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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와 향유고래

  • 작성일 2019-09-01
  • 조회수 1,865

북해와 향유고래

이병일


수평선이 굵어지면 북해보다 큰 무지개가 떠오른다


한 삼백 년 거뜬하게 사는 향유고래
북해의 물속에서는 오래 숨을 참지 못해 음파는 커진다
검은빛이 밝은 곳에서는 음파의 색과 방향마저 잃었다
그때 경랍(鯨蠟)이 뇌를 갉았지만 괴로워하지 않았다


해 뜨고 달지는 심해; 그 아늑한 시간 속을 헤치면서
아가리 크게 벌리고 죽어야 큰 무지개 하나 짠다는 것을 안다
저 향유고래,
옆으로 누워 있으니까 조용한 백양나무 두 그루,
더 이상 물거품 내뿜지 않았다


서로 기도하면, 목마름이 조상의 메아리임을 알게 될까?


두려워하지 마라! 물길을 믿으면 모든 구속에서 해방되니까
그러나 향유고래가 낮은 수로에 갇히자
갑자기 물새 떼들이 목이 잠긴다
은빛 금빛 너울들이 향유고래의 시야를 감아들인다


북해에 있는 것들아, 잘 있거라
오늘 향유고래의 흥이 북두칠성 끝자리로 올라간다


백양나무 두 그루,
제 죽은지도 모르고 달빛만 일렁거려 잠을 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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