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적적(寂寂)아, 꽃구경이나 하자

  • 작성일 2022-10-14
  • 조회수 1,6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적적(寂寂)아, 꽃구경이나 하자



조여선




아랫집 1층에는 할머니가 혼자 세를 사신다. 나는 이사한 다음 날 떡 한 접시 들고 가서 첫 번째 이사 신고를 했다. 그 후로 오가며 잠깐씩 안부를 여쭈었더니 나를 보면 반가워하신다. 귀가 어두워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도 연세가 많아서 그러려니 한다.
구십이 넘은 친정어머니와도 통화할 때는 큰 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여름에는 땀이 나서 보청기를 빼 놓을 때가 많아 대화가 순조롭지 못하다. 집에서 통화하는 날은 앞집에 들릴까 봐 창문을 닫고 시작한다. 한참 동문서답하고 나면 목이 칼칼하다. 적당한 방법을 찾던 중 약수터나 시장 갈 때 산길 또는 들판에서 전화를 건다. 크게 불러 보고 싶던 차에 목청을 높여 ‘엄마?’ 하며 어리광을 부린다. 칠십 대 딸이 구십 대 엄마를 앞으로 몇 번이나 불러 볼까 싶어서이다. 단번에 알아듣고 ‘큰딸이야?’ 하는 그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반갑다. 살아 계신다는 증명이기에 안심이 된다.
여기는 경기 북부라 봄이 늦게 도착했다. 앞집 할머니도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문을 반쯤 열어 놓았다. 아직은 바람이 찬데 벌써 열어 놨느냐고 하니까 인기척이라도 들으려고 그러셨단다. 겨우내 답답하고 적막하셨다는 뜻이다. 기온이 올라간다고 해도 고령이라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기껏해야 현관 밖에 화단이 유일한 외출 장소다.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꽃구경하면서 지나가는 사람 보는 게 낙이라고 한다. 다행히 꽃밭에는 집주인이 심어 놓은 장미와 블루베리, 앵두나무가 있고 도라지, 팬지, 꽈리 등이 가을까지 연달아 피고 열매 맺어 할머니의 눈 벗이 되어 준다.
시간이 나서 놀러 갔다. 2층에 사는 주인아주머니도 와 있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무얼 하느라고 얼굴 보기가 어렵냐고 하신다. 컴퓨터로 하는 게 있다고 하자 잘됐다는 표정으로 그거 내 방에 가지고 와서 같이 하자는 게 아닌가. 부업 한다는 거로 들으신 것 같다. 글도 쓰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나 카페에 올린다는 걸 설명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당황하여 ‘예, 예, 알았어요.’ 얼버무리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컴퓨터는 함부로 들고 다니면 안 되고 할머니는 모르는 기계라고 해 주어서 난처함을 면했다. 하지만 얼마나 심심하면 친구도 아닌 나에게 그러셨을까 싶어 노인들에게도 취미생활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같은 시간을 가지고도 한 분은 무료하게 보내고 친정어머니는 일거리를 찾아서 하는 편이다. 시할머니의 치매 바라지를 한 경험 때문에 몹쓸 망령과는 담을 쌓겠다는 결심이 대단하다. 모든 게 힘에 부친다고 하면서도 몸을 자주 움직여 부실한 건강을 유지한다. 게으름피우다가는 자식들 고생시킨다고 낮에도 누웠다가 금방 일어난다고 하신다.
친정 바깥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여름 한 철에는 갑자기 손님이 와도 해결할 정도로 파부터 풋고추, 상추, 아욱 등 골고루 있다. 그곳은 식구 중 어머니와 가장 잘 통하는 채소 마을이다. 결혼 후부터 아버지 살아 계실 동안 주무른 흙이 진력도 나지 않는지 무엇이든지 가꾸는 걸 좋아하신다. 엄마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을 푸성귀들이라 대부분 튼실하다. 특히 마늘 수확이 끝나면 내년에도 심을지 모르겠다면서 똘똘한 것으로 골라 놓는 손길에서 삶의 재미가 전해진다.
요 몇 년 동안은 코로나19로 이웃과도 왕래가 뜸해서 밭에 더 자주 나가신다. 텃밭이 친구 대신이다. 당신이 말을 걸고 당신이 대답하신다. 호미질로 갑갑함은 흙 속에 묻고 무료함은 풀 뽑아내듯 하리라. 나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산을 찾아다닌 것처럼 여기저기 아픈 어머니에게는 노후를 살아 내는 출구이기도 하다.
친정 동네는 시골이다. 젊은이와 아이들은 도시로 나가서 조용하다. 어머니는 택배기사라도 오면 짖으라고 개 한 마리 키운다. 꼬리만 흔드는 강아지와 대화는 통하지 않아도 든든하다고 한다. 주변 어르신들의 행동은 곧 닥칠 내 일이기에 나는 어떻게 해야 덜 적적하면서 따분하지 않을까를 생각한다. 지금은 약수터가 있는 뒷산에도 가고 컴퓨터를 벗 삼아도 외출이 자유롭지 못할 날이 올 것이다. 글짓기에 쏟았던 열정마저 소진해 버릴 때 어떤 낙으로 살아야 하나 하다가 묘안을 찾았다.
아랫집 할머니가 외로움을 달래려고 화단에 나가 앉았듯이 나도 우리 집 작은 꽃밭을 방패막이로 쓰려고 한다. 어려서는 화초를 막연히 좋아했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사랑으로 보살피고 있다. 그래서인지 꽃이 내 숨소리만 듣고도 나의 기분을 알아주는 듯하다.
친구의 부음 소식은 다 슬프지만 각별한 사이가 있다. 사회에서 만났는데도 그녀와 나는 잘 통했다. 내가 어지럼증으로 오래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찾아와 위로해 주었다. 호호백발이 되어도 건강 잃지 말고 고귀한 우정을 나누자고 약속했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자랑하더니 호사다마였을까. 몹쓸 병을 얻어 멀리멀리 가 버렸다. 속상하다 못해 억울했다. 설움이 밀려와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나에게 건강해지라고 하고선 먼저 가 버린 게 야속하여 그녀를 닮은 보라색 도라지꽃을 흔들며 푸념을 쏟아 냈다. 꽃은 묵묵히 듣고 있더니 잠시 후 격한 감정을 누그러지게 해주었다. 착한 그녀의 손길처럼 따스함이 어깨에 전해졌다.
점점 약해지는 체력으로는 적적함이나 떠나는 이들이 주는 허탈감을 이겨 낼 자신이 없다. 좀도둑처럼 호시탐탐 노리다가 수시로 달려들 텐데 무슨 수로 막아 내겠는가. 자존심 상하지만 비위를 맞춰 가면서 친구로 지낼 계획이다. 어느 날 적적(寂寂)이 찾아오면 ‘잘 왔다. 우리 꽃구경이나 하고 놀자.’ 하련다.













조여선
작가소개 / 조여선

자연을 닮은 글을 쓰고자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추천 콘텐츠

「스케치하는 시간」외 1편

스케치하는 시간 류미월 권태는 새로움을 갈구한다. 그렇고 그런 날이 계속될 때 훌쩍 집을 떠나 낯선 여행지를 걷다 보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여유가 생긴다. 지루한 ‘코로나 19’ 마스크 시대와 어제 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무렵 문뜩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림 그리기가 생각났다. 유화나 수채화보다는 기초를 다지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연필 스케치를 시작했다. 사각사각 슥슥 연필심이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소리가 좋다. 사진보다 섬세할 정도로 잘 그리는 중급반 동호인들을 볼 때면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가로, 세로줄 긋기를 통해 감각을 익히고 H, 2H, 3H ... 6H, B, 2B, 3B ... 6B 연필을 사용해서 명암을 조절한다. 원기둥 그리기와 머그컵 그리기까지 끝내고 나니 슬슬 재미가 붙으며 오그라들었던 어깨가 펴진다. 시간이 날 때면 주방과 거실에 있는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본 스케치를 한다. 길을 가다가 야생화를 보면 정성 들여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고 하나씩 불러내서 스케치북에 그려본다. 나 스스로 ‘자뻑’하며 만족하는 그림이 나왔을 때의 기쁨은 글 쓰는 맛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오늘은 머그컵과 친해지는 날이다. 머그컵을 좌우대칭 정확히 파악한 후 비율에 맞게 스케치하고 짙은 색에서 중간색, 흐린 색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스케치를 채워나간다. 가로세로 명암을 넣으며 마지막 완성에 다다를 때는 숨소리도 죽여가며 몰입하게 된다. 머릿속을 하얗게 도화지처럼 비우고 오로지 스케치하는 사물만 생각하며 그린다. 하늘에 뜬 흰 구름처럼 평화로운 마음 상태에서 집중 몰입할 때의 순간이 좋다. 신문이나 책을 보다가 살림을 하다가 여유가 날 때 차 한잔하며 사각의 백지를 마주하는 순간은 한여름에 순백의 눈 위를 걷는 것처럼 청량하고 순수해지고 차분해지는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첫사랑을 떠올릴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그림을 잘 그려보겠다는 욕심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두운 부분은 더욱 진하게 하나의 빈틈이라도 있을까 봐 여백을 꽉꽉 채우게 된다. 기초 작업인 구성이 잘못됐을 때는 미련 없이 싹 지우고 다시 그려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내가 그린 게 최고인 것 같고 틀림없어 보여서 한번 그린 건 쉽게 지우지 않게 된다. 안쪽부터 채워나가다 보면 기본 구성이 잘못되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연필로 밀도 있게 채워나가는 것보다 잘못 그린 부분을 지우개로 제대로 지우는 것이 최고의 소묘라는 걸 스케치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어디 스케치 뿐이랴. 우리의 삶도 자꾸 비워야 새것을 받아들이고 머릿속도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면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버려야 새것을 받아들일 공간이 커지는 법 아니던가. 스케치하는 시간은 힐링과 치유의 시간이 된다. 기분이 불쾌하고 속상하고 슬펐던 감정이 스케치하는 동안 상처가 아물 듯 기분이 좋아진다. 급하고 덜렁거리는 조급함이 산사(山寺)에서 참선을 하듯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 스케치하면서 그림을 완성

  • 관리자
  • 2023-11-15
눈 오는 날의 기호

눈 오는 날의 기호 류미월 간밤에 바른 자세로 잠을 못 자고 뒤척인 탓인지 아침에 눈을 뜨자 등 쪽이 불편하다. 이럴 때면 인근에 있는 의료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건강 카페에 가곤 한다. 따뜻한 자리에 누워서 척추 라인을 온열로 집중 관리받고 나면 통증이 줄어들고 온몸이 개운해진다. 체험 비용은 차 한 잔을 주문하면 된다. 체험을 마치고 넓은 창가 탁자에서 차 한잔하는데 정월의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달리는 자동차 위에도 애완견을 데리고 가는 여인의 어깨 위에도 꿈꾸는 푸드트럭 위에도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펄펄 내리는 눈송이가 갓 구운 고소한 빵 내음을 흩뿌리고, 한쪽 하늘에선 깃털 같은 함박눈이 춤추듯 내려와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비릿한 슬픔을 뿌리고 간다. 어느 정도 함박눈이 퍼붓고 난 하늘이 맑아졌다. 하늘도 먹먹한 제 무게를 감당 못 할 때는 펑펑 소리 내 울듯 함박눈이 되어 내리는가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마시는데 묵은지 같은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친구도 눈 오는 날 친구가 그리웠나 보다. 느닷없이 먼 옛날 함박눈이 내리던 날 퇴근 후 명동거리를 빙빙 배회하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20대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친구와 명동 골목 식당에서 낙지 덮밥을 먹으며 사는 게 매운 건지 음식에 고춧가루 때문인지 눈물 반 콧물 반을 흘리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고달픈 삶을 서로 토닥이며. LP 판을 틀어주는 음악다방 구석진 자리에서 신청 곡을 메모지에 적어 DJ 박스에 건네곤 그 곡이 나오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감격하며 듣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추억에 빠졌다가 의료기 체험 카페 문을 밀고 나서려는 순간 손을 힐끗 봤다. 거칠고 주름진 손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거리를 걸었다. 눈은 먼 곳에서부터 수직으로 오다 사선으로 흩날리다 소리 없이 내린다. 가로수와 고층 빌딩과 벤치와 로드킬 당한 생쥐 몸 위에 소복소복 말없이 이불을 덮어주듯 내린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웠던 사람의 얼굴도 불현듯 스쳐 간다. 눈은 묘한 마력이 있다. 눈은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멍하게 ‘눈 멍’을 때리고 정지된 화면처럼 있으면 머리를 옥죄던 근심 걱정이 지우개로 쓱쓱 지운 듯 잠시 사라진다. 요즘 들어 집안 살림살이에서도 잘 안 쓰는 그릇이나 옷과 책 그리고 자잘한 살림살이를 큰맘 먹고 버리고 있다. 버리고 나니 공간이 넓어지고 마음마저 뻥 뚫린 듯 시원해진다. 주방을 드나들 때면 그릇장에 남겨진 그릇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집은 좁다고 투덜대며 넓혀갈 생각만 할 일이 아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처분하고 나서 집이 몇 평은 넓어진 느낌이다. 중년에 접어든 삶은 무조건 더하기만 고집할 일이 아니다. 때로는 빼기를 잘해야 편안한 삶이 된다는 걸 공감하고 있다. 되지 않을 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에너지가 방전되고 화가 깊어져서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된다. 요즘 들어 아니다 싶은 것들은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건이

  • 관리자
  • 2023-11-15
「상처가 주는 울림」외 1편

상처가 주는 울림 공화순 페북을 끊은 지 서너 달이 지났다. 가끔 궁금하고 친구요청 알림이 뜨면 어쩌다 휙 눈팅을 하게 된다. 그러다 낯익은 사람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왜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를 쉬이 털어버리지 못할까? 아니, 상처는 왜 쉬이 아물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어릴 적 실수로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일곱 살 즈음의 일이다. 안마당에 무를 담아놓은 고무 대야가 하필 어린 계집아이 눈에 띄었다. 대야 안에 가득한 무와 함께 커다란 부엌칼도 눈에 확 들어온 건 비극의 서막이었다. 고무 대야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손으로 커다란 칼을 집어 들었다. 무를 잘라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무를 힘껏 내리쳤지만, 힘에 부쳤다. 칼은 무에 박혔고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있는 힘을 다해 칼을 뽑았을 땐 순식간에 칼끝이 정강이를 깊이 도려내고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눈 깜짝할 새 정강이 살점이 파이고 하얀 뼈가 보였다. 순간 놀란 가슴보다 정강이가 더 놀란 듯, 피도 나오지 않고 시간이 딱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명도 눈물도 없었다. 뒤미처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광목천을 두르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얼마 후, 들에서 돌아온 엄마는 다리를 처맨 것을 보셨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놀이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상처는 아직도 깊숙한 자리로 남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상기시키곤 하는데 상처를 치료했던 기억이 없다. 병원놀이가 며칠째 계속되자, 엄마가 벗겨봤지만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뒤였다고 한다. 상처를 제때 치료했다면 흉터가 가볍게 남진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도 해봤다. 정강이의 깊은 상처는 사춘기 시절 내내 치마 입는 것조차 신경이 쓰이게 했다. 크도록 짧은 치마를 입는 데 불편을 겪었다. 치마를 입을 때마다 스타킹은 필수요건이 돼버리고 겨울엔 두꺼운 스타킹과 부츠를 신으니 차라리 편했다. 페북의 그도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넘어져 앞니 두 개를 잃고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그 상처에 붙들려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상처 한두 개쯤 지니고 살기 십상이다. 누군가는 쉬이 상처를 아물리고 다독이며 잘 살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정강이 상처를 의식하고 살아온 나는 처음으로 내 상처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50년을 넘게 내 몸에 지녀온 상처인데 한 번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몇 년 전, 잡지에서 배에 있는 수술 흉터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찍은 모델 사진을 보았다.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서 상처는 꽤 도드라졌다. 그것이 내게 신선한 도발이었다. 부조화에서 온 변화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 너무 지루한 고요 속에 쨍하고 금을 긋는 울림 같았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시내에서 꽤 알아주는 의상실에서 교복을 맞춰 입었다. 학생들 무리에서 몸에 곡선을 매끈하게 빼준 교복 덕에 선배들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다행인지 남들보다 치마 길이가 길게 맞춰져서 정강이 절반 아래로 날씬한 다리만 보이고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어쩌다 내 정강이 상처를 발견하면

  • 관리자
  • 2023-11-10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