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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산다.

  • 작성일 2023-10-20
  • 조회수 443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산다.

장희자


   한파주의보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집안일을 끝내고 나서 커피잔을 들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이태원 참사자들 49재 행사와 시위하는 모습이 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모두의 사연에 한 번 덴 가슴은 냉수를 벌컥벌컥 마셔도 가라앉지 않았다. 파문은 물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도 자식을 가슴에 묻은 사람은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에 파문이 일어 숨이 턱 막힌다. 

   벚꽃이 지천인 날,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믿을 수 없었다. 조심성이 많은 애인데 차와 부딪다니. 관세음보살님 제 목숨과 바꾸어 주십시오. 응급실 바닥에서 쓰러질 때까지 절을 하였다. 벌떡 일어날 것 같았고,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며 들어설 것 같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땅이 빙빙 돌고, 삼킨 물이 도로 올라왔다. 아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냥 두 다리 뻗은 채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삶의 끈을 놓아 버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친지들은 딸의 물건을 없애라 하지만, 딸과의 인연이 끊어질 것 같아, 차마 없애지 못하고 딸의 체취가 느껴질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딸바보라던 남편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허기지면 제 새끼도 잡아먹는 냉정한 동물의 세계가 생각나 소름이 끼쳤다. 아무렇지도 않게, 꾸역꾸역 밥 먹고 시간 맞추어 출근하는 모습이 미워 일부러 딸과의 추억을 들춰내며 상처를 주었다.

   어느 날, 자정이 지났을 무렵, 초인종이 울려 뛰어나갔더니 경찰관이 만취한 남편을 부축하고 대문 앞에 서 있었다. 경찰 말로는 봉의산에서 괴성이 들린다는 신고가 들어와 가보니 과장님이 쓰러져 계셔 집으로 모시고 왔노라 하였다. 목이 쉬어 말을 못 하는데 눈물 콧물이 묻어 흙강아지가 된 얼굴, 손에는 딸이 좋아하던 으깨진 딸기가 들려 있었다. 

   깊은 숨을 토하며 곯아떨어진 얼굴에는 몇 달 새 주름이 깊게 파이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가족 앞에서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남편. 얼마나 울었으면 잠결에도 어깨를 들썩이며 훅! 숨을 몰아쉴까. 

   밤이 깊어 가는데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생각해 낸 것이 창고에 담아 둔 과실주였다. 눈물을 흘리며 과실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데 “엄마, 죽은 자식만 자식이야, 엄마한테는 아들도 있고 딸도 있어, 내가 죽은 정미 몫까지 다 할게. 이렇게 울고 있으면 하늘에 있는 정미가 슬퍼해. 우리 더 열심히 살자.” 큰딸이 울며 매달렸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 가슴에 못질하고 엄마보다 먼저 가버린 못된 딸이라고 가슴 깊이 밀어 넣었지만, 가끔 냉수를 마셔야 속이 뚫린다.


   이태원 사고로 가슴속에 불덩이를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 연민이 간다. 이태원은 유명 클럽과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길목이라 외국인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다 대형 사고가 났다. 이번 사고로 사망자 159명, 부상자가 151명이다. 3년 만에 실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해방감과 주말까지 겹쳐 좁은 골목에 많은 사람이 몰려 압사당한 사고다. 

   엄마와 손잡고 나선 16살의 중학생부터 40대까지 젊은 연령층이지만 대부분 20~ 30대다. 3대 독자, 12년 지기 친구를 잃었고, 딸과 아내, 처형을 한꺼번에 잃고 졸도했다는 가장, 대기업 입사통지서를 받은 장한 아들, 다섯 명의 친구가 나섰다가 세 명이 사고를 당했는데 옆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친구를 보고도 옴짝달싹 못 해 바라보고 있었다며 눈물을 쏟는다.

   잠시 즐기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영원히 가버렸으니 이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나! 어미 배 속에서 함께 먹고 숨 쉬면서 열 달을 품었고 이십 년 넘게 사랑으로 키운 자식인데. 평생 품고 갈 못이 가슴에 박히는 순간이다. 

   옆집 할머니는 노인들이 죽고 젊은 애들이 살아야 하는데 너무 오래 살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셨다. 세계 10위란 경제 대국에서 일어난 사고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가족이 주검으로 돌아왔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랐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슬플까? 나라와 국민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시대 따라 놀이문화가 바뀌고 있다. 단오에 그네를 뛰고 씨름하며 놀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꽝꽝 울리는 시내를 친구들과 쏘다녔다. 어른들은 남의 생일에 너희가 왜 난리냐, 하셨다. 

   핼러윈 축제는 2010년부터 영어 유치원, 키즈카페, 캠프장에서 영업을 목적으로 어린이가 있는 집 가족을 모아 시작하였다. 종교적 축제가 한국에 들어와서 청춘들이 열기를 분출하는 축제로 변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가 핼러윈 행사로 얼굴에는 호랑이 무늬 페인팅을 하고 이상한 옷차림을 한 사진을 보내왔다. 즐거워하는 손녀를 보니 외국에서 들어온 정체불명의 축제라고 못마땅하던 마음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내 자식에게는 해주지 못한 일이 많아 두고두고 후회되는데 사진을 남겨준 유치원 교사가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출, 퇴근마다 떠밀려 한 발짝씩 안으로 들어가는 버스 안, 키가 작은 사람은 중간에 끼어 숨쉬기조차 버거운 지하철 안, 지하철 계단을 떠밀려 오르니 과밀에 익숙해져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 할 수 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사고의 정확한 진단이 먼저다. 경찰의 대처가 미흡했다 하고, 이태원역 1번 창구를 폐쇄하지 않았다 하고,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해 사고가 일어났다 하는가 하면 외국 방문 중인 대통령 전용기가 떨어지라 비는 사람까지 인간의 도리를 잊고 남의 탓이 넘쳤다. 대통령의 사과 담화와 7일 동안 애도 기간으로 관공서 직원은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가능한 한 축제는 자제하였다.

   비난이나 분노보다 깊은 애도가 필요하다. 꽃이 활짝 피기도 전에 떨어진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방송을 볼 때마다 눈물이 흐르고 허둥댄다. 일상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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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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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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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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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박정옥

    q불덩이를 안고 사는 작가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알것 같아서 코끝이 찡했습니다.

    • 2023-10-20 10:31:40
    박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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