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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라이트

  • 작성일 2014-02-01
  • 조회수 650

블루 라이트

이문숙


족저근막염을 앓는 친구에게 구름을 신겨 주었다
그랬더니 어느새 구름의 승강장에 올라 손을 흔든다
야간 등을 달고 비행기가 벌써 넉 대째 구름 속으로 잠긴다


미얀마에 가 탁발을 하거나
먼지 냄새 나는 마을에서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물론 아픈 제 발을 주무르며
제발과 제 발의 차이를 가르치긴 무척이나 어렵겠지
띄어쓰기가 이렇게 중요한 건 처음 알았어


장미의 이름이 춤추는 소녀이거나
블루 라이트이거나


하늘에 그녀가 벗어놓은 샌들이 한가득이다
끈이 끊어졌거나 뒷꿈치가 형편없이 닳았거나
바닥에 잔돌이 박혔거나


나는 가끔 내가 그녀에게 선사했던 최초의 신발을
찾아보러 장미 정원에 간다


장미의 이름이
붉은 행성이거나
아이스 버그이거나


샌들을 샌달로
잘못 읽기는 너무 쉬워


그녀의 신발을 탁탁 털어주며
달에서 모래가 흘러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고
하지는 마


장미의 이름이 베테랑이거나
썸머 드림이거나


달에서 모래가 흘러내려
이제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동체가 반짝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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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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