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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의 강요

  • 작성일 2020-06-01
  • 조회수 1,995

깊이의 강요

권오영


그 속으로
말려들어 가면
빼낼 수 없을 거야


모가 나면 부서질 일이 많을 거라는 말이
고리가 되어 고리를 주렁주렁 목에 걸었네
어디든 굴러 다녔네 얼굴의 모서리에서 자란
귀퉁이를 갉느라 입술이 찢어지는 일이 많았네


둥글어져야 해
죽은 지 오래된 엄마는 법을 가르치고


최선을 다한 입구는 둥글어져
깊이를 모를 바닥까지 미끄러졌네
이제 밖은 잊기로 했고 잔발을 저으며
제멋대로 내부를 흘러 다녔네


천 개의 달이 뜨면 천 개의 운명으로 번지는
그 안에서 꿈틀거렸지


해는 피투성이 입술울 자주 비추곤 했는데
60년대 화보처럼 채워지는 어둠은 성벽 같았어


내부에도 외곽은 있어서 정원을 가꾸려고 해
순전히 내부의 방식으로 꽃밭을 키워낼 거야
내부의 뿌리가 썩지 않도록
깊이를 재는 눈금을 표시해야겠어


안을 들여다봐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그 애가 젖고 있어
그런다고 운명이 빠져나오지 않아


이제 법을 배웠으면 안으로 삼켜
엄마가 겁을 주려는 거야
속 깊은 사람은 둥글지


우물은 혼자 깊어지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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