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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들

  • 작성일 2022-10-07
  • 조회수 1,330

마부들
부제: 버려진 죽음들


황은화







등장인물


김척 (척)
오형탁 (탁)
조민국 (꾹)
어떤 남자
화난 사람들
환영들




작품 배경


노인들의 고독사를 처리하는 민간업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황금마차’란 이름을 가진 회사이다. 대표는 김척. 황금마차는 누군가의 고독사 뒤처리를 담당하고 지자체로부터 비용을 받는다.


김척이 황금마차를 설립한 후 곧바로 건설 현장에서 만난 오형탁을 일에 끌어들인다. 그리고 두 달 후 후배 조민국까지 데려온다. 오형탁은 10년 이상 시체를 닦는 일을 했던 인물이지만 시체 일이 지겹고 지쳐 노후 귀농을 생각하며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김척의 수완에 넘어가 회사의 멤버가 된다. 반면, 조민국은 김척의 고향 후배로, 이사업체에서 일하다가 폭력 사건으로 2년 징역을 살고 나와 허송세월하던 중 김척의 부름을 받는다.
김척은 부동산 업자로 한때 승승장구했지만 주식 투자 실패로 이혼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보내다가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무대


두 개의 공간 교차.
무연고자들이 죽은 공간과 황금마차의 사무실이 교차하는 구조.




1막


1-1
빛이 없는 방


영세민 아파트 (404호 내부). 낮.
밤이 아니지만 내부는 동굴처럼 어둡다.


망자의 소리죽음아~ 죽음아~.


망자의 음성이 어둠 저편에서 들려온다. 낮고 작은 음성이라 관객들이 알아듣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고요 속에 울림.


잠시 후,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우주복 차림(점프 수트)을 한 남자 세 명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마치 우주를 탐사하는 우주비행사와 같은 움직임이다. 세 명은 헤드랜턴을 켜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두 명은 주변에 소독제를 뿌리면서 이동, 나머지 한 명은 잔뜩 긴장해 움직임이 어색하다.


조민국(꾹)낮인데 왜케 어두워! 불 좀 켜 봐요. 불! 쫌!


오형탁(탁)조용!


김척(척)확 그냥 막 그냥! 얌마! 안 켜진다. 이거 뭐 전기도 끊긴 거였네. 가지가지!


뭔 냄새야?!! (역한 냄새를 맡고 헛구역질을 하며) 대체 이게 뭐예요?


저놈 저거 확 그냥~ 가만히 있어 봐. 여기가 죽었던 자리네.


상태 보니 석 달도 넘은 거 같다.


석 달? 오마이 니미럴 갓!


척형~~ (바닥에 깔린 구더기를 보며) 난 못하겠어.


야! 꾹! 일단 꾹! 꾹 참아 봐!


씨발, 이건 아닌 거 같아! 본능적으로 나랑 안 맞아. 나 갈게!


막 그냥, 확 그냥~


딴 사람 찾아. 나 이거 빼곤 몽땅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 확신이 좆나 들어.
(속이 다시 울렁거린다) 웩~


조용!


(검지를 입술에 대며) 쉿! 일동 조용! 일단 집 전첼 다 둘러보고 바로 작업 들어 가자! 니미 오늘 지대로 걸렸네.


척형, 제발 불 좀 켜줘 봐! 원래 이 일이 이래? 불 쫌~


반장. 쟤 보내. 부정 탄다.


이미 탄 거 같긴 한데요. (얼굴 도리도리 흔들며) 아니지. 셋이 좋아요. (강조하는 말투) 셋이 무조건 좋아. 내가 미아공주님한테 물어봤는데 우린 셋이 무조건 좋대. 저 꼴통이 나무, 나무 목, 나무 목이잖아요.


육시랄. 잘 들어 거기! 그만 앵앵거려! 입에다가 구더기 밀어 넣기 전에. 그리고 이 일은 차라리 어두운 게 좋아. 우리한테도, 망자한테도. 알았어?!


대답 없이 앓는 소리를 하는 꾹.


난 일단 화장실부터 가 볼게. 오줌도 좀 싸고! 꾹 너는 일단 가만히 있어 봐! 현장 적응부터 하자고. 전체 와꾸 보고 바로 작업 들어간다. 탁형은 부엌 쪽 부탁해요.


(앓는 소리) 으 어지러. 엄마아~~


(어깨에 손 얹으며) 얌마, 다 그래~ 나도 그랬어. 일단 가만히 여기 꾸~욱~ 있어. 알았지.


죽겄네. 죽겄어.


척과 탁 두 사람 사라진다.
혼자 남겨진 꾹.


낙장불입. 낙장불입. 영 들은 거와는 딴판이네. 죽겄네. 진짜아~ (가져온 집게로 물건들을 들어 본다) 이, 이, 이건 뭐야? 드러~ (팬티를 한쪽 구석으로 휙 던져버린다)


바닥에 있는 물건 중 사진을 발견, 집게로 집어 올리지는 않고 신발로 움직여 대충 확인한다.


아들인가 보네. (갑자기 비명) 으악! 으아악!! 죽어라 죽어! 죽어버려라! (발로 바닥을 짓이긴다)


척이 놀라 뛰어온다.


뭐야? 왜?


바퀴 (다시 한번 꾸욱 바닥을 밟는다) 이 악령아! 이 악령 벌레새끼야!


진짜 너를 그냥, 확!


형, 나 갑니다. 진짜 수고하세요.


(화를 내려다가 참고 억지로 웃으며)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 거야. 얌마, 난 말이야, 첫날 오줌 지렸다.


형, 진짜 내 손에 오늘 뒤질 수도 있어. 지금 나, 막 헤드에, 헤드에 막 충동 오거든.


잘하고 있어. 첨엔 다 그래. 차에 좀 다녀올게. 연장 더 필요하겠다. 여기 베란다에서 뭐 좀 챙겨갈 것도 있고 (윙크하며) 걍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뭐 하려고 하지 마! 가만히~ 알았지~ 가만히~


같이 가~


있어. 딱 있어. 이 공기를 느끼라고! (웃으며) 무섭냐?


역해.


일단 기다려!


척, 다시 사라진다.
다시 혼자가 된 꾹.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추스른 꾹은 주변을 조심조심 살펴본다. 헤드랜턴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무대 한편 끝에서 노인(유령)이 나타난다. 꾹을 향해 낮은 음성으로 말을 한다. 꾹은 처음엔 그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주변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다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한다.


환영가여운 것~ 가엾고 서글픈 것~


꾹,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등 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몸이 굳어버린다. 감히 돌아보지 못하고 귀를 막는다.


형, 아직 안 왔어? 안 왔냐구??!!!


환영, 꾹 뒤를 조심스레 돌아온다. 꾹, 유령의 존재를 확인한다.


(비명) 아~~ (사이) 난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전 그쪽 볼 일 없어. 없다구. 잘못 한 것도 없고, 옴마아~


유령이 꾹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다. 꾹, 유령과 눈이 마주치자 바닥에 주저앉아버리고 만다.


제게 왜 이러세요? 제발요, 제발~


환영314. 314, 314…….


잘못했습니다. 진짜 잘못했습니다.


꾹, 유령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사죄를 한다. 그러다가 유령이 더 가깝게 다가오자 놀라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구더기 위로 넘어진다. 구더기 위에서 몸부림치다가 (전기에 감전된 듯) 기절한다. 유령은 꾹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음악 흐른다.
암전.




1-2
사람의 일


황금마차 사무실.
기절해 있다 눈을 뜨는 꾹. 악몽을 꾼 듯 멍하다.
두부김치에 소주를 마시는 척과 탁. (탁은 술을 마시면서 연장들을 닦거나 광을 내며 정비를 한다) 깨어난 꾹에게 술자리로 오라고 손짓한다. 꾹은 좀비처럼 두 사람 옆에 앉는다. 척이 술을 따라주지만 마시지 않고 술잔을 바라보고만 있다.
척은 술이 급한지 저 혼자 연거푸 두 잔을 원샷한다.


캬아~ 시원타. 너도 해라! 먹고 정신 차려라! 야, 야, 내가 누구랑 얘기하니? 얌마, 괜찮냐?


(힘없는 말투) 아니. 절대적으로 안 좋은 거 같아. 이건 사람의 일이 아니야.


사람의 일이 아니면?


좆나 역겨운 일.


(얼굴을 진지하게 쳐다보다가 웃음이 터진다) 이 새끼, 형님 이놈 말하는 본새 좀 보세요.


됐다.


이거, 이거 감방도 갔다 온 새끼가. 이거 (웃으며) 얌마, 일단 치웠으면 된 거야. (술잔 기울인 후, 탁에게 시선을 돌리며) 형님, 일이 힘들어서 비용 더 청구할까 고민 중입니다. 부패가 와아~ 이건 뭐. 탁형도 힘드셨죠?


우리 일이 그렇지 뭐. 근데 공무원 새끼들 돈 더 안 준다. 그놈들이 우리 사정 봐줄 거 같아.


긍가? 그래도 이번 거는 정도가 있지. 청구는 해 볼려고요. 아냐 아냐~ 최 주임은 나랑 좀 잘 맞는 거 같아. 신경 써줄 거 같아. 암~


반장아,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긍가?!!


저 유령 봤어요.


(말 무시하며) 힘들었던 건 (눈짓으로 꾹 가리키며) 저기, 저 물건이지.


(술잔 부딪치며)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 사람, 술을 들이켠다.


(돈 봉투 건네며) 저 여기, 다섯 장 더 넣었어요.


탁, 봉투에 돈 세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는다.


세 보지 않으세요?


잡으면 알아.


역시!


저 유령 봤다고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확 그냥, 막 그냥. 아오~ 그래, 자주 그래. 헛게 보이고 막 그러지. 나는 벌건 대낮에도 유령 봐. 요기 편의점 옆 골목 있지. 거기서 딱! 낮에도 딱! 알았냐!!!


진짜라고요. 진짜~ 벽에서 나왔는지 스윽, 옆으로 스윽…….


유령 맞을 거다. 망자의 공간이니까. 오히려 우리가 침입자잖아.


맞단다. 야! (웃음) 암튼 다음엔 기절하면 죽는다. 죽을 것도 없지 그냥 거기 두고 올거다. 치우는 일도 힘들어 죽겠는데 너까지 업고 오는 데 와아~ 환장, 허리 다 나가는 줄 알았다.


저는 오늘까지만 하겠습니다.


진짜? 도저히 못 하겠어?


죽어도. (술 원샷하며) 다른 거 알아볼게요. 그동안 넘 안일하게 살았나 봐요. 정신이 번쩍 나요. 일 준 건 고마운데 전 적성이 안 맞아요.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살려고요.


아이고, 득도하셨네. 득도하셨어.


반장아, 억지로 시키지 마라. 괜한 사람 잡지 말고! (손짓하며)


알았다. (봉투 건네며) 자, 기절해주신 비용이다. 삼십. 아따 계산은 냉정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1도 없는데, 너니까 그냥 쳐준다. 너 요즘 힘든 거 아니까! 용돈이라 생각해라. 원래는 오십 줄려고 했어.


(돈 센다) 감사해요.


한잔해라! 그리고 이 일은 소문내지 마. 소문나면 파리 꼬이거든.


네.


고 주둥이를 믿을 수가 없긴 한데…….


생각도 하기 싫어요. 트라우마예요.


트라우마?! (짧은 웃음) 잡설 그만하고 함부로 주둥이 놀리고 다니면 확 그냥, 막 그냥, 어, 진짜 국물도 없어!


네.


(술 한 잔 마시고 화제를 돌린다) 탁형, 근데 그 사람 자식이 하나 있었나 봐요.


아들.


편지를 많이 썼더라고요. 글발이 뭐…… 작가가 따로 없더라고요. 그런데 부치지를 않고 그냥 쓰기만 했던데. 얼마 전까지도.


아들이 캐나다에 있어.


캐나다요? 그것까지 아셨어요?


(사진을 몇 장 건네며) 유학 가서 돌아오지 않고 쭉 살았나 봐. 캐나다년인지, 미국년인지 결혼했고 애도 둘이 있어. 켈리, 아니타.


오~ 언제 또 챙기셨대. 부지런도 하셔.


척, 사진을 유심히 본다.


아들놈 인물이 별로네. 키도 작고 병약해 보이기도 하고, 거기에 비해선 이 할아방 인물도 좋고 풍채도 좋아.


인생이 별거 없지. 사진 몇 장만 봐도 인생이 다 보인다. 별로 다를 게 없어. 사진이 증거지.


근데 형님,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왜 사진 모으세요? 찝찝하지 않으세요? 죽은 사람 사진 난 쫌 그런데…… 뭐 유별날 것도 없고.


맞아. 유별날 게 없어. 그래서 모으는 거야. 이 사람 그냥 평범한 회사원으로 평생 산 사람이다. 전혀 별난 거 없어.


엄청 검소하더라고요. 취미도 없는 거 같고. (사진 탁에게 다시 건넨다)


취미다, 취미. 내 취미가 사진 모으는 거다. 어렸을 때 우표 모으는 거 취미였는데 이제는 사진 모으기가 취미다. 재수 옴 붙는 것도 아니고 (사진을 보며)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아련해 보여서 버리기가 아깝더라고. 시체가 있던 자리를 치운 뒤에 사진을 보면 연민이 생겨. 이렇게 죽으려고 산 인생이 아니잖아.


로맨티스트야 로맨티스트. 죽은 사람이 아니라 형이 별나네.


그래, 내가 별나지. 내 인생이 조금 별나지.


근데요, 형님들! 왜 무연고라고 했죠? 왜 구청에서는 몰랐을까요? 연고자 없는 죽음이라고 의뢰한 거잖아요. 지금이라도 캐나다에 있는 아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나요?


(사진 보며) 우리 말고 그런 데를 누가 유심히 볼 거 같냐. 대충 하는 거지. 육시랄 공무원놈들!


답답아, 알리면 올 거 같아?


당연히 오겠죠. 가족인데!


그 노인이 편지를 쓰고 왜 보내질 않았겠어? 아들은 한국 떠나고 다시는 오질 않았어. 아들의 흔적이 전혀 없거든.


형님 완죤 탐정이시네.


그래도 가족인데…….


그래도 가족인데? 그래도 가족이라고!! (허탈하게 웃는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 그래도 가족이라면 말이야. 우리가 거기 갈 일이 있을까 없을까. (술 한 잔 따라 다시 마신다) 화상아, 절대 없지.


가족이 더해. 가족이 더 잔인해.


답답하다 너도. 감방도 갔다 온 놈이.


감방 얘기 그만해. 헤드에 또 막 오려고 하니까.


야. 거기 면회 간 사람 몇 명이나 되냐? 나 말고 또 누가 갔어?


됐어요. (사이) 그건 고맙게 생각해요. 고맙게 생각한다고.


그 자식놈 안 와. 연락받아도 절대 안 와. 그리고 우리가 그런 거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지. 우린 우리 할 일 하고 빨리 입금되면 장땡! 괜히 연고자 있다 해 봤자 일만 복잡하다. 석 달 방치된 시체라면 답은 딱인 거야. ALL ALONE, ALL ALONE, 인생 올 얼론이다.


(혼자 술 따라 마신다) 참 더럽네…….


알겠냐?


(고개 끄덕인다) 더러워.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더럽긴 니가 더 드럽다. 그렇게 토하고 또 버릴 게 있냐?


화장실 어디예요?


도망가는 거 아니지? 저기 벽에 열쇠 걸려 있다. 저거 가지고 계단 올라가면 나와. 올때 복도에서 소주 한 병 가져와. 손 닦고.


(귀에 대고) 네.


꾹이 화장실 간다. 두 사람, 술과 안주 먹는다.


줄 거 있다.


뭐요?


(가방에서 금두꺼비 꺼내준다) 어때?


와아~ 이쁜데요. 자태하며 귀엽기도 하고. 진짜 이쁘네요.


장롱 속에서 찾았다. 깊은 곳에 있더라.


이뻐요. 이뻐서 침이 나오네요.


밝히기는…… 그렇게 불행한 노인은 아닌 거 같네. 금두꺼비도 있고.


그러게요. 그런데 왜 저에게?


너 원래 이런 거 챙기잖아.


아셨어요?


왼손 들어 봐.


척이 손을 들자 손목시계가 손목에서 흘러내린다.


모를 거 같아.


죄송해요.


나 속이지는 마라. 난 일한 만큼 벌면 돼. 니가 반장이니까 콩고물은 알아서 챙겨. 상관 안 해.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 숙여 인사하며) 감사합니다. 형님! 역시 내가 형님 때문에 산다. 이 시계 드릴게요. 내가 원래 형님 드리려고 챙겨둔 건데, 이런 거 싫어하실까 봐.


(단호하게) 됐어. 시계는 더 싫어. 시간은 출근 시간, 퇴근 시간만 알면 되지. 근데 반장, 속이진 말아라! 챙길 때 뭐 챙겼는지 말만 해. 나 속이면 바로 끝이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금두꺼비를 바라보며) 이건 팔지 말고 우리 황금마차 컴퍼니의 상징으로 삼아야겠어요.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죠. 행운의 상징으로다가~


마음대로 해라.


탁, 술잔을 기울인다.
척, 두꺼비를 쓰다듬는다.


형님도 쓰다듬어 보세요. 자~


유난은…….


해 보세요! 나쁠 거 없잖아요. 귀여운 두꺼비, 두꺼비님.


탁도 마지못해 두꺼비를 쓰다듬는다.


으메 귀여워라!


꾹의 인기척이 들리자 척은 금두꺼비를 숨긴다.
꾹이 소주병을 가지고 돌아온다.


가서 귀신 안 봤냐?


됐어요.


있었을 텐데.


됐습니다. 저는 이만 갈게요.


그래 들어가라. 그럼 너, 앞으로 뭐 할 건데? 이 고수익 산업을 마다하고 뭐 할 거야? 설마 또 빠칭코에서 죽칠 생각이면 돈 다시 뱉어내고 가라!


걱정 마세요. 그럴 일 없어요.


그래서 뭐 할 건데?


사람이 할 만한 일요. 이렇게 더럽고 역겨운 일 말고 깨끗한 일, 좆나 깨끗한 일 찾을거예요.


니미.


육시랄!


척과 탁이 꾹을 노려본다.

암전.
경쾌한 음악 흐른다.




1-3
국가유공자의 집


낡은 연립주택 안.
성냥불을 켜자 꾹의 얼굴이 보인다. 성냥불로 향에 불을 붙여 꽂아둔다.
두세 군데 향을 꽂아두고 주문을 외우는 세 사람.
이상한 주문을 끝내고 헤드랜턴을 모두 켠다.
작업을 시작한다. 탁은 소독약을 뿌리며 이동한다.


인턴, 인턴, 아까 문패에 뭐라고 써 있었지?


(절도 있게 군인처럼) 예! 국가유공자의 집이라 써 있었습니다.


이 집은 국가유공자의 집이니 정성을 다해라!


예써!


이게 나라냐? 국가유공자가 이런 데 살아? 게다가 연고도 없이 깨꾸닥!!


조용!


국가유공자님이 이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시고 (성호 긋는다) 주여!
이분은 천주교 신자셨네. 절에는 왜 안 다니셨나. 아이고 불쌍하셔라~ 탁형, 이분은 국가를 위해 뭘 하신 걸까요?


시끄럽다.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네요. 딱해서.


성호를 다시 긋는 척.


주여~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신나서 일하는 꾹. 그 모습을 보는 척.


신났네. 신났어.


전 이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딱 제 체질이에요.


확 그냥 막 그냥. 명심해. 당분간은 인턴이야, 인턴!


넵, 싸장님!


너 맛이 갔지? 정상 아니지?


돌았습니다. 싸장님!


잡담 그만하고 일이나 해!


네. 마스터!


꾹, 일하다 옛날 축음기를 발견하고 음악을 틀어 본다.


꺼!


음질도 좋아요. 아직도 축음기가 있네.


꺼!


꺼라 인턴!


넵. 근데 저 이거 가져도 되죠?


아이고, 아이고 그래 가져라 가져!


넵.


꾹은 주변 둘러보다가 스노볼을 들어 올린다. 스노볼을 흔들더니 그 모습을 유심히 본다.


이쁘다. 저 이것도 가질게요!


그래, 그래. 다 가지세요. 이 구더기 곰팡이들도 좀 가질래?


쟤 잘라! 거지 같은 놈! 왜 안 그만두고 자꾸 따라다니는 거야.


그러게요. 후회가 막심입니다. 그때 잘랐어야 했는데. 귀신처럼 들러붙어서 불행히도 이 일의 재미를 알아버렸네요. 그래도 저노마 좀 귀엽지 않나요?


귀여운 거 다 죽었다. 쟨 좀 심한 거 같아. 탐욕이 왜케 심해.


탐욕이라뇨? 섭섭하시게~ 적성 찾은 거 같습니다. 요즈음 이 조도가 완전 맘에 들어요.


뭐 조도? 조또!


조용히 세 사람 일에 열중하기 시작한다.
한쪽 구석에 유령(여자)이 나타난다.
이번에도 꾹이 유령과 눈이 마주친다.


형님들, 형님들! 보이세요? 저기요!


꾹이 말을 건네지만 척과 탁은 꾹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꾹은 계속 말하는데 두 사람은 조용히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마치 투명 인간의 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듯 꾹의 말을 듣지 못한다.


척형, 장난치지 마요! 진짜 유령이야! 또 온다고!


유령이 다가온다.


환영(여)(낮은 음성) 알고 있어? 여보, 여보, 알고 있어?


꾹은 환영을 피하면서 일한다. 환영은 꾹을 향해 같은 말을 반복, 일정한 거리를 두고 꾹을 따른다. 아주 천천히 가까워진다. 꾹은 정신이 없다. 밖으로 나가버린다. 환영은 천천히 그를 따라 이동한다.
그사이, 척과 탁은 잠자리와 주변을 정리한다. 그러다가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보물상자 같아요.


열어 봐!


척, 성호를 긋고 아주 천천히 상자를 연다.
훈장과 젊은 여자의 흑백사진, 진주목걸이, 편지 뭉치가 담겨 있다.


미인이네요.


그래.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진주목걸이도 이 여자랑 관계가 있겠죠?


모르지.


형님, 이 사진 가지셔야겠다. 제가 봐도 이 사진은 딱 의미도 깊어 보이고, 미인이고…… 그럼 진주목걸이는…….


사연이 있어 보이네.


(훈장을 집어 들고) 훈장이 이렇게 있으면 뭐 하노! 알아주지도 않고 이렇게 혼자 뒤져 버리시고,


척이 탁의 가슴에 훈장을 대 본다.


간지난다. 형님!


됐다. 어여 넣어! 부정 탄다.


(훈장을 이번에는 자신의 가슴에 대 보며)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지. 이 나라에서는 국가를 위해 좆나 목숨 걸어도 이 모양 이 꼴이야. 대일본제국과 위대한 양키들을 위해 살아야 만수무강 대대손손 평안한 거지. 이게 집이야? 감옥이지. 눈을 아무리 씻고 찾아봐도 돈 되는 건 하나도 없네. 죄다 골동품들. 건질 건 이 진주목걸이랑 훈장 하나 뿐이네요. 참 쓸쓸하다, 쓸쓸해.


(사진을 다시 상자에 넣으며) 이 사진은 가지면 안 될 거 같다. 여기 상자에 있는 게 맞다.


죽었는데요. 뭐…….


넣어둬!


그럴까요? 이 상자 어떻게 할까요?


두고 가자! 이건 가져갈 물건이 아닌 거 같다. 진주목걸이도 두고 가라! 느낌이 안 좋다.


느낌이 안 좋으세요? (진주목걸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쁜데.


이 일 하다 보면 예감이란 게 있어. 이것들은 두고 가자.


넘 이쁜데…… (사이) 네, 형님! 형님이 그러시면 뭐 두고 가죠.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신다)


기운이 다 빠져서 꾹이 들어온다.
진주목걸이를 급하게 상자에 넣는 척.


저 화상. 뭐 하다 인제 와?


저, 유, 유, 유령, 저 뒤, 여자, 머리 길고, 걸어서, 저기에서.


뭐래?


꾹, 척의 다리를 잡는다.


제발 쫌, 저 좀 도와주세요! 형님들! 유, 유령이…….


척이 꾹의 이마에 손을 얹더니 가운뎃손가락만 뒤로 젖혀 딱밤을 때린다. 강력한 딱밤이다. 꾹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어지고 멍한 상태가 된다.

무대에 무당이 나와 우아한 동작으로 춤(부채춤)을 춘다.
(그사이 척과 탁 퇴장한다. 꾹이 무대 구석에 서서 그 동작을 지켜본다)

나비같이 가볍고 유연한 부채춤이 펼쳐진다. (무당의 춤이 펼쳐진다).
짧은 시간이지만 무대에서 동작(움직임)을 하고 여자는 자리에 앉는다.




1-4
사랑받는 자는 따로 있나니~


점집.
미아공주님 앞에 무릎 꿇고 앉은 꾹.
미아공주가 부채를 큰 동작으로 펼치며 꾹을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미아(우아한 목소리) 당신을 좋아해.


무슨 소리세요?


미아귀신들이 그쪽을 좋아하네.


귀신들이 절 좋아한다고요?


미아사랑스러워~ 아으~


공주님, 미쳤어요? (결례를 느끼고) 미치셨어요? 그럼 어떡하죠?


미아왜?


왜라뇨? 귀신들이 절 좋아한다는데, 이거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데. 어떻게 부적이라도 빡시게 쓰면 될까요?


미아좋은 건데. 나쁠 거 하나도 없어.


유령이 막 따라다니고 말 시키고 그러는데 좋아요? 말도 마세요. 불면증까지 왔습니다. 아주 죽겄습니다. 설마 죽음이 따라다니는 건가요? 저 죽는 거 아니죠?


미아공주, 미소 짓는다.


정말요?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요? 죽고 싶지 않아요.


미아(순진한 미소로) 복 받은 거야, 복. 사랑의 복. 나는 환영님들이 말 걸어주셔도 얼마나 까칠하신지. 총각귀신, 처녀귀신, 저승사자님들, 터줏대감님들, 도깨비들…… 대뜸 나타나서 호통치고 명령하고 다들 얼마나 표독스럽고 오만한데, 그쪽은 반기네. 반기고 좋아해. 사랑을 너무 받아서 내가 다 질투가 나네.


뭐 때메 좋아하는 거죠?


미아모르지.


(울상 지으며) 외모가 그래요?


미아외모만이 아니야. 어떻게 설명을 못 하겠네. 총체적이고 영적인 거야. 기운이 아주 좋아.


제 삶은 이리 비참한데 귀신 사랑이나 받고 니미. 비싸도 좋으니 부적 하나 써주셔요. 제발요, 다 쫓아주세요!


미아하지 마! 그런 거 하지 마! 왜 굳이 미움을 사려고.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면 더 무섭다. 증오된다.


(크게 한숨) 어떡하죠?


미아뭘 어떡해? 그냥 살면 되지. 밤에 일한다고?


밤에 일한다고 볼 수 있죠.


미아그렇게 싫으면 밤에 일하지 말던가!


그게…….


미아근데 그쪽은 여자 있어? 결혼했어?


아니요. 혼자입니다.


미아혼자라고~ (반기며)


네. 근데 왜요?


미아아니. 궁금해서~ (애교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왜 이러세요?


미아사랑받을 얼굴이야. 이뻐~


뭐예요, 공주님!


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미아공주가 그의 손을 잡는다.


미아잠깐만, 좀만 있다가 가! 요즘 손님도 없고 얘기나 좀 하다가 가.


미아공주, 윙크한다.
꾹, 안절부절못한다.




1-5
방문자들


황금마차 사무실.
낚싯대 정비하는 탁.
한가로이 테니스공 공중으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소일하고 있는 척.
그러다가 공을 탁에게 던지고 탁이 공을 받고 다시 척에게 던진다.
두 사람 대화하며 공을 주고받는다.


탁형, 우리 꼭 마부들 같지 않아요?


뭔 소리?


어렸을 때 제주도에 가족끼리 여행을 갔거든요. 제가 아홉 살 때였을 거예요. 도깨비 길이라고 알아요?


까꾸로 가는 길.


까꾸로~ 거기서 차가 퍼져버렸어요.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아빠랑 엄마가 막 싸우기 시작하는 거예요. AS 차량 올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할 거 같고, 부부싸움 끝날 기미도 안 보이고 뭐 자주 보던 풍경이라 신경도 안 썼죠. 들판 구경 다녔어요. 나비 따라, 방아깨비 따라 놀았죠. 그러다가 들판에서 쓰러진 말을 본 거예요. 처음에는 그게 살았어요. 힘겹게 숨을 쉬고 있더라고요.


척이 죽은 말처럼 숨을 천천히 쉰다.


땅에 뜨거운 콧김이 새겨졌어요. 호기심도 호기심인데 말이 나에게 와달라고 하는 거 같았어요. 무서웠지만 다가갔죠. 조심스레 다가가서 만져주는데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더니 천천히 숨이 잦아들었어요. 몸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죽었던 거죠. 한 순간 몸이 축 늘어져버리더라고요. 한동안 그 옆에 우두커니 있었어요. 시간이 멈춘 거 같았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말 주인이 나타났어요. 마부요. 체구가 큰 남자인데, 스키니 가죽 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고 목걸이와 반지를 주렁주렁 매달고요. 여자처럼 머리칼이 긴 아저씨였어요. 말 주인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저승사자같이 보이기도 했어요.


(웃으며) 저승사자?


그래서 도망갔어요. 무서웠거든요. 형님! 이 짓 하기 전까지 제가 본 시체는 그게 전부예요.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때는 제가 군대에서 사단 동계 훈련 중 사고가 나서 어수선했거든요. 재수 없게 총기 오발 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머님 돌아가신 소식을 늦게 전달받았어요. 빌어먹을! 너무 늦었죠. 화장 전에 못 갔어요. 병신 같은 소대장, 중대장 놈들. 그래서 엄마 죽은 모습은 몰라요. 이 일 하면서 익숙해져 시체 봐도 아무 감정도 없지만 전 시체가 꼭 말 같아요. 축 늘어진 말! (사이) 탁형, 우리들도 마부 같지 않아요?!


모르겠다.


길을 잃은 말을 다른 곳으로 보내주는 사람! (사이) 형님 말마따나 유별나거나 별난 사람들이 아니라 무리에서 잠시 떨어져 나왔다가 길을 잃은 짐승들의 죽음을 치우는 사람.


말은 아름답지.


말은 아름답죠. 인간도 원래 아름답잖아요. 벗은 인간은 아름답잖아요.


벗은 인간?! 아름다운 사람은 죽어도 아름답고 추한 사람은 죽어서는 더 추악하지.


때밀이하셨다 하셨죠?


시체공시소. 이 새끼야! 툭하면 때밀이래.


또 발끈한다. 저 표정 재밌단 말이야.


재미는, 육시랄! 시체공시소 장례지도사. 알았냐?


네네. 장례지도사.


누군가 사무실 문에 노크한다.
문밖에 어떤 남자가 와 있다.


누구세요?


남자여기가 황금마차 맞나요?


맞습니다. 그런데요?


남자안녕하세요!


안녕 못한데요~


남자저…….


무슨 일이시죠?


남자두 달 전에 장기태 선생님 집을 정리하셨다고 들어서 왔습니다. 구청에서 여기에 가보라고 해서요.


구청에서요? 그럼 전화를 먼저 하시지.


남자근처 지나는 길이라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장기태가 누구요? 이름만 말하면 우리는 몰라요.


남자그분은 국가유공자이십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탁을 향해) 국가유공자? (본래 목소리 톤으로 문을 향해) 몰라요!


밖에서 사무실로 들어오던 꾹이 찾아온 손님에게 아는 척을 한다.


국가유공자?!! 기억납니다. 기억나요.


꾹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찾아온 남자도 자연스레 들어오게 된다.
척이 인상을 쓰고 꾹을 째려본다. 꾹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남자안녕하세요~ 장기태 선생님 집을 정리하셨다고요?


저희는 시체만 처리해서 시체가 국가유공자인지 뭔지 모릅니다. 저 새끼가 뭘 좀 아나본데 저 친구한테 물어봐요.


아 왜요? 두 달 전에 그 집, 아무것도 없는 그 쓰레기 집. 기억 안 나세요?


생각해 보니 국가유공자 집에 간 적 있는 거 같소.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소?


남자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분 손자신가?


아닙니다. 장기태 선생님 친구분의 손자입니다.


가족도 아니시고 더더군다나 두 달도 지나 도움 될 일이 없을 거요.


남자그게…… 장기태 선생님이 저희에게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저희 할머니에게 남기신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자혹시 현장에서 뭘 발견하지는 않으셨나요?


참 나, 우리를 뭘로 보고! 저희는요, 돈 받고 유품 치우는 사람들이지 도둑들 아닙니다. (구시렁거리는 말투로) 일도 힘들어 죽겠구만. 별게 다 와서…….


남자오해 마십시오.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딱 그 말인데 뭔 오해?


남자그래도 혹시 몰라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혹 그 집에서 뭘 보지는 않으셨는지 해서요.


뭘 말이요? 뭘?


저희는 유품만 처리합니다.


남자오해가 없으셨음 합니다.


우리한테 찾아올 게 아니라 그 집 찾아가서 뒤져 보면 될 거 아니오.


남자집에 가 보긴 했습니다.


그럼 된 거지,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난리야.


남자저희 할머니에게는 너무 중요한 거라 꼭 한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발견한 게 있으신지 해서요. 죄송합니다.


시간 낭비 마시고 가요 가. 우리도 바쁜 사람들이니까.


남자그런데 혹시라도 말이죠. 혹시라도 뭐 기억이 나시거나 물건에 대해 아시면 (명함 내밀며)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한국말 못 알아들어??


척이 남자에게 달려들자 꾹이 막아선다.


무쟈게 중요한가 보네요, 이러시는 거 보니까. 집문서? 땅문서? 아님 보석 같은 거예요?


남자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위선 떨기는, 그 집 아무것도 없었어. 그 노인 비참하게 살다 비참하게 죽었어요. 살았을 때 연락이라도 하지. 암만 가족이 아니어도, 내가 뭐 이런 말까진 할 건 아닌데 죽은 사람한테 뭐 받을 생각이나 하지 말고 반성들이나 하셔. 뒈지고 나서 물건 찾아 가려는 건 대체 뭔 심보야? 도둑은 되레 그쪽인데 알지도 못하면서 남 도둑 취급이나하고 씨발. 어이없으려니까…….


남자결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남자, 돌아서다가 물건 하나에 시선을 준다. 책상 위에 스노볼을 집어 든다.


남자이거 혹시?


야!


남자가 다시 스노볼을 내려놓는데 척이 화를 참지 못한다. 남자의 멱살을 잡는다.


미쳤어?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


탁과 꾹이 척을 말린다. 두 사람을 떼어내려고 하는데 척이 쉽게 손을 놓지 않는다. 강제로 떼어내다가 네 사람이 모두 넘어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척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진주목걸이가 깨져서 구슬들이 흩어진다. 순간, 멍해진 척. 놀란 남자가 바닥에 떨어진 진주알들을 줍는데 탁이 말린다.


됐소. 가 보쇼. 우리도 결례를 한 것 같네.


남자저 때문에…….


아니오. 가시는 게 낫겠소.


남자가 목례를 하고 간다.
사이.
꾹이 멍해진 척을 보다가 진주알들을 줍기 시작한다. 그러자 척이 한 말 한다.


그냥 둬!


그래도…….


(소리 지른다) 그만두라고! (자신이 한심스러워 힘이 빠진 목소리로) 아이씨, 왜 하필,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탁이 진주알을 줍는다. 꾹도 눈치 보다가 다시 줍기 시작한다. 기운이 다 빠지고 허탈한 척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다. 일어날 힘이 없다.


그러기에 적당히 하지. 그렇게 찔리든. 멱살까지 잡고!


오버했네요.


걱정 마라, 저 사람 다시 안 온다.


목걸이 봤잖아요.


목걸이 찾으러 온 거면 신고하겠죠.


보석 찾으러 온 거 같지는 않아. 걱정 마!


괜찮을까요?


걱정되냐, 반장! 이 일이 저노마 말대로 드러운 일이잖아. 더러운 일 하면서 더러운 꼴 당하는 건 당연한 거고, 이런 거 챙기는 재미도 없으면 뭔 재미로 하냐?


형님 말대로 진주목걸이도 두고 올 걸 그랬네요. 이번 건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감이 안 좋긴 했는데 목걸이가 이뻐서…….


됐어. 됐어. 이만하면 됐어.


저 근데요, 형님들! 이 시점에서 제가 하나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뭔데?


그게요. 아까 그 남자가 찾는 게 이걸까요?


꾹이 상자 하나를 내민다. 국가유공자의 집에 있던 상자이다.


이거 어디서 난 거야?


그게, 그날 제가 챙겨왔어요. 아무래도 그냥 두고 오면 안 될 거 같아서, 중요한 거 같아서요. 돈은 안 돼도 혹시 몰라서.


척, 일어나 꾹의 멱살을 잡는다.


니가 원흉이구나. 너를 진짜, 막 그냥, 확!


왜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이 꼴을 보고도 모르냐?


이 상자 안 돌려주면 되죠. 여기 있는 내용물 문제 되면 그냥 갖다 버리면 되잖아요. 뭘 그래요? 제가 봐도 다시 올 사람도 아니구만.


참맬로 둘 다 대단하다, 대단해. 당장 저 물건들 다 갖다 버려. 종이들 태워버리고. 알았어?!!


알겠습니다.


저 양반이 냄새를 잘 맡고 왔네. (혀를 차며) 잘 찾아왔어.


거친 노크 소리.
세 사람 순간 얼어서 대꾸 안 한다.
거친 노크 소리 다시 들린다.


다시 왔나 봐.


오마이 니미럴! 너, 이 새끼 저 상자 당장 안 치워!!


상자 숨기는 꾹.
다시 울리는 거친 노크 소리.
세 사람 대답도 없이 눈치를 살핀다.
문밖에서 웅성웅성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나더니 화난 남자가 문을 발로 차고 거칠게 들어온다.


화난 방문자야, 니들이 뭐 황금마찬가야?


그런데요. 예의 없이 무슨 경우죠?


화난 여자무슨 경우냐고? 내놔! 당장 내놓으라고! 우리 어머니 물건들. 도둑노무 새끼들아!


다짜고짜 무슨 소리야!


화난 남자아마 못 열었을걸. 그건 시건장치가 장난 아니거든


화난 여자욕심도 많으셔. 금고를 통째로 들고 오셨대.


지금 무슨 소리들 하시는 거예요? 생전 처음 보시는 양반들이…….


화난 남자야, 연기하지 마! CCTV에 다 나왔어.


진정들 하시고 천천히 얘기를 하셔야 대화가 되죠. 돌아가신 분 성함이라던가 집 주소는 어디신지, 오해도 있으신 거 같고요.


화난 여자여보, 신고해! 더 볼 것도 없어.


화난 남자(전화한다) 잠깐만요!


꾹이 남자의 수화기를 잡는다.


사장님, 흥분 가라앉히시고 핸드폰 내려놓으시고! 자, 천천히 하시죠. 시간 많으니, 여기 좀 앉으시고, 지금 넘 흥분하셨어.


화난 남자(콧방귀) 야! 지금 내 어머니 돌아가신 것도 힘든 데 절도까지 와아…….


저희가 다루는 분들은 모두 무연고자분들이십니다.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화난 남자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사기? 이봐, 우리가 뭘 어쨌는데, 주인 없는 물건 좀 가져온 거 가지고 지랄이야! 지 부모 죽은 것도 모르고 살던 것들이 어디 와서 지랄이야!


화난 남자뭐 지랄?!! 이 절도범 새끼들이~


뭐 새끼? 아놔 헤드, 지금 헤드에 막 진짜 왔거든.


화난 남자개새끼들, CCTV에 다 나왔어.


좋다. 니네 제대로 걸렸다. 어디 개새끼 맛 좀 봐라!


꾹이 뚜껑이 열려 방문자들에게 달려든다. 졸지에 쳐들어온 사람들과 세 남자가 멱살잡이하며 뒤엉킨다. 화난 여자가 사무실 물건들을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진다. 그렇게 던져버리다가 금두꺼비를 집어 들어 바닥에 던져버리기도 한다. 척, 떨어진 금두꺼비 주워서 가슴에 품는다.
슬프고 느린 음악 혹은 요란한 마당놀이 음악이 깔린다.
암전.




1막 끝


막간극


유령의 춤 (죽은 자의 춤사위)
망자 하나가 무대에서 춤을 춘다.




2막


2-1
버려야 할 것, 버리지 말아야 할 것


황금마차 사무실.
간소한 제사상이 놓여 있는데 그 가운데 돼지머리와 깨진 금두꺼비도 놓여 있다. 척과 탁, 꾹 모두 얼굴이 엉망이다. 사람들과 실랑이한 후 상처들이 고스란히 얼굴에 남아 있다. 세 사람, 향에 불을 붙이고 절한다. 예를 다한다.


이럴 필요 있을까요?


있다.


이럴 필요 있어. 많아. 재수가 옴 붙었어. 없던 연고자들이 계속 나타나고 나쁜 기운이 스며든 게 확실해. 특히 너!


면목 없습니다.


그동안 모은 돈 합의 보느라 다 썼다. 다~ 날아갔다. 젠장! 내 인생 어디서부터 꼬인거냐…….


욕심이 과했다.


죄송합니다.


난 괜찮다. 니가 손해가 크지.


죄송합니다. 형님까지 욕보이게 해서요.


아니다. 괜찮다. 다시 하자!


세 사람 소주를 나눠 마신다.


세 사람 소주를 나눠 마신다.


술 나눠 마시다가 꾹이 말한다.


형님은 부모님 살아 계세요?


없다. 일찌감치 돌아가셨어. 아버지, 어머니 얼굴도 모른다.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러시구나. 척형, 척형 아버님은요? 잘 지내세요?


몰라. 잘 지내시겠지. 뭐, 5년 정도 된 거 같다. 연락 안 한 지. 걱정 안 해! 그 양반은 나보다 오래 살 사람이야. 서로 연락하는 게 상처지. 서로 아쉬울 거 없으니까. 근데 갑자기 왜, 부모 안부는 묻고 그래. 철들었냐? 감방 갔다 오고도 안 든 철이 방금 든거냐?


그냥요~


지랄~ 너는? 부모님 어떠시냐?


엄니가 최근에 조금 치매기가 있으시다네요. 그것 말고는 괜찮아요.


조심해라. 치매 그거 무서운 병이다.


어쩌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들었지? 행복할 수도 있대.


척아!


네, 형님!


지금 태우자!


뭐요?


탁이 상자에서 편지 뭉치를 꺼낸다. 상자 안에는 훈장과 진주목걸이, 여자의 사진도 들어 있다.


태우자! 이 사진도, 편지들도 태우고 금두꺼비도 버리고.


그러시죠.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금두꺼비는 요 앞 개천에 던져버릴게요. 두꺼비니까. 두꺼비 사는 데로 보내겠습니다.


이걸 왜 버려요? 버릴 거면 저 주세요. 제가 가질게요. 재수 없으면 금방에 팔아버리면 되지. 버리지 마세요!


그래, 그거 가지고 꺼져라! 퇴직금이라 생각하고 제발 가지고 꺼져버려!


잘됐다. 퇴직금 해라.


진짜 왜 그러세요? 알았어요. 버려요 버려!


탁이 편지에 불을 붙이자, 척이 갑자기 불을 끈다.


왜?


탁형, 이거 태우지 맙시다! (편지를 노려보며) 돌려줍시다. 돌려줘요. 줘야 될 거 같아.


일만 복잡해지는 거 아냐?


태우지 마시죠.


괜한 일일 수도 있어. 너 그 사람에게 한 짓 생각해 봐!


할 수 없죠. 용서를 구해야지. 그 사람, 그 사람이 온 게 암튼, 돌려줍시다!


그놈들처럼 경찰에 신고한다 뭐 한다 하면요?


무릎이라도 뭐 꿇지. 한 번이 힘들지. 뭐 두 번이 어렵냐! 까짓 거 황금마차를 위해서.


난 반대다.


저도 반대. 이 사업 못 할 수도 있어요.


잃을 것도 없다.


사람 일 어떻게 알아? 형, 갑자기 처맞더니 사람이 왜 이래 소심하고 어눌해졌어. 정신줄 붙들자고!


소심해지긴 했지. 그래도 아냐. 아니야! 태우지 말자! 돌려주자고! 그래야 다시 깨끗하게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


척, 명함 꺼내서 전화한다. 통화연결음 들린다.


탁형, 진짜 저 형님 왜 저런 데요!


둬라! 뭐 더 잃을 것도 없다.


통화연결음 들린다.


저,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마부입니다.




2-2
우는 편지


황금마차 사무실.
어떤 남자가 다시 사무실을 방문했다.
남자 손에 편지가 쥐어져 있다.
척이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한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상처가 되셨다면…… 어떤 보상도 해드리겠습니다.


남자아닙니다. 연락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남자네.


[남자는 실제로는 눈으로만 읽는 설정이지만 관객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낭독을 한다.]


영숙에게
영숙아! 나 기태다. 미안타. 너무 미안타. 이제사 편지를 쓰는구나. 인생은 참 뜻대로 되지 않는가부다. 그냥 영영 영숙이 너에게는 연락도 안 허고 죽으려 캤는데 막상 죽을 때가 다가오니 네게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죽지도 못하겠구나. 네가 나를 찾는다는 얘기 많이 들었다. 그 소리 들을 때마다 더 멀리, 더 멀리 도망쳤다. 절대로 나를 만날 수 없게끔.

그렇게 숨어 살다가 어느 날, 청량리 시장에서 우연히 널 봤어. 한눈에 알아봤지. 마음이 무겁고 복잡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용기가 나기도 했어. 이렇게 숨어 사느니 말해버리자. 그리고 무엇이 됐든 받아들이자. 그러면 좀 내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래서 너의 뒤를 따라갔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너를 따라 모퉁이를 도는데…….
네가 아들 녀석하고 같이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 아들하고 같이 서 있는 너를 보니까, 딱 봐도 윤구를 닮은 아들을 보니까, 숨이 탁 막혀서 더 이상 걷지를 못하겠더라. 누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그 길로 난 도망쳤다.

윤구랑 니랑 나랑 셋이서 개구리 잡고 꽃팔찌 만들던 그때가 자주 떠오른다. 꼬맹이 때 만나 뒷산과 개울을 발정 난 망아지마냥 뛰어다녔던 우리들인데, 어찌 이리 나이를 먹어버렸노.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구나.

영숙아, 너는 잘 알지? 윤구는 개구리도 한 마리 못 잡고,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이는 거, 그지? 근데 그런 윤구를 내가 베트남까지 데리고 갔다. 죽어도 갈 생각 없다고, 너 때문에 못 간다 하는 걸,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내가 꼬셨지. 영숙이 돈 많이 벌어다 주면 얼마나 좋아하겠냐며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몰랐을까. 어떻게 그리 바보 같았을까. 베트남 도착한 첫날부터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어. 엄니, 아부지가 있는 고향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고 싶었다. 나 힘들 때마다 윤구는 내가 있어서 든든하다고, 불알친구 있어 든든하다고 날 위로하곤 했다.
그랬던 윤구인데, 참말로 사람 좋은 윤구인데…… 영숙아, 영원히 날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영원히! 영숙아, 나는 참말이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구나. 윤구는 말이다…… 베트콩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니고…….


[척과 꾹이 기태와 윤구가 돼서 연극을 진행한다. 척이 기태 역할을, 꾹이 윤구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은 군복으로 갈아입어도 좋고 그냥 원래 복장에서 작대기를 들고 혹은 장난감 총(혹은 진짜 장총)을 들고 베트남의 민가를 탐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자(베트남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군인 하나가 원피스를 입은 베트남 여자 위에 올라타 여자를 겁탈하고 있다. 여자의 신음 소리가 커지자 군인은 여자의 입을 막고 폭행을 가한다.

무대 한쪽에서 윤구가 잔뜩 긴장한 채 등장한다. 총구를 앞으로 향한 채 주위를 경계하며 다가온다.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온 것이다.


윤구기태야, 어디야? 어디 있어? 여기 위험해. 같이 이동해야 한다고! 어디 있어? 내 말 들려, 기태야!


기태는 윤구가 가까이 온 것을 알고 동작을 멈추고 잠시 동태를 살핀다. 하지만 다시 음란하게 몸을 움직인다. 이전보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이다. 여자의 신음 소리가 미세하게 새어 나온다. 윤구, 소리를 의식하고 이동한다. 두 남녀를 발견한다.


윤구꼼짝 마! 움직이지 마! (사이) 손들어!


기태가 하던 동작을 멈추고 손을 든다.


윤구설마 너, 기태?


기태가 몸을 돌린다.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다.


윤구너 지금…….


기태긴장 풀어. 나야 나.


윤구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지금 뭐 하고 있냐고?


기태보면 모르냐. 잠깐 걍, 잠깐~ 죽이려다가, 그냥 죽이기 아깝잖아. 쫌만 기다려라! 쪼끔만 더 하고 거의 다 됐거든.


기태가 다시 여자 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하자 윤구가 소리친다.


윤구멈춰! 당장 멈추라고! 너 미쳤어?!


기태죽이려고 하다가 걍~


윤구죽이긴 뭘 죽여?


기태야! 나도 미치겄다. 나도 쫌 살자!


윤구이 여자 민간인이야. 적이 아니라고.


기태여기에 베트콩 아닌 게 어딨어? 어디 이마에 써 있어? 다 씨발 베트콩 새끼들이지. 이 년들이 우릴 얼마나 죽인 줄 너 모르냐?!!


윤구민간인이라고!


기태알았으니까, 너 딴 데 수색하고 있어. 내가 금방 따라갈 테니까. 여기 신경 끄고 (자신의 성기를 내려다보며) 죽었네, 다 죽었어. 씨이~


윤구당장 일어나! 당장!


기태야, 너도 할래? 너도 줄까?


윤구닥치고! 당장 일어나!


기태알았으니까 꺼져 있어라아~


윤구가 기태의 몸을 발로 찬다. 기태 넘어진다.


기태미쳤냐?!


윤구미친 건 너지. 내가 아니야. 여자 냅두고 어여 나와!


기태야, 윤구야!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야. 나도 사람이라고!


윤구니가 지금 사람이라고 했냐 시방.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기태씨발, 난 하고 갈 테니까. 알아서 해라!


윤구가 기태의 이마에 총구를 댄다.


기태시방, 니가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윤구(떨리는 목소리로) 기태야, 정신 차려 제발! 우린 짐승 아니잖아. 우린 군인이라고!


기태아니. 우린 짐승이야. 아님 죽어. 아님 여기서 못 살아. 너, 나 쏘려고 이러는 거냐? 쏴봐! 쏴 보라고! 퍽이나 쏘겠다. 잘됐다! 너 지금까지 요로케 산 거 순전히 나 때문 아니냐! 니가 늘 허공에다 총질할 때 니 대가리 조준한 새끼들 내가 다 쏴 죽였잖아. 여기까지 와서 혼자 고상한 척은 쪼또. 잘 들어! 사람?! 여기 사람이 어딨냐고?!


윤구가 대답을 못 하고 멍하니 있는 사이, 기태가 윤구의 총을 빼앗는다. 두 사람은 총을 가지고 실랑이를 한다. 그사이 여자가 기어서 도망간다. 기태가 여자 다리를 쏜다. 여자가 총상을 입고 고통스러워한다. 기태가 윤구를 뿌리치고 여자에게 다가간다.


기태니도 아쉬웠지. 저 새끼가 눈치가 좆나게 없어서. 행복하게 해주려고 했는데…… 니 팔자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가라!


기태가 베트남 여자에게 총을 쏘는데, 그 앞을 윤구가 가로막아 선다. 총알은 윤구의 가슴을 관통한다.


윤구(작은 소리, 떨리는 소리로) 안 된다. 보내. 줘. 기태. 야. 그럴. 거. 지. 응?!!!


기태야, 이. 진짜, 너. 지금. 왜. 왜. 왜. 왜 빙신아!


윤구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몸이 축 늘어진다. 기태가 윤구를 안고 흐느낀다.


기태이 빙신아! 니가 왜!!!


잠시 후, 기태는 일어나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른 후 여자에게 다가가 머리에 총을 쏜다. 여러 발을 멈추지 않고 쏜다.
남자가 편지를 천천히 내려놓는다. 눈물을 흘린다.


괜찮소?


남자아니요.


감정을 추스르는 남자.
사이.


남자저 선생님, 이 편지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왜 그래요?


남자이 편지는 제가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나쁜 거요?


남자네. 나쁜 거 같습니다.


태울 걸 그랬나?


남자감사합니다.


그럼 이 편지 태워도 좋단 말인 거죠?


남자태워주십시오.


그럼 이 편지들도요. 이 편지는 당신 조부가 조모에게 쓴 편지들 같은데…….


남자그것들도 태워주십시오.


그러죠.


그럼 편지들 빼고 사진이랑 진주목걸이는 챙겨 가시오. 이 사진 주인공이 당신 할머님이시죠?


남자(잠시 사진을 보다가)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그냥 처리해주십시오.


진짜 괜찮겠소?


남자아무래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제가 괜한 일을 한 거 같습니다.


귀한 거 아닙니까?


남자그냥 처리해주십시오.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연락 주시오. 한 2주 동안 보관하고 진짜 없앨 테니…….


남자생각이 바뀌질 않을 거 같습니다. 바로 처리해주십시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식사라도 하십시오.


남자, 봉투를 내민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남자약소합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면 우리가 우스운 사람 되네.


(봉투를 받아 들며) 젊은 사람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 같은데요.


탁이 인상을 찌푸린다. 척이 나선다.


꾹아! (봉투를 빼앗아 남자에게 건넨다) 이러지 마시오! 가요. 할머니 잘 모시고.


남자네.


가시오.


남자가 목례를 하고 떠난다.
꾹이 남자가 놓고 간 편지를 들여다본다.


읽지 마라!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만해!


그럼에도 꾹은 저 혼자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꾹의 웅얼거리는 소리.




2-3
사랑의 죽음


어두운 고시촌. 어느 방 하나.
세 사람 문을 열고 들어온다. 헤드랜턴을 켜고 들어와 주변을 살핀다. 시체가 있던 자리를 발견한다. 꽃들이 한쪽에 놓여 있다.


젊은 여자였대요. 벌거벗은 채로 죽었대요.


으메. 뭔 일이래?


고아인가?


고아?


죽을 땐 다 고아지. (혀를 찬다)


세 사람, 시체가 있던 자리를 말없이 멍하니 내려다본다.


으메, 이런 말이 시의적절한지 모르겠는데 추한 게 아니라 아름답지 않았을까요?


원래 사람의 벗은 몸은 아름다워.


아름답지.


조용히 흐트러진 꽃들을 내려다보는 세 사람.
잠시 후, 척과 탁은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꾹은 여자의 물건들을 뒤진다.
그중 일기장을 찾아 훑어보기 시작한다.

척이 주변을 둘러보다 꾹이 일기장을 뒤적이는 모습을 본다.
꾹의 뒤통수를 친다.


이제 이딴 짓 안 하기로 했지.


이 여자 자기를 엄청 학대했어요. 자기를 미워했어요.


망자 괴롭히지 마라!


자꾸 딴짓해서 우리가 부정 타는 거야. 작살나게 줘터지기 전에 어여 내려놔! 


형, 여기에 시도 있어요. 시요.


육시랄!


척도 포기한다. 척과 탁은 꾹을 내버려두고 묵묵히 주변을 정리한다.
꾹이 일기장에 몰입돼 남들이 듣거나 말거나 시를 읽는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고 밤은 그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화살의 활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벼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잠깐 여운을 두다가 다른 구절을 찾아 읽는다.


인근에까지 소문이 난 국수집에 낯선 차들이 붐비고 있어서 이 고장은 대도시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의 더러운 지류 같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지나칠 때마다 내 혈육이 스며 있지 않은 풍경 때문에 아름다워 보였다. 저 남자는 초등학교 동기가 아니지만 그와 닮았고 저 여자는 동생이 아니지만 동생과 닮았고, 나와 닮지 않은 내가 지나 가고 있는 풍경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내 욕망이 한 번도 깃들지 않은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 닮은 사람들이 꿈속처럼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어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마지막인 것을. 내가 마지막인 것을.


(일기장 뺏어 던져버린다) 집어치우라고!


(떨어진 일기장을 집어 들며) 이렇게 함부로 다루면 안 돼요. 이렇게 버려지면 안 된다고요.


이젠 비밀로 남겨두기로 약속했잖아. 망자의 물건 손대지 않기로.


척형, 누군가는 기억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버려진 죽음, 그냥 쓰레기 치우듯 치울 게 아니라요. 이 사람 그래도 누가 이 억울함이나 쓸쓸함 기억해주기를 원하지 않았을까요? 살려고 세상에 왔다 죽었는데 그 이유라도 함 기억해주어야 하지 않냐고요.


그럴 필요 없어.


왜요?


그럴 필요 없으니까! (일기장을 뺏어 이번에는 찢어버리며) 이미 저주받은 사람들. 우리 따위가 뭔 도움이 된다고. 다 쓸데없는 짓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니가 성자야, 목자냐고. 일이나 똑바로 하고 이따 술이나 먹자. 이 일도 갈수록 못해 먹겠다.


꾹은 찢긴 일기장을 다시 모은다.


이 여자는 사랑 때문에 죽은 거 같아요. 사랑이요, 사랑.


(조용한 소리로) 육시랄, 반장아! 나 이제 쟤랑 일 못하겠다.


너, 당장 나가! 너 같은 놈 필요 없다. 당장 나가!


척은 꾹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며 밀치지만, 꾹은 이상하게 동요가 없다. 척과 탁의 말을 흘려듣고 여자의 죽음에 몰입돼 여자의 일기장을 뒤진다. 여자가 쓴 글들을 읽는다.
그러다 꾹은 또다시 유령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전과는 달리 놀라거나 도망치지 않고 비교적 덤덤히 유령을 응시한다.


어이, 훠이, 훠이~


환영314, 314, 314.


(비교적 차분한 말투) 어이, 훠이, 대체 왜 그래? 내게 뭘 원하지? 너 이 여자를 알아?


환영가여운 것, 가엾고 서글픈 것!


꾹,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전과 달리 환영을 바라보려고 한다.


당신 얼굴을 보여줘! 얼굴을 봐야겠어. 가까이, 가까이.


환영이 꾹에게 다가온다. 그의 형상이 조명으로 인해 점점 밝아진다. 선명해진다.


(얼굴을 보고 놀라 호흡이 빨라지며) 아저씨, 아저씨 아니세요? 아저씨가 여기 웬일이세요? 척형, 여기, 여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나 좀 봐봐. 여기, 아저씨 계셔. 척 형, 나 좀 보라고!


꾹이 척의 몸을 끌어당겨도 반응이 없다. 꾹의 움직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마치 꾹이 투명 인간이라도 되는 양 반응이 없다. 꾹은 결국 척의 앞을 막아서더니 척의 뺨을 때리기에 이른다.


형! 아버지라고!


(잠든 상태에서 깨어난 것처럼) 어?


형, 저기 봐! 형 아버지야!


척, 꾹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유령을 보게 된다.
유령과 마주하는 척.


아버지!


마주 보는 두 사람.
사이.
사이.

꾹과 탁 자연스레 무대에서 사라진다.
척,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로 다급하게 전화한다.


기계음지금은 전화기가 꺼져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시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삐익!


척이 핸드폰에 대고 대사를 하는 사이 무대가 점점 어두워진다.


아부지, 나야! 이 전화 받으면 즉시 연락 주세요. 아부지, 아무래도 몸이 안 좋으신 거죠? 답답하고 아프고 힘들어서, 그래서 나 찾은 거지? 신호 보낸 거지? 근데 지금 아버지 어디 사는지 몰라. 군산에 지금도 살아? 이 내용 들으면 바로 전화 줘요, 바로. 아부지, 아부지! 살아 계신 거 맞지? 그냥 좀 아픈 거지? 전보다 조금 많이 아프셔서 그런 거지? 그지?


어둠 속에 두 존재.




2-4
밥 한 끼


군산.
어느 허름한 연립주택 314호.
무대 밖에서 들려오는 세 남자의 목소리.


여기네. 314호.


오시지 말라고 했는데 왜 오셨어요?


같이 들어가자.


아닙니다.


같이 들어가요. 형님!


같이 하자!


형님, 이건 마부들 일이 아니에요. 제 일이에요.


쉬운 일 아니잖아. 같이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제가 찾고 싶습니다. 제가 찾아야 해요.


알았다.


고집은…… 확 그냥 막 그냥 진짜. 우리 여기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형, 도움 필요하면 바로 불러요. 여기 탁 있을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건너편 슈퍼에서 뭐 드시고 계세요. 필요하면 제가 전화할게요.


그래.


꼭 연락해요!


어.


척,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어두운 무대.
척은 작업복이 아닌 양복에 마스크를 하고 있다. 한 손에는 검은 봉투를 들고 있다. 척은 심호흡을 하고 방의 주변을 살핀다. 물건들 하나하나를 천천히 살피다가 시선을 이불로 향하더니 이불로 급하게 다가간다. 이불은 안에 누군가 잠든 것처럼 부피감이 있다. 척이 천천히 들춰 보지만 아무도 없다. 그는 아버지 사진과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를 발견하고 품에 안는다.
잠시 후, 밥상을 찾는다. 밥상을 펴 가져온 검은 봉투에서 막걸리와 편육, 김치와 햇반, 종이컵을 꺼내 상을 차린다. 그러고는 이불로 다가가 이불을 사람 모양처럼 (바위처럼) 만들어 세워둔다.


(애써 태연한 척) 아부지! (사이) 아부지, 저 왔어요. 척이 왔어요. 쉬고 계셨어요? 피곤하셔서 일찍 누우셨나 보다. 허리 더 안 좋아지신 거죠. 저요? 전 잘 지내요. 이혼하고 한 3년 힘들었는데 지금은 돈도 잘 벌어요. 사업 시작했어요. 아부지 뜻대로 척, 척 (사이) 제가 잘하잖아요. 아부지, 저 바쁘긴 한데 지나가다가 아부지 생각나서 왔어요. 밥 먹으려고요. 아버지랑 간만에 밥이나 한 끼 먹으려고 왔어요.


이불의 모양을 다시 바로잡고는,
사이.


편육 좋아하시죠? 요기 앞 시장에서 사 왔어요. 아부지, 거기서 사 드시잖아요? 아부지 시장 음식 좋아하니까. 드세요. (사이) 같이 먹어요.


막걸리를 두 잔 따라 내려놓는다. 한 잔은 자신이 마신다.


아부지, 밥 싫으시면 술하고 고기 좀 드세요. 전 밥 먹을게요. 배고파요. 많이, 많이요.


먹던 동작을 조심스레 멈추고 이불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척.


(떨리는 목소리) 아부지, 어디 계세요? 지금 어디 계세요? 제가 찾으러 갈게요. 제가 꼭 찾을게요. 아부지, 지금 어디에 계세요?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조용한 음악이 깔린다.
암전.

막.











황은화
작가소개 / 황은화

2018년 극단 작은신화 '우리연극 만들기' 공모전 당선.
2020년 통영 연극예술축제 희곡상 당선.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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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환승

환승 윤미희 나오는 사람들 상희 민재 윤아 때 늦은 밤 곳 지하철 안과 밖 무대 무대는 달리는 지하철 안과 지하철을 기다리는 밖으로 나뉜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것만 표현해도 좋다. 1. 주안역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상희, 민재, 윤아 세 사람 모두 검정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다. 각자 스마트폰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건지 들으라는 건지 모르겠는 말투로 민재 왜 난 검색해도 안 나오지? 윤아 버스 타야 하는데 괜히 지하철 타는 건가? 상희, 윤아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상희 제가 검색할 때는, 신도림에서 갈아타서 홍대입구까지 이렇게 가는 걸로 나오거든요. 민재, 기웃거리고 윤아, 상희의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민재 어? 그건 또 다르게 나오네. 윤아 도대체 뭐가 맞는 거야… 상희 성신여대입구까지도 간다고 나오니까 연희동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거예요. 윤아, 다시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민재, 끼어들며 민재 나도 좀 봐줘요. 민재,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민다. 상희,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며 상희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셔서 잠실까지 쭉 갔다가, 잠실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셔서 천호, 거기에서 다시 5호선으로 갈아타야 된대요. 5호선에서는 한 정거장만 더 가시면 되고요. 민재 좀 애매한데… 윤아 이미 돌아가긴 늦었어요. 민재 역 주변에 있을 곳이 있나. 상희 전부 술집뿐인 것 같던데요. 민재 주안역은 처음이거든요. 상희 저도요. 윤아 저도 1호선은 많이 안 타봤어요. 민재 아까 올 땐 1호선 급행열차 탔는데, 윤아 1호선에도 급행열차가 있구나, 민재 우리 잘 도착할 수 있겠죠? 상희 그럼요. 부천행 급행열차가 오고 있다. 윤아 어? 급행열차네요. 민재 이거 타는 거 맞죠? 상희 이거 타거나 좀 기다렸다가 일반 열차 타거나 도착하는 시간은 똑같아요. 민재 왜요? 상희 …부천행이잖아요. 민재 네? 상희 신도림까지는 가셔야죠. 민재 아, 잠시 고민하는 세 사람. 민재 좀 덥지 않아요? 윤아 그냥 탈까요? 어차피 기다리는 거 조금이라도 가면서 기다리는 게… 상희 그래요, 그럼. 문 열리고 탑승하는 세 사람, 빈자리가 많아 좀 떨어져 앉는다. 각자 다시 스마트폰을 보며 윤아 왜 다시 검색하면 자꾸 다르게 나오지? 상희, 눈치만 볼 뿐 대꾸하지 않는다. 윤아 아까 거기서 버스 타고 가서 공항철도를 탔어야 했나 봐요. 잘 모르는 길이라 혼자 가기도 좀 그렇고 해서 따라오긴 했는데… 민재, 열차 내부에 붙어 있는 노선도를 바라보며 민재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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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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