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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마음

  • 작성일 2021-01-01

부드러운 마음

임유영

어데 그리 바삐 가십니까, 동자여. 바지가 다 젖고 신도 추졌소. 뜀뛴다고 나무라는 게 아니라 급한 일이 무엇이오.


이보, 여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 지금 아랫마을 개가 땅을 판다기에 바삐 가오. 개가 주인도 안 보고 밥도 아니 먹고. 빼빼 말라 거죽밖에 남지 않은 암캐가 땅만 판다 하오.


그 개 물 주어 봤소?


그 물 주러 가는 길이요, 그래 내가 이래 다 쏟아 온데 사방이 추졌소.


동자승아, 동자여, 뚜껑 단단히 닫고 가소. 여기 물 더 있으니 모자라면 부어 가소. 보온병에 뜨신 커피 있으니 이것도 가져가소.


필요 없소, 필요 없소. 무슨 개가 커피를 먹는답디까?
당신 행색 보아하니 혹 땡중이오? 우리 주지스님 힘이 장사다.


그 개 다 틀렸다, 개가 땅을 파면 죽는다.


동자가 쌩하게 뛰어 개 키우는 집에 가보니 개는 벌써 구덩이에 죽어 늘어져 있었다. 동자가 개에게 물 뿌리려는 것을 주인이 잡아 옷을 싹 벗겨 빨아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개 무덤에 흙을 뿌리게 하였더니 동자가 엉엉 울다가 개 무덤에 대고 아이고 개야, 개야, 너 전생에 사람이었는데 외로이 죽고 개로 태어났다가 또 혼자 죽으니 두 번 다시 태어나지 말라, 태어나지 말라 수차례 외쳐 일렀다.


동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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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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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유영
  •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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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misfits
    감동했어요

    왜 이 시의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주인공이 꼭 동자승이었나 고민을 해봤어요. 동자승은 수행의 길을 걷고 있고, 깨달음의 가능성을 지닌 순수한 존재이지요. 그 누구보다 생명과 고통에 대해 민감하고 그걸 끌어안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주지스님은 힘이 장사래요. 이 힘은 아마 영적인 힘이 아니라 세속적인 힘 아닐까요, 아이러니하게두요. 오직 동자승만이 고통받는 개를 진심으로 애틋해하고, 그러나 지킬 수 없는 무력함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 개가 고통받는 타자, 또는 고통받는 나의 내면이라면.. 그에겐 생명의 근원인 물이 필요한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커피를 줘요. 오히려 갈증만 더 돋구는 사치품이자 기호품. 그리고 제 무덤을 파고 있는 개를 진심으로 추모하는 동자승을 비웃어요. 그래서 동자승은 개에게 다시 태어나지 말라(윤회의 고리를 끊고 열반에 오르라)고 해요. 어쩌면 존재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아예 존재하지 말라, '무' 로 돌아가란 뜻일수도 있구요. 하지만 형이학의 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그것을 바보같다 여기나봐요. 선생님의 시는 어딘가 현실같지 않고 꿈의 세계인 느낌이 나서 정말 재밌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외국에 살아 댓글을 남기지 못하는 제 친구가 너무 재미있는 해석을 해줘서 같이 올릴게요. '부드러운 마음' 은 도덕적 위선을 떠는 인물을 비꼬는 역설적 의미의 제목. 동자승은 겉으로는 개를 살리고 싶어하는 선한 인물로 보이나 실은 선을 행하는 스스로에게 취해있는 인물. 커피를 건네주는 타인의 행동은 어쩌면 개가 아닌 동자승에게 향한 것일수도 있는데 동자승은 그것을 제 식으로 해석하고 땡중이냐며 깎아내리곤 주지스님의 세속적 힘에 무임승차하는 인물로 보임. 만약 진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선' 밖에 없다- 를 전제로 깐다면 개가 죽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죽은 개는 intention 을 가질수 없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의도가 들어가 있으면 도덕성은 순수하지 않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 개가 전생에는 사람이었고, 그러니 의도를 가지고 선의를 베푼 적도 있었을 것이다. 즉 죽은 개를 추모하는 동자승의 마음도 그 시점에서 순수한 도덕적 행위라 볼 수 없다. 사람들이 웃는다는 것은 그런 동자승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이거나, 또는 스스로에 대해 웃음으로 방어기제를 세운 것일수도 있겠다.

    • 2025-03-27 18:36:35
    misfits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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