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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건어물 상회

  • 작성일 2006-12-29
  • 조회수 1,807

박씨 건어물 상회

김수우


멸치와 뱅어들이 꾸려온 한 가계가 팽팽합니다

수만 길 바다를 끌던 치열은 이제 박씨네 수저통과 형광등에 퍼덕입니다 노모의 관절염과 전세계약서, 과외비 속으로 녹아듭니다 다려도 다려도 우툴두툴한 꿈속으로 유영하는, 소금버캐 눈물을 가진

저, 비린 것들

  

억년 지층에 갈피갈피 엎드렸던

묵언기도입니다

  

북어와 새우들이 하루를 엽니다 수평선이 걸어옵니다

딱딱한 침묵이 툼벙툼벙 물소리를 냅니다 자갈치 건어물 골목, 아직도 헤엄치는 것들로 파도 높은데, 비탈이 된 가슴패기를 자꾸 흔드는 가을입니다 아가미, 벌렁입니다 죽음을 삼켜 삶을 토해내는 

저, 마른 것들


고요입니다 

사만 오천 킬로 해저산맥을 걸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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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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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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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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