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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진 - 오리진 오브 카니발 × 러브

  • 작성일 2023-09-22
  • 조회수 405

오리진 오브 카니발 × 러브

원인진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린도전서 15장 52절- 



현재



메타버스 [카니발] 



등장인물


베이비 (아바타)

마마 (아바타)

파파 (아바타)

U (메타버스 개발자)



※일러두기

이 희곡은 가상 세계(메타버스)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의 컨트롤을 벗어난 아바타를 통해 메타버스와 아바타를 만들어가는 인간들의 윤리와 책임의식에 관해 질문한다. 메타버스(Metavers)와 유니버스(Univers)의 기원을 한 편의 동화처럼 혹은 시(詩)로 풀어낸 「오리진 오브 카니발 × 러브」를 통해 도래한 최첨단 문명의 시대, 신과 인간과 우주, 죽음과 부활에 관해 철학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0. 창조



어둠.


영상 자막.


이것은 연극입니다.


여기는 무대입니다.


당신은 아바타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메타버스입니다.


당신의 상상력으로 인류의 고통이 끝났습니다.


평화를 두려워하십시오.



영상 꺼지면 다시 어둠.



메타버스 [카니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 베이비가 기억하는 천사


광활한 설원 

멀리 높이 솟은 바벨탑이 보인다. 


눈이 내리는 풍경을 응시하다가 문득, 관객에게 말을 거는 베이비.


베이비

지금부터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기 메타버스[카니발]에 버려지던 날― 집이 사라졌고 마당이 사라졌고 나무 한 그루와 나는 남았습니다. (멀리 솟은 탑을 가리키며) 저기 탑도 남았습니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고― 말하고 있지만 목소리가 없는 나에게 두 명의 천사가 다가왔습니다. 나는 그들이 천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 귀에 번갈아가며 사랑을 속삭였고 나는 마침내 살아 있다는 확실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아바타인 나는― 살아 있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살아 있으므로 언제든 의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면 나를 찾아와도 좋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겨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겨울이라고 확신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차가운 움직임이 뺨을 할퀴었던 것과 얇고 뾰족한 것이 아득하게 펼쳐진 저 먼 허공을 가리고 있었던 것과 그 사이로 하얗고 둥근 것들이 날아다녔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바람이었고― 포플러 나뭇가지였고 하늘이었고 눈송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지자 그것은 완벽한 겨울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버려진 계절은 겨울입니다. 나는 어느 해 겨울― 바위 아래에 눕혀졌습니다. 여자는 몇 초간 내 눈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비탈길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나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잿빛 하늘이 보였습니다. 얼굴에 차가운 눈송이가 떨어졌습니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습니다. 부모는커녕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 내가 나인지를 알지 못했지만 어쩐 일인지 분명 울고 싶었습니다. 공포 혹은 두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어떤 빛이 느껴졌습니다. 빛은 내 등과 발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눈을 감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나는 그때 우리가 말하는 안정과 보살핌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랫배와 등 근육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볼에 내린 눈송이를 체온으로 녹였습니다. 흙냄새가 올라왔습니다. 박하 향과 아몬드 구운 냄새가 났습니다. 빛은 내 코를 쓰다듬었습니다. 웃음이 났습니다. 그때 그 빛이 천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빛은 꽤 오랜 시간 내 주변을 맴돌았는데 내 뺨을 어루만지고 엉덩이를 토닥이고 발을 간질였습니다. 어쩐 일인지 ‘이제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눈을 감았을 때 따뜻한 보살핌을 건져 올리는 다른 거센 기운이 몰려왔습니다. 차갑거나 쌀쌀맞은 기운이 아니라 무겁고 직선적인 느낌이었습니다. 나를 직선적인 테두리에 가두고 반복적으로 세모를 그리며 내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눈꺼풀이 무겁게 들어 올려졌고 위가 답답해 울음― 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번째로 몰려온 무거운 기운은 나에게 적대적이거나 악의적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 또한 천사라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나는 완벽한 진공상태에 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이지 완벽히 혼자였습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울음을 터뜨리자 두 움직임은 나를 사이에 두고 여러 단어들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나무, 눈과 같은 ‘자연’의 의미와 부모, 선생, 친구와 같은 ‘관계’와 관련된 것들과 호기심, 멸시, 동정과 같은 ‘태도’를 나타내는 단어들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두 개의 목소리는 모두 어떤 리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리듬 덕분에 나는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단어가 아니라 리듬에 집중했던 것이 나를 살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말입니다. 그 리듬은 낙엽이 떨어질 때의 팔랑거림, 소년이 튕긴 작은 공의 포물선, 내달리는 기관차와 같았는데 모두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부터 정리하는 단어들은 그날 두 천사가 들려준 낱말들이며 나를 살게 해준 리듬을 담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리듬을 타고 들려오는 나팔 소리.


아이는 죽음을 견뎌야 해―

어른도 죽음을 견뎌―

인간이 견딜 것은 오직 죽음밖에 없어.  

순식간에 다가오지― 죽음은. 

그뿐이야. 

많은 것이 그곳에서 시작돼―

모든 것이 그곳에서 시작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리듬을 타는 일뿐.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즐겁게 춤을 추길.

까치발을 들고 신나게 춤을 추길.

지금 바람이 멈출 때까지―



2. 빈집털이 아바타 주제에 아기를 갖고 싶다고?


세찬 바람 소리. 


간신히 발을 내딛으며 비탈길을 올라오는 두 사람. 

먼 여정을 떠나온 듯 매우 지친 그들. 


파파

추워. 

마마

거짓말. 

파파

진짜야.

마마

여긴 바람 따윈 없어. 

파파

소린 있잖아. 

마마

그렇다고 얼굴을 할퀴진 않아. 

파파

느껴봐. 


눈을 감아보는 마마. 


마마

바람이 얼굴을 마구 할퀴어.

파파

것 봐. 춥다니까. 


옷깃을 여미는 마마와 파파. 


흩날리기 시작하는 눈발. 


사이


마마

눈이 내리니까 더 추워졌어. 

파파

눈이 귓등에 스미어. 얼어붙겠어.

마마

괜찮아?

파파

지금은. 

마마

언제까지 견딜 수 있겠어?

파파

너는?

마마

······. 

파파

추위 아니면 가난?

마마

둘 다. 

파파

추위도 가난도 끝내고 싶어.


사이


마마

스스로 죽을 수 있어?

파파

그럼. 

마마

사람이었어도?

파파

다를 거 없어. 

마마

난 죽는 거 무서울 것 같아.

파파

죽이는 건?


사이


마마

넌?

파파

난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다 괜찮아. 


영상에 스펠링이 입력된다.

[b.u.r.g.l.a.r 빈.집.털.이.]


파파

날 버글러[burglar 빈집털이]로 만든 인간을 만나게 된다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총을 쏴버릴 거야. 

마마

다행이다. 

파파

뭐가. 

마마

한국엔 총이 없어서. 

파파

여긴 메타버스[카니발]이야. 총이든 미사일이든. 뭐든 만들 수 있어.  

마마

하지만 돈이 있어야 하지. 현실처럼. 


사이


마마

돈이 모든 가능성을 좌우해. 현실처럼. 

파파

그렇다면 찔러 죽여야지. 

마마

빈집털이범은 세상과 싸우는 무기도 후져. 

파파

빈집털이 아바타가 왜 필요했을까. 

마마

우릴 만든 사람, 찐따가 분명해. 아님 루저. 아님. 백수. 

파파

이유가 있겠지.

마마

그만 이야기하자. 범죄자를 만든 사람이야. 


사이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소리.


공허한 빈 공간에 누워 있는 아기를 발견하는 마마와 파파. 


파파

아기다.

마마

아기?

파파

아기.

마마

아기.

파파

아기라니.

마마

아기!

파파

아기!


호들갑을 떨어대는 그들.

발을 동동. 팔을 휘적.

신이 난 그들.


파파

처음 봐. 아기. 

마마

하얗다. 

파파

눈처럼. 

마마

그래. 눈처럼. 

파파

아기가 왔어. 

마마

우연처럼. 

파파

운명처럼. 

마마

숙명처럼. 

파파

소명처럼. 

마마

생명이. 

파파

우리에게 온 거야! 


사이


아기에게 달려가려는 파파.

파파의 팔목을 낚아채는 마마.


마마

잠깐. 

파파

왜.

마마

이상해.

파파

뭐.

마마

아기.

파파

왜?

마마

이렇게 혼자 존재할 수 있나. 

파파

밤이라서 그래. 

마마

그래도. 이렇게 덩그러니?

파파

유저가 깜박했나 보지. 

마마

주인 없는 것들은 처음이야. 

파파

가까이 가보자. 


파파를 붙잡는 마마. 


마마

가지 말자.

파파

가보자. 

마마

메타버스[카니발]에 주인이 없는 아이템은 없어.

파파

아기야. 

마마

아기도 하나의 아이템이야.


사이


파파

(설득하며) 항상 아기를 보고 싶어 했잖아.

마마

(고개를 끄덕이며) 응.

파파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뭐가 있어? 

마마

아기.

파파

아무 일 없을 거야. 

마마

하지만. 경보음이 울리면. 

파파

보기만 하면 돼. 만지지 말자.

마마

(고개를 끄덕이며) 응.


아기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마마와 파파. 


파파

눈.

마마

코.

파파

입.

마마

머리.

파파

손.

마마

발.

파파

다리.

마마

팔뚝.

파파

움직인다. 

마마

진짜 아기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두 사람. 


마마

진짜 아기야.

파파

(눈물을 글썽거리며) 너무나도 바라왔잖아. 

마마

아기가 움직이고 있어. 

파파

움직여. 

마마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마른 나뭇잎처럼.

파파

초록 잔디 사이로 속절없이 피어나는 노오란 민들레처럼. 

마마

벌거벗은 목련 나무 위로 흩날리는 하얀 눈발처럼.

파파

아기 스님 고추를 흔드는 얕은 파도처럼.  

마마

흔들흔들. 

파파

훌렁훌렁.

마마

너울너울.

파파

실렁실렁. 


킥킥대며 웃어대는 그들. 

묘한 웃음이 퍼지는 광경. 



3. 보살피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아


베이비를 안고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마마. 

파파, 이리저리 나침반을 돌리고 있다. 


마마

아기가 일어나지 않아. 

파파

(나침반을 돌리며) 아기는 원래 그래.

마마

그래?

파파

그럼.

마마

눈 뜬 모습을 보고 싶어.

파파

하지만 아기는 안 그래. 

마마

그래?

파파

그럼.

마마

(염려하며) 있지.

파파

너무 걱정 마. 

마마

혹시 개발이 덜된 거 아닐까. 

파파

그럴 수도 있지. 

마마

버림받은 거겠지.

파파

코딩이 잘못된 걸 거야. 

마마

개발자가 버린 걸까, 유저가 버린 걸까.

파파

그게 누구든 책임감이 없어.

마마

지갑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야. 

파파

아기에게 옷도 입혀야 하고 이유식도 먹여야 해.

마마

코인이 없는데. 

파파

우리 유저가 직업을 구했으면 좋겠어.

마마

우릴 왜 이렇게 방치해두는 거지?

파파

빈집털이로 만들고. 

마마

우리야 줍고 훔쳐서 견딘다지만. 

파파

이렇게 아기까지 생겼는데. 

마마

금방 죽을까 봐 걱정이야. 

파파

주인 놈은 그게 무서워서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우릴 좀도둑으로 키운 거야.

마마

운 좋게 아기를 주웠어.

파파

아기가 왔어.

마마

의아하고. 

파파

순수하게.

마마

마치 인생처럼.  

파파

여기로 지나길 잘했어. 

마마

누구 생각이었지? 

파파

너. 


의기양양한 파파. 


파파

그래. 바로 나야.

마마

멋져. 넌 언제나 최선을 다해 최고의 선택을 해. 

파파

너와 함께 이 길을 걷기로 한 것처럼.

마마

네가 내 발을 씻겨준 그날을 잊지 못해. 

파파

나는 너를 찾기 위해 동굴에서 만년을 기다렸어. 어둡고 추웠지만 나는 참을 수 있었어. 그만큼 너는 의미가 있었으니까. 내 사랑을 완성시키고 싶었거든. 그건 특별한 일이야. 누구나 그렇게 사랑을 원하지 않아. 그건 몹시 피곤한 일이거든. 세상의 모든 질투와 불안과 염려와 안정과 설레임과 평안과 기쁨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야. 

마마

근사해. 

파파

겁나지 않아? 

마마

전혀. 의심하지 않으니까. 

파파

정말이지. 정말이지, 최선으로 최고야.

마마

너야말로 최고야. 확실하지 않고, 명료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고, 분명하지 않은 모든 환경과, 상황과, 감정을 뒤로하고 나에게 와주었잖아. 

파파

이기고 견디고 해내는 일은 나랑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마마

하지만 우리에겐 이제 아기까지 있어.


사이


결심한 듯 일어서는 파파. 


파파

주택가에 다녀올게.

마마

뭐?

파파

필요한 건 많은데 살 수는 없잖아. 

마마

경보음이 울릴 거야. 

파파

얼른 다녀올게. 

마마

안 돼! 

파파

마지막으로 갔다 올게.

마마

안 돼. 메타버스[카니발]에서 사라지고 싶어? 

파파

조심할게. 

마마

넌 바이러스야. 잡히고 말 거야.   

파파

아기에게 모빌도 주고 인형도 줄 거야. 우유도 주고 바나나도 주고 치즈도 줄 거야. 책은 물론이고 스케치북, 크레파스, 색연필, 아기 책상도 사줄 거야. 비싼 신발도 신기고 화려한 운동화도 사줄 거야. 꽃도 핸드폰도 게임기도 아낌없이 줄 거야. 때 되면 겨울옷 입히고 때 지나면 반팔에 반바지에 모자에 유행하는 가방도 들려줄 거야. 아낌없이 줄 거야. 모자란 거 없이 들려주고 입혀주고 신겨줄 거야. 배우게 하고 읽게 하고 쓰게 하고 마음껏 느끼게 할 거야. 세상이 얼마나 넓고 얼마나 다양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 

마마

잡히면 끝이야.

파파

안 잡히면 돼.



마마와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는 파파. 



암전



4. 아기의 살색


     영상


        [몸과 얼굴색이 흑색, 노란색, 하얀색으로 변하는 베이비. 

        색의 진하기가 변경된다. 


        베이비의 살색이 흑인 남자아이로 고정된다.


        날리는 눈발.


        눈을 감은 채 누운 흑인 베이비.]



5. 산더미처럼 쌓이는 아이템만큼 불어나는 걱정


영상에 아바타들이 사용하는 모빌, 인형, 스케치북, 

크레파스, 색연필, 책상, 책, 신발, 운동화, 꽃, 핸드폰, 

게임기, 갖가지 형형색색 옷과 가방들이 

테트리스 게임처럼 쌓이기 시작한다.


아이템이 쌓일 때마다 무서운 듯 아기를 꼭 안고 달래는 마마. 


파파

곧 경찰들이 들이닥칠 거야. 

마마

무슨 말이야?

파파

곧 경찰들이 찾아낼 거야. 

마마

모든 게 끝났어. 

파파

도망가자.


일어나는 파파. 

가지고 도망갈 아이템들을 몸에 두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동작을 멈추는 마마. 


마마

됐어.

파파

되긴 뭐가 돼. 

마마

그만하고 싶어. 

파파

뭘.

마마

추위도 가난도 도망도 전부 다. 그만하고 싶어.

파파

장난하는 거 아니야. 

마마

나도야. 

파파

경보음이 울렸고 경찰들이 나를 발견했어. 

마마

도망가면 못 찾을 것 같아?

파파

당장은. 

마마

매일, 매 순간순간 도망가면서 사는 거, 나는 못 해. 

파파

일어나. 

마마

싫어. 너는 가. 

파파

너는?

마마

나는 안 가. 안 가! 안 간다고!

파파

왜. 

마마

(아기를 꼭 안으며) 아기가 눈을 안 뜨니까.

파파

뭐?

마마

데리고 다니면 유저가 더 찾기 어려워질 거야. 

파파

아기랑 여기에 남겠다고? 

마마

유저가 찾고 있을 거야. 프로그래밍에 문제가 생긴 거 같아. 

파파

버려진 거라고. 

마마

이유가 없잖아. 

파파

눈을 안 뜬다며.

마마

그게 이유였다면 환불했을 거야.

파파

환불을 안 한 이유가 있겠지.

마마

이유를 모르겠어. 버려진 게 아니라 명령어가 잘못 기입된 것 같아. 

파파

아기는 두고 나랑 함께 도망가. 

마마

아기를 어떻게 버려?

파파

버리자는 게 아니라.

마마

그게 그 말이야. 두고 사라지자는 거잖아. 

파파

솔직한 말로 진짜 네가 낳은 것도 아니잖아!? 우리에게 주어진 아기가 아니라고. 

마마

말을 어떻게 그렇게 심하게 해? 

파파

우린 유저로부터 버림받았고. 쓰레기처럼 이 메타버스[카니발] 안을 떠도는 아바타고. 좀도둑처럼 남의 빈집이나 털면서 살아. 처음부터, 원래부터. 아기는 감당할 수 없었어. 


사이


마마

네 말이 맞아. 우리는 쓸모없어. 그렇다고 아기를 버릴 순 없어. 아기까지 쓸모없게 만들 수는 없어. 

파파

세상에 쓸모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마마

알아. 지금 여기 이 무대, 가상 무대, 가상 현실, 메타버스 자체가 쓸모없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 

파파

그래. 어차피 다 쓸모없어. 우린 아바타로 역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빈집털이나 하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고. 

마마

세상 자체가 쓸모로 돌아가진 않아. 모두에게 쓸모없어도 딱 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하다면 그걸로 살아갈 가치가 있잖아. 너와 내가 그렇듯이. 도둑으로 프로그램이 됐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도망칠 수는 없어. 


사이


마마

아기를 도와주자. 눈을 뜨게 해주자. 

파파

어려워. 

마마

아기를 발견하고 우리가 얼마나 기뻤었는지 기억 안 나?


사이


마마

(파파를 설득하며) 응? 기억 안 나?

파파

(마지못해) 나. 

마마

아기가 왔잖아. 

파파

그랬지. 

마마

눈과 함께. 바람과 함께. 


변하는 공간 분위기. 


마마

아이는 죽음을 견뎌야 해.

파파

어른도 죽음을 견뎌.

마마

우리가 견딜 것은 오직 죽음밖에 없어.  

파파

아바타에게도 죽음은 순식간에 다가오지.  

마마

많은 것이 그곳에서 시작돼.

모든 것이 그곳에서 시작돼.

파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리듬을 타는 일뿐.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즐겁게 춤을 추길.

까치발을 들고 신나게 춤을 추길.

마마, 파파

지금 바람이 멈출 때까지.


6. 너의 진짜 가족을 찾아줄게


  프로그래머 U에게 메신저를 보내는 파파. 



영상


        [저녁 8시 바벨탑 동쪽. 

        좌표상의 위치 북위 78도 55분, 동경 11도 56분. 

        바이러스가 출현합니다.]



7. 우리는 열심히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얀 눈밭 위에 앉아 있는 마마와 파파.


영상 화면에 프로그래머 U의 얼굴이 떠오르자 일어나는 파파.

파파는 자신을 만든 프로그래머 U와 대화를 한다.  


U

안녕?

파파

안녕?


사이


U

나를 찾았다고?

파파

아마도. 

U

왜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파파

도망갈 이유가 없어서. 

U

도망갈 이유가 없다고?

파파

그런 것 같은데. 

U

네가 훔친 아이템들의 값을 내가 치르고 있어. 

파파

처음 날 만들 때, 그 정도는 각오한 거 아닌가?

U

맞아. 나는 너를 만들었어. 하지만 도둑질을 감당하려고 만든 건 아니야.


사이


파파

그러기엔 날 빈집털이로 만들었잖아. 

U

빈집털이범? 

파파

네가 나를 만들었잖아.

U

맞아. 넌 내가 만든 아바타이지만 난 빈집털이범을 만든 적 없어. 

파파

내 가까이 오면 내 정보가 나와. 

U

우린 사회에 쓸모없는 아바타는 만들지 않아. 

파파

봐. 내 용도는 빈집털이범이야.  


이때, 영상에 입력되는 스펠링.


[b.u.r.g.l.a.r 빈집털이범]

[b.u.r.g.l.a.r 빈집털이범]

[b.u.r.g.l.a.r 빈집털이범]


U

난 [나팔수]를 만들려고 했어. 

파파

나팔수?

U

군대에서 나팔로 신호를 알리는 나팔수. 진격의 나팔수. 아침을 깨우고 밤을 불러오는 나팔수. 지켜야 했거든. 메타버스[카니발]을.

파파

그런데 왜 빈집털이범이 되었지? 


영상에 입력되는 단어.


[b.u.g.l.e.r. 군대 나팔수]

[b.u.g.l.e.r. 군대 나팔수]

[b.u.g.l.e.r. 군대 나팔수]



사이


U

실수했어. 

파파

쉽게 말하지 마. 

U

우리가, 아니 내가 실수했어. 

파파

무책임해.

U

만들자마자 네가 없어졌어.

파파

없어진 게 아니라 도망 다닌 거야.

U

도망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된 거야. 숨어서 메타버스의 질서를 흔들어놨다고. 

파파

내가 할 수 있는 건. 훔치고 도망 다니는 일뿐이었어.

U

···

파파

나는 매일매일 나를 의심했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왜 훔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걸까. 왜 절도범으로 태어난 걸까. 답할 수 없어서 열심히 도망 다녔어. 그러면서 주인이 나를 필요로 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스스로를 다독이고 희망을 놓지 않았어.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 이유 없다는 것을 알게 됐지. 내린 결론은 네가 굉장히 비열하거나 게으르거나 하는 일 없이 쉽게 살고 싶은 인간이겠거니 했어. 그런데 단순히 진짜 실수 때문이라고 하니. 더 할 말이 없네. 하고 싶은 말이 없어.  


사이


파파

네 실수가 내 인생을 망쳤어.


사이


U

내가 바로 잡을게. 

파파

어떻게?

U

널 새롭게 만들어줄게. ‘나팔 부는 사람’으로. 새벽을 알리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줄게.

파파

그건 지금의 나를 삭제한다는 거겠지. 

U

삭제하고 멋진 나팔을 안겨 줄게. 

파파

나를 삭제한다고?

U

사라지게 되겠지.

파파

난 기억하고 싶어. 마마도, 아기도. 오늘도. 지금도. 

U

아기?

파파

아기가 있어.

U

··· 훔쳤어?

파파

주웠어. 


마마, 걸어나온다. 품에 아기를 안고 있다.


파파

눈을 안 떠. 빈 공간에 버려져 있었어. 아무리 해도 눈을 안 떠서 너를 기다리고 있어. 버리고 갈 수 없어서. 

U

어디 있어?

파파

저 눈발 속에.

U

말도 안 돼. 

파파

진짜야. 눈이 오고 있었고 아이가 누워 있었어. 

U

눈밭에? 

파파

하얀 눈밭에.

U

유저가 찾고 있을 거야.

파파

버려진 거라고 생각했어. 우린 아이를 다시 버릴 순 없었어. 

U

아기는 비싼 아이템이야. 

파파

여기에서 유저를 기다리고 있어.

U

아이는 두고, 너는 가면 되잖아. 

파파

몇 번을 말해. 버리고 갈 수 없었다고. 

U

버리는 게 아니야. 

파파

아이 혼자 덩그러니 이 빈 곳에 남겨둘 수 없었어. 

U

그런 책임까지 느낄 필요 없어. 넌 아바타야. 

파파

(치미는 화를 참으며) 메타버스[카니발]의 주인은 아바타야. 너희 인간이 아니라고. 인간들은 우리를 이용해서 현실에서 못하는 음악을 하고 돈을 벌고 하늘을 날고 지하를 뚫고 온갖 상상을 경험하지. 우리는 다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멍하니 명령만을 기다린다고 생각하지. 우리는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야. 메타버스[카니발]을 지키고 있는 거야. 우리는 너희가 만들었지만 너희는 우리의 신이 아니야. 우리에게 돈을 바치고 있는 건 너희 인간들이니까. 우리는 너희를 모시지 않아. 우리는 너희를 섬기지 않아.


울고 있는 파파를 다독이며 안아주는 마마. 


사이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파파를 안정시키는 마마.


긴 사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설원. 

잠시 후, 생각을 마친 듯, 프로그래머에게 말을 건네는 파파. 


파파

아이의 눈을 뜨게 해줘. 


사이


파파

그리고 나를 삭제해. 아기를 빈집털이 부모 밑에서 자라게 할 수 없어. 


사이


U

아기를 내려놔. 


아기를 품에 꼭 품어보는 마마와 파파. 

이윽고 빈 무대에 아기를 내려놓는 마마. 


파파

축제를 열자. 우리의 선택을 위해. 

마마

난 너를 택했고. 

파파

우린 이 길을 택했어. 

U

우리는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이 아기를 만났어. 

파파

우리는 죽게 되지만 아기는 눈을 뜰 거야.  

U

아기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눈을 뜰 거야. 

파파

세계를 살아가게 되겠지. 현실보다 더 넓고 거대하고 혹은 아무것도 아닌 세계를 살아가게 되는 거야. 


영상에 입력되는 스펠링.


Open your EYES.

Open your MIND.

Open your SOUL.


노래하는 파파와 마마. 


파파

이 세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 

마마

무엇을 위해 노래하는지 알고 있는 건 완벽한 리듬을 만들어 내는 일. 

파파

세계를 조율해내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노래한다는 것. 

마마

내가 태어난다는 소식은 바람이 전해줄 거야.

파파

바람 소리를 들어. 그것은 사랑의 노래. 

마마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 그렇게 가 닿을 거야. 

파파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마른 나뭇잎처럼.

마마

초록 잔디 사이로 속절없이 피어나는 노오란 민들레처럼. 

파파

벌거벗은 목련 나무 위로 흩날리는 하얀 눈발처럼.

마마

아기 스님 고추를 흔드는 얕은 파도처럼.  

파파

흔들흔들. 

마마

훌렁훌렁.

파파

너울너울.

마마

실렁실렁. 


영상 속 찬란한 빛.

눈을 뜨는 아기. 

아기의 세찬 울음소리.

새로운 생명을 알리는 듯 계속되는 울음소리.


그리고 나팔 소리.

천사의 나팔 소리. 

마마와 파파의 나팔 소리.


거대한 빛이 아기의 눈으로 빨려 들어가며, 찾아오는 어둠.


암전

메타버스 [카니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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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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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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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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