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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비둘기 아파트

  • 작성일 2018-03-01
  • 조회수 1,160

흰 비둘기 아파트

고형렬


오랜만에 찾아온 그 아파트는 따뜻하였다
양평에선 광열비가 무서워
이불 속에서 장자를 읽고 여행을 간다
십 년


파란 하늘 아래
어느 낯선 이의 한 구절이 지나가는 아파트는
언니 집 근처에서 구름과 사는 칠층 하늘
바라보고 누워서 늘 눈 감던
그 창과 그 발코니와 그 거실들


남의 아파트 사이로 김포 강안이 내다보이는
서울 서쪽은
늘 불안하게 해가 떨어지던 곳
흰 페인트칠한 한낮의 아파트 너머로
정오는 몇 마리 흰 비둘기를 넘겨주고 있다


다치지 않은
머리 위 높은 옥상 끝에서 그날의 햇살들은
여전히 쪽쪽, 쪽쪽거리며
작은 젖니로 고드름을 빨며 놀고 있는


오늘 오전 11시 14분, 시간은 소리가 없다
실내는 하얗고 추억은 파랗게 물든다
삼십대는 육십대가 되었고
학교에 가 있는 여학생은 삼십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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