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鐵)의 사랑
- 작성일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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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철(鐵)의 사랑
김숨
조선소에서는 철-배를 만든다. 철판을 병풍처럼 이어 붙여 커다란 철판을 만들고, 그 철판들을 맞추어 짜 철-상자를 만든다. 저마다 용도에 맞게 공정(工程)을 거친 철-상자들을 조립하면 마침내 철-배가 탄생한다. 철-상자는 대개 가로, 세로, 깊이가 15미터에 무게가 50여 톤 나간다. 그리고 노동자 2, 3백 명이 한꺼번에 그곳에 들어가 일한다. 철-배는 보통 3백여 개의 철-상자가 합쳐져서 완성된다.
철-배는 크게 선미, 조타기가 있는 기관실, 선원들이 먹고 자며 일상생활을 하는 거주구, 엔진실, 화물칸, 선수부로 구성돼 있다. 그것들이 조각인 철-상자의 제조 과정은 용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충 이렇다. 용접, 가스와 수도 배관 설치, 전선 설치, 온갖 기계 장착, 페인트칠. 소금기 섞인 공기 중에 종일 노출돼 있는 탓에 철판이 계속 부식되고 있어서 녹을 제거해야 하고, 한겨울에 얼지 않게 배관과 기계들을 단열재로 감싸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작업을 하려면 철-상자 허공에 발판(작업대)과 통로를 놓아야 한다. 텅 빈 허공에 두 발을 딛고 용접을, 망치질을, 페인트칠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가 아니고, 철-상자 안에도 중력이란 게 존재하니까. 철-상자 안에서 망치나 드릴을 손에서 놓치면 그것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진다. 중력이 아니어도, 작업할 때 신는 소가죽 작업화는 제법 묵직해서 우리의 발을 자꾸만 밑으로 끌어당긴다.
나는 화기(火氣) 감시자다. 철-상자 안에서 용접공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들이 철판을 녹이고 붙이는 동안 사방으로 튀는 불티를 감시하는 일을 한다. 용접공들은 불티를 씨처럼 뿌리고 다닌다. 바늘보다 가늘고, 번개보다 순식간이고, 금성보다 반짝이는 불티 한 점의 온도는 3천5백도에 달한다. 그리고 그것은 멀게는 11미터까지 날아간다. 빛과 열을 얻기 바쁘게 소멸하지만, 신나 섞인 페인트나 유리섬유로 단열재에 떨어지면 불이 붙을 수 있고,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철-상자가 폭발할 수도 있다.
화기 감시자는 용접공과 짝이 돼 다닌다. 오늘부터 나는 용접공 최 씨의 짝이다. 전날 잔업을 마치고 혹시나 살아 있는 불티가 없는지 살피고 있는데 작업반장이 오더니 말했다.
“아줌마, 내일부터 최 씨 짝 해.” 작업반장이 코로, 입으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배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최 씨 아저씨요?”
“하지만 난 최 씨 아저씨를 잘 모르는걸요.”
“최 씨는 아줌마를 잘 아는 줄 알아? 둘이 살림 차리고 살라는 것도 아니잖아.” 부르튼 입술을 구기고 의뭉스레 웃는 최 씨 앞에서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 것은 종일 불티를 쫴서였다. 내가 선뜻 대답을 않자 반장은 미간을 구기고 말했다.
“싫으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
“알았어요.”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루살이 노동자’이고, 내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조선소 주인이 아니라 작업반장이다. 화기 감시자로 날 고용한 사람도 그여서, 그는 심사가 틀어지면 당장 날 해고할 수 있다. 작업반장들은 물량 팀을 꾸려, 하도급으로 조선소의 물량을 따내고 하루살이 노동자들을 파견한다.
박 씨에게 딸린 화기 감시자는 나 말고 셋이 더 있다. 순희, 영미, 경자. 화기 감시자들은 누구나 최 씨와 짝이 되는 걸 꺼린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와 짝이 돼야 한다. 반장이 날 그의 짝으로 고른 건 내가 화기 감시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끝까지 싫다고 고집을 부렸으면 박 씨는 날 해고했을까. 화기 감시자가 되려는 여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최 씨는 조선소에서 30년 넘게 일한 숙련 용접공이지만 그도 하루살이 노동자다. 퉁명스럽고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를 반장이 자신의 물량 팀에 데리고 있는 것은 그가 풋내기 용접공들과 비교해 두세 배의 일을 해내기 때문이다. 화기 감시자들이 그와 짝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2년 전 그 일 때문이다. 그러니까 2년 전 여름, 화기 감시자 하나가 철-상자에 갇혀 질식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최 씨와 짝이던 그녀는 혼자 철-상자 안에 남겨졌다. 나는 그날을 기억하는데 특별한 일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10시까지 잔업이 있었지만 그즈음 잔업이 없는 날보다 있는 날이 많았다. 그해 여름은 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려 철-상자 안은 섭씨 50도까지 올랐다. 오후가 되면 달아오른 발판에 작업화 밑창 고무가 타들 정도였으니까. 그날 철-상자에는 3백 명이 넘는 노동자가 들어가 일했다. 그리고 그 3백 명 중에는 나도 있었다. 이튿날 그녀는 탱크 안 배관 옆에서 발견됐다. 구급차가 왔고, 소방대원들이 그녀를 들것에 실어 철-상자 밖으로 내갔다.
30대 초반이던 그녀에게는 어린 남매가 있었다. 사고가 있기 넉 달여 전으로, 조선소가 쉬는 날이었다. 나는 동네 대중목욕탕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그녀는 서너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아들의 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었다. 그보다 두서너 살 더 먹어 보이는 딸은 옆에서 고무로 만든 오리 인형 여러 개를 늘어놓고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지난밤 나는 잠자리에 누워 그녀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철-상자에서 길을 잃는다. 동굴 속 같은 철-상자 안을 밝히던 전구들이 일제히 꺼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던 그녀는 탱크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그라인더 작업을 하다 만 탱크 안에는 아르곤가스통 여러 개가 널려 있다. 그중 밸브를 잠그지 않은 통에서 아르곤가스가 다량 흘러나와 탱크 안에 차 있다. 얼떨결에 아르곤가스를 들이마신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르곤가스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로 숨을 거둔다.’ 그라인더와 용접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아르곤가스는 마시면 인체에 치명적인데, 색깔과 냄새가 없어서 감지하기 어렵다. 탱크는 교실 5개를 탑처럼 쌓아서 합쳐 놓은 규모로, 곳곳에 칸막이가 쳐져 있고 사다리가 놓여 있어서 그 안에서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녀가 철-상자 안에서 길을 잃었으리라는 것은 순전히 추측이지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최 씨는 종일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화기 감시자를 철-상자에 남겨 두고 혼자 그곳에서 나왔다. 그녀가 죽고 한동안 그녀의 죽음이 누구의 책임인지를 두고 시끄러웠다. 그녀는 조선소에서 만드는 철-배의 일부가 될 철-상자 안에서 숨을 거뒀다. 하지만 그녀는 물량 팀 하루살이 노동자였다. 게다가 일을 하다 사고사를 당한 게 아니었다. 조선소는 결국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녀가 들것에 실려 철-상자를 떠나던 날 밤에 나는 그녀의 꿈을 꾸었다. 그녀가 등장하진 않았지만 틀림없는 그녀 꿈이었다. 나는 그녀가 되어 그녀의 아들을 씻기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된 게 최 씨 탓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가 한 번쯤 뒤를 돌아다보았다면, 종일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그녀를 한 번쯤 챙겼다면, 그녀가 철-상자 안에 혼자 남겨져 길을 잃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철-상자 안에서 반나절이라도 일해 보면 안다. 그 안에서 누군가를 챙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내 몸 하나 챙기는 것도 벅차다는 걸. 화기 감시자가 되어 철-상자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날 정자 언니가 내게 해준 말은 우리 같은 하루살이 노동자들에게 불문율과 같다. “네 몸은 네가 알아서 챙겨. 안 그러면 조선소에서 길게 못 버텨.”
내가 최 씨에게 책임을 지우려 드는 건, 그녀의 죽음이 그저 그녀 자신의 책임만은 아닐 거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어서다. 진실은 뭘까. 나는 때때로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 만큼 나이를 먹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기도 하다는 걸. 순간적인 진실도 있다는 걸. 그리고 진실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그래도 나는 종종 진실이 알고 싶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 그녀의 죽음은 누구 탓일까?
나는 철-상자를 올려다본다. 그것은 겉에서 볼 때 거대한 철 덩이다. 군데군데 녹이 슬어 불그스름한 빛깔을 띤 곳도, 움푹 파인 곳도 있다. 비행기 탑승계단 같은 게 기대어져 있는데(아파트 3층 높이쯤 된다) 올라가면 철-상자로 들어가는 구멍이 있다. 푸른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계단을 올라가 구멍으로 삼켜지는 걸 바라보고 있으려니, 나그네쥐 집단이 절벽 아래 바다로 떨어져 죽는 광경이 겹쳐 떠오른다.
등이 굽은 사내가 목을 빼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최 씨다. 그의 구릿빛 이마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앞으로 늘어뜨린 두 팔이 기형적으로 느껴질 만큼 길다.
“반장이 오늘부터 아저씨 따라다니래요.”
최 씨가 고개를 들어 날 응시한다. 그의 얼굴이 생각보다 폭삭 늙어 있어서 나는 당황스럽다.
“어제까지 아저씨 짝은 경미였어요. 그녀는 일 년 넘게 아저씨를 따라다녔어요.”
“깡통처럼 시끄러운 여자가 종일 날 따라다니긴 했지.”
“난 아저씨와 짝이 되는 걸 원치 않았어요. 솔직히 아무도 아저씨와 짝이 되고 싶어 하지 않지요.”
“그래서?”
“그렇다고요.”
*
나는 눈꺼풀을 한 차례 꾹 감았다 뜬다. 노란 전구 불빛 너머 발판공들이 철-상자 안에 지어 놓은 공중누각을 바라본다. (여느 철-상자보다 큰 편으로) 깊이가 20미터인 철-상자 바닥에서 천장까지 십자로 엇갈려 층층이 쌓아올린 철 파이프들(지름이 6센티쯤 된다), 철 파이프들 사이에 발판을 연달아 놓아 낸 허공의 통로들, 위아래로 떨어져 있는 통로들을 이어 주는 철 계단들, 난간들……. 발판은 폭 40센티에 길이 1.5미터로, 노동자들은 그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서(혹은 쭈그리고 앉아서) 망치질을 하고, 그라인더를 돌리고, 용접을 하고, 페인트칠을 한다.
철-상자를 짜 맞추면, 발판공들이 가장 먼저 그 안에 들어가 공중누각을 짓는다. 날개도 없이, 안전벨트도 매지 않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발판공들은 공중곡예사다. “10미터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설 줄 알아야 진정한 발판공이야.” 내게 그렇게 말한 사람은 경력 15년의 베테랑 발판공이었다. 그는 30명 넘게 팀원을 거느리고 다니며 공중누각을 짓고 부쉈다. 왜소하지만 날쌔 제비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는 어느 날 해체한 발판을 밑으로 던지다, 그것과 함께 9미터 높이에서 추락했고, 척추를 다쳐 반신불수가 됐다.
텅 텅 발소리를 울리며 공중누각 철 계단을 내려가는 최 씨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 잡혀 온다. 나는 되돌아 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철 계단에 발을 내딛는다.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 비상계단보다 나을 것 없는 철 계단은 지그재그로 엇갈리며 위아래로 뻗어 있다.
철 계단에 똬리를 틀고 있던 철사 뭉치가 발에 감겨 온다. 내가 휘청하는 사이에 최 씨는 성큼성큼 철 계단을 내려간다.
“최 씨 아저씨, 같이 가요!”
내 목소리는 그라인더가 회전하며 철 파이프를 자르는 소리에 묻힌다. 철-상자 안에서 사람을 찾는 것은, 피서철 해수욕장에서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것만큼이나 막막한 일이다. 3백여 명의 노동자가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똑같은 안전모를 쓰고, 똑같은 안전화를 신고, 방독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철-상자 안은 갖가지 소리로 들끓는다. 망치로 철판을 때리는 소리, 샌딩기로 철판 표면을 다듬는 소리, 용접 불티 튀는 소리, 전기드릴 소리, 구령소리, 함석판 깨지는 소리, 노동자들이 자기들끼리 큰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 용접공은 철판을 녹여 붙이고, 단열공은 전기드릴로 함석판에 나사를 박고, 파워공은 파워그라인더로 철 파이프를 절단하고, 샌딩공은 철판 표면을 갈아 이물질이나 녹을 제거하고, 사상공은 용접 부위를 매끈하게 다듬고, 도장공은 페인트칠을 하고, 배선공은 전선을 깔고…….
내가 두 달째 들어와 일하는 철-상자는 엔진실로 철-배의 심장에 해당한다. 그곳에는 발전기, 배전반(配電盤), 보일러 등 여러 기계를 설치해야 해서 공정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공중누각이 트위스트를 춘다. 나는 손으로 난간을 꽉 움켜잡는다. 벌집처럼 구멍투성이인 공중누각에 3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개미처럼 매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렇잖아도 두 달 전 다른 철-상자에서 공중누각의 일부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
최 씨는 철-상자 바닥까지 내려간다.
바닥에는 못, 나사못, 철판 조각, 파이프, 함석판, 드릴 같은 공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나는 그것들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 더듬이질하듯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다. 재수가 없으면 곧추선 못이 작업화의 닳고 물러진 고무 밑창을 뚫고 발바닥을 찔러 올 수 있다.
“아줌마, 그라인더 가져다 놓은 거 안 보여요?”
“내가 먼저 와서 칠하고 있었어요.”
“방금 왔잖아요.”
“붓에 페인트 묻은 거 안 보여요?”
철-상자 안에서 노동자끼리의 다툼은 늘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애매한 다툼 대개는 혼재 작업 때문에 발생한다. 밀폐되고 어둠침침한 철-상자 안에서 여러 작업이 동시다발로 진행되다 보니 작업 공간 확보가 어려워서다. 작업에 필요한 중장비들과 아르곤산소통, 발전기, 유압 펌프, 호스 등도 자리를 제법 차지하고 있다.
“아줌마,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요.”
“어머나, 누가 누굴 방해하는 건지 모르겠네. 남 일하는 거 신경 쓰지 말고 아저씨는 아저씨 일이나 해요.”
철판에 페인트칠을 하는 도장 작업은 원래 거의 가장 마지막에 진행해야 하는 작업으로, 그라인더 작업이나 용접 작업과 동시에 하면 안 된다. 위에서 누군가 작업할 때 아래서 작업하는 것도 위험해서, 조선소의 안전수칙에 어긋난다. 하지만 그걸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작업들이 순서를 무시하고, 누가 더 빨리 끝내는지 내기라도 하듯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것은, 작업반장들이 동시에 하루살이 노동자들을 철-상자에 투입해서다. 그들은 주문받은 물량을 서둘러 해치우려 안달하는데 그래야 조선소에서 돈이 나오고 새 물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배가 제 날짜에 완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반장들은 말한다.
“내일 해가 두 쪽 나도 오늘 안으로 끝내야 해.”
“그래야 공기(工期)를 맞추지.”
“그래야 철-배가 제 날짜에 완성되지.”
최 씨는 철판 밑에 자리를 잡는다. 철판과 철판을 붙일 때 매끄럽게 밀착되지 못하고 들뜬 부분을 메우는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혹시나 근처에 페인트 통이나 단열재가 없는지 주위를 유심히 둘러본다. 양손에 붓과 페인트 통을 나눠 든 도장공 대여섯 명이 우르르 줄지어 철 계단을 내려온다. 도장공이 나타나면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고집이 황소 같은 도장공을 만나면 골치 아프다. 다행히 내가 쫓아버리기 전에 도장공은 알아서 자리를 피한다. 도장공이 노란 전구 불빛 너머로 자취를 완전히 감추고 나서야 나는 안심한다. 간혹 자리를 뜨는 척하다 도로 나타나 페인트 통 뚜껑을 살그머니 여는 도장공이 있다. 아무튼 도장공들은 화기 감시자들에게 가장 성가신 존재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불시에 나타날지 모른다.
가죽 재질의 두툼한 장갑을 착용한 최 씨의 손에는 용접기가 들려 있다. 용접기 손잡이 아래쪽에는 아르곤가스를 공급하는 가스 호스가 길게 달려 있다. 화기 감시자로 일하던 첫날 호스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5, 6미터 아래로 추락할 뻔한 아찔한 경험 때문일까. 호스만 보면 작업화 속 발가락들이 저절로 곱아든다.
최 씨는 한쪽 무릎은 시옷자로 접고, 다른 쪽 무릎은 철가루와 못이 굴러다니는 바닥에 붙이고 앉는다. 펑퍼짐한 그의 작업복 바지는 곳곳이 뜯기고 구멍이 나 있어 넝마처럼 너덜너덜하다. 작업화 앞코는 가죽이 벗겨져 그 안에 덧댄 천이 드러나 있다. 그는 철판을 살피다 얼굴에 용접 마스크를 쓴다. 송곳처럼 뾰족한 용접기 끝으로 철판을 두드린다. 탁, 탁, 소리와 함께 귤빛 불티가 튄다. 지지직― 소리가 나더니 철판에 불이 붙는다. 장미 봉오리 같은 불꽃이 철판에서 피어난다. 푸른빛이 감도는 흰 연기가 철판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불티가 사방으로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철이 녹으며 황금빛 꿀 같은 철물이 고여 흐른다. 철물은 금세 잉크빛으로 굳는다.
한 손에는 붓을, 다른 손에는 페인트 통을 든 도장공이 슬금슬금 내 옆으로 다가온다.
“저리 가요!”
“아휴, 금방 칠하고 갈게요.”
“용접 작업하는 거 안 보여요?” 나는 발끈한다.
나는 화기 감시자가 되고 성격이 사나워졌다. 소리 지르고, 화내고, 윽박지르는 게 예사다.
나도 도장공이 될 뻔했다. 도장공을 뽑는 줄 알고 면접을 보러 나갔다 얼떨결에 화기 감시자가 됐다. 하필이면 그 전날 화기 감시자 하나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인생은 그처럼 번번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조선소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은 화기 감시자보다는 도장공을 선호한다. 이유는 단순한데, 도장공 일당이 더 세기 때문이다. 페인트칠을 하는 건 철-배가 바다를 떠다닐 때 바닷물에 부식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전체적인 페인트칠은 분무로 하고 용접한 부위나 협소한 곳은 붓으로 칠한다. 철판에 칠하는 페인트는 특수 페인트로,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두통을 일으킬 만큼 독성이 강하고 시너 냄새가 짙게 풍긴다.
내 눈썹과 눈꺼풀에 철가루가 내려앉는다. 한 시간쯤 지나면 겹겹이 쌓인 철가루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 게 고역일 만큼 눈꺼풀이 무거워질 것이다.
철가루는 철가루-비가 되어 내린다. 흐르고, 날리고, 퍼진다. 그것은 곧장 낙하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며 공중에 떠다니다 내키는 곳에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민들레씨앗처럼 멀리 날아가 내리기도 한다. 내렸다 다시 떠오르기도, 유랑하듯 떠돌다 엉뚱한 곳에 내리기도 한다. 그런 철가루-비를 맞지 않을 재간은 없어서 그냥 맞는 게 상책이다. 우산을 받치면 머리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철가루-비를 옴팡 뒤집어쓸 일은 없겠지만 한 손에 그걸 들고 망치질을, 붓질을, 용접을 할 수는 없다. 스며들 줄도, 말라 증발할 줄도 모르는 철가루-비는 집요해서 안전모 속으로, 작업복 지퍼 틈새로, 마스크 새로, 장갑 속으로 파고든다. 한 곳에 모여 웅덩이를 만들기도 하는데, 성질이 까칠하고 예민해 여차하면 흩어져 버린다.
간혹 못-눈이 떨어지기도 한다. 철가루-비도 그렇지만 못-눈도 녹지 않는다. 그것은 망치로 때리고 때려면 녹는 대신 구부러지거나 일그러진다. 철-상자 안에 내리는 눈은 제법 여러 종류다. 나사못-눈, 망치-눈, 전기드릴-눈.
그리고 철-상자 안에는 철판-구름이 떠 있다.
유리가루-안개가 떠돈다.
철-파이프 번개가 친다. 죄지은 게 없어도 재수가 없으면 번개에 머리나 어깨를 맞아 타박상을 입을 수 있다.
유리가루-안개는 피할 수 없다. 농도가 옅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데다 특유의 냄새도 없어서 부지불식간 유리가루-안개에 포위되고 만다. 그것은 스스로 사라지는 일이 절대 없어서,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다는 걸 알지만 피할 도리는 없다. 그것은 삼키는 것보다는 삼켜지는 걸 좋아한다. 접힌 살 속에, 주름 속에, 땀구멍 속에 삼켜져서 틀어막는다.
철판-구름은 모양이 고정돼 있다. 광어처럼 납작하고 네모나다. 대기의 흐름이 바뀌어도 모양을 바꾸지 않고 흘러가지 않는다.
유리가루가 눈동자를 덮어 온다. 작업복 속으로 파고들어 피부에 들러붙는다. 점심때쯤 되면 몸은 땀과 유리가루 범벅이 돼 식중독 두드러기에 걸린 것처럼 간지럽다. 작업복을 입고 있어서 긁을 수도 없지만 함부로 긁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유리가루가 살갗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유리가루는 유리섬유로 만든 단열재에서 날리는 것이다.
“때려라, 때려라!”
망치공들의 합창이 철-상자 안에 울려 퍼진다. 망치공들은 음색이 곱든, 거칠든, 심지어 음치여도, 망치만 손에 들면 노래하길 즐긴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는 늘 쉬어 있다.
철판 표면은 고르지 않다. 유난히 움푹 파였거나 도드라진 곳은 망치로 두드리고 두드려 판판하게 펴줘야 한다. 망치공들이 그 일을 맡아 하는데 그들 대개는 늙은 남자들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지만 종일 지루하게 망치질을 반복해야 해서 젊은 노동자들은 그 일을 꺼린다.
“때려라, 때려라!” 망치공들의 노래는 되풀이된다.
“때려라, 때려라.” 망치공들의 노래는 끝이 없다. 망치질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소 망치공들의 망치 머리 면적은 못 같은 걸 박을 때 쓰는 망치의 두 배쯤 된다. 자루는 깡똥해서 손이 큰 사람이 자루를 그러잡으면 주먹 쥔 손에 두꺼비가 올라앉아 있는 것 같다. 망치는 무게가 꽤 나가서 머리에 맞으면 기절할 수 있다. 아주 간혹 망치-눈을 머리에 맞고 쓰러지는 노동자가 있다. 망치공이 손에서 놓치는 순간 망치는 망치-눈이 된다.
망치공들은 말한다.
“철을 부드럽게 길들이는 건 염소를 길들이는 것만큼 힘들어.”
“그래도 물을 길들이는 것보다는 덜 힘들지. 철은 백 대든, 천 대든 때리는 대로 그냥 맞고 있지만 물은 한 대만 때려도 부서져 버리니까. 그리고 다시 제멋대로 모양을 만들어버리지. 소용돌이 주름은 아무리 때려도 펼 수 없어.”
전기 드라이버, 용접기, 그라인더, 샌딩기…… 조선소 노동자들이 쓰는 연장들 중 망치는 가장 조용하고 한결같은 연장이다. 별다른 기술이 없어 보이지만 망치질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망치로 철판을 내리칠 때 힘을 적당히 줘야 하는데, 그 힘 조절이 쉽지 않다. 망치에 힘이 너무 실리면 철판에 구김만 더하게 되고, 덜 실리면 열 번 때릴 걸 스무 번 때려야 한다.
망치는 그걸 잡은 노동자의 손을 연장으로 만들어버린다. 팔을, 어깨를, 등을, 엉덩이를, 두 다리를, 두 발을.
눈썹과 눈꺼풀에 계속 철가루가 내려 쌓인다.
탁, 탁, 지지직― 불티 한 점이 작업화를 신은 내 발등에 떨어진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한다. 운이 좋았다. 불티가 작업화 속으로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재수가 없으면 불티가 작업화 속으로 떨어져 발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최 씨가 용접 마스크를 벗고 방금 용접한 곳을 살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그네처럼 흔들리는 전구가 내 시야를 잡아끈다. 전구가 빚는 둥근 불빛도 덩달아 흔들린다. 안전요원 둘이 걸어오더니 전구 아래 마주 보고 선다. 그들의 손에는 아무 연장도 들려 있지 않다. 그래도 어쨌든 조선소 노동자여서 푸른 작업복 차림이지만, 팔뚝에 ‘안전’이라고 쓴 노란 완장을 차고 있어서 눈에 띈다. 그리고 그들은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둘씩 짝을 지어 다니며 철-상자 안에서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일을 한다. 작업반장들도 감시 대상이어서 그들의 눈치를 살핀다.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하루살이 노동자에게 그들이 경고를 세 번 이상 주면 작업반장들은 벌금을 물고, 그 노동자를 해고해야 한다. 안전요원들은 지각하거나, 게으름을 부리거나, 수다를 떠는 노동자들에게 가차 없이 경고를 날린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지각이어서 노동자가 출근시간보다 1분이라도 늦으면 무섭게 화를 낸다. “시간이 금인 것도 몰라.” 근무시간에는 딴전 피우는 노동자를 찾아다니느라 바빠서 정작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이다. 용접 불티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아래서 도장공이 페인트 통 뚜껑을 활짝 열어 놓고 붓질을 하고 있어도 그들은 나 몰라라 한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사고가 나 노동자가 다쳐도 그들에겐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철-상자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고는, 그들이 주의를 줬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결론난다. 어쨌든 노동자들의 안전을 관리하는 것 또한 그들의 역할이어서 그들은 어쩌다 생각나면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안전띠를 매.” 안전띠는 허공에서 발을 헛디디거나 발판이 무너졌을 때 몸을 낚아채듯 잡아 줘 추락 사고를 막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철-상자 안에서 안전띠를 매고 일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안전띠를 매고 푸는 데 시간이 다 가서 그랬다가는 그날 할당된 일을 끝마칠 수 없다. 그러면 작업반장은 노발대발 화를 내거나 말할 것이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 안전요원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 전구의 길게 늘어진 전깃줄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노동자가 어깨에 철 파이프를 짊어지고 그 앞을 지나가다 전깃줄이 철 파이프를 친친 감아오는 바람에 나자빠질 수 있다는 데까지, 그래서 나동그라지는 노동자의 얼굴을 나사못-눈이나 못-눈이 찔러 올 수도 있다는 데까지, 철 파이프가 데굴데굴 굴러가 페인트 통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데까지, 쏟아진 페인트에 용접 불티가 떨어져 불길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데까지, 그래서 철-상자가 불길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데까지 그들의 생각은 미처 뻗치지 못한다.
안전요원들이 큰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나누는 얘기가 들려온다.
“순수한 철은 흰색이야.”
“순수한 건 대개 흰색이지. 우유, 백합…….”
“손수건, 토끼, 달.”
“달?”
“달은 붉은색이지. 지난밤 조선소 위에 뜬 달은 어찌나 붉던지 녹슨 철 덩이가 떠 있는 것 같더군.”
“순수한 달은 흰색이야.”
“그럼 어제 뜬 달은 불순한 달이었단 말인가?”
“달은 스스로는 색을 낼 수 없어. 달이 띠는 색은 태양이 반사된 빛이야. 그래서 달 색깔이 수시로 변하는 거야.”
“낮달이 순수한 달이었군.”
“철기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로 철제 검을 만들었다는 건 알고 있나?”
“운철(隕鐵) 말인가?”
“운철은 대기권을 초속 60킬로로 통과할 때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마찰열에 불순물이 타 없어져서 철 함유율이 높지.”
“제련 과정을 제대로 거치는 셈이군.”
“스테인리스 효과를 내는 니켈, 코발트, 크롬 같은 광물질이 표면을 뒤덮어 수천 년이 지나도 녹이 슬지 않고. 생각해 보게, 어느 날 철 덩이가 하늘에서 뚝 선물처럼 떨어진 거야. 인간은 그걸 주워 철제 검을 만들었고.”
“인간은 뜻밖의 선물로 무기를 만들었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철을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라고 불렀지.”
“철은 불 속에서 탄생하니까.”
“인간의 핏속에도 철이 들어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것 같군.”
“신의 실수는 인간을 철이 아니라 흙으로 만든 거야. 쳐도 그만 안 쳐도 그만인 양념을 치듯 핏속에 철을 아주 약간만 첨가한 게 신의 최대 실수란 말이야.”
“그럼 인간이 죽지 않았겠지. 그리고 그랬으면 인간은 신을 찾지 않을 테고. 인간이 신을 찾고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고, 죽음이 어쩌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야.”
“하지만 인간이 죽지 않으면 신은 천국과 지옥을 만들 필요가 없었겠지. 신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간밤에 죽은 저 인간을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야. 완벽하게 착한 인간도 없고, 완벽하게 악한 인간도 없으니까. 나 자신만 해도 착하기도 하고, 사악하기도 하니까. 특별히 착하게도 그렇다고 나쁘게도 살지 않은 인간들이 죽어 매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줄을 서서 신은 잠도 못 잔다지. 극도의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잇몸은 늘 부어 있고, 탈모로 머리카락이 한 줌도 안 된다지.”
내 뒤에서는 노동자 둘이 철판에 달라붙어 줄자로 이리저리 길이를 재고, 분필 같은 걸로 숫자를 기입하고 있다.
줄자를 손에 든 노동자가 맞은편 노동자에게 말한다.
“달에서는 철-배를 얼마나 만들었을지 궁금하군.”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자네가 믿든 말든, 달에서도 철–배를 만들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오늘 밤 잠이 안 오거든 사다리를 타고 달 가까이 올라가 귀를 기울여 보게. 망치 수백 개가 서로 질세라 철판을 때리는 소리가 들릴 거네.”
“어이가 없군!”
“별이 실은 달에서 튄 용접 불티라지.”
“날 바보로 아는군. 용접 불티가 밤새 꺼지지 않고 하늘에 박혀 있다는 거야?”
“우주 온도가 몇 도인지 아나? 영하 270도야. 그 온도에서는 모든 게 얼어버리지. 불티마저도. 그래서 달 밖으로 튄 용접 불티가 얼어붙어서 밤새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거야.”
“음, 달에서 망치 수백 개가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단 말이지…….”
“철판을 자르는 소리가 나기도 하지. 사다리를 타고 달 가까이 올라갈 때 조심하게. 달에서 튕겨 오른 망치가 머리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참고로 지구에서 달까지는 38만 4천 킬로미터네.”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달에서는 철이 어디서 나서 철-배를 만드는 걸까?”
그때 가까이에서 두 노동자를 지켜보던 작업반장이 화를 낸다.
“한가하게 노닥거리라고 일당을 주는 줄 알아? 하여간 자네들 같은 태업(怠業)자들 때문에 철-배가 아직까지 완성이 안 된 거야. 이렇게 태만을 부려서야 오늘 안으로 끝낼 수 있겠어?”
“사흘에 걸쳐 할일을 오늘 하루 안으로 끝내라고요?”
“잔업을 해서라도 끝내야 해.”
“우린 어제도 밤 10시까지 잔업을 했어요.”
“엊그제도 10시까지 잔업을 했지.”
“오늘도 하면 엿새째란 말이에요.”
“오늘 안으로 끝내야 철-배가 제 날짜에 완성되지. 하루라도 늦어지면 조선소가 엄청난 손실을 본단 말이야. 그럼 조선소가 망하겠지. 조선소가 망하면 누가 우릴 먹여 살리겠어.”
“반장,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철-배가 언제쯤 완성될까요?”
“반장, 그나저나 조선소가 오늘내일 망할 거라는 소문이 마을에 돌던데 사실인가요?”
“이미 망했다는 걸.”
작업반장은 그새 다른 노동자를 닦달하고 있다.
“발판이 흔들려요!”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허공으로 6미터쯤 떨어진 발판 위에서 도장공 하나가 벌벌 떨고 있다. 왼손에는 페인트 통을, 오른손에는 붓을 들고 있다.
“발판이 흔들려요!”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 차림에 겁에 질린 목소리로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어서 도장공은 한 마리 앵무새 같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자 도장공은 울먹인다. 가까이에 다른 도장공이 있지만 붓질 삼매경에 빠져 듣지 못한다. 안짱다리인 그 도장공은 이미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철판에 똑같은 초록색 페인트를 덧칠하고 있다.
“반장! 반장!”
도장공이 스무 번은 외치고 나서야, 사내의 굵직하고 심드렁한 목소리가 마지못해 들려온다.
“누구야? 누가 또 날 찾는 거야?”
땅딸막하고 뚱뚱한 사내가 씩씩거리며 철 계단을 내려온다.
“여기요!”
“아아, 귀찮아 죽겠네! 1분이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찾아서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랄 판이라니까!”
“발판이 흔들려요!”
“누군가 했더니 오(吳) 여사님이셨군.”
작업반장들은 자신보다 나이 많은 여자 노동자를 여사님이라고 부르곤 한다. ‘여사’가 높여 부르는 호칭이니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겠지만, 놀림조여서 외려 거슬린다.
“저길 칠하려면 이 발판을 건너가야 하는데 흔들려서 건너갈 수가 없잖아요.” 도장공은 손에 쥔 붓으로, 광채를 잃고 서늘한 한기에 휩싸여 있는 철판을 가리켜 보인다.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기에망정이지 흐리멍덩하게 놓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멀쩡해 보이는데?”
“보기엔 그렇지요.” 도장공은 발끈하고, 한쪽 발끝을 발판에 살짝 내딛어 그것이 흔들린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나는 오늘 혼자서 저길 전부 칠해야 한단 말이에요. 나 혼자 손바닥만 한 붓으로 저길 다 칠하는 건, 개미가 저 혼자 칠판을 칠하는 것과 같아요. 아, 저길 언제 다 칠하나…….”
반장이 부푼 배를 한 팔로 감싸 안으며 몸을 어정쩡하게 구기고 앉아 발판을 살핀다.
“철사가 풀려 있군.”
작업대이자 통로인 발판은 철사와 나사로 고정돼 있다. 간혹 그것들이 풀려 있거나 느슨해져 있는 경우가 있다. 그 사실을 모르고(발판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거나 밑으로 꺼져 있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노동자가 무심코 발을 내딛었다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안전요원들은 말한다. “안타깝군. 그러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했잖아.”
“철사가요? 왜요?” 흥분한 도장공이 발을 동동 구른다.
“어떤 멍청한 놈이 철사를 풀고는 안 감았겠지!”
“철사를 왜 풀어요?”
“작업하느라 풀었겠지!”
반장은 투덜거리며 풀어진 철사를 묶기 시작한다.
도장공은 딸꾹질 섞인 비명을 지르다 철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왼손에 페인트 통을, 오른손에 붓을 든 채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대여섯 발짝 떨어져 서서 철판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도장공들 쪽으로 쪼르르 다가간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뭐예요!”
“웬 호들갑이야?”
“발판이 흔들려서 난 빈혈인가 했어요. 요 며칠 빈혈이 심했거든요. 생리는 두 달째 없는데 말이에요.”
“두 달? 난 일 년 넘게 생리가 없어.”
“그럼 폐경이야.”
“벌써?”
“벌써는, 나이를 생각해야지.”
“친정엄마는 내 나이 때 막내를 가졌어. 일 년 넘게 생리가 없는 건 페인트 때문이야. 페인트가 오죽 독해.”
“하긴, 나도 며칠 전에 구역질이 나고 어지러워서 설거지를 하다 말고 쓰러졌어. 냉장고, 전기밥솥, 가스레인지, 냄비, 주전자, 형광등, 시계…… 전부 다 빙글빙글 돌아서 못 일어나고 누워 있었지.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날 내려다보며 그러대. 엄마, 아무리 잠이 와도 고무장갑은 벗고 주무세요.”
“아들은 뭐 해?”
“놀고 있지.”
“발판공 뽑던데.”
“발판공은 늘 뽑으니까. 용접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했더니,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화를 내지 뭐야.”
도장공들이 페인트칠을 하며 자기들끼리 나누는 얘기를, 발을 동동 구르며 듣고 있던 도장공이 새된 소리로 말한다.
“아아, 글쎄 누가 발판 철사를 풀어 놓았지 뭐예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발을 내딛으려 했고요. 그랬으면 난 6미터 아래로 떨어졌을 거예요.”
“떨어진다고 다 죽는 건 아니야.”
“죽지 않으면 불구가 되겠지.”
“운이 좋으면 다리에 금이 가거나 팔이 골절되는 것 정도로 그치겠지.”
“운이 나쁘면 전신마비가 될 수도 있고.”
“차라리 죽는 게 나으려나?”
반장이라는 사내는 여전히 풀어진 철사를 묶고 있다.
탁, 탁, 지지직― 다시 불티가 튄다. 철이 녹아 철물이 고여 흐른다. 황금빛 꿀물처럼 황홀하게 일렁이던 철물이 잿빛으로, 잉크빛으로 굳는 걸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내 심장도 덩달아 굳는 것 같다.
철물이 완전히 굳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3, 4초다. 철물의 온도가 2천도가 넘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온도에 도달했다 순식간에 식는 게 허무하고 신기하다. 끓는 물은 100도지만 천천히 식는다. 인간의 몸은 고작 36.5도지만 그보다 훨씬 더 천천히 식는다. 아니, 죽지 않는 한 식지 않는다.
나는 성실한 화기 감시자는 아니다. 불티에 홀려 주위를 살피는 걸 소홀히 하곤 한다.
사상공 셋이 최 씨의 머리 위 발판에 자리를 잡더니, 그라인더로 철판을 갈기 시작한다. 철판 표면이 매끈하지 않으면 페인트칠이 깔끔하게 안 되고, 해도 금방 벗겨진다. 그래서 페인트칠을 하기 전 울룩불룩 튀어나온 용접 부위나 녹이 심하게 낀 곳, 표면이 거친 곳을 그라인더로 갈아 다듬는다. 눈을 뜨고 있는 게 곤혹일 만큼 철가루가 심하게 날려서 사상공들은 우주복처럼 생긴 방진복을 작업복 위에 입는다.
한 손으로는 그라인더 손잡이를 잡고(자동차 브레이크처럼 생긴 손잡이가 달려 있다), 다른 손으로는 (그라인더와) 에어호스가 연결된 부위를 잡고 버티는 노동자들은 흡사 날개가 찢기고 몸통만 남은 잠자리들 같다. 선풍기 날개가 회전하는 속도의 세 배속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라인더는 잠자리의 머리고, 그것을 부여잡고 버티는 노동자들은 몸통이다. 잠자리들은 날개가 찢긴 걸 까맣게 모르고 날아오르려 몸통을 수직으로 곧추세우고 부단히 떨고 있다.
노동자 하나가 그라인더를 붙잡고 들들들 떨며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큰 소리로 말한다.
“닭이 개구리를 다섯 마리나 낳았대.”
“뭐, 조선소 주인이 개구리를 다섯 마리 낳았다구?”
“닭은 참으로 위대해. 그 어느 해인가는 오리를 네 마리나 낳았지. 내 마누라는 인간도 닭에서 나왔을 거라고 하더군.”
사상공들은 목소리가 몹시 크고 격앙돼 있는데, 가는귀가 멀어서다. 그라인더 여러 개가 동시에 돌아가며 내는 굉음을 생각하면 귀가 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 소리는 끔찍할 정도로 굉장해서 듣고만 있어도 고막이 갈리는 것 같다.
“그나저나 작년 봄에 파도에 휩쓸려갔던 암퇘지가 어미 돼지로 자라 새끼를 세 마리나 데리고 돌아왔다지.”
“방금 나보고 돼지라고 했나?”
“그러게, 조선소 주인은 어미젖도 안 뗀 새끼 돼지만 먹는다지? 태어난 지 만 하루도 안 된 송아지의 가죽으로 지은 구두를 신고.”
그라인더 세 개 중 하나에서 철가루가 유난히 심하게 날린다. 먹구름처럼 일어나는 철가루에 사상공의 얼굴이 삼켜졌다 토해진다.
“내가 붙여도 이것보다 낫겠군!”
사상공은 투덜거리며 철판에서 그라인더를 거둔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그라인더가 한순간 멎는다. 사상공의 두 팔은 여전히 덜덜 떨린다. 사상공은 용접공을 향해 소리 지른다.
“이봐, 발로 용접하는 거야!”
용접공은 그러나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화가 난 사상공은 욕설을 퍼붓다 도리어 지쳐서는 한숨을 내쉰다.
“용접 자격증이나 있나 몰라. 하여간 자격증도 제대로 없는 용접공들을 데려다 용접을 시키니까.”
사상공들과 용접공들은 앙숙이다. 용접공들이 철판을 녹여 접합 부위를 땜질할 때 말끔하게 하지 않으면 사상공들은 고되다. 그라인더로 갈아야 하는 시간이 그만큼 더 많이 들고 발가락에 쥐가 나도록 버텨야 할 만큼 그라인더가 격렬하게 진동한다.
철-상자 맨 밑에서는 용접공이 철을 녹여 들뜬 틈새를 메우고, 그 위에서는 사상공들이 그라인더로 철판을 깎고, 그 위에서는 도장공들이 철판에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서는 망치공들이 망치로 철판을 두드려 펴고, 그 위에서는 또 도장공들이 철판에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 철판 너머에서는 갈매기가 날고 구름이 흘러간다…….
도장공 하나는 그네를 탄다. 도장공들도 때때로 공중그네사가 돼 밧줄 그네를 타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붓질을 한다.
아르곤가스통 옆에서 어깨가 굽고 땅딸막한 노동자가 허우대 좋은 젊은 노동자를 호통 친다.
“나사 하나도 제대로 못 박는군. 남들이 열 개 박을 때 겨우 한 개밖에 못 박으면 곤란해.”
“그게…… 제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요.”
난감해하는 젊은 노동자의 손에는 전기드릴이 들려 있다.
“누구는 엄마 배 속에서부터 나사 박는 걸 배우고 태어난 줄 알아?”
“함석판이 너무 반들반들해서 드릴이 자꾸만 미끄러지잖아요. 드릴이 밀려나서 하마터면 손에 구멍을 낼 뻔했어요.”
“자네, 일한 지 얼마나 됐지?”
“2시간이요.”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 일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길어야 사흘 버티겠군.”
“사흘이요?”
“사흘도 후하게 쳐준 거야. 면접 볼 때는 오래 일할 것처럼 굴다가 고작 반나절 일하고 말도 없이 내빼는 치들이 한둘인 줄 알아?”
“하지만 난 조선소에 취직하려고 멀리서 왔단 말이에요.”
“얼마나 멀리서 왔는데?”
“고속버스로 5시간이나요.”
“퍽도 멀리서 왔군! 저기 저 친구는 조선소에 취직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7시간을 날아왔다네. 조선소에서 하루 일하더니 무서워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더군. 집에 돌아갈 비행기 표 값을 구할 때까지만 일하게 해달라고 해서 그러라고 했지.”
땅딸막한 노동자가 으쓱해 보이는 어깨 너머에 “으싸, 으싸……” 소리가 들려온다. 포설공들이 전선(導線)을 당기며 내는 소리다. 전기 의장(艤裝)이라고도 하는 포설은 전선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포설공들은 둘씩 혹은 대여섯씩 무리지어 다니며 전선을 옮기고, 깔고, 설치한다. 새끼손가락 굵기부터 종아리 굵기까지 다양하지만, 포설공들이 아나콘다라고 부를 만큼 무게가 상당한 것도 있어서, 전선을 끌어당겨 까는 일은 중노동이다. 대여섯 명이 전선에 매달려 줄다리기하듯 잡아당기는데, 종일 그 일을 하고 나면 거의 시체가 된다.
“으싸, 으싸, 으싸…….”
“아악, 손가락이 꼈어!”
“조심해. 손가락 하나 잘리는 건 순식간이야.”
조선소에서 가장 위험하고 사고가 빈번한 작업이 허공에 공중누각을 짓는 것이라면, 가장 힘든 작업은 포설이다. 그 일을 일 년쯤 하면 어깨와 손목이 망가진다. 그래서 안전요원들도 어지간하면 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기계와 배관을 단열재로 감싸는 일을 하는 단열공들은 포설공들을 보면 입버릇처럼 말한다.
“수명은 줄어들지 몰라도 우리 일이 훨씬 나아.”
“그럼, 일하다 죽을 일은 없으니까.”
저 구석에서는 단열공들이 야외 수업을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오순도순 모여 앉아 함석판을 가위로 오리고 있다. 함석판은 겉에 아연을 입힌 강철판으로, 배관 파이프를 감싸는 데 쓰이는 단열재다. 단열공들은 파이프들을 스펀지 단열재로 한 차례 감싸고, 함석판으로 한 차례 더 감싼다. 배관 파이프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모양과 굵기가 다양하다. 그래서 능숙하고 눈썰미가 있으며, 그림 솜씨도 있는 단열공이 파이프들의 둘레와 길이를 일일이 재 종이에 설계도를 그린다. 그럼 꼼꼼하고 일머리가 있는 다른 단열공이 가로 1.5, 세로 3미터가량인 함석판에 설계도를 그대로 옮겨 그린다. 마침내 설계도가 완성되면 단열공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함석판을 오리는 작업에 들어간다. 얇다곤 해도 재질이 철인 함석판을 단열공들은 색종이인 듯 오린다.
“반장, 가위가 잘 안 들어요.”
“그럴 리가 있나.”
“반장, 다른 가위로 바꿔 줘요.”
“서툰 목수가 연장 탓을 하지.”
“반장, 이 가위는 더 안 드는 것 같아요.”
“자넨 머리는 있는데 일머리가 없군.”
나는 눈꺼풀에 쌓인 철가루를 새끼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려 턴다. 새끼손가락에 묻어난 철가루를 작업복 자락에 문질러 훔친다. 한결 가벼워진 눈꺼풀을 깜박여 본다. 깜박, 깜박, 깜박, 눈앞의 세상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다.
신이 인간을 철로 만들지 않아서, 핏속에 아주 약간만 쳐놓아서 다행이다. 나는 영원히 살고 싶지 않다. 내게 영원히 산다는 건, 영원히 철-상자 속에서 화기 감시자로 살아야 한다는 걸 의미하니까.
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간다. 키가 2미터는 돼 보이는 사내의 머리카락은 귤색이다. 외국에서 온 하루살이 조선소 노동자다. 조선소가 망할 거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조선소의 하루살이 노동자가 된다.
눈동자에 낀 유리가루는 눈물로 씻어내야 한다. 눈물만 한 게 없는 데다 다른 걸로는 말끔히 씻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울고 싶어도 참는다. 슬픈 드라마도 보지 않는다. 그런데도 요즘 부쩍 양이 줄어서 눈물을 흘리려면 애를 써야 한다. 눈물은 유리가루를 씻으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불티를 바라보며 눈에 눈물을 모은다. 유리가루 섞인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망치소리가 일제히 멎고 그라인더 소리도 잦아든다. 안전요원들은 그새 어디로 가버리고 없다. 단열공들도 가위를 놓고 기지개를 켜거나 체조하듯 팔다리를 흔든다. 휴식 시간이다. 조선소에서 정한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저녁 5시까지다. 두 시간마다 10분이라는 휴식 시간이 있고,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다. 잔업은 밤 8시까지 하는 1차 잔업과 10시까지 하는 2차 잔업으로 나뉜다. `
거의 두 시간 내내 꼼짝 않고 용접 열기를 쬈더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바람이 쐬고 싶다. 최 씨는 용접 마스크를 벗고 용접 부위를 살피고 있다.
휴식 시간이 되면 노동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철-상자 안에서 버티는 부류와 잠깐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려는 부류. 나는 후자에 속한다. 바깥 공기를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바람을 쐐야 살 것 같다. 철 계단을 올라가는 데 최소 3분, 내려오는 데 또 최소 3분이 걸리기 때문에, 바깥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4분 남짓이다.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쪽잠을 자는 노동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통화를 하는 노동자, 챙겨온 간식(빵, 두유, 고구마, 캐러멜, 캔에 든 커피 등)을 먹는 노동자,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듣는 노동자,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노동자, 수다를 떠는 노동자. 10층 높이의 발판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조는 노동자도 있다.
담뱃갑 크기의 석탄처럼 시커먼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듣던 노동자가 볼륨을 높인다. 바늘구멍만 한 스피커 구멍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소음으로 들릴 만큼 잡음이 심하게 나자 안테나를 최대한 길게 뽑는다.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귀에 붙이듯 하고 구멍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하던 노동자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노동자에게 말한다.
“캐나다 동쪽 마을에 오래된 호수가 있는데 말이야, 거위 한 쌍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대.”
“그런데?”
“어느 날 암컷 거위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네.”
“그래서?”
“혼자 남겨진 수컷 거위가 안쓰럽고 외로워 보여서,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신문에 광고를 냈다는군. 수컷 거위가 살얼음이 언 호수 한가운데 바위 위에 혼자 고독하게 서 있는 사진과 함께, 마이클의 새 짝을 찾는다는 광고를 말이야.”
“마이클?”
“수컷 거위의 이름이라는군.”
“어지간히 할일이 없는 모양이군.”
“그러자 캐나다 각지에서 암컷 거위들을 보내왔는데 그 숫자가 무려 5백 마리가 넘었다지 뭔가.”
“저런!”
“5백 마리 다 수컷의 짝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공정한 심사를 거쳐 암컷 거위를 뽑았다더군.”
“어떻게?”
“나이, 성격, 몸무게, 수영 실력, 울음소리, 목 길이, 부리 크기, 식성, 털 색깔, 비행 실력…… 지병이 있으면 안 되니 건강검진도 실시하고. 너무 잘 날면 자격미달로 탈락시켰대.”
“왜?”
“너무 잘 날아서 다른 호수로 날아가 버리면 수컷 거위가 더 큰 상처를 입을 테니까.”
“그렇겠군. 심사는 누가 했지? 설마 수컷 거위가 한 건 아니겠지.”
“신부, 목사, 유치원 원장, 조류학자, 수의사, 저명한 시인, 그림동화 작가, 정신분석학자…….”
“정신분석학자?”
“무의식을 연구하는 사람 말이야.”
“무의식? 그게 뭐야? 무개념, 무차별, 무관심…… 그런 건가?”
“무의식이 뭐냐면…… 자네가 식당에서 비빔밥을 주문해 먹지만 정말로 먹고 싶은 건 만둣국인 경우를 말하는데, 자네가 비빔밥을 주문한 건, 자네 자신도 정말로 뭘 먹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고, 바로 그 알지 못하는 영역을 무의식이라고 하지…….”
“무의식은 그러니까 ‘만둣국’이군. 대학교를 나왔다더니 자네는 참 아는 것도 많아. 그래서 짝지어 줄 암컷 거위를 뽑았대?”
“하늘 아래 인간의 계획대로 되는 건 없는지, 기껏 만장일치로 맘씨도 좋고 인물도 훤한 암컷 거위를 뽑았더니, 수컷 거위가 그사이 다른 암컷 거위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다지 뭐야. 제 눈에 안경이라고, 까탈스럽고 순위에도 못 든 암컷 거위와 말이야.”
“그래서 인생은 재밌어.”
“오늘도 내 신청곡은 안 틀어 줄 모양이군.”
“무슨 노래를 신청했는데?”
“난 늘 똑같은 노래를 신청하지. 6년째 하루도 안 빼놓고 똑같은 노래를 신청했지만, 한 번도 틀어 준 적이 없어. 하지만 난 내일도 똑같은 노래를 신청할 거야.”
늙은 망치공들은 빳빳한 종이로 만든 장기판을 펼쳐 놓고 내기 장기를 둔다.
“수(手)가 뻔하네.”
“차(車)로 먹어.”
“포(包)로 잡아.”
“졸(卒)을 써.”
“입궁수를 쓰려나 보네.”
늙은 망치공들은 내기에서 딴 돈으로 담배를 사 피우거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단골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신다.
금희는 그네 위에서 두 손으로 밧줄을 꼭 붙잡고 잠을 청한다.
나는 계속 철 계단을 올라간다. 1초도 지체하지 않으려 철 계단으로 발을 부지런히 내딛는다. 철 계단은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날 것 같지 않다.
철-상자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참았던 숨을 토한다. 철-상자 지붕 위에 웬 여자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캔에 든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정자 언니다. 그녀가 날 보고는 금을 씌운 앞니를 드러내고 웃는다.
나는 그녀 곁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철-상자 지붕은 햇볕에 따뜻하게 달구어졌다. 등을 대고 누우면 그대로 잠들 것 같다. 얼굴은 화끈거리는데 몸은 서늘하니 춥다. 나는 작업화를 벗지 않는다. 그걸 신고 벗는 데 드는 시간이 아까워서다. 짠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내 목덜미에 감겨 온다. 바람에서 바다 특유의 비릿하고 짠 냄새가 맡아진다.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걸 나는 깜박 잊곤 한다.
나는 작업복 주머니에서 보름달 빵을 꺼낸다. 보름달처럼 둥근 두 조각의 빵 가운데에 크림이 발려져 있다. 빵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 보름달 빵은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조선소에 출근하기 싫은 날이면 나는 보름달 빵을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보름달 빵을 먹으려면 조선소에 출근해야 해. 빵은 카스텔라처럼 푹신하고, 크림은 달고 부드럽다.
나는 빵 한 조각을 정자 언니에게 내민다. 그게 뭐라고, 그녀는 한사코 마다하다 미안해하며 받아든다.
“네 오줌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
나는 내 오줌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생각한다.
“식초 냄새요. 쉰 막걸리 냄새가 날 때도 있어요.”
“내 오줌에서는 시너 냄새가 나. 페인트 냄새를 하도 맡아서.”
“언니가 배꽃 아가씨였다면서요?”
“내가 배꽃 아가씨였다는 걸 내 아들들만 안 믿지.” 그녀는 피식 웃는다.
조선소가 들어서기 전 마을에 배나무 밭이 있었다고 마을 토박이들에게 들었다. 만 그루가 넘어 봄이면 배꽃 냄새가 온 마을에 진동했다는데, 30년 전 내가 남편을 따라 흘러들던 해 마을에는 죽은 배나무 한 그루만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남편이 조선소 (하루살이) 노동자가 되었어.”
그녀의 남편은 사상공이다.
“그리고 내가 조선소 (하루살이) 노동자가 되었지. 내 큰아들이 조선소 (하루살이) 노동자가 되더니, 작은아들마저 조선소 (하루살이) 노동자가 됐지 뭐야.”
그녀의 부르튼 입술에 크림과 빵 부스러기가 묻어난다. 그녀의 두 아들은 발판공이다.
나는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본다. 벌써 2분이 지났다. 쉬는 시간마다 나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분이다. 2분이 그새 흘러가 버렸으니, 정확히 2분 뒤 나는 다시 철-상자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은 갈매기가 한 마리도 안 보이네.”
정자 언니가 빵을 입에 물고 잠꼬대하듯 중얼거린다. 그녀의 입에서 빵 부스러기가 날린다.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턱을 치켜들고 시선을 최대한 멀리 뻗는다. 하지만 철-상자들과 거대한 크레인들, 높이 쌓아 놓은 철판 더미 등에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정자 언니가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듯 정색을 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푸른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이 태양을 등지고 걸어가고 있다. 발판공들이다.
“내 큰아들이 저기 있네.”
그녀의 눈가 주름들이 떨린다.
“사귀는 여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자기들끼리 결혼 약속까지 한 모양인데 최근에 헤어졌지 뭐야. 마음을 못 잡고 매일 밤 술이야. 오늘 아침에 겨우 깨워 콩나물국 한 그릇 먹여 보냈어. 보내고 나서야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 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뭐야.”
발판공들은 철-상자와 철-상자 사이로 난, 왕복 6차선 도로만큼 넓은 길을 부단히 걸어간다. 철-상자를 찾아가는 것이리라. 철-상자 안에 공중누각을 짓기 위해, 혹은 부수기 위해.
한 달 전쯤 나는 정자 언니의 큰아들이 아가씨와 손을 꼭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걸 보았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여자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작업복 대신에 엉덩이가 꽉 끼는 청바지에,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반소매 티셔츠 차림이었다. 여자의 어깨를 감싸듯 두른 팔은 흉터투성이였다. 그들은 길에서 파는 어묵을 사먹고, 철 지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뚱맞은 모텔 건물로 들어갔다.
“난 나쁜 엄마야.”
“언니가 나쁜 엄마면 세상에 좋은 엄마가 하나도 없게요?”
“아니야, 난 참 나쁜 엄마야.”
마을 여자들은 자신의 아들들이 조선소의 하루살이 노동자가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온 아들이 마땅히 취직을 못 하고 집에서 놀고 있으면, 백수건달로 늙어 죽는 게 아닐까 싶게 그 기간이 길어지면, 그러다 어느 날 불쑥 조선소의 하루살이 노동자가 되겠다고 하면, 그것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면, 체념하듯 받아들인다. 어쨌든 조선소는 늘 하루살이 노동자를 뽑고 사지만 멀쩡하면 취직이 어려운 데는 아니니까. 결심이 얼마나 단호한지 떠보기 위해, 그리고 진실을 말해 줄 때가 됐다는 의무감에 아들에게 말한다. ‘조선소에서 버티는 건 쉽지 않아. 일하다 죽는 사람들도 있지.’
일하다 죽는 사람들도 있다는 게 어째서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조선소의 하루살이 노동자라면 누구나 아는 비밀이자 진실이다.
“네 아들은 뭐 해?”
“취직 준비하고 있어요.”
“네 아들은 몇 살이지?”
“스물다섯 살이요.”
아들의 나이를 말하며 나는 사라진 줄 알았던 슬픔을 다시금 새롭게 느낀다. 결혼할 때 스물일곱 살이던 남편은 스물세 살이던 날 데리고 이 마을로 흘러들어 조선소의 하루살이 노동자가 됐다. 이듬해 아들이 태어나고, 나는 철-배가 완성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남편은 잔업을 마치고 조선소를 걸어 나오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소에서 일하다 죽은 게 아니어서 보상금은커녕 산재신청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나는 아들과 먹고살기 위해 식당에서 그릇을 닦았다.
불티를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최면에 빠져드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럼 눈꺼풀에 5톤 철판이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졸음이 몰려오는데, 일단 졸기 시작하면 도장공이 페인트 통 뚜껑을 소리 나게 열어젖혀도 모른다. 수십 개의 망치가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도, 그라인더들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철판을 깎는 소리도 아득히 멀어진다. 굉음들 속에서, 먼지 구덩이 속에서, 질식시킬 것 같은 해로운 냄새들 속에서 꾸벅꾸벅 졸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만 그렇게 된다.
철-상자 안에서 조는 것은 위험하다.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망치를, 전기드릴을, 그라인더를, 용접기를 손에 든 채로 졸곤 한다. 철 파이프를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가면서도. 조느라 아르곤가스통 밸브 잠그는 걸 깜박하곤 한다.
안전요원들은 비몽사몽인 노동자를 보면 말한다. “병든 염소가 여기 또 한 마리 있군.” 사나흘 연달아 잔업을 하고 나면 누구나 병든 염소가 된다. 그냥 병든 염소가 아니라 푸른 작업복을 입은 병든 염소다.
나는 때때로 졸음을 떨치지 못하고 꿈까지 꾼다. 초록색 페인트로 내 몸을 칠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나는 잎이 되고 싶은 걸까.
최 씨는 3시간여를 꼬박 용접으로 메운 곳을 눈으로 훑는다. 유별나게 꼼꼼한 성격일까. 눈으로 살피는 걸로는 부족한지 손으로 더듬어 보기까지 한다.
“말끔하게 됐네요. 사상공들도 불평을 못 하겠어요.”
최 씨는 아무 대꾸가 없다.
“사상공들은 용접공들에게 불만이 많으니까요.”
최 씨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누구지’ 하고 묻는 눈빛이다.
“날 그새 잊어버린 거예요?”
최 씨는 여전히 물음표가 담긴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
“난 오늘부터 아저씨하고 짝이 되었지요. 그렇다고 내가 원해서 아저씨하고 짝이 된 건 아니고요. 나는 내내 아저씨 옆에 꼭 붙어 있었어요.”
삑― 삑― 벨소리가 울린다. 철-상자에 들끓던 소리들이 일제히 잦아든다. 노동자들이 연장을 손에서 놓고 철 계단을 올라간다.
벨소리를 못 들은 걸까. 최 씨는 용접에 더 열을 올린다.
“점심시간이에요.”
최 씨는 내 말을 무시하고 축제라도 벌이듯 불티를 한바탕 흠씬 뿌리고 나서야 용접기를 철판에서 거둔다. 용접 마스크를 벗고, 작업복에 수북이 묻어난 철가루를 손으로 툴툴 털며 몸을 일으킨다.
꾸물거리는 최 씨를 두고 나는 철 계단을 올라간다.
철-상자마다에서 노동자들이 줄지어 나온다. 철-상자들은 하나같이 거대해서 먹잇감을 찾아 집을 나서는 개미들의 행렬 같다. 노동자들은 15분은 부지런히 걸어가야 하는 구내식당 쪽으로 몰려간다. 점심시간은 1시간이다. 왕복 30분이 걸리는 데다, 철-상자에서 나오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작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20분 남짓이다. 줄은 늦게 서면 10분에서 20분은 기다려야 해서 5분 만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내 앞으로 줄이 10미터는 서 있다. 구내식당에는 땀 냄새와 음식 냄새가 뒤섞여 떠돈다. 배식판 부딪치는 소리, 배식판에 음식 담는 소리, 숟가락이 배식판에 부딪치는 소리, 의자 끌리는 소리, 수천 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밥알 씹는 소리, 콩나물무침이나 단무지 같은 반찬 씹는 소리, 목청 높여 떠드는 소리,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 구내식당도 소음으로 들끓는다. 사내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미역국에 만 밥을 부지런히 먹고 있던 금희가 날 보곤 알은체를 한다.
“늦었네.”
땀에 화장이 지워진 데다 철가루와 녹 가루가 얼룩덜룩 묻어난 그녀의 얼굴은 짓무른 가지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뒤를 돌아다본다. 내 뒤로도 3미터쯤 줄을 서 있다. 최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망치공들이 입에 밥알을, 콩나물무침을, 소시지를 한가득 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문 들었어? 조선소 주인이 죽어서 5살 먹은 손자가 새 주인이 됐다는군.”
“조선소 주인이 죽었단 말이야? 언제?”
“두 달 전에.”
“2년 전에도.”
“그는 5년 전에도 죽었지.”
조선소 주인은 죽고, 죽고, 또 죽는다. 그러니 또 죽을 수 있다. 살아 있는 그를 보았다는 하루살이 노동자는 없다.
내 앞에서 부지런히 걸어가던 정자 언니가 멈춰 선다. 그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던 금희도 서버린다. 나도 덩달아 머뭇머뭇 걸음을 멈춘다. 백설기 같은 구름이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태양빛을 정면으로 받아 이물스런 광채에 휩싸인 철-상자를 바라본다. 점심식사를 마친 노동자들이 그 안으로 삼켜지고 있다. 바깥 공기를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그 밑에서 어슬렁거리는 노동자들도 있다.
정자 언니가 말한다. “어제 저 안에서 불이 나 노동자가 둘이나 죽었다지.”
“망해버려라!” 금희가 갑자기 소리 지른다.
“조선소가 망하면 네 남편은? 너는?” 정자 언니가 묻는다.
그럼 금희의 남편은 다른 조선소를 찾아가 그곳의 노동자가 되거나 막노동판을 전전해야 한다. 그리고 금희는…….
“조선소가 아니면 갈 데가 없어. 내 남편도, 내 아들들도, 나도.”
“정자 언니, 세상 사람들은 알까요?” 내가 말한다.
“뭘?”
“철-배를 만들다 사람이 둘이나 죽었다는 걸요.”
“세상 사람들이 우리 같은 하루살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을 것 같아?” 금희가 말한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철-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걸.”
“세상에서 가장 큰 철-배를 만들고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어?”
“우리에겐 조선소가 전부지만, 그들에겐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일 테니까.”
정자 언니와 금희는 다시 걷는다. 나는 두 발짝 내딛다 다시 서버린다. 정자 언니가 뒤를 돌아다본다.
“뭐 해?”
“저기서 새가 날아올랐어요.”
나는 손을 들어 우리가 들어갈 철-상자를 가리켜 보인다.
“녹 가루야.” 정자 언니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철-상자 곳곳은 심하게 녹이 슬었다.
“새였어요, 붉은 새요.”
“붉은 새?” 금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분홍색보다 조금 붉은…… 꼬리 깃털이 유난히 기다란 아름다운 새요.”
“아름다운 새는 죽었어.” 정자 언니가 말한다.
“죽어요? 언제요?”
“그때 내 나이가 열아홉, 배꽃이 한창인 봄날이었어. 길을 걸어가다 아름다운 새가 죽어 있는 걸 봤어. 아름다운 새의 깃털은 하얀색, 노란색, 푸른색, 연두색, 보라색, 갈색…… 부리는 앵두처럼 붉었어. 부리를 빨면 새콤달콤한 즙이 빨릴 것 같았어. 새는 눈을 뜨고 있었어. 나는 아름다운 새를 손수건에 둘둘 싸 배나무 밭을 찾아갔어. 가장 나이가 많은 배나무 밑에 새를 묻어 줬지. 혹시나 고양이들이 흙을 파헤치고 새를 먹을까 봐 판판하고 묵직한 돌로 눌러 놓았어.”
“아름다운 새가 그 새 하나는 아니잖아요.”
내 말에 정자 언니가 고개를 완강히 흔든다.
“아니, 이 마을에 아름다운 새는 그 새 하나뿐이었어.”
“다른 새들은요?”
“예쁘거나,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슬프거나, 처량하거나, 외롭거나…….”
“정자 언니, 아름다운 게 뭐야?” 금희가 묻는다.
“그 모든 걸 합쳐 놓은 거.” 정자 언니가 말한다.
“빛으로 치면 흰빛이겠네.” 금희가 말한다.
“흰빛?” 내가 묻는다.
“모든 빛을 섞으면 흰빛이 된다던데.” 금희가 말한다.
“얘들아, 우리가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 줄 알아?” 정자 언니가 금희와 내게 묻는다.
“왜요?”
“우리가 죽은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야. 아름다운 새가 죽고 세상도 죽어갔어. 우린 죽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야. 아름다운 새를 묻은 배나무가 말라죽더니 다른 배나무들도 차례로 말라죽었어. 배나무들과 함께 세상도 죽은 거야.”
그때 철-상자 표면에서 새 한 마리가 또 머리를 내밀더니 사선으로 날아오른다. 새는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죽은 세상에서 사는 건, 어미 새가 죽은 나무의 가지에 지은 둥지에서 새끼를 키우는 것과 같아. 둥지를 떠받치고 있는 가지가 썩고 메말라 언제 부러질지 모르지.”
나는 철 계단을 내려간다. 정자 언니와 금희는 그새 어디로 가버리고 없다. 허방을 짚을까 봐, 작업화 신은 두 발뿐 아니라 온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공중누각에는 표지판이 없다. 흔한 화살표 하나도. 길을 잃었다는 생각에 오싹 공포감이 밀려든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철-상자 안에서 길을 잃어 봤자 철-상자 안이 아니냐고.
내 뒤에서 노동자들이 발소리를 엇갈려 내며 줄지어 계단을 내려온다. 옆으로 비켜서려는 내 어깨에 전구가 부딪쳐 흔들린다. 그 바람에 전구가 발산하는 불빛이 흔들리며 공중누각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나는 노동자들 무리에 휩쓸려 철-상자 바닥까지 내려간다. 등에 아르곤가스통을 짊어진 노동자가 곧장 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오며 소리 지른다.
“비켜요!”
노동자는 방진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리고 두 눈만 빼꼼히 내놓고 있다. 눈동자는 놋쇠 빛깔이다. 아르곤가스통의 무게는 20킬로그램이다. 옆으로 비켜서는 내 발에 뭔가가 밟혀 온다. 뭔가 했더니, 해바라기꽃 모양으로 오린 함석판 조각이다. 나는 손을 뻗어 그걸 주워든다. 함석판 조각 표면이 전구 불빛을 받아 야릇하게 번들거린다.
나는 함석판 조각에 얼굴을 비춰 본다. 일렁거리는 게, 흐르고 흐르는 게 내 얼굴이라니, 기분이 이상하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안전요원 둘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얼굴이 있어요…….”
“뭐?”
“내 얼굴이 여기 있어서요…….”
나는 함석판 조각을 들어 보인다. 얼굴을 찾은 내게 안전요원들은 경고를 준다. 경고를 한 번 더 받으면 나는 조선소에서 쫓겨난다.
최 씨는 홀로 용접 삼매경에 빠져 있다. 나는 안도감과 함께 밀려드는 허탈감에 빠져 불티를, 철판에서 피어나는 불꽃을, 고여 흐르는 철물을, 철물이 부풀어 오르며 굳는 걸 바라본다. 길을 잃은 게 그의 잘못이 아닌데도 울컥하도록 서운한 마음이 든다. 철가루-비를 맞고 서서 소리 없이 울먹이던 나는 최 씨가 철판에서 용접기를 거두길 기다렸다 말한다.
“길을 잃었어요.”
최 씨의 얼굴이 기우뚱 들리더니 날 향한다.
“영원히 길을 잃을까 봐 겁이 났어요.”
그는 용접 마스크를 쓴 채로 날 바라본다.
“그런데 헤매다 얼굴을 찾았어요.”
나는 함석판 조각을 들어 보인다.
“여기, 내 얼굴이 있지 뭐예요.”
최 씨가 용접기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여전히 용접 마스크를 쓴 채로 장갑 낀 손으로 철판을 툭툭 친다.
“이 속에 뭐가 있는 줄 알아?”
“뭐가 있는데요?”
“불이 있지.”
“불이요?”
“잠자는 불.”
최 씨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말한다. 여전히 용접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나는 그의 눈빛도, 표정도 읽을 수 없다.
“대장장이들이 왜 그렇게 망치로 메질을 하는 줄 알아?”
“왜요?”
“철 속에 가둔 불을 잠재우려고.”
“철 속에 불을 가두다니요?”
“나무, 번개, 별, 물, 소금, 철…… 그것들에만 불을 가둘 수 있어.”
“나무에 불을 가둘 수 있다고요?”
“불을 삼키면 쇳덩이처럼 단단해져서 불멸할 수 있다는 걸 나무들은 몰라. 나무는 인간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주지만 정작 자신들은 지혜가 없거든. 잎, 꽃, 열매는 일장춘몽. 물은 나무에게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윤회의 고통과 허망함만을 줄 뿐이야. 잎은 바람이 가져가 버리고, 꽃 속에 든 꿀은 벌과 나비와 새들이 따먹고, 열매는 인간들이 가져가 버리지. 뿌리의 기운이 다하면 나무의 윤회도 끝나지. 윤회의 끝은 죽음. 마침내 죽은 나무를 기다리고 있는 건 버섯과 이끼와 개미와 달팽이…….”
“번개는요?”
“번개는 불의 화형대야.”
“그럼, 별은요?”
“별은 불을 만나면 얼어버리지. 소금은 흰색을 만들고, 물은 구름이 되고.”
최 씨의 용접 마스크를 쓴 얼굴이 망치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한다. 불협화음처럼 분산돼 울리던 망치소리가 마침내 화음을 이루듯 하나로 합쳐진다.
“불이 깊이 잠들면 잠들수록 철은 더 단단해지지. 그래서 망치공들이 망치로 철판을 두드리고 두드려 불을 재우는 거야.”
“하지만 철은 차가워요. 불이 그 안에 있으면 뜨거워야 하잖아요.”
“그건 불이 잠들면 온기를 잃고 서늘해지기 때문이야…… 불을 깨우면 안 돼.”
“불이 잠에서 깨어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철판이 녹아버리지.”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어떻게?”
철판이 녹는 건 생각해 본 적 없는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용접 마스크 때문에 고갯짓이 부자연스럽지만 어쩐지 귀엽다.
“그럼 철-배를 못 만들겠지.”
최 씨는 혼잣말인 듯 중얼거리고 용접기를 집어 든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철-배를 만들고 있다는 걸 모를 거라는데요.”
“그래서?”
순간 용접 마스크가 그의 얼굴을 압박하듯 누르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누르고 누르다 마침내는 들러붙어 그의 얼굴이 된다. 나는 깨닫는다. 미역색 용접 마스크에도 표정이 있다는 걸. 날 바라보는 용접 마스크에 깃든 표정은 무뚝뚝한 듯 순박하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걸까. 그는 내게서 얼굴을 거두지 않는다.
“그렇다고요.”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나른하고 무거워진다. 서 있는 게 고역이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사고 빈도가 가장 높은 시간이다.
태양이 달아오르면서 철-상자도 뜨거워진다. 내 겨드랑이와 등은 이미 땀으로 축축하다. 땀방울이 흐르는 등이 간질간질하다. 작업복 속에 파고든 유리가루가 살갗을 긁어대서다. 출근했을 때만 해도 서늘했던 철-상자 안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기계가 돌아가며 열기를 발산하고, 불티가 만발하니 온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하다. 3백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발산하는 열기, 전구 불빛 열기…… 그 모든 열기는 밖으로 발산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안에 고인다.
오후 3시경에 후끈해진 철-상자는 40도가 넘는다. 한여름에는 5, 60도에 육박한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린다.
또다시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1분이라도, 1초라도 바깥 공기를 쐬기 위해 철 계단을 올라간다.
늙은 망치공들은 장기판을 펼친다.
“조선소 주인은 철-배가 완성되길 바라지 않는다지.”
“그럴 리가 있나!”
“철-배가 너무 거대해서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지 뭐야. 그래서 철-배가 완성되면 조선소가 망할 거라는군.”
“조선소가 망하지 않으려면 철-배가 영원히 완성되지 않아야겠군.”
“영원히?”
“우리는 영원히 망치질을 하고.”
“우리는 망치공이니까.”
철 계단에서 작업반장 박 씨와 마주친다. 면도를 하지 않았는지 턱 주위가 거뭇거뭇하고 눈에는 핏발이 섰다.
“어때?”
“뭐가요?”
“새 짝꿍 말이야. 맘에 들어?”
“맘에 들 것도, 맘에 안 들 것도 없어요.”
“비싸게 구는군.”
“누가요?”
“시치미 떼기는. 아줌마, 근데 그거 알아? 매일 500명 넘는 노동자가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조선소를 떠난다는 거 말이야.”
“그래요?”
“그럼, 그건 알아?”
“뭘요?”
“매일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선소 노동자가 되기 위해 이 마을을 찾아온다는 거 말이야.”
*
태양이 서쪽으로 떨어지고, 초승달이 떠올라서야 최 씨와 나는 철-상자에서 나온다. 초승달 밑에는 별이 한 점 떠 있다.
“최 씨 아저씨, 저게 정말 철-배의 심장일까요?”
“심장이 아니면 뭘 것 같아?”
“심장은 빨개야 하잖아요. 딸기나 잘 익은 사과처럼 말이에요. 과학 동화책에서 봤는데 심장은 빨간색이었어요. 근데 저건 그냥 잿빛이잖아요.”
뼈는 흰색, 살은 살구색, 콩팥은 검정색, 폐는 짙은 녹색이었다.
“뭘 모르는군.”
“네 심장도 저래.”
“내 심장이 저렇다고요?”
“6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내 마누라 심장이 저랬거든. 수술비하고 입원비가 꽤나 들어 빚을 잔뜩 남기고 떠났지.”
나는 최 씨가 내게서 멀어져 푸른 작업복들 속으로 사라지는 걸 바라본다.
바다 쪽에서 갈매기 두 마리가 시차를 두고 날아온다. 나는 고개를 들고 눈으로 갈매기들을 쫓는다. 거위만 한 갈매기가 날개를 크게 한 차례 펄럭인다. 갈매기들은 정탐꾼들처럼 조선소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다시 바다로 날아간다.
나는 혼자 철-상자 앞에 남겨진다. 철-상자를 올려다본다. 온갖 소리들로 들끓던 철-상자는 침묵에 잠겨 있다.
길을 잃었던 충격이 큰 걸까. 모두가 떠난 철-상자 안에서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전구들이 꺼지고 열기가 식는다. 발밑에서는 녹지 않은 철가루-비가 고여 흐른다. 허공에서는 나사가 풀어진 발판이 삐걱― 삐걱―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어딘가 밸브를 잠그지 않은 아르곤가스통이 놓여 있다.
나는 철-상자에 다가선다. 철-상자가 워낙 거대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실오라기가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철-상자에 손을 대본다. 종일 태양에 달구어져 막 찐 감자처럼 따뜻하다. 까끌까끌하고, 비릿한 피 냄새가 난다. 이상하다. 어째서 철 덩이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걸까.
* 허환주, 후마니타스 『현대조선 잔혹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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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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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4-12-01
흑건(黑鍵) 임희강 요셉이 정수용을 만난 건 약 두 달 전의 일이다. 요셉은 좁은 골목의 치킨 가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치킨집 바로 오른쪽에는 50년 전통의 순두부 가게가 있었다. 치킨집의 왼쪽엔 50년 전통의 순두부 가게 사장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구찜 가게가 있었다. 그 외에도 갈비찜, 감자탕, 굴보쌈과 족발을 파는 가게가 차곡차곡 잘 맞춘 블록처럼 쌓여 있는 골목이었다. 두 사람이 지나기도 빠듯한 골목에는 서로 다른 음식에서 사용한 간마늘과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예스럽고 한국 음식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지만 누가 봐도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요셉은 가진 옷 중 가장 깔끔한 재킷을 챙겨 입고 치킨 가게로 출근했다. 치킨 가게 사장은 바로 요셉의 이모부였다. 가게를 인수할 때 내부에 있던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를 보고 이모부는 놀고 있던 요셉을 불러 연주를 부탁했다. 요셉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은 〈흑건〉이었다. 〈흑건〉은 쇼팽의 에튀드 G Major. Op.10 No.5를 말한다. 백건반이 아닌 흑건반으로만 주요 선율이 이뤄져 있어서 ‘흑건’이란 별칭이 붙었다. 어느 대만 영화에 메인 테마곡으로 등장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었다. 〈흑건〉의 박자는 비바체였다. 대단히 빠르지만 급한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점에서 프레스토 박자와 구분된다. 프레스토를 사용하는 곡으로는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Flying of bumblebee)〉이 있다. 요셉이 생각하기에 그 곡은 손가락 훈련 곡에 지나지 않았다. 우아함을 따지자면 〈흑건〉이 훨씬 우세하다. 요셉은 품격을 잃지 않는 선에서 경쾌하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건반에 묻어 있던 기름때가 손에 묻으며 쩍쩍 소리가 났다. 연주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요셉에겐 특권처럼 여겨졌다. “제대로 밟을 줄 아는군요.” 연주가 끝났을 때 정수용이 다가와 말했다. 페달을 다루는 스킬을 알아봐 주는 손님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가 말을 걸어온 게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가게에서 말을 거는 사람은 십중팔구 취객이었다. 요셉은 처음 연주를 했을 때 60대 남성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미 옆 가게에서 지인들과 굴보쌈에 소주 6병을 해치우고 넘어온 상태였다. 등산복 차림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반갑진 않았지만 연주를 알아봐 준 것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요셉이 인사를 하려고 그의 곁에 다가갔을 때 남성은 몸을 휘청거렸고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요셉은 이후 손님과 대화를 삼갔다. “시끄럽지 않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요셉이 수용에게 말하곤 카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가게는 피아노 연주를 듣기 위해 찾는 곳은 아니다. 요셉이 소리가 증폭되는 뎀퍼 페달 대신 소리를 줄이는 시프트 페달을 밟은 이유다. 손님들은 치킨 가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 준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소리가 너무 커
- 관리자
- 2024-12-01
다른 겨울 최유안 음습한 바람이 무리의 발소리를 갑작스레 가뒀다. 육중한 무게가 계단을 수시로 눌러 내리는 탓인지 천장에 붙은 낡은 철제 안내판 한쪽이 불규칙하게 덜컹댔다. 거, 애도 있는데 앞으로 자꾸 밀지 마시고. 신경질적인 영어에 앞쪽 무리에 끼어 있던 몇이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녀 한 쌍이 눈치를 보며 그의 주위를 빙 돌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빠져나가는 지하철 입구를 올려다봤다. 나 말고도 작은 소요에 신경 쓴 사람이 더 있었는지 고개를 튼 방향에 시선이 여럿 뒤섞여 있었다. 출구 끄트머리 너머 작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남자가 안정을 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츄러스 먹을까?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아이가 신이 나는지 까르륵 소리를 냈다. 빨간 털모자가 단번에 눈을 사로잡았다. 두 돌 정도 되어 보였다. 아이 소리에 힘이 난 남자가 끙 소리를 내며 큰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같은 줄에 서서 걷는 남자와 내 뒤로, 수십 명이 굴리는 발걸음이 코뿔소 떼처럼 광광거렸다. 계단참에 짧은 치마 차림의 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멈춰 섰다. 사람들이 그를 피해 둥글게 호를 그리며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혹은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구도로 앵글을 잡았다. 한데 몰려 있던 찬바람이 안쪽으로 거세게 밀려 들어왔다. 지하철 입구가 아랑곳없이 사람들을 쏟아냈다. 단어들이 하얗게 내뿜는 입김을 타고 구슬처럼 흘러나와 공기 중에 분사됐다. 북적이는 관광객 틈에는 한국인도 여럿 섞여 있었다. 깔깔거리는 소리에 익숙한 단어들이 튀어나와 저마다의 파동으로 멀어져 갔다. 누군가는 여행을 오기 전에 유럽에서 동양인 경멸이나 무시가 빈번하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고, 여긴 그나마 괜찮아, 하는 자조 섞인 말도 들렸다. 게다가 지금이 연초보다 더 멋질 게 분명해, 하고 아직 마주하지 않은 새해 풍경을 확신하기도 했다. 불안을 기만하는 방식으로 불가해한 미래를 정당화하는, 인간은 오만하다. * 간간이 부는 시린 바람 사이로 빵 굽는 냄새가 옅게 났다. 멀리 성당 종소리가 아득했다. 걷는 행위에 극심한 피로를 토로하는 나를 배려해 희용과 혜미는 속도를 조절하며 앞장섰다. 희용은 오른편에, 혜미는 왼편에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탓에 희용은 약간 비틀린 채 서서 인도와 차로를 번갈아 걸었다. 한 아이가 다가와 거칠게 희용의 옆구리를 밀치며 지나갔다. 앞서간 아이를 멈춰 서 바라보는 희용의 곧게 선 뒤통수가 홧홧해 보였다. 희용을 치고 지나간 아이 뒤로 비슷한 또래의 아이 둘이 장난치며 뛰었다. 뒤따라 어른 몸집만 한 아이가 달려들더니 희용의 어깨를 치고 지났다. 희용의 귀에서 에어팟이 빠져나와 바닥에 내리꽂혔다. 아, 씨. 희용은 포장된 도로 위를 굴러가는 에어팟을 주워 올리며 멀리 아이들을 바라봤다. 벌써 저만치 뛰어가는 중이었다. 얼굴을 구긴 희용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 걷던 내 옆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내가 물었고 희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는 목소리가 걱정스러웠는지, 에어팟
- 관리자
- 2024-12-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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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김숨 작가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응원합니다.
작품을 읽고 크게 느낀 바 있어 분석 감상문을 작성하였는데 작가님 e.mail 연락처를 알면 전달드리고 싶습니다 jiahn68@naver.com 으로 연락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