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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지 않는 봄

  • 작성일 2022-09-09
  • 조회수 1,15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꽃지지 않는 봄



이남희




꽃잎 지는 오후였다. 아직도 창문 너머 봄 꿈이 푸르른데
어머니는 이제 탄생의 환희를 염려하는지
호흡이 가파라지면서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계셨다
(중략)이제 어머니는 푸른 하늘을 보면서 당신의 당신을 낳고 계셨다


어머니의 생을 배웅하는 최기종 시인의 시 「임종」이다. 불경의 『부모은중경』에는 세상을 열어 준 모든 어머니의 잉태와 출산에 관한 서사가 있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을 때 서 말 여덟 되의 피를 쏟고, 아이를 키울 때는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인다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세상의 어머니는 죽어서 뼈가 검고 가볍게 된다고 한다. 자기 피와 살로 생명을 빚어 자기의 반쪽을 내어놓는 지극한 자비. 어머니에게 자식은 겨울을 건너온 ‘봄’의 탄생이고, 자식에게 어머니는 평생 꽃 지지 않는 ‘봄’의 영토로 존재한다. 소멸할 수 없는 도저한 자식의 땅이며 붉은 눈물로 키워지는 존재의 영토이다. 말랑한 땅으로 서 말 여덟 되의 피가 눅진하게 스며들어 동백꽃 빛깔의 사랑이 번져 나간다. 내 혈관을 도는 애절한 사랑이 ‘봄’을 키우고 지독한 비애를 다독여 나간 어미의 시간이 나를 살리는 시간이었다.
내 어머니를 세상 밖으로 놓아 드릴 때 나의 무릎이 꺾인 까닭을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목젖을 뚫고 나오지 못한 언어가 내 몸을 경직시키고 천근만근으로 눌러 앉히던 날. 흙먼지로 사라질 어미를 돌려보내 드리는 절명의 날에 술렁이던 꽃 빛은 더 가슴을 저미었다. 엄마의 방이 선뜻하여지고 엄마의 눈가에 물기가 하양 돌며 맥박이 느려졌다. 방안의 눅진한 어둠이 안개빛으로 하얘지면서 싸늘해져 갔다. 무뎌진 나의 입술은 한동안 벙어리가 되었다.
내가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산고를 견디지 못하고 아이와 함께 숨져 간 어미 같았던 오래전의 봄. 꽃잎 지는 오후에 떠나던 어미처럼 잃어버린 봄을 꽃피우기 위해, 빙하 같던 겨울을 깨뜨리려던 청춘들의 피 흘림과 절망을 떠올린다. 아마도 조국은 늘 어미와 같은 형상적 이미지를 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40년 전, 누군가의 귀한 영토였을 청춘들의 정의와 순수는 몰염치한 사람들의 욕망에 무릎이 꺾였다. 힘 있는 자들의 삼엄한 연대로 순수는 연기처럼 사라졌고, 선한 욕망은 섣부른 외침이 되고 만 시절 아픔이었다. 빼앗긴 봄은 쉽게 돌아오지 못하고 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해야 하였다.
어머니는 개인의 모국이고 그 시절 조국은 청춘들의 숭고한 모국이었다. 세상의 봄과 조우하여 봄의 영토를 세우고자 피 흘리고 떠나간 영혼들! 그대들이 꿈꾼 세상을 위해 정의와 공전한 불굴의 시간. 봄 꿈 푸르던 그들의 피가 우리를 살게 하였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며 내 두 손을 맞잡아 본다. 절절한 꿈이 엎어진 곳에서 가슴 뜨겁던 사람들의 목숨이 끊어져 나갈 때, 나는 관절이 마비된 듯 눈이 먼 듯 아무 짓도 하지 못했다. 그 비겁함은 수시로 나를 변방으로 내몬다. 어머니를 보내던 날처럼 지금도 잿빛 회오로 떠돌며 내 눈가를 흐리게 한다.
슬픔의 정서는 그리움의 정서와 닿아 있다. 꺾인 무릎을 다시 세우는 힘을 빼앗기도 하지만, 뜨거운 눈물로 꽃 지지 않는 봄을 피워 내는 수액이 되기도 한다. 마냥 서글프지 않고 희망의 마중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청춘의 목숨값으로 세상의 행태가 더디게라도 변모하고 있지 않은가. 태초부터 산울림 속에 살던 새가 숨차게 날다가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할 때, 죽은 새의 영혼은 썩어져 다른 생명을 키워 낸다. 살아지는 대로 살다가 미련 없이 삶의 더께를 벗어 내는 사람의 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머니가 가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가고 내가 가고 내 자식이 가야 하는 길. 가차 없는 시절에 매몰된 사랑이 일으켜져 남은 자들의 삶을 출렁이게 한다. 마치 검푸른 바다가 섬을 지켜 내듯이 숨져간 청춘들의 넋이 부조리한 세상의 어둠을 지워 내고 있는 까닭이리라.
하늘과 바다가 맞닿았다고 착각하는 지평선처럼 나도 내 착각을 믿으련다. 나의 모국과 청춘들의 모국이 닿아 있다고. 모국이란 말은 가슴을 뜨겁게 한다. 옳은 것을 위해 무릅썼던 존엄한 고뇌와 어머니의 애절한 비애가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밑줄을 긋는다. 내 존재가 어미의 간절한 욕망이었고. 내가 꽃 지지 않는 봄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삶에는 알 수 없는 일과 알 수 있는 일이 있다. 알 수 있는 일은 지나가면 알게 되는 것이고, 알 수 없는 일은 시간을 들여 알아 가면 되는 것이다.“ 어느 영화의 대사이다.
꽃 피어 있는 시간의 소중함, 깨어 있는 존재의 귀함이 일깨워지는 말이다. 선한 욕망은 꽃 지지 않는 봄의 정령으로 시대의 지독한 산고를 벗어 내고, 꽃 지지 않는 봄의 영토에 데려다주리라. 서러워할 시간도 없이 몸뚱이 하나로 힘껏 살아가는 애처로운 존재들을 위하여 나도 이제 나의 나를 낳을 것이다.













작가소개 / 이남희

2005년 《문예사조》로 수필 등단
2018년도 일신수필상 수상
2019년 찾아가는 북미도서전 위탁도서 선정(『시렁그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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