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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

  • 작성일 2015-08-01
  • 조회수 1,253

중첩

권오영


부술 듯이 문고리를 흔들어대다가 사라지는
맨발의 바람소리 듣고 있었네


꿈에서 꺼낸 죽은 나를 보고 있던 중인데
지붕도 창문도 계단도 보이지 않고
한동안 정전으로 캄캄했어, 그때부터야


내용이 담기지 않은 흰 접시가 얼굴로
커다란 구멍이 입으로 보이는 순간, 가까이
문 닫히는 소리 집중할수록 어둠이 선명했네


어둠 속으로 숨자 벽들은 수군대기 시작했지
갈라지기 시작한 틈 사이로 뻗어 나오는 질긴 소리들이
수백 개 똑같은 상자 속으로 뿌리를 박기 시작한 거야


언 강 건너다 얼음이 되어버린 숨 끊어진 밤
느린 여름이 잠을 들춰내고 꿈을 도려내고
남김없이 끄집어내는 동안에도 계속되는 꿈


자전거를 타고 구름 위 오르는 여기,
주술에 걸려 흔들리는 모닝콜 울리자
혼곤한 꿈 무너지는 지금,


결국 나는 들키고 말 거야


나를 가둬 두고 못질을 했지
상자 표면에 써놓은 글씨가 기억나


용량 : 1.5kg, 내용물 : 뇌, 용도 : 전시용


빨간 유성펜으로 써놓은 글씨들 중
빠진 게 있어 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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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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