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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 요소를 가진 현대문학 분석 - 한강 <내 여자의 열매>, 윤고은 <로드킬>

  • 작성자 레니
  • 작성일 2024-03-31
  • 조회수 193

환상적 요소를 가진 현대문학 분석

- 한강 <내 여자의 열매>, 윤고은 <로드킬>


1. 현실의 곳곳에 등을 맞댄 환상들

  프란츠 카프카의 환상소설 <<변신>>이 등장한 이후, 많은 소설 속 환상적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변신>>은 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경제력을 잃으면서 가족에게 소외되는 내용을 담은 소설로, 자본주의 사회와 그 속에서 한 인간을 경제적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풍자하고 있었다. 소설 속 등장하는 환상들은 현실의 문제와 등을 맞대고 있다. 나는 환상 서사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변신>>을 읽으면서 시간이 흐른 현대, 환상 서사는 어떤 현실과 맞닿아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 여자의 열매>와 <로드킬>은 모두 환상 서사로 쓰인 작품이지만 각자 맞닿아 있는 현실문제(비판하고자 하는 현실문제)와 환상 요소를 부여한 대상이 다르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인물인 ‘아내’에게 환상성을 부여해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한다면, <로드킬>에서는 배경인 ‘모텔’에 환상성을 부여해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에 따른 계급과 인간성 상실 문제를 해학적으로 비추고 있다. 이 분석에서는 다른 성격의 두 환상소설을 각각 다룬다.


2. ‘내 여자의 열매’가 아니라, 한 사람의 열매

한강- <내 여자의 열매>


1) 아파트와 단절

  <내 여자의 열매>에서 먼저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남편이다. 남편은 아내의 몸에 멍이 든 것을 보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그치지만, 시간이 지나자 곧 아내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안일하게 생각한다. 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아내의 말에도, 토란잎처럼 파랗게 부푼 멍에도 “내일 당장 내과에 가봐”, “그리고, 제발 나다닐 때 조심 좀 해라. 다 큰 사람 몸에 이 멍이 다 뭐냐? 어린애도 아니고”(183P) 등 무심한 반응을 보인다. 또, 결혼 전 아내가 정착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는, 상추와 텃밭, 정착이라는 남편 자신의 꿈을 내세운다. 그렇게 남편의 꿈을 따라 정착한 아내가 병들어가는 3년이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에게는 모든 면에 있어서 가장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시간이다. 남편의 시점에서 아내를 아파트, 텃밭의 동등선에 두고 소유물로 생각하며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강하게 드러나는데, 이런 남편의 태도와 도시에 대한 환멸로 아내는 점점 병들어간다. 아내가 식물로 변신하기 전에는 빗물을 더러운 비라고 칭하며 아파트에서 살 수 없다고 애원하지만, 남편은 그 순간 두 손바닥으로 빗물을 받아 아내의 얼굴에 끼얹는다. 빗물 사건을 기점으로 남편과 아내의 소통은 완전히 단절된다.


2)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의 폭력성

  앞부분에서는 남편의 시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그의 폭력이 순수하고 무지한, 어떤 악의도 찾아볼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남편은 아내의 멍을 보며 (금방 잊어버리긴 하지만) 나름의 관심을 가지고,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한다. 그렇게 남편은 자신이 아내를 순수하게 사랑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가 보이는 행동은 폭력과 강요라고 생각된다. 사랑에서 어떻게 폭력과 강요로 이어질 수 있나. 그 이유는 가부장적 시선과 남성중심주의가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편의 시점에서 보면) 남편은 남성으로써 아파트와 여성인 아내를 소유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의 꿈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의 몸에 커다란 멍이 생겨도, 아내가 고통스럽다며 눈물을 흘려도, 건강이 나빠져도, 그저 자신의 외로웠던 과거와 행복에만 집중한 채 “내 짧고 아슬아슬한 행복을 함부로 깨뜨리는 아내의 예민함을”(188P)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물을 끼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시점 중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그리고 가장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장면은 소설 후반, 아내가 식물이 되고 난 후의 장면일 것이다. 화자는 식물이 된 아내를 보며 “내 아내가 저만큼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193P)고 말한다. 이후 바로 아내가 엄마에게 쓰는 편지 부분이 이어지는데, 아내의 시점이 너무 외롭고 괴롭게 표현된다. 이로 인해 아내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식물이 된 아내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화자(남편)의 표현은 더욱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또, 마지막 부분에서 아내의 열매를 먹는 부분은 화자(남편)가 끝까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며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 아래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폭력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아내의 식물 되기

  아내는 정착하지 않는 삶, 어머니의 삶(바닷가의 빈촌)을 벗어나는 삶을 꿈꿨던 인물이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과 헤어질 수 없다며 정착하지 않는 삶을 포기하고 아파트에 정착한다. 이후 문명에 대한 환멸에 구토를 하고, 멍이 생기고, 햇빛만 보면 자꾸 옷을 벗고 싶어지며 점차 식물로 변해간다.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인간의 육체를 벗어나 식물이 되는 그녀의 선택은 억압과 문명에서의 해방이자 저항으로 보인다. 아내가 맺은 열매는 ‘내 여자’의 열매인가? ‘한 사람’의 열매이다. 식물 되기라는 환상성은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라는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고통을 넘어서는 아내의 초월적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실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제시하는 듯하다. 


3. 무엇이 인간을 인간 아닌 존재로 만드는가

윤고은- <로드킬>


1) 배경에 부여된 환상성

  앞서 분석한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아내라는 ‘인물’에게 환상성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윤고은의 환상소설은 배경에 환상성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로드킬>에서는 환상적 요소로 ‘모텔’이라는 배경이 나오는데, 가장 먼저 드러나는 환상적 요소는 컨베이어 벨트이다. 모텔의 복도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이며 그 위에 놓인 자판기들을 쉼 없이 이동시킨다. 이 복도 위 자판기들의 품목은 풍선이나 비눗방울, 밧줄과 가터벨트까지 다양하다. 사람들은 이벤트를 위해 이 자판기를 사용한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요소는 눈이 녹지 않는 야외로 화자를 모텔 내에 고립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격이 저렴해질수록 점점 좁아지고 낮아지는 방 또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환상적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2) 컨베이어 벨트

  가장 먼저 등장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자판기는 심화된 자본주의, 소비 사회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움직이는 자판기는 사람들이 방에서 쉽게 물건을 살 수 있게 하며, 사람의 취향보다 앞서 나타난다. 이런 자판기의 특징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쉽게 소비하게 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성과 마케팅을 목적으로 사람들의 가치관과 취향을 조종하는 기업체를 비판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인간을 인간 아닌 존재로 만드는 것

  남자가 차도에서 죽어가는 노인을 발견하고 소화전을 깨 모텔의 사람들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로비에 모인 사람들이 노인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렇게 늙은 걸 쳤나.”,“저 도로에서는 원래 야생동물이 많이 뛰어듭니다. 그러게 야생 동물 출현 주의 구간 아닙니까”(178P) 라고 말하며 노인을 인간이 아닌 야생동물로 바라본다. 노인이 사람들에게 동물로 보인 이유는 모텔에서 소비 행위를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경제 능력을 근거로 사람을 사람 아닌 존재로 만드는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로비에서 만나 함께 다니게 된 여자는 연극배우였던 경력을 살려 ‘인간 자판기’로 일하고 있었다. 자판기의 도구를 활용해 객실에서 공연을 하며 돈을 받는 일이었다. 여자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흘러가는 자판기로 일하지만 곧 퇴출 당하게 된다. 이유는 ‘수익성이 없는 자판기’를 오래 둘 수 없다는 것. 이 장면에서도 여자라는 인물이 인간이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퇴출되는 자판기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자는 처음에는 비싼 방에서 지내지만 모텔 안에 고립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돈이 떨어진다. 남자와 여자는 방을 점점 저렴한 곳으로 옮기고, 어느새 방의 높이는 1/4이 된다. “몸은 방에 맞게 단련되었다. 움직일 때는 네발로 기거나 아니면 두 팔을 더듬이처럼 뻗고 엉덩이와 허벅지로 방을 쓸었다.”, “남자는 어느새 척추가 사라진 여자의 둥근 등을 쓰다듬었다.”(183P) 등의 문장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인물들이 기어다니는 것이 직립보행. 즉,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에피소드들은 인간을 인간 아닌 존재로 만드는 물질 중심주의를 해학적 태도로 비판하는 듯 하다.


4. 현실의 문제에 손을 뻗는 환상 서사들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 윤고은의 <로드킬>. 환상적 요소가 현실의 문제에 잘 맞닿아 있는 두 단편소설을 대표로 현대 환상소설을 알아봤다. <내 여자의 열매>는 2000년에, <로드킬>은 2010년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두 소설에서 드러내는 현실의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었다고 할 수 없고, 이 두 소설을 포함한 여러 동시대 문학에서는 환상 서사를 통해 현실의 문제에 손을 뻗고 있다. 서사 자체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환상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는 현실의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설들은 우리로 하여금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고찰하게 한다. 이제 이 서사들을 살펴본 우리는 소설이 열어준 고찰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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