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 작성일 2017-10-01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2,256
축제
김은지
술을 마시고 손을 맞잡고
가장 슬픈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놓았다
형이 잘못 사는 얘기
그녀가 잘못 떠난 얘기
질투, 못지않은 억울함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난
손잡은 사람 이야기에 울고 있는데
화장실에 갔던 한 명이 뛰어나와
이거 십오일 전에 삼켰던 약이 명치에 걸려 있었나 봐 라며
토해 낸 알약을 보여줬다
우리는 모두 기뻐 일어나
술상을 가운데에 두고 박수를 치며 춤을 추려는데
창가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소리로
“이제 그만 잡시다. 좀.”
옆집 사람의 한 마디
잠에서 깼을 때
우리가 꺼낸 알약은 보이지 않았다
꾸벅 꾸벅
약이 놓여 있었던 것 같은 곳을
쓸어 보았다
화순 세제골 처이모네 목탄 보일러, 증기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연통 위로, 줄기줄기 늘어진 시래기 배춧잎, 주름 사이로
기어가는, 하늘 뭉게구름에도 구멍 숭숭 뚫어놓고, 잎맥만 남아 파리하니 속이 다 비치는, 헛웃음에 한 백년은 늙어버린
손금에 고였다가, 솜털을 적셔 갈앉히다가 볼에 스미고, 까무룩 빛나다가 이내 날아가는, 물비린내 덜 여문 가을빛에
보일 보일 끓어오르다, 고롱고롱 맺혔다 풀어지는 담배연기로, 왕겨가루 폴폴 날리는 처이모부 밭은기침에, 공연히 궁싯대는
배추흰나비, 잔털 빽빽한 애벌레 물 마시러 마당에 내려서, 앉은 자리 옮기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운주사 臥佛은
누가 파먹었나? 눈알 가득 고이는 새벽이슬.
추천 콘텐츠
고달프고 사나운 황인숙 느지막이 장년 훌쩍 지나 만난 나의 반려 내 젊은 날 친구랑 이름 같은 누군가 돌아볼지 몰라요 아니, 재길이 그대 부른 거 아니에요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라알!” 시도 때도 없이 길바닥에서도 짖어 부르는 내 반려욕 사납고 고달픈 맘 달래 줍니다 사실 나는 내 반려욕을 사랑하지 않아요 못나기도 못났으니까요 어디서 그렇게 나 닮은 욕을 만났을까요 만나기는 뭘 만나 내 속으로 낳았지
- 관리자
- 2024-05-01
글 쓰는 기계 김응교 사실 기계들은 자기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할 기계적 고독이 필요하여 자기만의 기계실에서 밤새 작동한다 그를 누구도 볼 수는 없겠지만 껍질이 날아간 뼈다귀 로봇 등 뒤 상자 서너 박스에는 유영을 멈춘 지느러미들 생선집 좌판에 파리 날리는 근간 시집들이 옆으로 누워 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기계를 닮아 가고 책 모양 사각형으로 바뀌어 옆으로 누운 가자미, 눈알과 손가락만 남아 상상력이 냉동되면 어떤 창작도 휘발되고 너무 많은 과거의 형태와 언어가 얼어붙어 더 이상 신선한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 기계에게도 컨베이어에 실려 뜨거운 화덕에서 태워질 운명이 다가온다
- 관리자
- 2024-05-01
멍쯔 삼촌 김응교 내 피의 4분의 1에는 몽골 피가 흐르고 아마 4분의 1은 옛날 중국인 피가 흐를지 몰라 내 몸에는 지구인들 피가 고루 섞여 있을 거야 그니까 삼촌이라 해도 뭐 이상할 거 없지 중국에 삼촌이 산다 삼촌이 쓴 책에 역성혁명이 나오는데 우리는 비슷한 혁명을 몇 번 경험했지 제자가 많다는데, 나는 삼촌으로 부른다 중국인은 멍쯔라 하고 한국인은 맹자라 하는 멍멍, 차갑게 웃을 중국인 삼촌 우리는 계속 역성혁명을 하고 있어 불은 든 프로메테우스들이 많아 멍쯔 삼촌, 우린 심각해요
- 관리자
- 2024-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