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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이라는 말에 모였다

  • 작성일 2022-09-01
  • 조회수 1,053

중간이라는 말에 모였다

이서화


중간은 쉽게 도출된다
쉽게 뭉쳐지고 수월하게 흩어진다
각자 끌고 온 거리를 버리는 일은
늘 중간에서 일어난다


다 같이 앞으로, 달려온 곳이
중간이라면
그보다 더 긍정적일 수 없다


우리는 모여서
앞과 뒤를 이야기했다
소리에도 중간이 있다면 고요가 앞일 것이다
누구는 옆으로 끼어들었지만
금방 앞이나 뒤가 되었다
누구는 앞을 목전에 두고
또 누구는 뒤에 퇴로를 두고 있지만
중간이라는 말에 모여선 하나같이
저 뒤쪽에 숨겨 놓고 있다


우리는 모여서 중간을 나누었지만
깜빡하고 중간을 두고 간 사람과
제 것인 양 들고 간 사람을 흉보기 바빴다


앞으로 달려온 중간에서 각자 뒤돌아갔다
그곳 또한 각자에겐 앞이었다
앞은 어디를 향해도 앞이었고
또 어디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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