고 살린 일이 있었다. 나를 위해 나서 줄 프로아나가 없을 리 없었다. 유튜브와 트위터 외의 플랫폼에서는 프로아나 해시태그가 금지되어 있었다. 트위터에 유난히 프로아나가 많은 이유였다. 마른 몸을 갖고 싶은 마음은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나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걸 프로아나가 아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우리를 정신병자 취급했고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은 우리를 미숙하고 멍청한 어린애로 취급했다. 공부를 많이 해서 디스크가 생기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감정이 불안정한 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돈을 벌기 위해 잠도 못 자면서 일하고 남들 앞에서 굽신거리는 일도 감당해야 한다고 하면서, 남들보다 마르고 우월한 몸을 가진 프로아나는 비정상으로 치부했다. 이해받기를 포기한 우리는 프로아나라는 정체를 주변에 밝히지 않았다. 우리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우리끼리 고통을 위로하고 우리끼리 격려하고 우리끼리 다정하게 지냈다. 프로아나가 되면 다른 ‘우리’보다 더 각별한 ‘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프로아나가 나를 구해 줄 거라는 기대를 쉽게 접을 수 없는 이유였다.
쀼꺄띠는 여느 때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단문 트윗을 계속 올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나를 언급할까 기대했다가 쀼꺄띠는 그 누구의 닉네임도 부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쀼꺄띠는 좀처럼 남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른 프로아나의 트윗에 하트를 찍는 걸로만 관심을 표시했다. 드물게 사진으로 몸무게를 인증하기도 했는데 금세 지워 버려 쀼꺄띠가 목표를 향해 열심히 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프로아나는 많지 않았다. 언젠가 늦은 밤을 지난 이른 새벽, 쀼까띠는 수없이 상처가 나 있는 팔목과 팔등과 손바닥과 허벅지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선 이젠 그런 짓 안 한다고, 배고파 허리가 굽어지는 걸로도 충분히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평소와 다르게 장문의 트윗을 올렸다. 금세 지워진 사진과 글에 대해 나는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가 허공에다 말한 건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어 나는 댓글 대신 내 트윗을 올렸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외로운데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너무 슬프다고. 그 트윗 때문이었는지 쀼꺄띠는 쪽지로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을 내게 보내 주었다. 드세요. 단 한 마디뿐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감사하다고 주절주절 답을 했는데 쀼꺄띠는 그에 아무 대답 없이 여전히 뜻 모를 단문 트윗만 계속 올렸다. 엄마 싫어. 엄마 불쌍해. 아빠는 더 싫어. 아빠도 불쌍해. 나도 싫어. 내가 제일 불쌍해. 쀼꺄띠의 트윗은 누군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말이었다. 분절되어 흩어진 짧은 문장이 아닌 쀼꺄띠의 긴말,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목표를 달성해 성프오프에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내가 트위터에 글을 올리지 못한 사흘 사이 쀼꺄띠는 어디 갔지, 이상하다, 나오겠지, 궁금한데, 물어볼까, 같은 트윗을 자주 올렸다. 분명히 나를 향한 말이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한 건 기력도 없고 만사가 귀찮아서였다. 그때 댓글을 달 걸,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쀼꺄띠에게로 이동했다. 이미 길을 나선 쀼꺄띠는 숨을 몰아쉬며 느리게 걷고 있었다. 두꺼운 롱패딩 밑으로 살짝 드러난 두 다리는 팔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가늘었다. 소매 바깥으로 드러난 손목까지 가늠해 보니 쀼꺄띠는 적어도 개말라였다.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을 구한다고 트윗을 올리자마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쪽지가 왔다. 디에타민은 처방이 필요해 아무 데서나 살 수 없다고, 자신이 구해 주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그렇게 큰돈을 써도 되는지 고민됐다. 디에타민은 없어서 못 파는 거라 부르는 게 값이라며 그는 처음 말한 가격의 1.5배를 부르며 오 분 안에 결정하라고 했다. 오 분 뒤에는 가격을 더 올리겠다고 했다. 조바심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쀼꺄띠가 디에타민을 구한다는 내 트윗을 리트윗하더니 혼잣말을 시작했다. 약팔이. 사기꾼. 도둑놈들. 다른 프로아나도 속속 내게 쪽지를 보냈다. 디에타민의 합리적인 가격이 얼마인지, 합법적이고 저렴한 변비약인 마그밀도 효과가 좋다는 사실, 마그밀을 구할 수 있는 약국 등 묻지도 않은 답이 계속 이어졌다. 그중에는 대화를 나눠 보지 않은 프로아나도 있었다. 그들 모두 다정하고 친절한 ‘우리’였다.
‘우리’들의 조언에 따라 나는 음식을 씹은 뒤 국물만 삼키고 건더기는 뱉었다. 더해 마그밀을 먹었더니 하루 만에 일 킬로가 넘게 빠졌다. 복통은 지나간다고, 마른 몸을 상상하며 버티라고, ‘우리’들은 나를 격려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몸무게를 삼 킬로 줄였다. 처음 인증한 몸무게 사진에 타래로 이어 줄어든 몸무게를 인증했다. 축하와 응원과 격려의 댓글이 달렸다. 출발이 순조로웠다. 건강을 생각해 짬짬이 스쾃과 플랭크를 했다. 허기를 견디기 힘들 때는 유튜브로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을 했다.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었다. 얼마 먹지도 않는데 기왕이면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떡볶이였다. 배달도 되고 비싸지 않았다. 맵고 짜고 단 떡볶이가 내 입안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다. 프로아나가 되기 전에는 떡볶이 하나에도 이토록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그렇게 떡볶이를 만끽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흘에 나눠 먹으려 했던 떡볶이가 붉은 흔적만 남긴 채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더부룩한 속에 죄책감이 더해지니 뱃속이 요동쳤다. 나는 먹은 것을 토해 내고 말았다. 속이 쓰리고 목이 따가웠지만 음식이 소화되기 전에 더 토해 내려고 손가락으로 목구멍 깊숙한 곳을 찔렀다. 우리 프로아나에게 배운 방법이었다. 음식과 함께 위액이 넘어왔다. 어지간히 토해 낸 후 나는 체중계에 올라갔다. 사흘 치 떡볶이를 먹었는데도 겨우 삼백 그램 늘었다. 한나절만 먹지 않고 버티면 사라지는 무게였다. 음식을 씹고 뱉는 것보다 먹고 토하는 게 훨씬 만족스러웠다. 음식을 삼킨 후 소화되기 전에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토하는 게 관건이었다. 내겐 두세 걸음만 걸으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쓸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프로아나에게는 축복이었다.
한 달이 지난 후 나는 몸무게를 십일 킬로 줄여 오십이 킬로가 되었다. 트위터에 인증하자 축하가 이어졌다. 조금 쑥스러웠다.
‘이제 겨우 보통인걸요.’
한 달 만에 보통이 되셨잖아요. 정말 대단하세요. 젤리 님을 본받고 싶어요. 자랑스러워요. 왜 제가 울컥하죠. 달리는 댓글에 일일이 답을 하면서 웃고 울었다. ‘우리’의 진심을 전하는 데는 긴 문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프로아나가 되길 잘했어요.’
내가 올린 이 트윗은 수많은 프로아나의 관심을 받았다. 두어 번 대화를 나눴던 나르시스에게서 쪽지가 왔다. 나르시스는 내게 살이 빠지면 얼굴도 예뻐지는지 물었다. 거울을 봤다. 턱살이 빠지며 턱선이 살아났다. 얼굴 살이 빠져 눈이 커 보였다. 그럼요. 느낌이 확 달라졌어요. 나의 대답에 나르시스는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프로아나가 외모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한데 나르시스는 유별났다. 고등학생으로 짐작되는데 피부, 성형, 메이크업, 헤어 등 미용 관련 지식이 워낙 깊고 방대했다. 나르시스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트윗을 가끔 올렸다. 예쁘지 않은 여자는 무시를 당해도 되냐고 울분을 토한 적도 있었다. 나는 나르시스에게 마르고 싶은 건지 예뻐지고 싶은 건지 묻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도 프로아나가 될 수 있었다.
슬림핏 옷을 몇 개 샀다. 신발도 한 치수가 줄어 다시 사야 했다. 어설프나마 화장까지 하니 정말 다른 사람 같았다. 이토록 당당해 보이는 사람이 내가 맞는가 싶어 계속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때 친하게 지냈던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했다. 외모로만 보면 내가 전교 일 등이라고, 학급 친구들 모두를 웃게 만드느라 내가 겨우 울음을 참았다는 건 알지 못했던 친구였다.


술 한잔하자고 하니 친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래전에 멀어진 사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모습을 꼭 보여 주고 싶었다. 나를 본 친구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프로아나가 말하는 마른 몸의 자신감, 우월감이 뭔지 실감했다. 친구는 내가 어떻게 살을 뺐는지 궁금해했다.
“적게 먹고 운동했지. 다른 방법이 있겠어.”
“그렇지.”
대답은 하면서도 친구는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다른 프로아나처럼 나도 프로아나라는 걸 밝힐 생각이 없었다. 친구가 갑자기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으니까 오늘 치팅데이로 해. 내가 쏠게.”
그리고선 친구는 치킨을 두 마리나 시켰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려는 게 분명했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남으면 싸 가면 되니까.”
막상 치킨을 보니 머리보다 손이, 입이 먼저 움직였다. 한참 치킨을 먹다 고개를 들어 보니 친구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너, 괜찮니?”
입 안에 치킨이 가득 들어 있어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치킨 한 마리를 다 먹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나는 다급하게 친구에게 물었다.
“화장실 어딘지 알아?”
건물 전체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은 건물을 끼고 돌아가야 했다. 뛰어가면 시간이 절약되겠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화장실에서 토하는 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너,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
친구는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프로아나라는 걸 알면 친구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나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안 좋아서 먼저 갈게. 미안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목구멍에 손가락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영양분을 갈구하던 내 몸은 이미 치킨을 다 흡수해 버려 목구멍으로 넘어올 게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라갔다. 몸무게가 이 킬로나 늘었다. 겨우 치킨 한 마리에 일주일 치 노력이 허사가 돼 버렸다. 울고 싶은데 혼자 울기는 싫었다. 내 몸이 혐오스러워요. 내 식욕이 저주스러워요. 딱 두 문장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그들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위로부터 했다.
‘아무 이야기나 하세요. 힘들 땐 말해서 푸는 게 나아요. 안 그러면 마음에 쌓이거든요. 쌓이고 쌓이면 그게 병이 되더라고요.’
기껏 열예닐곱 살인 집오징어는 세상 두 번 사는 사람처럼 말할 때가 있었다.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열두 살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았다고는 해도 너무 성숙하게 느껴졌다. 공부 잘하고 남자인 오빠는 부모의 바람대로 일류대를 갔고 집오징어는 집안일과 식구들 뒤처리에 지쳐 갔다. 살이 많이 빠지면서 힘들어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요. 트위터 말고 할 게 없어요. 프로아나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는 게 없어 보여 신기해했더니 집오징어에게서 돌아온 답이었다. 집오징어는 프로아나가 된 후 기운이 없어서 집안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했다. 가족에게 미안하긴 한데 부모님이 걱정하고 일 안 시키는 건 너무 좋다고 말할 때 집오징어는 딱 그 나이 같았다. 조숙한 집오징어와 철없는 집오징어는 육체인 은형과 영혼인 나만큼 같으면서도 달랐다. 집오징어의 조언대로 나는 속상한 이야기를 트위터에 올렸다. 집오징어는 댓글로 이뇨제를 써 보라며, 같이 조일 테니까 외로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프로아나가 되기 전까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쀼꺄띠는 벽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안색마저 파리한 게 지금 내 육체 상태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숨을 고른 쀼꺄띠는 트위터 앱을 열었다. 힘들다. 한 마디를 올린 후 쀼꺄띠는 앱으로 콜택시를 호출했다. 내가 기프티콘으로 커피를 마셨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기프티콘 환불을 받고 나서야 나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까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목소리 없이 말했다. 쀼꺄띠는 택시 차창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나를 살릴 수 있을까요. 속눈썹이 떨리는 걸로 봐서 잠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쀼꺄띠는 눈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워낙에 소극적인 쀼꺄띠가 눈을 뜬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어 보였다. 나는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욕실 바닥에 누운 채 팔을 뻗고 있는 내 육체의 눈 속에는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흘러내린 눈물은 내 눈가에 기다란 눈곱 같은 자국을 만들어 냈다. 나는 재빨리 내 육체에 나를 겹쳐 보았다. 거의, 거의 겹쳐졌다. 거의 겹쳐졌다는 건 아주 조금 겹쳐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내가 나를 구하려 애쓰는 동안 내 육체에서 이 그램이 사라졌다. 그 이 그램은 눈물만의 무게가 아니었다. 내 육체에서 건조 혹은 부패가 시작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살에도 염증이 생기고 그 염증을 방치하면 썩기 마련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도 먹지 않고 있으면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그러니 이 그램 사라진 건 죽음의 증표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육체인 은형은 살아 있어야 했다. 살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한 번의 방심으로 몸무게를 이 킬로나 늘린 나는 다른 프로아나의 조언에 따라 더 바짝 조이기로 마음먹었다. 식욕억제제, 변비약, 이뇨제를 번갈아 먹었다. 식욕은 점점 통제가 안 됐고 그에 따라 토하는 빈도도 높아졌다.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토하면서 고통에 가슴을 쥐어뜯던 어느 때, 나는 멈칫했다. 다시 토하다가 또 멈칫했다. 분명히 괴로운데 한편으로 시원하고 짜릿한, 허브를 통으로 삼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부터 토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어떨 땐 토할 때의 그 자극을 받으려 일부러 더 먹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성프오프를 일주일 앞두고 나는 사십삼 킬로, 목표했던 개말라가 되었다. 트위터에 인증하자 탄성과 환호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살찜에서 개말라가 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개말라가 된 영맨핸섭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성프오프에서 꼭 보자고 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도 구독해 달라고 부탁했다. 영맨핸섭은 트위터에 가끔 춤과 노래를 찍은 영상을 올렸다. 학교에 다니는 것 같지도 않았고 성인인 것 같지도 않은 영맨핸섭은 아이돌을 꿈꾸고 있었다. 춤과 노래를 아무리 연습해도, 살을 빼고 또 빼도, 영맨핸섭은 번번이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그런 영맨핸섭에게 유튜버가 되도록 독려한 게 나르시스였다는 걸 집오징어가 알려 주었다. 레몬트리는 영맨핸섭과 나르시스의 대화를 스크린샷으로 저장해 놓기까지 했다. 그 정도 외모면 유튜버를 해도 잘 되겠네요. 살을 조금 더 빼서 자신을 모델로 패션 관련 콘텐츠를 해 보는 건 어때요? 유명해지면 또 알아요? 기획사에서 연락이 올지. 나르시스의 제안이 그럴싸했는지 영맨핸섭은 바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이제 겨우 두 개 올린 유튜브 영상은 어설프고 조잡했다. 하지만 ‘저렴한 옷을 간지나게 입기’라는 콘텐츠는 괜찮아 보였다. 옷을 선택하고 스타일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옷을 입는 영맨핸섭이 뽀송한 얼굴과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는 걸 모를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개말라인 내 몸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속옷만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더 마른 몸이 보였다. 내 몸을 향한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을 상상했다. 아무 옷이나 걸쳐도 화보가 되는 상상을 했다. 가벼워진 몸이 붕 떠서 날아갈 것 같았다. 내 몸무게 인증 사진에 계속 댓글이 달렸다.
‘성프오프 아직 일주일 남았는데 뼈말라에 도전해 보는 건 어때요? 완벽한 프로아나가 되고 싶지 않으세요?’
평상시 대화가 없던 한 프로아나의 댓글에 나는 스크롤을 멈췄다. 일주일에 오 킬로 감량은 살이 많이 찐 상태에서도 무리였다. 성프오프까지 유지만 잘하겠다고 대답했다. 대답만 그렇게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는 뼈말라에 도전하기로 했다. 성공해서 성프오프 직전에 몸무게를 깜짝 인증하고 성프오프에 참여해 주인공이자 영웅이 되고 싶었다. 상상만으로도 오줌이 마려울 정도로 흥분됐다. 물만 먹었다. 눈앞에서 각종 음식이 떠다녔고 사방 군데에서 음식 냄새가 들어왔다. 깜빡 잠이 들면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꿈을 꿨다. 그렇게 닷새를 버텼는데 겨우 1.5킬로만 빠졌다. 불가능할 거라고 예상했고 불가능했다. 의기소침해졌다. 그렇게 포기하기엔 억울했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마지막 이틀, 성프오프 전날까지는 물도 마시지 않을 작정이었다. 트위터 앱을 열고 오른손 검지만 움직였다. 성프오프 참여를 위해 자판을 치는 에너지도 아꼈다. 성프오프 날 아침, 나는 마지막으로 힘을 내서 속에 있는 걸 게워 내고 그간 더 줄인 몸무게를 인증할 생각이었다. 생각일 뿐이었다.


나는 욕실 바닥에 누운 채 팔을 뻗고 있는 내 육체를 봤다. 사라진 내 살과 근육이 나를 살고 싶게 했고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은형의 육체가 사라지는 와중에도 은형의 감정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들을 만나야 했다. 그들을 만나 나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그래서 완벽한 프로아나가 되는 나를 꼭 지켜봐야 한다고 알려야 했다. 그들이라면, 프로아나인 ‘우리’라면, 내 간절한 마음이 전달될 거라고 마지막으로 믿어 보기로 했다.
레몬트리는 모임 장소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트위터에서 나와 주고받은 쪽지를 열어 놓은 채 레몬트리는 모임 장소를 쳐다보고 있었다. 레몬트리의 시선을 따라가니 세 명이 보였다. 겨울 외투를 입었는데도 감출 수 없는 마른 몸으로 보아 그들이 프로아나라는 건 확실했다. 검은 옷을 입은 레몬트리는 날씬한 일반인으로도 보였고 프로아나들의 죽음을 기다리는 저승사자처럼도 보였다. 프로아나가 모여 있는 모습이 해골 무덤 같아요. 내게 쪽지를 보내 놓고서 레몬트리는 후회하는 듯 제 머리를 몇 대 쳤다. 해골 무덤, 걸어 다니는 시체 같은 말은 모여있는 프로아나를 포함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레몬트리는 검지를 물고 벤치 앞을 서성이다 결심한 듯 트위터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레몬트리가 프로아나를 벗어나려 트위터 계정을 없애는 건지, 트위터 계정을 없애서 내가 그 쪽지를 못 보게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물질이 아닌 내 눈에도 보이는 쀼까띠에게로 이동했다. 쀼꺄띠는 다른 두 사람과 달리 말을 하지 않고 미소만 짓고 있었다. 머릿속에 단문이 가득 들어 있을 것 같은데 한 손으로 다른 손등을 가리느라 쀼꺄띠는 트윗에조차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쀼꺄띠의 가려진 손등에 나 있던 상처가 떠올랐다. 살아 있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라고 했다. 쀼꺄띠도 나도, 살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런데 젤리 님은 안 오시려나요? 오신다고 했는데.”
집오징어가 말했다. 내 간절함이 쀼꺄띠가 아니라 집오징어에게 전달된 것 같았다. 나는 집오징에게로 이동했다. 사실 이동할 필요도 없었다. 은형으로서 느꼈을 감정이 나의 모든 감각 기관을 자극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안 보이더라고요.”
나르시스가 대답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집오징어의 말에 내내 미소 짓고 있던 쀼꺄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나르시스는 모자에 목도리까지 두르고 있어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세 사람은 잠시 눈빛을 주고받았다.
“혹시, 혹시라도 말이에요. 젤리 님이 우리를 철저하게 속인 건 아닐까요?”
목도리를 뚫고 나온 나르시스의 목소리는 눈매만큼이나 날카로웠다. 쀼꺄띠는 입술 거스러미를 치아로 물어뜯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요.”
집오징어의 말에 쀼꺄띠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거짓말이 낫죠. 무슨 일이 생긴 것보다는.”
덧붙인 집오징어의 설명에 나르시스와 쀼꺄띠가 아아, 얕은 탄성을 냈다. 이제 겨울 열예닐곱 살인, 고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집오징어에게 나는, 은형인지 아닌지 헷갈리고 있는 나는, 또 위로를 받았다.
“어쩌면 그사이, 젤리 님 몸무게가 늘었는지도 몰라요.”
나르시스가 기어코 덧붙였다. 섭섭하지 않았다. 목표에 성공한 프로아나뿐만 아니라 프로아나가 되고 싶은데 살을 빼지 못하는 사람, 프로아나인 척하는 사람 모두 프로아나라고, 나도 이제야 깨달았다고 나르시스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프로아나가 아니어도 우리가 ‘우리’일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거라고 쀼꺄띠와 집오징어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기운이 빠졌는지 쀼꺄띠가 두 팔을 늘어뜨렸다. 살짝 올라간 소매 밑에서 잔뜩 상처 난 쀼꺄띠의 팔목이 드러났다. 갈 곳 몰라 하는 집오징어와 나르시스의 시선을 끈 건 브이로그를 찍고 있는 남자였다. 이미 영상을 본 적이 있어 그가 영맨핸섭이라는 걸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서가는 패피가 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앞서 봄을 맞은 옷차림 때문에 입술까지 새파래진 영맨핸섭이 말을 맺지 못한 건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믿기지 않는 속도로 달려간 나르시스가 영맨핸섭의 카메라를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의 영맨핸섭과 나르시스 사이로 들어간 건 집오징어였다.
“촬영하시려면 미리 말씀을 해 주시지 그랬어요.”
집오징어의 부드러운 말투에 영맨핸섭의 눈매도 조금 부드러워졌다.
“마무리 멘트 중이었어요. 여러분이 제 영상에 나올 일은 없어요.”
“그걸 누가 알아요!”
소리를 지른 나르시스의 목과 얼굴 반을 두르고 있던 목도리가 풀어졌다. 각진 턱, 아래보다 위가 두꺼운 입술, 붉고 거친 피부가 드러났다. 영맨핸섭의 표정이 시시각각 미묘하게 변했다. 집오징어는 재빨리 영맨핸섭에게 나르시스를 소개했다. 영맨핸섭은 입을 떡 벌리고선 나르시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은인을 만나게 됐네요. 유튜브 콘텐츠 추천해 줘서 고마워요.”
말하고선 영맨핸섭은 집오징어와 쀼꺄띠를 봤다. 그냥 본능이었다. 나는 영맨핸섭 앞으로 끼어들었다.
“젤리 님이 누구……?”
저예요. 당신이 볼 수 없는 곳에 있어요. 마지막 기회예요. 모두 함께 고민해서 날 구해 줘요. 내가 여길 기어코 온 건, 원래 목적과는 다르지만, 살고 싶어서예요. 당신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영맨핸섭이 휘청거렸다. 쀼꺄띠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르시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집오징어가 심호흡을 했다. 나의 간절함이 모두에게 전해진 게 분명했다. 제발…. 쀼꺄띠는 영맨핸섭의 팔을 잡았고 나르시스는 목도리 뒷면으로 쀼꺄띠의 땀을 닦아 주었고 집오징어가 나르시스에게 마실 물을 건네주었고 영맨핸섭은 집오징어가 앉을 수 있도록 제 가방을 바닥에 놓아 주었다. ‘우리’는 아무도 내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처음부터 희망 없는 기대였다. 육체를 벗어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택한 곳은 방 탈출 카페였다. 추운 날 계속 밖에 있을 수도 없고 프로아나 모임에서 음식을 먹으러 갈 수도 없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탈출에 목적이 있지 않다면 그들과 ‘우리’로서 그곳에 영원히 갇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순간 나를, 저항이 불가능하도록 무자비하게 잡아당기는 건 내 육체, 은형이었다. 아아, 모두 끝났다.


욕실 바닥에 누운 채 팔을 뻗고 있는 내 육체가 너무 왜소해서 살아 있다고 해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런 줄 모르고 뼈말라까지 가고 싶어 했던, 살아 있던 내가, 죽은 은형이 안쓰러웠다. 떡진 머리를,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눈가를, 욕실 바깥을 향해 있는 손을, 앙상하게 마른 몸을, 나는 만지지도 못하면서 손으로 훑어 내려갔다. 보일러가 돌고 있고 곧 봄이 될 테니 더 빠르게 부패하여 사라질 내 육체는 결코 아름다울 수도, 완벽할 수도 없었다. 더는 은형이 아닌 나는 아직도 은형으로서 남은 바람이 있었다. 나의 육체가 다 사라지기 전에 누구에게라도 발견되길. 흔하디흔한 청년 안락사의 사례로 집계되더라도 나라는 게 밝혀지길. 스쳐 간 인연이라도 날 알고 있는 이들에게 슬픔이 되길. 한때 ‘우리’였던 그들과 함께 한 시간만큼은 진심으로 행복했다는 걸 믿어 주기를….













박무진
작가소개 / 박무진

여덟 번째 단편소설을 발표합니다. 언젠가 제 소설이 묶여 책으로 나오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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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없는 사람 이혜오 휴대폰 알람은 새벽마다 나를 밀쳤다. 나는 미지근해진 자리끼처럼 엎질러졌다. 바닥에 쏟아진 나를 겨우겨우 주워 모아 연습실로 출근해서 스트레칭을 하면, 그제야 팔다리가 달린 사람의 몸을 감각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엎질러진 나를 어떻게든 수습하는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다. * 댄스 학원에 다닌 것은 열네 살 때부터였다. 길거리 캐스팅이 될 만큼 뛰어나게 예쁘지 않은 나 같은 애들은 대개 그때부터, 혹은 그전부터 학원을 다니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대형 기획사의 공채 오디션에서는 번번이 떨어졌고, 열여섯, 중3 때 중소형 기획사 하나에서 내 영상을 보고 대면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엄마와 함께 서울에 가서 대면 오디션을 봤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가득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사옥이 위치해 있던 청담동은 내가 살던 동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동네 전체가 백화점 같았다고 할까.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그 세계의 일부가 된 것이, 나는 기뻤다. 그다음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에는 연습실에 가서 레슨을 받고, 레슨이 끝나면 밤까지 연습을 하다가 숙소에 가서 잠을 청하고 다시 학교에 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연습생 숙소에는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연습생들이 때에 따라 열 명에서 열네 명까지 모여 살았다. 어깨선을 넘는 긴 머리를 한 여자애 열네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살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진다. 끝없이 쌓이는 머리카락을 줍고, 줍고, 또 줍다 보면 문득 인간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해지곤 했다. 그곳에선 언제나,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동진에서 부모님과 살 때는 부족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것들까지. 화장실과 콘센트의 개수나 냉장고와 옷장과 침대의 넓이, 그리고 프라이버시 같은 것들. 내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이불 속밖에 없었다. 나는 좁다란 이층 침대에서 늘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잠들었다. 그 어둡고 텁텁한 공간만을 편안하다고 느꼈다. 나는 천천히,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세계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회사가 작아서인지 제대로 된 트레이닝 시스템이랄 게 없어서, 데뷔 조가 아닌 연습생들은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했다. 어린애들이 우르르 들어왔다가 또 우르르 나갔다. 들짐승처럼 방치된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했다가 또 끌어안았다가 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물론 견디지 못하는 애들이 더 많았다. 고참들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텃세로 풀었고, 신입들은 눈치만 보다가 나가떨어졌다. 매일 갈등이 있었고 매일 누군가 울었다. 누가 언제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기란 어렵다는 것. 그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을 미워하지 않고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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