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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날 도와줄 거야?」 외 1편

  • 작성일 2022-09-16
  • 조회수 63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다음에는 날 도와줄 거야?



하리타




***
대학원 동기인 클레어, 마리나와 같이 호수공원에서 일광욕을 하기로 한다.
“우리 누드 구역에서 만날래? 공공장소에서 다 벗고 다니는 거 미국에선 절대 못 하니까 여기서 한번 해볼래. 혼자는 못 해도 너희랑 같이는 할 수 있어!”
꼭 아침 방송의 경쾌한 리포터처럼 이색적인 경험을 찾아다니는 클레어가 재잘거린다.
“오, 좋은 생각. 어차피 나는 수영복이 없어.”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대학 때부터는 독일에서 살고 있는 마리나에게는 누드 일광욕이 이미 익숙한 것 같다. 아직 해 본 적 없는 나도 흔쾌히 오케이를 외친다. 새로운 경험 앞에서 쭈뼛거리는 건 영 쿨하지 않으니까.
아직 6월 초엽인데 기온이 30도 가까이 되고 햇빛이 따가울 정도로 밝고 강하다. 전형적인 서유럽의 여름날.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일광욕을 시작한다. 분주한 공원이든 주택 옥상이든 가리지 않고 드러눕는다. 11월에서 3월까지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시달리고 나면, 여름철 일광욕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호수공원에 도착해서 누드 구역을 찾으려고 주위를 둘러본다. 부모 손을 잡고 물가에서 찰박거리는 아이들이나, 이태리어로 호수를 뜻하는 ‘라고(Lago)’라는 간판을 단 식당 방갈로에 손님들이나 다들 즐거워 보인다. 야외 코트에서는 풋살 경기가 한창이고, 그 옆엔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 놓고 전망대를 차지한 청소년 그룹이 있다. 근처 대학 기숙사에서 나왔는지, 연기 나는 그릴을 놓고 둘러앉은 청년들도 멀리 반대편 잔디밭에 몇 팀이나 흩어져 있다. 사람들이 다리 난간에서 호수로 다이빙을 할 때마다 물보라가 터진다. 모든 것이 생동하는, 마음을 단번에 환히 밝히는 풍경.
나는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산책로를 따라 빙 돌다가 누드 구역을 발견한다. 묘기 자전거용 언덕을 등지고 있어서 산책로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클레어와 마리나가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있다.
“오늘따라 트램이 좀 늦게 오더라.” 가방에서 작은 돗자리와 물병, 과일을 담은 락앤락 통을 꺼내며 내가 말한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두 사람도 물과 음식을 집에서 싸 온 모양이다. 일회용품을 안 쓰는 건 환경 대학원에 다니는 우리의 습관이다.
“그럼 셋 다 모였으니까 이제 슬슬 벗어 볼까? 좀 부끄럽긴 하다.” 클레어는 먼저 말을 꺼내 놓고도 나와 마리나가 먼저 옷 벗는 것을 지켜본다.


누드 구역에서는 우리 말고 예닐곱 명이 더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서로 선크림을 발라 주는 커플, 선글라스를 끼고 책 보는 남자, 엎드린 채 잠든 것 같은 여자 둘도 있다. ‘누드 구역’은 사실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쓰는 말이다. 이곳은 1986년, 시에서 조경박람회를 유치하면서 인공 호수를 파고 그 주변에 조성한 공원인데, 규칙을 따져 놓은 표지판 같은 것이 없어도 지형이나 쓰임에 따라 자연스레 구역이 나뉘는 분위기이다.
아무리 더운 날이어도 막상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으니 살갗에 닿는 공기가 시원하다.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피서. 해방감 때문인지 그냥 체온이 내려간 건지 가슴까지 후련하다. 마리나는 여기까지 왔는데 아쉽다며 한차례 평영을 하고, 클레어는 새, 거북이, 물고기도 다 같이 있는데 물속이 어떻겠어, 라고 트집을 잡으면서도 깔깔 웃으며 수다를 주도한다.


***
각자 수강 중인 선택 과목들을 비교하고 있을 때, 산책로 쪽에서 누군가가 나를 정면으로 쏘아본다. 캡모자를 거꾸로 쓰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그 남자는 대여섯 명이 줄지어 지나가는 무리 속에 있는데,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앳된 것이, 십 대 후반인 듯하다.
‘왜 쳐다보지? 하긴, 십 대들한테는 누드 일광욕이 자극적이겠지.’
햇살 아래서 한껏 너그럽고 평화로운 나는 십 대 아이들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날 쏘아보던 남자애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폭발하듯 소리친다.
“니하오! 니하오!”
꼭 화난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힘껏 소리치는 그의 입에서 ‘안녕’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너무 어색하다. 뭔가 다른 단어가 나오는 게 어울릴 것 같은데. 상황이 이해 가지 않는다. ‘응? 너 나 알아?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나는 속으로만 묻는다.
혹시 다른 말 상대가 따로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본다. 누드 구역엔 열 사람 정도가 흩어져 있고, 외침 소리에 주의가 끌려 모두 그 남자애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 ‘니하오’가 나를 향한 것임을 이제 확신한다. 나를 빼고는 이 자리의 모두가 백인이다.


전혀 인사 같지 않은, 전혀 맥락 없는 ‘니하오’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듣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 때 흔히 처음 내놓는 단어. 그다음에 따라오는 말은 내용이 무엇이건 대개 독일어나 영어로 하지만 첫마디는 꼭 중국어 인사말이다.
독일 생활 초창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중국인인 줄 알았나 보다.’, ‘중국어 인사말을 써 보고 싶었나 보다.’ 뒤이어 중국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흔했는데, 좀 귀찮지만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많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그런 날들이 쌓여 가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강아지나 고양이의 목소리가 입력되면 이를 분석해서 사람의 음성 언어로 변환해 출력해 주는, 발명되었다고 들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그 기계가 내 안에 설치된 것이다. 이 기계는 ‘니하오’를 말한 사람의 표정과 몸짓, 목소리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 그다음에 나오는 말까지 복합적으로 해석해서 의미를 갖춘 한 두 문장을 출력했다. 하지만 결괏값을 매번 듣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어서 기계를 꺼 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소용없었다.


꼭 화를 내는 것 같은 이 남자애의 ‘니하오’도 어김없이 변환되어 울린다. [오늘도 인간들이 다 벗고 앉아 있네. 잠깐, 뭐야. 넌 외국인이잖아. 아시안 여자가 거기 껴서 뭐 하는 거야. 당신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 내 안에서 울리는 결괏값이 끝나고 1…2…3초.
나는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있고, 남자애를 정면으로 마주 보며 외친다.
“그만해! 그러는 거 아니야. 그거 인종차별적인 공격이야! 너 이리 와서 나한테 사과해. 할 수 있어? 못하지? 가. 가라고!”
남자애는 주춤하고 발을 작게 몇 번 구르더니, 곧 등을 돌려 멀어진다.
나는 씩씩거리며 숨을 고른다. 가슴이 마구 뛴다. 아드레날린 펑펑 나오나 보다. 그 애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몇몇은 이미 하던 일로 돌아가 있고, 다른 몇몇은 꼭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표정이 비어 있다. 문득 소리를 지른 게, 알몸으로 서 있다는 게 민망해져서 털썩 자리에 주저앉는다.


마리나도 클레어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입을 연다.


“방금 봤지? 나 이런 일 자주 당해. 이거 성희롱이고 인종차별이잖아.”
일단 입을 여니까 민망함은 사라지고 화가 치받아 올라온다. 잠깐 말을 끊고 친구들이 맞장구치기를 기다린다.
“….”
마리나는 말없이 깔고 앉은 돗자리를 내려다본다. 내 눈을 피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방금 무슨 상황이었던 거야? 너무 순식간이라 파악을 못 했는데.”
클레어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다.
“아니, 봐. 여기 여러 사람이 같이 있는데 저 남자애는 왜 꼭 나를 지목해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냐고. 방금 쟤가 막 반갑게 인사한 게 아닌 건 너희도 느꼈지? 나만 외국인이라고, 아시안이라고 생각하고 굳이 니하오라고 한 거잖아. 사실 너희 둘도 외국인인데, 꼭 이렇게….”
나는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를 자각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한다.
클레어는 격분하는 내 눈치를 보며 시들하게 말한다.
“아… 그런 거야?”


우리는 평범한 수다로 되돌아가지만 분위기는 이제 어색하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일광욕은 더 이상 나른하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모든 것이 여전히 아름답게 생동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일부가 아니다. 튕겨 나왔다. 속으로 방금 소동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느라 대화에도 잘 끼지 못한다.
‘이걸 이해를 못 한다고? 공감을 못 한다고? 잘못한 것도 없이 공격당한 건 난데, 아무도 같이 나서 주지 않은 것도 모자라서 내가 설명까지 해 줘야 한다고? 그런데도 이렇게 반응이 없어? 진짜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은 거야? 바로 옆에 있었잖아.
클레어는 그렇다 치자. 원래 칭찬은 잘해도 대놓고 비판은 절대 못 하니까. 둔감하니까. 그래도 마리나는 이럴 줄 몰랐는데. 매주 시위에 나가잖아. 공감 능력이 최대 장점이잖아.’
***
그날 이후, 나는 의심의 시간을 보낸다.
‘정말 너무 갑자기, 잠깐 동안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상황을 인지 못 할 수도 있어.’
‘그래도 친한 친군데, 내가 속상하다고 막 울어 버렸으면 위로해 줬을 거야.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못 본 거야.’
‘그렇게 바로 받아치지 말고 기다릴 걸 그랬나. 누군가 나서 줬을지도 몰라.’
‘그냥 성격 차이일 수도 있어. 난 어릴 때부터 누가 시비 걸면 못 참았어. 대응이 유난히 빠른 사람이라고.’
나를 의심하는 것은 나를 갉아먹는다는 것임을 알면서도 멈추기 힘들다. 뒤늦게라도 이해를 받고 싶다. 확인해야 한다. 서운함, 배신감, 실망감 같은 것들은 한번 굳은살이 되면 좀처럼 빠지지 않으니까.


오래 지나지 않아 기회가 온다. 환경 대학원 건물 2층에 있는 자치 카페. 점심시간. 도시락을 먹으러 온 우리 셋은 우연히 마주치고,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나는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말을 꺼낸다.
“애들아… 저번에 있잖아. 우리 호수공원에서 같이 일광욕했을 때. 그때 지나가는 사람이 나한테 ‘니하오’라고 소리 질러서 내가 되게 기분 나빠했었잖아. 너희는 당황해서 가만히 있었고… 사실 그때 너희가 날 도와줬으면, 훨씬 나았을 것 같아. 음… 만약에 그때로 돌아간다면 날 도와줄 거야?”
이건 뭐, 엎드려 절 받기다.
마리나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음… 사실 그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어. 그런데 나는, 네가 그런 식으로 반응하면 도와주기 어려울 것 같아.”
“그런 식이라니…?”
내 부탁을 거절한 적 없는 마리나, 부탁하기도 전에 도와주는 마리나가 거절을 한 것 자체가 놀라워서, 나는 다음 말은 예상하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너도 그 사람이랑 똑같이 공격적으로 대응했잖아.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차분하게 대화를 청한다든지… 난 ‘비폭력 대화’ 방식을 지지하는 입장이야. 게다가 갈등 상황 자체를 잘 못 견디고 누가 싸우는 걸 보기만 해도 얼어붙어.”
마리나는 정말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지, 조리 있고 차분하고 이성적이다.
엎드렸으니 절을 받을 줄 알았던 나는 순간 멍해졌다가, 차갑게 식어 간다. 클레어는 분위기가 불편해진 것을 눈치 못 채는지 가뿐하게 끼어든다.
“음,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잘 이해가 안 가. 비트 절임 더 먹을래? 난 이제 배부르다.”
***
난 나를 지키려고 했던 거야. 그건 방어였어. 분노는 고통이기도 해.
난 나를 지키려고 했던 거야. 그건 방어였어. 분노는 고통이기도 해.


안에서 맴돌던 이 말이 밖으로 나갔는지 아닌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때로 중요한 순간 멍해지고, 멍해진 순간의 기억은 가려져 있다.
마리나, 클레어와는 계속 친하게 지냈다. 클레어는 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독일인과 결혼하고서 독일에 올 때마다 만나자고 했다. 나와는 평소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 깊이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마리나는 나처럼 이 지역에 계속 살면서 풀뿌리 시민 단체들을 연결하는 일을 했다. 내가 관심 있을 것 같아서 보낸다는 행사 소식 중에서는 인종주의에 대한 것들도 종종 있었다.
나는 독립 저널리스트로서 취재를 다니고 글을 쓰면서 인종주의, 이주와 문화 정체성, 소수자와 연대의 문제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이 배우고 또렷한 나의 언어를 만들어 갔다. 그날 호수공원에서의 일은 결국 굳은살이 되었고, 내 몸 여기저기서 종종 만져졌다. 하지만 이해받으려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친구 사이에 마음의 거리는, 사실 점이 아니라 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쑥날쑥한 선. 지그재그 모양의 그 선들의 어떤 지점은 앞으로 튀어나와 있고, 어떤 지점들은 물러나 있는 것이다. 대신 부탁할 필요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
어쩐지 자꾸 잊어버리는데, 사실 그날 누드 구역에서 나를 이해한 이가 있었다. 딱 한 사람. 내가 피크닉을 끝내고 돌아가려고 돗자리를 돌돌 말고 있을 때, 그 사람은 휠체어를 탄 채 내게 다가왔다.
“아까 봤어요. 그거 어떤 기분인지 잘 알아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저한테 말을 아주 천천히 하거든요. 한 마디씩 끊어서. 브라우헌. 지- 힐-프(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안 그러면 내가 못 알아들을 게 확실하다는 듯이. 겉모습만 보고 지적 장애인이라고 넘겨짚나 봐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엿 같죠.”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은청색 눈은 날카로웠고, 입은 시니컬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니까요. 웃기지도 않아요.”
그와 나 사이에 그 이상 설명은 필요 없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와 눈높이를 맞추고서.
“저기, 이름이 뭐예요?”
“다니엘이요.”


그날 그곳에서 다니엘만은 보았던 것 같다. 알몸으로 벌떡 일어서 고함친 내가 무엇을 감수했는지. 그는 그것을 보았고, 어쩌면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휠체어 바퀴를 굴려 내게 왔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때 나는 일어서지 않을 수 없어서 일어섰다.


곧잘 간과되는 치욕의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어떤 말과 몸짓, 어떤 관행과 신념이 언제 어떻게 한 사람을 배제하고 상처 입히는지 그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스스로 지적한다는 것은 몹시 불편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려면 언제나 뭔가(두려움뿐 아니라 수치심까지)를 극복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저항하거나 반박하려면 자신의 상처를 먼저 언급해야 한다는 굴욕이 전제된다. (…) 또한 자신이 누구로서 공격당하는지 늘 자문해야 하고, 그런 다음 누구로서 말하는지도 맥락에 넣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자신의 상처에 대해 분명히 말하려 하는 사람, 늘 한결같은 배제의 방식에서 느끼는 비애를 더 이상 억누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흔히 ‘분노한(분노한 흑인 여성)’ 사람으로, ‘유머 감각이 없는(페미니스트와 레즈비언)’ 사람으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역사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유대인)으로 취급된다.

- 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중에서









일곱 개의 단어들






1. 이민 가방


32킬로그램. 어지간한 힘으로 당겨서는 꿈쩍도 안 한다. 밀어 본다. 가방은 조금 가다 비틀거린다. 쓰러지려고 한다. 인터넷 최저가 이민 가방의 바퀴들은 계속 헛돈다. 심호흡을 해야 한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프랑크푸르트 공항 입국장. 
정작 중요한 것들은 이 가방 안에 없는데. 떠나면서 받은 응원. 악착같이 모은 1400만 원. 외국어 능력. 내 강아지. 마지막까지 담을까 말까 고민한 것들도 물론 있었다. 어린 시절 사진 앨범들과 일기장 십여 권. 마지막 순간에 그냥 벽장 꼭대기에 도로 올려놓았다. 그러니까 가방은 그냥 내 동행 같은 것이다. 배웅이자 마중. 허전한 옆구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히 묵직하고 과묵하니까.
인터 시티 트레인에 올랐다.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으로. 푯값은 160유로. 소요시간은 2시간 6분. 가방은 화장실 옆 통로 칸에 끼일 듯 꽉 들어찬다. 내 무릎이 가방의 옆구리를 지그시 압박하고, 창밖에 풍경이 지나갈 때 기억도 지나간다. 보습학원 강사인 나. 심야 영업 단속을 피해 맥도널드 2층에 앉아 있는 밤 열 시 오십 분. 열여섯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 나는 단품 버거만을 사 준다.
이제 택시에 탄다. 차 안에 가죽 냄새가 독하다. 운전대가 너무 높아 보이는 작고 창백한 기사님. 재빨리 불어나는 미터기 요금을 보고 있으면 2.5킬로미터도 아주 긴 여정이 된다. 차 트렁크에서 아스팔트 바닥까지 수직 30센티, 건물 앞까지 수평 50미터. 혼자 끌고 갈 수 있을까? 결국 묻는다. “아, 저기까지도 좀 같이 가 주실래요?” 그녀는 언짢고, 무안한 나는 허무맹랑한 팁을 얹어 택시비를 지불한다.
그 밤엔 오래 잠들지 못한다. 손목이 욱신거리고 마음이 욱신거리고.
8년의 시간, 11번의 이사. 가방의 쓸모는 내내 계속되고, 내내 거추장스럽다. 짐을 담을 땐 끝없이 들어가서 횡재한 기분이지만, 지퍼를 여미고 버클을 똑딱, 채우는 순간부터 골칫덩이다. 손잡이를 끌며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가방의 금속 바퀴들은 퉁퉁퉁, 철커덕철커덕.


2. 열쇠꾸러미


-----Original Message-----
From: "Seyeon Jeong";
To: "진소라"
Cc:
Sent: 2016-10-25 (4.00000.화) 08:13:45 (GMT+01:00)
Subject: RE: 언니!


소라야!
네 메일 정말 반가웠는데 답장을 잘 써서 보내려고 하다가 열흘이 지나가 버렸어. 저번 메일에서 네 얘기 읽다가 엄청 웃었다. 도어락에 건전지가 다 되어 가서 경고음 나왔는데 계속 무시하다가 결국 새벽 1시에 집에 못 들어갈 뻔했다는 거. 앞으로 건전지 가방에 여분으로 들고 다니는 거 아니야?!!


내가 말했나? 여기는 사람들이 디지털 도어락을 거의 안 쓴다는 거. 다들 그냥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녀. 세입자니까 내 맘대로 문을 바꿀 수도 없고 해서, 나도 열쇠를 쓰게 됐지. 내 꾸러미에 달린 열쇠는 여섯 개야. 지금 사는 다세대 주택 입구, 우리 집 현관, 우편함, 작업실 문, 작업실 셔터문, 자전거 자물쇠용. 되게 많지? 작업실 건물의 측면 출입구랑 여자화장실용 열쇠까지 원래 두 개가 더 있는데 너무 무거워서 따로 빼놨어. 열쇠를 다시 쓰다 보니까 열쇠고리에 관심 생겨서 저번에 한국 갔을 때 귀여운 거 하나 사 왔잖아. 혀 내놓고 있는 웰시 코기 얼굴 모양. 귀여운 건 한국이지.


그런데 대체 왜 도어락을 안 쓰는 거지? 21세기잖아. 탁 띡띡띡띡 띠리리리 철컥. 간단하잖아. 초기에는 진짜 적응 안 됐어. 공휴일에 열쇠 없어서 출장 서비스를 부르면 200유로가 청구된다는 얘기를 들어서 긴장도 됐고. 알고 보니까 200유로는 과장이 좀 보태진 액수였지만. 요새도 밖에 나갈 때마다 엇, 열쇠, 이런다니까.
독일 사람들은 도어락을 안 믿는 건가? 왜? 디지털이어서? 열쇠문이 고장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가? 웬만하면 고장 안 날 텐데. 열쇠업자들이 로비를 잘하나? 도어락을 안 써 봐서 얼마나 편한지를 모르는 걸 수도 있어.


도어락이 없는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는데, 웃긴 건 나도 은근히 설득이 됐다는 거야. 나중에 한국 돌아가더라도 가능하면 열쇠를 계속 쓸 거야. 물론 도어락이 편하니까 또 순식간에 적응하겠지만, 열쇠문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묵직한 물성이 뭔가 안심이 된 달까.
생각해 보면 신기해. 열쇠 모양이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다 다르잖아. 아주 조금만 달라도 문이 절대 안 열리더라. 모든 열쇠 구멍이 다 다르다. 거기에 맞는 열쇠는 딱 한 가지뿐이다. 이거 뭔가 좋은데?


3. 연극 대본


[배우 1은 무대 가운데 놓인 철제 벤치에 앉아 있다.
뒤편 대형 스크린에 사진이 띄워져 있다. 외국 밤거리의 어느 트램 정류장 모습. 사진 속에는 멀리서 다가오는 트램 한 대와 정류장 근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서너 명이 있다.
배우 1은 금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뿔테 안경을 썼다. 검은색 패딩 점퍼에 청바지, 굽 있는 앵클부츠를 신고 있다.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배우 1은 고개를 들어 객석을 본다.]


배우 1: “글쎄요. 스타일이라. 전 그때그때 기분이나 장소,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입고 다니는 편인데. 다양한 이미지가 있는 게 좋죠. 그렇지 않나요? 그게 자유 아니겠어요?”


[배우 1은 앉은 자리에서 점퍼와 바지와 안경을 벗어 던진다. 가발을 벗자 단정하게 묶어 올린 고동색 머리카락이 나온다. 이제 세련된 감청색 오피스 정장 재킷과 바지를 입고 있다. 벤치 옆에 놓여 있던 백팩에서 작은 핸드백을 꺼내 어깨에 메고 일어선다.]


배우 1: 어쨌거나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잖아요. 사실 다 유니크한 거죠. 오리지널. 원래 누구나 다 오리지널이에요.


[배우 1은 무대 앞쪽으로 나와서 또 입고 있던 옷을 벗는다. 큰 프린트가 그려진 흰색 민소매 티셔츠와 달라붙는 검은 반바지가 드러나고 피부 곳곳에 타투도 보인다. 가발을 벗자 연보라색 숏컷 머리카락이 나온다. 벤치 옆에 놓인 배낭을 가지고 와서 거꾸로 들고 흔든다. 물병, 담뱃갑, 책 두세 권, 노트, 작게 접힌 신문지, 포장지에 들어 있는 콘돔 등 잡동사니가 가득 쏟아진다. 모든 물건을 다 버려두고 유유히 무대를 떠난다. 신시사이저 음향과 함께 암전]


->배우 1은 나다. 요즘 이런 연극을 쓰고 있다. 그동안 인터뷰나 시사 칼럼 같은 글들을 주로 썼는데 이제 좀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다. 말하고 싶은 주제는 결국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경로를 찾아야 될 것 같다. 호기심, 내지는 위기감.
연극과 출신의 한 아티스트에게 보여 줬다. “제가 극본을 써 본 적이 없는데요, 일단 짧게 써 봤어요” 이런 답이 돌아왔다. “희곡 원래 다 이렇게 쓰는 거죠. 전 내용에 다 공감되던데요? 이거 가지고 일인극으로 연출하셔도 될 거 같아요. 전 막 상상되는데….”


4. 움라우트


독일어에는 특이한 알파벳이 3개 있다: Ä, Ö, Ü
이것들을 통칭 ‘움라우트(Umlaut)’라고 하는데, 발음하는 법 정도는 어느 독일어 수업에 들어가도 첫 시간에 다 배운다. 쉽게 말해 위에 찍힌 점 두 개를 뒤에 따라붙는 ‘E’라고 생각하면 된다. 뒤에 붙긴 하지만 읽을 때는 거의 동시에 해야 한다. 그러니까 ‘애에-’ ‘오에-’ ‘유에-’ 이렇게 되는 셈이다. 움라우트는 이론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지만, 실제로 마스터하기는 힘든 발음으로 외국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문제는 아주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단어들의 상당수가 움라우트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여자아이(Mädchen), 사자(Löwe), 빵(Brötchen), 봄(Frühling), 몸(Körper), 채소(Gemüse)… 대부분의 명사가 복수형으로 변할 때 움라우트를 갖게 된다는 점은 학습자들을 더욱 난감하게 만든다. 집들(Häuser), 머리빗들(Kämme), 잎사귀들(Blätter), 손들(Hände), 구멍들(Löcher) 등등….
많은 외국인들은 독일어 학습 초창기에는 움라우트를 정확히 발음하고자 열의를 불태운다. 하지만 일상이 반복되면서 대부분 포기한다. 휴가철마다 모국에 가야 하고, 비자 갱신 면접에 가야 하고, 공과금 편지에 제때 답해야 하는, 그런 일상.
결국 외국인들은 부정확한 발음의 독일어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매 순간 자각한다. 자각하지만 외면한다.


5. 거미줄


2021년 1월 어느 인터뷰 기록:


나: “제 머릿속엔 이런 이미지가 떠올라요. 음… 커다란 그물망이 있는데, 꼭 거미줄 같이 방사형이에요. 거미줄이면 세로줄은 중앙으로 모이고 가로줄은 서로 연결되어 동심원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말하는 것은 세로줄은 촘촘한데 가로줄은 듬성듬성 끊겨 있어요.


이 이미지는 뭐냐면, 이 세계의 연결 상태예요. 중요한 정보와 권력과 언어가 중앙으로 다 모이죠. 세로줄이 중앙에서 만나듯이. 중앙이 영미권과 유럽이에요. 그 외 지역들은 중앙을 중심으로 퍼져 있고요. 모든 지역이나 문화, 그곳의 사람들이 중앙으로는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오랫동안 축적된 통로와 체계들을 통해서. BBC든 아이비리그든 넷플릭스든. 그런데 다른 문화권들끼리는 연결이 빈약해요. 그래서 가로줄들은 군데군데 끊겨 있다는 거죠.


저만 해도 유럽 문화에 대한 호감과 친근감이 있고, 지식도 쌓여 있었기 때문에 독일로 온 거겠죠. 하지만 저와 비슷한 얼굴을 한 다른 아시아 사람들, 그 문화권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잘 몰라요.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서로 잘 몰라서 오해하거나 그냥 모른 척하는 것 같아요.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낯선 사람이 지나가면 괜히 흠칫 놀라잖아요? 나도 놀라고, 그쪽도 놀라고. 그런 거죠.”


6. 호랑이 그림


그 그림을 처음 본 것은 2019년 3월 초, 동네에 사는 화가 니나 살피우스의 전시를 큐레이팅할 때였다. 니나는 자전거 트레일러에 20여 점 가량의 아크릴화를 싣고 왔다. 캔버스 크기는 제각각이었고, 니나는 전시장에 도착해서야 각 그림의 뒤편에 후크를 박았다.
처음에는 그 그림이 특별히 더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기모노 풍의 옷을 입은 아시안 여성이 호랑이를 안고 있고 여자의 양쪽에 스파티필름과 백합이 그려져 있는 것이, 또 오리엔탈리즘인가 싶었다. 백인 여자가 그린 동양 여자. 다만 그림 속 여자가 안고 있는 호랑이가 유일하게 컬러로 채색되어 있고 비율로 보아 새끼가 아닌 어른이라는 것이 의외였다. 니나의 어린 아들이 전시장 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봐서 그랬나. 아무튼 전시 기간 6주 동안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고, 나라도 한 점 사고 싶었지만 늘 그렇듯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서 엽서만 대여섯 장 사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쯤 지난 어느 날, 그 엽서 꾸러미를 꺼내 보는데 불현듯 그 그림이 강하게 다가왔다. 그 느낌을 존중하고자 작업실 벽에 엽서를 붙였고, 오다가다 보면서 점점 더 애착을 갖게 되었다. 아, 이게 나구나. 내가 호랑이네. 나중에는 심지어 이렇게 여기게 되었다.


호랑이는 독립적이다. 새끼를 낳을 때 잠시 암수가 함께 지내지만, 수컷이 너무 오래 머물면 암컷이 쫓아낸다. 새끼는 2살 정도까지는 어미나 형제자매들과 어울려 다니지만 그 뒤로는 혼자가 된다. 자신의 영역을 강하게 지키는 습성 때문에 엄마 호랑이도 자기 딸을 몰아내곤 한다. 호랑이는 유능하다. 삼림, 갈대밭, 바위가 많은 곳에 사는데 나무를 잘 탄다. 고양이과 동물인데도 특이하게 수영을 잘해서 물과 땅에서 모두 사냥을 한다. 그리고 넓은 영역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50~3000제곱미터 가량의 세력 범위를 가지고 먹이를 찾아 강을 건너거나,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이동한다. 무엇보다 어떤 호랑이도 서로 같은 줄무늬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까 호랑이들은 저마다 인간의 지문처럼 고유한 줄무늬를 갖고 있다.


나는 그동안 해외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많이 했고, 누가 ‘안 좋은 경험’이 있었냐고 물으면 냉큼 읊어 대는 레퍼토리마저 있지만, 사실 막 불행했던 건 아니다. 막 외로웠던 것도 아니고.
그래, 원래 호랑이는 혼자 다니니까. 세력권은 굉장히 넓고 말이지. 혼자 멀리 이주하는 여자들은 호랑이를 좀 닮지 않았나. 이제 나는 이렇게 여기고 있다.


7. 코케다마


“일본어로 이끼공이라는 뜻의 ‘코케다마(Kokedama)’는 식물을 심는 방식의 하나로, 이끼공 안에 식물을 심어 쟁반에 놓거나 공중에 매다는 것이다. 본사이 나무의 뿌리 표본을 쟁반에 노출시켜 전시하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되었는데, 본사이의 정교한 뿌리 체계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뿌리 위에 이끼가 축적되면서 모양이 발전한다.”
크리시 나기(Krissie Nagy)라는 사람이 온라인 매체 《브루클린 식물 정원(Brooklyn Botanic Garden)》에 실은 ‘코케다마 만드는 법’이라는 기사의 첫 부분이다.


코케다마는 ‘가난한 사람의 본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식물의 뿌리에 흙을 둥글게 뭉치고 겉에 이끼를 둘러 줘야 하는데, 이끼를 고정하기 위해서는 알루미늄이나 나일론 와이어를 둘둘 말아 주면 된다고 한다. 우리 집에 그런 와이어는 없고 마분지 끈과 두께 5mm 순면끈이 있으니 나는 그걸 써야겠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끈이 썩을 것이다. 뿌리에 뭉쳐 줄 흙은 창고에 있는 것을 쓰고 이끼는 근처 숲에 가서 구해 와야지. 이렇게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본사이’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가드닝 블로그를 읽다가 ‘코케다마’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는 초등학교 때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다마고치랑 발음이 비슷해서인지, 얼굴이 있는 귀여운 식물이 떠올랐다. 잎 부분을 잡고 들어 올리면, 아래쪽 뿌리 부분에 달린 눈코입을 찡그리며 ‘날 괴롭히지 마’라고 의사표시를 하는 그런 식물 말이다. 나중에 코케다마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면서 ‘이사 갈 때 편하겠군’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다음번 이사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글로벌 운송 프로젝트’가 될지도 모른다.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언제, 어디로, 왜, 어떻게?


내 곁에는 코케다마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하자면 스스로를 뿌리째 뽑아서, 송두리째 들어서 먼 곳으로 데려온 셈인데, 막상 와 보니까 옮겨 심을 데가 영 마땅치 않다. 뿌리째 뽑을 땐 몰랐던 사실이다.
코케다마로서 생존하려면 물 만큼은 정기적으로 줘야 하는데, 그래도 수돗물은 웬만하면 공짜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에 두면 안 되는데, 그걸 자꾸 까먹어서 이끼 부분은 진작 갈색으로 타 버렸다. 어쨌거나 뿌리가 좀 말라도, 잘려도 죽지 않는다. 코케다마니까.













하리타
작가소개 / 하리타

텍스트와 사진 기반 창작자. 스물 여섯에 두 번째 집을 찾겠다고 혼자 떠났었다. 탈서울, 그리고 독일의 한 소도시로. 그 이후 자주 고삐를 풀고 모험을 떠난다. 심리치료실부터 숲과 강, 베를린 드랙쇼까지 많은 곳들로. 내면의 경계, 사회적 경계를 흐트릴 때마다 혼란과 희열을 느낀다. 이주, 몸, 젠더, 치유, 환경이 꾸준한 작업 테마이다.
포트폴리오: linktr.ee/haritamoonrider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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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하는 시간 류미월 권태는 새로움을 갈구한다. 그렇고 그런 날이 계속될 때 훌쩍 집을 떠나 낯선 여행지를 걷다 보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여유가 생긴다. 지루한 ‘코로나 19’ 마스크 시대와 어제 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무렵 문뜩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림 그리기가 생각났다. 유화나 수채화보다는 기초를 다지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연필 스케치를 시작했다. 사각사각 슥슥 연필심이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소리가 좋다. 사진보다 섬세할 정도로 잘 그리는 중급반 동호인들을 볼 때면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가로, 세로줄 긋기를 통해 감각을 익히고 H, 2H, 3H ... 6H, B, 2B, 3B ... 6B 연필을 사용해서 명암을 조절한다. 원기둥 그리기와 머그컵 그리기까지 끝내고 나니 슬슬 재미가 붙으며 오그라들었던 어깨가 펴진다. 시간이 날 때면 주방과 거실에 있는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본 스케치를 한다. 길을 가다가 야생화를 보면 정성 들여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고 하나씩 불러내서 스케치북에 그려본다. 나 스스로 ‘자뻑’하며 만족하는 그림이 나왔을 때의 기쁨은 글 쓰는 맛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오늘은 머그컵과 친해지는 날이다. 머그컵을 좌우대칭 정확히 파악한 후 비율에 맞게 스케치하고 짙은 색에서 중간색, 흐린 색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스케치를 채워나간다. 가로세로 명암을 넣으며 마지막 완성에 다다를 때는 숨소리도 죽여가며 몰입하게 된다. 머릿속을 하얗게 도화지처럼 비우고 오로지 스케치하는 사물만 생각하며 그린다. 하늘에 뜬 흰 구름처럼 평화로운 마음 상태에서 집중 몰입할 때의 순간이 좋다. 신문이나 책을 보다가 살림을 하다가 여유가 날 때 차 한잔하며 사각의 백지를 마주하는 순간은 한여름에 순백의 눈 위를 걷는 것처럼 청량하고 순수해지고 차분해지는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첫사랑을 떠올릴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그림을 잘 그려보겠다는 욕심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두운 부분은 더욱 진하게 하나의 빈틈이라도 있을까 봐 여백을 꽉꽉 채우게 된다. 기초 작업인 구성이 잘못됐을 때는 미련 없이 싹 지우고 다시 그려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내가 그린 게 최고인 것 같고 틀림없어 보여서 한번 그린 건 쉽게 지우지 않게 된다. 안쪽부터 채워나가다 보면 기본 구성이 잘못되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연필로 밀도 있게 채워나가는 것보다 잘못 그린 부분을 지우개로 제대로 지우는 것이 최고의 소묘라는 걸 스케치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어디 스케치 뿐이랴. 우리의 삶도 자꾸 비워야 새것을 받아들이고 머릿속도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면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버려야 새것을 받아들일 공간이 커지는 법 아니던가. 스케치하는 시간은 힐링과 치유의 시간이 된다. 기분이 불쾌하고 속상하고 슬펐던 감정이 스케치하는 동안 상처가 아물 듯 기분이 좋아진다. 급하고 덜렁거리는 조급함이 산사(山寺)에서 참선을 하듯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 스케치하면서 그림을 완성

  • 관리자
  • 2023-11-15
눈 오는 날의 기호

눈 오는 날의 기호 류미월 간밤에 바른 자세로 잠을 못 자고 뒤척인 탓인지 아침에 눈을 뜨자 등 쪽이 불편하다. 이럴 때면 인근에 있는 의료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건강 카페에 가곤 한다. 따뜻한 자리에 누워서 척추 라인을 온열로 집중 관리받고 나면 통증이 줄어들고 온몸이 개운해진다. 체험 비용은 차 한 잔을 주문하면 된다. 체험을 마치고 넓은 창가 탁자에서 차 한잔하는데 정월의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달리는 자동차 위에도 애완견을 데리고 가는 여인의 어깨 위에도 꿈꾸는 푸드트럭 위에도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펄펄 내리는 눈송이가 갓 구운 고소한 빵 내음을 흩뿌리고, 한쪽 하늘에선 깃털 같은 함박눈이 춤추듯 내려와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비릿한 슬픔을 뿌리고 간다. 어느 정도 함박눈이 퍼붓고 난 하늘이 맑아졌다. 하늘도 먹먹한 제 무게를 감당 못 할 때는 펑펑 소리 내 울듯 함박눈이 되어 내리는가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마시는데 묵은지 같은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친구도 눈 오는 날 친구가 그리웠나 보다. 느닷없이 먼 옛날 함박눈이 내리던 날 퇴근 후 명동거리를 빙빙 배회하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20대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친구와 명동 골목 식당에서 낙지 덮밥을 먹으며 사는 게 매운 건지 음식에 고춧가루 때문인지 눈물 반 콧물 반을 흘리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고달픈 삶을 서로 토닥이며. LP 판을 틀어주는 음악다방 구석진 자리에서 신청 곡을 메모지에 적어 DJ 박스에 건네곤 그 곡이 나오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감격하며 듣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추억에 빠졌다가 의료기 체험 카페 문을 밀고 나서려는 순간 손을 힐끗 봤다. 거칠고 주름진 손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거리를 걸었다. 눈은 먼 곳에서부터 수직으로 오다 사선으로 흩날리다 소리 없이 내린다. 가로수와 고층 빌딩과 벤치와 로드킬 당한 생쥐 몸 위에 소복소복 말없이 이불을 덮어주듯 내린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웠던 사람의 얼굴도 불현듯 스쳐 간다. 눈은 묘한 마력이 있다. 눈은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멍하게 ‘눈 멍’을 때리고 정지된 화면처럼 있으면 머리를 옥죄던 근심 걱정이 지우개로 쓱쓱 지운 듯 잠시 사라진다. 요즘 들어 집안 살림살이에서도 잘 안 쓰는 그릇이나 옷과 책 그리고 자잘한 살림살이를 큰맘 먹고 버리고 있다. 버리고 나니 공간이 넓어지고 마음마저 뻥 뚫린 듯 시원해진다. 주방을 드나들 때면 그릇장에 남겨진 그릇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집은 좁다고 투덜대며 넓혀갈 생각만 할 일이 아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처분하고 나서 집이 몇 평은 넓어진 느낌이다. 중년에 접어든 삶은 무조건 더하기만 고집할 일이 아니다. 때로는 빼기를 잘해야 편안한 삶이 된다는 걸 공감하고 있다. 되지 않을 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에너지가 방전되고 화가 깊어져서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된다. 요즘 들어 아니다 싶은 것들은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건이

  • 관리자
  • 2023-11-15
「상처가 주는 울림」외 1편

상처가 주는 울림 공화순 페북을 끊은 지 서너 달이 지났다. 가끔 궁금하고 친구요청 알림이 뜨면 어쩌다 휙 눈팅을 하게 된다. 그러다 낯익은 사람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왜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를 쉬이 털어버리지 못할까? 아니, 상처는 왜 쉬이 아물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어릴 적 실수로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일곱 살 즈음의 일이다. 안마당에 무를 담아놓은 고무 대야가 하필 어린 계집아이 눈에 띄었다. 대야 안에 가득한 무와 함께 커다란 부엌칼도 눈에 확 들어온 건 비극의 서막이었다. 고무 대야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손으로 커다란 칼을 집어 들었다. 무를 잘라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무를 힘껏 내리쳤지만, 힘에 부쳤다. 칼은 무에 박혔고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있는 힘을 다해 칼을 뽑았을 땐 순식간에 칼끝이 정강이를 깊이 도려내고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눈 깜짝할 새 정강이 살점이 파이고 하얀 뼈가 보였다. 순간 놀란 가슴보다 정강이가 더 놀란 듯, 피도 나오지 않고 시간이 딱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명도 눈물도 없었다. 뒤미처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광목천을 두르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얼마 후, 들에서 돌아온 엄마는 다리를 처맨 것을 보셨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놀이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상처는 아직도 깊숙한 자리로 남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상기시키곤 하는데 상처를 치료했던 기억이 없다. 병원놀이가 며칠째 계속되자, 엄마가 벗겨봤지만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뒤였다고 한다. 상처를 제때 치료했다면 흉터가 가볍게 남진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도 해봤다. 정강이의 깊은 상처는 사춘기 시절 내내 치마 입는 것조차 신경이 쓰이게 했다. 크도록 짧은 치마를 입는 데 불편을 겪었다. 치마를 입을 때마다 스타킹은 필수요건이 돼버리고 겨울엔 두꺼운 스타킹과 부츠를 신으니 차라리 편했다. 페북의 그도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넘어져 앞니 두 개를 잃고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그 상처에 붙들려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상처 한두 개쯤 지니고 살기 십상이다. 누군가는 쉬이 상처를 아물리고 다독이며 잘 살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정강이 상처를 의식하고 살아온 나는 처음으로 내 상처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50년을 넘게 내 몸에 지녀온 상처인데 한 번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몇 년 전, 잡지에서 배에 있는 수술 흉터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찍은 모델 사진을 보았다.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서 상처는 꽤 도드라졌다. 그것이 내게 신선한 도발이었다. 부조화에서 온 변화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 너무 지루한 고요 속에 쨍하고 금을 긋는 울림 같았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시내에서 꽤 알아주는 의상실에서 교복을 맞춰 입었다. 학생들 무리에서 몸에 곡선을 매끈하게 빼준 교복 덕에 선배들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다행인지 남들보다 치마 길이가 길게 맞춰져서 정강이 절반 아래로 날씬한 다리만 보이고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어쩌다 내 정강이 상처를 발견하면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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