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 작성자 이타
- 작성일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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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의 길어지는 시간과 늘어지는 그림자 속에서는 나와 저 별들과 같이 아스라이 계신 그대도 있을 것입니다. 그대없이 나는 얼어버린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 입니까? 그러나 저 원시에서 전해져 오는 존재하지 않는 별의 빛처럼, 나는 오늘도 그대의 남아있는 온기만을 탐닉하며 불안하게 깜빡이는 백열등 아래에서 공포에 떨며 그대의 모습만을 되세김질 할 뿐입니다.
나는 불빛 하나, 남은 온기 한 조각 조차 없는 이 적막한 순례길에 홀로 올라 허전한 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걸어갑니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갈수록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는 이 어두운 심해를 내 눈물로써 적셔갑니다. 발광생물 하난 없어진 이 어두운 심해에는 빛을 잃을 채 날카롭게 찢어진 큰 입을 벌리고서 날 삼키려 하는 산산히 깨진 전구라는 이름의 아귀 몇십마리가 날 삼키려 하며 내 눈물을 먹고 삽니다.
그대는 그 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까? 그대만을 위해 관리하던 이 거리는 이제 꺼진 전구가 갈아끼워지지도, 낙엽붙은 이 거리가 쓸리지도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거리와 나는 그대가 두고 간 그대로 멈춰있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 멈춰있는 길을 거꾸로 되짚어 굳어버린 내 시계에 내일의 숨을 불어넣습니다.
그대가 지나오던 길을 통하여 초록색 대문 앞으로 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 뒤 풀밭이 되어버린 마당을 지나 오래 닫혀있던 미닫이 문을 열어 마지막 남았을 그대의 향기마저 천천히 날려보냅니다. 들어가자 내 눈에 보인 입구의 꽃무늬 카페트와 구식 청소기, 언제나 잘 깎인 과일이 놓여있던 식탁을 지나 체리색 문에 작은 꽃 화관이 매달린 그대의 방으로 가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전히 포근한 냄새와 따스한 공기에 당장이라도 그대가 나와 날 반겨줄 것 만 같았습니다. 이 공간에는 마지막 남은 그대의 숨결이 머무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곱게 정돈된 침대 옆 간단한 화장품 몇 개와 작은 거울이 놓인 그대의 책상위를 천천히 훑어봅니다 그 후 미안한 마음으로 책상 서랍 안을 살며시 열어보았습니다. 그 속에는 그대가 소중히 여기던 사진 몇장이 고무줄에 묶인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나는 그대의 지난 사진들을 천천히 훑어봅니다. 그대의 젊을 적 사진과 그대의 어머니,아버지 사진과 젊은 날 그대의 추억이 서려있을 그대와, 그대의 친구들과 아름다운 경험들이 그 안에 녹아져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어떤 남자가 사진속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카페에서 사진 끄트머리에 작게 나와있던 그 남자는 어느샌가 점점 그대의 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다 어느샌가 하얀 드레스와 한껏 올려묶은 검고 풍성한 머리를 한 그대의 옆에 구두와 양복을 차려입은 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대의 손을 잡아주는 그 남자가 있었습니다 사진을 더 넘기면 넘길수록 그대와, 그 남자는 점점 늙어가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대는 아름다운 하얀 드레스가 아닌 하이얀 환자복을 입은 채 검고 풍성하던 머리를 깎아버린 채 앉았다 누웠다만 합니다. 몇 년 전에 일이였습니다. 무심코 받은 검사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암이란 것이 발견된 것은 말입니다. 그렇게 한동안이 비어있던 사진을 넘겨보니 그대는 사복을 입은 채 병원 밖을 환한 미소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분명 다른이가 봤다면 무슨 좋은 일이 있었을 것 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옆에서 그대의 손을 잡고있던 그는 왠지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다다음 사진을 넘길수록 그대는 점점 마르고 야위어 갑니다. 휠체어를 타고 공원에서 산책하며 찍은 사진과 책상에서 책을 읽던 그대의 모습들이였습니다. 어느샌가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이 사진의 마지막은 그대의 생일파티 때 내가 찍은 사진이였습니다.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환히 웃으며 초를 불던 그대의 영원히 함께 행복하자던 소원은 그 후 몇시간이 지난 다음 날, 해가 밝지도 않은 새벽 1시 37분에 흰 천이 덮이며 끝나버렸습니다 마지막 사진까지 다 넘기고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그대의 사진들을 다시 서랍안에 고이 모셔두고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영원하길 바라던 우리는 이제 깊은 이별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대와 다시 만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만나자 약속한 그대와의 약속을 난 기억합니다. 그대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 행복할 것입니다. 나와 이 거리는 그대가 날 데리러 올 때 까지 우리가 사랑하던 모습 그대로 그대와 다시 행복할 날을 기다릴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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