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바다와 침묵과 빗방울

  • 작성일 2023-08-30
  • 조회수 492

바다와          

침묵과          

빗방울          

이소연


등장인물


강보영 (여, 34, 방송국 피디)

양성태 (남, 26, 휴먼 다큐 <비밀의 방> 조연출)

소지원 (여, 29, 휴먼 다큐 <우리는 존재합니까> 작가)


배양희 (여, 59, 배우)

김홍주 (남, 41, 어부)


김세라 (여, 58, 개그우먼)

이영우 (남, 35, 김세라의 아들)


윤호영 (남, 30, 매니저)



무대


전면 벽에 영상이 투사된다. 

  그 앞에 커다란 크기의 프레임.



     0.


     영상이 흘러나온다.

     어린 시절의 강보영이 어설프게 찍은, 흔들리는 장면들.


     할머니가 앞마당에서 뒷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먼발치에 있던 카메라가 천천히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할머니가 뭐라고 강보영을 부르는 것처럼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

     카메라가 고개를 숙이며 꺼진다.


     1.


     영상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강보영이 서 있다.


     해가 떠오르는 시간.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무심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강보영.


     두 개의 의자가 강보영 앞에 놓인다.

     촬영용 조명이 의자 하나를 비춘다.


     김세라가 조명이 비추는 의자에 앉는다.

     다른 의자에 김홍주가 앉는다.


강보영

시작할까요.


     강보영이 찍는 두 사람의 모습이 스크린 영상으로 송출된다.


김세라

안녕하세요, 쎄라 쎄라 김세라입니다. 반갑습니다, <비밀의 방> 시청자 여러분.

김홍주

(수어) 꼬박 하루를 배 타고 나가지. 그럼 최소 한 달은 배 위에만 있거든. 배에 먹을 걸 잔뜩 실어놓고··· 기름도 몇만 리터를 채우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나는 거야. 난 아직 젊으니까. 귀찮은 일 많이 해. (사이) 근데 웃기지 않냐? 결국 나이순이라는 게. 아니, 배에 별사람이 다 타거든. 일하러 온 외국인들 두어 명은 무조건 있고, 장애인도 나 말고 한 명씩은 꼭 더 있고. 일한 연차도 다양하걸랑. 근데 결국 막내는 나이순서야. (웃는) 나야 뭐 데리고 가 주는 걸로 감지덕지지.

김세라

여러분은 ‘김말숙’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시죠? (유행어) 미워죽겠냐, 좋아죽겠지! (죽은 척, 쉬고) 어마, 피디님! 젊다고 모르는 척해요? 내 유행어잖아. (유행어) 미워죽겠냐, 좋아죽겠지! (꽥) 이걸 모른다고? (사이) 거봐요! 알면서 괜히.

김홍주

(수어) 배 이동하는 동안에는 배 안에서 꽁치를 손질해. 복어가 좋아하거든. 꽁치가 몇백, 몇천 마리 있어. 그걸 쭈그려 앉아가지고, 하나하나 토막 내는 거야. 가끔 그런 생각도 들어. 이 꽁치도 누가 열심히 배 타고 나가 잡은 걸 텐데. 다라이에 가득 꽁치 대가리가 차면, 눈깔이 참 많거든. 빼곡한 눈깔들 보면서 그런 생각도 들어. ‘너네 삶은, 목적도 되지 못하고 그저 수단이구나!’

김세라

이렇게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니까 정말 좋네요. 떨리지도 않고. 저는 천상 무대 체질이라고. 어릴 때부터 그 소리 많이 들었어요. 근데 얼굴이 이러니까 (웃는다) 탤런트 하란 소리는 못 하고. 내가 개그우먼 됐을 때 우리 어머니 얼굴이 생생한데. ‘개그우먼’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그래. “아, 그래, 너, 그거였네!” 꼭 가려운 데 긁어준 것처럼. 내 천직이다 그랬다니까.

김홍주

(수어) 맞어. 어느 날 신문에서 봤다. 집값 얘기하던 어느 기사에서. (웃는다) 그래도 꽁치 보면서 신문에서 본 글을 다 생각하고. 대단하지 않냐.

김세라

방송을 마지막으로 한 게 벌써··· 30년도 더 됐네요. 그쵸. 저는 아주 잘 살고 있었습니다. 봉사도 하고 교회도 나가고. 양주에서 에어로빅 센터를 오래 했는데요. 꽤 잘 됐어요. 주부님들이 아주 나를 좋아했거든요? 내가 그래도 90년대에 아주 인기 있던 개그우먼이었으니까. (유행어) 미워죽겠냐, 좋아죽겠지! 시장 가도 그렇게들 외쳐요. 비호감 김말숙이! 아시죠? 제가 비호감이라는 말도 처음 유행시킨 거. 비호감 김말숙이! (웃는다)

김홍주

(수어) 겨울 복어가 한철이긴 해도, 돈이 되걸랑. 하는 만큼 버니까, 그냥 다들 생각 없이 말없이. 일만 하는 거야. 근데 이번 해는 완전 말아먹었어. 선장이 속상한지 맨날 술을 먹잖아. “텄다, 텄어.” 그러면서 계속. 아니, 작년 바다랑 올해 바다가 이렇게 달라? 진짜 내가 봐도 화가 나. 복어가 다 어디로 갔는지, 눈 씻고 봐도 안 보여. 웬 오징어만 들입다 잡히고. 선장이 막 배를 모는데, 우리도 기운이 안 나서. 원래 치던 데 한참 지나왔는데도 없어. 근데 어느 날에 선장이 막 소리를 지르잖아. 새벽에. 자고 있는데. “나와 봐! 여기 있다--! 나와! 여기 있다니까!” 

김세라

남편이요? 남편은, 네. 죽었어요. 작년에. 골초였거든요. 폐암에 걸려서 오래 앓다가 갔어요. (웃다가) 그래요? 좀 이상해 보였나. (웃음 지운다) 아들도 하나 있어요. 변호사예요. (웃는) 장가도 가고, 곧 첫애도 나와요. 아주 알차죠. 

김홍주

(수어)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보청기 안 꼈는데도 들리더라니까. 허겁지겁 나갔더니 선장이 혼자 낑낑대면서 낚싯줄 끌고 이러고 있고. 우리가 다 들러붙어 꺼냈더니 진짜야. 몇 마리 줄줄줄 딸려 나와. 그게 나온 지 일주일도 더 됐을 땐가. 제대로 된 복어를 처음 본 거야. 나도 신이 막 나더라고. 자다 나왔으면서. 다 같이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데, 배가 저만치 가면 또 우르르 잡히고. 저만치 가보면 더 잡혀. 아 다행이다. 기름값은 벌겠다, 하는데. 옆에 있던 외국인 아저씨가 선장한테 불쑥 그러잖아. “근데 여기 어디예요?” 나도 힐끔 봤는데, 선장이 대답을 안 해. 그때 한 몇 분을 계속. 침묵이 흘렀거든? 다들 대충 안 거지. 아, 여기 오면 안 되는 데구나.

김세라

근데요, 피디님. (사이) 내 말 듣고 있어요? 내가 촬영이 오랜만이라 그런가······. 여기 아무도 내 말을 안 듣고 있는 거 같애. (웃음)

김홍주

(수어) 제일 큰 형님이 선장한테 슥 가서, “배 돌려.” 그랬거든? 난 꽁치 계속 끼우면서 바다를 보고 있었어. 선장이 배를 안 돌려. 그냥 어딘지도 모르는 델 향해 계속 가는 거야. 근데 문득 저어 멀리 깜깜한 암흑 속에, 등대 같은 게 보이고. 불빛 밝은 배가 몇 척 있는 게 보이는데. 갑자기 훅 겁이 나대. 우리 마지막으로 떠 있던 데가 강원도 위쪽이었거든. 선장은 계속 혼자 중얼거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평소 같으면 못 들었을 정도의 목소리 정돈데. 이상하게 보청기 뚫고 들리더라. 그 소리가.

배가 우리한테 점점 다가와. 사실 우리가 다가가는 거기도 했지만. (어눌하게) “너무 가까워.” 내가 그랬어. 외국인 아저씨가 무슨 말이냐고 묻다가 나중엔 흥분해서 자기네 나라말로 막 뭐라고 그러는데. 완전 혼돈이야. 선장은 그제야 배를 막 돌리고. 낚싯줄 그냥 버리고 오라고. 다들 소리 지르고. 미처 못 던진 줄들이 우수수 딸려 들어가고······. 바람이 막 불어서 바닷물이 배로 들어오는데, 검은 바닷물이 꼭 찐득찐득한 것처럼 느껴져. 배랑, 나랑, 우리를 다 끌어당기고 있는 거 같애. 분명히 도망치고 있는데······. 그 빛들이 멀어지지가 않아. 배가 움직이질 않고 자꾸만 무거워지는 거야.

반짝이는 빛 사이로 낯선 얼굴들이 보여. 총을 들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꼭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해.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얼굴이었어. 나랑 비슷한 얼굴. (사이) 그 얼굴이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온다.


     사이.

     김세라가 나간다.


김홍주

(수어) 당연히 그 배는 다신 안 타지. 안 잡혔기에 망정이지. 돌아와서도 며칠을 떨었어. 누가 나 갑자기 잡으러 올까봐, 바다도 한동안 못 나가고······. 그런데 웃긴 게 뭐냐면. 문득 또 가보고 싶다. 인간이 이래서 이상한가봐. 뭔가가 날 계속 끌어당기던 그 느낌이 그리운 건지, 아니면 반대로 거기서 벗어나던 그 순간이 그리운 건지. 반짝이던 빛 사이로 보이던 그 얼굴들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 (사이) 이건 방송에 내보내면 안 된다.

근데 넌 방송국 피디가 왜 이런 걸 찍어? 나 같은 사람 얘기를.

     

     강보영이 카메라를 끈다. 영상도 꺼진다. 카메라를 정리한다.


강보영

말했잖아. 그냥 나한테 필요하다고.

김홍주

(수어) 모자이크 되는 거 맞지? 이름도 가짜고.

강보영

방송 나가는 거 아냐.

김홍주

(수어) 그럼 왜 찍어? 갑자기 내 비밀은 왜 물어보고.

강보영

모르겠어.

김홍주

(수어) 핑계구나.

강보영

······.


     김홍주, 웃는다.


김홍주

(수어) 굳기는. 진짜 오랜만이다. 보영아. 얼마만이지?


     강보영, 카메라를 만진다.


김홍주

(수어) 한 10년? 그 정도 됐나.

강보영

···15년 정도.

김홍주

(수어) 진짜 뜬금없는데. 진짜 반갑다. 너 보니까 나만 늙은 거 같애. 우리 일곱 살 차이잖아. 맞지. 누가 보면 아빠랑 딸인 줄 알겠어. 서울 살면 좀 덜 늙나?

(짧은 사이) 나 전에 문자 보냈었는데. 번호 바뀌었나? 작년 여름에,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강보영

······.

김홍주

(수어) 그러고 보니 곧 첫 기일이네. 알고 온 거지? 할머니 집엔 가봤어?

강보영

아니.

김홍주

(수어) 같이 가볼래? 내가 종종 가서 쓸고 닦고 했어. (사이) 집은, 보영아. 할머니가 너한테 남기셨어. 시골이라 돈은 얼마 안 되겠지만······. 땅도 집도 다 네 거야. 나 일부러 할머니 짐 그대로 뒀어. 네 짐도 좀 있고. (웃는) 야, 보영아. 할머니가 네 짐 다 그대로 뒀더라. 너 책상이랑 교과서랑, 이불도 그대로야.

강보영

(고개 돌리며, 작게) 징그러워.

김홍주

(못 듣고, 수어) 뭐라고?

강보영

(똑바로 보며) 징그럽다고.


     2.


     방송국 안. <비밀의 방> 팀.


     강보영이 자리에 앉아 영상을 돌려보고 있다.

     소지원이 들어온다.


소지원

선배!


     강보영이 소지원을 발견한다.

     반가움을 숨기지 못한다.


강보영

지원. 뭐야. 여기 왜 있어?

소지원

왜 있긴요. 선배 보러 왔지.

강보영

방송에 문제 생겼어?

소지원

네? (웃는) 여기 <비밀의 방> 아니에요? 그거 일중독이에요. 진짜.


     소지원이 강보영의 자리에 세면도구를 내려놓는다.


강보영

아······.

소지원

두고 간 것도 모르고. 선배 이 팀 와서 양치 한 번도 안 했죠.

강보영

일이 많이 없어서. 몰랐네. (챙긴다) 땡큐.

소지원

좋겠다--- 저흰 여전히 텐투텐이에요. 아침 열 시 출근, 다음날 열 시 퇴근.

강보영

저번 주 결방하고 이번 주 첫방이지?

소지원

네. 새로 온 석피디님 파이팅 장난 아니에요. 선배 가서 좀 편해졌나 싶었는데.


     소지원, 웃으며 강보영 자리에 있는 젤리를 꺼내 먹는다.


소지원

농담, 농담. 선배, 연예인 찍는데 이제 좀 덜 무거워집시다. 심지어 첨 맡은 게 개그우먼이라며. (유행어) 좋아죽겠냐! 미워죽겠냐! (사이) 맞나?

강보영

······. 너도 그걸 알아?

소지원

엄마가 가끔 하던데. 김말숙? 그 아줌마 맞죠.

강보영

(대충) 어. ‘우존’은 어때? 촬영 힘들었다며.

소지원

‘우리존재’는 늘 힘들죠.

강보영

우리존재···? (웃는) 뭐야 그건.

소지원

(잠시) 아, 그새 입에 뱄네. 석피디님이 자꾸 그렇게 불러서. 우존. 우존.

강보영

청소노동자편 했지? 어떻게 나왔어.

소지원

아, 그거······. 그 아이템은 좀 밀렸고. 이번엔 국제결혼이요.

강보영

국제결혼? 석피디가 가져온 거야?

소지원

아뇨. 메인 작가님이······. 원래 하고 싶으셨대요. 석피디님은 대체로 다 좋다고 해요. 진짜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목소리 톤이 거의 일정해요. 도-레-미— 미 정도? 화도 안 내고. 독촉도 없고.

강보영

파이팅 넘친다며.

소지원

그게 동시에 되더라니까.


     소지원, 핸드폰이 울려 확인한다.


강보영

편집?

소지원

아뇨. 저 퇴근합니당. 오늘 편집 일찍 끝나서 칭찬 받았어용.

강보영

아.

소지원

남자친구요. 같이 뭐 좀 보러 가야 해서······.

강보영

그래.

소지원

아, 남자친구 말고. ‘애인’.

강보영

그래애. 다녀와.


     사이.


강보영

아니······. 다녀오는 게 아니지. (잠시) 어··· 잘 지내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소지원

넵. 쉬엄쉬엄 하세요. 우리존재 하는 동안 한 번 쉬지도 못 했잖아요.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겸사겸사, 쉰다고 생각하시고!


     소지원, 몸은 이미 나가며,


소지원

몸 관리 좀 잘 하시고. 양치도!

     강보영, 대충 인사하는데, 소지원이 나가다가 들어오는 양성태와 작게 부딪친다.

소지원

아얏.

양성태

아.

소지원

어··· 죄송합니다.

양성태

(얼굴 살피는) 어? 혹시···


     소지원, 양성태 말 듣지 못하고 후다닥 나간다.


     양성태, 들어온다.


양성태

누구예요?

강보영

······.

양성태

(어깨 잡는) 선배님!


     강보영이 화들짝 놀라며 양성태의 팔을 쳐낸다.


양성태

아야······.

강보영

(잠시 찌푸리다가) 왜.

양성태

누구냐고요. 방금 나간 사람.

강보영

누구. 소지원?

양성태

아, 그래, 그래. 그··· 맞죠?

강보영

<우리는 존재합니까> 작가. 나랑 오래 같이 한.

양성태

(얼굴이) 좋네. 좋아.

강보영

헛소리하지 말고. (사이) 뭐래?

양성태

? 아. 세라 선생님이요.

강보영

(작게) 선생님은 (무슨)······.

양성태

그게, 피디를 바꿔달라는 데요.

강보영

뭐?


     사이.

     양성태가 강보영의 젤리를 먹는다.

     강보영이 빼앗는다.


강보영

뭔 소리냐고, 그게.

양성태

울었어요. 메인 작가 붙들고. 그런 눈빛으로 앉아 있는데 어떻게 내가 비밀을 말하고 개그를 치냐고!

강보영

개그를 왜······. 아니, 것보다. 지금 내 눈빛 말하는 거야?

양성태

(몰래 젤리 집어먹는) 웃질 않아서요. 선배님이.


     강보영, 기가 막히다.


강보영

내가 왜 웃어야 되는데? 내가 방청객이니?

양성태

별별 사람 많아요. 특히 연예인들은. 트집 잡고 싶으면 뭔들 못 잡아. 난 사랑받고 살았다- 이거예요. 꼭 한물간 것들이 그러지······. 우리 프로가 그래서 힘들다니까. 한물간 사람들 나와서 고해성사하는 프로잖아요.

강보영

······.

양성태

(젤리 냠) 메인 작가가 알아서 달래 보냈으니까 걱정 마시구요. 

그래도 리액션은 좀 하시는 게 좋을 걸요. 그래야 그 사람들도 다 신나서 할 말 못 할 말 떠드는 거니까······. <우리는 존재합니까>가 아니잖아요. 출연자가 웃으면 좀 따라 웃고. 울면 또 따라 울고. 그래줘야 돼요. 방청객처럼.

강보영

나 거기서 수십 번 웃고 수천 번을 울었어. 방청객인 적 단 한 번도 없이. 야, 양성태. 너나 할 말 못 할 말 좀 가려서 해라.

양성태

···옙.


     양성태가 강보영의 화면에 있던 영상을 발견한다.


양성태

근데 그건 뭐예요? 우리 거 아닌 거 같은데.

강보영

(끈다) 관심 꺼.

양성태

설마 <우리는 존재합니까> 아니죠?

강보영

응. 아니야.

양성태

설마 좌천됐으면서 혼자 몰래 그거 편집하는 거 아니죠?

강보영

야.


     강보영이 대충 양성태를 발로 차고, 양성태가 잽싸게 피한다.


강보영

너, 진짜, 경고하는데. 남 일에 관심 좀 꺼.

양성태

남 일에 관심 끄고 사람을 어떻게 찍습니까.


     강보영, 무시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양성태

선배님도 이제 거기 관심 끄세요. 같이 시작했어도, 다 같이 끝낼 순 없는 거잖아요. ···아시면서.


     사이.

     양성태가 돌아간다.

     강보영, 화면을 가만히 바라본다.


     3.


     영상.

     1989년의 코미디 방송 오프닝.

     경쾌한 노래 속, <웃음 지옥> 제목 나온다.


     김세라의 개그 코너가 짧게 흘러나온다.

     젊은 시절의 김세라가 앞치마에 두건, 뽀글머리를 하고 있다.


     과장된 웃는 얼굴로 김칫국을 들고 있는데,

     고주망태가 된 남자(남편)가 양복차림으로 귀가해 김칫국으로 세수를 한다.

     여전히 웃고 있는 김세라 앞치마를 수건처럼 들어 얼굴을 슥슥 닦는 남자.


남자

미워죽겠지?


     김세라가 앞치마에서 주방가위 꺼내들고 겨눈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김세라의 옷에 꽂아준다.

     김세라가 게슴츠레 웃는다.


김세라

(기쁜 듯) 미워죽겠냐, 좋아죽겠지! 


     김세라, 죽는 시늉.

     시청자 웃음소리 나오며 코너 끝.

     자막으로 ‘이어서 청춘스타 배양희의, 드라마 <여자의 변신은 무죄>가 방송됩니다’


     영상이 끝난다.


     4.


     김세라가 뽀글머리 가발을 쓴 채 거울을 보고 선다.

     화장을 고친다.


     김세라의 매니저 윤호영이 나타난다.


김세라

봤어요? 리허설 때까지만 해도 허리 주머니에 넣는 걸, 방송할 때만 가슴팍에 꽂는 거. 그 선배 방송을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해요?

윤호영

말조심해. 어디서 다 들어. 네가 아직 그 선배 깔 급이나 되냐.

김세라

(웃는) 내 매니저 맞아요?

윤호영

너 관리하는 게 내 일이잖어. 야, 말숙.


     윤호영이 아이스크림을 툭 던진다.


김세라

아. 좋아. 됐어. 다 잊어야지.


     김세라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윤호영

그렇게 좋냐? 하루에 몇 갤 먹는 거야.

김세라

한··· 세 개? 이것도 참는 거예요.

윤호영

그거 광고 제의 들어왔다.

김세라

정말? 나한테?


     김세라가 방방 뛴다.


김세라

정말이죠? 아, 너무 좋아.

윤호영

아직 답은 보류.

김세라

응?


     사이.


김세라

왜요? 일정이 안 맞아? 무조건 해야죠! 첫 광곤데.


     윤호영이 김세라에게 사진을 던진다.

     김세라가 사진을 본다. 잠시 말이 없다.


윤호영

첫 번째 경고.

김세라

뭐예요 이게?

윤호영

넌 꼭 내가 답을 말한 뒤에 질문하더라.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김세라

누가 찍은 거예요?

윤호영

누구겠니.

김세라

······. 나 미행했어요?

윤호영

미행? (잠시, 웃는다) 말숙아. 내가 널 왜 미행해. 넌 그냥 나랑 늘, 동행하는 거야. 모르겠어? 그게 내 일이잖아. 네가 사람 웃기는 게 일인 것처럼.

김세라

쉬는 날이었잖아요. 이건··· 이건 내 사적인 일이고······. 친구예요. 매니저님한테 설명할 필요 없지만.

윤호영

당연히 친구지. 말숙아. 내 말은.


     김세라에게서 사진을 빼앗아 찢어버리는 윤호영.


윤호영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거야. 제발.

김세라

······.

윤호영

너 탤런트 배양희 얘기 못 들었어? 지금 징그러운 찌라시들 얼마나 도는 지 알아? 여자를 만난다느니··· 스와핑을 한다느니.

김세라

스와··· 그게 뭔데요.

윤호영

알 거 없고. 그 여자뿐만 아니야. 네가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나본데, 여기는 그냥 뭐 하나 흠 잡힐 것만 있으면. 그게 흠이 아니라 이따만한 구멍이 돼 버린다고. 네 몸뚱이보다 큰 구멍이 뻥! 뚫리는 거야. 너 그러고 싶어? 난 네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윤호영이 녹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준다.


윤호영

친구는 밝을 때, 여럿이서. 화내고 싶을 땐 차라리 눈물. 마지막은 항상 스마일. 알지? 스마일.


     윤호영, 김세라의 뺨을 가볍게 톡 친다.


윤호영

챙겨서 나와. 광고 계약하게.


     윤호영, 나간다.


     김세라가 혼자 남아 거울을 본다.

     김세라가 옆에 있던 물병을 거울에 세게 집어던진다.

     거울은 꼼짝없고, 뚜껑이 열려있던 물병에서 물이 왈칵 쏟아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문이 열리고,

     강보영이 들어온다.


강보영

(발견하고) 어······. 안녕하세요.


     김세라가 잠시 강보영을 본다.


김세라

피디님?

강보영

양성태 올라오고 있어요. 오늘 좀 늦으신다고 들었는데. 죄송해요. 비밀번호 알려주셨다길래. ······. 주인 같네요. 제가.


     사이.


김세라

아··· 그러네요. (웃는) 좀 일찍 끝나서. 먼저 왔어요.


     잠시 어색한 침묵.


김세라

어디 좀 앉으세요. 의자랑 다 빼버려서··· 휑하네.

강보영

그러게요. 그림이 좀 별로겠는데.


     다시 침묵.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문이 열리고, 양성태가 들어온다.

     양성태, 들어오자마자 형광등을 켠다. 밝아지는 공간.


양성태

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 아으··· 냄새.


     양성태, 김세라를 발견하곤 입을 다문다.


양성태

아니··· 에어로빅 하던 데라 그런지. 막 회원들이 열심히 땀 흘리던 냄새가 나네······. 열정의 체취!

강보영

짐 다 갖고 올라온 거야?

양성태

네. 세팅할까요?

강보영

그냥 자연스럽게 찍자. 몇 컷 못 찍겠다.

양성태

(강보영에게만 작게) 근데 오늘 쎄라쎄라 머리 죽이네요. 선배님 아이디어?


     양성태, 김세라를 본다.

     강보영, 덩달아 김세라를 본다. 

     그제야 김세라의 뽀글 가발을 눈치 챈다.


강보영

······.


     김세라, 머리를 만져보고 깨닫는.


김세라

아, 이거. (호탕하게 웃는) 어때요? 옛날 느낌 나나? 옛날에 쓰던 거거든요. 혹시나 해서 집에서 챙겨왔는데.

양성태

와. 쎄라쎄라 선생님 아이디어셨구나! 진짜 그 90년대 가발이에요?


     양성태, 가발 가져가서 만져본다.


김세라

조심해요. 이 옮을라.

양성태

예? ···말도 안 돼.


     양성태, 가발 써본다.


강보영

(잠시 생각하다가) 좋네요. 그걸로··· 옛날 얘기 하시면 되겠네.

김세라

좋아요? 정말? (웃는) 피디님한테 칭찬을 다 듣네요.

강보영

절 얼마나 보셨다고······.

양성태

저 어때요? 미워죽겠냐? 좋아죽겠지! (꽥)


     김세라, 박수친다.


강보영

쓰진 말고··· 그냥 여기 센터에 보관했던 거 발견한 것처럼 가시죠.

양성태

근데 그러기엔 짐을 너무 치우지 않았어요?

김세라

아, 아니에요. 여기. 원장실에 내 짐 많아요. 산더미야.

강보영

그럼 원장실로 가시죠.

김세라

네······. 마실 것 좀 드려요? 차 있는데.

양성태

저 믹스요!

김세라

아, 물이 없구나 참.

양성태

(물 밟고) 윽, 웬 물이에요? 닦으셔야겠는데.


     양성태가 으쓱하며 카메라를 챙겨 원장실로 간다. 강보영도 가려는데,


김세라

강보영 피디님.

강보영

······?

김세라

방송 봤어요. 피디님 전에 하던 프로그램.

강보영

···아. 네.

김세라

아주··· 날아다니시던데. 날다람쥐처럼. 잽싸게. 마이크도 막 휙 휙 들이대고. 물대포도 맞고. 엄청나대요.

강보영

예. 뭐.

김세라

사과문 나온 것도 봤는데. 성소수자, 어쩌고 하던 거.

강보영

······.

김세라

성소수자 특집? 그게 문제가 됐어요? 다시보기도 없던데···.

강보영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데요.


     사이.


양성태

(목소리만) 어우, 여긴 짐이 너무 많은데? 선배님! 짐이 너무 많은데요?


     사이.


김세라

동성애자예요? 강보영 피디님.


     김세라의 얼굴을 빤히 보는 강보영.

     김세라, 어딘가 화난 것 같은 얼굴이다.


강보영

굉장히 무례하시네요.

김세라

중요해서 그래요.

강보영

그게 왜 중요하시죠?

김세라

같이 방송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강보영, 표정 변화 없이 김세라를 바라본다.


강보영

연예계가 어떻고 방송이 어떻고. 저 그런 거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전 그냥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일을 합니다. 김세라 씨. 방금 발언, 제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인권위원회 송부 가능합니다.


     사이.


강보영

다만 지금 저는 굉장히 피곤하고, 이딴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까,

김세라

이봐요, 피디님! 내 말은···

강보영

듣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러니까······


     강보영이 짧게 고단하게 한숨을 뱉는다.


강보영

적당히 하시죠.


     강보영이 원장실로 간다.

     김세라, 혼자 남는다.


     5.


     영상.

     마루에 아무렇게 놓인 카메라가 할머니의 집 마당을 찍고 있다.


     무대.

     강보영이 그곳을 걷는다.


     영상.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곧 교복을 입은 어린 강보영이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

     손에 꽃을 들고 있다.


강보영

할머니!


     무대.

     강보영이 들고 있던 얇은 점퍼를 대충 걸친다.


     영상.


강보영

아직 안 오셨나.


     강보영이 비 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집에 뛰어 들어간다. 잠시 후, 꽃삽을 들고 나온다. 


     무대.

     강보영이 영상을 바라본다.


     영상.


강보영

(어딘가에 대고, 씩 웃으며) 아직 오지 마세요---


     강보영이 마당을 살피다가, 구석에 땅을 파기 시작한다.


     무대.

     강보영이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영상.

     강보영, 무언가를 발견한 듯. 땅을 손으로 헤집어본다.


     무대.

     강보영이 사라진다.


     영상.

     빗방울이 굵어진다. 강보영, 꼼짝도 하지 않는다.


     6.


     김홍주가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다.

     중간중간 낄낄 웃는다.


     강보영이 들어온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잠시 보다가, 김홍주의 앞에 와서 카메라를 놓는다.


김홍주

(수어) 너 끝내준다.


     김홍주가 핸드폰 화면을 강보영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존재합니까> 안에서 비에 젖은 채 마이크를 들고 달리는 강보영.


김홍주

(수어) 무슨 방송 하는지 몰라서, 오늘 처음 봤어.

강보영

(수어) 누가 말했어?

김홍주

(수어) 동네 사람들. 나 빼고 다 알더라.


     사이.


김홍주

(수어) 할머니가 보셨으면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사이.


김홍주

(수어) 할머니 유서, 봤어?


     강보영이 김홍주를 본다.


김홍주

(수어) 안 봤어? 집에 가보랬잖아. 거기 있는데.

강보영

그걸 내가 왜 봐.

김홍주

(수어) 너한테 남긴 거니까. 네가 할머니 가족이잖아.

강보영

할머니 가족은 너지.

김홍주

(수어) 할머니 들으시면 섭해.

강보영

너랑 나랑 둘 다 할머니 피 한 방울 안 섞인 건 마찬가진데. 할머닌 나랑 말 한 마디 안 했어.

김홍주

(수어, 농담) “말”? “말”은 나랑 안 했지.

강보영

재미없어.

김홍주

(수어) 야, 할머니가 너 데려와 자식으로 길렀잖아. 난 그냥 어디까지나 이장 손자였고.

강보영

아니잖아.

김홍주

(수어) 뭐라고?

강보영

너 그냥 이장 손자 아니잖아. 할머니 애인 아들이었지.


     김홍주, 대답 없다.


강보영

오늘은 그 얘기 좀 하자. 네가 알면서 모른 척한 것들에 대해.


     강보영, 카메라를 켠다.

     김홍주의 모습이 스크린 영상으로 송출된다.


김홍주

(수어)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강보영

배양희가 나 찾아온 날부터.

김홍주

(수어) 배양희?

강보영

너 ‘엄마’. 그건 몰랐니?

김홍주

(수어) 탤런트 배양희······? 그 사람이 내 엄마라고?

강보영

그딴 거 말고. 네가 알던 얘기 하라고.

김홍주

(수어) 너 뭐야. 나 왜 찾아온 거야?

강보영

(코웃음) 웃긴다. (수어) 네가 다 잘 넘겨짚었잖아. 첫날.

김홍주

(수어) 난 몰랐어. 그것도 나중에 알았어. 할머니 애인이 내 엄마라는 거.

강보영

(수어) 몰라? 그럼 할머니가 널 왜 그렇게 감싸고 돌았겠니.

김홍주

(수어) 할머닌 그냥, 정이 많은 분이셨어.

강보영

할머니가 정이 많다고?


     강보영이 잠시, 진심으로 소리 내어 웃는다.


강보영

할머니랑 같이 산 15년 간, 나 할머니 웃는 얼굴 한 번 못 봤어. 자기가 시장에서 멋대로 주워다놓곤 날 주워온 생선 취급 했다고. 아니, 생선이 나을 수도 있지. 생선은 내버려두면 썩어서 냄새라도 나지. 그러니까 다시 갖다 버릴 수라도 있지.

김홍주

(수어) 무슨 소리야. 할머니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 너랑 너희 할머니 손가락질해도, 들은 척 안 하고 끝까지 너 키웠어.

강보영

그 손가락질을 내가 왜 당했는데. 할머니가 나 안 데려갔으면, 굶어 죽었을지언정 손가락질은 안 당했어.

(수어) 나한테 너 자랑을 얼마나 했는데. 네가 영화감독 될 거라고. 네가 얼마나 똑똑한지 아냐고.

(수어) 할머니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든 나 상관없어. (구어) 넌 내가 아니잖아.

김홍주

(수어) 내가 널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보영아.

너 왜 그래. 할머니 투병 오래하셨어. 너 떠나고 많이 힘들어하셨어.

대문 꽁꽁 걸어 잠그고 사시던 양반이, 잘 때도 열어놓고 주무셨어. 너 혹시 돌아와 헤맬까봐.

강보영

진짜 가증스러워. 너희 두 사람 다.


     강보영, 나간다.

     김홍주, 잠시 남는다.

     곧 반대편으로 나간다.


     카메라와 빈 화면만 남는다.


     7.


     화면이 검게 변한다.

     검은 화면에서 무언가 재생되고, 소리만 흘러나온다.

     할머니의 목소리다. 허스키하고 낮은, 다정함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는 목소리.


     “시장 바닥에서 생선 대가리 줏어 먹고 있는 거 데꼬왔다니까. 이유가 어디 있나. 그냥 말라비틀어져가지고. 핵교 댕길만치 큰 거 같은데, 엄마도 몰라. 집도 몰라. 어느 짝에서 왔는지도 모른다는 애를 그럼 우야노. 배고프다고 참새 새끼 맹키로 뺙뺙 뺙뺙. 야, 할매 할매 하지 마라. 니 할매 아니다. 그냥 밥 맥여주고 있는 할매. 어쩌다보이. 그렇게 됐다꼬. 어쩌다보이. 니는 좌우지간 궁금한 게 뭐 그리 많나. 그냥 어쩌다보이 사는 거다. 다. 다 그런 거라꼬. 남들 다 그냥 그러고 산다. 태어난 대로, 내 팔자대로.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그게. (잠시의 적막 후, 술 따르는 소리, 가래침 뱉는 소리)”


     암전.


     8.


     방송국 근처 식당.

     강보영과 소지원이 밥과 술을 마시고 있다.


     소지원은 이미 꽤 취한 상태.


소지원

그래서 제가 그랬거덩여? 피디니이임! 저도 생각이란 걸 할 줄 압니다아! 설마 제가!  프로 망하게 할라구 그러겠습니까아!?


     소지원이 상추를 던진다.

     강보영이 상추를 다시 집는다.


소지원

그랬더니 그 자식이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소지원이 벌떡 일어난다.


소지원

박수를! (박수 친다) 막! 치는 거예여!


     강보영이 피식 웃는다.


소지원

아니! 사람을 놀리려고 작정을 했나! 엄청 열이 받았죠, 내가! 아오씨! 이 미! 친! 인간아! 씨이발! 나 진짜 화났거든!


     소지원이 픽 앉는다.


소지원

뭐라는 줄 알아요? 나더러··· 내가 우리 팀에서 처음 화낸 사람이라고······. 나한테 선물을 주는 거예요······. 상품권이요. 5만 원짜리. 진짜 저 미친놈인 줄 알았잖아여······. (웃는다) 우리 팀이 너무 네네, 해가지고··· 피디님이여··· 우리 팀 거의 네네치킨인 줄 알았대여···. (잠시 미친 듯이 웃는다) 근데 진짜 그걸 주더라니까요. 상품권이요. 신세계······. 거기 리본도 달려 있는 거예여. 그걸 가방에 맹, 날, 갖고 다녔대요. 흐흐.


     강보영이 술을 마신다.


강보영

아이템 잡기 힘들다며. 그건 좀 어때?

소지원

아. 아이템. (술 마시는) 졸라 힘들져. 당장 다음 회차도 펑크 나가지고······

강보영

(놀라는) 뭐? 아니, 왜 펑크가 나?

소지원

누가 문제를 또 삼아가지고··· 아니 그 정도는 진짜··· 문제도 아니에요. 근데 피디님이 맨날 조심하자고. 사고 치지 말자고······. 몸을 줜나 사려요. 맨날. 탕비실에서 데오드란트 겁나 뿌려. 배꼽에도 뿌려. 미친 인간···. 우리 보영 선배 같으면 분명··· “야! 씨발! 내가 책임져! 킵 고잉!”이랬을 텐데. 아오······. 와이 낫!?

강보영

(주변 한번 살피고) 지원아. 소지원. 이리 와 봐.


     강보영이 몸을 기울이면, 소지원도 강보영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강보영

2편. 내보내는 거 어때.

소지원

···에? 이편이요? 이편이···가 누구지. 이편이.

강보영

성소수자 특집 2편 말이야. 우리 다 찍고, 편집까지 끝낸 그거. 내가 후작업도 다 해놨어. 그대로 내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소지원

······.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소지원이 술을 마신다.


강보영

내가 슬쩍 물어봤거든, 석피디한테. 근데 반응 나쁘지 않았어. 방송하게 되면 좋겠다고 그랬다니까.

소지원

아. 그래요? 근데 그거, 우리 피디님 말버릇인데.

강보영

뭐가.

소지원

잘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요. 그냥 맨날 하는 말인데. 저번에 노작가님 아들 군대 갔다니까 “잘 가면 좋겠네요.” 그랬다가 혼났잖아여.

강보영

지원아. 아깝지 않아? 우리 열심히 준비한 거잖아. 얼토당토 않는 트집 잡아서 그쪽에서 항의할 거라는 거 우리 어차피 다 알았잖아. 차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왜 봐야 하냐, 동성애자 울고 죽는 걸 왜 내보내냐. 좆같은 현실은 죽어라 외면하는 사람들. 이제 진짜 지겹잖아. 내가 나가는 상황까지도 각오했던 거고. 우린 그냥 우리 길을 가면 되는 거야. 우리가/

소지원

/저는 아닌데요.


     사이.


강보영

뭐가 아니라는 거야?

소지원

아깝죠. 당연히 아까워요. 그거 준비하느라 선배랑 우리 팀 전부 며칠을 밤샜잖아요. 이런 상황 올 거라는 거, 다들 시작할 때부터 엄청 걱정했구요. (사이) 근데 뭐가 우리 길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당황스러운 강보영의 얼굴.


소지원

그게 우리 길이라고 말한 거, 늘 선배였잖아요. 선밴 늘 그랬어요. 뭐에 홀린 사람처럼··· 경주마처럼 달리잖아요. 옆 사람은 보지도 않고···

강보영

나 지금 진짜 이해가 안 되거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희는, 너희는 소수자 인권··· 그니까 우리 프로그램이 여태 말하려던 그 메시지가, 틀렸다고 하는 거야?

소지원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그게··· (고개를 세게 한 번 젓고) 제가 술 취해서 말이 정리가 안 되는데요···! 그러니까, 메시지, 좋아요. 당연히 좋고··· 아니, 당연히 중요하죠. 차별 없는 세상. 그런 거 위해서 나도 싸우고 싶어요. 지금은요! (사이) 그런데 선배랑 일하면서는··· 뭔가 달랐어요. 그냥··· 내가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았다구요. 우리 다 그랬어요. 선배한테 존재하는 건 저들이지 우리가 아니라고···. (웃는) ‘저들만 존재합니까’··· 막 그랬다고요···.


     사이.


소지원

아씨······ 뭐라는 거야··· 아아··· 혀 간지러.


     소지원이 혀를 긁는다.


     사이.


     멀리서 목소리가 들린다. “선배니임!”


     소지원이 고개를 푹 숙인다. 목을 가누기 힘든 듯.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린다. “선배님!”


     곧 양성태가 들어온다.


양성태

언제 오셨어요!


     양성태가 빈 의자에 앉는다.


양성태

저희 쩌어쪽 카운터 쪽에 앉아 있었어요. 오신 줄도 몰랐··· (소지원을 발견한다) 헐. 설마 이 아리따운 뒤통수는······.


     양성태가 소지원의 머리카락을 슬쩍 들어보는데,


강보영

왜.


     양성태가 강보영을 다시 본다.


양성태

예?

강보영

······.

양성태

···? 왜 왔냐고요? 김치찌개 먹으러 왔는데.


     강보영이 술을 마신다.


양성태

근데 쎄라쎄라 아줌마요. 메인 작가가 아이템 좀 바꾸면 어떻겠냐는데.

강보영

뭘로.

양성태

원래 아줌마 비밀 있잖아요. 두 번째 결혼. 그거 말고,

강보영

두 번째 결혼?

양성태

(질색) 몰랐어요? 그거 첫날 회의에······. 아, 그날 아직 안 계셨나?

강보영

대본도 전날 주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양성태

아무튼. 그거거든요. 우리 마지막 날 비밀의 방에서 말하는 거. 최근 남편이랑 결혼하기 전에 결혼을 한 번 했었대요. 근데 작가들이 시청률이 너무 안 나온다고, 차라리 그 스캔들 얘기 하는 게 어떻겠냐던데.

강보영

뭔 스캔들.

양성태

옛날에 왜. 김말숙 동성애 스캔들이요. 한참 떠들썩했잖아요.

강보영

동성애 스캔들? 

양성태

나보다 오래 사신 분이 왜 죄다 모른대. 여자랑 뽀뽀하는 사진 찍혀가지고, 해명하는 기자회견도 하고. 

강보영

······.

양성태

그러고 나서 방송해도 인기가 없어지니까, 매니저랑 결혼 발표하고 연예계 뜬 거 아니에요.

강보영

그 매니저가 첫 번째 결혼이라고?

양성태

아뇨오. 그 매니저가 최근에 죽은 남편. 그 전에 한 명이 더 있었다는 거죠. 엄청 어릴 땐데···.

강보영

그래서.

양성태

그 사건 얘길 좀 떠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던데. 피디님이요. 동성연애 스캔들.

강보영

그러니까 날더러,

양성태

비밀을 바꾸자 이거죠. 두 번 결혼한 얘기는 그냥 중간 에피로 넣고, 비밀의 방에서는 쇼킹하게 그 스캔들 얘길 갑자기 꺼내는 거지. 괜찮지 않아요?

강보영

애초에 비밀이 있어야 비밀의 방에서 얘길 하지. 거기 무슨 비밀이 있어.

양성태

아이. 내용은 상관없죠. 그냥, 그냥 그 사건 얘길 꺼내는 것만으로도 기사가 아마 엄청 쏟아질 걸요. 그럼 김세라 씨한테도 결국 좋은 거고. 안 그래요?

강보영

······.

양성태

(술 마시고) 여기가 원래 그래요. 같은 교양 쪽이라도, 성격이 완전 다르다고. 선배님도 이제 적응하셔야죠. 그래야 잘 버텨서 다시 돌아가든 하지.

강보영

(본다)

양성태

다 알아요. <우리는 존재합니까> 돌아가고 싶은 거 아니에요? 이딴 저급한 거 말고. 고고한 거 하고 싶으시잖아.

강보영

그거랑, 김세라 스캔들이 무슨 상관인데.

양성태

모르잖아요, 또. 선배님 전공이니까.


     양성태가 쩝쩝 안주를 먹는다.


양성태

알고 보면 비밀이 있을 수도 있죠. 선배님 덕분에 그걸 말하게 될 수도 있고. (살피다가) 물론, 그건 본인 선택이겠지만요. 그쵸.

사실 이미 그거 진짜라고 다들 알고 있었대요. 방송가에선. 만약에 그런 거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평생 거짓말 하면서 산 건데. 안 불쌍해요? 선배님 같은 사람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는 거고.


     강보영, 듣기 싫은 듯 일어난다.


양성태

가시게요?


     강보영, 나간다.


양성태

아니, 계산은요!


     강보영, 사라진다.


양성태

그럼 이분은?


     양성태가 소지원을 보다가, 강보영이 사라진 쪽을 다시 본다.


     9.


     영상.

     과거에 방송되었던 <우리는 존재합니까>의 일부분이다.

     강보영이 카메라를 들고 뒷모습으로 등장하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다.


강보영

기도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인터뷰이

엄마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걸 보면서요? ···참담했죠. 왜냐면, 엄마는 진짜 나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 00이, 제발 살려주세요. 평범하게 그냥 행복하고 탈 없게··· 정상으로 좀 잘 살게 해주세요. 엄마 표정을 보면요.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어요. 울기도 울고. 몇 시간씩 하실 때도 있고.

강보영

그런데 그 기도가 ○○ 씨에게는 결국···/

인터뷰이

/절 죽게 만든 거죠. 결국엔.

강보영

뭐라고. 뭐라고 하셨어요. 그럴 때. 어머니께?

인터뷰이

말이요? 못해요. (사이) 못하죠. 그냥 속으로만 그러는 거죠. 엄마! 기도하지 마세요. 나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사이) 기도할 때도 있어요. 누구한테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해요. 제발 우리 엄마한테 기도 좀 그만하라고 하세요. 제발······.



화면이 넘어간다. 장례식장 화면. 울고 있는 목소리들이 나열된다.


     10.


     과거.

     비가 온다.


     어린 강보영이 마루에 누워 카메라로 하늘을 찍고 있다.

     강보영이 찍고 있는 하늘이 영상에 흘러나온다.


강보영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느 하늘에서 떨어지든, 빗방울은 모두 빗방울이다. 무슨 일이 있던 땅이든 빗방울은 떨어진다. 빗방울은 침묵한다. ···빗방울은 침묵하지 않는다. 빗방울은 소란하다. 무슨 일이 있던 땅마다, 모두 다른 소리로 부딪친다. 


     그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

     강보영,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화면은 가려지고, 녹화가 되고 있다는 표시만.


     배양희가 우산을 썼지만 모두 젖은 채 들어온다.


강보영

···누구······.

배양희

(다가오며) 보영···?

강보영

배양희······?


     배양희, 다가와서 우산을 접는다.


강보영

배, 배양희 맞아요?

배양희

(웃는) 안녕.

강보영

배양희가 왜 우리 집에······.

배양희

근처에 촬영 올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어.

강보영

저희 집에요···?


     배양희가 앉는다.


배양희

좀 닦아도 될까?


     강보영이 옆에 있던 수건을 건넨다.

     배양희가 수건을 받고, 깊이 냄새 맡는다.


강보영

안 쓴 거예요. 비 와서 냄새가······.

배양희

좋다.


     강보영이 배양희를 곁눈질로 힐끔 힐끔 본다.

     배양희는 천천히 마당을 살핀다.


배양희

동네에 정말 오랜만에 왔어. 십 년도 더 됐는데. 동네 분들은 여전하시더라. 반갑다고 비싼 술을 막 뿌려주시던데. (웃는)

강보영

여기 살았어요? 배양희··· 아줌마가요?

배양희

여기서 태어나 자랐어.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반복했지만 이젠 완전히 떠나버렸지.


     배양희가 강보영을 가만히 본다.

     강보영, 숨이 멎을 듯.


배양희

닮았다. 경주 언니랑.

강보영

···할머니를 알아요?

배양희

할머니? (웃는) 그래, 할머니가 됐지 참.

강보영

여기 살 때 친했어요? 할머닌 그런 말 없었는데······. (덧붙이려다 입을 다문다, 그러다가 문득) <침묵의 춤> 봤어요. 일곱 번 봤어요. 극장에서.

배양희

정말? 시내까지 나가려면 힘들었겠다.

강보영

어떤 날은 하루에 세 번도 봤어요.

배양희

그렇게 좋았어, 그 영화가?

강보영

아뇨. 그냥 극장에서 상영하는 게 별로 없어서.


     배양희가 웃음을 터트린다.


배양희

성격도 닮았구나. 영화 좋아해?

강보영

같이 상영하는 미국 영화는 열한 번 봤어요.

배양희

용돈을 많이 받나 보네.

강보영

다른 데 안 쓰거든요. 근데 저··· (꼴깍) 한 번만 찍어 봐도 돼요?

배양희

응?


     강보영이 카메라를 가리킨다.


배양희

언니가 사줬니?

강보영

주워다 줬어요. 시장에서.

배양희

좋은 걸 잘도 줍는 구나.

강보영

옆모습··· 싫으면 뒷모습이라도.

배양희

이왕 찍는 거 앞모습이 좋지 않겠어?


     강보영이 잽싸게 카메라를 들고, 배양희를 담는다.


배양희

웃기지. 직업병이라는 게. 네 눈 볼 때보다 카메라를 보니 맘이 더 편하다.

강보영

저도 그런데.

배양희

너도 직업병이야?

강보영

저도 카메라로 볼 때가 더 편해요. 근데 여긴 왜 오셨어요? 할머니 만나러?

배양희

아니. 없대서 왔어.

강보영

왜요?

배양희

널 보러.

강보영

···날요?

배양희

언니가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 데려왔단 소리 듣고 구경 왔지.

강보영

······.

배양희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이 집에 참 관심이 많더라. 피곤하지. 그치?

강보영

이젠 익숙해요.

배양희

음··· 그 표정은. 알겠다. ‘다른 게 더 힘들어요.’

강보영

(작게 놀란다)

배양희

잘 읽지.

강보영

······. 전 그냥, 사는 게 다 힘들어요.

배양희

그래?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제일 힘든 게 따로 있을 걸. 

강보영

······.

배양희

뭉뚱그리지 말고, 정확히 봐야 해. 그래야 근원을 찾고, 뭔갈 끝낼 수 있어. 전부 다 힘들다고 퉁치는 순간 너무 캄캄해지지 않니?

강보영

아줌마는······. 우리 할머닐 잘 알아요?

배양희

······(웃는) 나한테 질문이 올 줄은 몰랐는데.

강보영

할머닌 평생 이 집에 살았대요.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를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어요. 근데도 할머니는 여기 평생 살았어요. 혼자서요. 그런데 어느 날 나를 데려와 놓고······.


     사이.

     강보영이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강보영

할머니가 어떻게 삶을 버티는 건지 궁금했어요. 모든 게 할머니를 괴롭히고, 할머닌 모든 걸 증오해요. 

배양희

···그래.

강보영

근데 이제 그 ‘근원’이 뭔지 알았어요.

할머니는, 저기(마당)에 모든 걸 묻었어요.

내가 봤어요. 모든 걸··· 그냥 묻어버렸어요. 전요, 이제 이 집에 사는 게 너무 끔찍하게 느껴져요. 내 발 밑에 뭐가 있는지··· 이제 모르겠어요. 너무 겁이 나고, 두려워요······.

배양희

···거기 뭐가 있어?


     강보영이 공포스러운 얼굴로 마당을 바라본다.

     배양희, 함께 그곳을 바라본다.


강보영

영원한 침묵······.


     빗소리 잦아든다.

     배양희, 카메라를 들고, 강보영을 찍는다.

     강보영, 놀라서 피한다.


강보영

···뭐예요?

배양희

나 카메라 처음 들어봐. 맨날 찍히기만 했지. 이거 생각보다 무겁다.

강보영

그거 엄청 가벼운 모델인데. (뺏으려다가 실패한다) 주세요.

배양희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강보영

······. 아직 없어요. 그냥 좋아하는 영화는 많지만.

배양희

음. <침묵의 춤>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강보영

···춤이요. 배양희··· 아줌마랑, 남자 주인공이랑 첫눈에 반해서 춤추던 거요. 좀 식상하긴 하지만······ 장소가 버려진 공장인 게 좋았어요. 심지어 둘이 납치된 상황인데.

배양희

그치? 좀 현실성 없지 않아?

강보영

그러니까 영화죠. 의상도 진짜 좋았어요. 새빨간 드레스.

배양희

그래도 파티 하다가 납치돼서 다행이지. 목욕하다가 납치된 거였어 봐.

강보영

······. 그럼 장르가 좀 바뀌겠네.

배양희

(웃는) 나도 그 장면 좋아해. 버려진 곳에서 새로운 게 태어나는 거잖아.

강보영

근데 제일 좋았던 건······ 춤이었어요.

배양희

?

강보영

춤추시던 거요. 빨간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데, 거기에 아무 소리도 없잖아요. 두 사람이 서로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그때 딱 제목이 떠오르는 거죠. <침묵의 춤>!

배양희

근데 실제론 시끄러웠어.

강보영

···예?

배양희

촬영할 때. 밖에 비왔거든. 빗소리에, 헉헉대는 숨소리에, 엄청 힘들었어. 백 번 넘게 췄을 걸. 바닥에 신발 끌리는 소리 끼익 끼익.

강보영

그랬구나······.

배양희

근데 소리 딱 끄니까 되게 멋있는 것처럼 보이더라. 찍을 땐 이거 너무 바보 같지 않나, 그랬는데.

강보영

보고싶다.

배양희

응?

강보영

그 장면, 보고 싶어요. 실제로.

배양희

(씩 웃는) 너 꼭 감독 돼야겠다.


     강보영, 카메라를 다시 가져온다.


강보영

오늘 찍은 걸로도 만족해요.


     배양희가 웃는다.


배양희

나 가봐야겠다.

강보영

···할머니, 안 만나요?

배양희

너 보러 왔다니까. 소문이 자자해서.

강보영

······. 감사합니다.

배양희

내가 더.


     강보영,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보는데, 배양희 그대로 나간다.

     손을 흔들며. 또 보자, 입모양으로.


     11.


     강보영이 혼자 앉아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다.


     영상.

     과거, 젊은 김세라가 테이블 가운데 혼자 앉아 있다. 


김세라

아닙니다. 저는··· 저는 절대 그런 짓을 하는 여자가 아니에요. 여중 여고 나온 분들은 다 알 거예요. 여자친구들끼리 친하면 뭘 하는지요. 손도 막 잡구요. 알사탕도 입에 있던 거 꺼내주고요. 서로 막 브래지어 끈도 푸르고 달아나고. 가슴도 커지라고 주물러줘요. (주무르는 시늉)


     ‘왜 저래···’ 하는 당시 기자들의 작은 탄식. 웃음. 그리고 플래시 세례.


     컷이 편집으로 나뉘고, 다음 장면. 

     김세라가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흘리고 있다.


김세라

그런 사진을 찍히고 여러분들을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걔는 그냥 친구입니다. (코를 푼다) 저는 남자를 사랑합니다. 보여드려야 믿으시겠어요? (일어난다)


     김세라를 클로즈업 해서 찍던 카메라가 급하게 화면을 뒤로 민다.


김세라

저기, 저 스포츠고려 박기자님. 이리 좀 와보세요.


     남자 기자 한 명이 다가간다.


김세라

저번에 저한테 그깟 입술이 뭐이리 비싸냐, 하셨죠?


     김세라가 기자의 입에 뽀뽀한다.

     웅성대는 사람들. 황당한 얼굴로 기자가 침을 퉤 뱉는다.


김세라

이제 믿으실 거예요? 저 김말숙이는 정말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저를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잠시) 미워죽겠냐, 좋아죽겠지! (죽는 시늉)


     화면이 꺼진다.

     강보영, 몸을 일으킨다.


     12.


     김세라가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멍하게.


     비가 옅게 내리기 시작하고, 김세라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때, 이영우가 들어온다.

     김세라, 이영우를 발견하고 담배를 비벼 끈다.


김세라

아들!


     이영우가 한약 상자를 내려놓는다.


이영우

엄마, 집안에서 좀······.

김세라

알아, 알아. 미안. 미안. 


     김세라가 아들 등을 쓸어내린다.


김세라

우리 바쁜 아들, 얼마만이야. 올해 한 번도 못 봤는데.

이영우

(한약) 와이프 처가에서 드리래요.

김세라

또? 아니, 임신한 재희 갖다 주지. 왜 날 줘.

이영우

재희 건 또 있고. 날 더우니까 건강 챙기시라고.

김세라

그 집안은 참···. 사업하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주위 참 잘 챙겨. 그치?

이영우

보통 사돈한테 이 정도는 해요.


     이영우, 앉는다.


김세라

뭐 줄까. 밥 줄까?

이영우

엄마. 요즘 촬영한다면서.


     사이.

     김세라가 앉는다.


김세라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이영우

아버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엄마가 그런 델 나가요.

김세라

1년도 넘었는데 뭘. 엄마도 이제 먹고 살 길 찾아야지.

이영우

제가 생활비 안 드려요? 에어로빅 센터 처분하고 목돈도 있을 거 아냐.

김세라

그 돈을 어떻게 다 쓰니. 너희는 이제 자식도 생기고 돈 나갈 일 천지일 텐데. 그리고 다른 것보다도,

이영우

그만 두세요.

김세라

영우야.

이영우

거기 나가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구요!


     사이.


이영우

······. 비밀 털어놓는 프로라면서요. ···엄마 비밀이 뭔데.


     사이.


김세라

(웃는) 아무리 아들이래두, 궁금하면 본방 사수해야지.

이영우

레즈비언이라고 하시게요?


     사이.


김세라

······뭐?

이영우

아빠가 엄마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아세요? 아버지 병도 다···

김세라

아버지 병이 왜! (사이) 아버지 병이 왜 나 때문이야! 아버지 병은 아버지 때문이야. 그치가 담배를 얼마나 자주 피웠는데. 난 한 개비도 안 줬어. 여자는 안 된다고. 혼자서 하루에 두 갑을 피웠어! 왜 나 때문이야!


     사이.


김세라

나 최선 다했어. 너희 아버진 다 알았어. 다 알면서 날 데려온 거야. 영우야. 내가 너한테는 너무 미안하다고······


     이영우가 일어나서 나가려는데, 김세라가 붙잡는다.


김세라

어디 가. 영우야. 밥 먹고 가.

이영우

나한테 변명할 필요도 없고, 사과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김세라

/나 때문이 아니라니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네 아버지가 죽은 거, 네가 떠난 거, 센터 문 닫은 거··· 뭐가 그렇게 다 나 때문이야!


     사이.


이영우

그냥··· 가만히 좀 계셔 주세요. 제발.


     김세라가 이영우를 놓는다.

     이영우, 나간다.

     동시에 강보영 들어온다.


     김세라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강보영

······. 안녕하세요.

김세라

네.


     사이.


강보영

담배 안 되는데.

김세라

네.

강보영

···여기 병원이잖아요.

김세라

······아.


     김세라가 서둘러 담배를 끈다.


김세라

내가 정신이 좀.

강보영

······. 몸은 괜찮으세요?

김세라

미안해요.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그냥 빈혈이 원래 좀 있는데. 병원에서 최근에 통화한 사람 목록에서 전화를 했나봐. 

강보영

괜찮아요. 마침 근처에 있었어서.


     두 사람, 멀뚱히 서 있다.


강보영

근데 아드님 왔다 간 것 같던데.

김세라

영우가?

강보영

이름은 모르지만······. 제가 도착하니까 그냥 가시더라구요.

김세라

걔가 어떻게 알고······. (문득) 별말은 없었죠?

강보영

별말이요?

김세라

아니······. 아니에요.

강보영

인사만 나눴어요. ···좀 울던 것 같던데.

김세라

잘못 봤겠죠. 우리 아들 다 컸는데. (웃는)

강보영

···별로 다 큰 느낌은 아니던데.

김세라

네?

강보영

아니에요.


     사이.

     강보영이 우산을 편다.


강보영

우산 없으시죠? 가시죠. 촬영은 그냥 힘드시면 내일로···/

김세라

/피디님. 죄송해요.


     사이.


김세라

저 촬영 못 할 거 같애요.

강보영

······네? 또 그 말씀/

김세라

/아뇨. 다른 사람 때문 아니고요. 나 때문에요.


     사이.


김세라

내가 이 정도 사람이라서요.


     빗소리.

     김세라가 빗속으로 걸어간다.

     강보영, 그런 김세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강보영의 핸드폰이 큰소리로 울리기 시작한다.


     13.


     핸드폰 소리 끊어진다.


     영상이 흘러나온다.

     강보영이 김세라를 찍은 영상들.


     김세라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김세라

마늘을 꼭 다져서 써야 돼요. 다진마늘 파는 것보다 이게 훨씬 맛있어. 쎄라 쎄라 김세라의 요리 포인트! 짜라잔. (마늘 넣는다) 냄새가 확 달라졌죠? 이게 우리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도미찜. 하도 많이 만들어서 간을 안 봐도 안다니까. (웃는다, 기분 좋은) 미워죽겠냐, 좋아죽겠지! (깔깔 웃는다)


     영상을 넘기는 강보영.

     김세라가 청소를 하고 있다. 테이블을 닦는 김세라.

     재떨이를 발견한다.


김세라

아, 이게. 남편이 담배를 많이 피워서. 주택이라··· 집에서 많이 피웠어요. (웃는다) 제가 피운다고 오해하시는 거 아니죠? 아직 남편 물건 정리를 다 못 했어요. 해가 바뀌어도······. 금슬 좋은 부부는 아니었는데. 오히려 내가 무뚝뚝한 편이라서요. (사이) 상상이 잘 안되시죠? (웃는) 그래도 가끔 생각나요. 남편이 피우던 담배 냄새. 기분 좋을 때 짓던 표정. (사이) 에이, 아니에요. 금슬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익숙해진 거지. 그렇게 사는 데에······. 익숙해지니까 미운 거나 좋은 거나 그게 거기서 거기더라고.


     김세라가 유행어 뱉을 것처럼 하는데,

     강보영이 영상을 넘긴다.


     방치된 카메라에 김세라가 혼자 뒷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찍힌다.


     강보영,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김세라는 오랫동안 말이 없다.


     14.


     방송국. <우리는 존재합니까> 팀.

     소지원이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짐을 싸는 듯.


     강보영이 USB를 들고 들어온다.


강보영

지원.


     소지원이 강보영을 본다.

     다시 자신의 자리를 정리한다.


강보영

(다가오는) 뭐 해?

소지원

······.

강보영

무슨 일 있어?


     소지원이 멈춘다.


소지원

선배. 무슨 일이에요?

강보영

나 석피디 만나러 왔는데. 지원아, 있잖아. 이거, 방송할 수 있을 거 같아. 성소수자 특집 2편. 당장은 안 돼도 일단 얘기해보자고. 석피디 어디 있어? 퇴근했어?

소지원

아뇨. 촬영이요.

강보영

근데 이건 다 뭐야···? 어디 가?

소지원

저 퇴사요.

강보영

뭐?

소지원

원래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좀 늦어졌네요.

강보영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왜······

소지원

제가 몇 번 말했잖아요. 원래 꿈이 목공방 하는 거라고.

강보영

그건 그냥, 그냥 하는 소린줄 알았지.

소지원

그냥 하는 소리가 어디 있어요. 난 다 진짜였는데.


     사이.


강보영

목공방을 한다고 그래서, 이렇게 갑자기?

소지원

네. 선배. (사이) 저 결혼했어요. 저번 주말에.

강보영

······.

소지원

선배는 결혼식 싫어하니까, 안 불렀어요.

강보영

······. 너 나한테 화난 거 있니?

소지원

못 들으셨어요? 나름 소문 돌았는데.

강보영

(고개 젓는다)

소지원

그쪽 팀 조연출이요. 그 사람이 나 추행했잖아요. 그날.


     사이.

     강보영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소지원

왕따라 모르셨구나.

강보영

그날이라니. 그날이 무슨···, 설마, 그날? 우리 술 마신 날 말하는 거야?

소지원

네. 그날이요. 선배가 저 두고 간 그날.


     소지원이 짐을 싼 상자를 쾅 내려놓는다.


강보영

그 새끼가 무슨 짓했어. 어? 아니, 아니··· 걔 어디 있어, 지금? 내가··· 내가 이 미친 새끼를··· 내가,

소지원

그만뒀대요. 오늘. (웃음) 같은 팀이면서 그것도 못 전달받으신 거예요?

강보영

내가 며칠 방송국 올 일이······. 지원아. 너······.

소지원

그냥 가만히.


     사이.


소지원

가만히 좀 있어주시면 안 돼요?


     사이.


소지원

그 새끼 때문에 그만두는 거 아니고, 저 원래 사직서 냈었고요. 목공방 얘기도 진짜고요. 저는 좀··· 좀 시끄럽거든요?

강보영

지원아. 내가 미안하다. 내가 그날···/

소지원

/아니, 저 사과 듣고 싶지 않다고요. 선배도 몰랐겠죠. 제가 지껄인 말에 기분도 나쁘셨을 거고. 나쁜 건 그 새끼고, 우린 아무것도 잘못한 거 없는 거고. 다 안다고요. 여기서 맨날 그런 거 찍고 다녔는데, 모르겠어요, 제가?

강보영

그래도··· 너 그냥 이렇게 참으면 안 돼. 그 새끼, 인권위에··· 아니, 경찰서에 당장 가서/

소지원

/선배. 저요.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고, 무섭고, 어이가 없고, 그래요. 어떻게 해야 괜찮아지는 건지 아직 모르겠어요. 근데 이거 하난 알아요. 지금 나는, 도망치고 싶어요.


     사이.


소지원

알아요. 선배가 도망치는 거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거. 내가 도망치면 안 된다는 거. 선배 옆에서 못이 박히게 들었어요. 선배 탓도 안 해요. 근데요. 근데······ 진짜로 나 걱정하고 있는 거 맞아요?


     사이.


소지원

선배.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예요?


     사이.


     소지원이 짐을 들고 나간다.


     강보영이 남는다.


     15.


     김홍주가 앉아 있다. 강보영이 서 있다.


     카메라가 켜진 채 김홍주를 찍고 있고,

     강보영이 카메라를 끈다.


김홍주

(수어) 이제 가는 거야?

강보영

······.

김홍주

(수어) 다신 안 와?

강보영

너는······. 그립나 보다.


     사이.


강보영

나한테 너랑 할머닌 제일 끔찍한 기억인데.

김홍주

(수어) 말해.

강보영

······.

김홍주

(수어) 내 말 들으러 온 거 아니잖아.

강보영

언제 말하려고 했어? 할머니 죽으면? 내 진짜 가족들이 다 죽고 나면?


     사이.


김홍주

(수어) 알고 있었구나.

강보영

어. 알았어. 알고 있었어. 너랑 할머니랑 날 속인 거. 내가 할머니 집 오기 전 기억을 다 잃어버렸던 게 사실인지조차 모르겠어. 정말 내 기억이 사라진 건지, 너희가 날 그렇게 만든 건지. 

김홍주

(수어) 넌 정말 아무것도 기억을 못 했어.

강보영

할머니 생일 선물로 사온 꽃 심으려다가 마당에서 봤어. 깊지도 않은 거기 땅속에, 거기 묻혀있더라. 미아 방지 목걸이. 내가 그날 하고 있었던 거. 그러니까 막 기억이 나. 다음날 저녁, 네가 할머니랑 얘기했던 거. 나 어릴 때, 둘이 마당에서 그랬잖아. “보영이한테 말하지 마.” “경찰이 또 올 수 있으니까 낮엔 네가 데리고 나가 놀아라.” “걘 우리가 지켜줘야 해.” 네가 했던 수어를 봤었는데, 그제야 그 뜻을 알았어. (수어) 걘, 매일, 떨어요.


     사이.


강보영

지켜줘? 누가 나를 지켜줘. 세상에서 제일 약한 둘이서, 나를 지켜? 난 평생 너랑 할머니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애쓰며 살았어! 사람들이 물어뜯고 손가락질 하는 걸 내가······ 내가 지켰다고. (사이) 너랑 할머닌 날 지킨 게 아니라, 훔친 거야.

김홍주

(수어) 경찰은 그날 널 찾으러 온 게 아냐.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가 유괴를 했다고 신고해서······. 알잖아. 사람들이 얼마나 할머닐 괴롭혔는지.

강보영

나 주워온 그날, 너도 시장에 같이 갔었다며. 내 목걸이 봤잖아.

김홍주

(수어) 봤어. 봤지만······. 그건······. 할머니가 모른 척하라고 해서.

강보영

난 길을 잃은 거였어.

김홍주

(수어) 그럴 수도 있겠지.

강보영

버려진 게 아니라, 그냥 잠깐 엄마 손을 놓고, 헤매고 있던 거라고!

김홍주

(수어) 보영아.

강보영

내가 얼마나······ 내 삶이 얼마나······


     사이.


강보영

사실대로 말해. 네가 보기에 나 어땠어. 그때 너 열네 살이었어. 다 기억하잖아. 말해. 내가··· 내가 정말··· 버려진 거였어?


     긴 사이.


김홍주

(수어) 넌 그날 울지 않았어. 시장에서도. 집에 오는 길에도. 내내. 커다란 멍을 온몸에 달고도. 손바닥에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랑 내 손을 꼭 잡고.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어. (사이) 네가 떨었던 이유는, 보영아. 여기 있지 않았어. 기억해봐. 너를 떨게 했던 날들 말고. 네가 봤던 모든 장면들을.


     16.


     영상이 흘러나온다.

     밤, 어린 강보영이 몰래 마당을 찍는다.

     김홍주와 할머니의 뒷모습. 강보영이 천천히 다가간다.

     김홍주가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할머니가 옆에서 가르치고 있는.

     김홍주, 잔기침을 하다가, 후- 하고 길게 내뿜는다.

     그리고 활짝 웃는다.


     강보영의 카메라가 가까이까지 다가가자, 김홍주가 놀라며 카메라를 치운다.

     강보영의 웃음소리.

     카메라, 강보영의 손에서, 땅을 찍고 있다.


     17.


     비밀의 방. 김세라의 인터뷰.


     김세라의 자리가 비어있다.

     카메라가 켜지고, 빈 자리가 화면에 보인다.

     강보영이 그곳을 찍고 있다.


     잠시 후, 김세라가 들어온다.


강보영

오셨어요.

김세라

보내주신 영상은 감사해요. 카메라에 오랜만에 담기니까 참, 그래요. 늙기도 많이 늙었고. 움직이는 것도 초라하고. 목소리도 자꾸 뒤집어지는 게··· (사이) 이거 뭐, 마음 바뀌라고 보내주신 건가 그냥 나오지 말라고 보내주신 건가···

강보영

앉으세요, 일단.

김세라

방송 안 해요. 마음 안 바뀐다고. 그 말 하러 온 거예요.


     강보영이 끄덕이고, 의자에 앉으라는 제스쳐.

     김세라가 가만히 보다가 순순히 앉는다.


김세라

왜요. 나도 바쁜 사람인데······.

강보영

그 영상, 마음 바뀌라고 드린 거 아니에요.

김세라

그럼. 마음 굳히라고 보냈나?

강보영

그것도 아니고요. 그냥··· (사이) 얼마 전에 제가 인터뷰를 했어요. 동네에서 오래 같이 산 삼촌 인터뷰요. 어디 내보내려고 찍은 거 아니고, 그냥. 듣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핑계 삼아 카메라 들고 물어봤어요.


     김세라가 가만히 강보영을 바라본다.


김세라

뭘 듣고 싶었는데요?

강보영

할머니에 대해서. 할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삼촌이 한 얘기를 혼자 몇 번을 돌려봤어요. 몇 번을 돌려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뭘 모르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뭔가 꽉 막힌 것처럼 잘 모르겠어요. (사이) 그때 제 뒷모습을 보게 됐는데. 삼촌이 말하는 걸 보는 제 뒷모습이요. 그랬더니 좀, 괜찮아지더라고요. (사이) 그래서.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고. 보내봤어요. 그거 다 비방분이고요.

김세라

···어쩐지. 딴 데 보는 영상만 잔뜩 있어서. 난 내가 감이 떨어졌나 했네. (사이) 뭐가 괜찮아졌는데요?

강보영

그냥 제 뒷모습이 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 나, 알고 있구나. 내가 뭘 보고 있는지. 

김세라

먼 데.

강보영

(보는)

김세라

먼 데를 보고 있죠? 앞에 있는 게 아니라.

강보영

······.

김세라

그거 참 나쁘죠. 눈앞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쉽고. 눈앞에 사람 아프게 하기도 쉽고.


     사이.


강보영

거기 뭐가 있어서요. (사이) 거기 뭐가 있더라고요. 먼 데에.

김세라

뭐가 있는데? (사이) 뭐가 있기에 사람을 그렇게 못살게 굴고. 사람을 한 맺히게 하고. 온몸을 다 잡아끌고. 죽고 싶게 하고. 도대체 왜 그런대요? 뭐가 있길래?

강보영

반짝이던 거요. 엄청나게 반짝이던 게. 있더라고요. 그 깜깜한 데에.


     오랜 사이.


     김세라가 잔기침을 몇 번 한다.

     강보영이 생수를 꺼내 건넨다.

     김세라가 강보영을 본다. 받는다.


김세라

할게요.

강보영

······. 카메라 켜고, 저는 나가 있을게요. 편하게/

김세라

/아뇨. 있어주세요. 앞에. 카메라에 대고 말하는 거 어색해요.

강보영

(앵글 맞추며) ···카메라가 편하다고 안 하셨어요?

김세라

카메라만 있진 않잖아요 보통.

강보영

그러네요.

김세라

녹화는 좀 있다가 하고요. 리허설이니까.

강보영

···네. 그렇게 하세요.


     강보영, 건너편에 앉는다.


김세라

제가 말할 제 비밀은요······.


     사이.


김세라

내 첫 번째 결혼에 대한 거예요.

강보영

작가한테 미리 말한 거 아니어도 괜찮아요. 저흰 상관없으니까···/

김세라

/이거 말할 거예요. 이거 말하려고 나온 거니까.

강보영

······네.


     사이.


김세라

제 첫 번째 결혼은요. 내가 스무 살 때였는데. 스무 살 가을이었어요. 단풍이 빨갛게 타오르던 때. (사이) 우리는 국민학생 때부터 친구였는데. 항상 붙어 다녔어요. 가끔 다투기도 했는데 서로 미워하진 않았어요. 그게 규칙이었어요. 싸우더라도, 서운해만 하자. 미워하진 말자. (사이) 동네가 작아서 부모님끼리도 서로 아는 사이였고, 그렇게 내내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그 앤··· 그 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는데. 정말 좋아했어요. 같이 숙제를 하든, 놀러를 가든, 항상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자주 부르던 게 뭐였냐면. (흥얼대는) 음, 음음음, 음— 뭐 대충 이런 거? 제목도 몰라. 묻지도 않았어요. 그냥 걔 목소리로 기억했지. 

목소리도 참 예뻤어요. 무슨 합창 대회 같은 거 나가면 혼자 부르는 부분 있잖아요, 그런 건 다 그 애 차지였어요. 구령대에 올라가서 지휘도 하고. 난 음악엔 영 소질이 없었는데. 대단한 애였죠. 

우리 아지트 같은 게 있는데, 학교 근처에 논길이 이렇게 쭉 나있거든요. 거기 끝에 굴다리 같은 게 있었어요. 그 안에 오래된 쓰레기도 많고, 잡초도 많이 나고, 좀 지저분했지만, 사람은 왕래가 없었거든요? 거기에 우리가 국민학생 때부터 모아놓은 인형이랑, 시집이랑, 책갈피 같은 걸 쌓아두고··· 교환일기 같은 게 있었는데. 혹시 왔는데 서로가 없으면 방명록이라고 해야 하나. 편지 같은 걸 남기는 거예요. 다퉜을 땐 밤에 몰래 가서 깜지를 쓰기도 하고. (사이) 숙제처럼요.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어쩔 땐 이렇게 써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근데 스무 살이 되고, 나는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에 못 가고··· 걘 무슨 문학을 전공한다고. 서울로 간다고 했어요. 문학에 문 자도 모르는 게 무슨 문학을 전공하냐고. 차라리 음악을 하고 노래를 하지. 근데 아버지가 그걸 시켰대. 별수 있어요. 작별인 거지.

그래도 작별은 아니다. 편지도 주고받고, 가끔 서로 보러 가자. 여기 살던 거랑 다른 거 없다. 굴다리 대신 우체통에 편지를 남기는 것뿐이다······. 그러고선 그 애가 떠나기 전 마지막 날에, 결혼을 했어요.

굴다리 아래에서, 꽃을 잔뜩 모아서 나름대로 꾸며본다고. 리본도 매고, 머리에 화환도 쓰고. 각자 갖고 있는 제일 예쁜 옷을 입고······. (사이) 정말 예뻤는데. (사이) 정말 예뻤어요. 해가 지는 시간에 만나서, 반지도 나눠 끼고. 낭만적으로 하자고 토끼풀로 반지를 했는데. 생각이 짧았지. 토끼풀 반지는 금방 썩어 없어지잖아요. 나무를 깎든 용돈 모아 사든 어떻게라도 할 걸.

지금은 없어요. 곱게 말려 간직하려고 했는데, 다 시들어 죽어버렸어.

(사이)

서울 가서도 계속 만났는데요, 나는 갑자기 또 개그우먼이 돼서 텔레비전에 나오고··· 걔는 대학 생활 한다고 바쁘고. 많이 뜸해졌죠.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사이)

그게 다예요.

너무 시시하죠.

그냥 소소하게 사랑하고, 시시하게 헤어졌어요. 그런······.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냥.

남겨둡니다.


     김세라가 생수를 전부 들이킨다. 웃는다.

     카메라가 꺼진다.

     어두워진다.


     18.


     밝아진다.

     강보영이 빈 할머니집 마루에서 하늘을 찍고 있다.


     강보영이 작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음, 음음음, 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보영이 고개를 돌리면,

     나이가 많이 든 모습의 배양희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들어온다.


     배양희가 강보영에게 손을 내밀어 춤을 청한다.

     강보영, 손을 잡고 일어선다.


     배양희와 강보영, 함께 느리지만 정성껏 춤을 춘다.



   


추천 콘텐츠

감마선에 노출되어 슈퍼 히어로가 된 세 명의 박사는 왜 지구를 지키려 하지 않는가

감마선에 노출되어 슈퍼 히어로가 된 세 명의 박사는 왜 지구를 지키려 하지 않는가 정범철 등장인물 스컹크맨 (최만수) 51세 / 남 / 여러 가지 냄새를 뿜어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히어로. 블루씨스루 (이강재) 48세 / 남 / 투시 능력을 발휘하는 히어로. 그린타키온 (진순남) 43세 / 남 / 빛보다 빠른 속력을 발휘하는 히어로. 레드플라이 (고혜정) 43세 / 여 / 두 팔에서 날개가 돋아나 하늘을 날 수 있는 히어로. 기자 1, 2, 3, 4, 5, 6 취객 스파이더맨 사회자 통역사 레드플라이의 엄마 때 현재 곳 대한민국, 서울 1장 – 기자회견 무대에 세 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무대 뒤에는 “감마선 히어로 긴급 기자회견”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관객들이 등장하는 동안 사회자가 먼저 등장해 마이크 체크를 하고 기자회견 준비를 한다. 기자 역의 멀티남도 등장해 사회자와 인사도 나누고 카메라를 점검하며 객석에 앉는다. 사회자의 인사로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사회자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참석해주신 국내외 언론매체 관계자와 기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전에 연락드린 바와 같이 이번 기자회견은 감마선 히어로 네 명 중, 세 명의 히어로가 긴급히 요청하여 마련되었습니다. 세 명의 히어로는 스컹크맨, 블루씨스루, 레드플라이입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빠른 진행을 위해 한국어로 진행된다는 점 먼저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통역이 필요한 외신 기자분들은 입구에서 나눠드린 동시통역기를 착용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못 받으신 기자분 계신가요? Is there anyone who didn’t get the translator? 아, 저 뒤에… (무대 옆을 보는데 그냥 진행하라는 신호를 받은 듯) 네? 아, 그렇군요. 지금 준비된 통역기가 부족하다고 하네요. 예상보다 많은 외신 기자 분들이 참석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세계의 눈과 귀가 국내 히어로들에게 쏠려있다는 방증이겠죠? 그럼 지금부터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세 분의 히어로 여러분, 무대로 나와주십시오. 스컹크맨, 블루씨스루, 레드플라이가 정장을 입고 무대로 등장해 자리에 앉는다.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 플래시 터진다. 스컹크맨은 서류 파일을 들고 있다. 사회자 작년에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아 아마 모르는 분이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국민 여러분과 전 세계 시청자 여러분들을 위해 각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스컹크맨 지금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거죠? 사회자 네, 그렇습니다. 스컹크맨 안녕하십니까. 최만수라고 합니다. 블루씨스루 안녕하세요. 이강재입니다. 레드플라이 안녕하세요. 고혜정입니다. 기자1 히어로 네임으로 말씀 좀 해주세요! 난처한 표정의 세 박사. 사회자 네, 각자 히어로 네임을 좀…. 스컹크맨 스컹크맨입니다. 블루씨스루

  • 관리자
  • 2023-11-15
환승

환승 윤미희 나오는 사람들 상희 민재 윤아 때 늦은 밤 곳 지하철 안과 밖 무대 무대는 달리는 지하철 안과 지하철을 기다리는 밖으로 나뉜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것만 표현해도 좋다. 1. 주안역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상희, 민재, 윤아 세 사람 모두 검정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다. 각자 스마트폰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건지 들으라는 건지 모르겠는 말투로 민재 왜 난 검색해도 안 나오지? 윤아 버스 타야 하는데 괜히 지하철 타는 건가? 상희, 윤아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상희 제가 검색할 때는, 신도림에서 갈아타서 홍대입구까지 이렇게 가는 걸로 나오거든요. 민재, 기웃거리고 윤아, 상희의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민재 어? 그건 또 다르게 나오네. 윤아 도대체 뭐가 맞는 거야… 상희 성신여대입구까지도 간다고 나오니까 연희동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거예요. 윤아, 다시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민재, 끼어들며 민재 나도 좀 봐줘요. 민재,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민다. 상희,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며 상희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셔서 잠실까지 쭉 갔다가, 잠실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셔서 천호, 거기에서 다시 5호선으로 갈아타야 된대요. 5호선에서는 한 정거장만 더 가시면 되고요. 민재 좀 애매한데… 윤아 이미 돌아가긴 늦었어요. 민재 역 주변에 있을 곳이 있나. 상희 전부 술집뿐인 것 같던데요. 민재 주안역은 처음이거든요. 상희 저도요. 윤아 저도 1호선은 많이 안 타봤어요. 민재 아까 올 땐 1호선 급행열차 탔는데, 윤아 1호선에도 급행열차가 있구나, 민재 우리 잘 도착할 수 있겠죠? 상희 그럼요. 부천행 급행열차가 오고 있다. 윤아 어? 급행열차네요. 민재 이거 타는 거 맞죠? 상희 이거 타거나 좀 기다렸다가 일반 열차 타거나 도착하는 시간은 똑같아요. 민재 왜요? 상희 …부천행이잖아요. 민재 네? 상희 신도림까지는 가셔야죠. 민재 아, 잠시 고민하는 세 사람. 민재 좀 덥지 않아요? 윤아 그냥 탈까요? 어차피 기다리는 거 조금이라도 가면서 기다리는 게… 상희 그래요, 그럼. 문 열리고 탑승하는 세 사람, 빈자리가 많아 좀 떨어져 앉는다. 각자 다시 스마트폰을 보며 윤아 왜 다시 검색하면 자꾸 다르게 나오지? 상희, 눈치만 볼 뿐 대꾸하지 않는다. 윤아 아까 거기서 버스 타고 가서 공항철도를 탔어야 했나 봐요. 잘 모르는 길이라 혼자 가기도 좀 그렇고 해서 따라오긴 했는데… 민재, 열차 내부에 붙어 있는 노선도를 바라보며 민재

  • 관리자
  • 2023-11-10
붉은 여인의 초상

붉은 여인의 초상 황수아 대호 한국신문 문화부 기자 현 국내 유명 화가 미현 현의 애인 여인 정체불명의 여인 선예 현의 아내 상인 미술 학원 원장, 화가 현서 강력계 경찰 상우 패션잡지 에디터 변호사 이혼 전문 변호사 부장 신문사 문화부 부장 1장 미술관 무대 정면에 커다란 그림 하나가 걸려 있다. 색이 선명하고 사실적인 풍경화다. 시골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 안은 뒷산과 그 앞을 흐르는 개울 한 가족이 피크닉을 즐기고 애완견이 그들과 함께한다. 동화책 삽화로 나올 것 같은 따스한 그림이다. 현, 두 손을 뒤로 맞잡고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대호, 현의 뒤로 조심스레 다가간다. 대호 안녕하세요. 작가님. 현 (뒤돌아 대호를 본다.) 대호 한국신문 문화부 기자 이대호입니다. 현 네. 안녕하세요. 대호 전시회 잘 봤습니다. 현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대호 다음 일정이 없으십니까? 현 아내가 오기로 해서요. 대호 아. 그러시군요. 사이 현 (대호를 다시 한번 쳐다보며) 기억나는군요. 아까 기자 간담회 때 저의 근황에 대해 질문하셨던 분이시군요. 대호 네. 그렇습니다. 계속 질문을 드리면 실례일 것 같아 멈췄습니다. 현 제법 곤란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는다.) 대호 더 질문드리면 사적인 영역까지 확대될 것 같아서요. 현 그림의 연장선상인데 뭐 어떱니까. 궁금한 건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대호 그러시다면… 한 가지만 더 질문드려도 될까요.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어서요. 현 한국신문에서 제 특집 기사를요? 대호 네. 현 고마운 일이죠. 질문하시면 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대호 최근 풍경화를 주로 그리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현 근 일 년간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제가 모르던 자연의 풍경에 매료되었죠.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들을 그림에 담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토 개발은 너무 빠른 속도죠. 언제 개발되어 사라질지 모르는 풍경들이니까요. 대호 그런데 원래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작업하지 않으셨습니까? 거의, 아니 백 프로 인물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 발표되지 않은 풍경화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대 시절엔 풍경화 동아리도 했었죠. 언젠가 한 일 년 정도는 풍경화 위주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안식년을 가지며 여행을 한 게 새로운 발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대호 아. 현 또 물으실 게 있나요? 대호 실례가 되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론. 인물화에 흐르던 그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졌습니다. 현 특유의 분위기라뇨? 대호 선생님이 항상 그리던 여인은 눈빛과 입매가 아주 미세하게 비대칭이라 독특했죠. 초기작부터 중기,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 도발적인 느낌은 점점 강해졌습니다만 풍경화

  • 관리자
  • 2023-11-03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