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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민들레문학상_수필]학교, 내 마음의 고향

  • 작성일 2015-03-28

 

[제3회 민들레문학상 장려상_수필 ]

 

 

학교, 내 마음의 고향

 

 

 

김순자

 

 

 

 

    이제야 만학의 꿈을 이루는 기회가 왔다. 내 나이 60세, 성인학교 야간 중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학생들 연령은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였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하자마자 공부 시간 한 시간이라도 놓칠세라 학교로 달려갔다. 공부 시간은 내겐 소중하고 재미있었다. 검정고시 패스해서 자격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학교 생활이 그리웠다.
    지금도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중학교는 당연히 보내주리라 생각하고 진학반에서 열심히 시험공부해서 합격하였는데 이게 웬일인가 집에서 보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담임선생님 역시 놀라셨다. 우리 집을 방문하셔서 오빠한테 중학교에 보내야 된다고 몇 번이고 부탁하였지만 허사였다. 결국 중학교 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선생님이 몹시 안타까워하였다. 졸업하고 나서 뒤란에서 놀고 있는데 중학교에 입학한 친구들이 하얀 세라복에 검정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우리 집 쪽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하여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고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친구들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학교 못 간 상처가 이렇게 클 줄이야.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장래 희망이 선생님인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던 중에 서울에 있는 큰집에서 올라오라는 편지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짐을 꾸려 서울로 상경하였다. 신길동에 있는 산양공장에서 직원을 모집한다기에 이력서를 써가지고 면접 보러 갔는데 오후에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공장은 대다수 중졸 이상자만 모집하였기 때문에 나는 학벌하고 상관없는 의상실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의상실은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하고 옷 맞추는 사람들 날짜를 맞춰 줘야 했기에 밤새우는 일이 많아서 잠이 항상 모자랐다. 코피 쏟는 날도 많았다.
    기술은 미싱사까지 올라갔지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머릿속에서 늘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늦은 나이에 학교 다닐 기회가 찾아왔다. 늦게나마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학교에 처음 갔을 때는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뻤다. 나도 드디어 중학교에 다닐 수 있는 날이 왔다며 교과서를 받는 날 흥분하였다. 교과서가 모두 13과목이었다. 선생님들도 모두 젊고 예뻤다. 학교 시설도 지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깨끗하고 좋았다. 모든 과목이 재미있고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초등학교 때 공부 잘했던 저력이 있었기에 이해력도 빨랐다. 그런데 체육시간에 운동 대신에 무용 댄스를 하는 것이었다. 춤하고는 거리가 먼 나는 그래도 열심히 따라했다. 뒤처질세라 열심히 했지만 선생님이“어저께보다 조금 못 하시네요.”라고 했다. 그러나 하기 싫다고 빠지면 손해다. 댄스는 순서가 복잡하기에 그다음부터는 따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하는 과목은 영어 시간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학생이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흰머리가 더 날 것 같았지만 흰머리가 대수냐, 옛날에 못 한 공부를 맘껏 해야지, 했다.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중학교 졸업할 때가 왔다.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했다. 그즈음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였기에 정보고등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주로 컴퓨터를 다뤄야 했기에 컴퓨터와 친해져야만 유리했다. 1시간까지는 할 만했지만 2시간 이상 컴퓨터 시간이 진행될 때는 머리가 많이 아팠다. 하루는 학교 가는 도중에 머리가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아 발길을 옮겨 병원에 가서 링거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고 누워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쓰러져 누워 있으면 간호해 줄 사람도 없는데 공부가 중요한가, 몸을 추슬러 관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동안 결석 한 번 안 했는데 일주일 동안 쉬면서 머리를 식혀야겠다고 결심했다. 직장에 다녀와서 잠을 충분히 자고 일주일 동안 쉬었더니 회복이 되었다. 얼마 있으면 졸업이었다. 체육대회니 소풍이니 학교 행사 때는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직장을 우선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졸업만 하면 많이 놀러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못 했을 텐데 많은 세월 가슴에 공부에 대한 응어리를 품고 살았던 것을 해냈기에 자부심을 느꼈다.
    “난 할 수 있어. 힘내. 조금만 참아.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고등학교까지는 마쳐야 한다고.”
    “얼마나 다니고 싶었던 학교인데…….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초등학교 시절만 생각하면 힘이 솟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하곤 했잖아.”라며 나를 다독였다.
    졸업할 때는 모든 것을 다 얻은 느낌이었다. 꿈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지금 이대로 하늘나라에 간다 해도 여한은 없다. 학교는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이요, 나를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가게 지탱해 준 버팀목이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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