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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눈부신 소음의 세계

  • 작성일 2017-11-01
  • 조회수 1,397

[비평in문학]




<새로운 시대, 문학의 키워드>

‘여성, 노동’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 시작해 ‘문체, 주체’와 같은 비평 키워드나 ‘번역, 상호텍스트성’같은 문학적 키워드, ‘환상, 무의식’같은 인접학문 그리고 ‘빅데이터, 가상현실’같은 미래용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비평in문학]의 새로운 비평 기획입니다.




기어이 눈부신 소음의 세계

- 세운상가에서 읽는 황정은의 「웃는 남자」



최예선





1.
‘솔다방’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받았다. 옛날 정서 물씬 풍기는 이름이 우리 모임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메시지에 따르면 솔다방은 세운상가 2층에 있다. 이런 데서 모이는 사람들이라면 대충 짐작이 갈까? 나와 일행은 오래된 건물이나 사라진 건물의 터, 폐허가 되거나 곧 파국을 맞을 건물을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이따금 모여 인왕산 아래 서촌 골목과 옛 성벽, 익선동 한옥촌 같은 곳을 걷곤 했다. 날이 무더워지기 전에 멀지 않은 세운상가에 가서 쌍화차와 얼음동동 미숫가루 같은 것을 먹고 을지로의 백순대집에 가자고 했는데, 문제는 솔다방. 골목과 건물 찾는 데 도통한 사람들이 급기야 구글맵을 켰지만 허탕만 쳤다.
‘대림상가 아니고 청계상가’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세운상가는 하나가 아니라 네 개의 큰 동에 모두 여덟 개의 상가가 있는 집합체이다(상가 하나를 철거했으니 이제 일곱 상가만 남았고 그중 하나는 호텔로 쓰인다). 청계상가는 두 번째 동의 북쪽 건물이니, 조명집이 1층과 2층의 측면을 환히 밝히고 있는 이곳이 맞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도 다방은커녕 컴컴한 복도뿐. 들고나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측면 외부에서 연결된 계단을 발견했고 그제야 솔다방이 나왔다.
마담보다는 주인아주머니나 사장님 같은 칭호가 더 어울릴 법한 수더분한 얼굴이 우리를 반긴다. 침침한 조명이 켜진 칙칙한 다방을 상상했는데 환하게 불 켜둔 백반집 같은 분위기였다. 어쨌건 쌍화차와 냉미숫가루의 인심만큼은 후해서 일행의 얼굴이 행복해졌다. 여소녀 사장도 솔다방을 드나들까. “청계천 방향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5층에서 종로 방향으로 홀을 가로지르면”1) 나오는 564호에서 일하는 여소녀 사장, “계단으로 올라가면 높은 천장이 딸린 5층 홀로 들어서자마자 우회전한 뒤 우중충한 현관으로 곧장 뛰어들면”2) 나오는 바로 그곳에서 40년이 넘도록 앰프를 고치는 여소녀 사장. 그도 시원한 게 생각날 때는.
나올 때는 주인이 일러준 대로 내부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 일행은 동시에 어두운 복도를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 복도 안은 인기척 없이 적막했다. 대낮에도 두터운 어둠이 은근한 곳이다. 그늘이 깊고 그림자가 짙다. 이런 곳이라면 내 그림자가 일어나서 아늘아늘 흔들리는 게 보일지도 모른다. 앰프에 들어가는 콩알만 한 전구를 사러 아까 낮에 은교가 지나간 복도가 여기일까. 노인 혼자 그 많은 전구들을 헤아리고 있는 오무사로 가기 위해.
그림자가 일어나고 그림자에 먹히고 그림자에 숨이 먹먹해지는 『백의 그림자』는 이 복도에서 풍기는 적요하고 균질한 어둠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청계상가와 대림상가를 이어주는 2층 복도는 진공의 공간처럼 보였다. 복도가 깊어 과거로도 가고 미래로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두 군데에 모두 걸쳐진 미로일지도. 여긴 없는 것이 없다는데, 한데 모아 놓으면 심지어 탱크도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데, 그것들은 여기 어디에 있다는 걸까? 모든 것을 빨아들인 그림자와 적막 외엔 아무것도 없어 달처럼 고요한데.
세운상가는 그랬다. 적어도 『백의 그림자』를 읽을 때까지는 소설가 황정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웃는 남자」에서 소설가는 소음의 중심에 있는 세운상가를 이야기한다. 일층에서 오층까지 뛰어다니며 택배상자를 옮기는 d가 소음을 말했다. d가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들쑤시는 소음의 존재를 말하자마자, 미미하지만 분명 존재하던 구석구석의 잡음과 조그만 전구처럼 자잘한 삶들이 쏘아내는 묵직한 소음이 내 귀에 밀려 들어왔다.

1) 황정은, 「웃는 남자」, 45p
2) 황정은, 「웃는 남자」, 45-46p




2.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슬랩스틱 코미디언이 그토록 염세적이고 체념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다. 가까이서 보고 낮은 데서 보면 감정이 실린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보이는 건축 이미지 중에 조감도라는 게 있다. 새처럼 높은 데서 보는 장면인데, 건물의 꼭대기 모양과 건물들이 어떤 구조로 앉혀졌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새의 시선에서 건축을 볼 사람이 있긴 할까? 건축은 늘 부분만을 경험한다. 건물의 틈새나 벽의 형태, 창을 통과한 빛과 그림자 같은 것이 공간적인 감각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
건축에 대해 글을 쓸 때는 항공사진이나 위성지도를 자주 본다. 얼마 전에도 인천 부평의 영단주택 단지를 한참 살폈다. 격자형으로 반듯한 마을들이 암녹색과 흑자주색, 검은 갈색의 지붕으로 덮여 있다. 옆 블록을 보면 녹지도 있고 공단도 있으며 몇 블록 너머에 아파트 단지들도 조성되어 있다. 아파트 단지는 유난히 조형적이다. 높은 데서 보면 도시는 경이롭다. 빈 곳 없이 빼곡하게 어떤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거대한 질서 안에서 커다란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 같다.
이 주택지는 위성지도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구획된 걸 보면 정부에서 계획한 지역일 것이다. 크기가 같은 필지가 자잘하게 쪼개진 것은 일제강점기나 도시화가 시작된 시점에 인구가 한꺼번에 몰렸을 때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다. 기와집이 많은 것도 체크해 두자. 기와집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처음부터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들이 살도록 계획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어 블록 떨어진 곳에 공단이 조성돼 있으므로 공장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영단주택이라는 이름에서 최종 단서를 찾는다. 문헌은 이곳이 1940년대 초에 지어진 대규모 노동자 사택지라고 설명한다.
위성지도에서 내려와 그곳을 걸었다. 이제야 도시는 본 모습을 보여준다. 노후한 집들과 대충 손본 집들과 아예 신축한 집들이 골목 따라 어지럽게 서 있었다. 어떤 골목은 바스라져 가는 건물이 방치되어 있고, 어떤 골목은 잘 가꾸어진 화단이 태평하게 보인다. 오래된 극장 간판이 있을 법한 건물에 마트가 들어섰고, 재래시장 비슷한 것이 운영되고 있다. 큰 도로와 가까운 곳에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간식을 파는 카페가 있다. 카페를 보고 골목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붉은 깃대가 듬성듬성한 쇠락한 동네에 당황하게 되리라. 골목을 하나씩 돌 때마다 세월이 십 년, 이십 년 과거로 향했다.


여긴 폭파된 한강인도교의 아수라장에서 등에 업은 자식이 죽은 줄도 모르고 도망쳐 나온 김귀자 말고, 미쓰비시 공장에서 방탄강판을 만들다 잘려 나간 몸뚱이와, 인천상륙작전 때 부서진 건물 잔해와, 부평 기지촌에 출입하던 양공주들이 빼돌린 고깃덩이와 햄, 외투의 품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김귀자가 살고 있다.
그리고 d처럼 도시 중심에서 사람들을 흡입하는 건물에 몸을 의탁했던 사람들도 살고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 1970년대는 ‘베아링’과 자동차 ‘본네트’를 만들었고, 더 이전에는 미군부대와 공수부대를 드나들었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일본군 조병창 공장에서 총검을 만들던 사람들. 집단의 역사를 가진 집들은 건축유산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건물뿐만 아니라 소리도 문화유산으로 남길 수 있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공장에 대규모로 수용된 그들의, 지칠 대로 지친 귓속으로 파고들었을 거대한 소음까지도. 기계를 깎고 쇳물을 붓던 그 소리, 몸을 도려내고 삶을 도려내던 그 소음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내 몸으로 볼 때, 시선을 낮춰 더 오래 바라볼 때 건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하늘에서는 완벽한 조화를 구현하던 풍경이 지상으로 내려오면 무규칙의 혼종으로 어지럽다. 나는 건물에 드리운 그늘과 벌어진 틈새, 떨어져 나간 벽감, 깨어진 곳을 교묘히 이어붙인 유리, 밥 짓는 연기를 피우느라 꺼멓게 된 굴뚝, 수십 년간 밟고 다녀 내려앉은 마루와 반질반질해진 기둥을 본다. 발 모양으로 주름이 잡힌 구두나 무의식적인 습관대로 바뀐 옷을 볼 때처럼, 건물에서도 사람이 읽힌다.
시간은 건물을 훼손하지만 그건 어떤 의미의 창조이기도 하다. 거기엔 사소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너무 사소한 인생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너무 사소한 이유로 원칙에서 벗어나기 일쑤여서, 한 장소를 특정 언어로 규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할뿐더러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로 복잡한 이 풍경을 어떤 식으로든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나아갈 수 있으므로.
건축은 지어질 때에도 엄청난 소음을 발생시키지만 지어진 후에도 사라질 때까지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으로 채워진다. 소음이 들리게 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몸의 일부가 된 양 호흡을 힘겹게 하거나 견뎌내야만 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면, 그때 몸을 겉껍질 삼아 숨어 있던 내가 세상과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거대한 삶의 현장에 온몸으로 맞부딪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과거의 소리를 빨아들인 진공의 침묵이 마을에 감돌 때, 누군가는 그 소음을 기억해 내야 한다.



3.
다시 세운상가에 갔다. 소설이 있기 전에 건축이 있었다. 나는 소설보다 건축을 더 먼저 알았고, 많은 사람들은 건축보다 그곳에서 파는 물건 ― 빨간 책과 성인 비디오, 해적판 디스크 같은 조금은 불온한 것 ― 들을 먼저 알았다. 세운상가는 철없는 소년들이 해묵은 호기심을 팔아 성인이 되는 인큐베이터였다. 서울에 있는 건축물 중 흉물스런 것으로 순위에 들었다지만 처음 완공될 무렵엔 국가의 이목이 집중된 최초의 주상복합 프로젝트였다. 폭 50미터, 길이 1.2킬로미터의 도로 위에 5층짜리 상가가 세워지고 낮게는 5층, 높게는 8층에 이르는 아파트가 그 위에 얹혀 있다. 8개의 상가는 8개의 회사 이름을 땄다. 그러나 탄생하고 40년 만에 철거가 기정사실화된다. 가장 북쪽의 상가 하나를 없앤 후에야 철거는 중단되었고, 지금은 도시재생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다시 세운’이라는 캠페인을 시도하고 있다.
솔다방이 있는 두 번째 동은 청계천과 을지로 사이에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건물의 크기는 가늠이 어렵지만 이런 동이 네 개나, 이런 상가가 7개나 된다는 사실이 눈앞의 복도를 일곱 배쯤 길어 보이게 한다. 버젓이 간판이 있지만 입구를 찾느라 헤매고, 내부로 들어가서도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십중팔구 길도 방향도 잃게 된다. 건물은 기본적으로 이용자들이 쉽게 원하는 곳을 찾아가도록 동선을 구성하기 마련인데, 이 건물은 그렇지 않았다. 오랜 시간 내부자들끼리 고치고 늘리고 줄이느라 선명했던 동선이 흐트러졌고, 오랫동안 문을 닫은 곳과 적체된 물건들 사이에서 혼란이 발생하기도 하고, 아파트 전용 엘리베이터와 화물 전용 엘리베이터 때문에 길을 혼동할 수도 있다.
내부는 어둡고 고요하다. 겨우 발견한 계단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가면 아트리움3)이 펼쳐진다. 천창이 솟아 있고 중앙이 뻥 뚫린 복도. 복도는 바깥으로 창을 낸 방으로 가는 문들이 촘촘해서 초현실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 옥상으로 나갈 수 있다. 세운상가 주변의 풍경이 수평선처럼 펼쳐진다. 짙은 녹음에 묻힌 종묘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삶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는다. 세운상가라는 회색 방파제를 향해 양쪽에서 세상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다.

3) atrium, 건물로 둘러싼 공간구조. 투명한 지붕재를 덮어 채광을 좋게 한다.


세운상가가 들어오기 전 이곳은 종로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긴 횡축에 혼란스럽게 난립된 무허가 판자촌이었다. 1945년 소개공지대(疏開空地帶)로 결정되어 주택들을 철거할 때만 해도 이런 결과를 예측하진 못했을 것이다. 소개지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폭격에 서울이 불타는 것을 막기 위해 공터와 도로를 내어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서울에 아주 잠깐 동안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장소가 생겨났다. 서류상 빈터여야 마땅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해방 이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 전쟁으로 집과 고향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도시로 상경한 빈민들이 몰려들어 비닐장막과 판자로 대충 집을 짓고 몸을 팔며 먹고살았다.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없는 국유지였기 때문에 번듯한 집은 없었다. 이 살풍경한 마을도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탄성이 흘러나왔다고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했던 손정목 선생은 『서울 도시건축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다. 아름답지 않은데 아름답다고밖에 할 수 없는 무서운 생의 기운이었으리라.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게 무엇일까. 짧은 역사 동안 채워졌다 사라졌다 다른 것들로 채워진 도로 위는 세운상가가 계획되면서 다시 비워진다. 중구청 공무원 이을삼이 도로를 정비하고 개발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당시 서울 시장인 불도저 김현옥과 젊고 야심찼던 건축가 김수근이 계획을 실행했다. 그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입체 도시가 추진되었다. 최고급 백화점과 아파트, 호텔이 들어오고, 남산까지 공중보도가 이어져 걸어서 어디서든 갈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그 구상을 뒷받침하는 기본 설계에 투입된 시간은 고작 며칠에 불과했으며 구상대로 실제 진행되지 못했다고 당시 실무를 맡았던 건축가 윤승중은 「세운상가 아파트 이야기」라는 글에서 서술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공사가 시작되고, 첫 상가가 1967년에 완공된다. 세상의 기운이 용솟음치는 곳이라는 낙관적 기대 속에 우리나라 최초의 데파트맨션이 탄생했다.
손정목 선생은 세운상가의 투박한 외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시절엔 외관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자동차도 전화기 보급률도 얼마 되지 않고 여전히 폐허의 잔해가 넘쳤던 서울에서 디자인과 자연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그때는 건축이 희망이 되었던 유일한 시절이다. 건축가가 앞장서서 도시의 변화를 이끌었던 유례 없던 일이 발생했고, 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유토피아를 향한 희망을 품으며 서울은 변화했다. 어둡고 막막한 서울에서 건축은 세상을 구원하는 한줄기 빛이었다. 건축은 기적이었다. 그러나 세운상가라는 기적이 몰락하는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명동, 강남, 용산…… 개발이라는 이름의 다른 기적이 일어나자 하나의 기적은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세운상가에 가면, 신기루 같은 역사를 거슬러 이 자리가 텅 비어 노란색 흙이 바람에 날리던 시절을 상상하게 된다. 죽음과 파괴를 막아 줄 미약한 진공관이 어느새 무섭도록 강렬한 삶의 색채로 뒤덮이는 순간이. 건축이 혁명이던 시대는 지났다. 폐허에서 솟아오른 신전의 지위에서 몰락하여 자본주의의 환멸에 빠지고 말았다. 환멸로부터 탈출한 경험도 없고, 탈출해 봐야 갈 곳도 없다는 d의 말대로 우리는 외면당한 미래 따윈 관심 없다. 과거도 미래도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지금, 건축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4.
세종로는 세운상가보다 폭이 조금 더 넓지만 거의 비슷한 규모를 갖고 있다. 지난겨울 그 도로를 꽉 채운 사람들을 봤다. 같은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밀집된 온기야말로 세계의 기운이 모인 중심이었다. 「웃는 남자」에는 세월호 거리집회가 세종로에서 열린다. 기계와 사람들이 전쟁하듯 부딪히는 세운상가의 소음이 서울의 한쪽을 채운다면, 거리집회에서 울려 퍼지는 세종로의 쟁쟁한 음성들은 서울의 다른 쪽을 채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는 목소리들이,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d의 몸에 실렸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차벽에 도달하는 장면이 세운상가 옥상의 풍경과 겹쳐진다. 스스로 하찮은 존재라 여기던 d가 얇아서 쉽게 바스라질 것 같은 진공관을 통과한 음악을 들으며 감동한다. 하찮은 잡음이 진공을 통과하면 노래가 된다.


어떠냐 다르냐?4)


나는 천창에서 흘러넘치는 빛을 바라본다. 먼지 낀 기계들의 무덤 같은 그곳에 고양된 빛이 쏟아지자 초라한 그늘이 잠시 뒤로 물러난다. 이 투과된 빛은 희망 같은 것을 준다. 건축가 김수근은 이 빛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여소녀 사장이나 d도 이 빛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밝지 않아서 세운상가랑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르냐, 다르게 들리냐?5)


이제 건축이 다르게 보이는가? 날카로운 절단기의 소음이 진공관에서 울려 퍼지는 러브 미 텐더가 되고 죽음을 기도하는 두 손이 혁명을 소망하게 된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건축이 인간다워야 하고 진정한 삶을 담아내야 하는 이유에 조금 다가갔을까?
철근 7천 톤과 시멘트 87만 부대가 들어가 동양 최대의 공사라 했던 세운상가가 지어질 때, 철거된 무허가촌의 난민들은 어디로 옮겨졌다. 구로공단이 디지털단지로 개발되면서 사라진 쪽방과 기묘하게 복잡한 연립주택에 살던 사람들도. 부평 영단주택이 개발되면 과거와 지금의 도시 노동자들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세운상가 주변의 입정동, 산림동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그들이 살았던 삶터를 철거하는 폭력적인 소음이 기억 너머에서 밀려온다. 딱딱하지 못한 부드러운 외피를 가진 인간이 필연적으로 보호막처럼 갖춰야 하는 것이 집이고 건축이라면. 그렇다. 건축은 기어이 눈부신 소음의 세계.

4) 황정은, 「웃는 남자」, 100p
5) 황정은, 「웃는 남자」, 100p














작가소개 / 최예선

문화 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건축유산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 홍차, 여행, 책, 만화 등 다양한 주제를 공유하며 일상의 연대를 도모한다. 요즘은 만화 스토리 작업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 『오늘은 홍차』 『달콤한 작업실』 『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밤의 화가들』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등을 썼다.


《문장웹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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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1
문학이라는 시대착오와 시차(時差)의 일상화

문학이라는 시대착오와 시차(時差)의 일상화 박인성 ‘시성비’의 시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표현은 다소 정정될 필요가 있다. 인생은 지나치게 빠르고 예술은 지나치게 느리다.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다. 그리고 시성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은 바로 숏텀-피드백(short-term feedback)이다. 요구에 대하여 빠르게 응답하는 것, 입력(input) 대비 빠른 출력(output)을 도출하는 것. 이러한 경향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되면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과정의 올바름보다는 과정의 빠름, 더 나아가 과정 자체가 생략되고 결과만 도출되는 것이야말로 수용자들에게 가장 큰 만족을 준다. 최근 숏텀-피드백에 대한 선호는 단순히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뛰어넘어서 디지털 시대에 대한 보편적인 감수성으로 확장되는 중이며, 피드백의 지연을 직접적인 피해나 손해, 경제적이거나 정신적인 차원의 이득과 손실로 환원하는 소비자 감수성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숏텀-피드백에 대한 효능감은 빨라지는 것에 대한 체감보다 느려지는 것에 대한 역체감으로 두드러진다. 자신의 요청에 대하여 응답이 느리게 오는 것은 소비자로서의 권리에 대한 침해이며 손해의 발생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을 소비자 권리로 환원하여 자신이 정당한 권리에 비하여 그 결과를 누리지 못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피해자 정체성이 횡행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대로 우리가 기존의 세계에서 의미를 부여해 왔던 고전적 가치들은 주로 롱텀-피드백에 속한다. 노력, 숙련, 취향, 성장 같은 것들 말이다. 대체할 수 없는 경험적 가치는 점점 더 쇠락하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경험을 압축하여 정리한 정보다. 유튜브의 요약정리 영상이 아니면 더 이상 책이나 영화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사를 구성하는 플롯(plot)의 논리는 지나치게 느리고 효율적이지 않다. 롱텀-피드백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만 그 결과값에 대해서는 보장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롱텀-피드백의 실패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그동안 결과를 위해 쏟아부은 각종 정신적-물질적 투자의 무화(無化)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과정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경로의 다양성이나 결과 이외의 성취에 대한 부정이 전제되어 있다. 롱텀-피드백은 오늘날 너무나 치명적인 실패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실패를 하려면 빠르게 하는 것이 낫다. 조금 투자해서 빨리 실패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치명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숏텀-피드백에 천착하는 시성비 추구 경향은 글로벌한 보편 현상이다. 게다가 ‘빨리 빨리’ 문화를 통해서 원래도 더 빠른 것에 가치를 부여해 온 한국은 그중에서도 최첨단의 시성비 사회라, 더 나아가 ‘속도 전체주의’ 국가라 할 만하다. 한국은 6·25 이후 폐허에서부터 압축적인 경제적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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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1
죽은 선생님의 사회에서 (3)

죽은 선생님의 사회에서 (3) ―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문학하기 송현지 4.1) 전망과 실감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은 파솔리니의 시영화cinéma de poésie 를 분석하며 시적인 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아 온 파솔리니는 이 영화에서도 무색무취의 광산 가스처럼 “아무런 [위기의] 기미 없이” 다가오는 파국을 우리가 감지하게 하기 위해 몽타주를 사용한다. 세계가 정상성을 위장하고 있음을 가리켜 보이고, 보이지 않는 사태를 가시화하는 예술의 역량이란 우리에게 익히 익숙한 것이지만, 그 방법론에 대한 디디-위베르만의 다음과 같은 상세한 설명은 시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 역량을 발휘하는가를 증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무엇인가를 겪는/시도하는 어떤 방식.” [······] provare는 (파솔리니가 분명 염두에 두고 있었을) 여러 가지 의미를 함께 모았을 때에야 가장 정확해질 수 있는 동사이다. provare는 (예를 들어 소박한 장미와 같은) 무언가 앞에서 요동치는 감정이라는 의미에서 분명 “겪다éprouver” 또는 “느끼다ressentir”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장미가 분노에 이어지는 것처럼) “보기 위해” 여기에서 연결된 세계의 요소들에 관한 발견적 작업이라는 의미에서 “시험하다essayer”이고, “실험하다experimenter”이다. 그리고 다시, 역사적 연역과 세계의 모종의 상태(1840년대 마멜리의 애국가와 1960년대 정치 시인 파솔리니의 글 사이 어딘가)로부터 축조된 판단이라는 의미에서 이 낱말은 “증명하다prouver”를 뜻한다. 『이단적 경험』의 저자에게 시는 세계를 prova(시험) - 이는 또한 시간의 prova다 - 하는 양상 또는 양태화로서 증명을 뜻할 것이다. 한편으로 논증된 사유, 증거, 판단을 낳고, 다른 한편으로 구어적이거나 시각적 형식 속에서 양태화되는 감정을 낳는 에세이essai 또는 실험이다. 이 모든 것이 정확하게 영화 의 기획을 특징짓고 있다.2) 인용 글은 어느 시선집 서문에 파솔리니가 적은 문장을 디디-위베르만이 섬세하게 분석한 부분이다. 파솔리니는 자신의 시와 영화 사이의 등가성을 분석하는 시도를 비판하면서도 여기에 “무엇인가를 겪는/시도하는 어떤 방식Un certo modo di provare qualcosa이 [······]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라고 적는데, 디디-위베르만은 이 문장에서 사용된 ‘겪는/시도하는provare’이라는 동사의 다양한 의미에 주목하여 파솔리니

  • 관리자
  •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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