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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마녀, 학교에 가다

  • 작성일 2022-10-28
  • 조회수 1,747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장편)]



배고픈 마녀, 학교에 가다




한아






1. 편식쟁이 마녀


“아이고, 배고파! 규칙만 아니었으면 벌써 행복한 어린이를 먹었을 텐데.”
삐쩍 마른 몸, 회색 털실 같은 뻣뻣한 머리카락, 하얗고 푸석한 얼굴, 매부리코 끝에 난 붉은 점 하나. 바로 까르르 마녀야.
까르르 마녀는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까르르까르르 웃었대. 까르르 마녀는 아무 때나 웃음이 터져 나왔어. 까르르 마녀가 웃기 시작하면 웃음을 그치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어. 그래서 ‘슈바실라’라는 이름 대신 까르르 마녀로 불렸지.
마녀들은 까르르 마녀가 일부러 웃는다고 생각했어. 다른 마녀들을 괴롭히려고 말이야. 까르르 마녀의 웃음은 들어 주기 힘들었거든. 나는 새가 떨어진 적도 있었다지. 마녀들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며 까르르 마녀를 싫어했어. 마녀들은 하나둘 까르르 마녀를 따돌리기 시작했어.
까르르 마녀는 속상하고 억울했어.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내 웃음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멈출 수가 없다니까.”
아무도 까르르 마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어. 까르르 마녀는 외롭고 슬펐어.
그즈음부터 까르르 마녀는 편식하기 시작했어. 구하기 어려운 음식만 고집하는 거야. 오천 년 묵은 소나무 뿌리 샐러드, 겨울을 다섯 번 보낸 두꺼비 껍질 튀김, 귀신 머리카락으로 만든 잡채 같은 거. 하지만 까르르 마녀는 어떤 음식에도 만족하지 못했어.
어느 날, 까르르 마녀는 마녀들의 역사책을 읽고 있었어. 마녀는 책을 읽다가 어린이를 먹지 말라는 규칙이 만들어진 사연을 읽게 되었어.
삼천 년 전 한 마녀가 길 잃은 어린이를 만났대. 처음에 마녀는 어린이를 잡아먹을 생각이었는데, 그 아이와 삼 일을 보낸 뒤에 마음이 바뀐 거야.


이제부터 어린이는 우리의 친구다.
친구는 우리의 음식이 아니며
우리의 실험 대상도 아니고
마법의 재료로도 쓰면 안 된다.
어린이는 마녀의 친구로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


꼬르륵 꼬르륵, 마녀 배 속에서 소리가 났어. 문득 까르르 마녀는 궁금해졌어.
‘그럼 예전에는 어린이를 먹었던 거야? 어린이는 무슨 맛일까? 만약에…… 행복한 어린이를 먹으면 내가 행복해질까? 에잇,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도 혹시…….’
그 뒤로 까르르 마녀는 행복한 어린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
“행복한 어린이를 먹으면 나도 행복해질 것 같은데.”
까르르 마녀가 먹을 수 있는 건 물뿐이었어. 사람이라면 당연히 죽었겠지만, 까르르 마녀는 다행히 마녀잖아. 마녀는 먹지 않아도 죽지는 않아. 다만 끔찍한 배고픔에 시달릴 뿐이야.
“배고파!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롬 자르카차!”
까르르 마녀가 휘파람을 불었어. 곧 자가용 빗자루가 휘릭 소리를 내며 나타났어. 마녀는 빗자루에 걸터앉아 빗자루를 꼭 움켜잡았지.
“여기서 가장 가까운, 어린이들이 가득한 곳으로! 출발!”
빗자루는 눈 깜짝할 사이보다 짧은 시간 동안 날았어.
빗자루는 창창초등학교에 멈추었어. 까르르 마녀가 빗자루에서 내리자 빗자루는 모습을 감추었지.
까르르 마녀는 눈을 부릅떴어. 어깨를 쭉 펴고 주걱턱을 치켜들었지. 하얀 두 주먹은 불끈 쥐어 허리 옆에 붙였어.
“이제 먹어 줄 테다! 어린이로 변신! 롬 자르카차!”
까르르 마녀가 뼈다귀처럼 마른 손가락을 튕겼어. 그러자 까르르 마녀는 소녀가 되었어. 하지만 그 몸속에는 이백스물두 살 먹은 마녀가 들어 있었지.


2. 찜! 네가 첫 번째 밥이야.


까르르 마녀가 학교를 쓱 둘러보았어. 마녀 눈에는 학교가 마치 커다란 냉장고처럼 보였어. 신선한 어린이가 가득한 냉장고 말이야.
‘분명히 행복한 어린이가 있을 거야. 그렇다면 나는 이제…… 크크.’
까르르 마녀는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어.
“우웁! 크크 까르르까르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까르르 마녀의 웃음이 터졌어. 마녀는 그동안 굶은 게 억울했어.
‘금세 왔잖아.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는데.’
마녀는 곧 이런 생각도 들었어.
‘지금껏 규칙을 지켰는데, 정말 꼭 이래야 하는 걸까.’
까르르 마녀는 좀 서글퍼졌지. 그래도 웃음을 멈출 수는 없었어.
까르르 마녀의 웃음소리는 학교 안에서도 잘 들렸어. 교장 선생님은 시끄러워서 휴지로 귀를 틀어막아 버렸어.
2학년 4반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 커졌어. 창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이상했거든. 아이들이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어.
그때 누군가 “쿡! 크크크” 하고 웃었어. 바로 강주였지. 강주는 동그란 얼굴에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통통한 소녀야.
선생님이 강주를 보았어.
“아, 죄송해요. 정말 재밌는 웃음소리잖아요, 크크크.”
강주가 재밌는 웃음이라고 말하자 다른 친구들도 그 웃음소리가 재밌게 들리는 거야. 여기저기서 쿡쿡 크크 킥킥, 웃음이 새어 나왔어. 금세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어. 마지막으로 선생님마저 웃음을 터뜨려 버렸지.
선생님이 겨우 웃음을 참았어.
“자자, 조용히 해. 저 할머니는 좋은 일이 있으신가 보다. 우리는 이제 공부를 계속해야지. 웃음 뚝!”
아직도 까르르르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왔어. 선생님이 창밖을 보았다면 조그만 소녀가 웃음소리는 할머니 같아서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마녀들은 다른 건 다 변신할 수 있는데 웃음소리만큼은 변할 수가 없거든.


4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 안에 울려 퍼졌어.
화장실에 다녀오던 2학년 4반 선생님은 교실 앞에서 한 소녀를 보았어. 삐쩍 마르고 키가 작은 소녀였어. 특히 코끝에 있는 빨간 점과 삐죽한 단발머리가 눈에 띄었지. 소녀는 검은색 작은 가방을 비스듬히 메고 있었어. 엄청 하얀 두 손으로 가방 줄을 꼭 쥐고 있었어.
소녀는 선생님을 보자 인사도 없이 말을 걸었어.
“선생님이 이 교실 주인, 아니 담임이에요?”
“그렇다만, 너는 누구니?”
“나는…… 안수실이요. 전학 왔어요.”
까르르 마녀는 슈바실라를 줄여서 슈실, 발음하기 쉽게 수실로 이름을 지었어.
“전학생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전학에 필요한 서류는? 부모님은 안 오셨니?”
“필요한 서류는 선생님 책상 위에 있어요. 롬 자르카차!”
까르르 마녀는 눈을 크게 한 번 깜박였어.
‘롬자르, 이건 또 뭐야. 엉뚱하고 별난 아이가 왔군.’
선생님은 수실이 말썽꾸러기에 장난꾸러기일까 봐 걱정했어.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로 선생님 책상 위에는 서류 봉투가 놓여 있는 거야.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했어.
‘아이가 전학하는데 부모님이 담임 선생님도 만나지 않고 그냥 가시다니. 엄청 바쁘신 분들인가 보네.’
까르르 마녀는 아이들을 쭉 둘러보았지. 누가 제일 행복한 어린이답게 생겼나 보려고.
“친구들에게 인사해 보렴.”
“나는 안수실이다.”
이름만 말하고 까르르 마녀는 가만히 있었어. 2학년 4반 친구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마녀를 보았지.
“그게 다야?”
선생님이 물었어.
“네.”
까르르 마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답했어.
까르르 마녀는 강주 모둠에 앉게 되었어.
“안녕, 난 이강주야. 잘 지내자.”
“네가 행복한 어린이라면 나는 너를 좋아할 거야. 호호호.”
까르르 마녀는 강주에게 가짜 웃음을 지어 보였어. 가짜로 웃는 게 어색해서 꼴깍, 마른침을 삼켰어. 까르르 마녀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게 침이 아니라 강주라면 어떨까, 상상했어. 마녀는 벌써 조금은 행복해진 것 같았지. 하지만 수업 시간은 전혀 즐겁지 않았어.


4교시가 끝나고 급식 시간이 되었어. 아이들이 급식실로 먼저 가려고 우당탕퉁탕 뛰어갔어. 까르르 마녀는 강주와 함께 급식실로 갔어.
“수실아, 너는 어떤 음식을 좋아해?”
“조, 좋아하는 으, 음식?”
까르르 마녀는 말을 더듬었어. “행복한 어린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없어. 그런 거 없다고!”
“난 다 좋아하는데, 특히 피자랑 잡채랑 만두가 제일 맛나. 바로 오늘이 잡채가 나오는 날이야.”
강주 입꼬리가 쓱 올라가 내려올 줄 몰랐어.
‘이 아이는 잡채 생각에 벌써 행복해졌나 봐. 그런데 가만…… 잡채가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까르르 마녀는 칠십 년 전에 먹었던 처녀 귀신 머리카락으로 만든 잡채 맛을 떠올려 보았어. 나쁘진 않았지만 맛있는 것도 아니었어.
강주는 자리에 앉아 식판에 놓인 음식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어.
“세상에! 크크크 까르르 깔깔 까르르…….”
까르르 마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었어.
‘이강주! 바로 이 아이야! 음식 하나에 이렇게 좋아하다니! 넌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해질 아이가 틀림없어. 찜! 네가 첫 번째 밥이야.’
까르르 마녀가 웃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입이 딱 벌어졌지. 하지만 곧 아이들은 다시 점심을 먹기 시작했어. 가끔 까르르 마녀에게 눈총을 주면서.
까르르 마녀는 웃음에 겨워 엉덩이까지 들썩였어. 결국 반장 한별이가 숟가락으로 마녀 앞 식탁을 쳤어.
“안수실, 좀 조용히 해. 네 웃음소리는 듣기 너무 괴로워!”
하지만 까르르 마녀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
한별이는 수실이의 웃음소리가 꼭 할머니 같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생각한 건 한별이만이 아니었어.
“한별아, 안수실이 웃음소리가 아까 그 할머니 웃음소리랑 완전 똑같다. 그치?”
세호가 한별이를 툭 건드리며 말했어.
“그러게. 쪼끄만 게 웃음소리가 저게 뭐람, 쯧쯧!”
한별이와 세호는 마녀를 흘끔 보았어.
그날 아이들은 조개뭇국, 잡채, 멸치볶음과 김치, 듣기 괴로운 까르르 마녀의 웃음소리를 반찬으로 건강현미밥을 먹어야 했지.


3. 염탐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이 가방을 챙겨 후다닥 교실 밖으로 나갔어.
까르르 마녀는 강주 손에 이끌려 사랑방에 갔어. 사랑방은 교실 뒤편에 있는 매트가 깔린 작은 공간이야.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편하게 앉아 책을 읽었어.
까르르 마녀는 동화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어. 마녀는 책을 읽으려는 게 아니라 2호, 3호 밥으로 삼을 행복한 어린이를 염탐 중이었거든.
“어이, 동그란 안경 쓴 너! 넌 행복해?”
마녀가 묻자 세호는 읽고 있던 동화책에서 눈을 떼고 마녀를 보았어.
“응, 책 읽을 때 누가 방해만 안 하면. 그런데 뭘 그런 걸 물어? 어른들처럼?”
“행복한 어린이가 누군지 궁금해서.”
까르르 마녀는 마음속으로는 ‘너희들 중 누가 내 밥이 될지 궁금해서’라고 대답했어.
강주는 세호 옆에 앉은 한별이를 보며 얼굴이 붉어졌어. 까르르 마녀는 강주와 한별이를 번갈아 보았지.
한별이가 읽던 책을 책꽂이에 꽂아 넣었어.
“세호야, 레고 수업 가자.”
한별이가 세호와 함께 교실을 빠져나가자 강주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어.
“이강주, 너 반장을 좋아하는군.”
“응, 그런데 한별이는 내가 싫대.”
“왜?”
“뚱뚱해서 싫대.”
“그럼 넌 한별이가 널 좋아하면 행복해지겠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생각만으로도 신나네. 후훗!”
까르르 마녀는 속으로 생각했어.
‘별거 아니잖아. 행복한 어린이 만들기 쉽겠군.’
그때 삐거덕 소리가 났어. 준영이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였지.
“아휴, 벌써 학원 갈 시간이닷! 날 괴롭히는 건 학원 선생님, 학원 숙제야. 학원 가라는 엄마 잔소리 좀 안 들었으면!”
준영이가 빵빵한 가방을 메며 끙끙댔어.
“학원? 그럼 학원이 없어지면 행복하겠네?”
“당근이지!”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을 나갔어. 이제 남은 건 강주와 까르르 마녀 둘뿐이야.
“이강주, 넌 왜 교실에 계속 남아 있어?”
까르르 마녀가 물었어.
“방과 후 수업이 남았거든. 6학년 수업 끝나야 내가 듣는 ‘오물조물 요리교실’이 시작해.”
“강주, 넌 소원이 뭐야? 어떤 일이 생기면 행복해질 거 같아?”
“난 엄마 아빠가 내 말을 잘 들어 주셨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는 나랑 이야기할 시간이 없대. 아빠는 피곤하시다면서 텔레비전은 보고 게임도 해. 엄마는 친구랑 몇 시간씩 통화도 하고 톡도 하시면서…… 내 말은 안 들어 줘.”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거! 오늘은 네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지?”
강주가 입꼬리에 살짝 웃음을 머금은 채 마녀를 보았어.
“뭐? 내 이야기?”
마녀는 궁금해서 눈을 똥그랗게 떴어.
“새 친구가 생겼다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멋진 웃음소리를 가진 친구라고 할 거야. 네 웃음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웃음이잖아.”
“멋진 웃음?”
까르르 마녀는 잘못 들었나 싶어 귓구멍을 팠어.
강주가 손뼉을 쳤어.
“아, 급식 시간 내내 웃다가 점심도 못 먹었다는 말도 해야지. 수실아, 너 배고프겠다. 내일은 꼭 나랑 맛있게 점심 먹자.”
까르르 마녀는 급식 시간에 웃음이 터진 걸 생각하니 얼굴이 후끈해졌어.
까르르 마녀는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어. 강주가 마녀의 웃음을 ‘멋진 웃음소리’라고 한 게 되풀이해서 떠오르는 거야. 마녀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했지. 마음속이 가득 차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텅 비어 버린 것 같기도 했어. 새 옷을 입었는데 몸에 옷이 맞지 않지만 옷이 너무 맘에 드는 그런 기분이었지.
까르르 마녀는 웃음 때문에 마녀 세상에서 친구도 없었잖아. 마녀 세상에선 단 한 마녀도 까르르 마녀의 웃음을 좋아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강주 말이 마녀를 가만가만 토닥이는 것 같았어. 상처 난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감싸 주는 것처럼.
“오늘 웃음이 빵 터지지 않았어도 난 밥을 못 먹었을 거야. 아니 안 먹었을 거야.”
까르르 마녀가 어수선한 마음을 밀어내고 말했어.
“왜?”
“난…….”
까르르 마녀는 잠시 생각했어.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까지 숨길지를.
“실은 말이야. 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아.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 너와 함께 급식실에 갈 거야.”
“너 엄청난 편식쟁이구나? 네가 먹고 싶은 건 뭐야?”
“그건 비밀!”
“엄마한테 만들어 달라면 되잖아.”
“안 돼. 난 엄마가 없어.”
강주는 까르르 마녀의 대답에 잠시 생각했어.
“그럼 선생님께 부탁해 볼까? 급식으로 나올 수 있는지.”
“쓸데없는 짓일걸. 급식으로 절대 안 나와. 절대로!”
까르르 마녀는 식판에 강주가 드러누운 걸 상상하다 머리를 내저었어.
“그럼 앞으로도 급식을 안 먹을 거야?”
“아마도. 그깟 점심쯤이야 굶을 수도 있지. 난 괜찮아.”
강주 눈이 동그랗게 커졌어.
“정말? 그래도 내일은 같이 먹자. 응?”
“이강주, 넌 착한 어린이구나.”
강주가 배시시 웃더니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어.
까르르 마녀도 책을 보았어. 그제야 마녀는 책을 거꾸로 들고 있다는 걸 알았지. 까르르 마녀는 얼른 책을 똑바로 들었어.
마녀의 눈은 책을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했어. 강주를 행복하게 만들 방법은 무엇일까 하고.


4. 작전명, 행복한 어린이 만들기


“난 이제 오물조물 요리교실에 가야겠다.”
“강주야! 엄마 아빠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잖아. 네 마음을 담아 소원을 빌어 봐.”
강주는 눈을 꼭 감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어.
까르르 마녀는 강주가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렸어. 끝에는 “롬 자르카차.”하고 덧붙였지.
강주가 눈을 뜨자 까르르 마녀는 활짝 편 손바닥을 들었어. 강주는 무슨 뜻인지 알고 마녀가 내민 손바닥에 힘껏 제 손바닥을 쳤어.
짝!
강주는 몰랐겠지만, 방금 손바닥이 부딪히는 그 순간 까르르 마녀의 마법 주문이 완성되었어.
“강주야, 오늘은 꼭 엄마한테 말해 봐. ‘엄마,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시간이에요!’라고.”
강주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어.


달빛이 환한 밤이야.
까르르 마녀는 벼락 맞은 자작나무로 만든 흔들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어. 흔들의자가 삐거덕 소리를 내며 흔들렸어.
“차한별은 이강주를 아주 좋아하게 된다. 이강주 바라기가 되는 거야. 롬 자르카차!”
짝!
까르르 마녀가 손뼉을 쳤어.
준영이가 한 말이 자꾸 마녀의 머릿속에서 돌아다녔어. 까르르 마녀는 내친김에 준영이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로 했어.
“준영이가 다니는 학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수업을 못 하게 된다. 아니지. 이럴 게 아니라 아예 학교 근처 학원들 모두! 롬 자르카차!”
퉁!
까르르 마녀가 오른발로 힘껏 마룻바닥을 굴렀어.
“이제 강주는 행복한 어린이가 되었겠지. 음, 내일이면 행복한 어린이를 먹을 수 있을까?”


그 시간 강주는 엄마 눈치를 살폈어.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세탁기를 돌리고 저녁상을 준비했어.
오늘도 엄마는 작은 상에 밥을 차려 텔레비전 앞에 두었지. 강주가 밥상 앞에 앉았어.
“엄마.”
“쉿! 중요한 장면이야. 나중에 말해.”
강주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어.
잠시 후 드라마가 끝나고 광고가 나왔어. 강주는 이때라고 생각했어.
“엄마.”
“왜?”
엄마는 강주를 보지도 않고 젓가락으로 밥을 퍼 입에 넣었어.
“엄마,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시간이에요!”
강주 말이 떨어지자마자 엄마는 젓가락을 상 위에 내렸어. 그리고 강주를 향해 자세를 바로잡아 앉는 거야.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군인 아저씨처럼.
“엄마, 오늘 우리 반에 전학 온 친구가 있어요. 안수실이라고. 내 짝이 되었어요. 수실이는요…….”
한참 말하던 강주가 입을 꾹 닫았어. 엄마가 이상했거든. 꼭 오줌이 마려운 것 같았어.
“엄마, 괜찮아?”
엄마가 강주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어.
“엄마, 수실이는 웃음소리가 정말 특이해요. 게다가 그 웃음을 스스로 멈출 수가 없대요……. 엄마, 괜찮은 거 맞아?”
엄마는 또 고개를 끄덕였어. 그런데 엄마는 꼭 울 것 같은 얼굴이었어.
강주는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어.
“수실이가 병을 앓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곧 생각을 바꾸었어요. 왜냐하면 웃음병은 괜찮을 거 같더라고요.”
강주 이야기가 뚝 끊어졌어. 강주는 엄마를 보았어.
엄마는 입에 든 밥도 씹지 않고 남은 밥에 손대지도 않았어. 몸은 강주를 향해 곧바로 앉아 있는데 어딘지 부자연스러웠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니까. 움직이는 건 눈동자뿐이었지. 엄마는 자꾸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어. 이마엔 땀도 송골송골 맺혔어.
“엄마, 정말 괜찮아?”
이번에도 강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런데 엄마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어. 강주는 깜짝 놀랐지.
사실은 말이야, 엄마는 마녀의 주문 때문에 꼼짝 못 한 거였어. 엄마는 엄마대로 얼마나 괴로웠겠어.
“엄마, 아파요?”
엄마는 대답이 없었어. 강주는 무섭고 슬퍼졌어.
또로로로롱 또로로로롱.
방 안에서 강주 핸드폰이 울렸어. 강주는 엄마를 남겨 두고 제 방으로 갔지.
“여보세요?”
“강주야, 지금 뭐 해? 저녁은 먹었어?”
강주 볼이 금세 발갛게 달아올랐어. 핸드폰에서 차한별 목소리가 다정하게 들려왔거든.


5. 꼬인다 꼬여


은빛 달이 서쪽 하늘로 숨었어. 동쪽 하늘에선 해가 솟아올랐지. 새로운 날이 시작된 거야. 까르르 마녀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학교로 갔어. 자가용 빗자루를 타고서.
까르르 마녀는 검은 가방을 흔들며 교실로 들어갔어.
“강주야, 이거 너 먹어.”
“어…… 고마워.”
한별이가 강주 책상 위에 작은 케이크를 내려놓았어. 그 모습을 세호가 못마땅하게 노려보았지. 까르르 마녀는 씩 웃으며 자리에 앉았어.
강주가 주뼛거리며 케이크를 책상 안에 넣었어.
“한별아, 왜 자꾸 빤히 보는데? 내 얼굴에 뭐 묻었어?”
강주가 한별이에게 물었어.
“아무것도 안 묻었어.”
“야, 차한별! 빨리 이리 와. 이리 오라고!”
세호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어. 아이들도 얼굴을 찌푸리며 한별이에게 야유를 보냈어. 한별이는 세호 말에 들은 척도 안 했어.
까르르 마녀는 주문이 제대로 통해서 기분이 좋았어.
한별이는 강주 옆에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굴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자 제자리로 갔어.
“차한별 너 뭐 잘못 먹었어? 어디 아파?”
세호가 작은 목소리지만 따지듯이 물었어.
“나 안 아픈데?”
“그럼 제정신이야? 제정신으로 뚱뚱공주한테 그러느냐고!”
“뚱뚱공주? 오세호! 네가 말한 뚱뚱공주가 귀여운 강주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귀, 귀여운 강주? 헐 헐 허얼!”
한별이와 세호는 투닥투닥 다투었어. 수업이 시작되자 둘은 겨우 조용해졌지.
1교시는 국어 시간이었어. 강주가 책을 읽게 되었지. 강주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이강주 짱!”
한별이가 두 팔을 번쩍 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어. 얼굴엔 활짝 미소를 띠고서. 아이들이 야유를 보내며 웃었어. 세호는 “맙소사!”를 외치며 제 얼굴을 감쌌지.
강주는 부끄러워서 국어책으로 얼굴을 조금 가렸어. 눈만 빠끔 내놓고 친구들을 둘러보았어. 반 친구들이 속닥거렸어. 한별이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은 강주를 노려보았고. 강주는 너무 창피했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어.
그 순간 까르르 마녀 배 속에서 웃음 신호가 왔어. 마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어. 하지만 곧 웃음 폭탄이 터져 버렸어.
“까르르 까르르르 깔깔깔 까르르르…….”
“엉엉엉 어~엉.”
강주는 울음을 터뜨렸어. 서럽게 아주아주 서럽게 울었어.
그러자 반 아이들이 웃음을 그쳤어. 단 한 사람 까르르 마녀만 빼고. 까르르 마녀도 그만 웃고 싶었어. 하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지.
“까르르르 까르르르 까르르 깔깔 까르르.”
“어엉~어엉엉.”
강주는 더 큰 목소리로 울었어. 까르르 마녀와 강주가 둘 중 누가 더 오래 하나 내기하는 것 같았지.
선생님도 어쩔 줄 몰라 까르르 마녀와 강주를 번갈아 보았어.
“둘 다 뚝! 그만 그쳐.”
까르르 마녀는 정말 그만 웃고 싶었어. 그런데 멈출 수가 없잖아. 마녀는 웃음을 멈추고 싶다고 지금만큼 원했던 적이 없었어.
‘강주는 왜 우는 거야. 한별이가 저를 좋아하는데 행복해야지.’
하지만 마녀는 곧 생각해 냈어. 자기 웃음은 어쩔 수 없지만 강주의 울음은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걸.
“까르르르 이 까르르 강주, 넌 까르르 이제 그 까르르르 깔깔 그만 멈추라고 깔까르르 롬 자르 까르르 카차! 깔깔깔.”
까르르 마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책상을 쳤어. 아이들은 까르르 마녀가 얼마나 신나게 웃는지 책상까지 친다고 생각했어. 그 순간 강주가 울음을 뚝 그쳤지.
“안수실! 너도 그만해!”
그래도 까르르 마녀가 멈추지 않았어. 시작한 지 5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멈출 웃음이 아니거든.
“수업에 방해되게 계속 웃다니! 그만 웃을 때도 되었잖아. 안수실, 교실 뒤로 가서 서 있어.”
2학년 4반 친구들은 한 시간 내내 까르르 마녀의 웃음소리를 선생님 목소리보다 더 많이 들었지. 선생님은 큰 목소리로 말하느라 목이 따끔따끔 아팠어.


6. 이대로 작전 실패?


“수실아, 넌 정말 힘들겠다.”
강주가 밥을 꿀꺽 삼키고 말했어.
“밥 안 먹는 거? 사실은 괜찮지 않아. 배가 엄청 고파.”
까르르 마녀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강주를 요리하는 상상을 해 보았어. 입맛을 다시면서.
“아니, 웃는 거 말이야. 그렇게 많이 웃으면 힘들 텐데. 배도 고플 거 같아.”
“힘들어. 배고픈 것도 힘들지만 아무 때나 웃음이 나는 게 더 힘들어. 내 맘대로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건 괴롭기까지 해. 거기다 웃음소리가 괴상하고 듣기 싫다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정말 힘들어.”
“난 네 웃음소리 좋은데.”
“좋다고? 내 웃음소리가?”
“너만 그렇게 웃을 수 있잖아. 특이해. 막 따라 웃고 싶어지는 웃음이랄까?”
“정말?”
강주가 고개를 끄덕였어.
“네 웃음은 특별해. 나는 수실이 네가 어디에 있든 네 웃음소리로 널 찾을 수 있을 거야.”
까르르 마녀는 강주 말에 기분이 좋아졌어.
“참, 어제는 어땠어? 엄마가 네 이야기를 잘 들어 주셨지?”
“처음엔 내 이야기를 들어 주시는가 했는데, 물어보면 무조건 고개만 끄덕거리고. 꼭 아픈 사람 같았어.”
까르르 마녀와 강주가 눈이 마주쳤지. 강주 눈이 촉촉해졌어. 그 모습에 까르르 마녀는 마음이 따끔따끔했어.
까르르 마녀는 강주 엄마에게 ‘되돌리기 주문’을 걸었어. 그러지 않으면 내일은 강주가 정말로 울 것 같았거든.
그때 한별이가 강주 앞자리에 앉았어. 오전 내내 한별이가 강주 뒤를 졸졸 따라다녔어. 한별이가 화장실까지 같이 가려고 해서 강주는 질려 버렸어.
“야! 안수실, 너 왜 강주를 울리고 그래?”
“수실이한테 뭐라고 하지 마. 그리고 차한별, 나한테 신경 좀 꺼 줄래?”
강주와 까르르 마녀는 한별이를 노려보았어. 한별이가 조금 머쓱해서 웃었지.


그때였어.
딩동댕! 스피커에서 방송을 알리는 종소리가 났어.
“아아, 교내 학생 여러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인근 학원이 모두 쉽니다. 학원으로 가지 말고 집으로 바로 가기 바랍니다. 각반 담임 선생님들은 10분 후 과학실로 급히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와! 학원 안 가도 된다. 야호!”
준영이는 숟가락을 든 채 춤을 추며 좋아했어. 그런데 곧 우뚝 멈추었어.
“자, 잠깐 모든 학원? 그럼 태권도도? 안 되는데. 오늘은 태권도는 꼭 가야 하는데.”
준영이가 울상이 되었지.
“모든 학원이 쉰다니 말도 안 돼. 그리고 학원이 쉰다고 학교에서 방송을 해? 혹시 오늘이 만우절이야?”
세호가 물었어.
“만우절 아니야.”
준영이가 대답했어.
“그런데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네.”
세호는 한별이를 흘깃 보며 말했어. 한별이는 강주 옆에 딱 붙어 앉아 반찬을 올려 주었어.
“한별아, 이러지 마.”
강주는 할 수 없이 받아먹었지. 꼭 못 먹을 것을 먹은 표정이었어. 이번에는 한별이가 제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올려 강주 앞에 내밀었어.
“강주야, 아~ 해.”
“이강주, 좋겠다. 한별이가 널 좋아해서.”
까르르 마녀가 말했어. 마녀와 달리 다른 아이들은 한별이와 강주를 보며 쿡쿡 웃었지. 더러는 고개를 내젓고 쯧쯧 혀를 차기도 했어.
강주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어. 한별이도 일어났지.
“차한별! 이제 그만해. 나한테서 떨어져! 절대 따라다니지 마!”
강주는 한 손엔 식판을 들고 한 손은 까르르 마녀 팔을 잡아당겼어.
“차한별, 나 따라다니지 말라고 했다!”
강주 목소리가 뾰족했어. 한별이는 그 자리에 서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발만 동동 굴렀어.
강주는 서둘러 급식실을 나왔어. 까르르 마녀도 허둥지둥 강주 손에 이끌려 나왔어.
“한별이가 어젯밤에 전화하고 또 하고 자꾸 문자 보내고. 내 뒤만 졸졸 쫓아다녀. 완전 바보 같아. 정말 질려 버렸어.”
까르르 마녀는 강주가 왜 한별이가 싫어졌는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되돌리기 주문’을 한 번 더 써야 한다는 건 알았지. 마녀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어.


7.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이게 다 무슨 일인지!”
“그러게요. 교장 선생님, 정말 희한한 일도 다 있죠?”
“학교생활 이십육 년에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당황스러우시겠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과학실에 모인 선생님들은 교감 선생님이 전달한 내용을 듣고 귀를 의심했거든. 교장 선생님도 교감 선생님의 말을 듣는 내내 끙, 앓는 소리를 냈어. 요상한 일이 일어난 거야. 학교 근처에 있는 모든, 정말 모든 학원에서 벌어진 일이야.
피아노 학원은 피아노 건반이 내려가지 않았어. 한 대가 아니라 모든 피아노가 그랬어. 다른 음악 학원의 피아노는 소리가 이상하게 났어. 도를 치면 솔이 나오고 높은음을 쳤는데 낮은음이 울렸지. 건반을 칠 때마다 괴물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기도 했고.
미술 학원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았어. 의자는 앉으면 부서져 버렸고. 문이 굳게 닫혀서 열리지 않는 학원도 있었어. 열쇠 수리공을 불렀지만 손도 못 썼대. 연장을 대기만 하면 연장이 휘어져 버렸다나.
강사 선생님들이 전부 학원을 그만둬 버린 보습 학원도 있었어. 태권도장 바닥은 파도처럼 일렁이고, 밤사이 책상이며 의자가 몽땅 사라진 보습 학원도 있었지.
더 황당한 일도 일어났어. 한 논술 학원은 책상과 의자가 모두 천장에 달라붙었대.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낼 수가 없었지.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나서 학생들이 모두 그만둘까 봐 원장 선생님은 그 사실을 숨겼어. ‘내부 수리 중’이라는 종이만 문 앞에 붙었지.
학원에서 엄마들에게 당분간 수업이 어렵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엄마들은 학교에 연락을 해서 아이에게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어. 학교에서 연락을 받다 보니 한두 학원의 문제가 아니라 근처에 있는 모든 학원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오전 내내 학교 전화기는 밥 달라고 보채는 아기처럼 계속 울어댔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어떤 여자 선생님은 온몸에 돋은 소름을 쓸며 말했어.
“아이들이 학원을 못 가게 되었으니, 맞벌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걱정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학년별로 방과 후 시간이 대충 나오니, 반별 축구나 피구 시합을 하는 게 어떨까요?”
선생님들은 의견을 모으고 교실로 돌아갔어.


까르르 마녀는 주문이 뒤죽박죽되어 버렸지만 준영이의 바람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어. 이것 하나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지.
2학년 4반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전달했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던 준영이가 혼잣말을 하듯 내뱉었어.
“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까르르 마녀는 휙 뒤돌아 준영이를 보았어.
“넌! 학원 안 가는 게 소원이었잖아. 그럼 좋아해야지. 왜 불만이야?”
까르르 마녀가 하고 싶은 말을 선생님이 했어.
“보습 학원만 안 가고 싶었단 말예요. 그리고 왜 하필 오늘이냐고요. 오늘은 태권도에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생일파티 날인데. 피자가 날아갔어요.”
준영이는 입이 툭 튀어나왔어. 까르르 마녀도 입이 툭 튀어나왔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대로 둘걸 그랬나 싶었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군.”
까르르 마녀가 혼잣말을 했어. 마녀는 기가 팍 죽었어.
“대신 오늘 오후에 피구 시합이 있다.”
“와!”
“앗싸! 피구 시합이다.”
몇몇은 좋아서 소리를 질렀어. 덕분에 까르르 마녀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


2학년 아이들이 운동장 한편에 모였어. 모두 서른 명이 넘었어. 아이들 속에 강주와 까르르 마녀도 있었어.
홀수 반과 짝수 반으로 나누어서 시합을 했어. 마녀는 피구를 몰랐어. 희정이가 여태 피구를 안 해 본 마녀를 놀라워하며 피구 규칙을 알려 주었어. 규칙은 간단했지.
1반 선생님의 호각 소리에 시합이 시작되었어. 공이 돌고 돌았어.
강주는 뚱뚱하지만 요리조리 공을 잘도 피했어. 까르르 마녀의 손을 잡고서도 강주는 재빨랐어. 한 손으로 공을 잡아내기도 했어. 강주가 공을 까르르 마녀에게 넘겼어.
“네가 해 봐.”
까르르 마녀는 얼떨결에 공을 받아 들었어.
휙, 공을 던졌어.
톡, 공은 마녀 바로 앞에 떨어져 데구루루 굴러 상대편에게 가 버렸어.
까맣고 다부진 몸집의 남자아이가 공을 감아올렸어. 아이는 강주를 향해 공을 던졌어. 그만 강주가 공에 맞고 말았어. 강주를 맞추고 떨어진 공을 까르르 마녀가 잡았지.
까르르 마녀는 강주를 보내 버린 그 녀석을 향해 힘껏 공을 던졌어. 공은 아이의 품에 쏙 들어가 버렸어. 하지만 마녀는 느낄 수 있었어. 처음보다는 확실히 공에 힘이 더 들어갔다는 걸.
“오호, 좋은 패스!”
아이가 깐죽댔어.
까르르 마녀가 주문을 썼더라면 충분히 맞췄겠지만 마녀는 마법을 쓰지 않았어. 마녀는 자기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을 만큼 피구에 빠져들었거든.
짝수 반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 까르르 마녀였어. 마녀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어. 모든 아이들이 자기만 바라보고 응원하고 있으니까. 마녀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팔딱팔딱 힘차게 뛰었어. 마치 처음 뛰는 심장처럼. 공이 까르르 마녀 옆을 스쳐 지나갈 때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았지.
“오! 쫄깃쫄깃 짜릿짜릿!”
까르르 마녀는 두 다리에 힘이 쭉쭉 생기는 걸 느꼈어.
까르르 마녀는 날아오는 공이 수박만 하게 보였어. 마녀가 날아오는 공을 받아 안았어. 가슴팍이 얼얼했지만.
“오호! 이거 정말 끝내주는걸!”
까르르 마녀가 힘껏 공을 던졌어. 마녀의 눈에서 불빛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어. 공은 강주를 맞춘 아이의 다리를 맞추었어.
“야호!”
까르르 마녀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어. 짜릿한 전기가 까르르 마녀의 몸에 찌르르 지나갔어.
홀수 반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어.
“수실아! 조심해!”
강주가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쳤어.
하지만 곧바로 날아든 공에 맞아 까르르 마녀는 죽어 버렸어. 시합도 끝이 났지.
까르르 마녀는 한참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어. 아주 기분이 좋았거든.
까르르 마녀는 지금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짜릿한 흥분에 사로잡혔지. 사십사 년 동안 굶었다는 생각 따위는 저 멀리 달아났어. 행복한 어린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도 머릿속에 없었어. 까르르 마녀는 가슴이 뻥 뚫린 듯이 시원했어. 빗자루 없이도 날 것 같았어.
“이런 기분 처음이야……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그리고 그때 까르르 마녀의 웃음이 터져 나왔어.
“까르르 까르 깔깔 까르르르…….”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까르르 마녀를 보았어. 짝수 반이 졌는데 왜 웃느냐는 거지. 그래도 마녀는 계속 웃었어.
까르르 마녀에게는 이기느냐 지느냐가 중요하지 않았어. 까르르 마녀는 ‘함께 어울려 노는 맛’을 알았거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어.
“하하하하!”
강주가 같이 웃어 주었어. 물론 강주는 얼마 못 웃고 그쳤지만. 그래도 까르르 마녀에게 그만 웃으라고 다그치거나 눈치 주지 않았어.
다른 친구들은 한 번 더 시합을 했어. 강주와 까르르 마녀는 옆에서 구경만 했어.
“짝수 반, 파이팅!”
강주가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쳤어.
“까르르까르르 깔깔!”
까르르 마녀는 웃음으로 짝수 반을 응원했지.


8.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까르르 마녀는 노는 재미에 빠졌어.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과 장난치고, 급식 시간에는 고무줄놀이도 했어. 아이들과 놀 때는 배고픈 것도 잊었지.
까르르 마녀는 때때로 배가 고플 때면 이렇게 생각했어.
‘아, 배고파…… 하지만 아직은 강주를 먹을 때가 아니야. 강주는 더 행복해져야 해. ……애들이랑 놀아야겠다.’
까르르 마녀는 언제 수업을 마치나 그것만 생각했어.
이제 마녀는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할 줄 알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에 빠지면서 마녀는 행복한 어린이를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희미해져 갔어. 그저 습관적으로 생각만 하는 거지. 행복한 어린이를 먹어야 할 텐데, 하고서.
학교 운동장에 축구 하는 아이들이 있어. 그 틈에 까르르 마녀도 있었지. 남자아이들이 많았지만 여자아이들도 있었어. 누구보다 마녀는 열심히 뛰었어.
축구 시합이 끝나자 아이들이 선생님께 인사하고 흩어졌어.
“수실아!”
어느새 강주가 왔어. 강주는 종이 도시락을 까르르 마녀에게 내밀었어. 살짝 고소한 향이 났어.
“뭐야?”
“주먹밥. 오물조물 요리교실에서 만든 거야.”
“…….”
까르르 마녀는 “안 먹어!”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어. 뛰고 놀 때는 몰랐는데 마녀는 정말 배가 고팠거든.
“한 번만 먹어 봐.”
강주가 도시락 뚜껑을 열었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훅 날아들었어. 강주가 주먹밥을 하나 집어 까르르 마녀 코앞에 들이밀었지.
“딱 한 개만! 응?”
“아!”
까르르 마녀가 못 이기는 척 주먹밥을 먹었어. 주먹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또 아주 고소했지.
까르르 마녀는 음식을 처음 씹는 것처럼 조심조심 오물거렸어. 꼭꼭 씹을 때마다 입 안에 번지는 고소함과 탱글탱글한 밥알이며 잘게 썬 채소가 씹히는 맛이 아주 그만이었지. 마녀는 삼십 번도 더 씹은 뒤에 꼴깍 주먹밥을 삼켰어. 너무 오래 씹어서 삼킬 것도 없었지만.
“맛…… 있어.”
“다행이다. 자, 더 먹어.”
까르르 마녀가 고개를 젓는데 꼬르륵 꼬르르륵! 배 속에서 소리가 났어.
“풋!”
강주가 웃더니 마녀 입에 주먹밥을 하나 더 넣어 주었어. 마녀는 밥 한 알이라도 도망갈까 꼭꼭 씹었어.
오물오물 냠냠 쩝쩝 오물오물 냠냠 쩝쩝…….
어느새 까르르 마녀는 주먹밥을 모두 먹어 치웠어.
“거봐. 잘 먹네. 수실아, 내일부턴 급식도 먹자!”
까르르 마녀는 생각했어.
‘그래, 꼭 행복한 어린이를 먹어야 행복해지는 건 아니야. 친구를 먹는 건 나빠. 암, 나쁘고말고.’
까르르 마녀는 학원에 걸었던 주문을 되돌리기로 했어. 엄마들이 학원 대신 과외로 수업을 바꾸니까 학원에 건 주문이 의미가 없어졌거든.


요즘 까르르 마녀의 관심은 급식 메뉴야. 까르르 마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주먹밥인데, 급식에는 주먹밥이 나오지 않았어.
“수실아, 너 요즘 잘 먹어서 좋아. 넌 세상에서 뭐가 제일 맛나?”
급식을 먹으며 강주가 물었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건 신나게 뛰어논 뒤에 먹는 주먹밥! 하지만 오늘은 군만두!”
까르르 마녀가 대답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어. 그리고 마지막 남은 군만두를 먹었지.
“안수실, 너 어제는 돈가스라고 했어. 그제는 자장면이라고 했고.”
세호가 끼어들었어.
“그뿐이야? 새우볶음밥도 맛있다고 했고, 잔치국수, 김치찌개, 흰 쌀밥에 김도 맛있다고 했거든. 그냥 급식이 모두 맛있다고 해.”
한별이가 말했어. 까르르 마녀는 씩 웃더니 한별이 식판에서 만두를 하나 냉큼 집어 먹었어.
2학년 4반 친구들은 잘 지냈어. 하루에 서너 번 까르르 마녀가 웃음보가 터지는 것만 빼면 말이야. 까르르 마녀가 웃음이 터지면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안수실!”
그러면 까르르 마녀는 까르르까르르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어. 운동장이든 화장실이든 웃음이 멈출 때까지 실컷 웃었지. 그러다 웃음이 멈추면 다시 교실로 들어왔어.


오늘도 까르르 마녀는 창창초등학교 운동장을 누비고 있대.











한아
작가소개 / 한아

엉뚱하거나 무섭거나 재미있거나 뭉클한 이야기로
힘과 위로가 될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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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태몽 찾으러 왔어요

태몽 찾으러 왔어요 변선아 1. 태몽 때문이야 “4교시는 체육이니까, 수업 종 울리면 축구 골대 앞에 모여 있어요.” “네.” 3학년 1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성운이는 힐끔 선생님을 봤지요. 성운이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이 활짝 웃었어요. 교실에 남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요. ‘야호!’ 그제야 성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어요. 마음은 쌩하고 운동장으로 달려나갔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죠. 성운이는 소아 천식을 앓고 있어요. 절대로 뛰면 안 돼요. 엄마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성운이가 뛰지 않도록 부탁해요. 운동장에서 하는 수업이 있을 때는 성운이 혼자 교실에 남아 책을 읽게 해달라고 해요. 그래서 몸을 크게 움직이는 활동이 있는 수업에는 미리 선생님이 말했어요. “성운이는 교실에 남아 있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도 좋아.” 이뿐인가요? 급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도 먹지 못해요. 천식에 좋지 않으니까요. 의사 선생님은 가끔씩 한두 번 먹는 건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는 ‘절대 금지’라고 했어요. 어쨌든 지금, 선생님이 그냥 웃기만 했잖아요? 체육 수업에 참여해도 좋다는 말일 거예요. 그동안 교실에 혼자 남아서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오늘은 친구들하고 같이 운동할 거예요. 조심히 달리면 괜찮겠죠? 성운이에게 소원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맘껏 뛰어보는 거예요. 쉬는 시간에 잡기 놀이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어요.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축구 골대 앞에 모였어요. 물론 성운이도 당당하게 서 있었죠. 곧 선생님이 와서 말했어요. “오늘은 축구를 할 거예요. 성운이는 벤치에 앉아 있을까?” “네? 저도 축구 할 건데요?” 성운이가 실망하며 말했어요. “안 돼. 성운이는 뛰면 안 되니까 친구들 수업하는 걸 지켜보자.” “휴.” 그럼 그렇지요. 성운이는 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축 떨어뜨리며 벤치로 갔어요. “살살이 공성운, 넌 앉아서 공 차는 거나 구경해.” 민찬이가 성운이 뒤에 대고 소리치고는 혀를 쑥 내밀었어요. 성운이는 민찬이가 얄미웠지요. 민찬이는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어요. ‘살살이’란 별명도 민찬이가 지어준 거예요. 천식 때문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니는 걸 놀리는 거죠. 민찬이와 아이들이 공을 굴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녀요. 그 모습을 보는 성운이 마음은 소금에 절인 배추 같아요. ‘나도 뛰고 싶다.’ 생각할수록 속상했어요. 왜 자기만 천식이 있어서 뛰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었죠. 지루했던 체육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에요.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면서 밥을 많이 먹었어요.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성운이는

  • 관리자
  • 2023-11-10
「어떤 겨울밤」외 6편

어떤 겨울밤 김미혜 눈보라가 휘이잉 몰아치는 밤, 하얀 옷을 입은 눈 아이가 어깨에 소복 쌓인 눈을 털며 들어왔어. 가늘고 새하얀 손을 비비며 추워라, 추워라, 달달 떨었어. 이리 와 불을 쬐렴. 할아버지가 난로에 불을 켰어. 눈 아이 손이 흐물흐물 녹고 발목도 녹고 종아리도 녹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아, 따스해라, 따스해라 입은 녹지 않았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오던 할아버지는 그만 얼어 버렸어. 쨍그랑 찻잔이 깨져 버렸어. 할아버지는 얼른 난롯불을 껐어. 웃을락 말락 철창에서 빠져나온 흰둥이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배롱나무 뒤로 갈락 말락 잡힐락 말락 마당 밖으로 발을 디딜락 말락 숟가락 내던지며 달려 나와 저놈 좀 잡아라, 할아버지가 소리치면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한테 오지 마, 제발, 제발, 흰둥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가, 멀리 가 어둑어둑 붉어지는 논둑을 가로질러 갑니다 흰둥이가 멀어집니다 개와 늑대 사이를 달립니다 울락 말락 웃을락 말락 밤이 옵니다 족제비 일기 기름진 고기 냄새가 닭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막아요. 삼겹살 한 점이 끌어당겨요. 철커덕 철창문이 닫혀요. 오르락내리락 두리번두리번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어요. 힘이 풀려요. 잠잠해지기로 해요. 가만히 기다리면 비상구가 나타날 거예요. 어쩌나, 날이 밝아 오는데 아무 데도 뚫리지 않아요. 닭장 문이 열려요. 할아버지가 덫 안에 든 나를 안아요. 바르르 떨고 있는 나를 자동차에 태워요. 망할 놈의 족제비, 다시 잡히면 안 놔 준다, 욕하며 겁주며 구박하며 풀어 주러 간대요. 잡히기만 해 봐라, 닭이 죽어 나갈 때마다 잡히기만 해 봐라 잔뜩 벼르더니, 구불구불 강 건너 멀리 놓아 주러 간대요. 큼큼, 냄새를 맡아요. 메모를 해 둬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되거든요. 여우양말꽃이 피었습니다 여우 양말을 알록달록 걸어 놓았으니 여우가 오겠지요? 오늘 밤에는 분홍 양말 흰 양말 맘에 드는 양말 골라 신고 발소리 숨기고 신나게 놀다 가겠지요? 양말이 시들기 전에 오겠지요? 우리 집 꽃밭에는 여우양말꽃이 여러 켤레 활짝 피었답니다 민들레 걱정 민들레를 피하려다 개똥을 밟았다 “야, 개똥을 왜 밟아?” “그럼 민들레를 밟아요?” 시 선생님이랑 꽃 보러 가면 내가 아닌 것 같다 개꿈 어둠 속에 툭 던져 놓고 쌔앵 달아나는 자동차를 쫓아가요 “멈춰요! 잊은 게 있어요!” 달려가던 자동차가 지쳐 헉헉거려요 이때다, 가속페달을 밟아요 두 발로 서서 앞을 가로막아요 창문 너머로 뺨을 핥으며 인사해요 “그냥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요.” 나는 꼬리를 흔들며 보내 줘요 “안녕!” 앗, 이건 꿈이야 깨면 안 돼 나는 꿈속에서도 꿈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어서 자, 계속 자 번개처럼 꿈속으로 돌아가야 해요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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