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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꿈의 변증법

  • 작성일 2023-03-24
  • 조회수 1,03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나와 꿈의 변증법

『꿈꿀 권리』-가스통 바슐라르

남상숙


천변 가장자리에는 노랑 수련이 다보록하게 떠 있다. 작고 깔밋한 꽃송이가 은하처럼 촘촘하고 물결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걸음마 배운 아기처럼 대견하다. 종일 물에 발 담그고 있으니 아무리 더워도 땀 닦을 일 없겠네. 수련이 말귀 알아들었는지 웃음소리 자지러진다. 물살도 그렇다며 박장대소하자, 뜻밖의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청둥오리 발길 멈추고 박수 치듯 날갯짓한다. 먼 길 달려온 바람이 저만 따돌린 줄 알고 더운 바람 한 소쿠리 쏟아 놓고 달아나는 여름날, 물속 나무 그림자는 묵언수행 중이다.

수련(睡蓮)은 잠자는 연이라는 뜻으로 물 수(水)가 아니고 잠잘 수(睡)를 쓴다. 짙푸르러지는 연못에 화사하게 피었다가 우리가 눈 감고 잠을 자듯, 해가 지면 꽃잎을 꼭 오므리고 잠을 잔다. 발아래 흙탕물이 진을 쳐도 낯빛은 청순하고, 씨앗은 물속에서 맺었다가 발아한다. 또렷한 생김새와 분명한 빛깔로 여름 연못을 수놓는 수련은 불필요한 것 깔끔하게 정리하여 소유물 최소화한 사람의 성정 같다. 수련의 자태처럼 주변은 물론 삶도 바르고 단정하게 이룩할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꿈꿀 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 풍경을 보고 다양한 사유를 도출했다. 햇빛에 따라 색채가 변하는 대상을 포착해서 그리는 기법에 환호했다.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데도 냇물 전체가 술렁인다며 한평생 캔버스에 꽃을 피워낸 화가를 관심과 애정으로 기꺼워했다.

“아침의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다. 생생한 빛의 만화경에 응답하기 위해서 카멜레온 같은 강은 얼마나 많은 생명력을 지니는가. 출렁거리는 물의 생명력으로 꽃은 새로워진다. (…) 모네의 그림 앞에서 몽상하는 철학자는 붓꽃과 수련의 변증법, 똑바로 뻗은 잎사귀와 조심스럽게 물에 떠 있는 잎사귀의 변증법을 전개할 수 있다.”

빛과 물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연못을 꾸미고 정원사를 불러 물의 수급과 꽃 상태를 관리했다. 연못 한쪽에는 비슷한 색상의 수련을, 다른 쪽에는 보색 계열의 수련을 심고 완상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흐르는 물의 변화와 수련 모습을 응시하면서 새벽과 아침, 점심과 저녁, 시차에 따라 달라지는 꽃 색깔을 감지했다. 구도는 같아도 아침나절 청록빛과 저녁의 노을빛 풍광은 전혀 다른 풍경화를 연출했다. 변화무쌍한 연못을 특유의 활달한 터치로 묘사하면서 연못 연작을 그렸다. 가랑비 내리는 청록빛 연못이 시침 떼듯 고요하고, 흰색과 진보라색의 조화는 은근하면서 역동적이다.

모네가 살았던 프랑스 센강 하류에 있는 지베르니 연못도, 그림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누가 도와준 듯 과천 현대국립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열렸다. 그곳에서 아침 안개에 노란 수련이 별처럼 떠 있는 〈수련이 있는 연못〉을 보았다. 몽환적인 안개가 걷히면 여름날의 연못이 생동감으로 출렁일 것이다. 화집만 보다가 원화를 보면 가슴 밑바닥에서 흐르는 원초적 싱그러움에 놀란다. 시각에서 정신으로 전이되는 색채의 변화는 사물을 보는 눈을 확장하고 인식의 틀도 격상시킨다.

나는 나무 그늘에 앉아 수련이 떠 있는 냇물 풍경을 즐긴다. 그러다가 수고하지 않고 즐기는 자연이 미안해서 차경(借景)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조선 선비들의 넉넉한 자세를 생각한다. 빌린다는 말이 사람에게만 쓰는 한정 어휘가 아니라는 듯 자연으로까지 확대한 옛 분들의 사유 세계가 놀랍다. 눈맛 시원한 산야를 바라보며, 군신의 도리와 부모에 대한 효도, 친구 간의 신의와 호연지기를 길렀을 터이므로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연못이 수련만을 키우지 않고 수초와 온갖 생물을 깔축없이 키웠듯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도 풍경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슐라르가 모네의 연못 그림을 보고 붓꽃과 수련, 수초의 변증법을 생각하였듯이 이곳을 바라보는 나도 싱그러운 시상이나 기발한 사상을 떠올려야 보람이겠으나 흐르는 물에 맡겨 두기로 한다. 수련을 바라보며 바슐라르를 생각하고, 의식이 깨어 있으면 세상천지 다다르지 못할 정신도 없다고 생각한 것은 소득일 테니 이를 자발성의 명상이라 하자.

무엇이 잠자는 무지몽매를 흔들어 깨워서 사고를 전환시킬 것인가. 스러지는 아침이슬처럼 짧은 것이 인생이라고 일깨워주던 손길이 있었으나 동분서주가 눈과 귀를 가려 푸른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그렇더라도 쓰지 않은 지폐처럼 빳빳한 내일이 있으니 남아 있는 날들의 질감은 금싸라기와 같을 것이다.

‘꿈꿀 권리’라 했다. 권리라는 말도 눈부시고 황송한데 꿈에 화관까지 둘렀으니 백일몽이라도 꾸어 볼 일이다. 이 말은 오늘의 시혜일 터이므로 나와 꿈의 변증법이라면 말이 될까. 갑자기 누가 부르는 듯 바빠지는 마음 누르며 변증법에 골몰한다.

작가소개 / 남상숙

1988년 <시와 의식> 수필 신인상 당선. 작품집 <아름다움은 필경 선과 통한다> <남빛 사유> <빛나는 수고>가 있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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