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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경의 지름

  • 작성일 2018-03-01
  • 조회수 1,421

허블

- 반사경의 지름

안웅선


나는 여전히 나를 탓하며 나를 망치고 있습니다


그 여름밤 내가 놓쳐버린 별똥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의 보정을 거치고야 한 장 손에 쥐게 되는 사진
한 달 이상 어둠에 버려둔 눈으로


시간에 속기 위해 우주를 향해 굳게 편 십자가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나선들과 서넛쯤 많은
희미한 타원들과 사라져 간 백하고도 삼십억 년 전의 빛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일은 그만 멈추려고 했지만 홀로 남은 거울 위에서
빛은 빛으로 남기 위해 온몸으로 부서지는 중이고


날카로운 빛의 파편들이 세계를 가득 채우는 아침


나는 당신이 죽은 사람들이 모두 별이 된다는 오랜 믿음을
아직 주머니 속에서 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면 다시 내 머리 위에서
가장 어두운 하늘을 숨죽여 바라볼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오래 바라본다면 여름은 항상 찾아옵니다 은하수 바깥
많은 별들이 흐르는 대기도 계절도 없는
이곳에서


당신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오늘
내가 잃어버린 별들의 지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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