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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영화

  • 작성일 2020-06-01
  • 조회수 1,434

심야영화

강백수


밤은 거대한 구멍
잠은 위대한 축복


축복이 비껴난 자리에서 우리는 구멍을 맞이하여
메울 것인지 외면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잘 걸어지지 않던 밤
빌라 밑 좁은 틈에서 들려오는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깨달았지
나는 내가 메우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시늉뿐
구멍을 애처로이 메우고 있던 건
내가 하고 있던 그 메우는 시늉이었지


161/169
나 말고도 저주받은 여덟이 그 부질없음을 깨닫고
영등포 CGV 6관에 모여
어벤져스여도 상관없고 기생충이어도 상관없는 영화를 본다
이제 우리는 러닝타임만큼 구멍을 외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네 시간이나 남는 밤


타임스퀘어 맞은편 거리 가득
저주받은 이들이 구멍을 메우-는 시늉을 한다
술을 마시고 우정과 사랑을 맹세하-는 시늉을 하다가
애꿎은 거리에 토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느 고양이의
핏내 나는 울음소리를 듣고는 문득 허망한 마음이 들겠지


그 옆 거리에는 또 한가득
메움을 포기하고 매음 하는 사람들
그 너머 높다란 아파트 불 꺼진 방 안에는
잠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


아직도 밤은 네 시간이나 남아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잠들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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